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인성호
(석 삼, 사람 인, 이룰 성, 범 호)
[ 三人成虎 ]
요약 세 사람이 호랑이를 만듦.
즉 거짓된 말도 여러 번 되풀이하면 참인 것처럼 여겨짐.
《한비자》〈내저설(內儲說)〉편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무슨 뜻일까요?
중국 전국시대(기원전 403~221)에 위(魏)나라 대신 방공이 조(趙)나라에 인질로 가는 태자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떠나면서 방공은 왕에게 이렇게 말했죠.
“한 사람이 달려와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외치면 임금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왕이 말했습니다.
“당연히 믿지 않지.”
이에 방공이 다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나타나서 함께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외치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래도 믿지 않지.”
방공이 다시 말했습니다.
“다시 세 사람이 와서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외치면 그래도 믿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자 왕이 대답했죠.
“그렇다면 믿을 수밖에 없겠지.”
이 말을 들은 방공이 말했습니다.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날 리가 없음은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세 사람이 한 목소리로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호랑이는 나타난 것입니다. 지금 제가 태자를 모시고 가려는 조나라 수도 한단은 위나라 시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먼 곳입니다. 게다가 제가 조정을 비운 사이 저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할 사람은 셋 정도에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모쪼록 임금께서는 잘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 말라는 답변을 하였습니다.
內儲說上: | 龐恭與太子質於邯鄲,謂魏王曰:「今一人言市有虎,王信之乎?」曰:「不信。」「二人言市有虎,王信之乎?」曰:「不信。」「三人言市有虎,王信之乎?」王曰:「寡人信之。」龐恭曰:「夫市之無虎也明矣,然而三人言而成虎。今邯鄲之去魏也遠於市,議臣者過於三人,願王察之。」龐恭從邯鄲反,竟不得見。 |
邯鄲:
스자좡시[石家莊市] 남쪽 약 150km 지점에 있다. 타이항산맥 동쪽 기슭의 남·북 교통선상에 위치한다. 화북평원(華北平原)에서 산시[山西] 산지로 들어가는 교통의 요지에 해당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교역이 활발하여 부유한 상인이 모이는 도시로서 번영하였다.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위(衛)나라의 도읍지로 건설되어, 전국시대(戰國時代) 때는 조(趙)나라의 중심지였다. 진(秦)·한(漢) 나라를 통하여 그 번영이 지속되었으나, 그 후 정치적 변동으로 점차 쇠퇴하여 당(唐)나라 이후에는 부(府)와 주(州)에 속하는 현(縣)이 되었다. 징광철도 연변에 있고, 도로도 사방으로 이어져 목화·땅콩 등을 집산하며, 제철·방직 등의 공업도 활발하다. 고적이 많으며, 시의 남서쪽 4km 지점의 조왕성(趙王城)은 전국시대의 도읍 유적지로 추정되고 있다. 북서쪽 2km 지점에서 한나라 때의 궁궐터가 발견되었다. 유명한 《한단의 꿈》의 고사(故事)는 이곳을 무대로 한 이야기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단 [Handan, 邯鄲] (두산백과)
그러나 한참이 지난 후 방공이 귀국하자 위왕은 측근들의 말에 현혹되어 방공을 만나 보려고도 하지 않았고, 결국 방공은 조정에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이로부터 아무리 거짓이라고 하더라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가리키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은 우리나라에도 있었지요. 그런 충신의 심정을 그린 노래가 바로 〈정과정〉이란 고려가요입니다.
내 님을 그리사와 우니다니
산 접동새는 비슷하여이다
아니시며 거츠르신 달 아으
잔월효성(殘月曉星)이 아라시리이다
넋이라도 님은 한데 녀져라 아으
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
과(過)도 허물도 천만 없소이다
말 히사리신뎌 살읏븐뎌 아으
님이 나를 하마 니즈시니잇가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
내 임금을 그리워하여 울며 지내니
두견새와 난 비슷합니다.
옳지 않으며 거짓인 줄을
지는 달과 새벽별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넋이라도 임을 한데 모시고 싶어라. 아!
