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走筆謝孟諫議寄新茶》
-盧仝
日高丈五睡正濃,軍將打門驚周公。口雲諫議送書信,
白絹斜封三道印。開緘宛見諫議面,手閱月團三百片。
聞道新年入山裏,蟄蟲驚動春風起。天子須嘗陽羨茶,
百草不敢先開花。仁風暗結珠琲瓃,先春抽出黃金芽。
摘鮮焙芳旋封裹,至精至好且不奢。至尊之餘合王公,
何事便到山人家。柴門反關無俗客,紗帽籠頭自煎吃。
碧雲引風吹不斷,白花浮光凝碗面。一碗喉吻潤,
兩碗破孤悶。三碗搜枯腸,唯有文字五千卷。四碗發輕汗,
平生不平事,盡向毛孔散。五碗肌骨清,六碗通仙靈。
七碗吃不得也,唯覺兩腋習習清風生。蓬萊山,在何處。
玉川子,乘此清風欲歸去。山上群仙司下土,
地位清高隔風雨。安得知百萬億蒼生命,
墮在巔崖受辛苦。便為諫議問蒼生,到頭還得蘇息否。
一碗喉吻潤,
二碗破孤悶。
三碗搜枯腸, 惟有文字五千卷。
四碗發輕汗, 平生不平事,盡向毛孔散。
五碗肌骨清,
六碗通仙靈。
七碗吃不得也, 唯覺兩腋習習清風生。
蓬萊山, 在何處? 玉川子乘此清風欲歸去。
一椀喉吻潤
両椀破孤悶
三椀捜枯腸 唯有文字五千巻
四椀発軽汗 平生不平事尽向毛孔散
五椀肌骨清
六椀通仙霊
七椀喫不得也 唯覚両腋習習清風生 蓬莱山、在何処。玉川子、乗此清風欲帰去。
-
사늘한 바람이 가볍고 보드랍게 잇달아 붊









노동
당나라 |
약 795년 ~ 835년 |
[ 盧仝 , lú tóng ]
당나라 |
약 795년 ~ 835년 |
1.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은거하다
당나라 때 시인 노동은 허난(河南)성 지위안(濟源)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하북(河北) 범양(範陽, 현 허베이성 줘저우(涿州)시)이다. 당나라 초기 뛰어난 네 명의 시인 내지 문장가들인 ‘초당사걸’의 한 사람이었던 노조린의 직계 자손이다.
그는 벼슬에 뜻이 없어서 일찍부터 소실산(少室山, 허난성 덩펑(登封)현 북쪽 산)에 숨어 살면서 스스로를 옥천자(玉川子)라 불렀다. 뒤에 허난성 뤄양(洛陽)으로 이주한 후에도 매우 가난하게 생활하였는데, 집안에는 서책이 가득하였다고 한다.
한유가 하남령(河南令)으로 있을 때 그의 재능을 아껴 많은 후원을 했다. 일찍이 붕당의 횡포를 풍자한 장편시 <월식시(月蝕詩)>를 지어 한유의 칭송을 들었다.
‘다선(茶仙)’이라 불릴 정도로 차를 즐겨 마셨고, <다가(茶歌)>를 지었는데 경구(警句, 격언)가 많았다.
재상 이훈(李訓) 등이 환관 소탕을 도모하다가 실패한 감로지변(甘露之變) 때 그도 휩쓸려 살해되었다.
2. 고고한 인품과 낭만적 시풍

노동과 친한 친구 사이였던 가도의 초상화
노동은 고고한 성격으로 맹교를 닮았다는 평가도 듣는다. 아주 궁핍한 삶을 살면서도 절개를 꺾지 않아 주위로부터 많은 칭송을 받았다. 조정에서도 이런 인품을 평가하여 기용하려 하였으나 고사했다. 좋은 친구였던 시인 가도는 그의 죽음을 듣고 “40평생에 흰 베옷 한 벌만 입고 살았다”며 통곡했다.
그는 각고의 노력으로 독서에 열중하여 경전과 역사에 두루 능통했으며 시풍 역시 이런 박학하고 다재다능한 면을 반영하고 있다. 시풍은 낭만적이면서 기이한 분위기가 다분하여 ‘노동체(盧仝體)’라는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하며, 후대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첫잔은 입술을 적시고, 두 번째 잔은 고민을 깨고’로 시작하는 <일곱 잔의 차를 마시며(칠완다시(七碗茶詩))> 라는 시가 인구에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다. 다도를 중시하는 일본에서 특히 추앙을 받고 있는데, 다성(茶聖) 육우와 함께 늘 거론된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설들이 많은데 대체로 그의 시가 권력자의 심기를 건드린 탓으로 보고 있다.
저서로 『다보(茶譜)』, 『옥천자시집(玉川子詩集)』 2권과 『외집(外集)』이 있다.
3. 관련 유적
지금의 허난성 지위안시 구리구(九里溝)라는 곳에 옥천천(玉川泉), 노동다사(盧仝茶肆) 등과 같은 명승이 남아 있다. 또 지위안시 사례촌(思禮村) 동쪽에는 ‘노동고리(盧仝故里)’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 정자가 있다.
참고문헌
- 『전당시(全唐詩)』, (청 강희 44년 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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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노동 [盧仝, lú tóng] (중국인물사전)
七碗茶 語音 編輯 討論50 上傳視頻
《七碗茶》是唐代詩人盧仝在少室山茶仙穀茶仙泉隱居時所做的的七言古詩《走筆謝孟諫議寄新茶》中重點的一部分,寫出了品飲新茶給人的美妙意境,廣爲傳頌。
作品名稱七碗茶作品別名《七碗茶歌》、《七碗茶詩》作 者盧仝創作年代唐代作品出處《走筆謝孟諫議寄新茶》文學體裁七言古詩
目錄
1 詩歌
▪ 寫作起因
▪ 茶歌內容
▪ 作品賞析
▪ 作者簡介
2 茗茶品牌
詩歌編輯 語音
寫作起因
河南沁園景區有五十五眼泉。西湖的桃花島,四面環水,百竹擁翠,島下有一泉眼,從入島的拱橋邊噴出,翻湧數尺之高,落入泉組河。其水質清澈甘甜,舊時人稱桃花泉。
中唐時的沁園已變成河東、河南、河內的官僚宦族和文人墨客的休閑場所和宴遊文化中心。
家住河內濟源思禮村的盧仝,(約795—835)號玉川子,是“初唐四傑”之一盧照鄰的嫡系子孫,雖出身名門望族,家境卻十分貧寒。他耿直孤僻,淡泊名利,尤厭惡官場的孽政弊息,不入科考,隱居山野,刻苦攻讀。不被高官厚祿所誘,拒絕仕途,以清貧耿介聞名。朝廷聞知盧仝的才學,曾兩次征他爲諫議大夫(官位五品),但他憎惡朝廷宦官專權,卑視官場齷齪,都未應命而謝絕。正如他《冬日》詩中所曰“上不識天子,下不識王候。”(《全唐詩》卷588〈盧仝詩集〉)。韓愈尤以喜愛盧仝的才學和狷介高潔的節操,在任河南令時對盧仝時有接濟。因此,盧仝一生與韓愈、張籍、孟郊、賈島混在一起,成爲唐代韓孟詩派的重要人物,繼而成爲中國的“茶仙”。
沁園的所在地博愛縣許良鎮與沁陽市的山王莊鎮至濟源市的五龍口鎮和九裏溝,全長三十多公裏,是南太行腳下最美、最有故事的風景帶。不滿時世,卻又放駭自我的盧仝常邀好友,在這一帶觀景飲遊。因此,九裏溝的盧仝茶台遺存尚在,沁園裏的“韓茶”、“盧泉”和“七碗茶歌”的故事流傳至今。
