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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량경寶梁經

VIS VITALIS 2022. 4. 2. 22:08

[2]大寶積經卷第一百一十四

北涼沙門[3]道龔[4]

寶梁聚會第四十四[5]蘭若比丘品第

爾時摩訶迦葉白佛言:「世尊若有比丘自言阿蘭若比丘世尊齊幾所名阿蘭若比丘幾所名乞食比丘齊幾所名畜糞掃衣比丘齊幾所名樹下比丘齊幾所名塚間比丘幾所名露處比丘?」

佛告迦葉:「阿蘭若比丘樂阿蘭若處住阿蘭若處迦葉若阿蘭若處所謂無大聲無眾閙聲離麞鹿虎狼及諸飛遠諸賊盜及牧牛羊者順沙門行處如是阿蘭若處應於中修行彼比丘若欲至阿蘭若處應當思惟八法何等八一者我當捨身二者應當捨命三者當捨利養四者離於一切所愛樂處五者於山間死當如鹿死六者阿蘭若處當受阿蘭若行七者當以法自活八者非以煩惱自活迦葉是名八法阿蘭若比丘所應思惟思惟已當至阿蘭若處迦葉阿蘭若比丘至阿蘭若處已行阿蘭若法八行行慈於一切眾生生慈心何等八一者以慈利益二者以慈樂三者無恚慈四者正五者無異慈六者順慈七者觀一切法慈八者淨如虛空慈迦葉以如是八行於諸眾生生慈心迦葉阿蘭若比丘至阿蘭若處已應如是思惟:『我雖至遠處獨無伴侶若我行善若行不善無人教呵。』復作是念:『此有諸天龍鬼神諸佛世尊知我專心彼為我證我今在此行阿蘭若法我不善心不得自在若我至此極遠之處獨無伴侶無親近者無我所我今當覺欲覺恚覺惱覺餘不善法亦應當覺我今不應不異於樂眾者亦不應不異近聚落人若如是不異我即為誑諸天龍鬼神已諸佛見[6]亦不歡悅我今若如阿蘭若則諸天龍鬼神不見呵責諸佛見我即亦歡悅。』迦葉阿蘭若比丘住阿蘭若處行阿蘭若法一心堅持解脫禁戒善護戒眾淨身口意無諛諂行淨於正命心向諸定如所聞法應憶念之勤正思惟趣向離欲寂滅涅槃於生死觀五陰如怨家觀四大如毒蛇觀六入如空聚善知方便觀十二因緣離斷常見觀無眾生無我無人無命解法空相行於無漸損所作而行無作心常驚畏於三界行常勤修行如救頭然常行精進終不退轉觀身實相應生如是心觀如是法當知苦本斷一切集證於滅盡勤修於道行於慈心安住四念處離不善法入善法門安住四正勤入四如意足護五善根於五力中而得自在七菩提分勤行八聖善道分受持禪定以慧分別諸法之相迦葉說如是法以嚴飾阿蘭若比丘作是嚴飾已住於山林初夜後夜勤修諸行不應睡眠常念欲得出世之法迦葉阿蘭若比丘凡所住處常修行道不自嚴身及諸衣服拾乾枯草以用敷坐自用坐具常住僧及招提僧物於阿蘭若處衣服知足趣得覆身為行聖道故

迦葉阿蘭若比丘若為乞食至城邑聚落應作是念:『我從阿蘭若處至是城邑聚落若得食若不得[1]無憂喜。』若不得食者應生喜心念宿業報我今當勤修習福業又念如來乞食亦[2]彼阿蘭若比丘入於城邑聚落乞食應以法莊嚴法莊嚴已然後乞食云何法莊嚴若見適意色不應染著見不適意色亦不生瞋若聞適意聲不適意聲若嗅適意香不適意香適意味不適意味適意觸不適意觸適意法不適意法心無染著亦不生瞋攝護根門諦視一尋調伏其心本所思法不令離心不以食污心而行乞食應次第乞食若得食處不應生[3]得食處不應生瞋若至十家若過十家不得食者不應生憂應作是心:『此諸長者及婆羅多有諸緣不與我食又此長者諸婆羅門乃至未曾生心念我況與我食。』迦葉阿蘭若比丘若能如是於乞食中不生驚畏迦葉蘭若比丘乞食時若見眾生若男若女若童男童女乃至畜生應於是中生慈悲心:『我行如是精進作如是願若眾生見我及與我食者皆生天上。』迦葉阿蘭若比丘若得麁食若得細食受是食已應觀四方此村邑中誰貧窮者當減此食以施與之若見貧人所可乞食即分半與若不見貧者應生是心:『我眼所不見眾生我所得食於中好者願施與之我為施主彼為受者。』

迦葉阿蘭若比丘乞食得受食已持至阿蘭若處淨洗手足淨沙門儀式具一切淨法如法取草已結[4]趺坐坐已而食心無愛著亦無貢高無有瞋心無濁亂心臨欲食時如是思惟:『今此身中有八萬戶蟲蟲得此食皆悉安樂我今以食攝此諸蟲我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時以法攝。』迦葉又時阿蘭若比丘食或不足應作是:『我今身輕能修忍辱斷除諸惡少大小便得身輕已亦得心輕又得少睡亦不起欲想。』應作如是思惟迦葉阿蘭若比丘若乞食得應生知足想應於食中減取一摶置淨石如是思惟:『有諸鳥獸能噉食者我以施之彼為受者。』迦葉阿蘭若比丘食已洗鉢漱口洗手淨滌應器手拭令乾舉僧伽梨[5]蘭若處行不離本所思惟法相迦葉阿蘭若比丘行阿蘭若行時若是凡夫未得沙門果或時虎狼來至其所若見不應生畏作如是:『我本來至阿蘭若處時已捨身命我不應驚畏應修慈心離一切惡亦離怖畏若諸虎狼斷我命根噉我身肉當生是念我得大利以不堅身當得堅身此諸虎狼我不與食噉我肉已身得安樂。』迦葉阿蘭若比丘行阿蘭若法應如是捨身命

迦葉阿蘭若比丘行阿蘭若法若有非人或作好色或作惡色來至其所於此非人不生愛心不生瞋心或有曾見佛諸天來至阿蘭若所作諸問問難已阿蘭若比丘隨力所能隨所學法為諸天說或時諸天有深問難阿蘭若比丘若不能答不應生於憍慢之心應作是言我不多聞汝莫輕我我今當勤修學佛法時我得通佛法已能一切答。』又應勸請諸天汝等今當為我說法我當聽受。』又應如是報謝言:『願勿嫌也。』復次迦葉阿蘭若比丘行阿蘭若法善修阿蘭若想猶如草木瓦石無主無我亦無所屬此身亦爾無我無命無人無眾生無諍訟此法皆從緣合而生於此法中若善思惟我當得斷一切諸見常應思惟空無相無作法迦葉阿蘭若比丘行阿蘭若法[6]藥草及諸樹林云何和合云何散如此外物無主無我無有我所亦無諍訟自生自滅無生滅者迦葉如草木瓦石無我無主亦無所屬此身亦爾無我無命無人無眾生無諍訟從眾緣生緣離則滅此如實中無有一法若生若滅迦葉如是法阿蘭若比丘至阿蘭若處所應修行迦葉阿蘭若比丘行如是法若學聲聞乘疾得沙門果若有障法現世不得沙門果者不過見一佛二佛三必定得斷一切諸漏若學菩薩乘現世得無生法忍得無障法必見未來諸佛疾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說此阿蘭若品時有五百比丘斷一切漏心得解脫

乞食比丘品第六

佛告迦葉:「云何比丘乞食迦葉若有比丘先安住本誓:『我依乞食出家我今住先誓。』彼比丘專念[7]無有諛諂離一切請食離一切僧中供養堅自莊嚴乞食比丘於一切味中不應生好味想又於上妙食中自勸其心生如是想我如旃陀羅應淨身心不應淨飲食何以故食好食已一切為糞臭穢不淨故我不應求好。』如是調伏心已若入城邑聚落次第乞食不應生如是想:『男子與我食非女人女人與我食非男子童男與我食非童女童女與我食非童男應得細食非麁食應得美食非不美食[1]應故與食非不故[2]易得食非不應速得食非不速若入人村應得恭敬非不恭敬應得新食非宿食應得富家食非貧家食男子女人眾應來迎我。』迦葉乞食比丘如是不善法不應思惟迦葉乞食比丘應如是自莊嚴此是乞食常所行法若乞食時得與不得無有憂喜不應生於麁細食想何以多有眾生貪著美味由著味故作諸惡業惡業因緣故墮於地獄畜生餓鬼若知足者不貪美味應捨細食受取麁食除舌著味其心知足得極麁食亦當知足彼若命終生於天上或生人中生天上已食天美食迦葉是乞食比丘離於味愛以調伏心若七日噉豆亦不生憂何以故趣活身故我今食已足以修道以是故食迦葉乞食比丘得此食分墮鉢中者如法所得如法利養應與梵行比丘共食此食迦葉乞食比丘或時有病有使人不能乞食此應如是調伏其心:『我獨無侶一身出家法是我伴我應念法今我病如世尊說諸比丘應念於法我所聞法應善思惟云何善思惟如實觀身如實觀身已有智慧者若獨一心能得初禪則有是處。』初禪樂若一日若二日乃至七日以禪為食其心歡悅迦葉乞食比丘行如是法若不得應如是勤行安住善法中有多人所知天龍神送食與之此是離[3]報故迦葉乞食比丘值天大雨或大風塵不能乞食時以慈為食而自莊嚴於所行法安住思惟若二夜三夜不得食者應生是念:『有多眾生墮餓鬼中作惡業故苦惱所切乃至百歲不得一唾我今安住諸法門中應生是念身心羸劣今我堪忍飢渴勤修聖道不應退轉。』乞食比丘不應親近在家之人男子女人童男童女迦葉若乞食比丘令在家人擇去食中諸不淨物於坐處坐應為說法乃至食淨還受食已從坐起去迦葉乞食比丘不應自現諛諂云何自現諛諂若為他人說如是:『我今乞得麁惡之食又復不足與多眾共我食少我今飢渴身力羸劣。』迦葉是名自現諛諂迦葉乞食比丘如是之事應當遠

迦葉乞食比丘於一切事應生捨心若食墮鉢中若麁若細若少若多若淨若不淨一切應受心無憂喜常應淨心觀諸法相得活身為行聖道是故受食迦葉乞食比丘或時入於城邑聚落次第乞食若不得食空鉢而出應念如來有大威德捨轉輪王位而行出家斷一切惡法成一切善法入村乞食尚空鉢出況我薄福不種善根不空鉢還也是故不應生憂何以故不種善根能得麁食細食無有是處我不得食或自有魔或魔所使或魔覆蔽諸婆羅門居士令我乞食不得我當勤修離於四魔斷一切煩惱若我勤修如是道已非魔波旬非魔所使能作留難乞食比丘應如是受持聖種。」

糞掃衣比丘品第七

佛告迦葉:「畜糞掃衣比丘拾糞掃物作如是:『為慚愧故非以衣自嚴飾故為障風吹日曝蚊虻蟇子諸惡觸故安住佛教故非求淨好故於糞掃中拾取棄物。』取時應生二種想何等二一者知足想二者易養想復生二想一者無慢想二者持聖種想復生二想者不以嚴身二者令心淨故迦葉畜糞掃衣比丘於糞掃中拾取棄物時若於是處見諸親族知識見已即止不取而作是念:『此諸人輩或呵責我言:「汝是不淨人。」』迦葉我說是比丘不得淨行何以故畜糞掃衣比丘心堅如外物不入亦不能動故迦葉畜糞掃衣比丘拾糞掃中物應淨浣濯令無垢膩浣已好染已作僧伽梨善合善綴善縫善受受已應著莫令綻壞迦葉畜糞掃衣比丘安住不淨觀中著糞掃衣為離欲故慈心著糞掃為離瞋恚故觀十二因緣著糞掃衣為離癡故正思惟著糞掃衣為斷一切煩惱故護諸根著糞掃衣為知六入故[4]諂著糞掃衣為令諸天龍神喜悅故迦葉何故名糞掃衣迦葉譬如死[5]人所不貪不生我所法應除棄迦葉如是糞掃衣非我非我是易得非邪命不求他不觀他顏色捨棄之物糞掃無異亦無所屬是故名糞掃衣糞掃衣是法幢以大仙人故是姓以聖人是安住以聖種故是專念以善法儀式故是善護以戒眾故是向門以定眾故是安住以慧眾故是身以解脫眾故是順法以解脫知見眾故迦葉如是畜糞掃衣得大福德所希求無所貪著能離慢心能捨重擔迦葉若有比丘畜糞掃衣以知足故諸天龍鬼神貪樂欲見迦葉畜糞掃衣比丘若入禪定梵四天王長跪合掌頭面作禮況餘小天若有惡比丘勤求衣服以嚴飾身外現淨行而內具足貪欲恚癡雖作如是好嚴飾身而諸天龍神不至其所禮敬供養何以故此比丘勤求衣服以嚴飾身不除心心數法諸天知故則遠捨去

迦葉汝見周那沙彌拾不淨臭穢糞掃中物[1]已至阿耨大池欲浣濯之爾時池邊有常住諸天皆遠奉迎頭面作禮彼諸天等皆樂淨潔而取周那沙彌所捉不淨糞掃衣而為浣之令無垢穢取浣汁自以洗身諸天知周那能持淨戒諸禪定有大威德是故奉迎恭敬作禮迦葉汝見須跋陀梵志著淨潔衣乞食已欲至阿耨大池時常住諸天於池四面面各五里遮梵志不令近池恐以不淨食及以殘食污此大池迦葉汝今現見此事以聖人正行威德故得是果周那沙彌所有不淨糞掃中物而諸天取之為浣亦以浣汁自洗其身須跋陀梵志去池五里不令近之迦葉誰聞是已於聖法中不勤修學彼諸聖人諸天世人來頭面禮敬供養迦葉欲求如是聖德故糞掃衣迦葉畜糞掃衣比丘安住聖種不應生憂於糞掃衣應生塔想應生世尊想應生出世想應生無我無我所想如是觀已著糞掃衣應如是調伏其心由心淨故得身淨身淨故得心淨迦葉是故當淨其心莫嚴飾何以故由心淨故於佛法中得名梵行迦葉如是畜糞掃衣比丘能如是學則為學我亦學於汝迦葉若汝能畜如是麁衣便知足行於聖種迦葉汝僧伽梨若著床上若在坐處[2]憂多羅僧經行則有千萬諸天禮汝僧伽梨此僧伽梨是戒定慧所薰者覆身之衣迦葉當知汝衣尚得如是尊重禮敬況汝身耶迦葉我捨轉輪王位出家學道所著好上妙繒衣頭羅衣好細疊衣諸上妙一切著已我今知足行於聖種為餘人故身捨[3]好服畜塚間衣若當來比丘聞我此法即得學我迦葉汝本有金縷上衣我從汝索汝持與我迦葉我愍汝故即為汝受以貪故非以嚴身故迦葉有惡比丘不能學我亦不學汝為貪所覆多畜衣鉢積聚飲食藏舉不捨亦畜金銀琉璃穀米牛羊鷄猪驢馬車乘犁具家業所須皆求畜之迦葉有智之人雖在於家能增善法非癡人出家得是善分云何智人在家能增長善法迦葉若有出家以袈裟遶項無沙門行多有緣事種種繫縛求好衣食著袈裟已在家人見禮敬給施衣服飲食臥具湯藥來去迎送迦葉在家之人得如是善法彼出家人無有是事何以彼出家人多求所須不能施他故迦葉當來有比丘多畜衣鉢多有諸物時彼比丘多為諸在家人所見禮敬尊重讚歎何以故謂是比丘多受他施或持與我我有所須能時時與迦葉或有比丘持戒見世過患勤修善法離一切漏如救頭然其心知足少諸緣勤修自利離於一切習惡緣者而彼比丘無人往至其所無親近者無禮敬尊重讚歎何以故彼在家人輕躁淺薄見現世利不見後世利彼在家人生如是心:『此比丘邊不得利益用親近為用禮敬尊重讚歎為?』貧窮人少善根者宿緣應敬者迦葉如是人等親近禮敬尊重讚歎持戒比丘以為善知迦葉如是說已稱可二種人意何等二者若見四聖諦二者若見生死過患復有二一者勤行欲離四[*]二者欲得沙門果復有一者專念業報二者欲知諸法相義我今閉塞一切懈怠者門所謂不知業不知業報者離善儀式者不見後世過惡喻如金剛見現世利不見後世利不生一念向解脫門者迦葉我今說彼惡比丘不應希望說如是法若遇如是法聞如是法已自知所不解深法而誹謗之謂非佛說是論師作或魔所說用教餘人彼惡比丘如是自害亦復害他自染垢污亦垢污他是惡比丘不能自利亦不利他。」

爾時摩訶迦葉白佛言:「世尊如諸佛大悲故說專行比丘於諸法中得自在者如來於此經中已廣說竟世尊若有眾生聞此經已信解讀誦向如實法當知是諸眾生已為諸佛之所攝取。」

爾時佛告阿難:「若有受持是經者已於先佛種諸善根故今欲得此經讀誦通利欲得解脫所謂善男子善女人若出家學若在家此法門能斷諸漏亦得涅槃。」

阿難白佛言世尊我欲受持此經當何名此經云何受?」

佛告阿難:「此經名選擇一切法寶』,亦名住聖種儀式』,亦名攝取持戒者』,亦名節解破戒者』,亦名寶梁』,亦名[1]』,亦名寶藏』,亦名諸寶法門』。」

摩訶迦葉問大乘諸比丘眾聞佛所說歡喜奉行

大寶積經卷第一百一十四

 

대보적경 제113

 

 

 

 

 

 

 

북량(北梁) 사문 석도공(釋道龔) 한역

 

 

송성수 번역

 

 

 

 

44. 보량취회(寶梁聚會)

 

 

1) 사문품(沙門品)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기사굴산(耆闍崛山)에서 큰 비구 대중 8천 명과 함께 계셨다. 보살마하살도 만 6천 명이 있었는데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았고 일생보처(一生補處)였으며 모두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로부터 와서 모인 이들이었다.

