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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의해백문(펌)

VIS VITALIS 2020. 2. 21. 08:02

화엄경의해백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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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嚴經義海百門

화엄경의해백문

 

京 大薦福寺 沙門 法藏 述

경 대천복사 사문 법장 술

 

 夫緣起難思諒遍通於一切法界叵測誠顯現於十方莫不性海沖融應人機而表一智光赫奕耀世間以通三殊勝微言輕毫彰於圓教奇特聖衆纖埃現以全身逈超情慮之端透出名言之表

대저 연기(緣起)는 헤아리기 어렵지만 진실로 일체에 두루 통하고법계(法界)도 헤아리기 어려우나 참으로 시방에 나타나 있다성품의 바다는 가득차서 넘쳐흘러 사람들의 근기에 응하지 않음이 없으나 하나로 표현되고지혜의 빛은 밝게 빛나 세간을 비추되 셋에 통한다.

특히 뛰어나고 미묘한 말씀인 원만한 가르침은 가벼운 터럭으로 드러내고뛰어나며 특이한 성자들은 온몸으로서 티끌에 나타낸다생각의 끝을 멀리 뛰어 넘었으며이름과 말을 나타내려 뛰어 나왔다.

 

 

竊見玄綱浩澣妙旨希夷覽之者詎究其源學之者罕窮其際由是微言滯於心首恒為緣慮之場實際居於目前翻為名相之境

추측하여 보니 신묘한 가르침은 넓고 크며현묘한 내용은 심오한 진리이다살펴보는 자는 어떻게 그 근원을 연구할 수 있으며배우는 자는 그 한계를 찾기가 어렵다이것으로 말미암아 미묘한 말은 시작하는 마음부터 막히고항상 연()이 되어 생각할 때실제 눈앞에 있어도 거꾸로 이름과 모습의 대상으로 삼을 뿐이다.

 

 

今者統收玄奧囊括大宗出經卷於塵中轉法輪於毛處明者德隆於即日昧者望絕於多生得其意則山岳易移乖其旨則錙銖難入

이제 현묘하고 심오함을 남김없이 죄다 싸서 가진 큰 종지에 거둔다티끌 가운데에서 경권이 나오고터럭에서 법의 바퀴를 굴리는 것이다총명한 자는 바로 그 날에 덕이 높을 것이고어리석은 자는 여러 생이 지나도 희망이 없을 것이다그 뜻을 얻는다면 큰 산이라도 쉽게 옮길 수 있으나그 뜻에 어긋나면 조금도 들어가기 어려울 것이다.

 

 

輒於一塵之上顯其實德窮茲性海覽彼行林總舉十門別開百義參而不雜義煥爛於篇題理昭彰於文字庶入道之士粗觀其致焉

문득 하나의 티끌 위에서 그 참된 덕()을 드러내고 성품의 바다를 찾아내며그 행()의 수풀을 살펴보고모두 열 가지 부문()으로 말하고따로 백 가지 뜻으로 연다.

가지런하며 섞이지 않아 한 진리가 밝다뜻은 각 편의 제목에 드러나 있고이치는 문자에 밝게 나타나 있다바라건대()에 들고자 하는 자는 경전을 대략적이라도 살펴보기 바란다.

 

所列名目條之如左

나열하여 내세우는 이름과 조목은 다음과 같다

 

緣生會寂門第一 實際斂迹門第二 種智普耀門第三 鎔融任運門第四 體用顯露門第五 

差別顯現門第六 修學嚴成門第七 對治獲益門第八 體用開合門第九 決擇成就門第十

1. 연으로 생긴 것은 적멸로 돌아가는 부문2. 실제가 자취를 거두는 부문.

3. 일체종지가 두루 빛나는 부문4. 녹이고 융합함을 마음대로 쓰는 부문.

5. 본체와 작용을 밖으로 드러내는 부문6. 차별되게 나타나는 부문.

7. 닦고 배워서 장엄을 이루는 부문8. 대치하여 이익을 얻는 부문.

9. ()와 용()을 열고 합하는 부문10. 결정하고 선택하여 성취하는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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緣生會寂門第一

1. ()으로 생긴 것은 적멸(寂滅)로 돌아가는 부문

 

 夫緣起萬有有必顯於多門無性一宗宗蓋彰於衆德分其力用則卷舒之趣易明覽其玄綱則理事之門方曉今就體用而言略分十義

대저 연()으로 인하여 온갖 유(-있다는 것)가 일어난다(반드시 여러 부문으로 나타나는데자성(自性)이 없는 하나의 종지(宗旨)이다종지는 대개 여러 가지 덕을 드러낸다그 작용하는 힘을 나누면 맒과 폄에 나아가기 쉬움을 밝히고그 신묘한 가르침을 살펴보면 진리와 현상의 부문을 비로소 알게 된다지금 체()와 용()에 나아가 말하는데 대략 열 가지 뜻으로 나눈다.

 

一明緣起 二入法界 三達無生 四觀無相 五了成壞 

六示隱顯 七發菩提 八開涅槃 九推去來 十鑑動靜

1. 연기를 밝히다. 2. 법계에 들다. 3. 생겨남이 없음을 깨닫는다. 4. 모습이 없음을 관찰하다. 5. 이루어짐과 무너짐을 이해하다. 6. 숨음과 드러남을 보이다. 7. 보리심을 내다. 8. 열반을 열어 보이다. 9. 오고 감을 따져보다. 10. 움직임과 고요함을 살펴보다.

 

 

 初明緣起者如見塵時此塵是自心現由自心現即與自心為緣由緣現前心法方起故名塵為緣起法也經云諸法從緣起無緣即不起沈淪因緣皆非外有終無心外法能與心為緣縱分別於塵亦非攀緣然此一塵圓小之相依法上起假立似有竟無實體取不可得捨不可得以不可取捨則知塵體空無所有今悟緣非緣起無不妙但緣起體寂起恒不起達體隨緣不起恒起如是見者名實知見也

1. ‘연기(緣起)를 밝히다는 티끌을 볼 때에 이 티끌은 자기의 마음에서 나타난다자기의 마음에서 나타나므로 말미암아 그대로 자기의 마음과 더불어 연()이 된다앞에 나타난 연()으로 말미암아 마음의 법()이 바야흐로 일어나기 때문에 티끌이라는 이름이 연()이 되어 법을 일으키는 것이다.

경에서 이르기를 모든 법은 연에서 일어나니연이 없으면 일어나지 못한다.”라고 하였다인연에 빠지는 것은 모두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결국 자기 마음 바깥에는 법이 없고마음과 더불어 능히 연이 될 수 있는데티끌에 대하여 멋대로 분별을 한다또한 반연(攀緣-경계에 대하여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그런데 이 둥글고 작은 모양의 하나의 티끌은 법에 의지하여 일어나지만 거짓으로 세운 것이므로 있는 듯하지만결국 실체(實體)가 없으므로 취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취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티끌의 체()는 공()하여 유()가 없는 것임을 알아라.

지금 깨달은 연()은 연(아니며 일어남이 없고 묘함이 없다다만 연()이 일어나는 체()는 고요하여 일어남이 항상 일어나지 않는다()에 따라서 일어나지 않거나 항상 일어나는 것을 체달(體達-사물의 참된 모습을 통달함하라이와 같이 보는 것을 참된 지견[知見-사리(事理)를 얻어 아는 견해)이라 한다.

 

 

 二入法界者即一小塵緣起是法法隨智顯用有差別是界此法以無性故則無分齊融無二相同於眞際與虛空界等遍通一切隨處顯現無不明了然此一塵與一切法各不相知亦不相見何以故由各各全是圓滿法界普攝一切更無別法界是故不復更相知相見縱說知見莫非法界知見終無別法界可知見也經云即法界無法界法界不知法界若性相不存則為理法界不礙事相宛然是事法界合理事無礙二而無二無二即二是為法界也

2. ‘법계(法界)에 든다.’는 곧 하나의 티끌은 연으로 일어나는 법()인 것이다이 법은 지혜(智慧)를 따라 나타나서 작용[]에 차별이 있는 것이 이 법계이다이 법()은 자성(自性)이 없으므로 영역이 없고 원융(圓融)하여 두 모습이 없다참된 진리가 허공계(虛空界등과 더불어 일체에 두루 통하고장소에 따라 나타남이 분명하지 않음이 없이 나타난다그러나 이 하나의 티끌은 일체법(一切法)과 더불어 각각이어서 서로 알지 못하며 서로 보지도 못한다.

무슨 까닭인가?

각각이 온전함으로 말미암아 이 원만한 법계가 일체를 두루 거두므로 다시 다른 법계가 없기 때문이다이러한 까닭으로 도 다시 서로 알지 못하고 서로 보지 못함이 없다설사 알고 본다고 말하더라도 법계를 알고 보는 것이 아니다끝내 다른 법계를 알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에서 이르기를 법계에는 다른 법계가 없으므로 법계는 법계를 알지 못한다이 성품의 모습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으므로 진리의 법계이고현상의 모습에 걸림이 되지 않는 분명한 것이 현상의 법계이다진리와 현상이 합하면 걸림이 없고둘인데 둘이 없으며둘이 없음이 곧 둘이다이것이 법계이다.”라고 하였다.

 

 

 三達無生者謂塵是心緣心為塵因因緣和合幻相方生由從緣生必無自性何以故今塵不自緣必待於心心不自心亦待於緣由相待故則無定屬緣生以無定屬緣生則名無生非去緣生說無生也論云因不自生緣生故生緣不自生因生故生今由緣生方得名生了生無性乃是無生然生與無生互成互奪奪則無生成則緣生由即成即奪是故生時無生如是了者名達無生也

3. ‘생겨남이 없음을 깨닫는다.’는 티끌은 마음의 연()이고 마음은 티끌의 인()이다인과 연이 화합하여서 환()같은 모습이 바야흐로 생겨난다연을 따라서 생기기 때문에 반드시 자성이 없다.

무슨 까닭인가?

이 작은 티끌은 자기의 연이 아니므로 반드시 마음을 기다려야 하고마음도 자기의 마음이 아니므로 또한 연을 기다려야 한다서로 기다리는 까닭으로 정해진 것이 없는 연으로 생겨남 에 속하는 것이다정해진 것이 없는 연에 의해 생겨남에 속하므로 무생(無生-생겨남이 없다)’이라 한다연으로 생겨남을 버리고 생겨남이 없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에서 이르기를 ()은 스스로 생겨남[]이 아니고 연()이 생겨남[]인 까닭이다()이 생겨남[]은 스스로 생겨남[]이 아니고 인()이 생겨남[]인 까닭이다생겨남[]은 이 연()으로 말미암아 생겨남[]이다바야흐로 생겨남[]’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생겨남[]은 자성이 없으니 생겨남이 없음[無生]’임을 깨달아라그런데 생겨남[]과 생겨남이 없음[無生]은 서로 이루고 서로 뺏으니빼앗기면 생겨남이 없음[無生]이고이루면 연()으로 생겨남[]인 것이다.

이룸 그대로이고빼앗음 그대로인 까닭으로 생겨날 때가 바로 생겨남이 없음[無生]이다이와 같이 이해하는 것을 생겨남이 없음[無生]을 이해한다.’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四觀無相者如一小塵圓小之相是自心變起假立無實今取不得則知塵相虛無從心所生了無自性名為無相經云諸法本性空無有毫末相然相雖取不得詮無之義非絕以相無體性法即立以法為無相之佐由不失法相故相即非相非相即相相與無相實無差別也此無相義如繩上蛇全言無蛇當知繩是無蛇之依今法是無相之法全以法為無相之相也

4. ‘모습 없음[無相]을 관찰함은 이 둥글고 작은 모습의 하나의 작은 티끌이 스스로의 마음이 변하여 일어나지만 거짓으로 세웠으므로 실체가 없는 것이다.

지금 취하여 얻지 못한다티끌의 모습은 텅 비어 없으니 마음 따라 생긴 것임을 알아라자성이 없으므로 모습 없음[無相]’이라 한 것임을 알아라.

경에서 이르기를 모든 법의 본래의 성품이 공()하여서 털끝만큼의 모습도 없다라고 하였다그러나 모습을 비록 취하여 얻지 못하지만없다는 뜻을 설명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모습으로써 체()의 성질이 없는 법을 세우고법으로써 모습 없음을 도우므로 법의 모습을 잃지 않는 까닭이다모습이 곧 모습이 아니고모습이 아님이 곧 모습이므로 모습[]과 모습 없음[無相]이 진실로 차별이 없다.

이러한 모습 없음의 뜻은 새끼줄 위에 있는 뱀을 보고 온전히 뱀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마땅히 알아라새끼줄은 뱀이 없다라는 것에 의지하는 것이고지금의 법은 모습 없음[無相]’에 의지하는 것이니온전히 법으로써 모습 없음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五了成壞者如塵從緣起立是成即體不作於塵是壞今由了緣非緣乃名緣成了壞非壞乃名緣壞以壞不妨始成於法是故壞時正是成時以成無所有是故成時正是壞時皆同時成立無先無後若無壞即成是自性有若無成即壞是斷滅空成壞一際相由顯現也

5. ‘이루어짐[]과 무너짐[]을 이해함티끌이 연()을 따라 일어나니이루어짐[]이 체()이고티끌에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무너짐[]이다.

지금은 연()이 연 아님[非緣]을 이해하였으므로 연을 이루어 졌다라고 하고무너짐이 무너짐 아님을 이해하였으므로 연이 무너졌다라고 한다무너짐은 법이 처음 이룸을 방해하지 않는 까닭으로 무너질 때가 바로 이루어 질 때이고이루어짐은 있는 것이 없으므로 이루어질 때가 바로 무너질 때이다모두 한꺼번에 이루어지므로 앞뒤가 없다만약 무너짐 없음이 바로 이루어짐이라면자성유(自性有)이고만약 이루어짐 없음이 바로 무너짐이라면 단멸공(斷滅空)이다이루어짐과 무너짐이 동시이므로 서로 말미암아 나타난다.

 

 

 六示隱顯者若觀塵相不可得時即相盡而空現由見相時不即於理是故事顯而理隱又此塵與諸法互相資相攝存亡不同若塵能攝彼即彼隱而此顯若彼能攝塵即塵隱而彼顯隱顯一際今但顯時已成隱也何以故由顯時全隱而成顯隱時全顯而成隱相由成立是故隱時正顯顯時正隱也

6. ‘숨음과 드러남을 보임은 이 티끌의 모습을 관하여 얻을 수 없을 때모습이 다하면 공()이 나타난다모습을 볼 때 진리 그대로임이 아님으로 말미암아 현상이 드러나면 진리는 숨는다또 이 티끌과 더불어 모든 법이 서로 돕고 서로 거두기 때문에 존망(存亡)이 같지 않다만약 이 티끌이 저것을 거둘 수 있다면 저것은 숨고 이것이 드러나고만약 저것이 티끌을 거둘 수 있다면 티끌은 숨고 저것이 드러나므로 숨고 드러남이 동시이다.

지금은 단지 드러날 때 이미 숨음만이 이루어졌으니 무슨 까닭인가?

드러날 때 온전히 숨으므로 드러남이 이루어지고숨을 때 온전히 드러나므로 숨음이 이루어지는 까닭이다서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까닭으로 숨을 때가 바로 드러남이고 드러날 때가 바로 숨음이다.

 

 

 七發菩提者謂此塵即寂滅涅槃無性乃是佛菩提智所現故今由了達一切衆生及塵毛等無性之理以成佛菩提智故所以於佛菩提身中見一切衆生成正覺轉法輪也又衆生及塵毛等全以佛菩提之理成衆生故所以於衆生菩提身中見佛發菩提心修菩薩行當知佛菩提更無異見今佛教化塵內衆生衆生復受塵內佛教化是故佛即衆生之佛衆生即佛之衆生縱有開合終無差別如是見者名發菩提心起同體大悲教化衆生也

7. ‘보리심(菩提心)을 낸다.’는 이를테면이 티끌은 적멸(寂滅)ㆍ열반(涅槃)ㆍ무성(無性)이며나아가서 부처 보리(菩提)인데지혜에서 나타난 까닭이다.

일체의 중생(衆生및 티끌과 털 등의 자성이 없는 이치와 부처 보리의 지혜로 이루는 까닭을 지금 이해하였다그러므로 부처 보리(菩提)의 몸 가운데에서 일체 중생이 정각을 이루는 것과 법륜(法輪)을 굴리는 것을 본다또 중생 및 티끌 · 털 등이 온전히 부처 보리의 이치로써 중생을 이루는 까닭으로 중생이 보리(菩提)의 몸 가운데에서 부처 보리의 마음을 내어 보살행을 닦는 것을 본다.

마땅히 알라부처 보리는 다시 달리 볼 것이 없음을지금 부처님이 티끌 안에서 중생을 교화하시고중생이 다시 티끌 안에서 부처님의 교화를 받는다이런 까닭으로 부처님은 중생 의 부처님이고중생은 부처님의 중생이므로 설령 열고 합함이 있을지라도 끝내는 차별이 없다이와 같이 보는 것을 이름 하여 보리심을 내고 동체대비(同體大悲-같은 몸이라 알고 있는데서 일어나는 자비심)를 일으켜서 중생을 교화한다.’라고 한다.

 

 

 八開涅槃者謂不了塵顯迷顯為生復見塵隱迷隱為滅即依流動生滅之相緣於塵上迷心變起謂是眞實今求生滅之相竟無起處亦無可得動念自亡妄想皆滅隨其滅處名大涅槃故經云流轉是生死不動名涅槃

8. ‘열반(涅槃)을 열어 보임은 이를테면티끌이 드러남을 이해하지 못하여 미혹(迷惑)이 드러나면 생(-나는 것)이 되고티끌이 숨는 것을 보고서 미혹이 숨으면 멸(-사라지는 것)이 되니곧 흘러 움직이는 생멸(生滅)의 모습에 의한 것이다.

티끌로 말미암아 미혹한 마음이 변하여 일어나면 이것을 진실이라 한다생멸의 모습을 구하지만 끝내 일어나는 곳도 없고 또한 얻을 수도 없다생각의 움직임이 스스로 없어지면 망상(妄想)도 모두 사라진다그것이 사라진 곳을 따르는 것을 대열반(大涅槃)이라 한다.

그러므로 경에서 이르기를 유전(流轉-빙빙 돎)하면 생사(生死)이고움직임이 없으면 열반(涅槃)이다라고 하였다.

 

 

 九推去來者謂塵隨風東去時求去相不可得隨風西來時求來相亦不可得皆唯塵法竟無來去之相以無實故來時無所從來去時亦無所去經云法無去來常不住故良以了塵去來無體所以去來即無去來無去來而恒來去一際成立無有彼此之差別是故經云菩薩不來相而來不去相而去所以不移塵處而詣十方恒不離十方而入塵處恒不來去而來去之量等於法界也

9. ‘오고 감을 따져봄은 이를테면티끌이 바람을 따라 동쪽으로 갈 때 가는 모습을 볼 수 없고바람을 따라 서쪽으로 갈 때도 가는 모습을 볼 수 없다모두 오직 티끌의 법이고 끝에는 오고 가는 모습이 없으니 실체(實體)가 없기 때문이다올 때도 따라 온 것이 없고 갈 때도 가는 것이 없다.

경에 이르기를 법은 오고 감이 없으며항상 머무름도 없는 까닭이다이라 하였다이것은 진실로 티끌이 오고 가는 실체가 없음을 이해한 것이다그러므로 오고 감이 곧 오고 감이 없는 것이고가고 옴이 없으면서도 항상 가고 옴이 동시에 이루어져서 저것과 이것에 차별이 있지 않다.

이런 까닭으로 경에 이르기를 보살은 오는 모습 없이 오고가는 모습 없이 간다.”라고 하였다그러므로 티끌이 있는 곳에서 옮기지 않고도 시방으로 나아가며항상 시방을 떠나지 않고도 티끌이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항상 오고 감이 없으나 오고 감을 헤아림이 법계와 같다.

 

 

 十鑒動靜者謂塵隨風飄颻是動寂然不起是靜今靜時由動不滅即全以動成靜也今動時由靜不滅即全以靜成動也由全體相成是故動時正靜靜時正動亦如風本不動能動諸物若先有動則失自體不復更動思之

10. ‘움직임과 고요함을 살펴봄은 이를테면티끌이 바람을 따라 휘날리면 움직임이고움직임이 조용하여 일어나지 않으면 고요함이다.

고요할 때 움직임이 사라지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바로 온전히 움직임으로써 고요함을 이루고움직일 때에 고요함이 사라지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바로 온전히 고요함으로써 움직임을 이룬다온전한 체()로 말미암아 서로 이루는 까닭으로 움직일 때가 바로 고요함이고고요할 때가 바로 움직임이다바람은 본래 움직이지 않지만모든 물질을 움직일 수 있는 것과 같다만약에 먼저 움직임이 있다면스스로의 체()를 잃어버려 다시는 움직이지 못한다생각해 보라.

 

 

然上諸義緣生既立理不合孤窮萬有以為同括無盡而成總若尋其奧雖處狹而常寬欲究其淵縱居深而逾淺緣起之義其大矣哉

그런데 이상의 모든 뜻은 연()이 생겨남으로 이루어진 것이니이치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니다그러므로 모든 존재를 궁구해 보면 같이 묶는 것이 되고다함이 모두 이루는 것이다이 오묘함을 살펴보면 비록 좁은 곳에 있으나 항상 느긋하고깊은 곳을 궁구 하면 설사 깊은 곳이라도 더욱 얕아지니연기(緣起)의 뜻은 크기도 하다.

[출처] 화엄경의해백문-1|작성자 밝은 빛


화엄경의해백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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實際斂跡門第二

2. 실제(實際)가 자취[]를 거두는 부문

 

 夫歸宗巨壑亡委輸於百川會寂眞源銷緣成於萬有是故衆流亡而相盡多緣寂而法空歸體息於攀緣奪相止於迷惑

대저 종지의 거대한 골짜기로 되돌아가면 모든 강에서 흘러들어와 맡긴 것이 없어진다적멸의 참된 근원으로 모이면 모든 존재에 연()으로 이룬 것을 붙들어 맨다이런 까닭으로 뭇 흐름이 없어지면 모습이 다하고많은 연()들이 사라지면 법이 공()하며()로 돌아가면 연()에 매달린 것에서 쉬게 되고모습을 잃게 하면 미혹이 그친다.

 

今就理而言略顯十義 

지금 이치 측면에서 대략 열 가지 뜻을 드러낸다.

 

初二無我 二明遮詮 三如虛空 四不生滅 五無自他 

六無分別 七入不二 八無差別 九明一味 十歸泯絕

1. 두 가지 무아를 밝히다. 2. 차전을 밝히다. 3. 허공과 같다. 4. 생멸이 아니다.

5. 자타가 없다. 6. 분별이 없다. 7. 불이에 들어가다. 8. 차별이 없다.

9. 한 맛임을 밝히다. 10. 민절로 돌아가다.

 

 

 初明二無我者謂能分別塵相者是人所分別之塵從緣具體是法由相虛假似有而無實體即為人無我經云我尚不可得非我何可得由塵從緣而無自性是法無我論云若法從緣生此則無自性以人法二俱無我為一味也

1. ‘두 가지 무아(無我)를 밝힘은 이를테면티끌의 모습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고분별 받는 것인 티끌이 연()을 따라 체()를 갖춘 것이 법이다모습은 비고 거짓으로 있어 실체가 없으므로 인무아(人無我)이다.

경에서 이르기를 []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데내가 아닌 것[非我]을 어떻게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티끌이 연()을 따르지만 자성이 없으므로 법무아(法無我)이다논에 이르기를 만약 법이 연()을 따라 생긴다면이 법은 자성이 없다라고 하였다

사람과 법이 모두 무아(無我)이므로 한 가지 맛이 되는 것이다.

 

 

  二明遮詮者

2. 차전(遮詮)을 밝히다

 

*차전(遮詮): 의리(義理)에 상위(相違)되는 것을 배척하여 그 이치를 표현하는 것.