唐元和四年,家住河內孟州的河南令韓愈與河內濟源的盧仝一起逍遙河內的沁園。兩人與藝妓坐飲,歌舞一陣,便喚侍女上茶。而唐時的河內人,只喝當地的菊花茶和冬淩茶。盧仝雖也是河內人,畢竟爲“茶仙”,龍井、毛尖無所不用,所以菊花茶雖然淳和甘甜,卻缺少清苦之美,因此大爲不快。韓愈是來這裏移竹的常客,對竹林植物甚是了解,就帶盧仝在竹林裏采摘一些了竹串子,建議將其泡茶試飲。結果竹串子未經泡制,泡出的茶苦澀有餘,清香不足,盧仝很是苦惱。片刻之後,盧仝突然提議出去看泉,韓愈不解其意,跟在後邊。只見盧仝每到一泉,捧水就喝,結果五十五泉看完,肚子喝的鼓脹,逗韓愈捧腹大笑。稍後,盧仝讓侍女將桃花泉水盛起,再次烹煮,讓韓俞酌飲。韓愈品後,頓解其意,不盡樂道:“甘苦相濟,清雅漫延,別有滋味,好茶、好茶!”原來,竹串子的藥理,就是生津和血,清熱去火,和肺解毒,加上桃花泉的甘甜和礦物成份的藥化反應,竹串子茶變得柔綿、清心,益脾、養神,的確爲上佳飲品。
以後的日子,韓、盧二人常邀張籍、孟郊、賈島等朋友多次來桃花泉煮飲,歌賦詞呤,留下了很多佳話和詩篇。
唐元和六年,盧仝收到好友諫議大夫孟簡寄送來的茶葉,又邀韓愈,賈島等人在桃花泉煮飲時,著名的“七碗茶歌”就此產生。盧仝的茶歌所表達的飲茶感受,不僅僅是口腹之欲,而是將“竹串子茶”的藥理、藥效溶入其中,醒神益體,淨化靈魂,激發文思,凝聚萬象,制造了一個妙不可言的境界。
茶歌內容
日高丈五睡正濃, 軍將打門驚周公。
口雲諫議送書信, 白絹斜封三道印。
開緘宛見諫議面, 手閱月團三百片。
聞道新年入山裏, 蟄蟲驚動春風起。
天子須嘗陽羨茶, 百草不敢先開花。
仁風暗結珠蓓蕾, 先春抽出黃金芽。
摘鮮焙芳旋封裹, 至精至好且不奢。
至尊之餘合王公, 何事便到山人家?
柴門反關無俗客, 紗帽籠頭自煎吃。
碧雲引風吹不斷, 白花浮光凝碗面。
一碗喉吻潤, 二碗破孤悶。
三碗搜枯腸, 惟有文字五千卷。
四碗發輕汗, 平生不平事,盡向毛孔散。
五碗肌骨清, 六碗通仙靈。
七碗吃不得也, 唯覺兩腋習習清風生。
蓬萊山, 在何處? 玉川子乘此清風欲歸去。
山上群仙司下土, 地位清高隔風雨。
安得知百萬億蒼生命, 墮在顛崖受辛苦。
便爲諫議問蒼生, 到頭還得蘇息否。
茶歌
노동(盧仝)
日高丈五睡正濃 (일고장오수정농) 해는 장 오척이나 높이 솟았어도 잠에 푹 빠졌는데
軍將扣門驚周公 (군장구문경주공) 군의 장교가 와 문을 두드리어 주공의 꿈 깨우네
口傳諫議送書信(구전간의송서신)입으로 전하기를 간의대부께서 편지를 전해왔다 하니
白絹斜封三道印(백견사봉삼도인) 흰 비단으로 비스듬히 봉하고 세 개의 도장이 찍히었구나
開緘宛見諫議面(개함완현간의면) 봉함을 열자 간의대부의 얼굴이 완연히 나타나고
首閱月團三百片(수열월단삼백편) 가장 먼저 보이네,달처럼 둥근 삼백 편의 차
聞設新年入山裏(문설신년입산리) 듣자하니 새해에 산 속에 들어간다니
蟄蟲驚動春風起(칩충경동춘풍기) 겨울잠 자던 벌레들 놀라 움직이고 봄바람 일어난다네
天子須嘗陽羨茶(천자수상양선다) 천자께선 모름지기 양선의 차 맛보실 터이니
阳羡茶产于강소江苏宜兴,以汤清、芳香、味醇的特点而誉满全国。历史悠久,自古享有盛名,不仅深受皇亲国戚的偏爱,而且得到文人雅士的喜欢。“天子未尝阳羡茶,百草不敢先开花”,宜兴阳羡紫笋茶历来与杭州龙井茶、苏州碧螺春齐名,被列为贡品。
百草不敢先開花(백초불감선개화) 온갖 풀이 감히 차보다 먼저 꽃피우지 못하고
仁風暗結珠蓓蕾(인풍암결주배뢰) 어진 바람이 살며시 구슬 같은 꽃봉우리 맺게 하니
배뢰蓓蕾 꽃봉오리 배, 꽃봉오리 뢰
꽃봉오리
젖꼭지
장식 단추
누름단추
先春抽出黃金芽(선춘추출황금아) 봄에 앞서서 먼저 황금같은 싹을 뽑아내는구나
摘鮮焙芳旋封裹(적선배방선봉과) 그 싱싱한 싹을 따서 향기롭게 볶아 곧바로 봉하여 싸니
배焙
旋
12.
至精至好且不奢(지정지호차불사) 지극히 정성되고 훌륭하나 사치한 것은 아니라네
至尊之餘合王公(지존지여합왕공) 천자께서 남기신 것 왕공들에게나 합당할 것인저
何事便到山人家(하사변도산인가) 어인 일로 곧장 산사람의 집까지 오게 되었는가
柴門反關無俗客(시문반관무속객) 사립문 잠겨 세상 속인들 발걸음 없는 곳인데
紗帽籠頭自煎喫(사모농두자전끽)깁모자로 머리 감싸고 홀로 차 달여 마신다네
碧雲引風吹不斷(벽운인풍취부단) 푸른 구름 같은 차의 김은 바람을 일게 하고
白花浮光凝碗面(백화부광응완면) 흰 꽃 같은 차 거품은 밝은빛을 띄우며 찻잔에 엉기네
一碗喉吻潤(일완후문윤) 첫째 잔은 목과 입을 적셔주고
二碗破孤悶(이완파고민) 두번 째 잔은 외로운 시름 깨쳐주고
三碗搜枯腸(삼완수고장) 셋째 잔은 메마른 창자를 찾아가니
惟有文字五千卷(유유문자오천권) 뱃 속에는 오천 권의 문자만 남게 되었다네
四碗發輕汗(사완발경한) 넷째 잔은 가벼운 땀을 나게 하여
平生不平事(평생불평사) 평생의 불평스러운 일들을
盡向毛孔散(진향모공산) 모두 털구멍으로 흩어져 나가게 하였다네
五碗肌骨淸(오완기골청) 다섯째 잔은 살과 뼈를 맑게 해주고
六碗通仙靈(육완통선령) 여섯째 잔은 신선의 신령스러움과 통하게 하네
七碗喫不得也(칠완끽부득야) 일곱째 잔은 마실 수도 없으니
唯覺兩腋習習淸風生(유각양액습습청풍생) 오로지 느껴진다네, 양 겨드랑이에 맑은 바람 일어남이
蓬萊山在何處(봉래산재하처) 봉래산은 어디쯤에 있는가
玉川子乘此風欲歸去(옥천자승차풍욕귀거) 나 옥천자는 이 바람 타고 돌아가려 한다네
山上群仙司下土(산상군선사하토) 봉래산 위의 신선들 아래 땅을 다스리지마는
雨地位淸高隔風 (지위청고격풍우) 그 자리가 맑고도 높아 비바람이 이르지 않으니
安得知百萬億蒼生(안득지백만억창생) 어찌 알리오, 백만 억 창생들이
命墮顚崖受辛苦(명타전애수신고) 운명이 벼랑에 거꾸로 떨어져 고통받고 있는 줄을
便從諫議問蒼生(변종간의문창생) 그러니 간의대부께 창생들에 대하여 물어본다면
到頭合得蘇息否(도두합득소식부) 마침내 소생했는지를 바로 알 수 있도다
作品賞析
《七碗茶歌》是《走筆謝孟諫議寄新茶》中的第三部分,也是最精彩的部分,它寫出了品飲新茶給人的美妙意境:第一碗喉吻潤,第二碗幫人趕走孤悶;第三碗就開始反複思索,心中只有道了; 第四碗,平生不平的事都能拋到九霄雲外,表達了茶人超凡脫俗的寬大胸懷;喝到第七碗時,已兩腋生風,欲乘清風歸去,到人間仙境蓬萊山上。一杯清茶,讓詩人潤喉、除煩、潑墨揮毫,並生出羽化成仙的美境。寫出了茶之美妙。茶對他來說,不只是一種口腹之飲,茶似乎給他創造了一片廣闊的精神世界,將喝茶提高到了一種非凡的境界,專心的喝茶竟可以不記世俗,拋卻名利,羽化登仙。
作者簡介
盧仝(音tóng 〈形〉)(約795~835年),號玉川子,濟源(今河南)人,祖籍範陽(今河北涿縣),唐代詩人。盧仝一生愛茶成癖,被後人尊爲茶中亞聖。
盧仝著有《茶譜》,被世人尊稱爲“茶仙”。這首《七碗茶歌》在日本廣爲傳頌,並演變爲“喉吻潤、破孤悶、搜枯腸、發輕汗、肌骨清、通仙靈、清風生”的日本茶道。日本人對盧仝推崇備至,常常將之與“ 茶聖”陸羽相提並論。
至今的九裏溝還有玉川泉、品茗延壽台、盧仝茶社等名勝。
茗茶品牌編輯 語音
七碗茶
七碗茶(4張)
七碗茶,中國茗茶郵購品牌,名字來源於唐代詩人盧仝所著《七碗茶歌》。
七碗茶歌(칠완다가 : 일곱잔을 마시며 차를 예찬하다) - 노동(盧仝) -
仝
- 1
한가지
- 2
무리(모여서 뭉친 한 동아리)
- 3
함께(=同)
七碗茶歌
一碗喉吻潤(일완후문윤) 첫째 잔은 목과 입술 적시고
兩碗破孤悶(양완파고민) 둘째 잔은 외로운 번민 씻어주네