 

그때 마하 가섭(摩揀迦葉)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사문(沙門)이라 함은 어떤 이를 사문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이른바 사문이란 번뇌가 고요히 사라졌기 때문이요 다스렸기 때문이며 교법을 받기 때문이요, 계율의 몸이 깨끗하기 때문이며 선정에 들기 때문이요, 지혜를 얻기 때문이며 사실대로 이치를 알아 해탈을 얻기 때문이요, 삼해탈문(三解脫門)에 의심함이 없기 때문이며, 성인이 행한 법에 편히 머무르기 때문이요 4념처(念處)를 잘 닦기 때문이며, 온갖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기 때문이니라. 4정근(正勤)에 편히 머무르기 때문이요, 4여의족(如意足)을 잘 닦기

때문이며, 믿음의 뿌리[信根]를 성취하기 때문이요, ··승을 믿기 때문이며, ··승에 대한 굳은 믿음을 성취하기 때문이요, 그 밖의

 

 

 

삼해탈문

[  ]

약어
삼탈문()

해탈에 이르기 위해 닦는 세 가지 선정().
(1) 공해탈문(). 모든 현상은 인연 따라 모이고 흩어지므로 거기에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고 관조하는 선정.
(2) 무상해탈문(). 대립적인 차별을 떠난 선정.
(3) 무원해탈문(). 원하고 구하는 생각을 버린 선정.

[네이버 지식백과] 삼해탈문 [三解脫門] (시공 불교사전, 2003. 7. 30., 곽철환)

4념처(念處)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부처님은 <우루벨라>촌 <나이란자라>강 곁에 있는 보리수 밑에 계셨는데, 부처되신지 오래지 않으셨다.

그 때 세존은 홀로 고요히 선정 속에 들어 계시다 이렇게 생각하셨다.
일승(一乘)의 도가 있어서 능히 뭇 삶들을 깨끗이 하고 온갖 근심과 슬픔을 제도하고 고통과 번뇌를 없애 진여(眞如)의 법을 얻게 하나니 이른바 네 가지 살필 곳을 생각함(四念處)이다. 네 가지 살필 곳이란 무엇일까.

몸(身)을 살피어 생각할 곳이요, 느낌(受), 마음(心),  법(法)을 살피어 생각할 곳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네 곳 생각하기를 즐겨하지 않으면

성스러운 법을 즐겨하지 않는 것이요, 성스러운 법을 즐겨하지 않으면

감로법을 즐겨하지 않는 것이요, 감로법을 즐겨하지 않으면

태어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괴로움, 번민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만일 네 곳 생각하기를 즐겨 닦으면

성스러운 법을 즐겨 닦는 것이요, 성스러운 법을 즐겨 닦으면

감로법을 즐겨 하는 것이요, 감로법을 즐겨하면

태어남, 늙음, 병, 죽음과 근심, 슬픔, 괴로움, 번민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수행의 출발점은 사념처다.

사념처는 신(身), 수(受), 심(心), 법(法)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몸()은 더럽다고 생각하고,

느낌()은 괴롭다고 생각하고,

마음()은 무상하다고 생각하고,

법()은 무아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념처다. 그런데

<중아함 염처경(念處經)> 을 보면 여러 가지 사념처 수행 방법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깊이 살펴보면 이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념처(身念處) - 수행은 자신의 행동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데서 출발한다.

가고 머물고 앉고 눕고 자고 일어날 때 자신의 행동을 놓치지 않고 주시한다.

그렇게 자신의 행동을 주시하다 보면 이전의

습관에 의해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행동했던 잘못된 행동이 의식될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행동인지를 느낄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행동을 주시함으로써

과거의 악행을 발견하면 그것을 끊도록 노력하고, 선행을 발견하면 자신의 몸에 익히도록 노력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사정단이다. 따라서 사정단<사정근>은 사념차와 별개의 수행이 아니라

사념처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행하는 수행인 것이다.


사념처를 수행하는 가운데

사정단을 통해서 악하고 불선한 법을 떠나면 그것이 4선(四禪) 가운데 초선(一禪)의 경지다. 자신이

초선에 들어가면 자신이 초선에 들어가서 초선에서 생기는 기쁨을 느끼고 있음을 놓치지 않고 계속 주시한다.

그렇게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주시하는 가운데

제2선(二禪), 제3선(三禪), 제4선(四禪)에 차례로 들어가게 되면,

새로운 선정에 들어갈 때마다 주시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면

 

제4선(四禪)에 이르러

명경 지수와 같이 맑고 고요해진 마음으로 자신의 몸이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차 있음을 관하고

자신의 몸이 六界로 되어 있음을 관찰한다.

9차제정(九次第定)  가운데 4선(四禪)을 수행하여 도달한

제1처(第一處), 즉 촉입처에서 지, 수, 화, 풍, 공, 식, 육계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몸은 촉에서 발생한 의식들이 모여 있다는 것을 깨닫고서 이러한 몸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 위하여

백골관이나 부정관을 하는 것이 신념처다.

 

 


 수념처(受念處) - 신념처의 수행을 하면서 자신의 몸을 통해 느껴지는 느낌(受)을 관찰하는 것이다.

괴로움이 느껴지면

즐거움이 느껴지는 것을 의식하고, 즐거움이 느껴지면 괴로움이 느껴지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느낌(受)이 촉을 통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즉

수(受)가 실체가 없이 연기한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수(受)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 위해서 모든 느낌을 괴로움으로 관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얻게 되는

선정이 청정한 무관심의 경지인 제4선의 경지이다.

 

 


 심념처(心念處) - 자신의 마음 속을 관찰하는 것이다.

마음에서 생기고 없어지는 탐, 진, 치에 대하여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탐, 진, 치에 묶여 있으면 묶여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해탈해 있으면 해탈해 있음을 의식하는 것이 심념처다.

심념처는 신념처와 수념처의 수행을 통해 변화하는 마음의 상태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수행을 통해 결박으로부터 해탈로 향해 가고 있는 마음의 상태를 스스로 자각하는 것이 심념처다.

 

 


 법념처(法念處) - 신적 대상에 대한 탐욕과 혐오를 극복하는 수행법이다.

앞의 세 가지 외에는 자아라고 할 실체가 없고,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십이입처에서 생긴 의식들이 기억되어 모여 있는 것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눈을 통하여 생기는 번뇌의 생멸에 대하여 깨닫는 것을 말한다.

 

 

 

 

 

 


 

4정근(正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에 붓다는 <수라바스티>국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장자의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가지 바른 끊음이 있으니

1. 끊을 것을 끊음(斷斷)이요,

2. 몸가짐을 잘 가져 끊음(律儀斷)이요,

3. 생각을 지키어 끊음(隨護斷)이요,

4. 닦아 끊음(修斷)이다.

 

 

1. 끊을 것을 끊음(斷斷)이란 무엇인가.

수행자가 이미 일어난 악한 법을 끊으려는 마음을 내어 방편으로 꾸준히 힘써 거두어들이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한 법은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마음을 내어 방편으로 힘써 거두어들이며,

아직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은 일어나게 하려는 마음을 내어 방편으로 힘써 거두어들이고,

이미 생긴 착한 법은 더욱 닦아 익히려는 마음을 내어 방편으로 꾸준히 힘써 거두어들이면 이것을 끊을 것을 끊음이라 한다.


2. 무엇이 몸가짐을 잘 가져 끊음(律儀斷)인가. 만일

수행자가 눈을 잘 단속하여 은밀히 조복하고 나아가고,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 뜻을 은밀히 조복하여 나아가면 이것을 몸가짐을 잘 가져 끊음이라 한다.

 

3. 무엇이 생각을 지키어 끊음(隨護斷)인가.

수행자가 여러 진실한 삼매를 잘 지키는 것이니 사람이 죽으면 그 몸이 파랗게 썩는다는 생각, 문드러진다는 생각 등

부정관(不淨觀)을 닦아 익히 물러가거나 사라지지 않게 하면 이것이 생각을 지키어 끊음이라 한다.

 

4. 무엇이 닦아 끊음(修斷)인가. 만일

수행자가 네 가지 곳 생각함 사념처(四念處)를 닦으면 이것을 닦아 끊음이라 한다.

 

 

사념처를 수행하면서 선과 악이 의식되면 악은 그치도록 노력하고 선은 증장하도록 힘쓰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념처의 수행에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모든 수행에 들어갑니다. 팔정도와 오근, 오력, 칠각지에

사정근이 정진의 내용으로서 작용합니다. 다시 말해서 정진의 구체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①단단(斷斷) - 이미 행하고 있는  악(惡)을 없애려고 부지런함.

 

율의단(律儀斷) - 아직 행하지 않은 악(惡)은 미리 방지하려고 부지런함.

 

③수호단(隨護斷) - 아직 행하지 않은 선(善)은 생기도록 부지런히 행함.

 

④수단(修斷)  이미 행하고 있는 선(善)은 더욱 더 자라게 하려고 부지런함.

 

 

 

 

 

 

 

 

4여의족(如意足)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 때에 붓다는 <코삼비>국 <고시카라마> 동산에 계시었고

존자 아난다도 거기 있었다. 그 때 어떤 바라문이 존자 아난다에게 나아가 인사한 뒤 한쪽에 앉아 아난다에게 물었다.
존자여 무엇 때문에 사문 고타마 밑에서 범행(梵行)을 닦습니까?
탐욕과 애착을 끊기 위해서입니다.
존자 아난다님, 무엇을 의지해서 탐욕과 애착을 끊을 수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하고자 함(欲)을 의지해 탐욕과 애착을 끊습니다.
존자 아난다님, 그렇다면 그 하고자 함은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까?
바라문이여, 그것은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존자 아난다님, 어떻게 해서 끝이 없는 것이 아닙니까 ?
바라문이여, 비유로써 내가 물어볼 테니 마음 먹은 대로 대답해 보시오.

바라문이여, 그대는 어떤 하고자 함이 있어서 이 정사(精舍)에 온 것이 아닙니까 ?
그렇습니다. 아난다님.
그렇다면 바라문이여, 이미 정사에 왔으니 그 하고자 함은 쉬지 않았습니까 ?
그렇습니다. 존자 아난다님.
정사에 오기 위해 노력하고 준비하고 계획해서 결국 이 정사에 이르렀으니까 그 계획 등을 쉰 것입니다. 존자 아난다는 그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바라문이여, 여래 등정각께서 알고 보시는 것도 이와 같으니

여래는 네 가지 여의족(四如意足)을 말씀하시어 일승의 도로써 중생을 깨끗이 하고 괴로움을 없애주며 근심과 슬픔을 끊어줍니다. 그 넷이란 하고자 함(欲)으로

 

 

선정을 얻어 번뇌를 끊고 성취하는 여의족과,

힘써 나아감(精進),

마음(心)의 휴식,

사유(思惟)의 휴식으로 선정을 얻어 번뇌를 끊고 성취하는 여의족입니다.

 

 

이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는

 

 

하고자 함으로 선정을 닦아 여의족을 얻음으로써 떠남과 욕심 없음과 벗어남과 없어짐으로 그 하고자 함도 또한 쉽니다. 또한

힘써 나아감,

마음의 휴식,

사유의 휴식으로 선정을 닦아 여의족을 얻음으로써

 

 

평등(捨)을 향하고 마침내는 힘써 나아간다는 생각과 선정을 닦는다는 그 사유까지 쉽니다.

 

 

바라문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것이 곧 끝이 아닙니까?
바라문은 말하였다.
존자 아난다님, 그것은 곧 끝이요, 끝 아님이 아닙니다.
그 때 바라문은 존자 아난다의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여의(如意)란

일을 뜻대로 할 수 있는 신통력으로 정()을 얻는 수단을 말한다.

수행을 통해 얻게 되는 자재한 경지를 의미한다.

불교의 수행은 허망한 존재, 즉 유위(有爲)를 조작하는 행을 멸하여 무위(無爲)의 열반을 성취하는 데 있다.

4여의족은

행을 멸하는 수행의 네 단계와 그로 인해 성취되는 수행의 결과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욕정단행성취 여의족(欲定斷行成就 如意足)

욕()이 주인이 되어  선정을 얻으려는 노력을,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열반이라는 수행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의욕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의욕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을 욕정(欲定)이라고 한다. 이렇게 오직

열반을 성취하리라는 의욕에 찬 생각에 마음을 집중함으로써

유위를 조작하는 삶, 즉 행이 그치는 것을 단행(斷行)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올바른 수행의 목적을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려는 의욕에 마음을 집중하면 헛된 욕망이 사라져 유위를 조작하는 행이 멸한다는 것.

 

 

 

 정진정단행성취 여의족(精進定斷行成就 如意足)

의욕이 있으면 노력해야 된다. 여실히 수행하는 데 마음을 집중하는 것

 

 

 

 심정단행성취 여의족(心定斷行成就 如意足)

심정(心定)은 마음이 삼매에 드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색계 4선(四禪)을 열심히 수행하여 제4선(第四禪)에 이르는 것이다.

 

 

 

 사유정단행성취 여의족(思惟定斷行成就 如意足)

사유정(思惟定)은 마음을 집중하여 깊은 성찰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제4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마음이 명경 지수와 같이 고요해진 상태에서

무색계의 공처, 식처, 무소유처, 비유상비무상처(비상비비상처) 등을 사유하는 것이다.

 

 


네 가지 선정을 얻어 지혜와 선정이 같아 원하는 일을 다 얻으므로 사여의족(4如意足)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혜와 선정이 같으면 결사(번뇌)를 끊으므로 끊는 행적이 여기에 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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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7 / 3476]

 

 

 

()를 믿지 않기 때문이며, 부지런히 행하면서 온갖 번뇌를 여의기 때문이며, 7보리분(菩提分)을 잘 닦으면서 온갖 착하지 않은 일을 여의고, 온갖 착한 법을 진실하게 닦기 때문이니라. 바른 기억[正念]과 바른 지혜의 방편을 잘 알기 때문이요, 오로지 모든 착한 법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며, 선정과 지혜의 방편을 잘 알기 때문이요, 다섯 가지 힘[五力]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온갖 번뇌의 어지러움을 당하지 않기 때문이요, 7보리분법을 잘 닦기 때문

이며, 온갖 법 안의 인연과 방편을 잘 알기 때문이요, 거룩한 도[聖道]의 방편을 잘 알기 때문이니라. 바른 소견[正見]과 바른 선정[正定]의 방편을 잘 알기 때문이요, 네 가지 변재의 힘을 얻고서 외도를 믿지 않기 때문이며, 이치[]에 의지하면서 말[]에 의지하지 않고, 지혜[]에 의지하면서 의식[]에 의지하지 않으며, 분명한 이치의 경전[了義經]에 의지하면서 분명하지 않은 이치의 경전[不了義經]에 의지하지 않고, ()에 의지하면서

사람[]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네 종류 악마를 여의기 때문이요, 5()을 잘 알기 때문이며, 온갖 번뇌를 끊기 때문이요, 최후의 몸을 얻기 때문이며, 나고 죽음의 길을 여의기 때문이요, 온갖 애욕을 여의기 때문이며, 부지런히 행하면서 괴로움[]을 알고 쌓임[]을 끊으며 사라짐[]을 증득하고 도()를 닦기 때문이요,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를 잘 보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법 가운데서 다른 도()를 믿지 않기 때문이니라

. 할 일을 다 마쳤기 때문이요, 온갖 번뇌[]을 끊었기 때문이며 여덟 가지 떠나버림[八背捨]을 닦기 때문이며, 제석(帝釋)과 대범(大梵)천왕의 칭찬을 받기 때문이요, 본래부터 오로지 도를 수행하는 데에만 마음을 쓰기 때문이며, 아란야(阿蘭若)의 처소를 좋아하기 때문이요, 거룩한 법 안에 편히 머무르기 때문이며, 부처님 법의 의식(儀式)을 좋아하기 때문이요, 마음이 기울어 동요하지 않기 때문이며, 출가한 대중이나 집에 있는 대중을 친하게 가까

이 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마음에 혼자 다니기를 좋아함은 마치 무소의 뿔과 같기 때문이요, 사람들이 많이 괴롭히고 어지럽게 함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혼자 머물러 살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요, 혼자 머물러 살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요, 항상 삼계(三界)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진실한 사문의 과위[沙門果]를 얻기 때문이요, 온갖 희망을 여의기 때문이며, 세간의 여덟 가지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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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8 / 3476]

 

즉 이익과 손해와 뒤에서의 비방과 칭찬과 앞에서의 찬양과 훼방과 괴로움과 즐거움 등을 여의기 때문이니라. 굳은 마음으로 동요하지 않음이 마치 땅과 같기 때문이요, 그와 나의 뜻을 보호하면서 범한 것이 없기 때문이며, 혼탁하지 않기 때문이요, 바르게 행하기 때문이며, 마음을 쓰고 성취함이 마치 허공과 같기 때문이요, 모든 형상에 대하여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음이 마치 허공 안에서 손을 움직여도 걸리는 것이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만일 이와 같이 행하는 법을 성취하게 되면 이것을 사문이라 하느니라.”

 

그때 마하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전에 없었던 일이옵니다. 여래께서는 사문의 덕행(德行)을 잘 말씀하여 주셨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미래 세상에 어떤 여러 사문 가운데서 진실하지 못한 사문이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바로 사문이다'라고 하거나, 청정한 행[梵行]을 행하지 않은 사문이 스스로 말하기를 '나에게는 청정한 행이 있다'라고 한다면 이러한 사람들이야말로 곧 벌써 여래의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쌓고 모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침범하고 훼손한 것이옵니다.”