 

問曰塵是有耶答曰不也從緣無自性即空故

<질문티끌은 있는 것인가?

<대답아니다연을 따라 자성이 없으니그대로 공이기 때문이다.

 

問塵是無耶答不也不礙緣起有故

<질문티끌은 없는 것인가?

<대답아니다연이 일어남에 걸림이 되지 않으므로 있는 것이다.

 

問塵亦有亦無耶答不也空奪有盡唯空有奪空盡唯有互不存故

<질문티끌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인가?

<대답아니다()이 유()를 없애 버리면 오직 공()뿐이고()가 공을 없애 버리면 오직 유()뿐이므로 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問塵是非有非無耶答不也不礙俱存故俱除計有無之見非無法也經云但除其病而不除法是為護過

<질문티끌은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닌 것인가?

<대답아니다함께 존재함에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다만 있다 · 없다라는 헤아림만을 함께 없앨 뿐이지 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에서 이르기를 단지 그런 병()만 없앨 뿐이지 법을 없애지는 않는다.”라고 하였다이것은 틀리는 것을 지켜 주는 것이다.

 

 

 三如虛空者謂塵體空無所有即無分限亦不可取捨而遍通十方能與一切理事解行等為所依而有無盡大用猶如虛空與一切法為依而全建立無有分限遍通十方猶如虛空即得虛空智虛空身無礙用也

3. ‘허공과 같음은 이를테면티끌의 체()는 공하여 있는 것이 없으므로 한계가 없으며또한 버리고 취할 수도 없지만 시방에 두루 통한다.

능히 일체의 진리ㆍ현상ㆍ이해ㆍ행위 등이 의지할 것이 되며 다함이 없는 큰 작용[]이 있다마치 허공과 같아서 일체법의 의지처가 되며온전하게 만들어 세우지만 한계가 없으므로 시방에 두루 통한다마치 허공과 같아서 허공지(虛空智-진여)와 허공신(虛空身-법신)의 걸림 없는 작용을 얻는다.

 

 

 四不生滅者謂塵從風起散而有生滅之相今推生相滅相悉皆空無經云因緣故法生因緣故法滅由生時是無性生由滅時是無性滅以無性故生即不生滅亦不滅

4. ‘생멸(生滅)이 아님은 이를테면티끌이 바람을 따라 흩어지면 생멸의 모습이 있는 것이다지금 생()의 모습 멸()의 모습을 헤아려보니 모두 다 공이고 없다.

경에서 이르기를 인연 때문에 법이 생기고인연 때문에 법이 사라진다.”라고 하였다생길 때는 자성이 없이 생김으로 말미암아사라질 때도 자성이 없이 사라진다자성이 없기 때문에 생김이 곧 생김이 아니고사라짐 또한 사라짐이 아니다.

 

 

 五無自他者謂塵是緣為他也心是因為自也今心不自心必待於緣既由緣始現故知無自性也又塵不自塵亦待於心既由心方現故知無他性也又一切法皆不自生亦不他生故無自他也今言自他者非別異見自是他自他是自他自他一際自在說也論云自性亦不有他性亦復無

5. ‘자타(自他)가 없음은 이를테면티끌은 연()이니 다른 것[]이 되고마음은 인()이니 자기(自己)가 된다이 마음은 스스로의 마음이 아니므로 반드시 연을 기다려야 한다이미 연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나타난 것이므로 자기의 성질[自性]이 없음을 알라.

또 티끌은 스스로의 티끌이 아니므로 역시 마음을 기다려야 한다이미 마음으로 말미암아 바야흐로 나타났으므로 다른 성질[他性]이 없음을 알라또 일체의 법은 자기가 생긴 것도 아니고또한 다른 것이 생긴 것도 아니므로 자타가 없다지금 자타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특별히 달리 보는 것이 아니다자기는 다른 것의 자기이며다른 것은 자기의 다른 것이다자기와 다른 것이 하나이므로 자재하게 말한다.

논에서 이르기를 자성(自性또한 있는 것이 아니며타성(他性또한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六無分別者謂見塵圓小之相好惡飛颺者是自心分別也即此分別之心緣塵而起尋起無體名相自亡是無分別但分別情破說為無分別非如木石經云法從分別生還從分別滅又云無分別智分別無窮無窮之相性分別滅由分別無體即分別無分別由無體不礙緣即無分別恒分別

6. ‘분별(分別)이 없음은 이를테면티끌의 둥글고 작은 모습을 보고 좋다’ ‘싫다라는 생각이 각각인 것은 자기 마음의 분별이다곧 이 분별하는 마음은 티끌에 연()하여 일어난다일어나는 것을 살펴보면 체()가 없고이름과 모습이 본래 없으니 이것이 분별없음이다단지 분별하는 생각을 깨뜨리려고 분별없음을 말하는 것이지 나무나 돌과 같다는 것은 아니다.

경에서 이르기를 법은 분별을 따라 생기고 또 분별을 따라 사라진다.”라고 하였으며또 이르기를 분별없는 지혜로 분별함이 끝이 없다라고 하였다끝이 없는 모습의 성질에서는 분별이 사라지므로 체가 없으니 곧 분별이 분별없음이며체가 없음으로 말미암아 연에 걸림이 아니므로 분별없음이 항상 분별이다.

 

 

 

 七入不二者謂見塵與心有二二即無二也若執塵心為一遮言不一以迷心所見非無緣故若執塵心為二遮言不二以離心外無別塵故由心與塵二即無二唯心無體一亦無一由一無一由二無二一二無礙現前方入不二當經云無二智慧中出人中師子不著一二法知無一二故

7. ‘불이(不二)에 들어감은 이를테면티끌과 마음이 둘이 있은 것을 보지만둘이 그대로 둘이 아니다.

만약 티끌과 마음은 하나라고 집착하면 하나가 아니다라고 말하니미혹한 마음으로 본 것이라 연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만약 티끌과 마음이 둘이라고 집착하면 둘이 아니다라고 말하니마음 바깥에 떠나 있는 다른 티끌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과 티끌이 둘이므로 말미암아 둘이 아니며오직 마음은 체()가 없으므로 하나 또한 하나가 아니다하나로 말미암아 하나가 없고둘로 말미암아 둘이 없으므로 하나와 둘이 걸림 없이 앞에 나타나야만 바야흐로 둘이 아님[不二]에 들어가게 된다.

당연히 경에서 이르기를 둘이 아닌 지혜 가운데에서사람 가운데서 사자가 나왔으니하나와 둘이라는 법에 집착이 없고하나와 둘이 없음을 아신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八無差別者謂見塵相圓小與一切法分齊有異是為差別觀塵無體一切皆空唯理所現無復異體是無差別又此理性隨緣成一切法非無分齊是即差別經云諸法無差別唯佛分別知了差無差法非無理事故然差別緣起萬有無差法界一空由空與有同別互融會萬有以為一空差即無差觀一空而成萬有無差即差差與無差一際顯現四句作之可見

8. ‘차별(差別)이 없음은 이를테면둥글고 작은 티끌의 모습을 일체법과 영역(領域)이 다르다고 보면 차별이다티끌을 관찰하면 체가 없고일체가 모두 공이다오직 진리에서 나타난 것이고 없고다시 다른 체가 없으므로 차별이 없다또 이 진리의 성품[]은 연을 따라 일체법을 이루지만 영역이 있으면 곧 차별이다.

경에서 이르기를 모든 법은 차별이 없지만오직 부처님만이 분별하여 아신다.”라고 하였다차별과 차별 없는 법을 이해하여 알면 진리와 현상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그러나 차별된 연기는 모든 존재이고 차별이 없는 법계는 하나의 공이다()과 유()의 같음과 다름이 서로 화합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존재를 모아서 하나의 공으로 되는 것으로써 차별이 곧 차별 없음이다하나의 공이 모든 존재를 이룸을 관찰함에 차별 없음이 그대로 차별이고차별과 차별 없음이 동시에 나타난다사구(四句)로 만들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구(四句): 긍정부정으로부터 되는 네 개의 판단 형식긍정부정긍정인 동시에 부정긍정도 아니고 부정도 아님.

 

 

 九明一味者謂塵從緣成立皆無自性縱理事教義萬差莫不唯空寂一味秖以緣起萬差說空一味若無萬差是唯一味若舉空即一味唯空若舉性即一味唯性若舉如則一味唯如類顯可知

9. ‘한 가지 맛임[一味]을 밝힘은 이를테면티끌은 연을 따라서 이루어지므로 모두 자성이 없다설사 진리 · 현상 · 가르침 · 뜻이 많은 차이가 있더라도 오직 공적(空寂)의 한 맛뿐이다다만 연기(緣起)이기 때문에 많은 차이가 있을 뿐이므로 ()의 한 가지 맛이라 한다만약 많은 차이가 없다면이것은 오직 한 가지 맛뿐이다만약에 공에서 말한다면 한 가지 맛은 오직 공뿐이고만약에 본성(本性)에서 말한다면 한 가지 맛은 오직 본성뿐이며만약에 진여(眞如)에서 말한다면 한 가지 맛은 오직 진여뿐이다같은 종류를 나타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十歸泯絕者謂心與塵互相泯絕若以塵唯心現則外塵都絕若以心全現塵則內心都泯泯則泯其體外之見存則存其全理之事即泯常存即存常泯四句可知然上諸義實際難思心行罕緣其致眞源叵測名言詎賾其端

10. ‘민절(泯絶)로 돌아감은 이를테면마음과 티끌이 서로 뺏어 없애는 것이다만약 티끌이 오직 마음에 나타난다면티끌 밖으로 모두 없애는 것이 되고만약 마음이 온전히 티끌에 나타난다면마음 안에서 모두 없애는 것이 된다없앰은 그 체(바깥에 보이는 것을 없앰이고있게 함은 그 온전한 진리의 현상을 있게 함이다없앰 그대로 항상 있게 함이고있게 함은 그대로 항상 없앰이다사구(四句)로 알 수 있다그런데 위의 모든 뜻의 실제(實際)는 헤아리기 어렵다마음의 행함이 그물로 연을 끌어들여 그 이치의 참된 근원을 헤아리기 어려우니 이름과 말로 어찌 깊은 그 끝을 찾겠는가?

 

 

然無言不絕言依體興其萬用無事不辯事隨緣顯以一空明事要必談空說體寧不開用是故斂迹則緣心罔托亡相乃妄識無依方得稱於緣生將符順於法界

그러나 말 없음은 말이 끊어진 것이 아니고 체()에 의지함과 더불어 그 많은 작용이 현상을 현상이라 말하지 않음이 없으니연을 따라 하나의 공으로 드러난다하나의 공으로서 현상을 밝히는 데는 반드시 공을 말해야 하는데()를 말함에 어찌 작용을 말하지 않겠는가이런 까닭으로 남아 있는 흔적을 거두어들이면 연에 이끌리는 마음이 남에게 의존(依存)함이 없고모습을 없애서 허망(虛妄)된 알음알이에 의지하는 것이 없어야만바야흐로 연으로 생긴다 말할 수 있으며나아가 법계에 순조롭게 들어맞게 될 것이다.

[출처] 화엄경의해백문-2|작성자 밝은 빛


화엄경의해백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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種智普耀門第三

3. 일체종지(一切種智)가 두루 빛나는 부문

 

 夫大智照明就纖毫而觀性海眞源朗現即微塵以眺法身磊落雲繁一多開而隨應崔嵬岳聚理事分以成形

큰 지혜가 밝게 빛난다가는 터럭에 나아가서 본성의 바다를 관찰하니참된 근원이 밝게 나타나 작은 티끌 그대로가 바라보니 법신이다돌무더기가 떨어지고 구름이 몰려들고하나와 여럿이 열림이 응함에 따르고높고 높은 산들이 진리와 현상으로 나뉘어 모습을 이룬다.

 

今就體用現前略分十義

지금은 본바탕과 작용이 나타남에 나아가 대략 열 가지 뜻으로 나눈다.

 

一顯如量 二分六通 三明難思 四生佛家 五示圓音 

六辯依正 七會機感 八施佛事 九開五眼 十分三智

1. 헤아림 그대로임을 드러내다. 2. 육신통으로 나누다.

3. 생각하기 어려움을 밝히다. 4. 부처님 집에 태어나다.

5. 원만한 소리를 나타내 보이다. 6. 의보와 정보를 말하다.

7. 근기에 감응하여 만나다. 8. 부처님이 가르침을 베풀다.

9. 오안을 열어 보이다. 10. 세 가지 지혜를 나누다.

 

 

 初顯如量者謂塵體空無是如理不礙事相宛然是如量今塵性順眞則無分齊一切事法全依性顯是故一塵中見一切事此事是如理智中如量之境界也

1. ‘헤아림 그대로 임을 드러냄은 이를테면티끌의 체는 공하여 없음이 진리와 같고현상의 모습이 걸림 없이 뚜렷하게 드러남이 헤아림과 같다티끌의 본성이 진리를 따르므로 영역이 없으며일체 현상의 법은 온전히 본성에 의지하여 드러난다이런 까닭으로 하나의 티끌 가운데에서 일체의 현상을 보며이 현상은 진리인 지혜 가운데의 헤아림인 경계이다.

 

 

 二分六通者謂此塵無體不動塵處恒遍十方剎海無去來之相是神足通經云不起于座遍遊十方又見塵法界無際而有理事教義一切等諸菩薩皆同證入皆同修習此法更無別路是他心通又見塵法界解行現前之時即知過去曾於佛所親聞此法以觀心不斷是故今日得了為宿命通又見塵性空寂無相可得即無二見若見相即為二見也由無相即無有二名天眼通經云不以二相見名眞天眼又了塵無生無性空寂即執心不起是漏盡通經云斷結空心我是則無有生又聞說塵法界差別之聲即知一切聲全是耳不復更聞也然此聞無緣無得於聲悟一切法是常聞一切佛法為天耳通也

2. ‘육신통(六神通)으로 나눔은 이를테면이 티끌은 체가 없으므로 티끌이 있는 곳에서 움직이지 아니하고항상 시방의 국토와 바다에 두루 하지만 오고 가는 모습이 없다이것이 신족통(神足通)이다.

경에서 이르기를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시고 시방에 두루 노니신다.”라고 하였다.

또 보니티끌 법계는 끝이 없으며 진리 · 현상 · 가르침 · 뜻 · 일체 등이 있는데모든 보살들이 다 같이 깨달음에 들어가 다 같이 닦고 익혀 이 법에 다시금 다른 길이 없다이것이 타심통(他心通)이다.

또 티끌 법계를 보고 이해와 행이 앞에 나타날 때바로 알라과거 일찍이 부처님을 가까이하여 이 법을 듣고마음을 관하는 것을 끊지 않았던 까닭으로 지금에 깨달았으면 숙명통(宿命通)이 된다.

또 보니티끌의 본성은 공적하여 모습이 없는 것을 얻는데 바로 둘이 아님을 보는 것인데만약 모습을 본다면 바로 두 가지로 보는 것이 된다모습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바로 둘이 아니면 천안통(天眼通)이라 한다.

경에서 이르기를 두 가지 모습으로 보지 않는 것이 참된 천안(天眼)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또 티끌은 태어남이 없고 자성이 없어 공적한 것임을 깨달아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누진통(漏盡通)이다.

경에서 이르기를 번뇌[]를 끊어 빈 마음인 내가 곧 번뇌가 생겨남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티끌 법계가 말하는 차별의 소리를 듣고는 바로 알라일체 소리가 온전히 이것뿐임을도 다시 다른 소리를 듣지 않는다그러나 이러한 들음은 연이 없어 소리에서는 얻을 것이 없다이렇게 일체의 법을 깨닫고 일체의 부처님 법을 항상 듣는 것이 천이통(天耳通된다.

 

*(): 결박한다는 뜻몸과 마음을 결박하여 자유를 얻지 못하게 하는 번뇌.

 

 

 三明難思者謂塵不壞小量而遍十方普攝一切於中顯現斯由量即非量非量即量又居見聞之地即見聞之不及處思議之際即思議之不測皆由不思議體自不可得故即思不可思經云所思不可思是名為難思

3. ‘생각하기 어려움을 밝힘은 이를테면티끌은 작은 헤아림도 무너뜨림 없이 시방에 두루 하여 일체를 두루 거두는 가운데에 나타난다이것은 헤아림이 곧 헤아림 아님으로 말미암아 헤아림 아님이 곧 헤아림인 것이다또 보고 듣는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보고 들음에 미치지 못하며생각의 끝에 있으면 생각으로는 헤아리지 못한다모두 불가사의한 체는 스스로 얻을 수 없음으로 말미암아 곧 생각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까닭이다.

경에서 이르기를 생각한 것은 생각할 수 없다라고 하였으니이것을 생각하기 어렵게 된다.’라고 한다.

 

 

 四生佛家者佛以眞如法界無生之理為家今見塵無生無性時即此智從無生法顯生故名生佛家也經云於法不分別是則從如生又云普於三世佛法中知無生已而化生但契義理即名生佛家是佛之子亦名佛出現也(有本云無生之理菩提涅槃為家)

4. ‘부처님 집에 태어남은 부처님은 진여법계의 태어남이 없는 이치로써 집을 삼는다이 티끌의 태어남이 없음과 자성이 없음을 볼 때이 지혜는 태어남이 없는 법[無生法]으로부터 나온 까닭으로 부처님 집에 태어남이라 한다.

경에서 이르기를 법에 대하여 분별하지 않으니이 법은 진여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하였다또 이르기를 삼세(三世)의 부처님 법 가운데 두루 하지만태어남이 없음을 알고서 변화로 태어난다[化生]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단지 뜻과 진리에 틀림없이 서로 꼭 들어맞으므로 곧 부처님 집에 태어난다.’라고 하였다이것을 부처님의 아들이며 또한 부처님의 나타나심이라 한다.

[어떤 본()에는 태어남이 없는 진리인 보리 열반을 집을 삼는다.’라고도 하였다.]

 

 

 五示圓音者謂此說塵之音然音具足智慧之藏隨眾生機有深淺之感若於聲上了大小音韻是假立空無所有故然聲是實者此乃小乘機性即愚法教顯也於聲上即知聲事無體會事顯理者此由大乘機性即終教顯也於聲上即知大小音聲空無所有生心動念即乖法體一味一相不可分別者此乃大乘機性即頓教顯也於聲上了知聲是緣起法界菩提涅槃主伴自在一即一切一切即一如帝釋殿珠網重重無盡境界此由一乘機性即圓教顯也此一音上由機有大小令此法門亦復不一一切諸聲各各如是乃為如來無礙圓音法輪常轉爾

5. ‘원만한 소리를 나타내 보임은 이를테면이것은 티끌을 말하는 소리이다그러나 지혜의 곳간을 다 갖추어 있지만중생의 근기를 따라서 깊고 얕은 감응이 있다만약 소리의 크고 작은 울림을 이해한다면이것은 거짓으로 세운 것으로 공하여 있는 바가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소리를 실제로 있는 것이라고 하면이것은 소승(小乘근기(根機)의 성질이므로 우법교[愚法敎]를 나타냄이다.

소리에서 소리의 현상은 실체가 없음을 알고현상을 모아 진리를 나타내는 것은 대승 근기의 성질이니곧 종교(終敎)를 나타냄이다.

소리 위에서 크고 작은 소리가 공하여 있는 바가 없음을 알고서 마음을 내고 망념을 일으키면법의 체와 어긋나므로 한 가지 맛[一味]ㆍ한 가지 모습[一相]을 분별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이것은 대승(大乘근기의 성질이니곧 돈교(頓敎)를 나타냄이다.

소리에서 소리를 연기법계ㆍ보리열반ㆍ주반(主伴)이 자재함ㆍ하나가 바로 일체이고 일체가 하나임을 이해하여 알면마치 제석천의 보배 그물의 구슬이 거듭 거듭함이 다함이 없는 경계인 것과 같다이것은 일승 근기의 성질이니곧 원교(圓敎)를 나타냄이다.

이 하나의 소리에서 근기의 크고 작음이 있으므로 이 법문으로 하여금 하나가 아니게 한다일체의 모든 소리도 각각 이와 같으며여래의 걸림 없는 원만한 소리가 되어서 항상 법륜을 굴린다.

 

*우법교(愚法敎): 자기들의 법만 고집하고 대승의 심묘(深妙)한 이치를 모르는 것.

*종교(終敎): 일체 만유가 진여를 본체로 하고 연기하는 것이라 하는 대승 종극(終極)의 교리.

*돈교(頓敎): 원만하게 익은 근기에 대하여 ·無常··不空의 가르침을 동시에 말한 것.

*원교(圓敎): 화엄경과 같이 윗 근기에 도달한 자를 위하여 사사무애(事事無碍)의 법문을 말한 것.

 

 

 六辨依正者謂塵毛剎海是依佛身智慧光明是正今此塵是佛智所現舉體全是佛智是故光明中見微塵佛剎又剎海微塵全用法界性而為塵體是故塵中見一切佛說法化生等事當知依即正正即依自在無礙乃至塵毛國土一一事法各各如是全佛依正也

6. ‘의보(依報)와 정보(正報)를 말함은 이를테면티끌과 터럭의 국토와 바다는 의보이고부처님 몸의 지혜의 광명은 정보이다지금 이 티끌은 부처님 지혜에서 나타난 것이다()을 들면 온전히 부처님 지혜인 까닭으로 광명 가운데에서 작은 티끌의 부처님 국토를 본다또 국토와 바다의 작은 티끌은 온전히 법계 성품의 작용이며 티끌의 체가 되는 까닭으로 티끌 가운데에서 일체의 부처님이 설법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등의 일들을 본다.

마땅히 알라의보가 곧 정보이며정보가 곧 의보이므로 자재하여 걸림이 없으며티끌과 터럭의 국토에 이르기 까지 하나하나의 현상의 법도 각각 이와 같은 온전히 부처님의 의보와 정보이다.

 

 

 七會機感者謂塵如如平等法界隨智所顯機大則義顯亦大機小則理顯亦小隨衆生之根性有證悟之淺深是為機感即此機感全如來法身而應現也

7. ‘근기에 감응하여 만남은 이를테면티끌의 여하고 여한 평등한 법계는 지혜를 따라 나타난 것이다근기가 크면 뜻을 나타냄도 역시 크고근기가 작으면 이치를 나타냄도 또한 작다중생의 근기와 성품을 따라 깨달음을 얻음에 깊고 낮음이 있으니이것이 근기에 감응하는 것이다곧 이렇게 근기에 감응하여 온전히 여래의 법신이 부응하여 나타난다.

 

 

 八施佛事者謂塵音聲文字皆悉性離即解脫故此無性文字非事之事以空無故佛智所顯隨所施為不失法界即為佛事經云有所施為無非佛事

8. ‘부처님이 가르침을 베푸는 것)은 이를테면티끌의 소리와 문자는 모두 그 성품을 떠나 있으니바로 해탈이기 때문이다이 본성이 없는 문자는 현상 아닌 현상인데 공하여 없기 때문이다부처님 지혜에서 나타난 것이므로 베풀게 되는 것을 따라서 법계를 잃지 않게 되니곧 부처님의 일[가르침을 베푸는 것]이 된다.

경에서 이르기를 베풀게 되는 것이 있으면 부처님의 일이 아님이 없다라고 하였다.

 

 

 九開五眼者謂塵無性之色為肉眼也塵是緣起之法為法眼塵性空故無所有是慧眼塵無相可得息諸分別不二見故名為天眼塵性空寂無相可得依正無礙念劫圓融有無平等名為佛眼然不可以五眼見於塵但於塵處隨顯立名也

9. ‘오안(五眼)을 열어 보임은 이를테면티끌이 자성 없는 물질이면 육안(六眼)이 되고티끌이 연기의 법이면 법안(法眼)이고티끌의 본성이 공적하므로 있는 것이 없으면 혜안(慧眼)이다티끌은 모습이 없음을 알고 모든 분별을 쉬어 두 가지로 보지 않으므로 천안(天眼)이라 하고티끌의 본성이 공적하여 모습이 없으므로 의보와 정보가 걸림이 없으며찰라와 겁이 원융하고 유()와 무()가 평등하면 불안(佛眼)이라 한다.