三碗搜枯腸(삼완수고장) 셋째 잔은 메마른 창자 적시니
惟有文字五千卷(유유문자오천권) 생각나는 글자가 오천권이나 되고
四碗發輕汗(사완발경한) 넷째 잔은 가벼운 땀 솟아
平生不平事(평생불평사) 평생에 불평스러운 일들이
盡向毛孔散(진향모공산) 모두 땀구멍으로 흩어지네
五碗肌骨淸(오완기골청) 다섯째 잔은 살과 뼈를 깨끗하게 하고
六碗通仙靈(육완통선영) 여섯째 잔은 선령과 통하였다네
七碗喫不得(칠완끽부득) 일곱째 잔은 채 마시지도 않았건만
唯覺兩腋習習淸風生(유각양액습습청풍생) 두 겨드랑이에 밝은바람 일어남을 느끼니
蓬萊山在何處(봉래산재하처) 아~아 봉래산은 어디인가?
玉泉子 乘此淸風欲歸去 옥천자(노동)는 이 맑은 바람타고 돌아가려네
일완후문윤(一碗喉吻潤)
이완파독민(二碗破孤悶)
삼완수고장,유유문자오천권(三碗搜枯腸,惟有文字五千卷)
사완발경한,평생불평사,진향모공산(四碗發輕汗,平生不平事,盡向毛 孔散)
오완기골청(五碗肌骨淸)
육완통선령(六碗通仙靈)
칠완계불득, 유각두액습습경풍생(七碗契不得,惟覺兩腋習習輕風生)
일완후문윤(一碗喉吻潤)
이완파독민(二碗破孤悶)
삼완수고장,유유문자오천권(三碗搜枯腸,惟有文字五千卷)
사완발경한,평생불평사,진향모공산(四碗發輕汗,平生不平事,盡向毛 孔散)
오완기골청(五碗肌骨淸)
육완통선령(六碗通仙靈)
칠완계불득, 유각두액습습경풍생(七碗契不得,惟覺兩腋習習輕風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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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창자. 빈 속
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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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찾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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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찾다, 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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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탐구하다(探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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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가리다, 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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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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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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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쓸쓸하다, 드문드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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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움직이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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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청랭(淸冷)한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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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가을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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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사람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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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어지러울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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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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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어지러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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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흐트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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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실에 노동의 칠완다가.