헐뜯은 이가 누구입니까?
잘못도 허물도 결코 없습니다.
뭇사람들의 참소하는 말입니다.
임께서 나를 벌써 잊으셨습니까?
임이시여, 돌이켜 들으시어 사랑해 주옵소서.
고려 가요 가운데 작자가 알려진 유일한 노래죠. 그럼 작자는? 정서(鄭敍). 정서는 생몰연대(生沒年代) 즉 태어난 해와 사망한 해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1100년대 초·중반에 활동한 인물입니다. 인종의 사랑을 받던 정서는 의종이 즉위하자 동래로 귀양을 가게 됩니다. 이때 귀양지에서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기 위해 부른 노래가 바로 이〈정과정〉입니다. 여럿이 모여 생사람 잡는 말이 또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인성호 [三人成虎] - (석 삼, 사람 인, 이룰 성, 범 호) (고사성어랑 일촌 맺기, 2010. 9. 15., 기획집단 MOIM, 신동민)
《先秦兩漢 - Pre-Qin and Han》
《雜家 - Miscellaneous Schools》
《鄧析子 - Deng Xi Zi》
《轉辭》
轉辭:
君人者不能自專而好任下,則智日困而數日窮。迫於下則不能申,行隨於國則不能持。知不足以為治,威不足以行誅,則1無以與下交矣。故喜而使賞,不必當功。怒而使誅,不必值罪。不慎喜怒,誅賞從其意,而欲委任臣下,故亡國相繼,殺君不絕。古人有言:眾口鑠金,三人成虎,不可不察也。
1. 則 : INSERTED
《史書 - Histories》
《戰國策 - Zhan Guo Ce》
[Warring States - Western Han] 350 BC-6 BC 《戰國策》
[Also known as: 《國策》]
《秦策》
《秦策》
《秦三》
《秦攻邯鄲》
秦攻邯鄲:
秦攻邯鄲,十七月不下。
爭謂王稽曰:「君何不賜軍吏乎?」
王稽曰:「吾與王也,不用人言。」
莊曰:「不然。父之於子也,令有必行者,必不行者。
曰『去貴妻,賣愛妾』,此令必行者也;
因曰『毋敢思也』,此令必不行者也。
守閭嫗曰,『其夕,某懦子內某士』。貴妻已去,愛妾已賣,而心不有。欲教之者,人心固有。今君雖幸於王,不過父子之親;君吏雖賤,不卑於守閭嫗。且君擅主輕下之日救矣。聞『
三人成虎
,十夫楺椎。眾抽所移,毋翼而飛』。故曰,不如賜軍吏而禮之。」王稽不聽。軍吏窮,果惡王稽、杜摯以反。秦王大怒,而欲兼誅范睢。范睢曰:「臣,東鄙之賤人也,開罪於楚、魏,遁逃來奔。臣無諸侯之援,秦習之故,王舉臣於羈旅之中,使職事,天下皆聞臣之深與王之舉也。今遇惑或與罪人同心,而王明誅之,是王過舉顯於天下,而為諸侯所議也。臣願請藥賜死,而恩以相葬臣,王必不失臣之罪,而無過舉之名。」王曰:「有之。」遂弗殺而善遇之。
嫗 [할머니 구]1. 할머니 2. 어머니 3. 여자(女子) 4. 안아서 따뜻하게 하다
閭 [마을 려,마을 여]1. 마을 2. 이문(里門, 동네의 어귀에 세운 문)
1. 나약하다(懦弱ㆍ愞弱--), 여리다 2. 무기력하다(無氣力--) 3. 부드럽다, 유연하다(柔軟--) 4. 낮다, 낮아지다 5. 겁쟁이 a. 겁쟁이 (유) b. 나약하다(懦弱ㆍ愞弱--), 여리다 (유) c. 무기력하다(無氣力--)...
1. 멋대로 하다 2. 천단하다(擅斷--: 제 마음대로 처단하다) 3. 차지하다, 점유하다(占有--) 4. 물려주다 5. 오로지 6. 멋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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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
秦攻邯鄲(注1)
秦나라가 邯鄲을 공격하다
秦攻邯鄲, 十七月不下.