 

이렇게 여래의 보리를 침범하고 훼손하는 죄는 말로써는 다할 수 없느니라. 가섭아, 내가 멸도(滅道)한 뒤에는 너나 그 밖의 큰 제자들도 역시 다 멸도할 것이요, 또 이 세계의 모든 큰 보살들도 모두가 다른 지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 가게 될 터인데, 그때 나의 법 안의 어떤 비구들은 모든 행하는 일에 아첨과 굽은 마음이 많이 될 것이니라.

 

가섭아, 나는 이제 사문이 짓는 때[]와 사문으로서의 허물들을 말하겠느니라.

 

가섭아, 마지막 말법(末法) 동안의 어떤 비구들은 몸을 닦지도 않고 계율을 닦지도 않으며 마음을 닦지도 않고 지혜를 닦지도 않아서 어리석음이 마치 어린 아이가 어두운 데를 향하면서도 아는 것이 없는 것과 같을 것이요 마음이 조복되지 않았으므로 사문의 때[沙門垢]를 이룰 것이니라. 가섭아, 어떤 것을 사문의 때라 하는가. 가섭아, 사문의 때에는 서른 두 가지가 있나니, 출가한 사람은 마땅히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서른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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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9 / 3476]

 

인가 하면 탐내는 거친 생각[欲覺], 성내는 거친 생각[瞋覺], 남을 해치려는 거친 생각[惱覺],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것, 다른 이를 헐뜯는 것, 삿되게 이익을 구하는 것, 이익으로 인하여 이익을 구하는 것, 남이 보시하는 복을 훼손하는 것, 죄과를 감추고 숨기는 것, 집에 있는 사람[在家人]을 가까이 하는 것, 출가한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 대중의 시끄러운 장소를 좋아하는 것, 미처 이익을 얻기 전에 방편을 써서 구하는 것, 다른 이의 이

익에 대하여 희망하는 마음을 내는 것, 자기의 이익에 만족할 줄 모르는 것, 다른 이의 이익에 질투하는 것, 항상 다른 이의 허물을 구하는 것, 자기의 허물은 보지 않는 것, 해탈하는 계율을 굳건히 지니지 않는 것, 자신에게 부끄러워하고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 공경하고 삼가하는 뜻이 없으며 젠체하고 마음이 들떠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 모든 번뇌[結使]를 일으키는 것, 12인연(因緣)을 거스르는 것, 치우친 소견[邊見]을 취하는

, 번뇌가 고요히 사라지지도 않고 욕심을 여의지도 않는 것, 나고 죽음을 좋아하면서 열반을 즐기지 않는 것, 외전(外典)을 좋아하고 즐기는 것, 다섯의 덮개[五蓋]가 마음을 가리어 모든 번뇌를 일으키는 것, 업보(業報)를 믿지 않는 것, 삼해탈문을 두려워하는 것, 깊고 묘한 법을 비방하면서 번뇌를 고요히 사라지게 하는 행이 아닌 것, 3()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존경하지 않는 것 등이 바로 사문의 때이니라. 가섭아, 이것을 사문의 서른두 가

지 때라고 하나니, 만일 이 모든 때를 여의게 되면 이를 사문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또 사문의 행을 가리는 여덟 가지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스승과 어른을 공경하거나 순종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교법을 존경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잘 생각[思惟]하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아직 듣지 못했던 법을 듣고 나서 비방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중생이 없고 나도 없고 수명도 없고 사람도 없다는 법을 들은 뒤에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요, 여섯째는 온갖 행()은 본래 생김이 없다 함을

듣고 나서도 유위(有爲)의 법은 이해하고 무위(無爲)의 법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며 일곱째는 차례대로 설명하는 법을 들은 뒤에 몹시 깊은 곳에 떨어지는 것이요, 여덟째는 온갖 법은 생김도 없고 성품도 없고 벗어남도 없다 함을 들은 뒤에 마음이 헤매어 가라앉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것을 사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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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0 / 3476]

 

행을 가리는 여덟 가지 법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은 여덟 가지 법을 출가한 사문이면 마땅히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가섭아, 나는 머리를 깎고 법복을 입었다 하여 사문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이른바 공덕이 있고 의식(儀式)을 두루 갖춘 이라야 비로소 사문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사문이 몸에 가사를 입었으면 마음으로는 마땅히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행을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마음에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행이 없어야만 비로소 나는 가사를 입으라고 허락하였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만일 마음에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 등이 있으면서 몸에 가사를 입으면,

오로지 계율을 지닌 데에만 마음을 쓰는 이를 제외하고는 그 밖에 계율을 지니지 않는 사람은 곧 가사를 태워서 없애게 되느니라. 왜냐 하면 성인의 표식(表式)으로 번뇌가 고요히 사라짐을 따르면서 자비로운 마음을 행하며 욕심을 여의어 없앤 이가 입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너는 이제 나의 말을 들어라. 성인의 표식에는 열두 가지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열두 가지인가 하면 가섭아, 계율을 지니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요, 선정에 드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며 지혜가 있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요, 해탈하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며, 해탈에서 생겨난 지견[解脫知見]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요,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에 드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니라. 12인연(因緣)을 잘 아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요, 4무량심(無量心)을 행하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며, 4()을 행하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요, 4무색정(無色定)을 행하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며, 4()의 바른 선정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요, 온갖 번뇌[]를 끊는 것이 바로 성인의 표식이니라. 가섭아, 이것을 성인의 열두 가지 표식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어떤 비구라도 이 성인의 열두 가지 표식을 완전히 갖추지 못하고서 몸에 가사를 입는다 하면 나는 '이 비구는 바로 삿된 법을 행함이요, 번뇌가 고요히 사라짐을 행하는 것이 아니며, 부처님 법의 행을 여의고 열반을 가까이 하지 않으며, 생사의 행을 따르면서 악마에 걸려들었으므로 생사를 건너지 못하며, 바른 법에서 물러나 삿된 법을 행하고 있다'라고 말하느니라. 가섭아, 그러므로 출가한 비구가 몸에 가사를 입었을 때에 아직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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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1 / 3476]

 

문의 과위를 증득하지 못하였다면 마땅히 여덟 가지 법으로써 가사를 공경하고 존중할 것이니라.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몸에 입은 가사가 마땅히 탑이라는 생각과 세존이라는 생각과 고요히 사라진다는 생각과 인자하다는 생각과 공경하기를 마치 부처님과 같다는 생각과 자신에게 부끄러워한다는 생각과 남에게 부끄러워한다는 생각과 나로 하여금 오는 세상에 탐냄·성냄·어리석음을 여의고 사문의 법을 갖추게 할 것이라는 생각 등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가섭아,

것을 여덟 가지 법으로써 가사를 공경하고 존중한다고 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네 가지 성인의 성품[四聖種]에서 만족할 줄을 모르고 사문의 법을 여의거나 또한 이 여덟 가지 법으로써 가사를 공경하거나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는 따로 사문 비슷한 이들만이 고통을 받는 작은 지옥에 떨어지느니라. 가섭아, 그 지옥 안에는 사문 비슷한 이들만이 그 안에서 죄를 받는데 옷과 발우와 온 몸뚱이가 모두 다 불에 활활 타고 있으며 앉고 눕는 곳과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도 역시 모두 활활 타고 있음은 마치 큰 불 무더기와 같나니

, 사문과 비슷한 이들만이 이러한 죄를 받느니라. 왜냐 하면 깨끗하지 못한 몸과 입과 뜻의 업을 성취한 까닭에 이런 죄를 받는 곳에 떨어지는 것이니라. 가섭아, 만일 사문이 아닌 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바로 사문이다'라고 하거나, 범행을 하지 않는 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에게는 범행이 있다'라고 계율을 지니고 공덕이 구족한 사람에게 오른 편을 도는 등의 공경과 존중을 받게 되거나 또 계율을 깨뜨린 비구가 그런 예배 공경과 공양을 받으면서

도 스스로 악()인 줄을 모르면 그 악한 비구들은 이 착하지 않은 뿌리 때문에 여덟 가지 가벼운 법을 얻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여덟 가지 가벼운 법인가 하면 첫째는 어리석은 이가 되고, 둘째는 벙어리가 되며, 셋째는 난장이가 되고, 넷째는 얼굴이 추악하게 생길 뿐더러 비뚤어져서 보는 사람마다 비웃게 되며 다섯째는 여인의 몸으로 바꾸어 나서 가난하여 여종이 되고, 여섯째는 그 몸의 형상이 파리해지면서 일찍 죽게 되며, 일곱째는 사람들의 천대를 받으면서 항상 악한 이름이 있고, 여덟째는 부처님의 세상을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 계율을 깨뜨린 비

구가 계율을 지닌 이들의 예배와 공경을 받으면 이와 같은 여덟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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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2 / 3476]

 

지 법을 얻게 되느니라. 가섭아, 계율을 깨뜨린 비구가 이러한 법을 들은 뒤에는 마땅히 계율을 지닌 비구의 예배와 공경과 공양을 받지 않아야 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어떤 사문이 아닌 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바로 사문이다'라고 하거나 청정한 행이 없는 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에게는 청정한 행이 있다'라고 한다면 이 큰 땅 안에서 눈물을 흘리고 침을 뱉을 곳조차도 없거늘 하물며 발을 올리고 내리고 하거나 가고 오고 하거나 몸을 구부리고 펴고 할 데가 있겠느냐. 왜냐 하면 과거의 대왕(大王)이 이 대지(大地)를 가져다 계율을 지니고 덕이 있는 이에게 베풀어 그 안에서 도()를 행하게 하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이 계율을 깨뜨린 비구가 발을 올리고 내리고 하는 곳에는 온갖 신심 있는 이의 보시가 이 사람에게는 미치지 않거늘 하물며 승방(僧房)과 사방에서 모인 객승이 묵는 절[招提僧舍]이며, 거니는 곳[經行處]이겠느냐. 설령 방사가 있거나 평상이 깔린 곳이나 동산 숲이 있으며 온갖 옷과 발우와 침구와 탕약 등의 온갖 믿음 있는 보시[信施]가 있다 하여도 받지 않아야 되느니라.

 

가섭아, 나는 이제 말하리라. 만일 어떤 사문이 아닌 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바로 사문이다'라고 하거나 청정한 행이 없는 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에게는 청정한 행이 있다'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한 털끝만큼도 믿음 있는 보시를 갚을 수 없으리라. 왜냐 하면 성인들의 복밭은 마치 큰 바다와 같아서 가장 미묘하고 가장 뛰어나 어떤 시주(施主)가 깨끗한 믿음으로 보시의 종자를 그 복밭 안에 심는 것이며, 이러한 시주는 한량없이 보시한다는 생각을

일으킨다.

 

가섭아, 만일 어떤 계율을 깨뜨린 비구가 마치 하나의 털을 백 개로 나누었을 때에 그 악한 비구가 받은 신도의 보시가 그 중의 한 털끝만큼 이라 하여도 그 받은 털끝만한 분량에 따라 곧 시주의 복덕을 덜어내는 것이므로 그렇게 큰 바다와 같이 많은 복의 한 부분이라도 다 갚을 수가 없는 것이니라.

 

가섭아, 그러므로 마땅히 그 마음이 깨끗하여야 다른 이의 신심 있는 보시를 받을 것이니라. 가섭아, 이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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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3 / 3476]

 

그때 대중 가운데서 깨끗한 행이 있고 욕심이 적어서 멍에를 여읜 2백의 비구들이 이런 말을 들은 뒤에 눈물을 닦으면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제 죽어야겠나이다. 사문의 과위를 얻지 못하고서 다른 이의 신심 있는 밥 한 그릇의 보시조차도 받을 수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도다. 선남자들아, 너희들이 그렇게 부끄러워하고 미래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이 마치 금강(金剛)과 같다면 그것이 곧 현재 세상에서의 영락(瓔珞)이니라. 선남자들아, 나는 이제 말하리라. 세상에는 신심 있는 보시[信施]를 받아도 되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두 부류의 사람인가 하면 첫째는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는 이요, 둘째는 해탈을 얻은 이이니라.”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비구로서 해탈을 얻은 이나 착한 법을 행한 이나 내가 말한 것과 같이 견고하게 계율을 지니는 이나 온갖 행이 덧없고 괴롭다는 것과 온갖 법에는 나가 없다는 것을 관찰하는 이가 열반의 경계인 번뇌가 고요히 사라짐[寂滅]을 관찰하면서, 원하고 구하며 얻고자 하면 이러한 비구들은 남의 신시(信施)를 받은 것이 마치 수미산 만큼이라 하여도 그들은 반드시 그 신시의 복을 갚을 수 있느니라. 만일 어떤 비구가 신심 있는 시주의 보시를 받게 되

면 이 시주로 하여금 큰 이익을 얻게 하고 큰 과보를 얻게 하는 것이니라. 왜냐 하면 항상 복덕이 생기기 때문이니, 세 가지 복이 있느니라. 첫째는 항상 음식을 보시하게 하고, 둘째는 절 방사(房舍)를 보시하게 하며, 셋째는 인자한 마음을 행하게 하는 것이니, 이 세 가지 복 중에서 인자한 마음이 가장 뛰어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비구가 시주로부터 보시를 받았을 때에 즉 옷이나 발우나 침구나 탕약 등을 받고 나서 한량없는 선정에 들게 되면 그 시주로 하여금 한량없는 복을 얻게 하고 한량없는 과보를 얻게 하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큰 바다조차도 오히려 다 마르게 할 수 있지마는 이 시주가 얻는 복과 과보는 다할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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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4 / 3476]

 

가섭아, 알아야 하느니라. 계율을 깨뜨린 비구는 시주의 그렇게 많은 복덕을 손상시키게 되나니, 만일 시주의 보시를 받은 뒤에 악한 법을 행하면 남의 신심 있는 보시를 훼손하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러한 것을 사문의 때[]라 하고, 사문의 죄악이라 하고, 사문의 아첨이라 하고, 사문 안의 도둑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계율을 지니는 비구면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마음을 쓰면서 이러한 온갖 악한 법을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가섭아, 이른바 사문이라 함은 눈[]이 빛깔[] 안에 흐르지 않고 귀····뜻이 법()안에 흐르지 않나니, 그러므로 그를 사문이라 하느니라. 6()을 선택하고 6()을 환히 통달하며 6()을 오로지 생각하고, 6()의 법에 편히 머무르며, 6()의 법을 행하는 것이니, 이를 사문이라 하느니라.”

 

 

2) 비구품(比丘品)

 

그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말한 대로 비구란 번뇌를 잘 깨뜨리기 때문에 비구라 하며 나라는 생각[我想]과 중생이라는 생각[衆生想]과 사람이라는 생각[人想]과 남자라는 생각[男想]과 여자라는 생각[女想]을 깨뜨리면 이를 비구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계율을 닦고 지혜를 닦는 이를 바로 비구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두려움을 여의기 때문에, 세 가지 있음[三有]과 네 가지 번뇌의 흐름[四流]을 건너기 때문에, 있음[]과 흐름[]의 모든 허물과 근심을 보기 때문에, 온갖 존재와 흐름을 여의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는 도()에 편안히 처하기 때문에, 이를 비구라 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어떤 비구가 이러한 법과 그 밖의 착한 법을 스스로 성취하지 않은 줄을 알고 또 이 법을 여의면서 그 밖의 도를 행한다면, 가섭아, 그런 비구는 나의 제자가 아니요 나는 그의 스승이 아니니라.

 

가섭아, 악한 비구들이 많이 있어서 나의 불법을 파괴하게 되느니라.

 

가섭아, 95부류 외도(外道)가 나의 법을 파괴하는 것도 아니요, 또한 그 밖의 외도들이 나의 법을 파괴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의 법 안에 있는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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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5 / 3476]

 

갖 어리석은 사람들이 나의 법을 파괴할 뿐이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사자는 짐승중의 왕이라 설령 그가 죽은 뒤라 하여도 범이나 이리나 새나 짐승들 중에는 그의 살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없다. 가섭아, 사자의 몸 속에서 저절로 모든 벌레가 생기어 도리어 그 살을 파먹는 것처럼, 가섭아, 나의 법 안에서도 이러한 악한 비구들이 나와서 이익을 탐내고 이익에 가려져서 악한 법은 없애지 않고 착한 법은 닦지 않으며 거짓말을 여의지 못하나니, 가섭아, 이러한 비구들이 나의 법을 파괴하는 것이니라.

 

가섭아, 네 가지 법을 성취한 이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탐내는 이와 성내는 이와 어리석은 이와 젠체하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잘난 체하면서 아주 방자한 이와 자신에게 부끄러워함이 없는 이와 남에게 부끄러워함이 없는 이와 입의 허물을 삼가지 않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들떠서 동요하는 이와 남을 업신여기는 이와 이익을 탐하는 이와 그릇된 법을 많이 행하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하면 간사하고 거짓이 많은 이와 다른 사람을 현혹되게 하는 이와 삿된 생활을 많이 하는 이와 악한 말을 많이 하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현재 남의 은혜를 받으면서 보답할 줄 모르는 이와 남에게 조그마한 은혜를 베풀면서 큰 보답을 바라는 이와 먼저 다른 이의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와 친한 벗을 침범하고 훼손하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남의 신심 있는 보시를 받고서 다른 이의 복[3266 / 3476]

 

과 과보를 잃게 하는 이와 계율을 잘 지키지 않는 이와 받은 계율을 가벼이 여기는 이와 굳건하게 계율을 지니지 않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나[]가 있다고 논하는 이와, 중생이 있다고 논하는 이와, 수명이 있다고 논하는 이와, 사람이 있다고 논하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부처님을 공경하지 않는 이와, 가르침을 공경하지 않는 이와, 스님을 공경하지 않는 이와, 계율을 공경하지 않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스님네가 화합하는 것을 마음에 기뻐하지 않는 이와 혼자 있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와 대중들 가운데에 있기를 즐기는 이와 항상 세속에 있는 온갖 말들을 논하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이익을 구하는 이와 큰 명예를 구하는 이와 많은 벗들을 구하는 이와 성스런 종자[聖種]에 머물지 않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악마에 매달려 있는 이와 악마에게 해를 당하는 이와 잠을 많이 자는 이와 선()을 행하는 데에 기뻐하지 않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불법 중에서 썩고 망가진 이와 마음에 아첨을 품고 있는 이와 번뇌에 해를 당하는 이와 사문의 과위[沙門果]을 여읜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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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7 / 3476]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음욕의 불에 타고 있는 이와 성냄의 불에 타고 있는 이와 어리석음의 불에 타고 있는 이와 또한 온갖 번뇌의 불에 타고 있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음녀(婬女)가 있는 마을에 많이 놀고 있으면서도 그의 허물을 알지 못하는 이와, 만족할 줄 모르는 이와, 비록 학문이 많다 하더라도 만족할 줄 모르는 이와, 필요한 물건에 대하여 항상 시샘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 다른 이에게 보시하지 못하는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이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어두운 데서부터 어두운 데로 들어가고 어리석음에서부터 어리석은 데로 들어가는 이와 거룩한 진리[聖體]를 보지 못하여 의혹을 많이 내는 이와 항상 생사에 얽매어 있는 이와 열반의 문을 닫어버린 이이니, 이들을 악한 비구라 하느니라.