첫 번째 잔은 목과 입술을 적시고
두 번째 잔은 고독과 번민을 없애주네
세 번째 잔은 오천권의 문자가생각나네
네 번째 잔은 가벼운 땀이 흘러 평생
불평한 일들이 땀구멍으로
모두 흩어지고
다섯 번째 잔은 살과 뼈가 맑아지고
여섯 번째 잔은 신령과 통하네
일곱 번째 잔은 마시기도 전에 겨드랑이에 가벼운
바람이 솔솔 부는 것을 느끼네
취는 붙잡음. 붙잡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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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碗茶》是唐代诗人卢仝在少室山茶仙谷茶仙泉隐居时所做的的七言古诗《走笔谢孟谏议寄新茶》中重点的一部分,写出了品饮新茶给人的美妙意境,广为传颂。
作品名称七碗茶作品别名《七碗茶歌》、《七碗茶诗》作 者卢仝创作年代唐代作品出处《走笔谢孟谏议寄新茶》文学体裁七言古诗
目录
1 诗歌
▪ 写作起因
▪ 茶歌内容
▪ 作品赏析
▪ 作者简介
2 茗茶品牌
诗歌编辑 语音
写作起因
河南沁园景区有五十五眼泉。西湖的桃花岛,四面环水,百竹拥翠,岛下有一泉眼,从入岛的拱桥边喷出,翻涌数尺之高,落入泉组河。其水质清澈甘甜,旧时人称桃花泉。
中唐时的沁园已变成河东、河南、河内的官僚宦族和文人墨客的休闲场所和宴游文化中心。
家住河内济源思礼村的卢仝,(约795—835)号玉川子,是“初唐四杰”之一卢照邻的嫡系子孙,虽出身名门望族,家境却十分贫寒。他耿直孤僻,淡泊名利,尤厌恶官场的孽政弊息,不入科考,隐居山野,刻苦攻读。不被高官厚禄所诱,拒绝仕途,以清贫耿介闻名。朝廷闻知卢仝的才学,曾两次征他为谏议大夫(官位五品),但他憎恶朝廷宦官专权,卑视官场龌龊,都未应命而谢绝。正如他《冬日》诗中所曰“上不识天子,下不识王候。”(《全唐诗》卷588〈卢仝诗集〉)。韩愈尤以喜爱卢仝的才学和狷介高洁的节操,在任河南令时对卢仝时有接济。因此,卢仝一生与韩愈、张籍、孟郊、贾岛混在一起,成为唐代韩孟诗派的重要人物,继而成为中国的“茶仙”。
沁园的所在地博爱县许良镇与沁阳市的山王庄镇至济源市的五龙口镇和九里沟,全长三十多公里,是南太行脚下最美、最有故事的风景带。不满时世,却又放骇自我的卢仝常邀好友,在这一带观景饮游。因此,九里沟的卢仝茶台遗存尚在,沁园里的“韩茶”、“卢泉”和“七碗茶歌”的故事流传至今。
唐元和四年,家住河内孟州的河南令韩愈与河内济源的卢仝一起逍遥河内的沁园。两人与艺妓坐饮,歌舞一阵,便唤侍女上茶。而唐时的河内人,只喝当地的菊花茶和冬凌茶。卢仝虽也是河内人,毕竟为“茶仙”,龙井、毛尖无所不用,所以菊花茶虽然淳和甘甜,却缺少清苦之美,因此大为不快。韩愈是来这里移竹的常客,对竹林植物甚是了解,就带卢仝在竹林里采摘一些了竹串子,建议将其泡茶试饮。结果竹串子未经泡制,泡出的茶苦涩有余,清香不足,卢仝很是苦恼。片刻之后,卢仝突然提议出去看泉,韩愈不解其意,跟在后边。只见卢仝每到一泉,捧水就喝,结果五十五泉看完,肚子喝的鼓胀,逗韩愈捧腹大笑。稍后,卢仝让侍女将桃花泉水盛起,再次烹煮,让韩俞酌饮。韩愈品后,顿解其意,不尽乐道:“甘苦相济,清雅漫延,别有滋味,好茶、好茶!”原来,竹串子的药理,就是生津和血,清热去火,和肺解毒,加上桃花泉的甘甜和矿物成份的药化反应,竹串子茶变得柔绵、清心,益脾、养神,的确为上佳饮品。
以后的日子,韩、卢二人常邀张籍、孟郊、贾岛等朋友多次来桃花泉煮饮,歌赋词呤,留下了很多佳话和诗篇。
唐元和六年,卢仝收到好友谏议大夫孟简寄送来的茶叶,又邀韩愈,贾岛等人在桃花泉煮饮时,著名的“七碗茶歌”就此产生。卢仝的茶歌所表达的饮茶感受,不仅仅是口腹之欲,而是将“竹串子茶”的药理、药效溶入其中,醒神益体,净化灵魂,激发文思,凝聚万象,制造了一个妙不可言的境界。
茶歌内容
日高丈五睡正浓, 军将打门惊周公。
口云谏议送书信, 白绢斜封三道印。
开缄宛见谏议面, 手阅月团三百片。
闻道新年入山里, 蛰虫惊动春风起。
天子须尝阳羡茶, 百草不敢先开花。
仁风暗结珠蓓蕾, 先春抽出黄金芽。
摘鲜焙芳旋封裹, 至精至好且不奢。
至尊之余合王公, 何事便到山人家?
柴门反关无俗客, 纱帽笼头自煎吃。
碧云引风吹不断, 白花浮光凝碗面。
一碗喉吻润, 二碗破孤闷。
三碗搜枯肠, 惟有文字五千卷。
四碗发轻汗, 平生不平事,尽向毛孔散。
五碗肌骨清, 六碗通仙灵。
七碗吃不得也, 唯觉两腋习习清风生。
蓬莱山, 在何处? 玉川子乘此清风欲归去。
山上群仙司下土, 地位清高隔风雨。
安得知百万亿苍生命, 堕在颠崖受辛苦。
便为谏议问苍生, 到头还得苏息否。
作品赏析
《七碗茶歌》是《走笔谢孟谏议寄新茶》中的第三部分,也是最精彩的部分,它写出了品饮新茶给人的美妙意境:第一碗喉吻润,第二碗帮人赶走孤闷;第三碗就开始反复思索,心中只有道了; 第四碗,平生不平的事都能抛到九霄云外,表达了茶人超凡脱俗的宽大胸怀;喝到第七碗时,已两腋生风,欲乘清风归去,到人间仙境蓬莱山上。一杯清茶,让诗人润喉、除烦、泼墨挥毫,并生出羽化成仙的美境。写出了茶之美妙。茶对他来说,不只是一种口腹之饮,茶似乎给他创造了一片广阔的精神世界,将喝茶提高到了一种非凡的境界,专心的喝茶竟可以不记世俗,抛却名利,羽化登仙。
作者简介
卢仝(音tóng 〈形〉)(约795~835年),号玉川子,济源(今河南)人,祖籍范阳(今河北涿县),唐代诗人。卢仝一生爱茶成癖,被后人尊为茶中亚圣。
卢仝著有《茶谱》,被世人尊称为“茶仙”。这首《七碗茶歌》在日本广为传颂,并演变为“喉吻润、破孤闷、搜枯肠、发轻汗、肌骨清、通仙灵、清风生”的日本茶道。日本人对卢仝推崇备至,常常将之与“ 茶圣”陆羽相提并论。
至今的九里沟还有玉川泉、品茗延寿台、卢仝茶社等名胜。
茗茶品牌编辑 语音
七碗茶
七碗茶(4张)
七碗茶,中国茗茶邮购品牌,名字来源于唐代诗人卢仝所著《七碗茶歌》。
稷粥稷粥 (직죽직죽)
제호 양경우
지난해 추수 못해 백성들 굶주리고
조밥 꽃 쌀밥 꽃 먹지도 못 하는데
하물며 푸성귀 없는데 피죽인들 있으리.
煎稷作粥也不惡 去年失秋民苦飢
전직작죽야부악 거년실추민고기
茹草不辭況稷粥 粟飯花조팝나무꽃稻飯花이팝나무꽃喫不得
여초부사황직죽 속반화도반화끽부득
http://www.kjdaily.com/1438598363355182206
‘푸성귀도 없는데 하물며 피죽인들 있으랴(稷粥稷粥1)’로 번역해본 율(律)의 전구인 7-9언 배율이다. 작가는 제호(霽湖) 양경우(梁慶遇:1568-?)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이다. 다른 호는 점역재(點易齋), 요정(寥汀), 태암(泰巖)으로 알려진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아버지 양대박이 창의하자, 아우 양형우와 함께 보필했다. 아버지의 명에 따라 고경명에게 가서 기무를 맡았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피 끓여 죽 쑤어도 나쁘지 않거늘 / 지난해 추수도 못해 백성들은 굶주림에 허덕인다 // 푸성귀도 없는데 하물며 피죽인들 있으랴만 / 조밥꽃 쌀밥꽃 먹지도 못한 백성인데]라는 시심이다.
