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계
[ 剡溪 ]①중국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조아강(曹娥江)의 상류. 이곳에 대규(戴逵)가 살고 있었으므로 대계(戴溪)라고도 함. ②조선 후기 인물 이잠(李潛:1660~1706)의 호. 자(字)는 서산(西山), 본관은 여주(驪州). 대사헌(大司憲)을 지낸 이하진(李夏鎭)의 둘째 아들이며,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형임. 상소하여 김춘택(金春澤)•이이명(李頤命) 등이 동궁(東宮)을 불리하게 한다고 공격했다가 장살(杖殺)당함.
용례
- ㉠흰 구름 흩어진 곳에 갠 빛이 가득하고, 곱게 이어진 눈썹 같은 산에 연기가 푸르다. 왕자유가 섬계에 놀던 것을 홀연히 생각하고, 위만이 왕옥산을 찾은 것을 멀리 생각한다. 흰 눈썹 늙은 중의 눈동자는 푸른데, 한 걸상 부들자리에 손님을 재운다. ; 白雲斷處霽光浮 眉峀連姸烟抹綠 忽憶子猶遊剡溪 緬懷魏萬尋王屋 雪眉老僧胡眼碧 一榻蒲團留客宿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제3, 20장 앞쪽~뒤쪽, 고율시 차운동년문원외 제감로사]
㉡시험장을 열어 선비들에게 시험을 보였으나, 당로자제들로 섬계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모두 시험장에 들어오지 않아 공이 이를 중단시키려 하였다. ; 開場課儒 當路子弟 惡剡溪者 皆不入場 公欲罷之 [다산전서 권제15, 17장 앞쪽, 묘지명 정헌묘지명][네이버 지식백과] 섬계 [剡溪]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섬계
[ 剡溪 ]회계현(會稽縣)의 종이 명산지.
不用齊紈製 渾將剡紙成(불용제환제 혼장섬지성 ; 제 나라 비단으로 만들지 않고, 섬계의 종이로 이루었구나.)<최선崔詵 사문상증선謝文相贈扇>
[네이버 지식백과] 섬계 [剡溪] (한시어사전, 2007. 7. 9., 국학자료원)
섬계
[ 剡溪 ]승현(嵊縣) 남쪽에 있고 일명 대계(戴溪)라고도 한다. 즉 진(晋)의 왕희지가 눈 내리는 밤에 대규(戴逵)를 방문한 곳이다. (『대명일통지』 권45, 소흥부 4).
[네이버 지식백과] 섬계 [剡溪]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 용어사전), 2012., 한국콘텐츠진흥원)
대규
[ 戴逵 ]진(晉) 나라의 거문고 잘 타던 사람. 자 안도(安道). 왕희(王晞, 일설에는 사마희司馬晞)가 대규의 거문고 솜씨를 듣고 사람을 시켜 부르니, 대규는 거문고를 깨뜨리면서 ‘戴安道不爲王門伶人(대안도불위왕문영인 ; 대안도가 어찌 귀한 집의 광대가 되리오.)’ 했음.<진서晉書> 왕헌지(王獻之)가 눈 오는 밤에 배를 저어 찾아왔다가 만나지도 않고 되돌아가기에, 사람들이 왜 만나지 않고 그냥 가느냐고 물으니 왕헌지는 ‘乘興而來 興盡而去 何必見戴(승흥이래 흥진이거 하필견대 ; 흥이 나서 왔다가 흥이 다해 가노니, 하필 대규를 만나야 하랴?)’ 했다는 고사도 있음.
未因乘興去 空有鹿門期(미인승흥거 공유녹문기 ; 왕헌지처럼 흥겹게 찾아갈 인연 없으니, 방덕공의 녹문산 들어갈 기약만 헛되이 있을 뿐이로다.)<두보杜甫 동일유회이백冬日有懷李白>
撑舟頻訪戴 問字每從揚(탱주빈방대 문자매종양 ; 배를 저어 대규를 자주 찾고, 어려운 글자 물으려고 매양 양웅揚雄을 좇아다니네.)<이숭인李崇仁 차어은운次漁隱韻>
[네이버 지식백과] 대규 [戴逵] (한시어사전, 2007. 7. 9., 국학자료원)
대규
[ 戴逵 , dài kuí ]초군(譙郡) 질현(銍縣) 사람으로 회계(會稽) 섬현(剡縣)에서 거주했다. 자는 안도(安道)이다. 동진(東晉)시대 미술가이자 음악가, 화가로 활동했다. 북방에서 남방으로 이주한 선비집안 출신이다. 만년에 회계(會稽) 일대에서 장기간 거주하면서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저명한 유학자인 범선(範宣)에게 학문을 배워 박학다식하고 재주가 많았다. 거문고를 잘 치고 인물(人物)과 산수(山水)를 잘 그렸다. 저서로 《대규집(戴逵集)》9권이 있다. 그가 남경(南京) 와관사(瓦棺寺) 오구불상(五軀佛像)을 만들었는데, 고개지(顧愷之)의 《유마힐상(維摩詰像)》 및 사자국(獅子國)의 옥상(玉像)과 더불어 와관사삼절(瓦棺寺三絕)로 알져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규 [戴逵, dài kuí] (중국역대인물 초상화, 한국인문고전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