 

또 네 가지 법이 성취되면 그가 바로 악한 비구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법인가 하면 몸에 간사한 행[姦行]이 많은 이와, 입에 간사한 행이 많은 이와, 뜻에 간사한 행이 많은 이와, 의식(儀式)에 간사한 행이 많은 이이니라. 어떤 것을 몸에 간사한 행이 많다고 하는가 하면 찬찬히 다니는 그것이 몸의 간사한 행이요, 좌우를 돌아보지 않는 그것이 몸의 간사한 행이며, 좌우를 돌아보기는 하나 한 길[一尋]을 넘지 않는 그것이 몸의

간사한 행이요, 삿된 생활을 하여 옷을 입는 그것이 몸의 간사한 행이니라. 아첨하는 마음으로 한적한 곳을 다니고, 한적할 데서 행할 법을 구하지 않으며, 아첨하는 마음으로 걸식(乞食)을 하면서 걸식하는 모양을 관찰하지 않고, 아첨하는 마음으로 누더기[糞掃衣]를 입나니, 부끄러워 할[慚愧] 줄을 모르기 때문이니라. 또 아첨하는 마음으로 산의 굴과 나무 아래를 다니고 12인연(因緣)의 행을 분별할 줄 모르며 아첨하는 마음으로 오래 묵어서 버릴 약

을 먹으면서도 감로(甘露)의 법약(法藥)은 구하지 않는 것이니, 가섭아, 이것을 몸에 간사한 행이 많다고 하느니라.

 

가섭아, 어떤 것을 입에 간사한 행이 많다고 하는가 하면 '다른 이는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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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8 / 3476]

 

안다. 다른 이가 나를 청한다. 구하는 대로 나는 이미 얻었다. 나는 이익을 구하지 않는다. 다른 이가 나에게 아주 훌륭한 공양을 보내주면 나는 모두 받는다. 많은 이익을 나도 역시 얻었다. 나는 항상 착한 법을 행하고 있으므로 공양을 받을 만하다. 나는 문답을 잘한다. 나는 법의 모양에 잘 순종한다. 나는 법의 모양에 잘 거역한다. 나는 온갖 법에 대하여 이치와 이치가 아님을 안다. 다른 이가 만일 나에게 이렇게 물으면 나는 이렇게 잘 대답한

. 대답한 뒤에는 그를 조복시켜 그로 하여금 잠자코 있게 한다. 나는 이것을 말한 뒤에는 대중들로 하여금 모두 다 기뻐하게 한다. 또한 모두가 잘한다고 감탄하는 말을 하게 한다. 그리고 그 대중들로 하여금 나를 청하여 공양하게 한다. 공양을 받은 뒤에는 또 그 시주로 하여금 나를 자주자주 오라고 청하게 한다'라고 하는 것이니라.

 

가섭아, 만일 입을 조복시키지 못하고 말한다면 그렇게 하는 온갖 말은 모두 바른 말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입에 간사한 행이 많은 것이니, 가섭아, 이것을 입에 간사한 행이 많다고 하느니라.

 

가섭아, 어떤 것을 뜻에 간사한 행이 많다고 하는가 하면 마음으로는 끄달리어 옷과 발우와 침구와 의약 등의 이익을 탐하고 구하면서도 입으로는 말하기를 '온갖 이익이 나에게는 필요 없다'라고 하거나 마음으로는 진실로 많이 구하고 있으면서도 '만족할 줄을 안다'라고 거짓으로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뜻에 간사한 행이 많다고 하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음으로는 이익을 구하면서도

 

입으로는 만족할 줄 안다고 하며

 

삿된 생활을 하면서 이익을 구하므로

 

언제나 유쾌한 즐거움이 없느니라.

 

 

그의 마음에는 간사함이 많아서

 

온갖 것을 모두 속이게 되며

 

이러한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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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9 / 3476]

 

도무지 깨끗하지 않은 것이니라.

 

 

모든 하늘과 용과 신()으로서

 

천안(天眼)이 있는 이와

 

모든 부처님·세존께서는

 

모두 함께 그것을 알고 보시하느니라.

 

 

가섭아, 이러한 악한 비구는 착한 법의 의식(儀式)을 여의고 삿된 생활[邪命]을 하기 때문에 3악도(惡道)에 떨어지는 것이니라.”

 

 

3) 전타라품(旃陀羅品)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이를 전타라와 같은 사문 (旃陀羅沙門)이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도살하는 전타라가 항상 무덤 사이를 다니면서 죽은 시체를 구할 때에 자비로운 마음이 없이 중생과 죽은 시체를 보면 몹시 기뻐하는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사문 전타라는 항상 인자한 마음이 없이 시주(施主)의 집으로 가서 착하지 않은 마음을 쓰고 구하던 것을 얻고 나면 귀중히 여기는 마음을 내며 시주의 집에서 이익을 받은 뒤에는 시주에게 부처님의 법과 율[毘尼]을 가르

쳐 주지도 않고 이익만을 위하여 집에 있는 이[在家]들을 가까이 하며 법을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에 인자한 마음도 없고 언제나 이익만을 구하느니라. 가섭아, 이런 사람을 사문 전타라라 하느니라.

 

가섭아, 마치 전타라가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듯이 이른바 대신이나 장자며 모든 작은 왕·찰제리·바라문 그 밖의 서민 및 하천한 이들까지도 멀리하면서 그와 함께 벗이 되려고 하지 않느니라. 가섭아, 이러한 사문 전타라도 역시 모두에게 멀리함을 당하나니, 이른바 계율을 지니고 덕이 있는 사람으로서 공경을 받을 이와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와 하늘··귀신 및 건달바 등이 그런 분들이니, 그가 계율을 깨뜨리고 악한 법을 행하는 줄 알기 때문이

니라. 가섭아, 이들을 사문 전타라라 하느니라.

 

가섭아, 마치 전타라가 지니고 있는 의복과 음식과 모든 필요한 물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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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0 / 3476]

 

좋은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지도 않고 또한 받아쓰지도 않는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사문 전타라가 지니고 있는 옷과 발우와 사용하는 물건들은 모두가 이는 계율을 깨뜨리고 법답지 않으며 몸과 입과 뜻의 업으로 아첨하여 얻은 것이라 계율을 지니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버리면서 좋아하지도 않고 또한 수용하지도 않으면서 이 사람에 대하여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느니라.

 

가섭아, 이들을 사문 전타라라 하느니라.

 

가섭아, 마치 전타라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쓰고 있는 그릇을 가지고 다른 이에게 걸식을 하는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사문 전타라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승방으로 들어가고 다른 집에 이르고 혹은 대중 가운데로 가기도 하며 또한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께로 가고 또한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여래의 탑에 예배하며 또한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가고 오고 구부리고 펴며 또한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다니고 서고 앉고 누우며 온갖 행하는 것이 모두 부끄러

워하는 마음이니, 악한 법을 감추고 숨기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나는 이제 말하리라. 전타라가 이르게 된 곳마다 착한 곳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스스로 악한 법을 행하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이러한 사문 전타라가 이르게 되는 곳도 역시 착한 길[善道]에는 이르지 못하나니, 악한 업을 많이 짓고 악한 길의 법을 막지 않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이들을 사문 전타라라 하느니라.

 

가섭아, 어떤 이를 사문으로서 부패한[敗壞] 사람이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향기와 맛을 갖춘 좋은 술에서 이 술의 제호(醍醐)를 다 짜고 나면 찌꺼기만이 있게 되므로 사람들이 천히 여기고 베풀어 사용함이 없는 것처럼, 가섭아, 이렇듯 부패한 사문도 법 맛[法味]을 여의고 번뇌의 찌꺼기를 취하므로 사람들이 천히 여기고 베풀어 사용함이 없으며 계율을 지니는 향기를 여의고 모든 번뇌를 맡고 있는지라 이르는 곳이 있어도 자기의 이익이 되지 못

하고 또한 남을 이롭게 하지도 못하느니라.

 

가섭아, 이들을 사문으로서 부패한 사람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부패하고 썩었다 함은 마치 먹은 음식이 변하여 더러운 똥이 되어 악취가 나고 깨끗하지 못하므로 사람들이 싫어하고 여의게 되는 것과 같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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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1 / 3476]

 

, 가섭아, 이러한 썩은 사문도 마치 더러운 똥과 같나니, 몸과 입과 뜻의 업이 청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이들을 부패하고 썩은 사문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비유하면 썩은 종자를 대지에다 심어도 끝내 싹과 열매가 생기지 않는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부패하고 파괴된 사문도 비록 부처님 법 안에 있다고 하더라도 선근이 생기지 않고 사문의 과위도 얻지 못하느니라.

 

가섭아, 이들을 부패하고 썩은 사문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어떤 이를 사문으로서의 상자[沙門篋]라 하는가 하면 비유하면 마치 그림이 그려진 상자가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졌는데 그 안에다 더러운 냄새나는 것을 넣으면 갖가지로 깨끗하지 못한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사문으로서의 상자도 밖으로는 사문으로서의 행을 성취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안으로는 갖가지의 더러운 때가 있으면서 모든 악한 업을 행하고 있나니, 가섭아, 이런 이를 사문으로서의 상자라 하느니라.

 

가섭아, 어떤 이를 사문으로서의 구란도(枸欄茶)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구란다꽃의 빛깔과 모양은 산뜻하여 좋지마는 그 몸은 딱딱하여 마치 나무나 돌과 같고 그 냄새는 악취가 나서 마치 똥을 발라 놓은 것과 같으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이 꽃을 보게 되면 가까이 하지도 않고 만지지도 않으면서 멀리 피하며 도망을 가거니와 어리석은 사람들이 보게 되면 그의 허물을 모르고 가까이 하면서 냄새를 맡는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사문으로서의 구란

다도 사문과 같은 행을 나타내기는 하나, 거칠고 사나움이 있으며 오만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면서 더러운 악취가 나고 깨끗하지 못하며 또 계율을 깨뜨리고 의식의 행이 없으면서 바른 소견을 깨뜨린 이이니라.

 

가섭아, 이러한 사문으로서의 구란다는 지혜 있는 이가 가까이 하지도 않고 예배하고 공경하면서 오른편으로 돌지도 않으며 악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멀리하고 여의느니라.

 

가섭아, 어리석어서 마치 어린 아이와 같은 이가 있다면 그러한 어리석은 이들만이 친근할 바요 예배 공경하고 오른편으로 돌면서 그의 말을 믿어 받으리니, 마치 구란다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가섭아, 이들을 사문으로서의 구란다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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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2 / 3476]

 

가섭아, 어떤 이를 사문으로서 이익을 구하는 이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아첨하는 사람은 마음이 항상 인색하여 탐욕에 가려져 있으므로 만일 다른 이의 재물을 보면 희망하면서 얻으려 하며 날카로운 칼과 몽둥이를 쌓아 두고서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서 항상 해치려는 마음이 있으며 설령 빈 늪과 산 숲과 마을을 다니면서도 다른 이의 재물을 희구하고 얻고자 하며 항상 자기 것은 몸에 감추고서 다른 이들이 보지

않게 하려는 이런 마음을 내느니라.

 

가섭아, 이러한 사문으로서 이익을 구하는 이는 마음이 항상 인색하면서 탐욕에 가려져 있으므로 얻은 바의 이익에 있어서도 마음에 만족할 줄을 모르고 다른 이의 재물을 희망하면서 얻고자 하며 이르게 되는 성읍이나 마을에서마다 항상 이익만을 위하고 착한 법은 위하지 않으면서 모든 악()을 감추고 숨기느니라. 이를테면 '착한 비구는 내가 계율을 깨뜨리고 있음을 알 것이요, 알고 난 뒤에 만일 설계(說戒)할 때에 혹은 나를 쫓아낼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서 그 착한 비구에게 두려움만을 내면서 마음에 항상 아첨을 떨면서 의식(儀式)을 나타내게 되느니라. 그러나 온갖 하늘··귀신으로서 천안(天眼)이 있는 이들은 그 비구가 '올 때에는 도둑이 오고 갈 때에는 도둑이 가며 다닐 때에는 도둑이 다니고 앉을 때에는 도둑이 앉으며 누울 때에는 도둑이 눕고 옷을 가질 때에는 도둑이 옷을 가지며 옷을 입을 때에는 도둑이 옷을 입고 마을에 들어갈 때에는 도둑이 마을에 들어가며 마을을 나올 때에는 도둑이 마을을

나오고 음식을 먹을 때에는 도둑이 먹으며 마실 때에는 도둑이 마시며 머리를 깎을 때에는 도둑이 머리를 깎고 있다' 함을 알고 있느니라.

 

가섭아, 이러한 어리석은 사람이 가고 오고 하는 의식은 모두 하늘··귀신들이 알고 보게 되므로 본 뒤에는 꾸짖되 '이러한 악한 사람이 곧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을 파괴하고 멸망시키고 있다'라고 하며 이렇게 모든 악한 비구들을 꾸짖느니라.

 

또 그 모든 하늘··귀신들은 계율을 지니고 청정한 행[梵行]을 닦는 사문이나 바라문을 보면 더욱더 믿는 마음으로 예배 공경하고 존중하나니, 이런 사람은 불법 가운데서 마땅히 이익을 받을 만한 이들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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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3 / 3476]

 

가섭아, 이 사문으로서 이익을 구하는 이는 불법 가운데에 출가하였으면서 한 생각도 고요히 사라진 욕심을 여읜 마음을 낼 수조차 없거든 하물며 사문의 과위를 얻겠느냐. 만일 얻는 이가 있다면 옳지 못한 일이니라.

 

가섭아, 이들을 사문으로서 이익을 구하는 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어떤 이를 피 사문[稗沙門]이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보리 밭 안에 피가 났을 적에 그 형상은 흡사 보리와 같아 분별할 수 없으므로 그때 농부는 생각하기를 '이 피도 모두 좋은 보리이다'라고 하다가 뒤에 그 이삭이 난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것이 아닌 것을 알고 '모두가 다 보리'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피 사문도 대중 가운데에 있으면서 계율을 지니고 덕행이 있는 이와 같으므로 시주들을 보고 '모두 이

들은 사문이다'라고 여기게 되느니라.

 

그리고 그 어리석은 사람들은 실로 사문이 아니면서도 '나는 사문이다'라고 하고 범행이 있는 이가 아니면서도 '나는 범행이 있다'라고 하지만 원래 썩고 망가져서 계율을 여의었으며 또한 대중의 수효에 들지 못할 이이므로 불법 중에서 지혜의 생명이 없고 당연히 악도(惡道)에 떨어지리니, 마치 피가 좋은 보리들 가운데에 있는 것과 같으니라.

 

그때 하늘··귀신으로서 천안(天眼)이 있는 이면 그 어리석은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질 것을 보게 되며 본 뒤에는 저마다 서로 말하기를 '이 어리석은 사람들은 우선 사문과 같기는 하나 착하지 않은 법을 행하고 있으므로 이제 큰 지옥 안에 떨어지게 되리라. 이제부터는 끝내 사문으로서의 덕행과 사문의 과위를 얻을 수가 없음은 마치 피가 좋은 보리 안에 있는 것과 같구나'라고 하느니라.