秦나라가 趙나라 邯鄲을 공격하였으나 17개월이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莊(注2)
謂
王稽(注3)
曰:
莊이라는 사람이 王稽에게 말하였다.
“
君(注4)
何不賜軍吏乎?”
“그대는 어찌 軍吏들에게 賞을 내리지 않습니까?”
王稽曰:
왕계가 말하였다.
“吾與王也, 不用人言.”
“나는 남의 말을 듣지 않기로 임금과 약속하였소.”
莊曰:
장이 말하였다.
“不然.
“그렇지 않습니다.
父之於子也, 令有必行者, 必不行者.
비록 아버지와 아들 사이일지라도 명령 중에는 실행해야 할 것이 있고 반드시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경우가 있게 마련입니다.
曰:‘去貴妻, 賣愛妾’, 此令必行者也;
아버지가 ‘아무리 귀해도 음행한 처는 버려야 하고,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첩은 팔아보내야 한다’라고 한다면 이런 명령은 반드시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因曰:毋敢思也, 此令必不行者也.
그러나 이 일을 ‘더 이상 그리워하거나 생각지도 말라’라고 하였다면 이런 명령은 지키기가 반드시 어려울 것입니다.
守閭嫗曰:其夕, 某懦子內某士. 貴妻已去, 愛妾已賣, 而心不有.
마을을 지키는 어떤 노파가 ‘어느 날 저녁 어떤 여자와 어떤 남자가 私通하였다’라고 거짓을 꾸며 그 귀한 처를 이미 내쫓고 그 애첩도 이미 팔아 버렸다 할지라도 그들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欲敎之者, 人心固有.
사람이란 자기가 알고 있는 일을 남에게 알리고 싶어하는 것이 常情입니다.
今君雖幸於王, 不過父子之親; 軍吏雖賤, 不卑於守閭嫗.
지금 그대는 비록 왕에게 사랑을 받는다고는 하나 부자지간의 정을 넘어서지는 못하며, 마찬가지로 軍吏들이 비록 천하다고는 하나 마을을 지키는 노파보다 천하지는 않습니다.
且君擅主輕下之日久矣.
게다가 그대는 임금의 신임을 믿고 당신 부하를 경시한 지 오래입니다.
聞:
三人成虎(注5)
, 十夫
楺椎(注6)
.
듣건대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세 사람이 떠들면 모든 사람이 믿게 되고, 어떤 자가 큰 몽둥이를 그대로 뒤틀어 굽혔다고 열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하게 되면 그 말을 믿게 된다.
衆口所移, 毋翼而飛.
모든 사람 말이 옮겨 다니게 되면 날개 없는 것도 날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故曰:不如賜軍吏而禮之.”
그러므로 그대의 軍吏들에게 상을 내리고 禮로 대해 주느니만 못합니다.”
王稽不聽.
왕계는 듣지 않았다.
軍吏窮, 果惡王稽‧
杜摯(注7)
以反.
부하 관리들이 끝내 궁해지자 과연 왕계와 杜摯가 謀反한다고 헐뜯었다.
秦王大怒, 而
欲兼誅范雎(注8)
.
진왕은 크게 노하여 그를 추천한 范雎까지도 겸하여 사형시키려 하였다.
范雎曰:
이에 범저가 왕에게 말하였다.
“臣,
東鄙之賤人(注9)
也,
“신은 동쪽 시골의 천민 출신입니다.
開罪於楚‧魏, 遁逃來奔.
마침 楚나라와 魏나라에 죄를 짓고 숨어 이 진나라로 도망와 있었습니다.
臣無諸侯之援, 親習之故,
저는 그 어떤 다른 제후들의 지원도 없고 친구나 연고조차도 없습니다.
王擧臣於羇旅之中, 使職事,
그런 저를 왕께서는 羇旅之臣 중에 뽑아 쓰셔서 일을 맡기셨습니다.
天下皆聞臣之身與王之擧也.