그러나 위의 오안(五眼)으로 티끌을 볼 수 없으나단지 티끌이 있는 곳에서 나타남을 따라 이름을 세운 것이다.

 

 

 十分三智者謂達塵性空無之理決擇邪正順理入眞此決擇之心是加行智又見此塵全是亡言絕慮性超圖度能所不起動念亦非此為正體智又見塵緣起幻有不礙差別雖種種差別莫不空無所有以不失體故全以法體而起大用一多無礙主伴相攝一即一切一切即一是為後得智

10. ‘세 가지 지혜를 나눔은 이를테면티끌의 본성이 공하여서 없는 이치를 이해하여 알면 삿됨[[]과 바름[]을 잘 가리어 이치를 따라서 진리에 들어가니이렇게 잘 가리는 마음이 가행지(加行智)이다.

또 이 티끌은 온전히 말의 경계를 떠났고생각의 영역이 끊어졌으며본성은 헤아림을 벗어나 변하여 일어날 수 있는 생각이 아닌 것을 보면이것은 정체지(正體智)이다.

또 티끌이 연으로 일어나 환()으로 있는데 차별에 걸림이 되지 않는다비록 가지가지로 차별되지만 공이기 때문에 있는 것이 없으므로 체를 잃지 않기 때문이다온전히 법의 체로써 큰 작용을 일으켜 하나와 여럿이 걸림이 없고주인과 손님이 서로 거두며하나가 곧 일체이며 일체가 곧 하나라고 보면후득지(後得智)이다.

그런데 위의 모든 뜻에서 법은 제한된 영역이 없다반드시 동시에 나타나니진리가 차별됨에 걸림이 되지 않고 숨음과 나타남이 동시이다작용은 파도가 치솟는 것 같고가마솥의 끓는 물과 같아 온전히 진리의 체로써 운행한다체는 깨끗한 거울과 맑은 물처럼 연을 따르지만 적멸로 돌아가는데이 햇빛이 쏟아져 비추는 것처럼 무심히 시방을 밝히고맑은 거울의 단정한 모습처럼 움직이지 않고 만 가지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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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화엄경의해백문-3|작성자 밝은 빛



화엄경의해백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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鎔融任運門第四

4. 녹이고 융합함[鎔融]을 마음대로 운용하는 부문

 

 夫性海無涯衆德以之繁廣緣生不測多門由是圓通莫不迴轉萬差卷舒之形隨智鎔融一際開合之勢從心照不生機縱差別而恒順用非乖體雖一味而常通

대저 본성의 바다는 끝이 없어 여러 가지 덕이 많고 많으며연으로 생겨난 것은 헤아릴 수 없나니여러 가지 부문[]이 이로 말미암아 원만히 통한다회전(廻轉)하면 만 가지가 차별 아님이 없으며펴고 거두는 모습은 지혜를 따른다녹이고 융합함이 동시이며열고 합하는 형세는 마음을 따르나 비춤은 낌새를 내지 않는다설사 차별이 있으나 항상 작용을 따르고체를 어긋나지 않는다비록 한 가지 맛이나 늘 통한다.

 

今就體勢而言略分十義

지금은 본체의 형세에 나아가서 대략 열 가지 뜻으로 나눈다.

 

一會理事 二達色空 三通大小 四收遠近 五明純雜 

六融念劫 七了一多 八會通局 九明卷舒 十總圓融

1. 진리와 현상을 모으다. 2. 색과 공을 이해하다. 3. 크고 작음에 통하다.

4. 멀고 가까움을 거두다. 5. 순일함과 섞임을 밝히다. 6. 찰라와 겁을 융통하다.

7. 하나와 여럿을 이해하다. 8. 통함과 국한됨을 회통하다. 9. 맒과 펼침을 밝히다.

10. 원융함을 총합하다.

 

 

  初會理事者如塵相圓小是事塵性空無是理以事無體事隨理而融通由塵無體即遍通於一切由一切事事不異理全現塵中故經云廣世界即是狹世界狹世界即是廣世界

1. ‘진리와 현상을 알아봄은 예컨대티끌의 모습은 원만하고 작은 것이 현상이고티끌의 본성이 공하여 없는 것은 진리이다현상은 체가 없는 것으로써 현상이 진리를 따라 융통하며티끌이 체가 없음으로 말미암아 일체에 두루 통한다일체 현상의 현상은 진리와 다르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온전히 티끌 가운데에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경에서 이르기를 넓은 세계가 바로 좁은 세계이며좁은 세계가 곧 넓은 세계이다라고 하였다.

 

 

 二達色空者如見塵從緣成立是色色無體故是空空若無色而言空即是無世諦之妄色因妄色而有眞諦之真空色若無空而言色即是無眞諦之眞空因眞空而有世諦之妄色今但了妄無體即是眞空非無色名空也經云色性自空非色滅空

2. ‘()과 공()을 이해함은 예컨대티끌을 봄에 연을 따라 이루어진 것은 색이고색은 체가 없기 때문에 공이다공을 만약 색이 없기 때문에 공이라 말한다면이것은 속제(俗諦)의 허망한 색[妄色]이 없는 것이므로 허망한 색으로 인하여 진제(眞諦)의 진공(眞空)이 있는 것이다색을 만약 공이 없으므로 색이라 말한다면이것은 진제의 진공이 없는 것이므로 진공으로 인하여 속제의 허망한 색이 있는 것이다지금 단지 망()에는 체가 없음을 이해하여 알면곧 진공일 뿐색이 없음을 공이라 하는 것은 아니다.

경에서 이르기를 색의 본성은 본래 공이지색을 없앤 공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三通大小者如塵圓相是小須彌高廣為大然此塵與彼山大小相容隨心迴轉而不生滅且如見高廣之時是自心現作大非別有大今見塵圓小之時亦是自心現作小非別有小今由見塵全以見山高廣之心而現塵也是故即小容大也經云金剛鐵圍數無量悉能安置一毛端欲明至大有小相菩薩因此初發心

3. ‘크고 작음을 통함은 예컨대티끌의 둥근 모습은 작음[]이고수미산의 높고 넓음은 큼[]이다그런데 이 티끌과 저 산의 크고 작음이 서로 받아들이며 마음을 따라 회전(廻轉굴림)하지만 생멸(生滅)하지는 않는다또 마치 산의 높고 넓음을 볼 때이것은 자기 마음으로 큼을 만들어 나타내는 것일 뿐 별도의 큼이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지금 티끌의 둥글고 작은 모습을 볼 때 역시 자기 마음이 작음을 만들어 나타내는 것일 뿐 별도의 작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지금은 티끌을 봄으로 인하여 온전히 산의 높고 넓음을 보는 마음을 가지고 티끌을 나타낸다이런 까닭으로 작음이 큼을 받아들인다.

경에서 이르기를 금강산 철위산의 수효가 한량없으나 모두가 하나의 터럭 끝에 잘 둔 것이니지극히 큰 것이 작은 모습에 있음을 밝히고자 보살이 이것으로 인하여 처음 마음을 내었다라고 하였다.

 

 

 四收遠近者謂此塵是近彼十方世界是遠今塵無體該通一切十方即此十方全是塵之十方是故遠恒近也然十方雖遠秖是塵性之十方縱超不可說世界亦是不出塵性何以故塵量無體等虛空界不可出過故是故一切十方唯塵性顯也又雖離此至十方時亦見此塵何以故由塵無體事隨理而融現是故塵性遍一切時塵事亦同顯現此乃一塵中顯現一切而遠近彼此宛然十方入一塵中遠而恒近塵遍十方近而恒遠塵與十方近之與遠一際顯然更無別異思之

4. ‘멀고[가까움[]을 거둠은 이를테면이 티끌은 가까움이고저 시방세계는 멂이다지금 티끌은 체가 없지만 일체 시방에 모두 통하는데이 시방은 온전히 티끌의 시방이다이런 까닭으로 멂이 항상 가까움이다.

그러나 시방이 비록 멀지만 단지 이 티끌 본성의 시방이다설사 불가설세계(不可說世界)를 뛰어 넘었다 하여도 역시 티끌의 본성을 나오지 않는다무슨 까닭인가티끌을 헤아림은 체가 없어 허공계와 같아서 넘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일체 시방은 오직 티끌의 본성이 나타난 것이다.

또 비록 이것을 떠나서 시방에 이를 때에도 또한 이 티끌을 보는 것이다무슨 까닭인가티끌은 체가 없으므로 말미암아 현상이 진리를 따라서 원융(圓融)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티끌의 본성이 일체에 두루 할 때 티끌의 현상도 똑같이 나타난다.

이것은 한 티끌 가운데 일체가 나타나지만 가까움과 멂이 이것과 저것에 분명하다시방이 하나의 티끌 가운데로 들어가는데 멀지만 항상 가까움이며티끌이 시방에 두루 하므로 가까운 것이지만 항상 멂이다티끌과 시방세계가까움과 멂이 한꺼번에 나타나기 때문에 별도로 다름이 없다생각해 보라.

 

 

 五明純雜者謂塵無生即一切法皆無生是純即塵無生義中具含理事亦空亦色亦菩提亦涅槃等是雜理不礙事純恒雜也事恒全理雜恒純也由理事自在純雜無礙也

5. ‘순일(純一)함과 섞임[]을 밝힘은 이를테면티끌은 생기는 것이 없음으로 곧 일체법이 모두 생기는 것이 없는 순일함이다티끌의 생기는 것이 없는 뜻 가운데는 진리와 현상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므로 또한 공이며색이며또한 보리(菩提)이며열반(涅槃등인 것이 섞임[]이다진리가 현상을 장애하지 않으므로 순일함이 항상 섞임이며현상이 온전히 진리이므로 섞임은 항상 순일함이다진리와 현상이 자재하므로 순일함과 섞임이 걸림이 없다.

 

 

  六融念劫者如見塵時是一念心所現此一念之心現時全是百千大劫何以故以百千大劫由本一念方成大劫既相成立俱無體性由一念無體即通大劫大劫無體即該一念由念劫無體長短之相自融乃至遠近世界佛及衆生三世一切事物莫不皆於一念中現何以故一切事法依心而現念既無礙法亦隨融是故一念即見三世一切事物顯然經云或一念即百千劫百千劫即一念

6. ‘찰라[]와 겁[]을 통함은 예컨대티끌을 볼 때이것은 일념(一念)의 마음이 나타난 것이다이 일념의 마음이 나타날 때가 온전히 백천대겁(百千大劫)이다.

무슨 까닭인가백천대겁은 본래 일념으로 말미암아 바야흐로 대겁을 이루기 때문이다이미 서로 이루어졌으므로 모두 체가 없다일념은 체가 없으므로 말미암아 바로 대겁에 통하고대겁도 체가 없으므로 바로 일념을 통한다일념과 겁에는 체성이 없으므로 길고 짧은 것에 스스로 융통하며나아가 멀고 가까움의 세계부처와 중생삼세(三世)의 일체 사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념 가운데 나타나지 않음이 없다.

무슨 까닭인가일체 현상의 법은 마음에 의하여 나타나기 때문이다찰라가 이미 걸림 없으므로 법도 또한 따라서 융통한다이런 까닭으로 일념에 바로 삼세의 일체 사물이 나타남을 보는 것이다.

경에서 이르기를 일념이 곧 백천겁이며백천겁이 곧 일념이다라고 하였다.

 

  七了一多者如塵自相是一由自一不動方能遍應成多若動自一即失遍應多亦不成一二三皆亦如是又一多相由成立如一全是多方名為一又多全是一方名為多多外無別一明知是多中一一外無別多明知是一中多良以非多然能為一多非一然能為多一以不失無性方有一多之智經云譬如算數法從一增至十乃至無有量皆從本數起智慧無差別

7. ‘하나[]와 여럿[]을 이해함은 예컨대티끌 스스로의 모습은 하나이니스스로의 하나가 움직이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바야흐로 두루 응할 수 있어 여럿을 이루게 된다만약 움직인다면 스스로의 하나를 바로 잃게 되어 두루 응하는 여럿도 또한 이루지 못하게 된다. 12모두 역시 이와 같다.

또 하나와 여럿이 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예컨대 하나는 온전한 여럿이라야 바야흐로 하나라 하는 것이며또 여럿은 온전히 하나라야 비로소 여럿이라고 하니여럿을 떠나서 따로 된 하나는 없다여럿 가운데 하나이므로 하나를 떠나서 따로 여럿이 없음을 분명히 알 것이며하나 가운데 여럿임을 분명히 알라참으로의 여럿이 아니지만 하나인 여럿이 될 수 있고하나가 아니지만 여럿인 하나가 될 수 있다자성이 없음을 놓치지 않아야만 바야흐로 하나와 여럿의 지혜가 있게 된다.

경에서 이르기를 비유하면 산수법(算數法)과 같아서 하나()에서부터 더해나가 열()에 이르고 나아가 헤아림이 있지 않는 데에 다다름이 모두 근본수(根本數)로부터 일어나는 것과 같다이에 지혜에는 차별이 없다라고 하였다.

 

 

 八會通局者謂塵之小相是局即相無體是通今無邊剎海常現塵中乃通恒局一塵全遍剎海乃局恒通又不壞小而容大即不思議一塵廣容佛剎不泯大而居小即不思議佛剎海常現塵中是為通局無礙也

8. ‘통함[]과 국한됨[]을 회통()은 이를테면티끌의 작은 모습은 국한됨이고바로 모습이 체가 없음은 통함이다지금 그지없는 땅과 바다가 티끌 가운데 항상 나타나므로 통함이 항상 국한됨이며한 티끌이 땅과 바다에 온전히 두루 하므로 국한됨이 항상 통함이다또 작은 것을 무너뜨리지 않고서 큰 것을 받아들임으로 불가사의한 하나의 티끌이 부처님의 땅과 바다를 널리 받아들인다큰 것을 없애지 않고서 작은 것에 머물러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땅과 바다가 항상 티끌 가운데 나타난다이것이 통함과 국한됨이 걸림 없음이다.

 

 

  九明卷舒者謂塵無性舉體全遍十方是舒十方無體隨緣全現塵中是卷經云以一佛土滿十方十方入一亦無餘今卷則一切事於一塵中現若舒則一塵遍一切處即舒常卷一塵攝一切故即卷常舒一切攝一塵故是為卷舒自在也

9. ‘[]과 펼침[]을 밝힘은 이를테면티끌은 자성이 없어 체가 온전히 시방에 두루 한 것이 펼침이고시방은 체가 없어 연을 따라 온전히 티끌 가운데 나타난 것이 맒이다.

경에서 이르기를 하나의 부처 국토가 시방에 가득하며시방이 한 국토에 들어가는데 남음이 없다라고 하였다맒은 곧 일체의 현상이 한 티끌 가운데 나타나고펼침은 곧 한 티끌이 모든 곳에 두루 한다바로 펼침이 항상 맒이니 한 티끌이 일체를 거두는 까닭이다바로 맒이 항상 펼침이니 일체가 한 티끌을 거두기 때문이다이것이 맒과 펼침이 자재함이다.

 

 

 十總圓融者謂塵相既盡惑識又亡以事無體故事隨理而圓融體有事故理隨事而通會是則終日有而常空空不絕有終日空而常有有不礙空然不礙有之空能融萬像不絕空之有能成一切是故萬像宛然彼此無礙也

10. ‘원융함을 총합함은 이를테면티끌의 모습이 이미 다하면 미혹한 알음알이[]도 없어진다현상은 체가 없음으로써 현상이 진리를 따라서 원융하며체에는 현상이 있으므로 진리는 현상을 따라서 통하여 모인다이것은 곧 때가 다하도록 유()이며 항상 공이다()은 유()를 끊어버리지 않으니 때가 다하도록 공이며 항상 유이다유는 공에 걸림이 되지 않는다그러나 유에 걸림이 되지 않는 공이 만 가지 모양을 융합할 수 있고공을 끊지 않은 유가 일체를 이룰 수 있다이런 까닭으로 만 가지 모양이 분명하여 이것과 저것에 걸림이 없다.

 

 

然上諸義鎔融之勢因無性以得通任運之形因緣起而得會一多全攝窺一塵所以頓彰彼此相收瞻纖毫以之齊現良以心通則法門自在義顯則大智由成尋之者詎究其源談之者罕窮其奧任運之用何可稱哉

그러나 이상의 모든 뜻에서 녹이고 융합하는 형세(形勢)는 자성이 없으므로 인하여 통할 수 있고마음대로 운용하는 형태는 연기(緣起)로 인하여 모을 수 있다하나와 여럿을 온전히 거두므로 하나의 티끌을 살펴보면 단박에 드러나는 까닭에 이것과 저것이 서로 거두므로 가는 터럭을 바라보면 나란히 나타난다.

진실로 마음으로써 통하면 법문(法門)이 자재하고뜻을 드러내면 곧 크나큰 지혜가 이루어진다찾는 자여어찌 근원을 궁구하고말하는 자는 깊은 뜻을 끝까지 다하여마음대로 운용하는 일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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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화엄경의해백문-4|작성자 밝은 빛



화엄경의해백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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體用顯露門第五

5. ()와 용()을 드러내는 부문

 

 夫法體圓通眞源滿徹顯則十方洞鑒示乃一切咸彰指微塵以覩玄宗舉纖毫而觀佛境

대저 법의 체는 원융하게 통하고진리의 근원은 빈틈없이 통한다나타나면 곧 시방을 밝게 비추고나타냄에 일체가 모두 드러나니작은 티끌을 꼭 집어서 현묘한 가르침을 보이고가는 터럭을 거론(擧論)하여 부처의 경계를 관찰한다.

 

今達妄開真略分十義

여기서는 허망을 알고 진실을 열어 보이는데대략 열 가지 뜻으로 나눈다.

 

一顯光明 二了境智 三明生了因 四明佛境 五辨因果 

六明佛性 七表性德 八自心現 九出世間 十托生解

1. 광명을 드러내다. 2. 경계와 지혜를 이해하다.

3. 생인과 요인을 밝히다. 4. 부처 경계를 밝히다.

5. 인과를 말하다. 6. 불성을 밝히다.

7. 성품의 덕을 나타내다. 8. 자기의 마음이 나타낸 것임을 밝히다.

9. 세간에서 벗어나다. 10. 사물에 의탁하여 이해를 내다.

 

 

 初顯光明者謂見塵中法界真如理事之時顯了分明此是智慧光明照也若無智光則理事不顯但見法時是心光明由積智功圓是故放一光明則法界無不顯示常觀察一切法界是為放光明照一切也

1. ‘광명을 드러냄은 이를테면티끌 가운데 있는 법계ㆍ진여ㆍ진리와 현상을 볼 때드러남이 분명한데 이것은 지혜의 광명으로 비춘 것이다만약 지혜의 광명이 없다면 진리와 현상이 드러나지 않는다단지 법을 볼 때이 마음의 광명뿐이니 쌓아올린 지혜의 공덕이 원만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하나의 광명을 놓으면 법계가 나타나 드러내지 않음이 없다항상 일체의 법계를 관찰하니이것은 광명을 놓아 일체를 비추게 되는 것이다.

 

 

 二了境智者如一塵圓小事相是世諦了塵無生無性是眞諦彼眞俗二諦是所依之境此貫達之心是能依之智此智於境無復能取所取二種分別何以故今智由法成時方得言智離法則無能分別之智法由智顯時方得言法離智亦無所分別之境以心智寂故雖流照而常安由法隨緣故雖空寂而恒用

2. ‘경계와 지혜를 이해함은 예컨대한 티끌의 둥글고 작은 현상의 모습이 속제(俗諦)이고티끌이 생김이 없는 것이며 자성이 없는 것임을 이해한 것은 진제(眞諦)이다저 진제와 속제의 두 가지 진리는 의지하는 경계이고이 꿰뚫어 통달하는 마음은 의지할 수 있는 지혜이다이 지혜는 경계에 대하여 다시 능취(能取-능동으로 동작하여 취하는 것)와 소취(所取-움직이는 것으로서 동작을 취하는 것)라는 두 가지 분별이 없다.

왜냐하면지금은 지혜가 법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므로 비로소 지혜라고 말할 수 있다법을 떠나면 곧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없고법이 지혜로 말미암아 드러날 때 비로소 법이라 말할 수 있다지혜를 떠나면 또한 분별할 경계가 없고마음의 지혜가 공적하므로 비록 비추지만 항상 평안하고법이 연을 따르기 때문에 비록 공적한 까닭으로 비록 널리 비추지만 항상 평안하고법이 연을 따르는 까닭으로 말미암아 비록 공적(空寂)하지만 항상 작용한다.

 

 

 三明生了因者謂塵體空寂緣起法界之義由智方顯是了因見塵體已修於解行生起力用是生因然生即無生還同法體了亦非了豈等緣生生之與了無有差別生則約行了則據體無體即體了則無生體即無體生還為了契同一際無所分別

3. ‘생인(生因)과 요인(了因)을 밝힘은 이를테면티끌의 체는 공적한 연기법계라는 뜻인데지혜로 말미암아 비로소 드러난 것이 요인(了人)이다티끌의 체를 보고 나서 이해와 행에 대하여 닦아 작용하는 힘을 일으키는 것은 생인(生因)이다.

그런데 생김은 이 곧 생김이 없음이니 도리어 법의 체와 같고요인 또한 요인이 아닌데 어찌 연이 생기는 것과 같겠는가생인과 요인은 차별이 없으니생인은 행의 측면이며요인은 체를 근거로 한 것이다체가 없음이 바로 체이므로 요인은 곧 생인이 없고체는 곧 체가 없음이기 때문에 생인이 도리어 요인이다틀림없이 서로 꼭 들어맞아 동일한 것이므로 분별할 것이 없다.

 

 

 四明佛境者謂塵體不可得此不可得是佛得塵相無分齊無可依此無依是佛依塵體不生此不生是佛生塵無分別是佛分別由無得無依無生方能建立一切法又塵全見更不可見乃至不可聞皆是佛見聞經云所見不可見所聞不可聞

4. ‘부처 경계를 밝힘은 이를테면티끌의 체는 얻을 수 없는데이 얻을 수 없는 것이 부처의 얻음이다티끌의 모습은 영역이 없고 의지함이 없는데이 의지함이 없는 것이 부처의 의지함이다티끌의 체는 태어남도 없는데이 태어남이 없는 것이 부처의 태어남이다티끌은 분별이 없는데이것이 부처의 분별이다.

얻음도 없고 의지함도 없으며 태어남도 없으므로 말미암아 바야흐로 일체의 법을 만들어 세울 수 있다또 티끌을 온전히 봄에 다시 볼 수가 없으며나아가서 들을 수 없음 이르기까지 모두 부처님의 보고 들음이다.

경에서 이르기를 보는 것도 볼 수 없으며듣는 것도 들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五辯因果者塵即是緣起事相現前為因即事體空不可得是果果不異因全以因滿稱為果也由因不異果全以果圓稱之為因也若因不得果果亦非果也若果不得因因亦非因也皆同時成立無別異故是故初發心時便成正覺成正覺已乃是初心經云初發心時便成正覺悉與三世諸如來等

5. ‘인과(因果)를 말함은 티끌이 바로 연을 일으키어 현상의 모습으로 앞에 나타난 것이 인()이고바로 현상의 본체는 공하여 얻을 수 없는 것이 과()이다과는 인과 다르지 않으므로 온전히 인이 가득한 것을 과()라 하고인은 과와 다르지 않으므로 온전히 과가 원만한 것이 인이다만약 인이 과를 얻지 못한다면 과 또한 과가 아니다만약 과가 인을 얻지 못한다면 인 또한 인이 아니다모두 동시에 이루어지니 구별에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처음 마음을 낼 때 곧 바로 정각을 이루는 것이며정각을 이루고 나서 처음 마음을 내는 것이다.