 

가섭아, 이들을 피 사문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어떤 이를 부들로 생긴 사문[蒲生沙門]이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부들이 벼 모 안에서 생기지만 익지 않기 때문에 부들로 생겼다 하며 속이 차 있지 않기 때문에 바람에 날려 없어지고 굳고 무거운 힘이 없는지라 벼와 같으면서도 벼가 아닌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부들로 생긴 사문은 형상은 사문과 같으나 가르쳐주고 꾸짖어 줄 사람도 없고 덕의 힘이 없는지라 악마의 바람에 날리며 또한 혈기(血氣)인 계율을 지니는 힘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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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4 / 3476]

 

많은 견문[多聞]을 여의었으며 선정의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역시 지혜에서 멀어졌고 모든 번뇌의 도둑을 깨뜨릴 수 없나니, 이러한 사람은 가볍고 비열하고 힘이 없다 하겠으므로 악마에 매이게 되고 악마의 갈고리에 걸리게 되며 온갖 번뇌 속에 빠져 있으면서 악마의 바람에 날림이 마치 부들로 생긴 벼와 같다고 하느니라. 가섭아, 부들로 생긴 벼는 종자가 되지도 못하고 또한 싹도 나지 않느니라. 가섭아, 이와 같은 부들로 생긴 사문은 부처님 법 중에서

()의 종자도 없고 성현의 법 가운데서 해탈할 수도 없느니라. 가섭아, 부들로 생긴 사문이란 이른바 계율을 깨뜨리고 악()을 행하는 이이니, 이들을 부들로 생긴 사문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어떤 이를 비슷한 사문[似沙門]이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공교하게 금을 구리에 발랐을 때에 그 빛깔은 금과 비슷하나 그 값어치는 금과는 같지 않으며 그것이 닦였을 때에야 비로소 금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처럼 가섭아, 비슷한 사문이란 자신을 꾸미기 좋아하여 항상 몸을 깨끗이 하고 옷을 단정하게 입으면서 사문으로서 지니는 의식(儀式)은 모두 갖추고 있으며 가고 오고 구부리고 펴는 데에 항상 의식을 바르게 갖느니라. 그러면서도

그는 항상 탐냄·성냄·어리석음에 해를 당하고 있고 또한 이익과 예배와 공경과 찬탄에 해를 받고 있으며 또한 아만(我慢)과 증상만(增上慢)과 온갖 번뇌에 해를 받고 있으므로 비록 사람들이 귀히 여긴다 하더라도 귀중한 법이 없으며 항상 부지런히 몸을 장엄하고 음식을 희망하며 성인의 법을 구하지 않고 미래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느니라. 현재에는 존중받지마는 장래에는 존중을 받을 이가 아니며 다만 몸을 살찌우기만 하면서 이익에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지

않으며 갖가지에 속박되어 집안의 일에나 힘쓰고 집에 있는 이의 마음을 따르며 또한 그것에 따라 받나니, 괴로울 때에는 괴로움을 받고 즐거울 때에는 즐거움을 받으면서 사랑과 미움에 해를 당하며 사문의 법대로 하려 함이 없고 모든 의식도 없기 때문에 반드시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게 되느니라. 그 사람에게는 사문으로서의 진실이 없고 사문으로서의 명칭도 없으며 사문과 더불어 같지도 않느니라. 가섭아, 이들을 비슷한 사문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어떤 이를 사문의 혈기(血氣)를 잃었다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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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5 / 3476]

 

하면 마치 남자거나 여인이거나 사내아이거나 계집아이거나 간에 사람 아닌 것[非人]이 그의 혈기를 빨아먹으면 그 사람은 쇠약해지고 얼굴빛이나 힘이 없게 되는 것과 같이 피와 기운을 잃게 되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이러한 사람은 혈기를 상실했기 때문에 모든 약이나 주술(呪術)이나 모든 칼·몽둥이로도 다스릴 수 없는 것이요 반드시 죽기에 이르느니라.

 

가섭아, 이와 같은 사문에는 계율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解脫知見)의 혈기가 없고 자(((()의 혈기도 없으며 또한 보시하고 조복하여 몸과 입과 뜻의 업을 보호하는 혈기도 없고 또한 네 가지 성인의 성품에 편히 머무르는 혈기도 없으며 의식(儀式)의 혈기도 없고 몸과 입과 뜻을 깨끗하게 하는 혈기도 없느니라.

 

가섭아, 이들을 사문으로서 혈기를 잃은 이라 하느니라.

 

가섭아, 혈기를 잃은 사문이라 하면 비록 여래의 법약(法藥)을 받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제도되지 못하느니라. 법약이라 함은 이른바 만일 음욕이 일어나면 마땅히 깨끗하지 않다고 관찰해야 하고, 성과 분이 일어나면 마땅히 인자한 마음[慈心]을 내어야 하며, 어리석음이 일어나면 마땅히 12인연(因緣)을 관찰하여야 하고, 모든 번뇌에 대하여는 바른 생각[正思惟]을 해야 하며, 대중을 좋아하는 일을 여의고 나의 소유(所有)를 버리면서 출가한 이의 세 가지

일을 좋아하며 지켜야 하느니라. 세 가지 일이라 함은 이른바 계율을 깨끗하게 지니는 것이요 그 마음을 조복하는 것이며 선정에 들어서 산란하지 않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와 같은 법약(法藥)은 내가 말한 것이요 내가 먹도록 허락한 것이나 비록 이런 약을 받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제도되지 못하느니라.

 

가섭아, 또 세간을 벗어나는 법이 있나니, 이른바 공관(空觀)과 무상관(無相關)과 무작관(無作觀)이며, 5()·18()·12()에서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體]12인연(因緣)을 아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와 같은 법약으로써도 그 사람은 역시 스스로 제도되지 못하느니라.

 

가섭아, 이러한 사문은 더러운 악취가 나고 깨끗하지 못하나니, 계율을 깨뜨렸기 때문이요 복덕이 얇기 때문이며 극히 하천한 곳에 태어나서 교만하기[3276 / 3476]

 

때문이니라. 여기에서 목숨을 마치면 다른 곳에는 태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큰 지옥에 떨어지리니, 마치 사람이 혈기를 잃으면 반드시 줄기에 이르는 것처럼 이러한 사문도 여기에서 목숨을 마치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들을 혈기를 잃은 한 사문이라 하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여 마치자마자 5백의 비구들이 계율을 버리고[捨戒] 세속으로 돌아갔다.

 

그때 여러 비구들은 그 비구들을 꾸짖었다.

 

만일 대덕들이 부처님 법 안에서 물러나 집으로 돌아간다면 이러한 일이야말로 좋지 않으며 이러한 일이야말로 법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왜냐 하면 만일 그와 같이 한다면 법을 따른다고 하느니라. 만일 비구가 남의 신심 있는 보시를 받고 싶지 않아서 물러나 집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을 법에 따르는 것이라 하느니라. 그 모든 비구들은 믿고 이해하는 마음이 많기 때문에 뉘우치는 마음을 내는 것이니라.”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서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깨끗하지 않은 행을 행하면서 다른 이들의 신심 있는 보시를 받았었다면 마땅히 뉘우치는 마음을 내고 물러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하였다.

 

가섭아, 나는 이제 이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리라. 여기서 목숨을 마치면 도솔천(琓率天)의 미륵보살이 있는 곳에 태어났다가 미륵여래가 세간에 출현할 때에는 그 모든 비구들은 첫 번째 모인 법회(法會)의 수효 안에 들어 있으리라.”

 

 

4) 영사비구품(營事比丘品)

 

그때에 마하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비구가 여러 일들을 맡아 할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두 부류의 비구가 여러 일들을 맡아 할 수 있다고 허락하느니라. 어떤 것이 두 부류인가 하면 첫째는 청정하게 계율을 지니는 이요, 둘째는 미래 세상을 두려워하기를 마치 금강과 같이 여기는 사람이니라. 또 두 부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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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7 / 3476]

 

있느니라. 어떤 것이 두 부류인가 하면 첫째는 업보(業報)를 아는 이요, 둘째는 모든 부끄러워함[慚愧]과 뉘우치는 마음이 있는 이이니라.

 

또 두 부류가 있느니라. 어떤 것이 두 부류인가 하면 첫째는 아라한이요, 둘째는 팔배사(八背捨)를 닦는 이이니라. 가섭아, 이와 같은 두 부류의 비구라야 나는 일을 맡아 하도록 허락하여도 스스로 부스럼과 혹이 없을 것이니라. 왜냐 하면 가섭아, 다른 사람들의 뜻을 보호하는 이런 일은 어렵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부처님 법 가운데서 갖가지로 출가하여 갖가지의 성품과 갖가지의 마음과 갖가지로 해탈하고 갖가지로 번뇌[]를 끊으면서 혹 어떤 이는 아란야(阿蘭若)에 있기도 하고 혹 어떤 이는 걸식을 하기도 하며 혹 어떤 이는 숲에 머무르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혹 어떤 이는 마을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깨끗하게 계율을 지니기도 하며 혹 어떤 이는 네 가지의 멍에[]를 여의기도 하고 혹 어떤 이는 부지런히 많은 견문을 닦기도 하며 혹 어떤 이는 모든 법을

잘 말하기도 하고 혹 어떤 이는 계율을 잘 지니기도 하며 혹 어떤 이는 비니(毘尼)의 의식을 잘 지니기도 하고 혹 어떤 이는 모든 성읍과 마을에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법을 말하는 등의 이러한 모든 비구승들이 있게 되나니, 일을 맡아보는 비구[營事比丘]는 이러한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잘 간파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아란야 비구가 한적한 곳을 좋아하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온갖 사역(使役)을 시키지 않아야 하느니라. 때로 아란야 비구가 비구들간의 차례에 따라 사역을 하게 되더라도 일을 맡아보는 비구가 대신 그 일을 하여야 하고 만일 스스로가 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고용하여서라도 그 비구 대신 일을 하게 해야 하며 아란야 비구를 부려서는 안 되느니라. 만일 도를 행하지 않을 때에는 조금은 일을 시킬 수 있느니라. 또 걸식하는 비구가 있으면 일

을 맡아보는 비구는 그 걸식하는 비구에게는 좋은 음식을 주어야 하며 또 어떤 비구가 네 가지 멍에를 여의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구한 바의 물건들을 마땅히 공급(供給)해야 되나니, 이른바 의복과 음식과 침구와 의약 등이 그것이니라. 또 멍에를 여읜 비구가 머물러 있는 곳이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그가 머물러 있는 곳에서는 높은 소리로 크게 불러도 안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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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8 / 3476]

 

또한 다른 이를 시켜서 높은 소리로 크게 부르게 해도 안 되나니, 그 멍에를 여읜 비구를 보호해주기 위해서이니라.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멍에를 여읜 비구에 대하여 마땅히 존경하기를 마치 세존과 같다는 생각을 내어야 하며 생각하기를 '이러한 비구는 부처님 법 가운데서 법의 기둥이 될 것이므로 구하는 대로 그에게 공급해야 한다'라고 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많은 견문[多聞]을 부지런히 닦는 비구가 있으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마땅히 권유하면서 말하기를 '대덕께서도 많은 견문을 부지런히 닦으셔서 읽고 외며 환히 알게 하십시오. 나는 여러 대덕을 위하여 공급하며 심부름을 할 것입니다. 만일 모든 대덕께서 많은 견문을 부지런히 닦으시면 비구승 가운데서 이는 좋은 영락(瓔珞)이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 널리 바른 법을 말씀하실 수 있으며 또한 저절로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라고 하느니라.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바른 때가 아니면 일을 시켜서는 안 되며, 마땅히 옹호해 많이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섭아, 만일 설법하는 비구가 있으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일마다 모두 공급해야 하고 설법하는 비구를 데리고 성읍이나 마을에 이르러서 모든 사람들에게 권유하여 법을 듣게 해야 하며 설법하는 곳도 역시 공급해야 하고 설법하는 사람을 위하여 좋고 높은 자리를 펴야 하느니라. 만일 어떤 비구가 억지로 힘을 써서 설법을 파괴하려고 하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그에게로 가서 화해시켜야 하며 또한 자주자주 설법하는 사람에게로 가서 '아주 잘하십니다'라고 하

며 칭찬해야 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어떤 비구가 계율을 잘 지니고 계율의 이치를 잘 지니면서 일을 하되 자주자주 이치를 물으면서 '제가 어떻게 일을 맡아보면 죄를 짓지 않게 되며 스스로 잃어버리는 것도 없고 남을 해치지도 않게 됩니까'라고 해야 하느니라. 그 계율의 이치를 지니는 비구는 그 일을 맡아보는 이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맡아보는 일에 따라 설법해 주어야 하나니, 이를테면 '이것은 해야 한다. 이것은 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니라. 일을 맡아보는 비구

는 계율을 지닌 사람에게 일심으로 믿음을 내어 예배 공경하고 공양해야 되느니라. 만일 비구승들이 소유하는 몫의 물건들이면 마땅히 때때로 대중들에게 공급해야 하고 대중이 구하는 것을 감추지도 말 것이며 마땅히 나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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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9 / 3476]

 

주되 때맞추어 주어야 하며 악한 마음으로 주어서도 안 되고 법답지 않게 주어서도 안 되며 욕심을 내며 주어서도 안 되고 성을 내면서 주어서도 안 되며 어리석은 마음으로 주어서도 안 되고 두려운 마음으로 주어서도 안 되며, 상가의 법[僧法]과 행을 따르고 집에 있는 이[在家]의 행을 따르지 않으며, 상가의 제정된 행에 따르고 자신이 제정한 행에 따르지 않으며, 승물(僧物)에 대하여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을 내어서는 안 되며, 조그마한 일에 이

르기까지도 대중과 함께 판단해야 하고 제 마음대로 판단해서는 안 되느니라. 또 소용되는 물건[所用物] 즉 상주승(常住僧)의 물건과 부처님 물건[佛物]과 사방에서 모인 객승들[招提僧]의 물건에 있어서 그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마땅히 분별하여야 하느니라. 상주승의 물건을 객승들에게 주어서도 안 되고 객승들의 물건을 상주승에게 주어서도 안 되며 상주승의 물건을 객승들의 물건과 함께 섞어서도 안 되고 객승들의 물건을 상주승의 물건과 함께 섞어서도 안

되며 상주승의 물건과 객승들의 물건을 부처님 물건과 함께 섞어서도 안 되고 부처님 물건을 상주승의 물건과 객승들의 물건에 함께 섞어서도 안 되느니라. 만일 상주승의 물건이 많아서 객승이 구하는 것이 있다면 일을 맡아 보는 비구는 마땅히 대중을 집합하여 상의한 뒤에, 만일 대중들이 동의하면 상주승의 물건을 객승에게 나누어주어도 되느니라.

 

가섭아, 만일 여래의 탑에 혹 필요한 것이 있고 또는 무너지려 할 때면, 상주승의 물건이나 객승의 물건이 많이 있을 때에 그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마땅히 대중을 집합하여 그들과 상의하면서 말하기를 '이 부처님 탑이 파괴되려 하니 이제 수선을 하여야겠습니다. 이 상주승의 물건과 객승의 물건이 많으니, 대덕 스님네는 들으십시오. 만일 스님네께서 때가 되고 스님네께서 허락하시거나 스님네께서 얻으신 시주의 물건에 아까워하시지 않는다면 이 상주승의 물건

과 객승의 물건을 가져다가 부처님 탑을 수리하겠습니다'라고 하느니라. 만일 대중들이 동의하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마땅히 승물(僧物)로써 부처님 탑을 수리해야 되거니와 만일 대중이 화합하지 않으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마땅히 그 밖의 집에 있는 이들에게 권하여 거기서 얻은 재물로써 부처님 탑을 수리해야 되느니라.

 

가섭아, 설령 부처님 물건[佛物]이 많다 해도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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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0 / 3476]

 

님 물건으로 상주승에게나 객승에게 나누어주어서는 안 되느니라. 왜냐 하면 이 물건은 마땅히 세존과 같다라는 생각을 내어야 하기 때문이니라. 부처님의 소유물은 한 오라기의 실까지도 모두가 이는 시주의 신심으로 부처님께 보시한 것이니, 그러므로 모든 하늘과 세간 사람들은 이 물건에 대하여는 부처님의 탑이라는 생각을 내어야 하겠거든 하물며 3()의 물건이겠느냐. 만일 부처님 탑에 먼저 옷을 보시하였다면 이 옷이 부처님 탑 안에서 차라리 바람에 날

리고 비에 문드러져서 다 해지고 못쓰게 될지언정 이 옷으로써 다른 보물과 바꾸어서는 안 되느니라. 왜냐 하면 여래의 성탑(聖塔)에 있는 물건은 값을 쳐서 줄 사람도 없고 또 부처님께서는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이와 같이 착하고 깨끗하게 일을 맡아보는 사람은 3보의 물건을 뒤섞이게 하여서는 안 되며 또 자기의 이익에 대하여 마음에 항상 만족할 줄 알면서 3보의 물건 안에서는 내 것이라는 생각을 내어서도 안 되느니라.

 

가섭아, 일을 맡아보는 비구가 만일 성을 내면서 오른쪽으로 돌며 예배하고 공경해야 할 계율을 지닌 큰 덕이 있는 이에게 자기 마음대로 몰아쳐 부리면 이 때문에 그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성내는 마음으로 인하여 큰 지옥에 떨어지게 되며 설령 사람으로 된다 하여도 남의 노예가 되어 항상 그 주인에게 고역(苦役)을 당하면서 남들에게 매를 맞게 되느니라.

 

또 가섭아, 만일 일을 맡아보는 비구가 제 마음대로 다시 중한 법제(法制)를 만들어서 대중이 통상하는 한계를 넘어 비구들을 벌주고 때 아닐 적에 부리게 되면 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이 착하지 않은 뿌리 때문에 못이 많은 작은 지옥에 떨어지게 되며 그 안에 태어난 뒤에는 백천 개의 못이 그의 몸에 박히면서 그의 몸은 훨훨 큰 불길을 뿜어냄이 마치 큰 불 무더기와 같을 것이니라. 만일 계율을 지니고 큰 덕이 있는 이에게 심각한 일로 그를 두렵게

하면서 성내는 말을 하게 되면 그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지옥에 떨어져서 5백 유순이나 되는 긴 혀를 얻게 되고 그 혀에다 백천 개의 못을 박게 되며 각각의 못에서는 큰 불길을 뿜어내게 될 것이니라.