천하는 모두 저의 출신과 왕께서 저를 천거하셨음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今遇惑, 或與罪人同心, 而王明誅之,
지금 제가 모함에 빠져 혹시라도 죄인인 왕계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시면 대왕께서는 저를 천하가 다 알도록 공개적으로 처형해 주십시오.
是王過擧顯於天下, 而爲諸侯所議也.
이는 대왕께서 저를 잘못 등용하셨다는 과실을 천하에 알리는 것이 되고, 제후들의 의논거리가 될 것입니다.
臣願請藥賜死, 而恩
以相葬臣(注10)
,
저는 원컨대 사약으로 賜死되고, 죽고 나면 은혜를 입어 재상의 禮로 장례지내 주기를 바랍니다.
王必不失臣之罪, 而無過擧之名.”
그렇게 되면 대왕께서는 저의 죄를 놓치지 않으시고 저를 잘못 등용했다는 汚名도 듣지 않을 것입니다.”
王曰:
왕이 말하였다.
“有之.”
“그렇겠다.”
遂弗殺而善遇之.
그리고는 드디어 범저를 죽이지 않고 잘 대해 주었다.
역주역주1 091. 秦攻邯鄲 : 《史記》 〈范雎蔡澤列傳〉에 의하면 王稽가 죽은 것은 “제후들과 내통하여 犯法하였다.[內通諸侯觸法]”는 이유라고 하였으며 또 秦 昭王이 范雎를 죽이려 한 것도 范雎가 추천하였던 鄭安平이란 장수가 2만 명의 진나라 군대를 이끌고 趙나라에 투항하였기 때문으로 되어 있어 이 기록과 차이가 있다.역주2 莊 : 姓이 莊인 어떤 說客.역주3 王稽 : 秦나라의 장수. 范雎에 의해 추천된 인물.역주4 君 : 君을 秦나라 昭王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역주5 三人成虎 : 《淮南子》 〈要山訓〉에 ‘三人爲市虎 一里撓椎’라는 말이 있다. 한편 본 《戰國策》 〈魏策〉 331장에도 三人言成虎라는 말이 있다.역주6 楺椎 : 몽둥이를 휘어 굽힘. 쉽게 할 수 없는 일. 楺는 揉와 같음.역주7 杜摯 : 王稽의 副將.역주8 欲兼誅范雎 : 王稽가 范雎를 추천하였기 때문에 범저까지 죽이려 한 것이다. 그러나 鮑彪本에 의하면, “왕계가 처음에 범저를 천거했고, 범저가 후일 왕계를 河東守에 임명했는데 삼년 동안 上計를 하지 않았으며 鄭安平이 趙나라로 투항하니, 應侯가 죄를 청하였다.”라고 하였다.역주9 東鄙之賤人 : 范雎는 魏나라 출신. 《史記》 〈范雎蔡澤列傳〉 참조.역주10 以相葬臣 : 鮑鮑의 註에 “죽인 후 은혜를 가해 相의 禮로 장례 지내는 것이다.[旣殺之而加恩 國相禮葬之]”라고 하였다.
전국책(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秦의 장수 왕계(王稽)가 赵의 수도 한단 (邯郸)을 공격하라는 소왕(진시황의 증조부)의 명령을 받고 무려 17개월이나 계속 공격하였으나 한단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지속된 전쟁으로 지친 군사들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집니다.
이에 일장 (佚庄)이라는 사람이 왕계에게 말합니다.
"장군께서는 음식을 마련하여 군사들에게 베풀어 그들의 사기와 투지를 올려줄 생각을 하지 않으십니까?" 이에 왕계는 오만한 태도로 대답합니다.
"나는 진나라 왕의 명령을 집행할 뿐, 그 누구의 말도, 기분도 알 바가 아니오.
함부로 참견하지 마시오". 일장이 다시 이어갑니다.
