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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년부중래 일일난재신

VIS VITALIS 2007. 10. 23. 16:16

의 《잡시()》

인생은 뿌리없이 떠다니는 것[?]
밭 두렁의 먼지처럼 표연한 것[]
바람따라 흐뜨러져 구르는[]
인간은 원래 무상한 몸[]
땅에 태어난 모두가 형제이니[]
어찌 반드시 골육만이 육친인가[]
기쁨 얻거든 마땅히 즐겨야 하며[]
말 술 이웃과 함께 모여 마셔라[]
젊은 시절은 거듭 오지 않으며[]
하루에 아침 두 번 맞지 못한다[]
때를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해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人生無根帶 飄如陌上塵 分散隨風轉 此己非常身
인생무근대 표여맥상진 분산수풍전 차기비상신

落地成兄弟 何必骨肉親 得歡當作樂 斗酒聚比隣
락지성형제 하필골육친 득환당작락 두주취비린

盛年不重來 一日難再晨 及時當勉勵 歲月不待人
성년불중래 일일난재신 급시당면려 세월부대인

 

도연명 365~427 중국 동진() ·송 대()의 시인. 기교를 부리지 않고, 평담()한 시풍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로부터는 경시를 받았지만, 당대 이후는 6조() 최고의 시인으로서 그 이름이 높아졌다. 그의 시풍은 당대()의 맹호연() , 왕유(), 저광희 등 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줬다. 주요 작품으로 《오류선생전》,《도화원기》,《귀거래사》등이 있다.

자() 연명 또는 원량(). 이름 잠(). 문 앞에 버드나무 5 그루를 심어 놓고 스스로 오류() 선생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장시성[西] 주장현[]의 남서 시상() 출생. 그의 증조부는 서진(西)의 명장 도간()이며, 외조부는 당시의 명사 맹가()였다고 전한다. 이와 같은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생활이 그렇게 풍족하지 못한 소지주 정도의 가정에서 자랐다. 29세 때에 벼슬길에 올라 주()의 좨주()가 되었지만, 얼마 안 가서 사임하였다. 그 후 군벌항쟁의 세파에 밀리면서 생활을 위하여 하는 수 없이 진군참군() ·건위참군()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항상 전원생활에 대한 사모의 정을 달래지 못한 그는 41세 때에 누이의 죽음을 구실삼아 펑쩌현[]의 현령()을 사임한 후 재차 관계에 나가지 않았다. 이때의 퇴관성명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유명한 《귀거래사()》이다. 사전()에는 상관의 순시 때에 출영()을 거절하고, “나는 5두미()를 위하여 향리의 소인()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라고 개탄하였다고 적혀 있다. 향리의 전원에 퇴거하여 스스로 괭이를 들고 농경생활을 영위하여 가난과 병의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62세에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그 생애를 마쳤다. 후에 그의 시호를 정절선생()이라 칭하였다. 그의 시는 4언체() 9편과 그때에 유행하던 5언체() 47편이 전해지고 있지만, 기교를 그다지 부리지 않고, 평담()한 시풍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로부터는 경시를 받았지만, 당대 이후는 6조() 최고의 시인으로서 그 이름이 높아졌다.

그는 평생의 거의 대부분을 민간인으로 보냈기 때문에, 그의 시는 생활로부터 스며나온 마음의 부르짖음이었으며, 당시 유행하던 귀족적 생활에서 풍겨나온 여유 있는 유희문학()이 아니라 민간생활 그 자체를 노래한 문학이었다. 따라서 그의 시는 따스한 인간미가 있으며, 고담()의 풍이 서려 있다. 형식면으로는 대구적 기교()나 전거() 있는 표현은 별로 쓰지 않았으므로, 같은 시대 시인인 사영운()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양()나라의 종영()의 《시품()》에서는 “고금 은일시인()의 종()”이라 평가하였으며, 후세에도 똑같이 평가되고 있다.

그의 시풍은 당대()의
맹호연() ·왕유() ·저광희() ·위응물() ·유종원() 등을 비롯하여 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쳐, 문학사상으로 남긴 업적은 매우 크다. 그리고 양()나라의 소명태자()는 《문선()》에다 9 편을 수록하여 전집을 편집하였다. 이후 판본() 및 주석서가 나왔다. 시 외에 《오류선생전()》 《도화원기()》 등 산문에도 뛰어났으며, 또 지괴소설집() 《수신후기()》의 작자로도 알려져 있다.

 

 

                        偶成 - 朱熹 -

 

少年易老學難成하니, (소년은 늙기가 쉽고 학문은 이루기가 어려우니,)

一寸光陰不可輕이라. (짤막한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지니라.)