蘇軾「試院煎茶」
茶道に関する知識も、もちろん、心得もたしなみも持ち合わせないが、表現の面白さに惹かれて、この詩の全文を読んでみる気になった。解説も面白いが、すべて原典によるものである。
蟹眼已過魚眼生
**欲作松風鳴 *[溲ーシ+風]=しゅう
蒙茸出磨細珠落
眩転遶甌飛雪軽
銀*瀉湯誇第二 *[缶并]
未識古人煎水意
君不見昔時李生好客手自煎
貴従活火発新泉
又不見今時[シ路]公煎茶学西蜀
定州花瓷琢紅玉
我今貧病常苦飢
分無玉*捧蛾眉 *[怨ー心+皿]
且学公家作茗飲
*炉石銚行相随 *[土専]
不用*腸[てへん主]腹文字五千卷
*[てへん裳ー衣+牙]
但願一甌常及睡足日高時
蟹眼(かいがん)已(すで)に過ぎ 魚眼生ず
**(しゅうしゅう)として 松風の鳴(めい)を作(な)さんと欲す
蒙茸(もうじょう)磨(うす)を出(い)でて細珠落ち
眩転(げんてん)甌(かめ)をめぐりて飛雪軽(かろ)し
銀*(ぺい)湯を瀉(そそ)いで 第二を誇る
未だ識らず古人水を煎する意を
君見ずや、昔時 李生 客を好んで手自ら煎じ
活火に従(よ)り 新泉を発するを貴ぶを
又見ずや今時[シ路]公 茶を煎して西蜀を学び
定州の花瓷紅玉を琢するを
我今貧病にして常に飢うるを苦しめば
玉*(ぎょくわん)の蛾眉に捧げしむるなきを分とす
且(しばら)く公家(こうか)を学んで茗飲を作(な)し
*炉(せんろ)石銚(せきちょう)行くゆく相随う
腸を*(とう)し腹を[てへん主](しゅ)する文字五千卷を用いず
但(ただ)願う一甌 常に睡(ねむ)り足り 日高まるときに及ばんことを
蟹眼魚眼 =蟹の目は小さく、魚の目は大きい。以て湯のたぎる度合いをあらわす。
しゅうしゅう=さやさやと風の吹く音の形容。(学研漢和大字典では読みを「ソウソウ」としている)
蒙茸=草が乱れ生ずる。茸は草がさかんに茂ること。
眩転=目が眩んで周囲がぐるぐる回るように見えること。
銀*(ぎんぺい)=銀製の水を入れる容器。[缶并]は瓶に同じ。
誇第二=無錫にある恵山泉を人間(じんかん=この世)第二とする。また煎茶は両淅が盛で、越州の日注が第一。景祐より以来、洪州雙井の白芽製作尤も精しく、遠く日注の上に出て、遂に草茶の第一となる。
李生=唐の李約のこと。
活火=唐の趙*(ちょうりん)の因話録によると、李約の語に「茶はすべからく緩火をもて炙り、活火をもて煎(に)るべし。活火とは炭火の焔あるものをいう」*=[燐ー火+王]
新泉=蘇軾は別の詩で「活水 また すべからく活火をもて煎るべし」といっている。
[シ路]公=宋の文彦博(1006-1097)[シ路]国公に封ぜられた。王安石に悪まれて引退した。
定州花瓷=宋時、定州(今の河北省定県)造る所の瓷は、宣和・政和間の窯を以て最となす。定窯に光素・凸花の二種あり、白色を以て正となし、白骨にして加えるに[シ幼]水を以てし、涙痕の如きものあるを佳となす。
琢=磨く。
玉*(わん)=玉で造った椀。*は椀に同じ。
蛾眉=蛾のような眉。美人のたとえ。
公家=ここでは[シ路]公をさす。
茗飲=茗は茶。茗茶を飲む。
[土専](せん)=土を焼いて造った丸い瓦をいう。ここでは「土を焼いて造った」の意。
銚=つりてのついた小さいつぼ。ぶらさげて、酒や湯を温める。
甌(おう)=湯飲み茶碗。また、茶を沸かす小さいかまを、茶甌という。
湯の沸騰の度は、蟹眼の小沸を過ぎて、魚眼の大沸が生じ、
しゅうしゅうとして松風の鳴く音を作(な)そうとする。
蒙茸と乱れて、茶の磨(うす)から細かい珠が落ち、
茶の甌(かめ)をめぐって眩転し、飛雪の如くに軽い。
銀*(ぎんぺい)から注ぐ湯は、天下第二泉を誇る。
未だ古人の水を煎する意を知らない。
(古語にいう。水を煎じ、茶を煎ぜずと。)
むかし、李約は来客を好み、客にはよく自ら茶を煎じ、
活火に従(よ)り、新泉を発するを貴んだ。
また、いまどきの[シ路]公は、茶を煎するに、西蜀を学び、
定州の花瓷に紅玉を琢する。
我は今、貧病であって、常に飢うるを苦しむ境遇であるから、
もちろん蛾眉をして捧げしめる玉椀もない。
それで且(しばら)く公家を学び、茗飲をなして、
[土専]炉石銚を随えて行く。
腸(はらわた)をささえ、腹をささえる文字五千卷を用いないのである。
ただ願う、一甌を喫し、十分に眠って日の高き時に及ばんことを。
むかし、宋の蔡君謨は、茶弁をつくって、つまびらかに水泉煎飲等を弁じ、蟹眼・魚眼用湯の法を述べた。それは、茶経に、凡候湯有三沸、如魚眼微有声為一沸、縁辺如湧泉連珠為二沸、騰波鼓浪為三沸、則湯老(およそ、湯に三沸あり。魚眼のようで、かすかに音がするのを一沸となす。縁辺に湧き水の連珠のような状態を二沸となす。波打つような状態を三沸となす、すなわち、湯 老たり。)とあるによったものであろう。
蔡襄(1012~1067) 字は君謨。興化仙游(今の福建省にある)の人。天聖年間に進士に及第した。知諫院となり、慶暦の新政を支持した。福建道転運使に任ぜられ、減税政策を奏上した。また泉州の知事となり、泉州湾上に全長三百丈におよぶ万安橋を築いた。また七百里にわたって道路に松を植えた。福建の農民は、石碑にかれの功徳を讃えたという。行、楷書にすぐれ、蘇軾、黄庭堅らと宋四家のひとりに数えられた。
茶道に関すれば、忘れてはならない詩に、玉川子廬仝「茶歌」がある。つぎに「茶歌」を掲げておく。
出典:岩垂憲徳訳解:蘇東坡全詩集一 1978 日本図書センター
近藤光男:漢詩選11・蘇軾 1996 集英社
旅さきざきの詩--xx
盧仝「七椀の句」
お茶といえば、なんといっても陸羽の「茶経」が聖典として知られているが、ここでは「茶の心」を詠って有名な、いわゆる「七椀の句」あるいは「茶歌」( 茶の歌)を紹介する。
走筆謝孟諌議寄新茶
柴門反關無俗客
紗帽籠頭自煎喫
碧雲引風吹不断
白花浮光凝椀面
一椀喉吻潤
両椀破孤悶
三椀捜枯腸
唯有文字五千巻
四椀発軽汗
平生不平事
尽向毛孔散
五椀肌骨清
六椀通仙霊
七椀喫不得也
唯覚両腋習習清風生
蓬莱山在何處
玉川子
乗此清風欲帰去
筆を走らせて孟諌議の新茶を寄するを謝す
柴門(さいもん)反(かえ)つて關(とざ)して俗客なく、
紗帽(しゃぼう)頭(こうべ)を籠(こ)めて自ら煎喫す。
碧雲 風を引き 吹いて断たず。
白花 光を浮かべて椀面(わんめん)に凝(こ)る。
一椀にして喉吻(こうふん)潤(うるお)い、
二椀にして孤悶(こもん)を破る。
三椀にして枯腸(こちょう)を捜(さぐ)れに、
唯(た)だ文字五千巻有るのみ。
四椀にして軽汗(けいかん)を発し、
平生(へいぜい)不平の事、
尽く毛孔(もうこう)に向って散ず。
五椀にして肌骨(きこつ)清く、
六椀にして仙霊(せんれい)に通ず。
七椀にして喫するを得ず、
唯覚ゆ両腋(りょうえき)に習習として清風の生ずるを。
蓬莱山は何れの処にか在る。
玉川子
此の清風に乗りて帰り去らんと欲す。
柴の折り戸を閉めたので俗人の客は来ない。
私はうす絹の帽子で頭を包み、自分で茶を煎じて喫する。
碧雲のような茶を煎じる煙が風を引いてやまず、
白い花のような茶の泡は、光を浮かべて椀のおもてに集まる。
一椀目の茶を喫するとのどや唇がうるおい、
二椀目ではひとりさびしい愁いがなくなる。
三椀目を喫して枯れてしぼんだ心をさぐってみると、
五千巻の文章が胸中にあるばかりで、何の邪心もない。
四椀目で軽く汗がでると、
平生の不平は毛孔から飛散してしまう。
五椀目では肌も骨も清らかになり、
六椀目の茶を喫すると仙人や神霊に達したように感じる。
七椀目はもはや喫することもない。
ただ両脇に習習と羽の音がして、清風が生ずるのを感じるのみである。(両脇に羽が生えて仙人になったようだ。)
仙人のいる蓬莱山はどこにあるのだろうか。
玉川子=私は
この清風に乗って、その神山に帰って行きたいと思う。
この詩は、中唐の詩人、盧仝(ろどう)の作。隠遁生活を送っていた盧仝の元に、皇帝に献上されたのと同じ極上の新茶が、友人の孟諌議より届けられた。上記はその礼文「走筆謝孟諌議寄新茶」(筆を走らせて孟諌議の新茶を寄せるを謝す)の一節であり、盧仝がその喫茶の心を詠んだ、世に「茶歌」あるいは「七碗の句」として伝えられる名詩である。