"장군께서 이처럼 독단적으로 행동하면서 병졸들을 무시하시면 그들이 장군께 불만을 품게 될 것입니다. 듣건대, 세 사람이 모이면 호랑이를 만들어내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할 수 있고 (배웠죠? 三人成虎), 열 사람이 힘을 합치면 기둥도 구부릴 수 있으며(十夫楺椎), 많은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불합리한 일을 말하면 이 말이 날개 없이도 빠르게 사방으로 날아갈 것입니다(众口所移, 毌翼而飞).
고로 병사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예로써 그들을 대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왕계는 그래도 그의 충고를 따르지 않습니다. 후에 병사들이 생활이 너무 힘들어지자 난을 일으키고는 왕계와 두지(杜摯)가 모반한다고 고해바칩니다.
진나라 소왕은 왕계와 두지를 처형합니다.
진(秦)나라는 장군 왕계(王稽)를 보내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邯鄲)을 치게 하였다. 계속 공격하기를 17개월, 도무지 공략할 수 없었다. 策05秦三084-01 秦攻邯鄲, 十七月不下.
장(莊)이라는 자가 장수 왕계(王稽)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어째서 병사들에게 베풀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자, 왕계가 말하기를, “나와 왕은 다른 사람의 말은 필요 없소!”라고 했다.
莊謂王稽曰: “君何不賜軍吏乎?” 王稽曰: “吾與王也, 不用人言.”
장이 말하길,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비유하자면 아버지가 아들에 대해서 명을 내릴 경우, 반드시 행해야 하는 것이 있고, 반드시 행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귀한 아내를 제거하고, 아끼는 첩을 팔아라!’고 한다면, 이 명령은 반드시 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감히 (그들을) 그리워해서도 안 된다!’라고 한다면, 이 명령은 반드시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을을 지키던 할미가 말하기를, ‘그 날 밤에 아무개는 겁이 많은 자인지라 아무개 선비를 들였다.’ 소중한 아내는 이미 떠났고, 아끼는 첩도 이미 팔았지만, 아들에게 그런 명령하려는 마음을 두지 않았던 것은 사람 마음이 본디 그런 것입니다.
지금 그대가 비록 임금의 재상일지라도 부자(父子) 사이의 친밀함을 넘을 수는 없고, 병사들이 비록 천하다고는 하나 마을을 지키는 할미보다 천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대는 마음대로 주권을 휘두르시며 부하들을 경시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듣자하니, 세 사람이 모이면 호랑이를 만들어 내 사람들로 하여금 참으로 믿게 할 수 있고, 열 사람이 힘을 합쳐 기둥을 구부리면 구부릴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요구한다면 이러한 외침은 날개 없이도 매우 빠르게 사방으로 날아갈 것입니다. 그렇기에, 병사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예로써 그들을 대하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莊曰: “不然, 父之於子也, 令有必行者, 必不行者. 曰: ‘去貴妻, 賣愛妾.’ 此令必行者也. 因曰: ‘毋敢思也.’ 此令必不行者也. 守閭구曰: ‘其夕某懦子內某士.’ 貴妻已去, 愛妾已賣, 而心不有欲; 敎之者, 人心固有. 今君雖幸於王, 不過父子之親; 軍吏雖賤, 不卑於守閭구. 且君擅主輕下之日久矣. 聞‘三人成虎, 十夫유椎, 衆口所移, 毋翼而飛’. 故曰: ‘不如賜軍吏而禮之’.”