未覺池塘春草夢한대 (못가에 돋아난 봄 풀의 꿈을 아직 깨닫지도 못 하였는데,)

階前吾葉已秋聲이라. (뜰 앞의 오동잎은 벌써 가을 소리로구나.)

 

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이노학난성
소년은 늙기 쉽고, 배움은 이루기 어려우니
一寸光陰不可輕 일촌광음불가경
아주 짧은 시간인들 가볍게 여기지 말아라.
未覺池塘春草夢 미각지당춘초몽
연못가에 봄풀 꿈을 미처 깨기도 전에
階前梧葉已秋聲 계전오엽이추성
섬돌 앞에 오동잎은 어느새 가을인가

 

 

勸學文  - 朱熹 -

 

 

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오늘 배우지 아니하여도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금년 배우지 아니하여도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日月逝矣 歲不我延 (세월이 흘러가도다. 세월은 나를 위해 늘어나지 아니하노니,)

嗚呼老矣 是誰之愆 (아 늙었도다. 이것이 누구의 허물인고.)

 

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물위금일불학이유래일
오늘 배우지 않아도 내일이 있다고 이르지 말며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물위금년불학이유래년
금년에 배우지 않아도 내년이 있다고 이르지 말아라.
日月逝矣歲不我延 일월서의세불아연
날과 달은 가고 해는 나와 함께 늙어지지 않으니
鳴呼老矣是誰之愆 명호노의시수지건
슬프다 늙어서 후회한들 이것이 뉘 허물이겠는가

 

 

朱子十悔(주자십회)

 

一.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후에 뉘우친다.
(不孝父母, 死後悔 불효부모 사후회)
一.가족에게 친절히 하지 않으면, 멀어진 뒤에 뉘우친다.
(不親家族, 疎後悔 불친가족 소후회)
一.젊을 때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뉘우친다.
(少不勤學, 老後悔 소불근학 노후회)
一.편안할 때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한 뒤에 후회한다.
(安不思難, 敗後悔 안불사난 패후회)
一.부유할 때 아껴쓰지 않으면, 가난하게된 후 후회한다.
(富不儉用, 貧後悔 부불검용 빈후회)
一.봄에 밭갈고 씨뿌리지 않으면, 가을이 된 후에 후회한다.
(春不耕種, 秋後悔 춘불경종 추후회)
一.담장을 미리 고치지 않으면, 도둑 맞은 후에 후회한다.
(不治垣墻, 盜後悔 불치원장 도후회)
一.이성을 삼가지 않으면, 병든 후에 후회한다.
(色不謹愼, 病後悔 색불근신 병후회)
一.술 취해서 망언한 것은, 술 깨고 난 후에 후회한다.
(醉中妄言, 醒後悔 취중망언 성후회)
一.손님을 잘 대접하지 않으면, 손님이 떠난 후에 후회한다.
(不接賓客, 去後悔 부접빈객 거후회)


 



 천망회회 소이불루 (天網恢恢 疏而不)

  이 말은 <노자> 七三장에 나오는 말인데, 원문에는 '소이불루'가 아닌 '소이불실(疏而不失)'로 되어 있다. 즉, 그의 책 <노자(老子)> 73장에서 이렇게 말을 하고 있다. “하늘의 도는 다투지 않고도 잘 이기며, 말하지 않아도 잘 응하며,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天之道不爭而善勝不言而善應 不召而自來]” 그리고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서 성기어도 잃는 일이 없다[天網恢恢 疏而不]” 

  "..... 하늘이 미워하는 바를 누가 그 까닭을 알리요. 이러므로 성인도 오히려 어려워한다. 하늘의 도는 다투지 않고도 잘 이기며, 말하지 않고도 잘 대답하며, 부르지 않고도 스스로 오게 하며, 느직하면서도 잘 꾀한다. 하늘의 그물은 크고 커서, 성긴 듯 하지만 빠뜨리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다.

  이 '소이불실'이란 말이 '소이불루'로 된 것은 <위서(魏書)> 임성왕전(任城王傳)에서 볼 수 있다. 즉,
  "노담이 말하기를 '그 정치가 찰찰(察察)하면 그 백성이 결결(鈌鈌)하다고 하도, 또 말하기를 하늘 구물이 크고 커서 성기어도 새지 않는다.'고 했다". 찰찰은 너무 세밀하게 살피는 것을 말하고 결결은 다칠까봐 조마조마하는 것을 말한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천명편(天命編)에 이런 말이 있다. '種瓜得瓜 種豆得豆 天網恢恢 疎而不漏(종과득과 종두득두 천망회회 소이불루)'  ,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난다. 하늘의 그물은 성기어도 새는 법이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