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그를 출가의 길로 이끈 가장 아픈 기억을 되살렸다. 1974년 2월 22일 세계 해군사에서 전쟁 아닌 평화 시 최대 참사가 벌어졌다. 통영 앞바다에서 해군예인정을 타고 훈련하던 300여명 중 159명이 물에 빠져 사망 혹은 실종됐다. 그 속에 동생이 있었다. 그때도 박정희 정권은 진실을 덮었다. 그는 3일만에 동생 시신을 수습했고, 그 길로 출가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농성장에 자주 갔습니다. 함께 부둥켜안고 울었죠. 젊은 날의 저처럼, 고통 속에서 추운 날에 고생하시는 분들을 보면 미안했습니다. 몽골텐트도 구해주고, 미싱과 청소기도 보내줬죠. 그냥 친척처럼 지냅니다. 제가 문경 봉암사 선방에 있으면 가끔 내려오시고, 얼마 전 초파일 행사 때에도 보광암에 유가족들이 올라왔죠."
그도 지난 겨울 1300만 촛불 중의 하나였다. 그는 동안거를 하러 봉암사 선방에 들어가기 전에는 강원도에서 직접 차를 몰고 촛불집회에 개근했다. 시민 틈 속에서 촛불 하나를 들려고 왕복 7~8시간 거리를 달렸다. 딱 한 번 마이크를 잡았다. 청와대로 진격하는 차량 위에서다. 이렇게 말했단다.
"경찰들이 차벽을 설치한 것은 우리가 청와대로 가는 것을 막은 게 아닙니다. 저 안에 있는 미친 사람이 차벽을 넘어 우리를 해칠까봐 막고 있는 겁니다." ("'무안무치'한 박근혜, 철판 깔 얼굴조차 없다" )
촛불도 웃고, 방패를 든 경찰도 따라 웃었다.
"보수 세력이란 표현은 잘못됐습니다. 부패세력이죠. 썩을 대로 썩었는데, 무식하고 용감합니다. 이들이 더 교묘했으면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주물렀겠죠. 박근혜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거기에 최순실이 붙고, 정치 검찰 등 적폐세력들이 합세해서 우리 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한국을 대오각성 시킨 위대한 '역행보살'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Tenman/report_last.aspx?CNTN_CD=A0002339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