**구:女+區= 할미 구. **유: 휠 유. 휘다.
戰國策(전국책) <170> <秦策篇(진책편)>(119) 중국 전한 시대의 유향(劉向)이 전국시대( 戰國時代, 기원전 475 ~ 222)의 수많은 제후국 전략가들의 정치, 군사, 외교등 책략을 모아 집록한 자료를 <전국책(戰國策)>이라 한다. 그러나 초기의 자료는 아주 미흡한 상태여서, 북송의 증공(曾鞏)이 분실된 자료를 사대부가(士大夫家)에서 찾아, 보정(補訂)하여 동주(東周), 서주(西周), 진(秦), 제(齊), 초(楚), 연(燕), 조(趙), 위(魏), 한(韓), 송(宋), 위(衛), 중산(中山)의 12개국 486장으로 정리하였다. 사마천(史馬遷)의 <사기( 史記)>나 <열전(列傳)>에는 <전국책>의 자료를 많이 이 용하였기 때문에 전국책의 내용과 동일한것이 많다. <전국책(戰國策)>의 내용은 왕중심 이야기가 아니라, 책사(策士), 모사(謀士), 설객(說客)들이 온갖꾀를 다 부린 이야기가 중심으로 언론(言論)과 사술(詐術)이 다. 그리하여 영어로는 Intrigues(음모, 술책)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가 크다. 전국시대에는 이른바 칠웅(七雄)인 진(秦), 초(楚), 연(燕), 제(齊), 조( 趙), 위(魏), 한(韓)을 중심 으로 그 외에 작은 소제후국들이 많았다. 이들 국가들이 효율적으로 통치하고 군사, 외교를 능률적으로 수 행하여 상대국에 승리하고 그리하여 천하를 얻을 심오한 이념과 책략들이 이 책에 다 들어 있다. |
<그대는 왜 상을 내리지 않습니까?> 秦攻邯鄲(진공한단) 진(秦)나라가 조(趙)나라 서울 한단(邯鄲)을 공격하였으나, 十七月不下(십칠월불하) 17개월이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莊謂王稽曰(장위왕계왈) 이때 어떤 장(莊)이라는 사람이 진나라 장수 왕계(王稽)에게 말했다. 君何不賜軍吏乎(군하불사군리호) "그대는 왜 그대의 하부 관리들에게 상을 내리지 않습니까?" 王稽曰(왕계왈) 왕계는 이렇게 말했다. 吾與王也(오여왕야) 不用人言(불용인언) "나는 임금과 약속 하였소. 남의 말을 듣지 않기로" 莊曰(장왈) 이에 장이란 사람이 다시 말하였다. 不然(불연) 父之於子也(부지어자야) "그렇지 않을 걸요. 비록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명령일지라도, 令有必行者(금유필행자) 必不行者(필불행자) 실행해야 할 것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게 마련입니다. 曰(왈) 아버지가 말하기를, 去貴妻(거귀처) ‘아무리 귀해도 음행한 처는 버려야 하고, 賣愛妾(매애첩)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첩은 팔아 보내야 한다’고 했다면, 此令必行者也(차령필행자야) 이에 아들은 반드시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因曰(인왈) 그러나 이일로 해서 말하기를, 毋敢思也(무감사야) ‘더 이상 그리워 하거나 생각지도 말라’라고 하였다면, 此令必不行者也(차령필불행자야) 이것은 실행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守閭嫗曰(수려구왈) 무슨 말인가 하면 마을을 지키는 어느 노파가 말하기를, 其夕某懦子內某士(기석모나자내모사) ‘모일(某日) 저녁 어떤 아녀자와 어떤 남자가 사통하였다’고 거짓을 꾸몄다면, 貴妻已去(귀처이거) 愛妾已賣(애첩이매) 그 처는 이미 내쫓았고, 그 첩도 이미 팔아 버렸다 할지라도, 而心不有欲(이심불유욕) 그들을 그리워 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敎之者(교지자) 남이 알고 싶어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人心固有(인심고유) 사람 마음에는 꼭 있는 법입니다. 今君雖幸於王(금군수행어왕) 지금 그대는 비록 왕에게 사랑을 받는다고는 하나, 不過父子之親(불과부자지친) 그것이 부자지간의 정을 넘어 서지는 못합니다. 軍吏雖賤(군리수천) 마찬가지로 군대의 관리들이 비록 천하다고는 하나, 不卑於守閭嫗(불비어수려구) 마을지기 노파보다 천하지는 않습니다. 且君擅主輕下之日久矣(차군천주경하지일구의) 더구나 그대는 임금의 신임을 믿고 당신 부하들을 깔보아 온지 오래입니다. 聞(문)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三人成虎(삼인성호)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세 사람만 떠들면 모든 사람이 믿게 되고, 十夫楺椎(십부유추) 어떤 자가 큰 몽둥이를 그대로 뒤틀어 굽혔다라고 열 사람이 똑 같은 말을 하게 되면 그 말을 믿게 된다. 衆口所移(중구소이) 모든 사람들의 말이 옮겨 다니게 되면, 毋翼而飛(무익이비) 날개 없는 것도 날아 다닐 수 있다’라고요. 故曰(고왈) 그래서 말씀 드립니다. 不如賜軍吏而禮之(불여사군리이례지) 그대의 부하들에게 상을 내리고 예로서 대해 주십시오" |
三人成虎,十夫楺椎。眾抽所移,毋翼而飛
세 사람이면 호랑이도 만들어내고
열 사람이면 몽치도 휘게만든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여러 사람들이 억지로 만들어 옮기는 말은 날개 없이도 날아 간다.)