 

가섭아, 만일 일을 맡아보는 비구가 자주자주 승물(僧物)을 얻어서는 아까워하면서 감추어 두거나 혹은 적당하지 않은 때에 대중에게 주거나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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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1 / 3476]

 

다시 어렵게 주거나 혹은 괴롭히면서 주거나 혹은 적게 주거나 혹은 주지 않거나 혹은 어떤 이에게는 주고 혹은 어떤 이에게는 주지 않거나 하면,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이 착하지 않은 뿌리 때문에 더럽고 악한 아귀(餓鬼)에 떨어져서 항상 똥덩이를 먹게 될 것이니라. 이 사람이 목숨을 마치고 장차 이 안에 태어나면 그 때 다시 어떤 아귀가 있으면서 음식을 그에게 보이면서도 주지는 않을 것이므로 이 아귀는 그 때 그 음식을 얻고 싶어하면서 그 음식을

뚫어지게 보며 눈을 잠시도 깜박거리지 않으면서 배고프고 목마르는 고통을 받게 되느니라. 그는 백천 년 동안 항상 음식을 얻지 못하게 되며 혹시 음식을 얻게 되더라도 변하여 똥오줌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혹은 피고름으로 되어버리느니라. 왜냐 하면 사람들이 공경하고 예배할 계율을 지닌 사람에게 승가 대중이 소유할 물건을 제 마음대로 주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만일 일을 맡아보는 비구가 상주하는 승려의 물건과 객승의 물건과 부처님 물건을 제멋대로 뒤섞어서 쓰면 일 겁 동안 아니 일 겁을 더 넘게 모진 고통의 과보를 받느니라. 왜냐 하면 3보의 물건을 침범하였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만일 일을 맡아보는 비구가 이러한 죄를 듣고 다시 이러한 죄를 알면서도 일부러 계율을 지닌 이에게 성을 내게 되면 내가 이제 이들에게 말하리니, 모든 부처님께서도 다스리지 못할 것이니라. 가섭아, 그러므로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이러한 그릇된 법의 죄를 듣고 나면 마땅히 몸과 입과 뜻의 업을 잘 지키면서 제 자신도 보살피고 남도 또한 보살펴야 하느니라. 가섭아, 일을 맡아보는 비구는 차라리 제 몸의 살을 먹을지언정 끝내 3보의 물건을 뒤

섞어 써서 옷이나 발우나 음식을 만들지 말 것이니라.”

 

그 때 마하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전에 없었던 일이옵니다. 여래께서는 스스로 인자한 마음으로 이와 같은 법을 말씀하시어, 부끄러워함[慚愧]이 없는 이를 위해서는 부끄러워함이 없는 법을 말씀하셨고 부끄러워함이 있는 이를 위해서는 부끄러워함이 있는 법을 말씀하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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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2 / 3476]

 

 

 

 

 

 

 

대보적경 제114

 

 

 

 

 

 

 

북량 사문 석도공 한역

 

 

송성수 번역

 

 

 

 

44. 보량취회

 

 

5) 아란야비구품(阿蘭若比丘品)

 

그 때 마하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비구가 스스로 '나는 아란야 비구다'라고 한다면, 세존이시여, 어느 정도 되어야 아란야 비구라 하나이까? 또 어느 정도 되어야 걸식하는 비구[乞食比丘]라 하고 어느 정도 되어야 누더기를 입는 비구[糞掃衣比丘]라 하며 어느 정도 되어야 나무 아래의 비구[樹下比丘]라 하고 어느 정도 되어야 무덤 사이의 비구[塚間比丘]라 하며 어느 정도 되어야 거리에 있는 비구[露處比丘]라 하게 되나이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아란야 비구는 반드시 아란야 처소를 좋아하고 아란야 처소에 머무르는 것이니라. 가섭아, 아란야 처소라 하면 이른바 큰 소리가 없고 대중의 시끄러운 소리도 없으며 노루·사슴··이리나 모든 날짐승도 떠나고 모든 도둑이나 소를 치고 양을 치는 이도 멀리하여 사문의 행을 따르는 곳이다. 이러한 곳이 아란야의 처소이니, 마땅히 이런 가운데서 수행해야 하느니라. 그 비구가 만일 아란야 처소에 이르고자 하면 마땅히 여덟 가지 법을 생각해야 되느니라.

떤 것이 여덟 가지 법인가 하면 첫째는 '나는 마땅히 몸을 버리리라'고 하며, 둘째는 '마땅히 목숨을 버리리라'고 하고, 셋째는 '마땅히 이익대보적경 제114

 

 

 

 

 

 

 

북량 사문 석도공 한역

 

 

송성수 번역

 

 

 

 

44. 보량취회

 

 

5) 아란야비구품(阿蘭若比丘品)

 

그 때 마하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비구가 스스로 '나는 아란야 비구다'라고 한다면, 세존이시여, 어느 정도 되어야 아란야 비구라 하나이까? 또 어느 정도 되어야 걸식하는 비구[乞食比丘]라 하고 어느 정도 되어야 누더기를 입는 비구[糞掃衣比丘]라 하며 어느 정도 되어야 나무 아래의 비구[樹下比丘]라 하고 어느 정도 되어야 무덤 사이의 비구[塚間比丘]라 하며 어느 정도 되어야 거리에 있는 비구[露處比丘]라 하게 되나이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아란야 비구는 반드시 아란야 처소를 좋아하고 아란야 처소에 머무르는 것이니라. 가섭아, 아란야 처소라 하면 이른바 큰 소리가 없고 대중의 시끄러운 소리도 없으며 노루·사슴··이리나 모든 날짐승도 떠나고 모든 도둑이나 소를 치고 양을 치는 이도 멀리하여 사문의 행을 따르는 곳이다. 이러한 곳이 아란야의 처소이니, 마땅히 이런 가운데서 수행해야 하느니라. 그 비구가 만일 아란야 처소에 이르고자 하면 마땅히 여덟 가지 법을 생각해야 되느니라.

떤 것이 여덟 가지 법인가 하면 첫째는 '나는 마땅히 몸을 버리리라'고 하며, 둘째는 '마땅히 목숨을 버리리라'고 하고, 셋째는 '마땅히 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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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3 / 3476]

 

을 버리리라'고 하고, 넷째는 '마땅히 온갖 좋아하는 곳을 여의리라'고 하며, 다섯째는 '산간에서 죽기를 마치 사슴이 죽듯 하리라'고 하고, 여섯째는 '아란야 처소에서는 아란야의 행을 받으리라'고 하며, 일곱째는 '마땅히 법으로써 스스로 살아가리라'고 하고, 여덟째는 '번뇌로써 스스로 살아가지 않으리라'고 하는 것이리라. 가섭아, 이것을 여덟 가지 법이라 하나니, 아란야 비구는 마땅히 생각한 뒤에야 아란야 처소에 가야 되느니라.

 

가섭아, 아란야 비구가 아란야 처소에 도착한 뒤에는 아란야의 법을 행하는 것이니, 여덟 가지 행으로써 사랑[]을 행하면서 모든 중생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여덟 가지 행인가 하면 첫째는 사랑으로 이익 되게 하고, 둘째는 사랑으로 즐겁게 하며, 셋째는 성을 냄이 없이 사랑하고, 넷째는 바르게 사랑하며, 다섯째는 차별 없이 사랑하고, 여섯째는 따르면서 사랑하며, 일곱째는 온갖 법을 관찰하면서 사랑하고, 여덟째는 깨끗하게

마치 허공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와 같은 여덟 가지 행으로써 모든 중생에 대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내느니라.

 

가섭아, 아란야 비구가 아란야 처소에 이른 뒤에는 마땅히 생각하기를 '나는 먼 데에 와 있으면서 혼자요 벗이 없으므로 내가 착한 일을 하든 착하지 않은 일을 하든 아무도 가르쳐 주고 꾸짖어 줄 사람이 없구나'라고 한다. 다시 생각하기를 '여기에는 모든 하늘··귀신과 모든 부처님·세존이 계시면서 나의 마음을 오로지 한군데에만 쓰는 것을 아시고 그 분들이 나를 위해 증명하시리라. 나는 이제 여기에 있으면서 아란야의 법을 행하되 나의 착하지 않은

마음은 마음대로 할 수도 없다. 내가 이렇듯 먼 곳으로 와서 혼자요 벗이 없으므로 친근할 이도 없으니 나에게 있는 바도 없는 것이다. 나는 이제 욕망의 느낌과 성내는 느낌과 괴로운 느낌을 깨달아야 하며 그 밖의 착하지 않은 법도 역시 깨달아야 한다. 나는 이제 대중을 좋아하는 이와는 같지 않아야 하고 또한 마을을 가까이 하는 사람과도 같지 않아야 된다. 만일 그와 같은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면 나는 곧 모든 하늘과 용과 귀신을 속인 것이요 벌써

모든 부처님께서 나를 보시고 역시 기뻐하지 않으시리라. 내가 이제 아란야 법대로 한다면 곧 모든 하늘과 용과 귀신에게 꾸지람을 받지 않을 것이요 모든 부처님께서도 나를 보시고 또한 기뻐하실 것이다'라고 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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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4 / 3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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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아, 아란야 비구는 아란야 처소에 머물러 있으면서 아란야의 법을 행하되 일심으로 해탈하는 계율을 굳게 지니면서 계율을 잘 지키어 몸과 입과 뜻을 깨끗하게 하고 아첨하는 행이 없으면서 바른 생활[正命]을 깨끗하게 하며 마음은 모든 선정을 향하되 들었던 법대로 기억하면서 부지런히 바른 생각[正思惟]을 하며 욕심을 여의고 번뇌가 고요히 사라진 열반을 향하여 나아가며 나고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5()은 마치 원수와 같다고 관찰하고 4()는 마

치 독사와 같다고 관찰하며 6()은 마치 텅 빈 무더기와 같다고 관찰하느니라. 방편을 잘 알고 12인연(因緣)을 관찰하여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여의며 중생(衆生)도 없고 나[]도 없고 사람[]도 없고 목숨[]도 없다고 관찰하며 법의 공한 모양을 알고 모양이 없음[無相]을 행하며 점점 지을 바를 줄이면서 지음이 없음[無作]을 행하고 마음은 항상 삼계의 행()을 두려워하며 언제나 부지런히 수행하면서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하

고 항상 정진하면서 끝내 물러나지 않으며 몸의 참 모습[實相]을 관찰하느니라. 마땅히 이와 같은 마음을 내어 이와 같은 법을 관찰해야 하나니, 마땅히 괴로움[]의 근본을 알고 온갖 쌓임[]을 끊으며 사라짐[]이 다함을 증득하고 도()를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인자한 마음을 행하면서 4념처(念處)에 편안히 머무르고 착하지 않는 법을 여의면서 착한 법의 문에 들어가며 4정근(正勤)에 편안히 머무르고 4여의족(如意足)에 들어가며 5선근(善根)

을 수호하고 5() 가운데서 자재함을 얻으며 7보리분(菩提分)을 깨닫고 여덟 가지 성스럽고 착한 길[八聖善道分]을 부지런히 행하며 선정을 받아 지니어 지혜로써 모든 법의 모양을 분별하느니라.

 

가섭아, 이러한 법으로써 엄숙하게 장식함을 말하노니, 아란야 비구는 이렇게 엄숙하게 장식한 뒤에 산과 숲에 머무르면서 초저녁과 새벽에도 부지런히 모든 행을 닦으면서 잠을 자지 않아야 하며 항상 세간을 벗어나는 법을 얻으려고 생각하는 것이니라.

 

가섭아, 아란야 비구는 무릇 머무르는 곳마다 항상 도를 수행하되 스스로 몸과 모든 의복은 장엄하지 않으면서 마른 풀을 주어다 자리에 깔아 방석을 삼고 상주승의 물건[常住僧物]과 객승의 물건[招提僧物]을 여의며 아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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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5 / 3476]

 

처소에서는 의복에 만족하여 몸을 가리게만 하나니, 거룩한 도를 수행하기 위해서이니라.

 

가섭아, 아란야 비구는 만일 걸식(乞食)하기 위하여 성읍이나 마을에 이르게 되면 생각하기를 '나는 아란야 처소로부터 이 성읍과 마을에 이르렀지만 밥을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간에 근심하거나 기뻐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만일 밥을 얻지 못하면 마땅히 기뻐하는 마음을 내면서 전생에 지은 업의 갚음[業報]이라 생각하여야 하며 나는 이제 부지런히 복된 업을 닦아 익혀야 한다'라고 하면서, 또 여래께서도 걸식하다가 얻지 못한 일이 있음을 생각할 것이니라

. 그 아란야 비구가 성읍이나 마을에 들어가서 걸식할 때는 마땅히 법으로 장엄(莊嚴)하여야 하고 법으로 장엄한 후에야 걸식할 것이니라. 어떻게 법으로 장엄한다 하는가. 설령 뜻에 맞는 물질을 본다 하여도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아야 하고 뜻에 맞지 않은 물질을 본다 하여도 역시 성을 내지 않는 것이니라. 또는 뜻에 맞는 소리와 뜻에 맞지 않은 소리를 듣거나 또는 뜻에 맞는 냄새와 뜻이 맞지 않은 냄새를 맡거나 뜻에 맞는 맛과 뜻에 맞지 않는 맛이거

나 뜻에 맞는 접촉과 뜻에 맞지 않은 접촉이거나 뜻에 맞는 법()과 뜻에 맞지 않은 법이거나 간에 마음에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고 또한 성을 내지도 않는 것이니라.

 

감관의 문을 거두어 보살펴도 한 길[一尋]까지 주의하여 똑똑히 보면서 그 마음을 조복하여 본래 생각한 법을 마음에서 여의지 않게 하고 음식으로써 마음을 더럽히면서 걸식을 하지 않으며 차례대로 걸식하여야 하고 음식을 얻은 곳이라 하여 집착을 내어서도 안 되며 음식을 얻지 못한 곳이라 하여 성을 내어서도 안 되느니라. 또 열 집이나 열 집을 넘게 다녔어도 밥을 얻지 못하였다 하여 근심하지 않으며 생각하기를 '이 모든 장자(長者)와 바라문(婆羅門)

게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서 나에게 밥을 주지 못하고 있다. 또 이 장자나 바라문들은 일찍이 마음에서 나를 생각한 일조차도 없었거든 하물며 나아게 밥을 주는 것이랴'라고 해야 하느니라. 가섭아, 아란야 비구가 만일 이렇게 하게 되면 걸식을 하는 동안에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느니라.

 

가섭아, 아란야 비구가 걸식할 때에 만일 중생으로서 남자나 여자나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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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6 / 3476]

 

아이나 계집아이를 보게 되고 나아가 짐승을 보게 되면 마땅히 이러한 이들에게 자비로운 마음을 내면서 '나는 이렇게 정진한다'라고 하고, 서원하기를 '만일 중생으로서 나를 보고서 나에게 밥을 주는 이는 모두가 천상에 태어나게 하소서'라고 해야 하느니라.

 

가섭아, 아란야 비구는 거친 밥을 얻거나 좋은 밥을 얻거나 간에 이 밥을 얻은 뒤에는 마땅히 사방을 관찰하면서 '이 마을이나 성읍 가운데서 누가 가난한 사람일까? 이 밥을 덜어서 그에게 베풀어주리라'고 하고서, 만일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걸식한 밥을 반으로 나누어주되 만일 가난한 이를 만나지 못하면 마땅히 이러한 마음을 내나니, '내 눈으로 그런 중생을 보지는 못하였으나 내가 얻은 이 밥 가운데서 좋은 것으로 그에게 베풀어주려 하노니, 나는 시

(施主)가 되고 그는 받는 이가 되소서'라고 해야 하느니라.

 

가섭아, 아란야 비구가 걸식하다가 밥을 얻게 되면, 가지고 아란야 처소로 와서 깨끗이 손발을 씻고 깨끗한 사문의 의식(儀式)으로 모든 깨끗한 법을 갖추고는 법답게 풀을 가져다 놓고 가부하고 앉을 것이며 앉은 뒤에는 밥을 먹되 마음에 애착함도 없고 또한 뽐내는 일도 없으며 성내는 마음도 없고 혼탁하고 어지러운 마음도 없느니라. 밥을 먹으려 할 때에는 생각하기를 '지금 이 몸 속에는 8만 마리의 벌레가 있다. 벌레들은 이 밥을 먹고서 모두 다 안락

하여라. 내가 지금은 밥으로써 이 벌레들을 거두거니와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에는 법으로써 거두리라'고 하느니라.

 

가섭아, 또 때로 아란야 비구는 음식이 부족하면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몸이 가벼워 인욕을 닦을 수 있으며 모든 악()을 끊어 없애고 대소변도 적게 되었다. 그리고 몸이 가볍기 대문에 마음도 가볍게 되었으며 또 잠도 줄었고 음욕의 생각도 일어나지 않게 되었도다'라고 이러한 생각을 하여야 하느니라.

 

가섭아, 아란야 비구는 만일 걸식을 하다가 많이 얻었으면 마땅히 만족할 줄 알아야 하며 밥 가운데서 한 덩이를 떠내어 깨끗한 돌 위에다 놓고 생각하기를 '모든 날짐승·길짐승들에게 밥을 먹을 수 있는 나는 이것을 베푸나니, 그들은 받는 이가 되어라'라고 하느니라.

 

가섭아, 아란야 비구는 밥을 다 먹으면 발우를 씻고 양치질하고 손을 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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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7 / 3476]

 

는 깨끗이 씻은 발우를 손으로 닦아 마르게 한 뒤에 승가리(僧伽梨)를 올려놓고 아란야 처소의 행에 의지하여 본래 생각한 법 모양을 여의지 않느니라.

 

가섭아, 아란야 비구가 아란야의 행을 행할 때에 그가 범부로서 아직 사문의 과위를 얻지 못하였으면 때로 범이나 이리가 그 곳에 오게 될 터인데 보아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생각하기를 '내가 본래 아란야 처소에 도착하였을 때에 이미 몸과 목숨을 버렸으므로 나는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며 마땅히 인자한 마음을 닦으면서 온갖 악을 여의고 또한 두려움을 여의어야 한다. 만일 모든 범이나 이리가 나의 목숨을 끊고 내 살을 먹게 된다면 당연히 생각하기를

나는 큰 이익을 얻게 되었다. 이 견고하지 못한 몸으로써 장차 견고한 몸을 얻게 될 것이니 말이다. 이 모든 범이나 이리에게 나는 먹이를 주지 못했으므로 이제 나의 살을 먹은 뒤에는 몸에 안락함을 얻으라고 해야 한다'고 할 것이니라. 가섭아, 아란야 비구가 아란야의 법을 행할 적에는 마땅히 이와 같이 몸과 목숨을 버려야 하느니라.