경에서 이르기를 처음 마음을 낼 때에 곧 바로 정각을 이루니모두 삼세의 모든 여래와 더불어 똑같다라고 하였다.

 

 

 六明佛性者謂覺塵及一切法從緣無性名為佛性經云三世佛種以無性為性此但一切處隨了無性即為佛性不以有情故有不以無情故無今獨言有情者意在勸人為器也常於一塵一毛之處明見一切理事無非如來性是開發如來性起功德名為佛性也

6. ‘불성(佛性-부처 성품)을 밝힘은 이를테면티끌 및 일체의 법은 연을 따른 것이므로 자성이 없음을 깨달은 것을 불성(佛性)이라 한다.

경에서 이르기를 삼세의 부처 종자는 자성이 없는 것으로 성품(性品)을 삼는다.”라고 하였다이것은 단지 모든 곳에 자성이 없음을 이해함을 따라서 부처 성품을 삼은 것일 뿐이지유정물(有情物)이므로 부처 성품이 있고 무정물(無情物)이기 때문에 부처 성품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오직 유정물만을 말한 것은 사람들에게 권하여 근기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항상 하나의 티끌하나의 터럭에서 일체의 진리와 현상을 분명히 보면 여래 성품 아님이 없다여래 성품을 일으키는 공덕을 열어내는 것을 불성(佛性-부처 성품)이라 한다.

 

 

 七表性德者

7. ‘성품의 덕을 나타냄

 

問塵是有耶答是非有之有如水月鏡像經云非有是有

<질문티끌은 있는 것인가?

<대답있지 않으면서 있는 것이니물에 비친 달거울 속에 비친 모습과 같다그러므로 경에서 이르기를 있지 않는 것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塵是無耶答是有之非有空無性也經云有是非有

<질문티끌은 없는 것인가?

<대답있으면서 없는 것이니공이어서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그러므로 경에서 이르기를 있는 것이 있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塵是亦有亦無耶答從緣生故有無自性故空空有一際自在成也論云以有空義故一切法得成

<질문티끌은 있기도 하고 또한 없기도 한 것인가?

<대답연을 따라 생긴 까닭으로 있는 것이고자성이 없어 공인 까닭에 공()과 유()가 하나로써 자재하게 이루어진다()에서 이르기를 공의 이치가 있기 때문에 일체의 법을 이룰 수 있다라고 하였다.

 

問塵是非有非無耶答有相空相俱不可得也互相奪盡無所成立今此性德但無執著不礙分別論云若因有與無亦遮亦應聽離言心不著是則無有過

<질문티끌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가?

<대답유의 모습과 공의 모습 둘 다 얻을 수 없는 것이니서로 빼앗아 버리면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다이 성품의 공덕은 단지 집착이 없는 것이지만 분별에 걸림이 되지 않는다.

()에서 만약 유와 무로 인한다면 가로막기도 하고 또한 응하여 듣기도 하는데말을 여의고 마음에 집착하지 않으면 허물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八明自心現者如見此塵時是自心現也今塵既由心現即還與自心為緣終無心外法而能為心緣以非外故即以塵為自心現也離心之外更無一法縱見內外但是自心所現無別內外此無過也

8. ‘자기의 마음이 나타낸 것을 밝힘은 예컨대티끌을 볼 때에 이것은 자기의 마음이 나타낸 것이다티끌이 이미 마음에서 나타났으므로 말미암아 도리어 자기의 마음과 더불어 연이 된다결국 마음 바깥에는 법은 없으며 마음이 연이 된다밖이 아닌 까닭에 바로 티끌로써 자기의 마음이 나타낸 것이다마음을 떠난 바깥에는 다시금 한 법도 없다설사 안과 밖을 볼지라도 단지 자기의 마음이 나타낸 것이니 달리 안과 밖이 없다이것은 잘못이 없다.

 

 

 九出世間者謂見塵色相作實解即為處世間今塵相空無所有是出世間也經云三世五蘊法說名為世間斯由虛妄有無分別則出世間也

9. ‘세간에서 벗어남은 이를테면티끌의 색상(色相)을 보고 실제(實際)라고 이해하면세간의 처지가 된다티끌의 모습을 공하여 있는 것이 없는 것으로 보면세간에서 벗어난 것이다경에서 이르기를 삼세의 오온법(五蘊法)을 세간이라 한다이는 허망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니분별이 없으면 곧 세간에서 벗어난 것이다라고 하였다.

 

 

 

 十托事生解者如見塵相是事於事處貫達即無生之理現前是謂托事生解也又別托外物以表此法表塵法自在故以塵表之顯法潤益故以雲雨表之顯塵性德深廣故以海表之如是無量更有所表各異以智推之

10. ‘사물에 의존하여 이해함은 이를테면티끌의 모습이 현상임을 보고 현상이 있는 곳에서 꿰뚫어 이해하여바로 생기는 것이 없는 이치가 앞에 나타난 것을 사물에 의존하여 이해함이라 한다또 바깥 사물에 특별히 의존하여 이러한 법을 나타내기도 한다티끌의 법이 자재함을 나타내는 까닭에 티끌로써 나타내고법이 늘어남을 나타내는 까닭으로 구름과 비로써 나타내고티끌의 성품의 공덕이 깊고 넓음을 나타내는 까닭으로 바다로써 나타내니이와 같은 것이 한량없다다시금 나타내는 것이 각각 다르니지혜로써 미루어 생각해 보라.

 

 

 然上諸義惑盡智生相亡體顯差別緣起方騰性海之波一味眞源用顯隨緣之鏡會眞之道失何遠哉

그러나 이상의 모든 뜻은미혹이 사라지면 지혜가 생기고모습이 없어지면 체가 나타난다차별된 연을 일으키는 것이 바야흐로 본성의 바다의 파도에서 일어나고한 가지 맛인 참된 근원이 연을 따르는 거울에 작용하여 나타나는데참된 길을 만나는 것이 어찌 멀다 하겠는가?

[출처] 화엄경의해백문-5|작성자 밝은 빛


화엄경의해백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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差別顯現門第六

6. 차별되게 나타나는 부문

 

 夫滿教難思窺一塵而頓現圓宗叵測觀纖毫而頓彰然用就體分非無差別之勢事依理顯自有一際之形

대저 가득한 가르침은 생각하기 어렵지만 하나의 티끌만 보아도 문득 나타나고원융한 종지는 헤아리기 어렵지만 가는 터럭을 관찰하여도 단박 드러난다그러나 용의 측면에서 체를 나누면 차별 없는 형세가 아니고현상은 진리에 의해 나타난다본래 있는 하나의 모습이다.

 

今且略舉大綱以顯十義

지금 우선 중요한 것을 간략히 거론하여 열 가지 뜻을 나타낸다.

 

   一明止觀 二開二諦 三出入定 四通性起 五辨六相 

六顯帝網 七鑒微細 八通逆順 九定主伴 十登彼岸

1. 지와 관을 밝히다. 2. 이제를 열어 보이다. 3. 삼매에 들고 나오다.

4. 성기를 알아보다. 5. 육상을 드러내다. 6. 제망중중을 나타내다.

7. 미세를 살펴보다. 8. 거스름과 따름을 통하다. 9. 주인과 손님을 정하다.

10. 피안에 오르다.

 

 

 初明止觀者如見塵無體空寂之境為止照體之心是觀今由以無緣之觀心通無性之止體心境無二是止觀融通由止無體不礙是心故是以境隨智而任運由觀心不礙止境故是以智隨法而寂靜由非止觀以成止觀由成止觀以非止觀二而不二不二而二自在無礙

1. ‘()와 관()을 밝힘은 예컨대티끌은 체가 없어 공적한 경계로 보면 지()이고체를 비추는 마음은 관()이다지금 이끌림 없이 관찰하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자성이 없는 지()의 체를 통하면 마음과 경계가 둘이 아니어 지와 관이 원융하게 통한다.

()는 체가 없어 관찰하는 마음을 장애하지 않는 까닭으로 경계는 지혜를 따라서 마음대로 운용할 수 있다관찰하는 마음이 지의 경계를 장애하지 않는 까닭으로 지혜가 법을 따르지만 아주 고요하고 고요하다.

()와 관()이 아님으로 말미암아 지와 관을 이루고지와 관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지와 관이 아니다둘이지만 둘이 아니며둘이 아니지만 둘이어서 자재함에 걸림이 없다.

 

 

 二開二諦者謂如見塵相圓小幻有現前是世諦了塵無體幻相蕩盡是眞諦今此世諦之有不異於空相方名世諦又眞諦之空隨緣顯現不異於有相方名眞諦又空依有顯即世諦成眞諦也由有攬空成即眞諦成俗諦也由非眞非俗是故能眞能俗即二而無二不礙一二之義歷然經云於解常自一於諦常自二通達此無礙眞入第一義

2. ‘이제(二諦)를 열어 보임은 이를테면티끌의 모습을 보고 둥글고 작은 환()으로 앞에 나타나 있는 것이 속제(俗諦)이고티끌의 체가 없음을 이해하여 환()의 모습이 없어진 것은 진제(眞諦)이다.

지금 이 속제의 유()가 공()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야 비로소 속제라고 한다또 진제의 공이 연을 따라 나타나서 유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야 비로소 진제라고 한다또 공은 유를 의지하여 나타나므로 바로 속제 그대로 진제를 이루고유는 공을 잡아서 이루어지므로 바로 진제 그대로 속제를 이룬다진제도 아니고 속제도 아니기 때문에 진제일 수 있고 속제일 수 있다바로 둘이면서 둘이 아니고하나와 둘이 장애하지 않는 뜻이 분명하다.

경에서 이르기를 이해의 측면에서는 항상 본래 하나이지만진리의 측면에서는 항상 본래 둘인 것이다이러한 걸림 없음을 통달하면 참으로 제일의(第一義)에 들어간다.”라고 하였다.

 

 

 三出入定者謂見塵性空即是十方一切眞實之理名為入定也然見此塵無性空理之時乃是十方之空也何以故由十方之心見於一塵是故全以十方為塵定亦不礙事相宛然是起然起之與定俱等虛空界但以一多融通同異無礙是故一入多起多入一起差別入一際起一際入差別起悉皆同時一際成立無有別異當知定即起起即定一與一切同時三昧起一切塵中入正受一毛端頭三昧起

3. ‘삼매에 들고 나옴은 이를테면티끌의 본성이 공적함을 보고 바로 시방 일체의 진실한 진리를 보는 것을 삼매에 든다.’라고 한다그러나 이 티끌이 자성이 없어 공한 진리임을 볼 때시방이 공한 까닭은 무엇인가시방의 마음으로 하나의 티끌을 보기 때문이니이런 까닭으로 온전히 시방으로서 티끌의 삼매가 된다.

또한 현상의 모습이 분명하여 장애하지 않는 것이 삼매에서 일어남이다그런데 삼매에서 일어남이 모두 허공계와 같다단지 하나와 여럿이 융통하므로 같고 다름에 걸림이 없다.

이런 까닭으로 하나에서 들어가 여럿에서 일어나고 여럿에서 들어가 하나에서 일어나며차별로 들어가 같은 곳에서 일어나고 같은 곳에서 들어가 차별에서 일어나니모두 다 동시이며 한꺼번에 이루어져 다름이 없다.

마땅히 알라선정에 들어감이 바로 선정에서 나옴이고선정에서 나옴이 바로 선정에 들어감이며하나와 일체가 동시에 삼매에서 일어나며일체의 티끌 가운데에서 바른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상태에서 삼매에 들고하나의 터럭 끝에서 삼매가 일어나는 것임을.

 

 

 四通性起者謂塵體空無所有相無不盡唯一眞性以空不守自性即全體而成諸法也是故而有萬像繁興萬像繁興而恒不失眞體一味起恒不起不起恒起良以不起即起起乃顯於緣生起即不起不起乃彰於法界是故此塵即理即事即滅即生皆由不起而起也此塵亦空理亦壞亦隱由起而不起是故終日繁興而無施設也

4. ‘성기(性起)를 알아봄은 이를테면티끌의 본체는 공하여 있는 것이 없으며모습이 다하지 않음이 없어 오직 하나의 참된 성품일 뿐이다.

공은 자성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바로 온전한 본체이며 모든 법을 이룬다이런 까닭으로 만 가지 모양이 무성하게 일어난다만 가지 모양이 무성하게 일어나나 항상 참된 체의 한 가지 맛을 잃지 않는다일어나지만 항상 일어나지 않으며 일어나지 않지만 항상 일어난다.

진실로 일어나지 않음이 바로 일어남으로써 일어남은 연이 생겨남으로 나타나고일어남이 바로 일어나지 않으며 일어나지 않음이 법계에 뚜렷하다이런 까닭으로 이 티끌은 진리 그대로이고현상 그대로이며사라짐 그대로이고 생겨남 그대로여서 모두가 일어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이 티끌은 또한 공하므로 진리가 무너지기도 하고 숨기도 한다일어남으로 말미암아 일어나지 않는 까닭으로 종일토록 무성하게 일어나되 베풀어 차리는 것이 없다.

 

 

 五顯六相者今塵全以理事解行教義以成緣起此為總也由塵總義現前方於塵處辨體用解行教義各各差別是別也此一塵處所辨諸義各各無性互不相違是同也此一塵處諸義體用性相各各差別是異也此一塵處諸義現前塵法方立是成也此一塵處諸義各各顯自性相終不相成相作是壞也一切諸法皆具此六相緣起方成若不如此則失六義也

5. ‘육상(六相)을 드러냄은 지금 티끌이 온전히 진리ㆍ현상ㆍ이해ㆍ실행ㆍ가르침ㆍ뜻으로 연기(緣起)를 이루는 것이 총상(銃相)이다티끌의 총상의 뜻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티끌에서 본체ㆍ현상ㆍ이해ㆍ실행ㆍ가르침ㆍ뜻을 각각 차별되게 구별한 것이 별상(別相)이다이 하나의 티끌에서 구별한 모든 뜻이 각각 자성이 없어 서로 어긋나지 않는 것이 동상(同相)이다이 하나의 티끌의 모든 뜻인 본체ㆍ작용ㆍ본성ㆍ모습이 각각 차별된 것이 이상(異相)이다이 하나의 티끌의 모든 뜻이 앞에 나타남에 티끌의 법이 비로소 세워지는 것이 성상(成相)이다이 하나의 티끌의 모든 뜻이 각각 자성의 모습을 나타내어 끝에는 서로 이루고 서로 만들지 않는 것이 괴상(壞相)이다.

일체의 모든 법이 다 이러한 여섯 가지 모습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연기(緣起)가 바야흐로 이루어진다만약 이와 같지 않으면 여섯 가지의 뜻을 잃게 된다.

 

 

 六顯帝網者謂塵無體顯現一切緣起理事菩提涅槃教義及解行等由此諸義無性理通十方圓明一際或一現一或一現一切或一切現一或一切現一切四句同時一際顯然重重無盡自在現也如帝釋殿珠網重重互現無盡論云帝網差別唯智能知非眼境界

6. ‘제망중중(帝網重重)을 나타냄은 이를테면티끌은 실체가 없지만 일체의 연기(緣起)ㆍ이사(理事)ㆍ보리(菩提)ㆍ열반(涅槃)ㆍ교의(敎義및 해행(解行등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뜻은 자성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진리는 시방에 통하여 원만하고 분명한 하나의 진리이다어떤 때는 하나가 하나를 나타내고어떤 때는 하나가 일체를 나타내며어떤 때는 일체가 하나를 나타내고어떤 때는 일체가 일체를 나타낸다.

네 가지 문구(文句)가 동시라서 한결 같이 드러나므로 거듭거듭 다함이 없이 자재하게 나타난다마치 제석천의 보배 그물이 거듭거듭 다함이 없는 것과 같다.

논에서 이르기를 제석천의 보배 그물의 차이와 다름은 오직 지혜로만 알 수 있고눈으로 볼 수 있는 경계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七鑒微細者謂此塵及十方一切理事等莫不皆是佛智所現即此佛智所現之塵能容持一切剎海事理教義無不具足所以然者由十方差別雖多恒是一塵之十方一塵雖小恒是該通一切之塵是故顯現無有先後不礙差別遠近宛然經云微細世界中容受大世界境界無不了智慧山王行又云於一塵中普現三世一切佛剎等又云乃至一塵一毛一世界一佛一衆生等皆如是頓顯故

7. ‘미세(微細)하게 살펴봄은 이를테면이 티끌 및 시방의 일체 진리와 현상 등은 모두 부처 지혜에서 나타낸 것 아님이 없다바로 이 부처 지혜에서 나타난 것인 티끌이 능히 일체 국토와 바다의 현상ㆍ진리ㆍ가르침ㆍ뜻을 받아들여 지닐 수 있어 다 갖추어져 있지 않음이 없으니무슨 까닭인가?

시방에 차별이 비록 많지만 항상 하나의 티끌의 시방이고하나의 티끌이 비록 작지만 항상 일체 티끌에 모두 통하는 까닭에 나타남에 앞과 뒤가 없고차별에 걸림이 없고멀고 가까움이 분명하다.

경에서 이르기를 미세한 세계 가운데에서 큰 세계를 받아들이어 경계를 이해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 지혜산왕(智慧山王-부처님)의 행()이다라고 하였으며또 이르기를 하나의 티끌 가운데에서 삼세의 일체 부처님 국토 등을 두루 나타낸다.”라고 하였다또 이르기를 하나의 티끌ㆍ하나의 터럭ㆍ하나의 세계ㆍ한 부처ㆍ한 중생 등을 나타낸다.”라고 하였으니모두 이와 같이 단박 나타내기 때문이다.

 

 

 八通逆順者謂舉塵相不必見理為逆以塵無體即空為順由相取不可得逆則常順以理不礙事順則常逆由事理融通是以逆順無礙自在用也

8. ‘거스름[]과 따름[]을 통함은 이를테면티끌의 모습을 말함에 반드시 진리를 보지 않는 것이 거스름[]이고티끌은 체가 없어 공 그대로인 것은 따름[]이다모습을 얻을 수 없음으로 말미암아 거스름이 곧 항상 따름이며진리가 현상을 장애하지 않으므로 따름은 곧 항상 거스름이다현상과 진리가 융통하므로 말미암아 거스름과 따름이 걸림 없이 자재하게 작용한다.

 

 

 九定主伴者謂塵是法界體無分齊普遍一切是為主也即彼一切各各別故是伴也然伴不異主必全主而成伴主不異伴亦全伴而成主主之與伴互相資相攝若相攝彼此互無不可別說一切若相資則彼此互有不可同說一切皆由即主即伴是故亦同亦異當知主中亦主亦伴伴中亦伴亦主也

9. ‘주인[]과 손님[]을 정함은 이를테면티끌 법계의 체는 영역이 없어 일체에 두루 미치는 것이 주인이며이런 일체가 각각 다른 까닭으로 손님이다그러나 손님은 주인과 다르지 않으므로 반드시 온전히 주인이지만 손님을 이룬다또한 주인이 손님과 다르지 않으므로 주인과 손님이 서로 돕고 서로 거둔다만약 서로 거두면 피차가 서로를 없어 일체를 다르게 말할 수 없고만약 서로 돕는다면 피차가 서로 있으므로 일체를 같게 말할 수 없으니모두 주인 그대로이고 손님 그대로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다.

마땅히 알라주인 가운데 주인이면서도 또한 손님이며손님 가운데 또한 손님이며 또한 주인인 줄을.

 

 

 十登彼岸者謂塵名相生滅是此岸今了塵名相空寂不生不滅是彼岸但以不了為此了即為彼依了不了邊…。寄彼此以言之經云菩薩不住此岸不住彼岸而能運度衆生於彼岸

10. ‘피안(彼岸)에 오름은 이를테면티끌의 이름과 모습이 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 차안(此岸)이다지금 티끌의 이름과 모습이 공적하여 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음을 이해하여 안 것이 피안(彼安)이다단지 이해하여 알지 못하면 차안이 되고 이해하여 알면 피안이 된다이해하여 알았는지 이해하여 알지 못했는지에 의거하고피차라는 것에 의존하여 말한 것이다.

경에서 이르기를 보살은 차안에도 머물지 않고 피안에도 머물지도 않지만중생을 피안으로 실어 나를 수 있다라고 하였다.

 

 然上諸義體無別異舉則全彰理不殊途談皆頓顯良以二邊相盡差別體融隨智卷舒應機屈曲是故言起即起誰云路之不通舉多即多孰談法之無在自非逈超特達捿心物表之者焉能了此乎

그러나 이상의 모든 뜻에서 체는 그것 외에 다른 것이 없으므로 체를 들어 보이면 온전히 나타나며진리는 그것 말고 다른 길이 없으므로 진리를 말하면 모두가 단박 드러난다진실로 양변(兩邊)의 모습을 다한다차별된 체를 융통하므로 지혜를 따라 말고 펄치며근기에 응하여 굴곡(屈曲한다.

이런 까닭으로 일어남을 말하면 바로 일어남에 누가 길이 통하지 않는다고 말하며여럿을 말하면 바로 여럿인데 누가 법이 없다고 이야기 하는가스스로 멀리 뛰어넘고 특별하게 통달하여서 마음에 기대어 사물을 나타내는 자가 아니라면어찌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여 알 수 있겠는가?

[출처] 화엄경의해백문-6|작성자 밝은 빛


화엄경의해백문-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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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學嚴成門第七

7. 닦고 배워서 장엄을 이루는 부문

 

  夫菩提大寶性起靈珠既琢既磨資智慧而觀察為調為舒藉解行以嚴成

대저 보리의 큰 보배와 성기(性起)의 신령스런 구슬을 다듬고 갈았으니지혜를 의지하여 관찰하고고르고 폈으니 이해와 행을 빌려 장엄을 이룬다.

 

今總舉大綱粗分十義

지금은 총괄적으로 중요한 것을 들어 열 가지 뜻으로 나눈다.

 

一法供養 二弘六度 三修解行 四常莊嚴 五明智慧 

六崇善根 七了夢幻 八曉鏡像 九達五蘊 十不共法

1. 법공양을 밝히다. 2. 육바라밀을 널리 펼치다. 3. 이해와 실행을 닦다.

4. 항상 장엄하다. 5. 지혜를 밝히다. 6. 선근을 받들다.

7. 환과 꿈임을 이해하다. 8. 거울 속의 영상임을 깨닫다. 9. 오온을 이해하다.

10. 불공법을 밝히다.

 

 

 初法供養者謂以無生心中施一切珍寶乃至微塵皆能攝於法界即以此法界一塵而作供養以此供養乃至遍通三世一切諸如來前無不顯現彼諸如來無不攝受何以故由塵即攝法界是理與佛體性法界相應是故遍至一切佛所名廣大供養無空過者經云諸供養中法供養勝

1. ‘법공양을 밝힘은 이를테면생김이 없는 마음으로 일체의 진귀한 보배와 작은 티끌에 이르기까지 베풀어 주면 모두 법계에서 거둘 수 있으니바로 이 법계의 하나의 티끌로써 공양을 하는 것이다이 공양으로써 삼세의 일체 모든 여래 앞에 두루 통하여 나타나지 않음이 없으며저 모든 여래가 섭수하지 않음이 없다.

무슨 까닭인가티끌이 법계를 섭수하는 이치는 부처 체와 성품과 법계와 더불어 서로 응하기 때문이다이런 까닭으로 두루 일체 부처 처소에 이르는 것을 이름 하여 광대한 공양에는 헛되이 보냄이 없다라고 한다.

경에서 이르기를 모든 공양 가운데 법공양이 가장 뛰어나다라고 하였다.