盧仝(ろどう)中唐(790?-835)の詩人で、号は玉川子(ぎょくせんし)。幽州范陽(現在の河北省琢県)の生まれ。嵩山の少室山中に籠居し、のちに洛陽に移って学問や文学に打ち込んだ。
韓愈の詩によれば、洛陽城内の小さなあばら屋に住み、性情は高潔で、若い頃から俗人と交わることを嫌い、俗世界に出ないこと12年に及んだとある。(「寄廬仝」廬仝に寄せる。下に記した。韓愈は、当時、河南の令であった。)
甘露の変(王涯と宦官との争い)のとき、たまたま王涯の屋敷を訪問していたため、一味とみなされて殺された。
蘇軾の詩に「玉川先生真可憐、一生耽酒終無銭」( あの玉川子先生盧仝のことは、まことに胸を打つ。一生、酒に耽ってついに一文無しになった」(安国寺尋春)とあるが、もともとこの詩は、盧仝自身が「天下の薄夫苦だ酒に耽る。玉川先生また酒に耽る。薄夫銭あれば恣に楽しみを張る、先生銭なく恬薄を養う。銭あるも銭なきも倶に憐れむ可し、百年にわかに過ぐること流水の如し・・・・・・」( 嘆昨日三首の第二首)と詠っているのによるものである。それにしても盧仝は、かなりの人物であったようだ。
寄廬仝 韓愈
玉川先生洛城裏 玉川先生洛城の裏(うち)
破屋数間而已矣 破屋数間のみ
一奴長鬚不裹頭 一奴は長鬚(しゅ)にして裹(か)頭せず
一婢赤脚老無歯 一婢は赤脚 老いて歯なし
辛勤奉養十余人 辛勤して奉養す十余人
上有慈親下妻子 上に慈親あり 下に妻子あり
先生結髪憎俗徒 先生結髪より俗徒を憎み
閉門不出動一紀 門を閉じて出でざること動(やや)もすれば
一紀なり
至今隣僧乞米送 今に至るまで隣僧米を乞(あた)えて送る
僕悉縣尹能不恥 僕は縣尹(けんいん)を忝(かたじけな)うして
能(よ)く恥じざらんや
俸銭供給公私余 俸銭供給す公私の余(よ)
時致薄少助祭祀 時に薄少を致して祭祀を助く
勤参留守謁大尹 留守(りゅうしゅ)に参じて大尹に謁せよと
勤(すす)め
言語纔及輒掩耳 言語纔(わずか)に及べば輒(すなわ)ち
耳を掩(おお)う
(中略)
(大要)玉川先生(廬仝)は洛陽の破屋に住み、一人の下男は長い髭、頭も布で包まず、一人の下女は裸足で、老いて歯もなかった。二人は苦労して一家の世話をしていた。先生は結髪(成人)してこの方、俗なやからを憎み、門を閉じて出仕せず、もうかれこれ十二年にもなる。
隣の僧が米を送ってくれていたので、何とか暮らしていた。わたしは県の長官を務めていたが、先生のような賢者の生活を豊かにできず、この僧に恥じていた。そこで公私で用いた残りを送って祭祀の助けにしていただいた。
先生に洛陽の留守居役に参じ、大尹(河南郡の長官)にお目にかかるがいいと勧めるものがあると、耳をおうてそれを聞こうともしない。
先生抱才終大用 先生才を抱いて終に大用事せられんも
宰相未許終不仕 宰相いまだ許さざれば終に仕えず
假如不在陳力列 假如(たとえ)力を陳(の)ぶるの列に在らずとも
立言垂範亦足恃 言を立てて範を垂ること亦恃(たの)むに足れり
苗裔当蒙十世宥 苗裔(びょうえい)当(まさ)に十世の宥(ゆう)
を蒙るべし
豈謂貽厥無基址 豈(あに)謂わんや貽厥(いけつ)に基址(きし)
なからんとは
故知忠孝出天性 故((もと)より知る忠孝天性より出ずるを
潔身乱倫安足擬 身を潔くして倫を乱るは安(いず)くんぞ
擬するに足らん
(以下略)
(大要)先生は才能をお持ちなので、終いには大いに世に用いられるであろうが、宰相の地位が許されなければ、先生は仕えられない。たとえ朝廷の位についていなくとも、言論を立て、手本になる行いを示されることが、人々が頼みとするに十分である。そして、十世の子孫まで、たとえ罪があったとしても祖先の徳で許されるに違いない。徳を積んで子孫の栄えるようなはかりごとを後に残しておく(貽厥)土台(基址)がないなどとどうして思おうか。もとより先生の忠孝心は、天性であり、身の行いなどをいさぎよくするために出仕せず、人の道を乱すような人間などは、どうして比べなぞらえるに足ろうか。
出典:近藤光男『漢詩選 11 蘇軾』1996 集英社、星川清孝:新釈漢文体系10『古文真宝(前集)上、下』明治書院
<参考のため、全文を以下に示す。>
走筆謝孟諫議寄新茶 (唐) 盧仝
日高丈五睡正濃、軍將扣門驚周公。
口傳諫議送書信、白絹斜封三道印。
開緘宛見諫議面、首閲月團三百片。
聞説新年入山裏、蟄蟲驚動春風起。
天子須嘗陽羨茶、百草不敢先開花。
仁風暗結珠*蕾、先春抽出黄金芽。 *[くさんむり倍]
摘鮮焙芳施封裹、至精至好且不奢。
至尊之余合王公、何事便到山人家。
柴門反關無俗客、紗帽籠頭自煎喫。
碧雲引風吹不斷、白花浮光凝碗面。
一碗喉吻潤、二碗破孤悶。
三碗搜枯腸、惟有文字五千卷。
四碗發輕汗、平生不平事、盡向毛孔散。
五碗肌骨清、六碗通仙靈。
七碗喫不得也、唯覺兩腋習習清風生。
蓬莱山在何處。
玉川子乘此清風欲歸去。
山中*仙司下土、地位清高隔風雨。 *[君/羊]
安得知百萬億蒼生、命墮顛崖受辛苦。
便従諫議問蒼生、到頭合得蘇息否。
出典:星川清孝:新釈漢文体系10『古文真宝(前集)下』明治書院
日本で「茶」の世界において、陸羽と共に並び称されるのが、玉川子盧仝(ぎょくせんしろどう)である。陸羽が茶神として崇められ、具体的な喫茶法を示したのに対し、盧仝は、単なる味わいに終わらない、喫茶の精神的世界を開いた、といわれている。盧仝の詠んだ「茶歌(ちゃか)」は、古今の絶唱と讃えられ、唐代以降、千年以上も愛唱され続け多くの文人たちに影響を与えた。
上記の詩の趣旨は、この「このお茶を飲むと、一杯目で喉が潤い、二杯目で孤独を忘れ、三杯目で(感動の)言葉が腸まで流れ、四杯目で汗とともに日頃の鬱憤が体から発散し、五杯目で全身が清らかになり、六杯目で仙人のような気持ちになり、そしてついに七杯目で無我の境地に達し、仙人が住むという蓬莱山まで風に運ばれていきそうな気持ちになりました。」
なお、茶に関する詩の中で、その詩形が珍しいので、よく知られているのに、つぎがある。これは「一七体」、あるいは、その形から「階梯詩」、「宝塔詩」とも呼ばれる。
一字至七字詩 茶 (唐) 元[禾真]
茶
香葉 嫩芽 향엽 눈아
慕詩客 愛僧家 모시객 애승가
碾雕白玉 羅織紅紗 연조백옥 라직홍사
銚煎黄蕊色 碗轉曲塵花
夜後邀陪明月 晨前命對朝霞
洗盡古今人不倦 將知醉後豈堪誇
元[禾真](げんしん)(779-831)は、三峡にある三游洞で白居易とその弟の行簡と三人で遊んだというその人である。河南河内(かだい)(いまの洛陽市附近)の人。若くして白居易と並称され「元白体」の詩がひろく世に行われた。
附注:元[禾真]的此首寶塔詩非常著名、乃茶詩中寶塔詩之典範。此種寶塔詩形式正式名為“一七体”。若將寶塔詩毎行文字靠邊排列時成階梯状、故又名“階梯詩”。
(2004.07.07記) https://geolog.mydns.jp/www.geocities.co.jp/iwa_kaz3/soshoku_sencha.html
日高丈五睡正濃 : 해는 일장 반이나 솟도록 잠에 푹 빠졌는데 * 깊을농
軍將扣門驚周公 : 군의 장교가 와 문을 두드리어 주공의 꿈에서 놀라게 하네 * 두드릴구(: 叩), 一作 打門
口傳諫議送書信 : 전하기를 간의께서 편지를 전해왔다 하니 * 一作 口云
白絹斜封三道印 : 흰 비단으로 쓴 편지 비스듬히 봉하고 도장 세 개가 찍혔구나. * 비단견
開緘宛見諫議面 : 봉함을 열자 완연히 간의대부 얼굴 뵙는 듯 한데 * 봉할함, 완연할완, 뵐현
首閱月團三百片 : 먼저 본 것은 달처럼 둥근 삼백 봉지의 차라네. * 첫째수, 볼열, 一作 手閱
聞道新年入山裏 : 전해 듣기로, 새 해가 되어 찻 잎 따러 산 속에 들어가면 * 一作 聞說
蟄蟲驚動春風起 : 칩거하던 벌레들 놀라 움직이고 봄바람이 일어난다지?