 

가섭아, 아란야 비구가 아란야의 법을 행할 때에 혹 어떤 사람 아닌 것[非人]이 좋은 모습이 되거나 나쁜 모습이 되어서 그에게로 오게 되면 이 사람 아닌 것에 대하여 사랑하는 마음도 내지 말고 성내는 마음도 내지 말지니라.

 

가섭아, 혹 일찍이 부처님을 뵈러 모든 하늘들이 아란야 처소로 와서 질문을 하는 일이 있기도 한데 질문을 하게 되면 아란야 비구는 힘닿는 대로 배운 법대로 그 하늘들을 위하여 말할 것이며 때로 모든 하늘들을 위하여 말할 것이며 때로 모든 하늘들이 깊은 이치를 물어서 아란야 비구가 대답할 수 없게 되면 교만한 마음을 내어서는 안되며 말하기를 '내가 견문이 많지 않다 하여 당신들은 나를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나 이제 부지런히 부처님 법을 닦고 배워

서 뒷날 내가 부처님 법을 통달하고 나면 모두 대답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할 것이며 또 모든 하늘들에게 청하면서 '당신들은 이제 나를 위하여 설법하여 주십시오. 나는 듣고 받아들일 것입니다'라고 하기도 하며 또 이렇게 용서를 비는 말로 '부디 미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해야 하느니라.

 

또 가섭아, 아란야 비구가 아란야의 법을 행하면서 아란야의 생각을 잘 닦나니, 마치 풀과 나무와 기와와 돌이 주인도 없고 나도 없고 속()한 데도 없는 것처럼 이 몸도 역시 그러하여 나도 없고 목숨도 없고 사람도 없고 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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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8 / 3476]

 

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이 법은 모두가 인연으로부터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니라. 이 법 가운데서 잘 생각하기를 '나는 온갖 모든 소견을 끊어야 하며 항상 공하고 모양이 없고 조작이 없는 법을 생각하여야 한다'라고 할 것이니라.

 

가섭아, 아란야 비구는 아란야의 법을 행할 때에 열매와 약초와 모든 나무 숲이 어떻게 화합하고 어떻게 흩어져 없어지느냐 하면, 이와 같은 바깥의 물건들은 주인도 없고 나도 없고 내 것도 없고 다툼도 없어서 저절로 났다가 저절로 없어지므로 나고 없어지는 것이 없느니라.

 

가섭아, 마치 풀과 나무와 기와와 돌이 나도 없고 주인도 없고 속한 데도 없는 것처럼 이 몸도 역시 그러하여 나도 없고 목숨도 없고 사람도 없고 중생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뭇 인연으로부터 생기고 인연이 떠나면 곧 사라지는 것이니, 이 실다움[如實] 가운데서는 하나의 법도 나고 없어지는 것이 없느니라. 가섭아, 이와 같은 법으로 아란야 비구는 아란야의 처소에 이르러서 닦고 수행하여야 하느니라.

 

가섭아, 아란야 비구는 이러한 법을 행할 때에 만일 성문승(聲聞乘)을 배워서 빨리 사문의 과위를 얻게 되거나 혹은 장애 되는 법이 있어서 생에 사문의 과위를 얻지 못한다 하여도 불과 한 분의 부처님, 두 분의 부처님, 세 분의 부처님을 뵈올 때까지는 반드시 온갖 모든 번뇌를 여의게 되느니라. 또 보살승(菩薩乘)을 배우는 이는 금생에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 장애 없는 법을 얻어서 반드시 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뵙게 되며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이니라.”

 

아란야품(阿蘭若品)을 말씀할 때에 5백의 비구가 온갖 번뇌를 끊고 마음에 해탈을 얻었다.

 

 

6) 걸식비구품(乞食比丘品)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비구가 걸식을 하는가 하면 가섭아, 만일 어떤 비구가 먼저 본래의 서원에 편안히 머무르면서 '나는 걸식에 의거하여 출가하였고 나는 지금 먼저의 서원에 머물러 있다'라고 하여 그 비구는 오로지 그 생각만 하여 아첨함이 없고 온갖 음식의 접대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온갖 대중들의 공양을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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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9 / 3476]

 

나서 견고하게 스스로 장엄하는 것이다. 걸식하는 비구는 온갖 맛[]에 대하여 좋은 맛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아야 하느니라. 또 훌륭한 음식에 대하여 스스로 그 마음에 이런 생각을 내도록 해야 한다.

 

'나는 마치 전타라(旃陀羅)와 같아서 마땅히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하고 음식을 깨끗이 하지는 않아야 한다. 왜냐 하면 좋은 밥을 먹은 뒤에는 모두가 똥이 되면서 더러운 냄새가 나고 깨끗하지 않기 때문이니, 나는 좋은 밥을 구하지 않아야 한다.'

 

이와 같이 마음을 조복한 뒤에 성읍이나 마을에 들어가서 차례대로 걸식을 할 때에 그는 이와 같은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남자가 나에게 밥을 주고 여인은 주지 않을 것이다. 여인이 나에게 밥을 주고 남자가 주지 않을 것이다. 사내아이가 나에게 밥을 주고 계집아이가 주지 않을 것이다. 계집아이가 나에게 밥을 주고 사내아이가 주지 않을 것이다. 좋은 밥을 얻고 거친 밥은 얻지 않아야겠다. 맛있는 밥을 얻고 맛없는 밥은 얻지 않아야겠다. 때맞추어 밥을 주고 주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다. 쉽게 밥을 얻고 어렵게 얻는 일은 없을 것이다. 빨리 밥을 얻고 느리게 얻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있는 마을에 들어가면 공경을 받을 것이요 공경 받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새로 한 밥을 얻고 묵은 밥은 얻지 않아야겠다. 부자 집에서 밥을 얻고 가난한 집에서는 얻지 않겠다. 남자와 여인들이 모두 나와서 나를 맞아야 한다.'

 

가섭아, 걸식하는 비구는 이러한 착하지 않는 법을 생각하지 말 것이니라. 가섭아, 걸식하는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스스로 장엄해야 하나니, 이것이 바로 걸식이요 언제나 행할 법이니라. 또 걸식할 때에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간에 근심하거나 기뻐함이 없고 거칠거나 좋은 밥이라는 생각을 내지 말 것이니라. 왜냐 하면 대개의 중생들은 좋은 맛에 탐착하게 되고 좋은 맛에 탐착하는 까닭에 모든 악업(惡業)을 짓게 되며 악업을 지은 인연 때문에 지옥·아귀

·축생에 떨어지기 때문이니라. 만일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면 좋은 맛을 탐착하지 않으면서 좋은 밥을 버리고 거친 밥을 받으며 혀로 탐착하는 맛을 없애고 그 마음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하며 극히 거친 밥을 얻는다 하여도 역시 만족할 줄 알아야 하나니, 그런 이가 만일 목숨을 마치면 천상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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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0 / 3476]

 

혹은 인간 세계에 태어나게 되며 천상에 태어난 뒤에는 하늘의 좋은 음식을 먹게 되느니라.

 

가섭아, 이와 같이 걸식하는 비구는 맛의 애착을 버리고 마음을 다스리면서 설령 7일 동안 콩을 먹게 된다 하여도 역시 근심하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몸을 살리기 위하여 나는 지금 밥을 먹으며, 그리하여 도 닦기 위하여 먹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걸식하는 비구가 이 밥을 얻으면서 발우 속에 떨어지게 되면 법대로 얻은 것이요, 법다운 이익이므로 마땅히 청정한 행[梵行]이 있는 비구와 함께 이 밥을 먹어야 되느니라.

 

가섭아, 걸식하는 비구가 때로 병이 들어서 시킬 사람도 없어서 걸식을 하지 못하게 되면 그는 마땅히 이와 같이 그 마음을 다스려야 되나니 '나 혼자요 벗이 없이 한 몸으로 출가한지라 법이 나의 벗이므로 나는 마땅히 법을 생각하여야 한다. 지금 나는 병으로 괴로움을 받지만 마치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은 마땅히 법을 생각하여야 한다)고 하셨음과 같이 나는 들었던 법을 마땅히 잘 생각해야 한다'라고 하느니라. 어떻게 잘 생각하는가 하면 사실대로 몸을

관찰하는 것이니, 사실대로 몸을 관찰하고 나서 지혜가 있는 이가 만일 혼자 일심으로 초선(初禪)을 얻게 되면 곧 당연히 초선의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하루 또는 이틀 나아가 7일 동안은 선()으로써 음식을 삼아 그 마음은 기뻐질 것이니라.

 

가섭아, 걸식하는 비구는 이러한 법을 수행하면서도 만일 선()을 얻지 못하면 마땅히 이와 같이 부지런히 행하면서 착한 법 안에 편히 머물러야 하며 여러 사람이 아는 바가 있고 모든 하늘··귀신들이 음식을 그에게 보내 주리니, 이것이 바로 멍에[]를 여읜 과보 때문이니라.

 

가섭아, 혹 걸식하는 비구가 큰 비를 만나고 혹은 큰 바람이 불어서 걸식을 하지 못하게 되면 그 때에는 사랑[]으로써 밥을 삼아 스스로 장엄하면서 행할 법에 편안히 머물러 생각해야 한다. 이틀 밤 사흘 밤을 먹지 못하게 되면 생각하기를 '어떤 많은 중생들이 아귀 세계에 떨어져서 그 지은 악업 때문에 고뇌에 시달리며 백 년이 되도록 침 한 방울조차 얻지 못하거니와 나는 지금 모든 법의 문 안에 편안히 머물러 있다'라고 해야 하며, 다시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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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1 / 3476]

 

'몸과 마음이 여위어졌지만 지금 나는 이런 배고프고 목마름은 참아 낼 수 있다. 부지런히 거룩한 도를 닦으면서 물러나지 않아야 한다'라고 할 것이니라.

 

가섭아, 걸식하는 비구는 남자나 여인이나 사내아이나 계집아이 등 집에 있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않아야 되느니라. 가섭아, 만일 걸식하는 비구가 집에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밥 속에 있는 모든 깨끗하지 못한 물건을 골라 버리게 할 때는 그가 있는 곳에 앉아서 그에게 설법을 해주어야 하며 이윽고 밥이 깨끗해져서 도로 받게 되면 먹고 난 뒤에야 그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가느니라.

 

가섭아, 걸식하는 비구는 스스로 아첨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엇을 스스로 아첨한다고 하는가 하면 만일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나는 지금 더러운 밥을 얻었다. 또 부족하지만 여러 사람들과 함께 먹었으며 나는 적게 먹었다. 나는 지금 배고프고 목이 말라서 몸과 힘이 쑥 빠져버렸다'라고 하게 되면, 가섭아, 이것을 스스로 아첨을 한다고 하느니라. 가섭아, 걸식하는 비구는 이러한 일들을 마땅히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가섭아, 걸식하는 비구는 온갖 일에 대하여 버리는 마음[捨心]을 내어야 하느니라. 만일 발우 안에 들어온 음식이면 거칠거나 좋거나 적거나 많거나 깨끗하거나 깨끗하지 않거나 간에 모두 받아 마음에 근심하거나 기뻐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항상 청정한 마음으로 모든 법의 몸을 관찰해야 하며 나아가 몸을 살려서 거룩한 도를 수행하기 위하여 음식을 받는 것이니라.

 

가섭아, 걸식하는 비구가 때로 성읍이나 마을에 들어가서 차례대로 걸식하다가 만일 밥을 얻지 못하여 빈 발우로 나오게 되면 마땅히 생각하기를 '여래께서는 큰 위덕이 있으시어 전륜왕(轉輪王)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셨으며 온갖 나쁜 법을 끊고 온갖 착한 법을 이루셨는데도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시다가 오히려 빈 발우로 나오신 일이 있거늘 하물며 나 같이 박복하고 선근을 심지 못한 자가 빈 발우로 돌아오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근심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

하면 선근을 심지 못했으면서 거친 밥이나 좋은 밥을 얻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밥을 얻지 못한 것은 혹 자기에게 악마가 있거나 혹은 악마에 홀렸거나 혹은 악마가 저 모든 바라문과 거사들을 가려버려[3292 / 3476]

 

서 내가 걸식하여도 얻지 못하게 된 것이니, 나는 부지런히 닦아서 사마(四魔)를 여의고 온갖 번뇌를 끊어야겠다. 만일 내가 부지런히 이와 같은 도를 닦고 나면 악마 파순(波旬)도 어떻게 하지 못하고 악마가 부리지도 못하며 훼방을 놓지도 못할 것이다'라고 해야 하느니라. 가섭아, 걸식하는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성스런 종자[聖種]를 받아 지녀야 하느니라.”

 

 

7) 분소의비구품(糞掃衣比丘品)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누더기[糞掃衣]를 입는 비구는 누더기가 될 물건을 주우면서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니 '부끄러워하기[慚愧] 위해서요 옷으로 자신을 장엄하게 꾸미지 않기 위해서며 바람과 햇빛이며 모기·등에·두꺼비 등의 모든 나쁜 접촉을 막기 위해서요 부처님의 가르침에 편히 머무르기 위해서며 깨끗하고 좋은 옷을 구하지 않기 위해서이다'라고 하느니라. 쓰레기 가운데서 버린 물건들을 줍고 취할 때에는 마땅히 두 가지 생각을 내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두 가지 생각인가

하면 첫째는 만족할 줄 아는 생각이요, 둘째는 기르기 쉽다는 생각[易養心]이니라. 또 두 가지 생각을 내나니, 첫째는 자만함이 없는 생각[無慢想]이요, 둘째는 성스런 종자를 지닌다는 생각[持聖種想]이니라. 또 두 가지 생각이 있나니, 첫째는 그것으로써 몸을 장엄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둘째는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니라.

 

가섭아, 누더기를 입는 비구는 쓰레기 속에서 버린 물건들을 주울 때에 만일 그 곳에서 모든 친족이나 아는 이를 만났을 때에 그들을 보고는 곧 그만두고 줍지 않으면서 생각하기를 '이 사람들이 혹시 나에게 (너는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구나)라고 꾸짖을 것이다'라고 한다면, 가섭아, 나는 '이 비구는 깨끗한 행을 얻지 못한다'라고 말하리라. 왜냐 하면 누더기를 입는 비구는 마음이 견고함이 돌과 같아서 바깥의 사물이 들어가지 못하고 또한 움직일 수도 없

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누더기를 입는 비구는 쓰레기 안에서 물건들을 주어다 깨끗이 씻어서 더러운 때가 없게 하여야 하고 씻은 뒤에는 물을 잘 들이며 물들인 뒤에는 승가리(僧伽梨)를 만들되 잘 모으고 잘 붙이며 잘 기워서 잘 받을 것이니, 받은 뒤에는 입어야 하되 터지거나 찢어지지 않게 해야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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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3 / 3476]

 

. 가섭아, 누더기를 입는 비구는 부정관(不淨觀)에 편히 머무르면서 누더기를 입나니 탐욕을 여의기 위해서요, 인자한 마음으로 누더기를 입나니 성냄을 여의기 위해서며, 12인연(因緣)을 관찰하면서 누더기를 입나니 어리석음을 여의기 위해서요, 바른 생각을 하면서 누더기를 입나니 온갖 번뇌를 끊기 위해서며, 모든 감관을 거두어 보살피면서 누더기를 입나니 6()을 알기 위해서요, 아첨하지 않고 누더기를 입나니 모든 하늘··귀신으로 하여금 기뻐하

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가섭아, 무엇 때문에 누더기[糞掃衣]라 하는가 하면 가섭아, 비유하면 마치 죽은 재는 사람들이 탐내지도 않고 내 것이라는 마음도 내지 않으며 으레 버려버리는 것처럼 가섭아, 이러한 누더기는 나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니며 이는 쉬이 얻을 수 있고 삿된 생활[邪命]도 아니며 다른 이에게서 구하지도 않고 남의 얼굴빛도 보지 않으며 버려진 물건이어서 쓰레기와 다름이 없고 또한 딸린 데도 없는지라 이 때문에 누더기[糞掃衣]라 하느니라.

 

가섭아, 누더기는 곧 법의 당기[法幢]이니 그로써 큰 선인(仙人)이 되기 때문이요 이것은 종성(種姓)이니 그로써 성인이 되기 때문이며, 이것은 편히 머무름이니 그로써 성종(聖種)이 되기 때문이요, 이것은 오로지 마음을 한 곳으로 쏟게 되나니 그로써 착한 법의 의식(儀式)이 되기 때문이며, 이것은 잘 보호하나니 그로써 계율의 무리가 되기 때문이요, 이것은 문()을 향함이니 그로써 선정의 무리가 되기 때문이며, 이것은 편히 머무름이니 그로써 지혜

의 무리가 되기 때문이요, 이것은 몸[]이니 그로써 해탈의 무리가 되기 때문이며, 이것은 법을 순종함이니 그로써 해탈지견(解脫知見)의 무리가 되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이와 같이 누더기를 입는 것은 큰 복덕을 얻고 희구하는 것도 없으며 탐착하는 것도 없고 교만한 마음도 여의며 무거운 짐을 버리게 되느니라.

 

가섭아, 만일 어떤 비구가 누더기를 입으면 만족할 줄을 알기 때문에 모든 하늘과 용과 귀신들이 몹시 좋아하면서 보고 싶어하느니라. 가섭아, 누더기를 입는 비구가 만일 선정에 들어가면 제석(帝釋범왕(梵王사천왕(四天王)이 길게 무릎 꿇고 합장하고 머리 조아려 예배를 하거늘 하물며 그 밖의 작은 하늘들이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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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4 / 3476]

 

가섭아, 만일 어떤 악한 비구가 애써 의복을 구하여 몸을 장엄하게 꾸미고 밖으로는 청정한 행을 나타내면서도 안으로는 탐냄·성냄·어리석음을 두루 갖추고 있으면 비록 이와 같이 몸을 장엄하게 꾸민다 하더라도 모든 하늘··귀신들이 그 곳으로 가서 예배 공경하거나 공양하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이 비구는 애써 의복을 구하여 그의 몸을 장엄하게 꾸미면서도 심(심수법(心數法)의 때[]를 제거하지 못하였다 함을 알기 때문이니, 모든 하늘들이 이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멀리 버리고 떠나는 것이니라.