《管子·戒》:“无翼而飞者声也。”《战国策·秦策三》:“众口所移,毋翼而飞。”
毋翼而飛
ㄨˊ ㄧˋ ㄦˊ ㄈㄟ wú yì ér fēi
比喻事物不須推行,即能迅速流傳。《戰國策.秦策三》:「眾口所移,毋翼而飛。」 也作「無翼而飛」。比喻物品無故遺失。也作「不翼而飛」、「無翼而飛」。
楺 [휠 유]1. 휘다 2. 나무가 휘어지다
1. 쇠몽치, 몽치(짤막하고 단단한 몽둥이) 2. 등골, 등뼈 3. 모밀잣밤나무 4. 순박하다(淳朴ㆍ淳樸ㆍ醇朴--) 5. 어리석다 6. 치다
1. 뽑다, 뽑아내다 2. 빼다 3. 없애다, 제거하다(除去--) 4. 찢다, 부수다 5. 거두다, 거두어들이다 6. 당기다, 잡아당기다 7. 싹트다, 싹이 나오다
동산의 풀은 땅속 양분(養分)으로 가지가 뻗고 크게 자람
【十夫楺椎】【十夫桡椎】 谓十个人的力量能使椎弯曲。椎,槌。比喻人多力大,足以改变原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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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망치 2. 치다 3. 던지다 4. 망치 따위로 때리다 5. 내던지다 6. 짤막한 몽둥이 a. 망치 (추) b. 치다 (추) c. 던지다 (추)
众口一词的议论,能改变事实的真相, 虽然没有翅膀,却能四处传播。指流言 飞语传播极快。这句话出自《战国策•秦策 三》:“三人成虎,十夫揉椎。众口所移, 毋翼而飞。”
翅膀 [시방]날개.
1. 날개 2. 지느러미 3. 뿐, 다만 4. (날개를)펴다, (공중을)날다 5. 다만 ~뿐이다 6. 마치다, 끝내다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 “세 사람의 입이면 범을 만들고 열 사람의 힘이면 방망이도 구부러뜨리니, 여러 사람이 말을 옮기면 날개가 없는 것을 날게 합니다.〔三人成虎 十夫楺椎 众口所移 毋翼而飞〕”라고 하였다.
영조 즉위년 갑진(1724) 11월 13일(계묘) 맑음
00-11-13[35] 흉적 이의연 등의 상소에 대한 소회를 진달하고, 허윤(許玧)의 상소에서 무함을 당한 일 등을 이유로 삭직해 줄 것을 청하는 도승지 박필몽(朴弼夢)의 상소
도승지 박필몽(朴弼夢)이 상소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신이 비망기 가운데 ‘그 당시 삼사의 신하들 중에 견책하기를 청하는 글을 올린 자가 아무도 없었으니 너무도 무엄하다.’라고 하신 말씀을 삼가 보았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신이 삼사의 자리를 맡은 적이 그동안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이미 지나간 일이라 하여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는 은혜를 입었지만 신의 사사로운 의리에 있어 황송한 마음이 어찌 다함이 있겠습니까. 이에 감히 소장을 올려 스스로를 논열하니 신의 죄를 속히 처벌하시어 사적인 분수를 편안하게 해 주소서.
