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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라 타이켄

VIS VITALIS 2023. 1. 11. 17:12

 

기무라는 인도철학은 물론 초기불교로부터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연구했다(

3). 그의 업적 중 가장 높게 평가받는 것은

 

도철학종교사(1914) 인도육파철학(1915)

 

비달마론의 연구(1922)이다. 당시 유럽의 연구와

필적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다. 인도철학종교

는 학문의 스승인 다카쿠스 준지로와의 공저 사진 1. 기무라 타이켄.

 

이다. 범서梵書, 오의서奧義書, 경서經書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도 고대사상의

 

발달사를 연구한 것이다. 당시에는 이노우에 엔료의 외도철학, 아네사키

마사하루의 인도종교사고정도가 인도종교 연구의 성과였다. 범어 원전연

구를 통한 본격적인 인도 고대종교 연구의 문이 열린 것이다.

 

본 연구의 연장선인 인도육파철학은 각파의 출생 연대의 논거 제시와

 

함께 순서에 따라 각 텍스트에 입각하여 학설을 설명하고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불교의 우월성에 기대어 외도철학으로 본 인도사상을 독립적인 학문

연구의 영역인 인도철학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불교연

 

구의 객관성이 더욱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기무라의 박사학위 논문인 아비달마론의 연구는 이러한 인도철학 연구

의 지평 위에서 탄생했다. 이미 아비달마구사론(1920)을 오기하라 운라이

와 함께 일본어로 번역했으며, 부파불교 연구의 핵심서인 이부종륜론

 

번역, 남전 논부의 핵심서인 논사와 비교하며 비평적 주해를 놓았다.

 

리고 원시불교사상론(1922)을 같은 해 봄에 출판했다. 초기불교 교학의 정

수인 아비달마 연구는 기무라로부터 본격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

. 이 저술은 당시 불교연구자는 물론 불법에 기반한 사회운동가들로부터

 

도 애독되었다. 팔리어 경전과 율장을 자료로, 한역 아함경과 율장을 참조, 원시불교를 재구성했다.

아비달마론의 연구는 이 분야 일본 최초의 연구서이다. 저서의 원제목

아비달마론 성립 과정에 관한 연구: 특히 주요한 45종의 논서에 대해

 

이다. 초기 아비달마 연구는 매우 방대하고 난해한 점, 대승불교권에서

 

소승으로 폄하되어 무시되어 왔다는 점 때문에 연구가 소홀했다. 기무라

는 이를 간파했다. 앞의 연구처럼 팔리어 논장과 한역의 초기 소승논장을

연구, 각 논서들의 관계를 학문적으로 규명했다. 여러 후학들이 회자하는

 

것처럼 그의 기술 방식은 매우 명쾌했다. 이 저술 이후 일본에서는 초기불

 

교 연구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본서에 실린 연기론 해석으로 철학자 와

츠지 테츠로와 논쟁을 벌인 일은 유명하다. 이후 기무라는 원시불교로부

터 대승불교 연구로 영역을 확장해간다.

 

무엇보다도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해탈을 향한 길(解脱への, 1924,

 

사진 4)이다. 당시 만 수천 부가 팔렸다. 생명관으로부터 시작하여 절대생

, 해탈론, 선의 종류와 철학적 의의, 자력과 타력, 원시불교에서 대승불

교로, 현대생활과 불교, 운명과 자유 등 불교사상에 기반, 다양한 주제로

 

인간의 자유의지와 생생하게 약동하는 주체적 삶을 지향하고 있다. 그는 불교의 특징을 바라

문의 제식주의와 구

별되는 윤리도덕을

 

제창한 것에서 찾는

 

. 특히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많은 선

을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그 마음을 

 

맑혀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諸佛敎]”는 칠불통게七佛通偈를 불교 덕목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인과의 법

칙은 공리주의 위에 서 있다. 그리고 불타의 핵심 가르침인 무아를 전제

 

로 한 해탈도로서의 도덕을 주장한다. 그것은 대승의 진여법성이 표준이

 

된다.

그렇다면 기무라가 말하는 대승은 무엇인가. 소승은 형식주의이다. 그것

은 모든 계급에 문호를 개방한 불타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열린 인생

 

人生味와 상식미常識味로 풍부한 불교를 형해화한 것이다. 불타의 모든 이

 

상은 표면적 설법 내부에, 형식적 규율의 내면에 면면히 흐르는 대정신이

. 대승불교는 이러한 정신주의를 표방하고 나왔다. 기원 전후에 대승불

교는 형식화한 불교를 거부하는 인심의 요구에 대응하여 일어난 시대정신

 

이다.

 

기무라의 학문적 목표는 신대승불교이다. 현대의 종교적 요구와 신대승

불교에서 그는 근대에 들어와 비록 기성교단에 대한 대중의 열정은 식어

있지만, 대승불교는 최고의 종교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불교도 변

 

화를 요구받고 있지만, 근대사회에서 요구하는 종교와 과학이 모순되지 않는 것, 교리의 철학적 배경과 함께 내재적 초월의 세계관을 바로 우리 본성

에서 구할 수 있는 것, 실생활에서 환희를 얻음과 동시에 향상을 위한 노력

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 승속·남녀·국적을 불문한 보편적인 것에 가까운

 

것이 바로 대승불교이다. 미신성을 배격한 대승불교가 신대승불교이다.