 

 

 二弘六度者如見塵緣起無盡理事中說施一切眾生是檀波羅蜜又塵相空無即無非可防無惡可斷是尸羅波羅蜜又塵相空無所有則緣心不起息諸惱害是羼提波羅蜜又塵無體時執心自盡離於妄念是精進波羅蜜經云若能心不妄精進無有涯又以塵無性心亦自寂是禪波羅蜜經云不見心相是名正定又塵緣起無生無相空寂之理是智慧波羅蜜經云色不生是般若波羅蜜生常以如理六度修明其心亦不礙事六度饒益衆生理事不二為實行也不以理中具六而礙事六但了事為理也

2. ‘육바라밀을 널리 펼침은 예컨대티끌을 봄에 연기(緣起)의 다함이 없는 진리와 현상 가운데에서 일체중생에게 말하여 베푸는 것이 보시(布施)바라밀이다또 티끌의 모습이 공하여 없으므로 막을 것이 없고악을 끊을 것이 없음이 지계(持戒)바라밀이다또 티끌의 모습은 공하여 있는 것이 없으므로 마음에 이끌림이 일어나지 않고 모든 뇌()와 해()를 쉬는 것이 인욕(忍辱)바라밀이다또 티끌의 체가 없을 때 집착하는 마음이 저절로 다하여 허망한 생각을 여의는 것이 정진(精進)바라밀이다경에서 이르기를 만약 마음이 망령되지 않을 수 있다면 정진에는 끝이 있지 않다라고 하였다.

또 티끌은 자성이 없으므로 마음 또한 스스로 고요한 것이 선정(禪定)바라밀이다경에서 이르기를 마음의 모습을 보지 않는 것을 바른 삼매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또 티끌은 연기(緣起)이고 생김이 없음이고 모습이 없음이므로 공적한 진리가 지혜(智慧)바라밀이다경에서 이르기를 물질을 내지 않는 것에서 반야바라밀이 나온다.”라고 하였다.

항상 진리에 맞는 육바라밀로 그 마음을 닦아 밝히고 또한 현상에도 걸림이 없는 육바라밀로 중생을 요익하게 하니진리와 현상이 둘이 아님이 참된 행이 된다진리 가운데 갖추어진 육바라밀이 현상의 육바라밀을 장애하지 않으므로 단지 현상이 진리가 됨을 이해하여 알 뿐이다.

 

*(): (1) 俱舍宗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집착하여 다른 이의 용서를 받지 않고 스스로 고민하는 심리작용을 말합니다. (2) 唯識宗에서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놀라게 하며 어지럽게 하는 마음

*(): (1) 俱舍宗에서는()란 다른 이에게 위해(危害)를 가하고자 하는 심리 작용입니다. (2) 唯識宗에서는 살심으로 상대를 때리거나 결박협박하려는 마음작용이다.

 

 

 三修解行者謂於塵處悟達理事色空無性之義是解也理解在心是智也行通為行若行心作眞解作俗解非名解也不作一切解解心無寄是為大解也又若起心作凡夫行作聖人行亦非行也不作一切行行心無寄是名大行行非是過由心起作解亦非過由心住著常無住著希望乃是眞解行也

3. ‘이해[]와 행()을 닦음은 이를테면티끌에서 진리ㆍ현상ㆍ색ㆍ공이 자성이 없는 뜻을 깨달아 아는 것이 이해이고진리가 마음에 있음을 아는 것이 지혜이다.

행을 통하여 행하게 되는데만약 행하는 마음을 지어 진리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에만 머문다면 세간의 이해를 하는 것이므로 이해라 하지 않는다일체의 행을 짓지 않아서 행하는 마음이 의존함이 없음이 크게 이해함이다.

또 만약 마음을 일으켜 범부의 행을 짓거나 성인의 행을 짓는다면 역시 행이 아니다일체의 행을 짓지 않아서 행하는 마음이 의존함이 없음이 크게 하는 행이다.

행이 그릇되어 잘못된 것은 마음을 일으켜 지었기 때문이고이해 또한 그릇되어 잘못된 것은 마음에 머물러 집착하기 때문이다항상 머물러 집착하거나 바라는 것이 없음이 참된 이해와 행이다.

 

 

 四常莊嚴者如以智心觀察全塵法界緣起現前無有分別是為嚴淨佛土又修戒願理事解行圓明全塵法界理智圓通功德顯示是為莊嚴佛身又說示塵體緣起主伴帝網微細曉示一切是為轉淨法輪於一切處皆是莊嚴不礙七寶以用莊嚴

4. ‘항상 장엄(莊嚴)은 예컨대지혜의 마음으로 온전한 티끌의 법계연기가 앞에 나타남을 관찰하지만 분별이 없음이 부처 국토를 장엄하여 깨끗하게 함이다.

또 지계ㆍ원력ㆍ진리ㆍ현상ㆍ이해ㆍ행을 닦아 원만하게 밝아져 온전히 티끌 법계의 진리의 지혜가 원만하게 통하고 공덕을 드러내어 나타냄이 부처 몸[佛身]을 장엄함이다또 티끌의 체ㆍ연기ㆍ주반ㆍ제망ㆍ미세를 말하여 나타내는데일체를 나타내어 보여 알아듣게 일러주는 것이 청정한 법륜을 굴리는 것이 된다일체의 곳을 모두 장엄하는데일곱 가지 보배를 써서 장엄하는데 걸림이 없다.

 

 

 五明智慧者謂塵從緣成假持似有所現此達有之心是智即此假持幻有畢竟空無所有此觀空之心是慧若住於空即失有義非慧也若住於有即失空義非智也今空不異有有必全空是為智慧也要由名相不存方名智慧若存名相即非智慧也由不存即是存存即是不存也

5. ‘지혜를 밝힘은 이를테면티끌은 연으로부터 이루어져 거짓으로 버티고 있는 듯이 나타낸 것이다이러한 유()를 이해하여 아는 마음이 지혜(-작용하는 슬기)이다바로 이러한 거짓으로 버티어 환()으로 있는 것은 끝내는 공이므로 있는 것이 없다이러한 공을 관찰하는 마음이 혜(-근본슬기)이다.

만약 공에만 머물면 바로 유()의 뜻을 잃게 되므로 혜()가 아니며만약에 유()에만 머물면 공의 뜻을 잃게 되므로 지()가 아니다.

지금 공은 유와 다르지 않아서 유는 반드시 온전한 공이다이것이 지혜인데반드시 이름과 모습이 있지 않아야만 바야흐로 지혜라고 한다만약 이름과 모습이 존재한다면 지혜가 아닌 것이다존재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바로 존재하고 존재함이 바로 존재하지 않음이다.

 

 

 六崇善根者謂顯塵是法界涅槃及以解行此皆從塵處所顯發是故即以塵為善根也常觀察修習是為於塵處而種善根而長養之所有一切塵毛剎海佛及衆生常應如是也

6. ‘선근(善根)을 받들다는 이를테면티끌은 법계이고 열반이며 이해와 행임을 나타내는데이러한 것들은 모두 티끌에서 나타나 나온 것이다이러한 까닭으로 바로 티끌로써 선근(善根)을 삼는다항상 관찰하고 닦고 익히는 것이 티끌에서 선근을 씨를 심고 기르는 것이 된다일체에 있는 티끌과 터럭국토와 바다부처와 중생에 항상 응함이 이와 같다.

 

 

 七了夢幻者謂塵相生起迷心為有觀察即虛猶如幻人亦如夜夢覺已皆無今了虛無名不可得相不可得一切都不可得是為塵覺悟空無所有

7. ‘()과 꿈임을 이해하여 안다는 이를테면티끌의 모습이 생겨 미혹한 마음이 있게 되지만 관찰해 보면 텅 빈 것이다마치 헛보이는 사람 같고또한 꿈과 같아서 깨고 나면 모두 없다이제 텅 비어 없음을 이해하여 알았으니이름을 얻을 수 없고 모습도 얻을 수 없으며 일체를 다 얻을 수 없다이것이 티끌이 공하므로 있는 것이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八曉鏡像者謂塵相大小但似有顯現竟取不可得故知塵即虛無如鏡中之像經云觀察諸法如電光如水月鏡中之像似有非有取不可得故以塵空寂不礙假相宛然於法界中假實二義但由影像也

8. ‘거울 속의 영상(映像)임을 깨달음은 이를테면티끌 모습의 크고 작음은 단지 거짓으로 있음[似有]이 나타난 것이므로 끝내는 취할 수 없다그러므로 알라티끌이 텅 비어 없음이 거울 속 영상과 같은 것임을.

경에서 이르기를 모든 법을 관찰해 보면마치 번개 불과 같고물속의 달과 같으며거울 속 영상과 같아서 있는 것 같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그러므로 티끌은 공적하지만 거짓 모습이 분명하여 걸림이 없다법계 가운데 거짓과 실제의 두 가지 뜻은 다만 영상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九達五蘊者如塵質礙為色心領納是受現塵假相於心是想心緣塵取捨是行辨了於塵是識今了塵無體緣慮自亡經云三世五蘊法說名為世間斯由虛妄有無即出世間

9. ‘오온(五蘊)을 이해하여 앎은 예컨대티끌의 성질에 걸림이 있음은 색()이고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수()이고티끌의 거짓 모습이 마음에 나타난 것이 상()이고마음이 티끌에 이끌리어 버리고 취하는 것이 행()이며티끌을 가려내는 것이 식()이다이 티끌이 체가 없음을 이해하여 알면연으로 인하여 생각하는 것이 저절로 없어진다.

경에서 이르기를 삼세의 오온법이 세간(世間)인데이것은 허망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니허망이 없으면 세간에서 벗어난 것이다라고 하였다.

 

 

 十不共法者謂二乘凡夫見塵有相有體但見一塵而無自在業用今則不爾不與彼同此要達塵無體證之以成佛土依塵修起智慧莊嚴法身然小恒容廣大世界一塵常能普攝一切是為不共法也

10. ‘불공법(不共法)을 밝힘은 이를테면이승(二乘)의 범부(凡夫)는 티끌을 모습이 있고 체가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단지 하나의 티끌만을 볼 뿐 자재한 업()의 작용이 없다.

지금은 그렇지 않으므로 저들과 같지 않다반드시 티끌이 체가 없음을 알고그것을 증득하여 부처 땅[佛土]을 이루는 것으로써 티끌에 의지하여 닦아 지혜를 일으키고 법신(法身)을 장엄한다그리하여 작은 것이 광대한 세계를 항상 받아들이니하나의 티끌에서도 항상 일체를 두루 거둘 수 있다이것이 불공법(不共法-다른 것과 같이 하지 않는 법)’이다.

 

 

 然上諸義體雖空淨資行願以嚴真性縱包含依智慧而開顯是故體稱本有行約修生生即不生還同本體體亦非體復等修生何曾體而礙生生而失體得意亡言千里跬步豈與夫懵道之子同年而語哉

그러나 이상의 모든 뜻은 체가 비록 공하고 청정하지만 행()과 원()을 도와서 진리를 장엄하고본성이 비록 일체를 포함하고 있지만 지혜를 의지하여 널리 드러난다이런 까닭으로 체는 본유(本有-본래 있는 성질의 덕)에 들어맞고수행(修行)은 수생(修生-수행한 공력에 의하여 생김)을 따른 것이다.

태어남이 곧 태어남이 아니므로 도리어 체와 같고체는 또한 체가 아니므로 다시 수생(修生)과 같은데어찌 일찍이 본체가 태어남을 장애하겠는가태어나지만 체를 잃지 않으므로 뜻을 얻으면 말을 잃게 된다천리가 멀지 않은데어찌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와 함께 어울려 말하고 있는가?

[출처] 화엄경의해백문-7|작성자 밝은 빛



화엄경의해백문-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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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治獲益門第八

8. 대치(對治)하여 이익을 얻는 부문

 夫病起藥興妄生智立務止啼於楊葉資靜亂於空業百非息於攀緣四句絕於增減然而悟緣無體智則自融起用恒沙無非清淨

대저 병이 일어나면 약이 흥하고 망념이 생기면 지혜가 서게 된다버드나무 잎으로 우는 아이를 힘써 그치게 하고허공이 하는 일[空業]을 도와서 어지러움을 고요하게 한다모든 그렇지 않은 연에 이끌림을 쉬게 하고사구(四句)로는 늘림과 줄임[增減]을 끊는다그러나 연에는 체가 없음을 깨달으면 지혜는 곧 저절로 융성하여 작용을 일으키니항상 청정하지 않음이 없다.

 

今略分十義以明對治

지금 대략 열 가지 뜻으로 나누어 대치(對治)를 밝힌다.

 一觀十二因緣  二修四威儀  三明三性  四顯教義  五示法輪 

六知無常  七入真如  八出魔網  九消藥病  十離解縛

1. 십이인연을 관하다. 2. 사위의를 닦다. 3. 삼성을 밝히다. 4. 가르침과 뜻을 드러내다.

5. 법륜을 보이다. 6. 무상을 알다. 7. 진여에 들어가다. 8. 마의 그물에서 벗어나다.

9. 약과 병을 없애다. 10. 풀고 묶임을 떠나다.

 

 

 初觀十二因緣者謂於塵上名相所惑不了無體是無明緣於塵上心計生起是行緣於塵上分別之心恒轉流注是識緣於塵上妄識依止成種是名色緣於塵上六根受入是六入緣於塵上根塵相對是觸緣於塵上領納塵境是受緣於塵上樂受自潤是受緣於塵上不了即空是取緣於塵上愛集成業是有緣於塵上業熟起五蘊身是生緣於塵上名相變壞是老死緣今了塵名相空寂則心不緣隨了之時緣自寂滅

1. ‘십이인연(十二因緣)을 관함은 이를테면티끌 위에서 이름과 모습에 미혹되어 체가 없음을 이해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무명연(無明緣)이다티끌 위에서 마음으로 헤아림이 생겨 일어나는 것이 행연(行緣)이다티끌 위에서 분별하는 마음을 항상 굴리어 흘리어 넣는 것이 식연(識緣)이다티끌 위에서 허망하게 분별하는 식()에 의지하여 종자를 만드는 것이 명색연(名色緣)이다티끌 위에서 육근(六根)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육입연(六入緣)이다티끌 위에서 육근(六根)과 육진(六塵)이 상대하는 것이 촉연(觸緣)이다티끌 위에서 티끌의 경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수연(受緣)이다티끌 위에서 즐거이 받아들여 스스로 젖어드는 것이 애연(愛緣)이다티끌 위에서 공()임을 이해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취연(取緣)이다티끌 위에서 애()를 쌓아 업()을 이루는 것이 유연(有緣)이다티끌 위에서 업이 익어 오온의 몸을 일으키는 것이 생연(生緣)이다티끌 위에서 이름과 모습이 변하여 무너지는 것이 노사연(老死緣)이다.

지금 티끌의 이름과 모습이 공적함을 이해하여 알면 마음으로 반연(攀緣)하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여 아는 때를 따라서 연이 스스로 적멸(寂滅)한다.

 

 

 二修四威儀者於塵上開顯法界法門曉示一切群生是行經云菩薩有二種行所謂聞法行樂聽法故說法行利益衆生故於塵上平等大智隨順觀察塵從緣起無生無相是住經云所謂隨順住住正法故於塵上空寂甚深之義是坐經云所謂坐師子座演說甚深法故於塵上名相蕩盡觀心寂滅淡泊無為是臥經云所謂寂靜臥身心淡泊故又禪定臥正念思惟觀察故不礙事處四威儀即事恒理也

2. ‘사위의(四威儀=行 住 坐 臥를 행함)를 닦음은 티끌 위에서 법계의 법문을 나타내어 보여 일체 중생에게 깨우쳐 보이는 것이 행()이다경에서 이르기를 보살에게는 두 가지의 행이 있다이른바 법을 듣는 행이니 법을 듣기 좋아하기 때문이고법을 말하는 행이니 중생을 이익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티끌 위에서 평등한 큰 지혜로 티끌은 연을 따라 일어난 것으로 생겨남이 없고 모습이 없음을 차례로 관찰하는 것이 주()이다경에서 이르기를 이른바 차례에 따라 머무니정법에 머물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티끌 위에서 공적하고 깊고 깊은 뜻이 좌()이다경에 이르기를 이른바 사자좌에 앉으시니깊고 깊은 법을 연설하기 위한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티끌 위에서 이름과 모습을 모두 없애버려 마음이 적멸하고 담박(淡泊)하여 함이 없음을 관찰하는 것이 와()이다경에서 이르기를 이른바 고요하고 조용하게 누워 있는 것은 몸과 마음이 담박하기 때문이며또 선정으로 누워 있는 것은 바른 생각으로 차례에 따라 관찰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현상의 곳마다 사위의(四威儀)에 걸림이 없으므로 바로 현상이 항상 진리이다.

 

 

  三明三性者謂塵上迷心所執計有相生以為實也今了塵圓小之相取不可得惑相自亡是為遍計相無性為人無我也又塵與自心為緣心法方起今了緣無自體依心方現無自體生是為依他也無生性是法無我也由二義現前乃圓成勝義性也

3. ‘삼성(三性=세 가지 성질)을 밝힘은 이를테면티끌 위에서 미혹한 마음으로 집착하여 모습이 생겨남이 있다고 생각하여 사실로 삼는 것이다지금 티끌의 둥글고 작은 모습을 취할 수 없음을 이해하여 알면 미혹한 모습이 스스로 없어지는 것이다이것이 변계상(遍計相-이리 저리 억측을 내는 모습)이며 자성이 없는 것이니인무아(人無我)이다.

또 티끌이 자기의 마음과 더불어 연이 되면 마음의 현상이 바야흐로 일어나는데지금 연이 스스로의 체가 없음을 이해하여 알면마음을 의지하여 스스로의 생겨남이 없고바야흐로 나타나는 것이 다른 모습에 의지하는 것이다이것이 의타(依他 다른 인연에 의지하는 것)인데생겨남에는 자성이 없는 것이니법무아(法無我)이다.

두 가지 뜻이 앞에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이에 뛰어난 뜻의 성품을 원만히 이룬다.

 

 

 四顯教義者謂塵能表生信解令通達故是教即解之時句味可詮是義即此塵具足法界理智是無盡教義也教無實體隨器施設義無實趣隨智開合了妄無體教亦非教經云我說十二部經如空拳誑小兒是事不知名曰無明

4. ‘가르침과 뜻을 드러냄은 이를테면티끌이 믿음과 이해를 냄을 나타낼 수 있고 통달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 가르침이고바로 이해할 때에 구절(句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이 뜻이다바로 이 티끌이 법계의 진리와 지혜를 모두 갖춘 것이 다함이 없는 가르침의 뜻이다가르침은 체가 없지만 근기를 따라 베푸는 것이며뜻은 참으로 나아감이 없지만 지혜를 따라 열고 닫는 것이다망념(妄念)이 체가 없음을 이해하여 알면 가르침이 또한 가르침이 아니다경에서 이르기를 내가 12부경을 말한 것은 빈주먹으로 어린 아이를 속인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을 무명(無明)이라 부른다.

 

 

 五示法輪者塵處開演如上法門隨心迴轉清淨顯然是謂轉無盡法輪也

5. ‘법륜(法輪법의 바퀴)을 보임은 티끌에서 위와 같은 법륜을 열어 펼치는데마음을 따라 회전(廻轉)하여 청정하게 두드러지게 뚜렷한 것이 다함이 없는 법륜을 굴림을 말한다.

 

 

 六知無常者謂塵念念生滅是無常即生滅無體是為常即生滅不生滅名凝然常經云不生不滅是無常義即常不礙隨緣即常不異無常又無常體寂滅即無常不異常若去無常即常義亦失若去常即無常義亦失當知常即無常無常即常也

6. ‘무상(無常)을 앎은 이를테면티끌이 생각 생각마다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 항상 함이 없음이고생기고 사라지는 것의 체가 없는 것이 항상 함이다바로 생멸하지만 생멸하지 않는 것을 항상 하는 응연(凝然-마음이 한 곳에 집중되어 꼼짝하지 않는 모양)이라 한다.

경에서 이르기를 생김도 없고 멸함도 없다라고 하였으니무상(無常)의 뜻이다.

항상 함은 연을 따름에 걸림이 없고항상 함은 무상(無常)과 다르지 않다또 무상(無常)의 체가 적멸하니무상이 항상 함과 다르지 않다만약 무상을 버리면 항상 함의 뜻도 잃게 되고만약 항상 함의 뜻을 버리면 무상의 뜻도 또한 잃게 된다마땅히 알라항상 함이 곧 무상이며무상이 곧 항상 함인 줄을.

 

 

 七入真如者謂一塵隨心迴轉種種義味成大緣起雖有種種而無生滅雖不生滅而恒不礙一切隨緣今無生滅是不變不礙一切是隨緣即此隨緣不變

7. ‘진여(眞如)에 들어감은 이를테면하나의 티끌은 마음을 따라 회전하여 가지가지의 의미로 큰 연기(緣起)를 이룬다비록 가지가지가 있지만 생멸이 없으며비록 생멸이 없지만 항상 일체의 연을 따름을 장애하지 않는다지금 생멸이 없는 것은 변하지 않음이고일체를 장애하지 않는 것은 연을 따름이다곧 이것은 연을 따름이 변하지 않음이다.

 

 

 八出魔網者若於塵上心計生滅違順有無緣慮等是處魔網也於塵上能觀察平等一味眞實而無生滅之見即出魔網經云衆魔者樂生死菩薩於生死而不捨故

8. ‘()의 그물에서 벗어남은 만약 티끌 위에서 마음으로 생멸(生滅)ㆍ위경(違境)과 순경(順境)]ㆍ유무[有無-유견(有見)과 무견(無見), 상견(常見)과 단견(斷見)]ㆍ연려(緣慮등을 따지는 것이 마의 그물에 갇히는 것이다티끌 위에서 평등한 한 가지 맛의 진실을 관찰할 수 있지만 생멸에 대한 견해가 없는 것이 마의 그물에서 벗어남이다.

경에서 이르기를 마의 무리들은 생사(生死)를 좋아하지만보살은 생사를 버리지 않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위경(違境)=괴로움을 느끼는 경계자기의 몸과 마음에 고통을 주어 성내게 하는 차별적인 현상.

*순경(順境)=제 뜻에 맞는 경계이에 의하여 탐욕의 번뇌가 생기게 됨몸과 마음에 알맞는 대경.

*유견(有見)=상견(常見). 세계와 개인존재(心身)가 항상 있다고 고집하는 견해.

*무견(無見)=단견(斷見). 세계와 개인존재의 끊겨 사라짐을 고집하는 견해.

*연려(緣慮)=바깥 사물(事物)을 보고 생각하는 마음.

 

 

 九銷藥病者如見塵大小生滅有無流動是病了大小無大小了生滅不生滅知有非有等是藥藥即非藥以無妄可斷故病亦非病以智深達故當知動心緣境即為病經云何謂病本謂有攀緣

9. ‘()과 병()을 없앰은 티끌의 대소(大小)ㆍ생멸(生滅)ㆍ유무(有無)ㆍ유동(流動·)을 보는 것은 병이다대소를 이해하여 알면 대소가 없고생멸을 이해하여 알면 생멸이 없으며유를 이해하여 알면 유가 아님을 아는 것 등이 약이다약은 곧 약이 아니니망념은 가히 끊을 것이 없는 까닭이며병 또한 병이 아니니지혜로 깊이 이해하여 알기 때문이다.

당연히 알라연의 경계에 움직이는 마음이 바로 병이다경에서 이르기를 무엇을 병의 근본이라 말하는가연에 이끌리는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十離解縛者謂於塵上執生滅之相是縛了生滅相不可得是解經云有慧方便解無慧方便縛但了相非相於縛常解若住無相解還是縛了妄無體縛即非縛縛既無縛解亦無解經云諸法無縛本解脫故諸法無解本無縛故

10. ‘풀고[묶임[]을 떠남은 이를테면티끌 위에서 생멸의 모습에 집착하는 것이 묶임이고생멸의 모습은 얻을 수 없음을 이해하여 아는 것은 풀림이다경에서 이르기를 지혜가 있으면 방편에서 풀리고지혜가 없으면 방편에 묶인다.”라고 하였다단지 모습이 모습 아님을 이해하여 알면 묶임에서 항상 풀리게 된다만약 모습 없음에 머물면 풀림이 도리어 묶임이 되고망념에 체가 없음을 이해하여 알면 묶임이 곧 묶임 아니다묶임에 이미 묶임이 없으므로 풀림 또한 풀림이 없다.

