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선개창을 합리화하는 모든 시도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이성계 개인의 영달을 위한 위화도 회군을
사회모순의 발로라고 어영신문이기라도 한듯 떠들어대는 역사학자들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한반도의 남송화, 그 시작이 위화도회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에 오히려 퇴보라고 여긴다. 사회 이념의 한 축을 이루었던 불교가 무너지자 유교는 더욱 경직화되었으며 사회는 탄력성을 잃고 발전의 동력은 손상되었다고 나는 본다. 남송과 몽고의 대립처럼, 조선과 청은 대립하였다. 그런데 중국에는 한족정권이 없으니 스스로 소중화라고 여기고 오랑캐와 중화의 대립을 가상적으로 펼쳐냈다. 일종의 정신분열이다. 청나라에 조공을 바치면서도 속으로는 죽은 명나라를 그리워했으니 이 무슨 가련한 꼴이 더 있단 말인가.
조선이 오래간 것은 이미족의 중국지배가 오래간 것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청을 능가하는 오랑캐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은 오랑캐가 아니라 죽은 중국의 시동尸童처럼 살았다. 그러다 마침내 19세기 이후 원조 서양오랑캐와 서양오랑캐를 복사한 아류 서양 오랑캐인 일본이 나타났을 때 청이라는 이름의 중국이 된 오랑캐와 죽은 명나라의 시동尸童인 조선은 마침내 큰 번뇌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