 

그는 불교야말로 반야의 지혜가 밑바탕이 된 진공묘유가 그 진수라고 한다.

해탈을 향한 길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개론: 진공으로부터 묘유

(1939)에 잘 나타나 있다. 불교를 초월적, 염세적 종교로 간주하는 것은

 

해탈의 소극적인 면만을 보는 것으로 현실 세계의 활계活計적 측면의 반밖

 

에 모르는 사람들이다. 불교의 염세관은 결코 현실도피의 가르침이 아니

, 오히려 세계의 실상을 고통으로 보지만 용감하게 그 고통을 정복하는

공부를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승의 정토사상 또한 범부들을 미

 

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파악, 개개인을 완성시키는 이상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대승의 보살도에 기반, 사바세계를 정화하는 정불국토

佛國土의 이상인 셈이다. 그는 이것을 생성의 정토라고 한다.

기무라가 왕성한 연구력을 발휘하던 때는 서구로부터 다양한 사조가 난

 

입하던 시대였다. 국가중심주의와 자본주의가 또한 맹위를 떨치던 시대이

 

기도 했다. 이에 반국가, 반자본의 진영도 가세했다. 지면에서나 거리에서

마르크시즘이나 사회주의에 의한 종교 비판도 거세었다. 종교부정론자들

에 대한 종교계의 대응 또한 격렬했다. 종교신문인 중외일보에서는 기무

 

라를 포함하여 야부키 세이이치, 다카시마 베이호, 후루노 키요토 등이 합

 

세하여 반종교론자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기무라가 신대승불

교운동을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불교는 어떤 형태의 인간고도 해결

하는 동시에 인간 스스로 구축한 질곡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고 믿었

 

기 때문이다.그는 불법의 무위無爲 속에서 활달하

며 강직했다. 인정과 이타심 또한 두터웠

. 자신의 생활 리듬을 개의치 않고 강

 

연이나 원고 의뢰도 거부하지 않았다.

 

제자들에게 나는 개척자로서 3, 4

앞을 대충 경작해 나가므로 후진들이 보

다 깊게 파야 한다.”고 열린 마음으로 말

 

했다. 또한 어떤 논제를 규명하고자 할

 

때는 먼저 문제 전체의 전망을 하라.”

했다. 자료 전체를 수집하여 단지 정렬

사진 4. 해탈을 향한 길.

만 하는 것은 반드시 좋은 연구법은 아

니다. “논문을 쓸 때는 가능하면 재료를 버려라.”라고 했다. 자신도 참고서

 

를 제쳐놓고, 오직 원전 자료만으로 논을 세웠는데, 이는 사상의 독립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어쩌면 일본불교가 문헌중심의 연구로 폐쇄적인 연구풍토가 될 것을 염

 

려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불교야말로 언어에도 매이지 않는 활달한 학문

 

의 세계임에도 연구자들은 문자주의를 신봉한다. 오늘날 일본불교 연구의

성과는 세계적이라고도 하지만, 상상력의 빈곤에 처해있다고 비판받는다.

사바세계에서 활발발活潑潑한 삶을 불태웠듯 기무라는 우리에게 늘 창조

 

적이며 개방적인 사고, 애초에 어디에 구속됨 없는 독존적 자유를 누리라

 

고 일침을 놓고 있다.

 

기무라는 인도철학은 물론 초기불교로부터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연구했다(사
진 3). 그의 업적 중 가장 높게 평가받는 것은 『인

도철학종교사』(1914) 및 『인도육파철학』(1915)과 『아

비달마론의 연구』(1922)이다. 당시 유럽의 연구와
필적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다. 『인도철학종교
사』는 학문의 스승인 다카쿠스 준지로와의 공저 사진 1. 기무라 타이켄.

이다. 범서梵書, 오의서奧義書, 경서經書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도 고대사상의

발달사를 연구한 것이다. 당시에는 이노우에 엔료의 『외도철학』, 아네사키
마사하루의 『인도종교사고』 정도가 인도종교 연구의 성과였다. 범어 원전연
구를 통한 본격적인 인도 고대종교 연구의 문이 열린 것이다.

본 연구의 연장선인 『인도육파철학』은 각파의 출생 연대의 논거 제시와

함께 순서에 따라 각 텍스트에 입각하여 학설을 설명하고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불교의 우월성에 기대어 외도철학으로 본 인도사상을 독립적인 학문
연구의 영역인 인도철학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불교연

구의 객관성이 더욱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기무라의 박사학위 논문인 『아비달마론의 연구』는 이러한 인도철학 연구
의 지평 위에서 탄생했다. 이미 『아비달마구사론』(1920)을 오기하라 운라이
와 함께 일본어로 번역했으며, 부파불교 연구의 핵심서인 『이부종륜론』을

번역, 남전 논부의 핵심서인 『논사』와 비교하며 비평적 주해를 놓았다. 그

리고 『원시불교사상론』(1922)을 같은 해 봄에 출판했다. 초기불교 교학의 정
수인 아비달마 연구는 기무라로부터 본격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
다. 이 저술은 당시 불교연구자는 물론 불법에 기반한 사회운동가들로부터

도 애독되었다. 팔리어 경전과 율장을 자료로, 한역 아함경과 율장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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