경에서 이르기를 모든 법은 묶임이 없으니 본래 해탈이기 때문이며모든 법은 풀림이 없으니 본래 묶임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然上諸義妄情增起緣於名相以心行迷識住生於有無而成結業所以病妄則藥妄舉空拳以止啼心通則法通引虛空而示遍既覺既悟何滯何疑消能所以入玄宗泯藥病而歸法界

그러나 이상 모든 뜻에서허망한 마음은 이름과 모습에 이끌리어 더욱 일어나고마음의 행위는 미혹한 식에 머물러 있음과 없음이라는 분별을 내어 업을 지어 만든다그런 까닭으로 병이 허망하면 약도 허망한 것이므로 빈주먹을 들어 울음을 그치게 하는 것이고마음이 통하면 법도 통하므로 허공에 이끌어서 두루 함을 보이는 것이다이미 깨달았으니 무슨 걸림이 있겠으며어떤 의심이 있겠는가능동(能動)과 소동(所動)을 버리고 종지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 약과 병을 없애고 법계로 돌아가라.

[출처] 화엄경의해백문-8|작성자 밝은 빛



화엄경의해백문-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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體用開合門第九

9. 본체와 작용을 열고 합하는 부문

 

 夫玄宗渺漭在緣起而可彰至道希夷入法界而無見故標體開用助道之品蓋多就性明緣差別之門不一合則法界寂而無二開乃緣起應而成三動寂理融方開體用

대저 현묘한 종지는 아득하고 넓지만 연기에서 드러날 수 있고지극한 도는 심오하여서 법계에 들어가도 보이지 않는다그러므로 체를 나타내고 용을 열어 보임에 도를 도우는 품이 많다본성에 나아가 연을 밝히니차별의 부문이 하나가 아니다합하면 법계가 적멸이라 둘이 없고나누면 연기에 응하여 셋을 이루고움직임[]과 고요함[]의 진리를 융합함에 이르러서 바야흐로 체와 용을 연다.

 

今就大況而言略分十義

지금은 큰 상황에 나아가 대략 열 가지로 나누어 말한다.

 

一顯人法 二世流布 三觀體用 四五分法身 五開三藏 

六即不即 七異不異 八明本末 九會三乘 十畢竟空

1. 사람과 법을 드러내다. 2. 세간에 유포하다. 3. 본체와 작용을 관하다.

4. 오분법신을 밝히다. 5. 삼장을 열어 보이다. 6. 그대로임과 그대로가 아님을 밝히다.

7. 다름과 다르지 않음을 밝히다. 8. 근본과 지말을 밝히다. 9. 삼승을 회통하다.

10. 필경공을 밝히다.

 

 

 初顯人法者謂能達塵者是人所了塵者是法即此人法相由顯現由人方能顯法由法以用有人論云以人知有法以法知有人離人何有法離法何有人今以人無相故方為顯法之人以法無性故方為成人之法二而不二不二而二也

1. ‘사람과 법[人法]을 드러냄은 이를테면티끌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사람이고티끌을 이해한 것은 법이다곧 이러한 사람과 법이 서로 말미암아 드러나 나타난다사람을 말미암아야 비로소 법을 나타낼 수 있고 법으로 말미암아야 쓰고 있는 사람이 있다.

논에서 이르기를 사람으로서 법이 있음을 알고법으로써 사람이 있음을 안다사람을 떠나서 어떤 법이 있겠으며법을 떠나 무슨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지금 사람의 모습이 없는 까닭으로 바야흐로 법의 사람을 드러내게 되고법이 본성이 없는 까닭으로 바야흐로 사람의 법을 이루게 된다사람과 법은 둘이지만 둘이 아니며둘이 아니지만 둘이다.

 

 

 二世流布者謂今見此塵名相大小是世流布而共說也然塵體全法無復種種差別全以用不異體是故存此假名經云一法有多名眞法中即無不失法性故流布於世間

2. ‘세간에 유포(流布)은 이를테면지금 이 티끌의 이름과 모습과 크고 작음을 봄이 세간에 유포하여 똑 같이 말하는 것이다그러나 티끌의 체는 온전한 법이므로 가지가지의 차별 이 없다온전한 작용[]이 다른 체가 아니기 때문에 이 빌린 이름이 있는 것이다.

경에서 이르기를 하나의 법에는 많은 이름이 있으나 참된 법 가운데에는 없다법의 성품을 잃지 않는 까닭으로 세간에 유포한다.”라고 하였다.

 

 

 三觀體用者謂了達塵無生無性一味是體智照理時不礙事相宛然是用事雖宛然恒無所有是故用即體也如會百川以歸於海理雖一味恒自隨緣是故體即用也如舉大海以明百川由理事互融故體用自在若相入則用開差別若相即乃體恒一味恒一恒二是為體用也

3. ‘()와 용()을 관함은 이를테면티끌이 생겨남이 없음ㆍ자성이 없음ㆍ한 가지 맛을 이해하여 아는 것이 체()이고지혜로 진리를 비추어 볼 때 현상의 모습이 분명한 것을 장애하지 않는 것이 용()이다.

현상이 비록 분명하나 항상 있는 것이 없으므로 작용이 바로 체이다마치 수많은 강이 모여서 바다로 가는 것과 같다진리가 비록 한 가지 맛이나 항상 스스로 연을 따르므로 체가 바로 용이다마치 큰 바다를 가지고 수많은 강을 설명하는 것과 같다진리와 현상이 서로 융통하여 융합하므로 체와 용이 자재하다만약 서로 들어간다면곧 용이 나누어져 차별되고만약 서로 그대로면 체는 항상 한 가지 맛이므로 항상 하나이면서 항상 둘이다이것이 체와 용이다.

 

 

 四明五分法身者謂塵空無所有即無非可防是戒身以塵無相心自不緣是定身了塵空寂是慧身由塵空無則不緣於有不住於相是解脫身由了塵體更無異解是解脫知見身身以依止為義謂智依法顯而得成立故為法身也

4. ‘오분법신(五分法身)을 밝힘은 이를테면티끌은 공하여 있는 것이 없으니막을 것이 없는 것이 계신(戒身)이고티끌은 모습이 없으니마음이 스스로 이끌리지 않는 것이 정신(定身)이며티끌이 공적함을 이해하여 아는 것이 혜신(慧身)이다티끌이 공하여 없으니곧 유에 이끌리지 않아 모습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 해탈신(解脫身)이고티끌의 체()을 이해하여 알아 다시 다른 이해가 없는 것이 해탈지견신(解脫知見身)이다몸은 의지하는 것으로써 뜻을 삼으니이를테면 지혜는 법을 의지하여 드러내어 이루어는 것이므로 법신(法身)이 된다.

 

 

 五開三藏者謂塵是法界體性及涅槃皆由大智所現而行照也即以文字記持塵處所現之理書之於簡為經即修多羅藏也謂塵處觀察體性不住名相隨順調伏令息諸惡是戒即毘奈耶藏也於塵上體用法智眞妄相對發智生解事方究竟是論即阿毘達磨藏也

5. ‘삼장(三藏-)을 열어 보임은 이를테면티끌의 법계ㆍ체()ㆍ성()ㆍ열반은 모두 큰 지혜로써 나타낸 것이며 비춤을 행하는 것이다.

바로 티끌에서 나타난 진리를 문자로 기록해 그것을 죽간에 써서 둔 것이 경인데곧 수다라장[經藏]이다티끌에서 체()ㆍ성()을 관찰하고 이름과 모습에 머무르지 않고차례에 따라 조복(調伏)시켜 모든 악을 쉬게 하는 것이 계()인데곧 비나야장[律藏]이다티끌 위에서 체()ㆍ용()ㆍ법()ㆍ지혜의 참됨과 허망함이 상대하여서 지혜를 내고이해를 내어 현상을 끝까지 밝혀내는 것이 논()인데곧 아비달마장[論藏]이다.

 

 

 六明即不即者如塵相圓小分齊無體唯法故說即也不礙塵相宛然故說不即也秖由塵相不即於法會通而言方為即也又由塵即法故是即不礙緣起是不即也

6. ‘그대로임[]과 그대로가 아님[不卽불즉]을 밝힘은 티끌의 둥글고 작은 모습의 영역은 체가 없고 오직 법인 까닭에 그대로이다라고 말하고티끌의 모습이 분명함을 장애하지 않는 까닭에 그대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단지 티끌의 모습이 법에서 그대로가 아니므로 말미암아 잘 모아 통하도록 해서 말하여야 바야흐로 그대로임이 된다또 티끌이 법 그대로인 까닭으로 말미암아 그대로이고 연기(緣起)를 장애하지 않으므로 그대로가 아님이다.

 

 

 七明異不異者謂塵之事相是異克體唯法是不異秖由法體不異即異義方成以不失體故秖由塵事差別即不異義方成以不壞緣起方言理也經云甚奇世尊於無異法中而說諸法異

7. ‘다름과 다르지 않음을 밝힘은 이를테면티끌 현상의 모습은 다름[]이고체를 끝까지 다하면 오직 법뿐인 것이 다르지 않음[不異]이다단지 법과 체가 다르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바로 다름의 뜻이 바야흐로 이루어지니다름이 본체를 잃지 않기 때문이다단지 티끌의 현상의 차별로 말미암아 다르지 않음의 뜻이 바야흐로 이루어지게 되고연기(緣起)를 무너뜨리지 않음으로써 바야흐로 진리라고 말한다.

경에서 이르기를 매우 기이하십니다세존이시여다름이 없는 법 가운데에서 모든 법의 다름을 말씀 하십니다라고 하였다.

 

 

 八明本末者謂塵空無性是本塵相差別是末末即非末以相無不盡故本亦非本以不礙緣成故即以非本為本雖空而恒有以非末為末雖有而恒空當知末即隨緣本即據體今體為用本用依體起經云從無住本立一切法

8. ‘근본(根本)과 지말(枝末)을 밝힘은 이를테면티끌은 공하여 자성이 없는 것이 근본[]이고티끌 모습의 차별은 지말[]이다지말은 바로 지말이 아니니모습으로써 다하지 않는 까닭이다근본 또한 근본이 아니니연으로 이룸을 장애하지 않는 까닭이다바로 아님으로 근본을 삼음으로써 비록 공이지만 항상 유이며지말이 아닌 것으로 지말을 삼으니비록 유이지만 항상 공이다.

마땅히 알라지말은 바로 연을 따른 것이고근본은 바로 체를 의거한 것임을.

지금 체는 용의 근본이 되고용은 체를 의지하여 일어난다.

경에서 이르기를 머무름이 없는 근본으로부터 일체의 법이 세워진다.”라고 하였다.

 

 

 九會三乘者謂見塵相空無所有然法是實據此見為小乘悟塵從緣息於緣慮據此見為中乘了塵無性無生空寂一味據此為大乘今法是一學者分三非以學三令法亦三非以法一令學亦一但人自三乘法非三也當知一即三乘所學之歸一也三即一乘隨應之機有三也

9. ‘삼승(三乘세 가지 탈 것)을 모음은 이를테면티끌의 모습은 공하여 있는 바가 없다그런데 법이 실재한다고 하는 이런 견해에 의거하면 소승(小乘)이다티끌이 연을 따름을 깨닫고 연()을 보고 생각하는 마음을 쉬는 이런 견해에 의거하면 중승(中乘)이다티끌은 자성이 없고 생겨남이 없고 공적한 한 가지 맛임을 이해하여 아는 이런 것에 의거하면 대승(大乘)이 된다.

지금의 법은 일승(一乘)인데 배우는 자가 삼승(三乘)으로 나누었다배우는 것으로써는 세 가지 탈 것이 아니므로 법으로 하여금 또한 셋이 아니게 하고법은 하나가 아니므로 배우게 하게끔 또한 하나가 아니게 한다다만 사람이 세 가지 탈 것을 쫒았으나 법이 셋인 것은 아니다마땅히 알라일승은 바로 삼승이니배운 것은 일승으로 돌아간다삼승이 바로 일승이므로 응하는 근기를 따라 삼승이 있는 것임을.

 

 

 十畢竟空者謂塵不泯事相而常空寂是為畢竟空也今事相雖存即相不可得名亦不可得理義不可得以一切不可得名為畢竟空非無表說也然畢竟空空時不礙塵法宛然塵法宛然恒畢竟空

10. ‘필경공(畢竟空)을 밝힘은 이를테면티끌은 현상의 모습을 없애지 않지만 항상 공적하므로 필경공이다지금 현상의 모습이 비록 존재하지만 바로 모습을 얻을 수 없고이름 또한 얻을 수 없으며진리와 뜻도 얻을 수 없다일체를 얻을 수 없음으로 이름 하여 필경공이라 하지만 말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필경공이 공할 때에도 티끌의 법이 분명함을 장애하지 않고 티끌의 법이 분명하나 항상 필경공이다.

 

*필경공(畢竟空)=허망한 견해를 깨뜨리기 위하여 이상(理想)을 공이라고 한다그러나 이 공은 유()에 상대하는 단공(單空)이 아니고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상대적인 공을 다시 공한 절대 부정의 공이 일체의 공까지도 공하였다는 것을 필경공이라 함.

 

 然上諸義法體不空緣生非有非有之有即有遍於十方不空之空即空成於一切用開差別諸法宛而星羅體合事銷多門寂而雲斂

그러나 이상의 모든 뜻은 법의 체는 공하지 않고연으로 생겨난 것은 유가 아니다유가 아닌 유는 유 그대로 시방에 두루 하고공이 아닌 공은 공 그대로 일체를 이룬다작용이 차별되게 열리어 모든 법이 분명하지만 별처럼 널려져 있고체는 합하고 현상은 녹이어 여러 부문이 공적하지만 구름처럼 거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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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의해백문-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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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學嚴成門第七

7. 닦고 배워서 장엄을 이루는 부문

  夫菩提大寶性起靈珠既琢既磨資智慧而觀察為調為舒藉解行以嚴成

대저 보리의 큰 보배와 성기(性起)의 신령스런 구슬을 다듬고 갈았으니지혜를 의지하여 관찰하고고르고 폈으니 이해와 행을 빌려 장엄을 이룬다.

今總舉大綱粗分十義

지금은 총괄적으로 중요한 것을 들어 열 가지 뜻으로 나눈다.

一法供養 二弘六度 三修解行 四常莊嚴 五明智慧 

六崇善根 七了夢幻 八曉鏡像 九達五蘊 十不共法

1. 법공양을 밝히다. 2. 육바라밀을 널리 펼치다. 3. 이해와 실행을 닦다.

4. 항상 장엄하다. 5. 지혜를 밝히다. 6. 선근을 받들다.

7. 환과 꿈임을 이해하다. 8. 거울 속의 영상임을 깨닫다. 9. 오온을 이해하다.

10. 불공법을 밝히다.

 初法供養者謂以無生心中施一切珍寶乃至微塵皆能攝於法界即以此法界一塵而作供養以此供養乃至遍通三世一切諸如來前無不顯現彼諸如來無不攝受何以故由塵即攝法界是理與佛體性法界相應是故遍至一切佛所名廣大供養無空過者經云諸供養中法供養勝

1. ‘법공양을 밝힘은 이를테면생김이 없는 마음으로 일체의 진귀한 보배와 작은 티끌에 이르기까지 베풀어 주면 모두 법계에서 거둘 수 있으니바로 이 법계의 하나의 티끌로써 공양을 하는 것이다이 공양으로써 삼세의 일체 모든 여래 앞에 두루 통하여 나타나지 않음이 없으며저 모든 여래가 섭수하지 않음이 없다.

무슨 까닭인가티끌이 법계를 섭수하는 이치는 부처 체와 성품과 법계와 더불어 서로 응하기 때문이다이런 까닭으로 두루 일체 부처 처소에 이르는 것을 이름 하여 광대한 공양에는 헛되이 보냄이 없다라고 한다.

경에서 이르기를 모든 공양 가운데 법공양이 가장 뛰어나다라고 하였다.

 二弘六度者如見塵緣起無盡理事中說施一切眾生是檀波羅蜜又塵相空無即無非可防無惡可斷是尸羅波羅蜜又塵相空無所有則緣心不起息諸惱害是羼提波羅蜜又塵無體時執心自盡離於妄念是精進波羅蜜經云若能心不妄精進無有涯又以塵無性心亦自寂是禪波羅蜜經云不見心相是名正定又塵緣起無生無相空寂之理是智慧波羅蜜經云色不生是般若波羅蜜生常以如理六度修明其心亦不礙事六度饒益衆生理事不二為實行也不以理中具六而礙事六但了事為理也

2. ‘육바라밀을 널리 펼침은 예컨대티끌을 봄에 연기(緣起)의 다함이 없는 진리와 현상 가운데에서 일체중생에게 말하여 베푸는 것이 보시(布施)바라밀이다또 티끌의 모습이 공하여 없으므로 막을 것이 없고악을 끊을 것이 없음이 지계(持戒)바라밀이다또 티끌의 모습은 공하여 있는 것이 없으므로 마음에 이끌림이 일어나지 않고 모든 뇌()와 해()를 쉬는 것이 인욕(忍辱)바라밀이다또 티끌의 체가 없을 때 집착하는 마음이 저절로 다하여 허망한 생각을 여의는 것이 정진(精進)바라밀이다경에서 이르기를 만약 마음이 망령되지 않을 수 있다면 정진에는 끝이 있지 않다라고 하였다.

또 티끌은 자성이 없으므로 마음 또한 스스로 고요한 것이 선정(禪定)바라밀이다경에서 이르기를 마음의 모습을 보지 않는 것을 바른 삼매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또 티끌은 연기(緣起)이고 생김이 없음이고 모습이 없음이므로 공적한 진리가 지혜(智慧)바라밀이다경에서 이르기를 물질을 내지 않는 것에서 반야바라밀이 나온다.”라고 하였다.

항상 진리에 맞는 육바라밀로 그 마음을 닦아 밝히고 또한 현상에도 걸림이 없는 육바라밀로 중생을 요익하게 하니진리와 현상이 둘이 아님이 참된 행이 된다진리 가운데 갖추어진 육바라밀이 현상의 육바라밀을 장애하지 않으므로 단지 현상이 진리가 됨을 이해하여 알 뿐이다.

*(): (1) 俱舍宗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집착하여 다른 이의 용서를 받지 않고 스스로 고민하는 심리작용을 말합니다. (2) 唯識宗에서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놀라게 하며 어지럽게 하는 마음

*(): (1) 俱舍宗에서는해()란 다른 이에게 위해(危害)를 가하고자 하는 심리 작용입니다. (2) 唯識宗에서는 살심으로 상대를 때리거나 결박협박하려는 마음작용이다.

 三修解行者謂於塵處悟達理事色空無性之義是解也理解在心是智也行通為行若行心作眞解作俗解非名解也不作一切解解心無寄是為大解也又若起心作凡夫行作聖人行亦非行也不作一切行行心無寄是名大行行非是過由心起作解亦非過由心住著常無住著希望乃是眞解行也

3. ‘이해[]와 행()을 닦음은 이를테면티끌에서 진리ㆍ현상ㆍ색ㆍ공이 자성이 없는 뜻을 깨달아 아는 것이 이해이고진리가 마음에 있음을 아는 것이 지혜이다.

행을 통하여 행하게 되는데만약 행하는 마음을 지어 진리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에만 머문다면 세간의 이해를 하는 것이므로 이해라 하지 않는다일체의 행을 짓지 않아서 행하는 마음이 의존함이 없음이 크게 이해함이다.

또 만약 마음을 일으켜 범부의 행을 짓거나 성인의 행을 짓는다면 역시 행이 아니다일체의 행을 짓지 않아서 행하는 마음이 의존함이 없음이 크게 하는 행이다.

행이 그릇되어 잘못된 것은 마음을 일으켜 지었기 때문이고이해 또한 그릇되어 잘못된 것은 마음에 머물러 집착하기 때문이다항상 머물러 집착하거나 바라는 것이 없음이 참된 이해와 행이다.

 四常莊嚴者如以智心觀察全塵法界緣起現前無有分別是為嚴淨佛土又修戒願理事解行圓明全塵法界理智圓通功德顯示是為莊嚴佛身又說示塵體緣起主伴帝網微細曉示一切是為轉淨法輪於一切處皆是莊嚴不礙七寶以用莊嚴

4. ‘항상 장엄(莊嚴)은 예컨대지혜의 마음으로 온전한 티끌의 법계연기가 앞에 나타남을 관찰하지만 분별이 없음이 부처 국토를 장엄하여 깨끗하게 함이다.

또 지계ㆍ원력ㆍ진리ㆍ현상ㆍ이해ㆍ행을 닦아 원만하게 밝아져 온전히 티끌 법계의 진리의 지혜가 원만하게 통하고 공덕을 드러내어 나타냄이 부처 몸[佛身]을 장엄함이다또 티끌의 체ㆍ연기ㆍ주반ㆍ제망ㆍ미세를 말하여 나타내는데일체를 나타내어 보여 알아듣게 일러주는 것이 청정한 법륜을 굴리는 것이 된다일체의 곳을 모두 장엄하는데일곱 가지 보배를 써서 장엄하는데 걸림이 없다.

 五明智慧者謂塵從緣成假持似有所現此達有之心是智即此假持幻有畢竟空無所有此觀空之心是慧若住於空即失有義非慧也若住於有即失空義非智也今空不異有有必全空是為智慧也要由名相不存方名智慧若存名相即非智慧也由不存即是存存即是不存也

5. ‘지혜를 밝힘은 이를테면티끌은 연으로부터 이루어져 거짓으로 버티고 있는 듯이 나타낸 것이다이러한 유()를 이해하여 아는 마음이 지혜(-작용하는 슬기)이다바로 이러한 거짓으로 버티어 환()으로 있는 것은 끝내는 공이므로 있는 것이 없다이러한 공을 관찰하는 마음이 혜(-근본슬기)이다.

만약 공에만 머물면 바로 유()의 뜻을 잃게 되므로 혜()가 아니며만약에 유()에만 머물면 공의 뜻을 잃게 되므로 지()가 아니다.

지금 공은 유와 다르지 않아서 유는 반드시 온전한 공이다이것이 지혜인데반드시 이름과 모습이 있지 않아야만 바야흐로 지혜라고 한다만약 이름과 모습이 존재한다면 지혜가 아닌 것이다존재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바로 존재하고 존재함이 바로 존재하지 않음이다.

 六崇善根者謂顯塵是法界涅槃及以解行此皆從塵處所顯發是故即以塵為善根也常觀察修習是為於塵處而種善根而長養之所有一切塵毛剎海佛及衆生常應如是也

6. ‘선근(善根)을 받들다는 이를테면티끌은 법계이고 열반이며 이해와 행임을 나타내는데이러한 것들은 모두 티끌에서 나타나 나온 것이다이러한 까닭으로 바로 티끌로써 선근(善根)을 삼는다항상 관찰하고 닦고 익히는 것이 티끌에서 선근을 씨를 심고 기르는 것이 된다일체에 있는 티끌과 터럭국토와 바다부처와 중생에 항상 응함이 이와 같다.

 七了夢幻者謂塵相生起迷心為有觀察即虛猶如幻人亦如夜夢覺已皆無今了虛無名不可得相不可得一切都不可得是為塵覺悟空無所有

7. ‘()과 꿈임을 이해하여 안다는 이를테면티끌의 모습이 생겨 미혹한 마음이 있게 되지만 관찰해 보면 텅 빈 것이다마치 헛보이는 사람 같고또한 꿈과 같아서 깨고 나면 모두 없다이제 텅 비어 없음을 이해하여 알았으니이름을 얻을 수 없고 모습도 얻을 수 없으며 일체를 다 얻을 수 없다이것이 티끌이 공하므로 있는 것이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八曉鏡像者謂塵相大小但似有顯現竟取不可得故知塵即虛無如鏡中之像經云觀察諸法如電光如水月鏡中之像似有非有取不可得故以塵空寂不礙假相宛然於法界中假實二義但由影像也

8. ‘거울 속의 영상(映像)임을 깨달음은 이를테면티끌 모습의 크고 작음은 단지 거짓으로 있음[似有]이 나타난 것이므로 끝내는 취할 수 없다그러므로 알라티끌이 텅 비어 없음이 거울 속 영상과 같은 것임을.