天子須嘗陽羨茶 : 천자께서 반드시 먼저 양선차를 맛보셔야 하니
百草不敢先開花 : 온갖 잡풀이 감히 먼저 꽃피우지 못하고,
仁風暗結珠蓓蕾 : 어진 바람이 남 모르게 구슬 같은 꽃봉우리 맺게 하면 * 꽃봉오리배, 一作 琲瓃
先春抽出黃金芽 : 봄이 오기전에 먼저 황금 같은 싹을 뽑아내네
.
摘鮮焙芳旋封裹 : 그 산뜻한 싹을 따서 향기롭게 구워 곧바로 봉하여 싸니 * 볶을배, 곧바로선
至精至好且不奢 : 지극히 정성스럽고 훌륭하지만 사치한 것은 아니네.
至尊之餘合王公 : 천자께서 쓰신 나머지는 왕공에게나 합당한데
何事便到山人家 : 어인 일로 홀연 산 속 사람에게 오게 됐는지!
柴門反關無俗客 : 사립문 내놓고 도리어 닫기만 하니 손님도 없어
紗帽籠頭自煎喫 : 비단모자 머리에 쓰고 스스로 다려 먹는다. * 달일전, 마실끽
碧雲引風吹不斷 : 푸른 구름 같은 찻김이 바람을 끌어들이니 쉬지 않고 불고
白花浮光凝碗面 : 흰 꽃 같은 차 거품이 빛을 띄우며 찻잔 위에 엉긴다. * 사발완
一碗喉吻潤 : 첫째 잔은 목과 입을 적셔주고 * 목구멍후, 입술문
二碗破孤悶 : 둘째 잔은 외로운 시름 깨뜨리고
三碗搜枯腸 : 셋째 잔은 메마른 창자를 찾아가니
惟有文字五千卷 : 뱃 속에는 오천 권의 문자만 남게 되네.
四碗發輕汗 : 넷째 잔은 가벼운 땀을 나게 하여
平生不平事 : 평생의 불만스러운 일들을
盡向毛孔散 : 모두 털구멍으로 흩어져 나가게 하네.
五碗肌骨淸 : 다섯째 잔은 살갗과 뼈를 맑게 해주고
六碗通仙靈 : 여섯째 잔은 신선의 신령스러움과 통하게 하고
七碗喫不得也 : 일곱째 잔은 마실 필요도 없이
唯覺兩腋習習淸風生 : 양편 겨드랑이에 날개가 생겨 쉭쉭 맑은 바람 일어남을 깨닫네.
蓬萊山在何處 : 봉래산은 어디 쯤에 있는가?
玉川子乘此風欲歸去 : 나 옥천자는 이 바람 타고 돌아가려 하네.
山上群仙司下土 : 봉래산 위의 신선들 아래 땅을 살피지마는 * 다스릴사
地位淸高隔風雨 : 그 자리가 맑고도 높아 비바람이 이르지 않으니
安得知百萬億蒼生命 : 어찌 알리오, 백만 억 창생들의 목숨이
墮顚崖受辛苦 : 떨어져 벼랑에 거꾸러지고 고통받고 있는 줄을. * 一作 巓崖
便從諫議問蒼生 : 그러니 간의에게 쫓아가서 창생들에 대해 물어보면 * 一作 便爲
到頭合得蘇息否 : 마침내 모두 숨이 되살아날지를 알 수 있겠지? * 到頭 : 마침내, 모두합
○ 丈五 : 五丈 또는 1丈 5尺. 해가 높이 솟아올랐음을 표현한 말이다. 우리 말 '해가 중천에 뜨도록'의 의미가 되겠다.
○ 軍將扣門驚周公 : 《論語》 述而篇에서 孔子가 “내 다시는 꿈에 주공을 뵙지 못하였다(吾不復夢見周公).” 하신 말씀을 빌려 왔다.
○ 諫議 : 諫議大夫 맹간을 칭하는 말. 천자를 侍從하며 規諫하는 벼슬이다.
○ 白絹斜封三道印 : 흰 비단에 쓴 편지(또는 상자)를 접어 비스듬하게 봉한 후에 봉한 부분 세 군데에 도장을 찍어 표식을 한 것..
○ 月團 : 둥근 달 모양으로 떡처럼 만든 차(茶)로 茶餠 또는 團茶라고도 한다. 8개가 1근의 무게라 한다.
○ 陽羨茶 : 陽羨에서 생산되는 차로, 陽羨은 常州府 宜興縣 동남쪽에 있는데 좋은 차의 명산지로 알려져 있다. 매년 청명절 전에 이 차를 만들어 황궁에 진상하며, 궁에서는 일부를 공경대부들에게 나누어 준다.
이처럼 매우 귀한 차가 산중의 자기까지 돌아왔으니 감사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고 있다.
○ 紗帽籠頭 : 얇은 비단 모자로 머리를 감싼다. 머리에 사모를 씌운다. 차를 끓이는 것은 단순한 炊事가 아니고 예절이기 때문에 衣冠을 整齊하고 끓인다.
○ 碧雲 白花 : 碧雲은 차가 끓을 때 나는 김을 표현한 말이고, 白花은 끓는 물 거품을 표현한 말이다.
○ 搜枯腸 : 메마른 창자를 구석구석 헤쳐주다. 호의호식을 하지 못하는 가난한 선비이니, 뱃속이 늘 허전한데 차로서 이를 씻어 줌을 말한다.
○ 喫不得 : 마실 필요도 없다. '마실 수 없다'가 아님.
○ 也唯覺兩腋習習淸風生 : 양쪽 겨드랑이에서 날개 돋아나 날개 짓을 하니, 쉭쉭 바람이 일며 하늘로 올라감을 느낄 뿐이다.