 

가섭아, 너는 주나사미(周那沙彌)를 보았었느냐. 그는 깨끗하지 못하고 악취가 나는 쓰레기 속에서 물건들을 줍고 걸식한 뒤에 아뇩(阿耨)의 큰 못에 나아가서 그것을 빨려고 하자 그 때 못 곁에 상주(常住)하고 있던 모든 하늘들이 모두 멀리서 받들어 영접하면서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는 그 모든 하늘들을 모두 깨끗이 하는 것을 좋아하면서 그 주나사미가 주어 온 깨끗하지 못한 누더기 옷감들을 받아다 그를 위하여 깨끗이 빨아 더러운 때가 없게 하였고 또

그 빨은 물로써 자신들의 몸을 씻었느니라. 모든 하늘들은 주나가 깨끗한 계율을 지녔고 모든 선정에 들었으며 큰 위덕이 있음을 알았었나니, 이 때문에 받들어 영접하면서 공경하고 예배하는 것이니라.

 

가섭아, 너는 수발타(須跋陀) 범지(梵志)를 보았었느냐. 깨끗한 옷을 입고 걸식한 뒤에 아뇩의 큰 못에 이르려고 할 때에 상주하는 그 하늘들은 못의 사면에서 저마다 5()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범지를 막으며 못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그것은 깨끗하지 못한 음식과 밥 찌꺼기로 이 큰 못을 더럽힐까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너는 이제 실제로 그런 일들을 보았거니와 성인의 바른 행과 위엄있는 덕 때문에 이런 결과를 얻는 것이니라. 주나사미는 깨끗하지 못한 쓰레기 속의 물건을 가지고 있는데도 모든 하늘들이 가져다 그를 위하여 빨아주었고 또한 그 빨은 물로써 그의 몸까지 씻었거니와 수발다 범지는 못에서 5리쯤 떨어져 있는 데서부터 그를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가섭아, 그 누가 이런 일을 듣고 나서도 거룩한 법 가운데서 부지런히 닦고 배우지 않겠느냐. 저 모든 성인과 모든 하늘이며 세간 사람들은 모두가 와서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공경하고 공양할 것이니라. 가섭아, 이러한 거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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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5 / 3476]

 

한 덕을 구하고자 하여 누더기 옷을 입는 것이니라.

 

가섭아, 누더기를 입는 비구는 성종(聖種)에 편안히 머무르면서 근심하지 않아야 하고, 누더기에 대하여 탑()이라는 생각을 내어야 하며, 세존이라는 생각을 내어야 하고, 세간을 벗어난다[出世]는 생각을 내어야 하며, 나도 없고 내 것도 없다는 생각을 내어야 하느니라. 이렇게 관찰하고 나서 누더기를 입으며 마땅히 그의 마음을 조복해야 하나니,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에 몸의 깨끗함을 얻거니와 몸이 깨끗하다 하여 마음의 깨끗함을 얻는 것은 아니니라.

가섭아, 그러므로 그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몸은 꾸미지도 말아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에 부처님 법 중에서 범행(梵行)이라는 이름을 얻는 것이니라.

 

가섭아, 이와 같이 누더기를 입는 비구가 이렇게 잘 배우면 나를 배우는 것이 되고 또한 너에게서 배우는 것이니라. 가섭아, 만일 네가 이와 같이 거친 옷을 저축하면 곧 만족할 줄 알아서 성종(聖種)을 행할 것이니라.

 

가섭아, 네가 승가리(僧伽梨)를 평상 위나 앉아 있던 곳에 놓아두고는 우다라승(憂多羅僧)을 입고 거닐고 있으면 곧 천만의 모든 하늘들이 너의 승가리에 예배할 것이니, 이 승가리야말로 바로 계율·선정·지혜가 배어든 것이요 몸을 가리는 옷이니라. 가섭아, 알아야 하느니라. 너의 옷조차도 오히려 이렇게 존중과 예배와 공경을 받게 되거늘 하물며 너의 몸이겠느냐?

 

가섭아, 나는 전륜왕(轉輪王)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배웠지만 먼저는 좋고 훌륭한 비단옷과 두라옷[頭羅衣]과 가는 무명옷 등의 온갖 훌륭한 옷들을 모두 입었느니라. 나는 지금 만족할 줄 알고 성종(聖種)을 행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일부러 좋은 옷을 버리고 무덤 사이에 있는 옷들을 가져다 입는 것이니, 만일 장차 오는 세상의 비구들이 나의 이 법을 들으면 곧 나를 배우게 될 것이니라.

 

가섭아, 네가 본래 가졌던 금실로 된 훌륭한 옷[金縷上衣]을 내가 너에게 구하자 너는 가져다 나에게 주었느니라. 가섭아, 나는 너를 가엾이 여기어서 곧 너를 위하여 받았던 것이요 탐욕 때문도 아니고 몸을 장엄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느니라.

 

가섭아, 어떤 악한 비구는 나를 배우지도 못하고 또한 너를 배우지도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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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6 / 3476]

 

여 탐욕에 가려져서 옷과 발우를 많이 저축하고 음식을 쌓아 모으면서 감추어 놓고 버리지도 못하며 또한 금··유리·곡식····돼지·나귀··수레 및 농사짓는 기구 등의 집안 일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해서 쌓아 두리라.

 

가섭아, 지혜 있는 사람은 비록 집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착한 법을 늘릴 수 있거니와 어리석은 사람은 출가하였으면서도 이런 착한 갈래를 얻을 수 없느니라. 어떻게 지혜 있는 사람이 집에 있으면서도 착한 법을 더욱 자라게 하는가 하면 가섭아, 어떤 출가한 이가 가사(袈裟)를 목에 둘렀을 때에 사문으로서의 행이 없고 반연하는 일이 많으며 갖가지로 속박되어 좋은 의복과 음식을 구하고 있는데도 가사를 입고 있다 하여 집에 있는 사람은 그를 보고 예배

공경하면서 의복·음식·침구·탕약 등을 공급하며 오고 가는 데에 맞이하고 배웅하느니라. 가섭아, 집에 있는 사람은 이렇게 착한 법을 얻고 있거니와 저 출가한 사람에게는 이런 일도 없느니라. 왜냐 하면 저 출가한 사람은 구하는 것만 많으면서 남에게는 보시할 줄 모르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장차 오는 세상에 어떤 비구가 옷과 발우를 많이 저축하고 모든 물건들이 많이 있을 때에 그 비구에게는 많은 집에 있는 사람들이 예배와 공경과 존중과 찬탄을 받게 되느니라. 왜냐 하면 '이 비구는 다른 이의 보시를 많이 받아서 혹시 가져다 나에게 주기도 하고 내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 때마다 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혹 어떤 비구가 계율을 지니면서 세간의 허물을 보고 부지런히 착한 법을 닦으면서 온갖 번뇌를 여읨이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하며 그 마음은 만족할 줄 알고 모든 반연하는 일이 적으며 부지런히 자기의 이익을 닦으면서 온갖 악한 인연을 익힌 이를 여의고 있을 때에 그 비구에게는 그에게 가는 사람도 없고 친근히 하는 이도 없으며 예배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는 이도 없느니라. 왜냐 하면 저 집에 있는 사람들은 경솔하고 천박하여서 현

재 세상의 이익만을 보고 미래 세상의 이익을 보지 않기 때문이니, 저 집에 있는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이 비구의 곁에서는 친근하여 예배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여 보았자 이익을 얻지 못하리라'고 하느니라. 가난한 사람과 선근이 적은 이와 전생의 인연으로 마땅히 공경해야 할 사람만은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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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7 / 3476]

 

외되느니라. 가섭아, 이러한 사람들이 친근하고 예배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할 사람은 계율을 지닌 비구이니, 그를 선지식(善知識)으로 삼을 것이니라.

 

가섭아, 이렇게 말하고 나면 두 부류의 사람의 뜻과 일치하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두 부류인가 하면 첫째는 네 가지 거룩한 진리[聖諦]를 본 이요, 둘째는 나고 죽음의 허물을 본 이니라. 다시 두 부류가 있으니, 첫째는 부지런히 수행하면서 네 가지 멍에[]를 여의려고 하는 이요, 둘째는 사문의 과위[沙門果]를 얻고자 하는 이이니라. 또 두 부류가 있나니, 첫째는 오로지 업보(業報)만을 생각하는 이요, 둘째는 모든 법 모양의 이치를 알고자 하는

이이니라.

 

가섭아, 나는 이제 온갖 게으른 이의 문을 닫아 막나니, 이른바 업을 모르고 업보를 모르는 이요 착한 의식(儀式)을 여읜 이니라. 미래 세상의 허물을 보지 않는 것이 마치 금강과 같아서 현재 세상의 이익만을 보고 뒷세상의 이익은 보지 않나니, 한 생각도 해탈의 문을 향하려는 마음을 내지 않는 사람이니라. 가섭아, 나는 이제 '저 악한 비구는 희망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하노니, 만일 이와 같은 법을 말하거나 이와 같은 법을 만나거나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나면 스스로 행할 바를 알겠거늘 깊은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을 비방하면서 '부처님 말씀이 아니다, 이것은 논사(論師)가 지었다, 혹은 악마가 한 말이다'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느니라. 저 악한 비구는 이와 같이 자기 자신을 해치면서 또한 남을 해치며 자기 자신이 더러움에 물들면서 또한 남도 물들게 하나니, 이런 악한 비구는 자기를 이익 되게 할 수도 없고 또한 남도 이익 되게 하지 못하느니라.”

 

그 때 마하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마치 모든 부처님의 대비(大悲)와 같기 때문에 오로지 수행하는 비구에게 모든 법 가운데서 자재할 수 있다는 말씀을 여래께서는 이 경 가운데서 이미 널리 말씀하여 마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중생이 이 경을 들은 뒤에 믿고 이해하여 읽고 외우면서 여실(如實)한 법을 향하면 이 중생이야말로 벌써 모든 부처님께서 거두어들이신 줄 알 것이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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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8 / 3476]

 

만일 어떤 이라도 이 경을 받아 지니면 이미 먼저의 부처님 처소에서 모든 선근을 심었기 때문에 지금 이 경을 읽고 외우면서 환히 알려고 하는 것이요 해탈을 얻고자 하는 것이니라. 이른바 선남자나 선여인으로서 출가하여 배우는 이거나 집에 있으면서 배우는 이거나 간에 이 법문으로 모든 번뇌를 끊고 또한 열반도 얻을 것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경을 받아 지니려 하옵니다. 이 경의 이름은 무엇이라 하오며 어떻게 받아 지니오리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은 선택일체법보경(選擇一切法寶經)이라 하며 또한 안주성종의식경(安住聖種儀式經)이라고도 하고, 또한 섭취지계자경(攝取持戒者經)이라고도 하고, 또한 절해파계자경(節解破戒者經)이라고도 하고, 또한 보량경(寶梁經)이라고도 하고, 또한 보취경(寶取經)이라고도 하고 또한 보장경(寶藏經)이라고도 하며 또한 제보법문경(諸寶法門經)이라고도 하느니라.”

 

마하 가섭이 이 대승보량경을 물어 마치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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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9 / 3476]

 

 

 

 

 

 

 

보량경(寶梁經)에는 ‘반듯이 누워 자는 것은 아수라의 잠이요, 엎드려 누워 있는 것은 아귀의 잠이며, 왼쪽으로 누워 자는 것은 탐욕인의 잠이고, 오른쪽으로 누워 자는 것은 출가인의 잠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여 탐욕에 가려져서 옷과 발우를 많이 저축하고 음식을 쌓아 모으면서 감추어 놓고 버리지도 못하며 또한 금··유리·곡식····돼지·나귀··수레 및 농사짓는 기구 등의 집안 일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해서 쌓아 두리라.
가섭아, 지혜 있는 사람은 비록 집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착한 법을 늘릴 수 있거니와 어리석은 사람은 출가하였으면서도 이런 착한 갈래를 얻을 수 없느니라. 어떻게 지혜 있는 사람이 집에 있으면서도 착한 법을 더욱 자라게 하는가 하면 가섭아, 어떤 출가한 이가 가사(袈裟)를 목에 둘렀을 때에 사문으로서의 행이 없고 반연하는 일이 많으며 갖가지로 속박되어 좋은 의복과 음식을 구하고 있는데도 가사를 입고 있다 하여 집에 있는 사람은 그를 보고 예배 공경하면서 의복·음식·침구·탕약 등을 공급하며 오고 가는 데에 맞이하고 배웅하느니라. 가섭아, 집에 있는 사람은 이렇게 착한 법을 얻고 있거니와 저 출가한 사람에게는 이런 일도 없느니라. 왜냐 하면 저 출가한 사람은 구하는 것만 많으면서 남에게는 보시할 줄 모르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장차 오는 세상에 어떤 비구가 옷과 발우를 많이 저축하고 모든 물건들이 많이 있을 때에 그 비구에게는 많은 집에 있는 사람들이 예배와 공경과 존중과 찬탄을 받게 되느니라. 왜냐 하면 '이 비구는 다른 이의 보시를 많이 받아서 혹시 가져다 나에게 주기도 하고 내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 때마다 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니라.
가섭아, 혹 어떤 비구가 계율을 지니면서 세간의 허물을 보고 부지런히 착한 법을 닦으면서 온갖 번뇌를 여읨이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하며 그 마음은 만족할 줄 알고 모든 반연하는 일이 적으며 부지런히 자기의 이익을 닦으면서 온갖 악한 인연을 익힌 이를 여의고 있을 때에 그 비구에게는 그에게 가는 사람도 없고 친근히 하는 이도 없으며 예배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는 이도 없느니라. 왜냐 하면 저 집에 있는 사람들은 경솔하고 천박하여서 현재 세상의 이익만을 보고 미래 세상의 이익을 보지 않기 때문이니, 저 집에 있는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이 비구의 곁에서는 친근하여 예배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여 보았자 이익을 얻지 못하리라'고 하느니라. 가난한 사람과 선근이 적은 이와 전생의 인연으로 마땅히 공경해야 할 사람만은 제

 

                                                                            [3297 / 3476] 

외되느니라. 가섭아, 이러한 사람들이 친근하고 예배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할 사람은 계율을 지닌 비구이니, 그를 선지식(善知識)으로 삼을 것이니라.
가섭아, 이렇게 말하고 나면 두 부류의 사람의 뜻과 일치하게 되느니라. 어떤 것이 두 부류인가 하면 첫째는 네 가지 거룩한 진리[聖諦]를 본 이요, 둘째는 나고 죽음의 허물을 본 이니라. 다시 두 부류가 있으니, 첫째는 부지런히 수행하면서 네 가지 멍에[]를 여의려고 하는 이요, 둘째는 사문의 과위[沙門果]를 얻고자 하는 이이니라. 또 두 부류가 있나니, 첫째는 오로지 업보(業報)만을 생각하는 이요, 둘째는 모든 법 모양의 이치를 알고자 하는 이이니라.
가섭아, 나는 이제 온갖 게으른 이의 문을 닫아 막나니, 이른바 업을 모르고 업보를 모르는 이요 착한 의식(儀式)을 여읜 이니라. 미래 세상의 허물을 보지 않는 것이 마치 금강과 같아서 현재 세상의 이익만을 보고 뒷세상의 이익은 보지 않나니, 한 생각도 해탈의 문을 향하려는 마음을 내지 않는 사람이니라. 가섭아, 나는 이제 '저 악한 비구는 희망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하노니, 만일 이와 같은 법을 말하거나 이와 같은 법을 만나거나 이와 같은 법을 듣고 나면 스스로 행할 바를 알겠거늘 깊은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을 비방하면서 '부처님 말씀이 아니다, 이것은 논사(論師)가 지었다, 혹은 악마가 한 말이다'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느니라. 저 악한 비구는 이와 같이 자기 자신을 해치면서 또한 남을 해치며 자기 자신이 더러움에 물들면서 또한 남도 물들게 하나니, 이런 악한 비구는 자기를 이익 되게 할 수도 없고 또한 남도 이익 되게 하지 못하느니라.”
그 때 마하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마치 모든 부처님의 대비(大悲)와 같기 때문에 오로지 수행하는 비구에게 모든 법 가운데서 자재할 수 있다는 말씀을 여래께서는 이 경 가운데서 이미 널리 말씀하여 마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중생이 이 경을 들은 뒤에 믿고 이해하여 읽고 외우면서 여실(如實)한 법을 향하면 이 중생이야말로 벌써 모든 부처님께서 거두어들이신 줄 알 것이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3298 / 3476] 

만일 어떤 이라도 이 경을 받아 지니면 이미 먼저의 부처님 처소에서 모든 선근을 심었기 때문에 지금 이 경을 읽고 외우면서 환히 알려고 하는 것이요 해탈을 얻고자 하는 것이니라. 이른바 선남자나 선여인으로서 출가하여 배우는 이거나 집에 있으면서 배우는 이거나 간에 이 법문으로 모든 번뇌를 끊고 또한 열반도 얻을 것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경을 받아 지니려 하옵니다. 이 경의 이름은 무엇이라 하오며 어떻게 받아 지니오리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은 선택일체법보경(選擇一切法寶經)이라 하며 또한 안주성종의식경(安住聖種儀式經)이라고도 하고, 또한 섭취지계자경(攝取持戒者經)이라고도 하고, 또한 절해파계자경(節解破戒者經)이라고도 하고, 또한 보량경(寶梁經)이라고도 하고, 또한 보취경(寶取經)이라고도 하고 또한 보장경(寶藏經)이라고도 하며 또한 제보법문경(諸寶法門經)이라고도 하느니라.”
 

마하 가섭이 이 대승보량경을 물어 마치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