경에서 이르기를 모든 법을 관찰해 보면마치 번개 불과 같고물속의 달과 같으며거울 속 영상과 같아서 있는 것 같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그러므로 티끌은 공적하지만 거짓 모습이 분명하여 걸림이 없다법계 가운데 거짓과 실제의 두 가지 뜻은 다만 영상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九達五蘊者如塵質礙為色心領納是受現塵假相於心是想心緣塵取捨是行辨了於塵是識今了塵無體緣慮自亡經云三世五蘊法說名為世間斯由虛妄有無即出世間

9. ‘오온(五蘊)을 이해하여 앎은 예컨대티끌의 성질에 걸림이 있음은 색()이고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수()이고티끌의 거짓 모습이 마음에 나타난 것이 상()이고마음이 티끌에 이끌리어 버리고 취하는 것이 행()이며티끌을 가려내는 것이 식()이다이 티끌이 체가 없음을 이해하여 알면연으로 인하여 생각하는 것이 저절로 없어진다.

경에서 이르기를 삼세의 오온법이 세간(世間)인데이것은 허망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니허망이 없으면 세간에서 벗어난 것이다라고 하였다.

 十不共法者謂二乘凡夫見塵有相有體但見一塵而無自在業用今則不爾不與彼同此要達塵無體證之以成佛土依塵修起智慧莊嚴法身然小恒容廣大世界一塵常能普攝一切是為不共法也

10. ‘불공법(不共法)을 밝힘은 이를테면이승(二乘)의 범부(凡夫)는 티끌을 모습이 있고 체가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단지 하나의 티끌만을 볼 뿐 자재한 업()의 작용이 없다.

지금은 그렇지 않으므로 저들과 같지 않다반드시 티끌이 체가 없음을 알고그것을 증득하여 부처 땅[佛土]을 이루는 것으로써 티끌에 의지하여 닦아 지혜를 일으키고 법신(法身)을 장엄한다그리하여 작은 것이 광대한 세계를 항상 받아들이니하나의 티끌에서도 항상 일체를 두루 거둘 수 있다이것이 불공법(不共法-다른 것과 같이 하지 않는 법)’이다.

 然上諸義體雖空淨資行願以嚴真性縱包含依智慧而開顯是故體稱本有行約修生生即不生還同本體體亦非體復等修生何曾體而礙生生而失體得意亡言千里跬步豈與夫懵道之子同年而語哉

그러나 이상의 모든 뜻은 체가 비록 공하고 청정하지만 행()과 원()을 도와서 진리를 장엄하고본성이 비록 일체를 포함하고 있지만 지혜를 의지하여 널리 드러난다이런 까닭으로 체는 본유(本有-본래 있는 성질의 덕)에 들어맞고수행(修行)은 수생(修生-수행한 공력에 의하여 생김)을 따른 것이다.

태어남이 곧 태어남이 아니므로 도리어 체와 같고체는 또한 체가 아니므로 다시 수생(修生)과 같은데어찌 일찍이 본체가 태어남을 장애하겠는가태어나지만 체를 잃지 않으므로 뜻을 얻으면 말을 잃게 된다천리가 멀지 않은데어찌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와 함께 어울려 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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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의해백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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體用顯露門第五

5. ()와 용()을 드러내는 부문

 夫法體圓通眞源滿徹顯則十方洞鑒示乃一切咸彰指微塵以覩玄宗舉纖毫而觀佛境

대저 법의 체는 원융하게 통하고진리의 근원은 빈틈없이 통한다나타나면 곧 시방을 밝게 비추고나타냄에 일체가 모두 드러나니작은 티끌을 꼭 집어서 현묘한 가르침을 보이고가는 터럭을 거론(擧論)하여 부처의 경계를 관찰한다.

今達妄開真略分十義

여기서는 허망을 알고 진실을 열어 보이는데대략 열 가지 뜻으로 나눈다.

一顯光明 二了境智 三明生了因 四明佛境 五辨因果 

六明佛性 七表性德 八自心現 九出世間 十托生解

1. 광명을 드러내다. 2. 경계와 지혜를 이해하다.

3. 생인과 요인을 밝히다. 4. 부처 경계를 밝히다.

5. 인과를 말하다. 6. 불성을 밝히다.

7. 성품의 덕을 나타내다. 8. 자기의 마음이 나타낸 것임을 밝히다.

9. 세간에서 벗어나다. 10. 사물에 의탁하여 이해를 내다.

 初顯光明者謂見塵中法界真如理事之時顯了分明此是智慧光明照也若無智光則理事不顯但見法時是心光明由積智功圓是故放一光明則法界無不顯示常觀察一切法界是為放光明照一切也

1. ‘광명을 드러냄은 이를테면티끌 가운데 있는 법계ㆍ진여ㆍ진리와 현상을 볼 때드러남이 분명한데 이것은 지혜의 광명으로 비춘 것이다만약 지혜의 광명이 없다면 진리와 현상이 드러나지 않는다단지 법을 볼 때이 마음의 광명뿐이니 쌓아올린 지혜의 공덕이 원만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하나의 광명을 놓으면 법계가 나타나 드러내지 않음이 없다항상 일체의 법계를 관찰하니이것은 광명을 놓아 일체를 비추게 되는 것이다.

 二了境智者如一塵圓小事相是世諦了塵無生無性是眞諦彼眞俗二諦是所依之境此貫達之心是能依之智此智於境無復能取所取二種分別何以故今智由法成時方得言智離法則無能分別之智法由智顯時方得言法離智亦無所分別之境以心智寂故雖流照而常安由法隨緣故雖空寂而恒用

2. ‘경계와 지혜를 이해함은 예컨대한 티끌의 둥글고 작은 현상의 모습이 속제(俗諦)이고티끌이 생김이 없는 것이며 자성이 없는 것임을 이해한 것은 진제(眞諦)이다저 진제와 속제의 두 가지 진리는 의지하는 경계이고이 꿰뚫어 통달하는 마음은 의지할 수 있는 지혜이다이 지혜는 경계에 대하여 다시 능취(能取-능동으로 동작하여 취하는 것)와 소취(所取-움직이는 것으로서 동작을 취하는 것)라는 두 가지 분별이 없다.

왜냐하면지금은 지혜가 법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므로 비로소 지혜라고 말할 수 있다법을 떠나면 곧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없고법이 지혜로 말미암아 드러날 때 비로소 법이라 말할 수 있다지혜를 떠나면 또한 분별할 경계가 없고마음의 지혜가 공적하므로 비록 비추지만 항상 평안하고법이 연을 따르기 때문에 비록 공적한 까닭으로 비록 널리 비추지만 항상 평안하고법이 연을 따르는 까닭으로 말미암아 비록 공적(空寂)하지만 항상 작용한다.

 三明生了因者謂塵體空寂緣起法界之義由智方顯是了因見塵體已修於解行生起力用是生因然生即無生還同法體了亦非了豈等緣生生之與了無有差別生則約行了則據體無體即體了則無生體即無體生還為了契同一際無所分別

3. ‘생인(生因)과 요인(了因)을 밝힘은 이를테면티끌의 체는 공적한 연기법계라는 뜻인데지혜로 말미암아 비로소 드러난 것이 요인(了人)이다티끌의 체를 보고 나서 이해와 행에 대하여 닦아 작용하는 힘을 일으키는 것은 생인(生因)이다.

그런데 생김은 이 곧 생김이 없음이니 도리어 법의 체와 같고요인 또한 요인이 아닌데 어찌 연이 생기는 것과 같겠는가생인과 요인은 차별이 없으니생인은 행의 측면이며요인은 체를 근거로 한 것이다체가 없음이 바로 체이므로 요인은 곧 생인이 없고체는 곧 체가 없음이기 때문에 생인이 도리어 요인이다틀림없이 서로 꼭 들어맞아 동일한 것이므로 분별할 것이 없다.

 四明佛境者謂塵體不可得此不可得是佛得塵相無分齊無可依此無依是佛依塵體不生此不生是佛生塵無分別是佛分別由無得無依無生方能建立一切法又塵全見更不可見乃至不可聞皆是佛見聞經云所見不可見所聞不可聞

4. ‘부처 경계를 밝힘은 이를테면티끌의 체는 얻을 수 없는데이 얻을 수 없는 것이 부처의 얻음이다티끌의 모습은 영역이 없고 의지함이 없는데이 의지함이 없는 것이 부처의 의지함이다티끌의 체는 태어남도 없는데이 태어남이 없는 것이 부처의 태어남이다티끌은 분별이 없는데이것이 부처의 분별이다.

얻음도 없고 의지함도 없으며 태어남도 없으므로 말미암아 바야흐로 일체의 법을 만들어 세울 수 있다또 티끌을 온전히 봄에 다시 볼 수가 없으며나아가서 들을 수 없음 이르기까지 모두 부처님의 보고 들음이다.

경에서 이르기를 보는 것도 볼 수 없으며듣는 것도 들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五辯因果者塵即是緣起事相現前為因即事體空不可得是果果不異因全以因滿稱為果也由因不異果全以果圓稱之為因也若因不得果果亦非果也若果不得因因亦非因也皆同時成立無別異故是故初發心時便成正覺成正覺已乃是初心經云初發心時便成正覺悉與三世諸如來等

5. ‘인과(因果)를 말함은 티끌이 바로 연을 일으키어 현상의 모습으로 앞에 나타난 것이 인()이고바로 현상의 본체는 공하여 얻을 수 없는 것이 과()이다과는 인과 다르지 않으므로 온전히 인이 가득한 것을 과()라 하고인은 과와 다르지 않으므로 온전히 과가 원만한 것이 인이다만약 인이 과를 얻지 못한다면 과 또한 과가 아니다만약 과가 인을 얻지 못한다면 인 또한 인이 아니다모두 동시에 이루어지니 구별에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처음 마음을 낼 때 곧 바로 정각을 이루는 것이며정각을 이루고 나서 처음 마음을 내는 것이다.

경에서 이르기를 처음 마음을 낼 때에 곧 바로 정각을 이루니모두 삼세의 모든 여래와 더불어 똑같다라고 하였다.

 六明佛性者謂覺塵及一切法從緣無性名為佛性經云三世佛種以無性為性此但一切處隨了無性即為佛性不以有情故有不以無情故無今獨言有情者意在勸人為器也常於一塵一毛之處明見一切理事無非如來性是開發如來性起功德名為佛性也

6. ‘불성(佛性-부처 성품)을 밝힘은 이를테면티끌 및 일체의 법은 연을 따른 것이므로 자성이 없음을 깨달은 것을 불성(佛性)이라 한다.

경에서 이르기를 삼세의 부처 종자는 자성이 없는 것으로 성품(性品)을 삼는다.”라고 하였다이것은 단지 모든 곳에 자성이 없음을 이해함을 따라서 부처 성품을 삼은 것일 뿐이지유정물(有情物)이므로 부처 성품이 있고 무정물(無情物)이기 때문에 부처 성품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오직 유정물만을 말한 것은 사람들에게 권하여 근기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항상 하나의 티끌하나의 터럭에서 일체의 진리와 현상을 분명히 보면 여래 성품 아님이 없다여래 성품을 일으키는 공덕을 열어내는 것을 불성(佛性-부처 성품)이라 한다.

 七表性德者

7. ‘성품의 덕을 나타냄

問塵是有耶答是非有之有如水月鏡像經云非有是有

<질문티끌은 있는 것인가?

<대답있지 않으면서 있는 것이니물에 비친 달거울 속에 비친 모습과 같다그러므로 경에서 이르기를 있지 않는 것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塵是無耶答是有之非有空無性也經云有是非有

<질문티끌은 없는 것인가?

<대답있으면서 없는 것이니공이어서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그러므로 경에서 이르기를 있는 것이 있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塵是亦有亦無耶答從緣生故有無自性故空空有一際自在成也論云以有空義故一切法得成

<질문티끌은 있기도 하고 또한 없기도 한 것인가?

<대답연을 따라 생긴 까닭으로 있는 것이고자성이 없어 공인 까닭에 공()과 유()가 하나로써 자재하게 이루어진다()에서 이르기를 공의 이치가 있기 때문에 일체의 법을 이룰 수 있다라고 하였다.

問塵是非有非無耶答有相空相俱不可得也互相奪盡無所成立今此性德但無執著不礙分別論云若因有與無亦遮亦應聽離言心不著是則無有過

<질문티끌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가?

<대답유의 모습과 공의 모습 둘 다 얻을 수 없는 것이니서로 빼앗아 버리면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다이 성품의 공덕은 단지 집착이 없는 것이지만 분별에 걸림이 되지 않는다.

()에서 만약 유와 무로 인한다면 가로막기도 하고 또한 응하여 듣기도 하는데말을 여의고 마음에 집착하지 않으면 허물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八明自心現者如見此塵時是自心現也今塵既由心現即還與自心為緣終無心外法而能為心緣以非外故即以塵為自心現也離心之外更無一法縱見內外但是自心所現無別內外此無過也

8. ‘자기의 마음이 나타낸 것을 밝힘은 예컨대티끌을 볼 때에 이것은 자기의 마음이 나타낸 것이다티끌이 이미 마음에서 나타났으므로 말미암아 도리어 자기의 마음과 더불어 연이 된다결국 마음 바깥에는 법은 없으며 마음이 연이 된다밖이 아닌 까닭에 바로 티끌로써 자기의 마음이 나타낸 것이다마음을 떠난 바깥에는 다시금 한 법도 없다설사 안과 밖을 볼지라도 단지 자기의 마음이 나타낸 것이니 달리 안과 밖이 없다이것은 잘못이 없다.

 九出世間者謂見塵色相作實解即為處世間今塵相空無所有是出世間也經云三世五蘊法說名為世間斯由虛妄有無分別則出世間也

9. ‘세간에서 벗어남은 이를테면티끌의 색상(色相)을 보고 실제(實際)라고 이해하면세간의 처지가 된다티끌의 모습을 공하여 있는 것이 없는 것으로 보면세간에서 벗어난 것이다경에서 이르기를 삼세의 오온법(五蘊法)을 세간이라 한다이는 허망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니분별이 없으면 곧 세간에서 벗어난 것이다라고 하였다.

 十托事生解者如見塵相是事於事處貫達即無生之理現前是謂托事生解也又別托外物以表此法表塵法自在故以塵表之顯法潤益故以雲雨表之顯塵性德深廣故以海表之如是無量更有所表各異以智推之

10. ‘사물에 의존하여 이해함은 이를테면티끌의 모습이 현상임을 보고 현상이 있는 곳에서 꿰뚫어 이해하여바로 생기는 것이 없는 이치가 앞에 나타난 것을 사물에 의존하여 이해함이라 한다또 바깥 사물에 특별히 의존하여 이러한 법을 나타내기도 한다티끌의 법이 자재함을 나타내는 까닭에 티끌로써 나타내고법이 늘어남을 나타내는 까닭으로 구름과 비로써 나타내고티끌의 성품의 공덕이 깊고 넓음을 나타내는 까닭으로 바다로써 나타내니이와 같은 것이 한량없다다시금 나타내는 것이 각각 다르니지혜로써 미루어 생각해 보라.

 然上諸義惑盡智生相亡體顯差別緣起方騰性海之波一味眞源用顯隨緣之鏡會眞之道失何遠哉

그러나 이상의 모든 뜻은미혹이 사라지면 지혜가 생기고모습이 없어지면 체가 나타난다차별된 연을 일으키는 것이 바야흐로 본성의 바다의 파도에서 일어나고한 가지 맛인 참된 근원이 연을 따르는 거울에 작용하여 나타나는데참된 길을 만나는 것이 어찌 멀다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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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의해백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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差別顯現門第六

6. 차별되게 나타나는 부문

 夫滿教難思窺一塵而頓現圓宗叵測觀纖毫而頓彰然用就體分非無差別之勢事依理顯自有一際之形

대저 가득한 가르침은 생각하기 어렵지만 하나의 티끌만 보아도 문득 나타나고원융한 종지는 헤아리기 어렵지만 가는 터럭을 관찰하여도 단박 드러난다그러나 용의 측면에서 체를 나누면 차별 없는 형세가 아니고현상은 진리에 의해 나타난다본래 있는 하나의 모습이다.

今且略舉大綱以顯十義

지금 우선 중요한 것을 간략히 거론하여 열 가지 뜻을 나타낸다.

   一明止觀 二開二諦 三出入定 四通性起 五辨六相 

六顯帝網 七鑒微細 八通逆順 九定主伴 十登彼岸

1. 지와 관을 밝히다. 2. 이제를 열어 보이다. 3. 삼매에 들고 나오다.

4. 성기를 알아보다. 5. 육상을 드러내다. 6. 제망중중을 나타내다.

7. 미세를 살펴보다. 8. 거스름과 따름을 통하다. 9. 주인과 손님을 정하다.

10. 피안에 오르다.

 初明止觀者如見塵無體空寂之境為止照體之心是觀今由以無緣之觀心通無性之止體心境無二是止觀融通由止無體不礙是心故是以境隨智而任運由觀心不礙止境故是以智隨法而寂靜由非止觀以成止觀由成止觀以非止觀二而不二不二而二自在無礙

1. ‘()와 관()을 밝힘은 예컨대티끌은 체가 없어 공적한 경계로 보면 지()이고체를 비추는 마음은 관()이다지금 이끌림 없이 관찰하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자성이 없는 지()의 체를 통하면 마음과 경계가 둘이 아니어 지와 관이 원융하게 통한다.

()는 체가 없어 관찰하는 마음을 장애하지 않는 까닭으로 경계는 지혜를 따라서 마음대로 운용할 수 있다관찰하는 마음이 지의 경계를 장애하지 않는 까닭으로 지혜가 법을 따르지만 아주 고요하고 고요하다.

()와 관()이 아님으로 말미암아 지와 관을 이루고지와 관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지와 관이 아니다둘이지만 둘이 아니며둘이 아니지만 둘이어서 자재함에 걸림이 없다.

 二開二諦者謂如見塵相圓小幻有現前是世諦了塵無體幻相蕩盡是眞諦今此世諦之有不異於空相方名世諦又眞諦之空隨緣顯現不異於有相方名眞諦又空依有顯即世諦成眞諦也由有攬空成即眞諦成俗諦也由非眞非俗是故能眞能俗即二而無二不礙一二之義歷然經云於解常自一於諦常自二通達此無礙眞入第一義

2. ‘이제(二諦)를 열어 보임은 이를테면티끌의 모습을 보고 둥글고 작은 환()으로 앞에 나타나 있는 것이 속제(俗諦)이고티끌의 체가 없음을 이해하여 환()의 모습이 없어진 것은 진제(眞諦)이다.

지금 이 속제의 유()가 공()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야 비로소 속제라고 한다또 진제의 공이 연을 따라 나타나서 유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야 비로소 진제라고 한다또 공은 유를 의지하여 나타나므로 바로 속제 그대로 진제를 이루고유는 공을 잡아서 이루어지므로 바로 진제 그대로 속제를 이룬다진제도 아니고 속제도 아니기 때문에 진제일 수 있고 속제일 수 있다바로 둘이면서 둘이 아니고하나와 둘이 장애하지 않는 뜻이 분명하다.

경에서 이르기를 이해의 측면에서는 항상 본래 하나이지만진리의 측면에서는 항상 본래 둘인 것이다이러한 걸림 없음을 통달하면 참으로 제일의(第一義)에 들어간다.”라고 하였다.

 三出入定者謂見塵性空即是十方一切眞實之理名為入定也然見此塵無性空理之時乃是十方之空也何以故由十方之心見於一塵是故全以十方為塵定亦不礙事相宛然是起然起之與定俱等虛空界但以一多融通同異無礙是故一入多起多入一起差別入一際起一際入差別起悉皆同時一際成立無有別異當知定即起起即定一與一切同時三昧起一切塵中入正受一毛端頭三昧起

3. ‘삼매에 들고 나옴은 이를테면티끌의 본성이 공적함을 보고 바로 시방 일체의 진실한 진리를 보는 것을 삼매에 든다.’라고 한다그러나 이 티끌이 자성이 없어 공한 진리임을 볼 때시방이 공한 까닭은 무엇인가시방의 마음으로 하나의 티끌을 보기 때문이니이런 까닭으로 온전히 시방으로서 티끌의 삼매가 된다.

또한 현상의 모습이 분명하여 장애하지 않는 것이 삼매에서 일어남이다그런데 삼매에서 일어남이 모두 허공계와 같다단지 하나와 여럿이 융통하므로 같고 다름에 걸림이 없다.

이런 까닭으로 하나에서 들어가 여럿에서 일어나고 여럿에서 들어가 하나에서 일어나며차별로 들어가 같은 곳에서 일어나고 같은 곳에서 들어가 차별에서 일어나니모두 다 동시이며 한꺼번에 이루어져 다름이 없다.

마땅히 알라선정에 들어감이 바로 선정에서 나옴이고선정에서 나옴이 바로 선정에 들어감이며하나와 일체가 동시에 삼매에서 일어나며일체의 티끌 가운데에서 바른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상태에서 삼매에 들고하나의 터럭 끝에서 삼매가 일어나는 것임을.

 

 四通性起者謂塵體空無所有相無不盡唯一眞性以空不守自性即全體而成諸法也是故而有萬像繁興萬像繁興而恒不失眞體一味起恒不起不起恒起良以不起即起起乃顯於緣生起即不起不起乃彰於法界是故此塵即理即事即滅即生皆由不起而起也此塵亦空理亦壞亦隱由起而不起是故終日繁興而無施設也

4. ‘성기(性起)를 알아봄은 이를테면티끌의 본체는 공하여 있는 것이 없으며모습이 다하지 않음이 없어 오직 하나의 참된 성품일 뿐이다.

공은 자성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바로 온전한 본체이며 모든 법을 이룬다이런 까닭으로 만 가지 모양이 무성하게 일어난다만 가지 모양이 무성하게 일어나나 항상 참된 체의 한 가지 맛을 잃지 않는다일어나지만 항상 일어나지 않으며 일어나지 않지만 항상 일어난다.

진실로 일어나지 않음이 바로 일어남으로써 일어남은 연이 생겨남으로 나타나고일어남이 바로 일어나지 않으며 일어나지 않음이 법계에 뚜렷하다이런 까닭으로 이 티끌은 진리 그대로이고현상 그대로이며사라짐 그대로이고 생겨남 그대로여서 모두가 일어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이 티끌은 또한 공하므로 진리가 무너지기도 하고 숨기도 한다일어남으로 말미암아 일어나지 않는 까닭으로 종일토록 무성하게 일어나되 베풀어 차리는 것이 없다.

 五顯六相者今塵全以理事解行教義以成緣起此為總也由塵總義現前方於塵處辨體用解行教義各各差別是別也此一塵處所辨諸義各各無性互不相違是同也此一塵處諸義體用性相各各差別是異也此一塵處諸義現前塵法方立是成也此一塵處諸義各各顯自性相終不相成相作是壞也一切諸法皆具此六相緣起方成若不如此則失六義也

5. ‘육상(六相)을 드러냄은 지금 티끌이 온전히 진리ㆍ현상ㆍ이해ㆍ실행ㆍ가르침ㆍ뜻으로 연기(緣起)를 이루는 것이 총상(銃相)이다티끌의 총상의 뜻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티끌에서 본체ㆍ현상ㆍ이해ㆍ실행ㆍ가르침ㆍ뜻을 각각 차별되게 구별한 것이 별상(別相)이다이 하나의 티끌에서 구별한 모든 뜻이 각각 자성이 없어 서로 어긋나지 않는 것이 동상(同相)이다이 하나의 티끌의 모든 뜻인 본체ㆍ작용ㆍ본성ㆍ모습이 각각 차별된 것이 이상(異相)이다이 하나의 티끌의 모든 뜻이 앞에 나타남에 티끌의 법이 비로소 세워지는 것이 성상(成相)이다이 하나의 티끌의 모든 뜻이 각각 자성의 모습을 나타내어 끝에는 서로 이루고 서로 만들지 않는 것이 괴상(壞相)이다.