習習 : 바람소리, 날개 짓 할 때 나는 소리, 서늘한 바람이 가볍고 부드럽게 잇달아 붊
○ 七碗喫不得也 唯覺兩腋習習淸風生 : 김학주의 고문진보에는 七碗喫不得 也唯覺兩腋習習淸風生로 구결하고 있으나, 중국 본은 이와 달라 이에 따랐다.
○ 蓬萊山 : 三神山의 하나로 동쪽 바다에 있다는 신선이 산다는 산.
기원으로는 전국시대에 발해 연안에 위치하는 齊ㆍ燕의 方術者들이, 신기루 현상과 신선설을 부회해서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史記』 등에 의하면, 발해 중에는 蓬萊ㆍ方丈ㆍ瀛州의 삼신산이 있어서, 선인이 살고 不死의 약이 있으며, 산상의 조수는 모두 純白하고, 선인이 사는 궁전은 금은으로 만들어져 있다. 또한 이 삼신산은 멀리서 보면 눈처럼 보이는데, 가까이에서 보면 바닷속에 있으며, 속인이 근접하면 바람이 불어 다가가지 못한다고 한다.
신선사상의 신봉자였던 진의 시황제는 실제로 徐市 등을 파견해서 이 삼신산을 찾게 하였다. 그후 신선사상이 산악신앙의 축으로 전개되자, 오악을 비롯한 명산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 山上群仙司下土 : 山은 三神山의 하나인 蓬萊山을 가리키고 下土는 人間世를 가리킨 것이다.
○ 安得知百萬億蒼生命 墮顚崖受辛苦 : 국내 本의 대부분은 安得知百萬億蒼生 命墮顚崖受辛苦으로 구결을 하고 있으나, 중국본은 대부분 위와 같이 구결을 한다. 이에 따랐다.
○ 到頭合得蘇息否 : 到頭는 끝내, 또는 결국의 뜻이며 合得은 當得과 같은 말이다. 蘇息은 蘇生(甦息)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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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玉川子詩集》 권2에 제목이 〈走筆謝孟諫議寄新茶(붓을 놀려 맹간의가 새 차를 보내준 것에 감사함)`로 되어 있고, 중국의 여러 책에는 〈七碗茶〉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諫議大夫 孟簡이 차를 보내준 것에 감사하며 지은 시이다.
《萬姓統譜》에 “孟簡은 字가 幾道이니 平昌 사람이다. 시를 잘 하였고 節義를 숭상하였다. 宏辭科에 합격하였고 연이어 승진하여 諫議大夫에 이르렀다. 《新唐書》列傳 85권에 傳이 있다.” 하였다.
이 시와 范希文(范仲淹)의 〈鬪茶歌〉는 모두 훌륭한 작품으로 거의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데, 다만 노동은 “至尊께서 드신 나머지는 王公에게나 적합한데, 어인 일로 곧 山人의 집에 이르렀나. [至尊之餘合王公 何事便到山人家]” 하였고, 범희문은 “북원의 천자에게 장차 바치려 하면서 숲속의 영웅호걸들 먼저 아름다움을 다투네. [北苑將期獻天子 林下雄豪先鬪美]”라고 하여 대조를 이루고 있다.
盧仝 ( 795 ? ~ 835년 )
당나라 때 시인 노동은 河南성 濟源에서 태어났다. 당나라 초기 뛰어난 네 명의 시인 내지 문장가들인 ‘초당사걸’의 한 사람이었던 노조린의 직계 자손이다.
그는 벼슬에 뜻이 없어서 일찍부터 少室山에 숨어 살면서 스스로를 玉川子라 불렀다. 뒤에 洛陽으로 이주한 후에도 매우 가난하게 생활하였는데, 집안에는 서책이 가득하였다고 한다.
한유가 河南令으로 있을 때 그의 재능을 아껴 많은 후원을 했다. 일찍이 붕당의 횡포를 풍자한 장편시 <月蝕詩>를 지어 한유의 칭송을 들었다.
‘茶仙’이라 불릴 정도로 차를 즐겨 마셨고, <茶歌>를 지었는데 警句(격언)가 많았다.
재상 李訓 등이 환관 소탕을 도모하다가 실패한 甘露之變 때 그도 휩쓸려 살해되었다.
노동은 고고한 성격으로 맹교를 닮았다는 평가도 듣는다. 아주 궁핍한 삶을 살면서도 절개를 꺾지 않아 주위로부터 많은 칭송을 받았다. 조정에서도 이런 인품을 평가하여 기용하려 하였으나 고사했다. 좋은 친구였던 시인 가도는 그의 죽음을 듣고 “40평생에 흰 베옷 한 벌만 입고 살았다”며 통곡했다.
그는 각고의 노력으로 독서에 열중하여 경전과 역사에 두루 능통했으며 시풍 역시 이런 박학하고 다재다능한 면을 반영하고 있다. 시풍은 낭만적이면서 기이한 분위기가 다분하여 ‘盧仝體’라는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하며, 후대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첫잔은 입술을 적시고, 두 번째 잔은 고민을 깨고’로 시작하는 <일곱 잔의 차를 마시며(七碗茶詩)> 라는 시가 인구에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다. 다도를 중시하는 일본에서 특히 추앙을 받고 있는데, 茶聖 육우와 함께 늘 거론된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설들이 많은데 대체로 그의 시가 권력자의 심기를 건드린 탓으로 보고 있다.
저서로 『茶譜』, 『玉川子詩集』 2권과 『外集』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盧仝 (중국인물사전)
日高丈五睡正濃 (일고장오수정농) 해는 장 오척이나 높이 솟았어도 잠에 푹 빠졌는데
軍將扣門驚周公 (군장구문경주공) 군의 장교가 와 문을 두드리어 주공의 꿈 깨우네
口傳諫議送書信(구전간의송서신)입으로 전하기를 간의대부께서 편지를 전해왔다 하니
白絹斜封三道印(백견사봉삼도인) 흰 비단으로 비스듬히 봉하고 세 개의 도장이 찍히었구나
開緘宛見諫議面(개함완현간의면) 봉함을 열자 간의대부의 얼굴이 완연히 나타나고
首閱月團三百片(수열월단삼백편) 가장 먼저 보이네,달처럼 둥근 삼백 편의 차
聞設新年入山裏(문설신년입산리) 듣자하니 새해에 산 속에 들어간다니
蟄蟲驚動春風起(칩충경동춘풍기) 겨울잠 자던 벌레들 놀라 움직이고 봄바람 일어난다네
天子須嘗陽羨茶(천자수상양선다) 천자께선 모름지기 양선의 차 맛보실 터이니
고문진보에 실려있는 다가茶歌.
茶歌 盧仝
日高丈五睡正濃 軍將扣門驚周公
口傳諫議送書信 白絹斜封三道印
開緘宛見諫議面 首閱月團三百片
聞道新年入山裏 蟄蟲驚動春風起
天子須嘗陽羨茶 百草不敢先開花
仁風暗結珠蓓蕾 先春抽出黃金芽
摘鮮焙芳旋封裹 至精至好且不奢
至尊之餘合王公 何事便到山人家
柴門反關無俗客 紗帽籠頭自煎喫
碧雲引風吹不斷 白花浮光凝碗面
一碗喉吻潤 二碗破孤悶
三碗搜枯腸 惟有文字五千卷
四碗發輕汗 平生不平事 盡向毛孔散
五碗肌骨淸 六碗通仙靈
七碗喫不得 也唯覺兩腋習習淸風生
蓬萊山在何處 玉川子乘此淸風欲歸去
山上羣仙司下土 地位淸高隔風雨
安得知百萬億蒼生 命墮顚崖受辛苦
便從諫議問蒼生 到頭合得蘇息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