일체의 모든 법이 다 이러한 여섯 가지 모습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연기(緣起)가 바야흐로 이루어진다만약 이와 같지 않으면 여섯 가지의 뜻을 잃게 된다.

 六顯帝網者謂塵無體顯現一切緣起理事菩提涅槃教義及解行等由此諸義無性理通十方圓明一際或一現一或一現一切或一切現一或一切現一切四句同時一際顯然重重無盡自在現也如帝釋殿珠網重重互現無盡論云帝網差別唯智能知非眼境界

6. ‘제망중중(帝網重重)을 나타냄은 이를테면티끌은 실체가 없지만 일체의 연기(緣起)ㆍ이사(理事)ㆍ보리(菩提)ㆍ열반(涅槃)ㆍ교의(敎義및 해행(解行등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뜻은 자성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진리는 시방에 통하여 원만하고 분명한 하나의 진리이다어떤 때는 하나가 하나를 나타내고어떤 때는 하나가 일체를 나타내며어떤 때는 일체가 하나를 나타내고어떤 때는 일체가 일체를 나타낸다.

네 가지 문구(文句)가 동시라서 한결 같이 드러나므로 거듭거듭 다함이 없이 자재하게 나타난다마치 제석천의 보배 그물이 거듭거듭 다함이 없는 것과 같다.

논에서 이르기를 제석천의 보배 그물의 차이와 다름은 오직 지혜로만 알 수 있고눈으로 볼 수 있는 경계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七鑒微細者謂此塵及十方一切理事等莫不皆是佛智所現即此佛智所現之塵能容持一切剎海事理教義無不具足所以然者由十方差別雖多恒是一塵之十方一塵雖小恒是該通一切之塵是故顯現無有先後不礙差別遠近宛然經云微細世界中容受大世界境界無不了智慧山王行又云於一塵中普現三世一切佛剎等又云乃至一塵一毛一世界一佛一衆生等皆如是頓顯故

7. ‘미세(微細)하게 살펴봄은 이를테면이 티끌 및 시방의 일체 진리와 현상 등은 모두 부처 지혜에서 나타낸 것 아님이 없다바로 이 부처 지혜에서 나타난 것인 티끌이 능히 일체 국토와 바다의 현상ㆍ진리ㆍ가르침ㆍ뜻을 받아들여 지닐 수 있어 다 갖추어져 있지 않음이 없으니무슨 까닭인가?

시방에 차별이 비록 많지만 항상 하나의 티끌의 시방이고하나의 티끌이 비록 작지만 항상 일체 티끌에 모두 통하는 까닭에 나타남에 앞과 뒤가 없고차별에 걸림이 없고멀고 가까움이 분명하다.

경에서 이르기를 미세한 세계 가운데에서 큰 세계를 받아들이어 경계를 이해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 지혜산왕(智慧山王-부처님)의 행()이다라고 하였으며또 이르기를 하나의 티끌 가운데에서 삼세의 일체 부처님 국토 등을 두루 나타낸다.”라고 하였다또 이르기를 하나의 티끌ㆍ하나의 터럭ㆍ하나의 세계ㆍ한 부처ㆍ한 중생 등을 나타낸다.”라고 하였으니모두 이와 같이 단박 나타내기 때문이다.

 八通逆順者謂舉塵相不必見理為逆以塵無體即空為順由相取不可得逆則常順以理不礙事順則常逆由事理融通是以逆順無礙自在用也

8. ‘거스름[]과 따름[]을 통함은 이를테면티끌의 모습을 말함에 반드시 진리를 보지 않는 것이 거스름[]이고티끌은 체가 없어 공 그대로인 것은 따름[]이다모습을 얻을 수 없음으로 말미암아 거스름이 곧 항상 따름이며진리가 현상을 장애하지 않으므로 따름은 곧 항상 거스름이다현상과 진리가 융통하므로 말미암아 거스름과 따름이 걸림 없이 자재하게 작용한다.

 九定主伴者謂塵是法界體無分齊普遍一切是為主也即彼一切各各別故是伴也然伴不異主必全主而成伴主不異伴亦全伴而成主主之與伴互相資相攝若相攝彼此互無不可別說一切若相資則彼此互有不可同說一切皆由即主即伴是故亦同亦異當知主中亦主亦伴伴中亦伴亦主也

9. ‘주인[]과 손님[]을 정함은 이를테면티끌 법계의 체는 영역이 없어 일체에 두루 미치는 것이 주인이며이런 일체가 각각 다른 까닭으로 손님이다그러나 손님은 주인과 다르지 않으므로 반드시 온전히 주인이지만 손님을 이룬다또한 주인이 손님과 다르지 않으므로 주인과 손님이 서로 돕고 서로 거둔다만약 서로 거두면 피차가 서로를 없어 일체를 다르게 말할 수 없고만약 서로 돕는다면 피차가 서로 있으므로 일체를 같게 말할 수 없으니모두 주인 그대로이고 손님 그대로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다.

마땅히 알라주인 가운데 주인이면서도 또한 손님이며손님 가운데 또한 손님이며 또한 주인인 줄을.

 十登彼岸者謂塵名相生滅是此岸今了塵名相空寂不生不滅是彼岸但以不了為此了即為彼依了不了邊…。寄彼此以言之經云菩薩不住此岸不住彼岸而能運度衆生於彼岸

10. ‘피안(彼岸)에 오름은 이를테면티끌의 이름과 모습이 나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 차안(此岸)이다지금 티끌의 이름과 모습이 공적하여 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음을 이해하여 안 것이 피안(彼安)이다단지 이해하여 알지 못하면 차안이 되고 이해하여 알면 피안이 된다이해하여 알았는지 이해하여 알지 못했는지에 의거하고피차라는 것에 의존하여 말한 것이다.

경에서 이르기를 보살은 차안에도 머물지 않고 피안에도 머물지도 않지만중생을 피안으로 실어 나를 수 있다라고 하였다.

 然上諸義體無別異舉則全彰理不殊途談皆頓顯良以二邊相盡差別體融隨智卷舒應機屈曲是故言起即起誰云路之不通舉多即多孰談法之無在自非逈超特達捿心物表之者焉能了此乎

그러나 이상의 모든 뜻에서 체는 그것 외에 다른 것이 없으므로 체를 들어 보이면 온전히 나타나며진리는 그것 말고 다른 길이 없으므로 진리를 말하면 모두가 단박 드러난다진실로 양변(兩邊)의 모습을 다한다차별된 체를 융통하므로 지혜를 따라 말고 펄치며근기에 응하여 굴곡(屈曲한다.

이런 까닭으로 일어남을 말하면 바로 일어남에 누가 길이 통하지 않는다고 말하며여럿을 말하면 바로 여럿인데 누가 법이 없다고 이야기 하는가스스로 멀리 뛰어넘고 특별하게 통달하여서 마음에 기대어 사물을 나타내는 자가 아니라면어찌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여 알 수 있겠는가?

[출처] 화엄경의해백문-9|작성자 밝은 빛



화엄경의해백문-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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決擇成就門第十

10. 결택하여 성취하는 부문

 

 夫緣情未泯見有正邪法體隨迷故隨緣而生滅法界沖寂泯寂滅以是非今欲顯其實趣簡彼權門使皂白以雙分令眞妄而兩別

대저 마음이 연에 이끌림을 아직 없애지 못하고견해에 정견(正見)과 사견(邪見)이 있다법의 체가 어리석음을 따르는 까닭으로 연을 따르며 생멸하고법계는 텅 비어 고요한데 적멸을 없애고 옳고 그름만을 따진다지금은 그 진실에 나아가 드러내고자 권문((權門-方便門)으로 가려낸다흑과 백으로 하여금 쌍으로 나눠지게 하고참됨과 허망으로 하여금 양쪽으로 구별되게 한다.

 

略舉大綱題茲十義

간략히 골자를 들어 열 가지 뜻으로 나타낸다.

 

一簡正見 二辨染淨 三顯無知 四佛出世 五辨四依 

六除業報 七定權實 八明頓漸 九入佛海 十證佛地

1. 정견을 가려내다. 2. 물듦과 깨끗함을 가리다. 3. 무지를 드러내다.

4. 부처가 세상에 출현한. 5. 네 가지 의지함을 말하다. 6. 업보를 제거하다.

7. 방편과 실제를 정하다. 8. 돈과 점을 밝히다. 9. 부처님 바다에 들어가다.

10. 부처님의 지위를 증득하다.

 

 

 初簡正見者如見塵名相是邪見塵空寂是正又若以見見於塵此非為正以不見見於塵此亦非正但知塵全是見不復更見以不見見於塵也然見此塵時不可以慧眼見法眼看佛眼觀肉眼視天眼瞻見於塵也以塵即慧即法即佛即肉即天不復更以慧眼見眼見又若見即不見謂以見見即不契塵也若不見即見謂更將不見以見於塵亦不契於塵也若不見即不見謂不知塵是見名為總不見也若見即見謂知塵全是見方名為見經云見者即是垢彼則無所見諸佛離所見是故見清淨

1. 정견(正見)을 가려냄은 예컨대티끌의 이름과 모습을 보는 것은 사견(邪見)이고티끌의 공적함을 보는 것은 정견이다또 만약 견(-사고(思考))으로 티끌을 본다면 이것은 정견이 아니며불견(不見-사고(思考)하지 않음)으로 티끌을 보는 것도 정견이 아니다.

다만 티끌은 온전히 보임[]이므로 또 다른 보임[]이 없으니불견(不見)으로써 티끌을 보는 것임을 알 뿐이다그러나 티끌을 볼 때에 혜안(慧眼)ㆍ법안(法眼)ㆍ불안(佛眼)ㆍ육안(肉眼)ㆍ천안(天眼)으로 보아도 티끌을 볼 수가 없다티끌은 혜안(慧眼)ㆍ법안(法眼)ㆍ불안(佛眼)ㆍ육안(肉眼)ㆍ천안(天眼)에 그대로 있으므로 다시금 다른 혜안(慧眼등의 오안(五眼)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또 만약 보임[]이 바로 보임이 아님[不見]이라면보임[]으로써 보임[-티끌]을 보는 것이므로 바로 티끌과 계합하지 못한다는 말이 되고만약 보임 아님[不見]이 바로 보임[]이라면 다시금 보임 아님[不見]을 가지고 티끌을 보는 것이므로 또한 티끌에 계합하지 못한다는 말이 된다만약 보임이 아님[不見]이 바로 보임이 아님[不見]이라면 티끌이 보임[]임을 알지 못하여서 모두 보임 아님[不見]이라는 말이 되고만약 보임[]이 바로 보임[]이라면 티끌이 온전히 보임[]임을 아는 것이므로 비로소 보임[]이라 말할 수 있다.

경에서 이르기를 보는 것이 바로 허물이니저것[티끌]은 볼 것이 없도다모든 부처는 보는 것을 떠났으므로 봄이 청정하도다.”라고 하였다.

 

 

 二辨染淨者謂見塵生滅有無是染即體不生不滅非有非無是淨若空異於有則淨不名淨以迷空故若有異於空則染不名染以執有故今有即全空方名染分空即全有方名淨分由空有無礙是故染淨自在也經云染而不染不染而染

2. ‘물듦[]과 깨끗함[]을 가림은 이를테면티끌의 생멸과 유무(有無)를 보는 것은 물듦이며체가 생김도 없고 사라짐도 없으며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은 깨끗함이다.

만약 공이 유와 다르다면 깨끗함은 깨끗함이라 할 수 없는데공에 미혹했기 때문이다만약 유가 공과 다르다면 물듦을 물듦이라 할 수 없으니유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유가 바로 온전히 공이므로 비로소 물듦이라 하고공이 온전히 유이므로 비로소 깨끗함이라 한다그러므로 물듦과 깨끗함이 자재하다.

경에서 이르기를 물들지만 물들지 아니하고물들지 않지만 물든다.”라고 하였다.

 

 

 三顯無知者謂了知塵時塵全是知也終不以知知於塵也若以知知於塵有所不知也若知於知此無知不異知也今塵即是知不復更以不知知於無知者但無能所之知非無知也經云顯現一切法各各不相知

3. ‘무지(無知앎이 없음)를 드러냄이를테면티끌을 이해하여 알 때 티끌은 온전히 앎[]이다그러나 끝내는 앎으로써는 티끌을 알지 못한다만약 앎으로써 티끌을 안다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음이다만일 앎에 대하여 안다면 이것은 무지(無知)가 지()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지금은 티끌이 바로 앎이므로다시금 알지 못하는 것으로써 앎이 없음[無知]에 대하여 아는 것이 아니다다만 능소(能所)의 앎이 없을 뿐이지앎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에서 이르기를 일체법(一切法)을 나타내지만 각각 서로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四佛出世者今如來出現全以塵無自性法界緣起菩提涅槃以為如來身也此身通三世間是故於一切國土一切眾生一切事物一切緣起一切業報一切塵毛等各各顯現如上諸義菩提涅槃等為佛出世也若一處不了即不成佛亦不出現何以故由不了塵處仍是無明是故不成佛亦不出現也具如性起品文思之

4. ‘부처가 세상에 출현함은 지금 여래께서 출현하심은 온전히 티끌의 자성이 없으므로 법계연기(法界緣起)와 보리열반(菩提涅槃)으로 여래의 몸을 삼은 것이다이 몸이 삼세간(三世間)에 통하는 까닭으로 일체국토(一切國土)ㆍ일체중생(一切衆生)ㆍ일체사물(一切事物)ㆍ일체연기(一切緣起)ㆍ일체업보(一切業報)ㆍ일체(一切)티끌 등에 각각 나타난다.

위와 같은 모든 뜻인 보리열반 등이 부처의 출현이다만약 한 곳에서라도 이해하여 알지 못하면 부처를 이룸도 아니며 출현도 아니다무슨 까닭인가티끌의 처소를 이해하여 알지 못하므로 무명(無明)이기 때문이다이런 까닭으로 부처를 이룸이 아니며또한 출현도 아니다구체적인 것은 성기품과 같으니 생각해 보라.

 

 

 五辨四依者謂心了塵空寂不緣名相是依智不依識謂了塵是緣起之法非在分別是依法不依人謂了塵無生無相之義不在文字是依義不依語謂了塵上若具顯一切法界非有分限此則依了義經不依不了義經

5. ‘네 가지 의지함을 말함은 이를테면마음으로 티끌의 공적함을 이해하여 알고 이름과 모습에 연()하지 않는 것은 지혜에 의지하고 알음알이에 의지하지 아니함이다.

티끌은 연기법(緣起法)임을 이해하여 알고 분별을 하지 않는 것은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아니함이다.

티끌의 생겨남이 없음[無生]과 모습 없음[無相]의 뜻을 이해하여 알고 문자를 있지 않는 것은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아니함이다.

티끌 위에 이 일체의 법계가 모두 나타나고 있고 한계가 있지 않음을 이해하여 알면이것은 경의 뜻을 이해하여 알고 의지함이고경의 뜻을 이해하여 알지 못하고 의지함이다.

 

 

 六除業報者謂塵上不了自心謂心外有法即生憎愛從貪業成報然此業報由心迷塵妄計而生但以有顯現皆無真實經云猶如淨明鏡隨其面像現內外無所有業報亦如是迷者謂塵相有所從來而復生滅是迷今了塵相無體是悟迷本無從來悟亦無所去何以故以妄心為有本無體故如繩上蛇本無從來亦無所去何以故蛇是妄心橫計為有本無體故若計有來處去處還是迷了無來去是悟然悟之與迷相待安立非是先有淨心後有無明此非二物不可兩解但了妄無妄即為淨心終無先淨心而後無明知之

6. ‘업보(業報)를 제거함은 이를테면티끌 위에서 자기의 마음을 이해하여 알지 못하고 마음 밖에 법이 있다고 하여바로 미워하고 사랑하므로 탐업(貪業)을 따라 과보(果報)를 이룬다그러나 이 업보(業報)는 마음이 티끌에 미혹하였기 때문에 망령된 생각을 내는 것이다다만 나타남이 있을 뿐이므로 모두 실체는 없는 것이다.

경에서 이르기를 마치 깨끗하고 맑은 거울이 거울의 면을 따라서 비친 모습을 나타남에 안과 밖이 모두 있는 것이 없듯이 업보(業報또한 이와 같다라고 하였다.

미혹하다는 것은 티끌의 모습이 따라 오는 것이 있다고 하여 다시 생멸(生滅)을 내는 것이 미혹함이고지금 티끌의 모습이 체가 없음을 이해하여 아는 것이 깨달음이다미혹은 본래 오는 것이 없으며 깨달음 또한 가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허망한 마음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므로 본래는 체가 없기 때문이다마치 새끼줄을 뱀으로 생각한 것과 같아서 본래 온 것도 없으며 또한 가는 것도 없다왜냐하면 뱀은 허망한 마음으로 인하여 마음대로 생각하여 있는 것이므로 본래 체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오는 곳과 가는 곳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도리어 미혹한 것이고오고 감이 없음을 이해하여 알면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깨달음과 미혹함은 서로 마주보고 나란히 마주 서있는 것이므로 먼저 깨끗한 마음이 있고 뒤에 무명(無明)이 있는 것은 아니다이것은 두 물건이 아니므로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없는 것이다다만 허망함[]과 허망하지 않음[無妄]만을 이해하여 알면 바로 깨끗한 마음이 되니결국 깨끗한 마음은 앞에 있고 무명은 뒤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라.

 

 

 七定權實者謂塵事是權空寂是實然實非實以理不礙事故權亦非權以事體即空故若作權解實解此非善解若知權實俱不可得寄言以明法體是名善解也

7. ‘방편[]과 실제[]를 정함은 이를테면티끌의 현상은 방편이고공적함은 실제이다그러나 실제는 실제가 아니니진리가 현상을 장애하지 않기 때문이고방편은 방편이 아니니현상의 본체가 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만약 방편이다’, ‘실제이다라는 이해를 내면 좋은 이해가 아니며만약 방편과 실제는 모두 얻을 수 없는 것이지만 말에 의탁하여서 법의 본체를 밝힌 것임을 안다면 좋은 이해라고 한다.

 

 

 八明頓漸者若於塵處了幻相不可得方見無相了塵無自性方見無生了塵色無體方見空如此推尋方見名為漸今不待推尋而直見諸法無性空寂如鏡現像不待次第對緣即現為頓

8. ‘()과 점()을 밝힘은 만약 티끌 처소에서 환()의 모습을 얻을 수 없음을 이해하여 알면 바야흐로 모습이 없음[無相]을 봄이고티끌은 자성이 없음을 이해하여 알면 바야흐로 생겨남 없음[無生]을 봄이다.

티끌의 색은 체가 없음을 이해하여 알면 바야흐로 공을 봄이다이와 같이 살펴 나아가 바야흐로 보는 것이 점차[]이다.

지금 살펴 나아감을 기다리지 않고 모든 법의 자성이 없음과 공적함을 바로 보기를 거울 속에 비쳐 나타난 모습처럼차례를 두지 않고 연()을 대하자마자 바로 나타나는 것이 단박[]이다.

 

 

 九入佛海者謂全塵處見如上百門義並是佛大願海大智慧海大方便海之所顯現乃至一切塵一切毛一切國土剎海一切佛及眾生一切事物等莫不皆空是佛智慧大海無邊無盡深廣不可測也當知學者若於塵處見一切法界者即是入佛法界智慧海也若以開合卷舒或塵內或毛孔而能資攝一即一切一切即一可說即不可說主伴自在依正無礙普是如來智海之業用若人如是通達者與如來等也

9. ‘부처님 바다에 들어감은 이를테면온전히 티끌에서 위와 같은 백 가지 부문의 뜻을 보는 것이다아울러 이 부처님의 큰 원()의 바다ㆍ큰 지혜(大智慧)의 바다ㆍ큰 방편의 바다에서 나타난 것이며내지 일체의 티끌ㆍ일체의 터럭ㆍ일체의 땅과 바다ㆍ일체의 부처와 중생ㆍ일체의 사물 등이 모두 공아님이 없는 것이다이 부처 지혜의 큰 바다는 다함이 없이 깊고 넓어 헤아릴 수가 없다.

마땅히 알라배우는 자가 만약 티끌에서 일체의 법계를 본다면곧 부처 법계의 지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다이 열고 닫고맒과 펼침으로써 혹은 티끌 안에서 혹은 털구멍 안에서 능히 도와 거둘 수 있다하나가 곧 일체ㆍ일체가 곧 하나ㆍ말할 수 있음이 말할 수 없음ㆍ주인과 손님이 자재함ㆍ의보와 정보가 걸림 없으니두루 이 여래 지혜 바다의 업(과 용()을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통달하는 하는 것은 여래와 더불어 동등한 것이다.

 

 

 十證佛地者謂塵空無我無相是地然此地體性猶未清淨以從我相彰得了心猶未寧亦是垢見若作遠離空無相之念者猶為垢心謂有遠離之想未止也今不作遠離之想亦無動念者由初得念息近從動念處顯也今者無作遠離之念亦無不作遠離之念者此地顯時即智慧不得以方便詮不得以文字說當自顯然此猶假論若稱理而言非智所知如空中鳥飛之時迹不可求依止迹處也然空中之迹雖無體相可得然迹非無此迹尋之逾廣要依鳥飛方論迹之深廣當知佛地要因心相而得證佛地之深廣也然證入此地不可一向住於寂滅一切諸佛法不應爾當示教利喜學佛方便學佛智慧具如此地義處思之

10. ‘부처 지위를 증득함은 이를테면티끌의 공()ㆍ무아(無我)ㆍ무상(無相)이 지위이다그러나 이 지위의 체와 성품은 아직 청정하지는 않다아상(我相)에 따라서 얻어 드러냄이니마음을 이해하여 앎에 있어서 아직은 평온하지 않기 때문에 또한 때 묻은[번뇌가 있는견해이다만약 공하여 모습이 없기 때문에 멀리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짓는 것은 오히려 때 묻은 마음이니이를테면 멀리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그치지 못한 것이다.

이 멀리 떠나야한다는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은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지만 처음 생각을 쉬었음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마음을 따라 나타남에 가까운 것이다이 멀리 떠나야 한다는 마음을 짓지 않음도 또한 멀리 떠나지 한다는 생각을 짓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이 지위가 드러날 때가 지혜이니방편으로도 설명할 수 없고문자로도 말할 수 없지만마땅히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이것도 오히려 말을 빌렸을 뿐이니진리라고 말한다면 지혜로 아는 것이 아니다마치 허공 가운데에 새가 날 때 자취가 의지하는 곳을 찾을 수 없는 것과 같다그러나 공중 가운데에 자취는 비록 체가 없어 모습을 얻을 수 없지만 자취가 없음은 아니다이 자취는 찾을수록 깊고 넓은데 반드시 새의 날아가는 방향에 의거하여 자취의 깊고 넓음을 말해야 한다.

마땅히 알라부처 지위는 반드시 마음의 현상으로 말미암아 부처 지위의 깊고 넓음을 증득할 수 있음을그러나 이 지위에 증득해 들어가면 한결 같이 적멸에만 머물 수는 없으니일체 모든 부처의 법이 응당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마땅히 가르침의 이로움과 즐거움을 보이어 부처님의 방편을 배우게 하고 부처님의 지혜를 배우게 해야 한다이와 같은 지위의 뜻이 갖추어진 곳을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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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공부한 것이 미진하여 다시 여러 가지를 참고하여 공부한 것입니다적은 지식으로 잘못 해석한 부분이나 오타가 있을 수 있습니다여러분께서 지적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18년 11월 17

현무(玄武합장(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