신이 처벌을 내려 주기를 청하는 소장에 감히 다른 말을 또 언급해서는 안 됩니다만, 지금의 시국을 보면 하염없이 장탄식을 금할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아, 지금 조정의 신하는 바로 신축년(1721, 경종1)의 역적을 성토한 이들입니다. 신축년의 일은 신이 다시 많은 말을 하지 않더라도 전하께서 남김없이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 당시 간흉이 정권을 잡고서 역모를 자행하였는데 겉으로는 정책(定策)한다는 명분을 빙자하였지만 속으로는 스스로 취하려는 마음을 품었으니, 임금의 자리가 한 오라기 머리카락에 매달린 것처럼 위태위태하였습니다.
아, 천지간에 없어지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윤상(倫常)이요, 300년을 소중히 지켜 온 것이 명분과 의리입니다. 그러니 군부가 위협과 핍박을 받는데 어찌 차마 남의 일 보듯이 한 채 달려 나와 호소하며 구원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 때문에 공경(公卿)에서부터 일반 관리들까지 단호한 의지로 과감히 나서서 온 마음을 다해 호소하며 저지하였고 형벌을 받는 것도 흔쾌히 감수하며 조금도 회피하지 않고 목숨을 다 바쳐 임금을 모셨습니다. 이러한 때에 어찌 털끝만큼이라도 당쟁을 일삼아 득실을 따지려는 마음이 있었겠습니까. 참으로 천리(天理)와 민이(民彝)의 측면에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어 스스로 신하의 도리를 다한 것일 뿐입니다.
다행히 우리 대행 대왕께서 결단을 시원스레 내리시어 군흉들을 소탕하여 요망한 난적들이 모두 전형(典刑)에 따라 복주됨으로써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라가 제대로 유지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저 흉역(凶逆)의 무리는 울분을 켜켜이 쌓고 원한을 뼛속 깊이 새기고는 감히 하늘을 원수로 삼을 수 있다고 여기고 반드시 기회를 노려 분풀이를 하고자 하였습니다. 선침(仙寢)이 빈전(殯殿)에 계시고 성상께서 사복(嗣服)하신 초기인 오늘날, 이의연(李義淵)이 상소를 올려 맨 먼저 선창하였는데 감히 ‘신축년(1721, 경종1) 이후의 일은 모두 선왕의 뜻이 아니었다.’라는 등의 말을 함부로 썼으니, 무상 부도(誣上不道)함이 이보다 심할 수 없습니다. 그 뒤를 이어 이봉명(李鳳鳴)과 이한동(李漢東) 등이 상소를 올렸는데, 점점 깊이 전하의 마음을 떠보며 수단이 한층 더 다양해졌습니다.
최보(崔補)의 상소에 이르러 극에 달하였는데, 흉언으로 현혹하고 성상을 동요시켰으며 다짜고짜 조정의 신료들을 망측한 죄과에 몰아넣었 습니다. ‘조금이라도 전하를 임금으로 섬기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저들이 어찌 감히 이와 같이 하겠습니까.’라고 하는가 하면 또 이르기를 ‘임금의 자리는 위태로이 고립되고 흉적의 세력은 기세등등하니 예상치 못한 변고와 정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화란이 순식간에 일어나지 않을 줄 어찌 알겠습니까.’라고 하였으니, 도대체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어지러이 참언을 일으켜 군신 사이를 이간하는 일이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습니까만, 어찌 이 흉적처럼 전혀 사실무근인 일을 날조하여 일망타진하려 한 경우가 있었습니까. 해처럼 밝으신 전하께서는 신료들의 심사(心事)를 환히 아실 수 있으니, 어찌 저 흉적의 참설과 조금이라도 부합하는 점이 있겠습니까.
아, 신축년의 역당이 수괴는 복법되었으나 여얼(餘孼)이 여전히 치성합니다. 이들은 천고에 씻기 어려운 악명을 감수한 채 기회를 노려 되갚아 줄 흉계를 꾸몄는데, 마침내 악역(惡逆)의 죄과로 몰아넣은 뒤에야 발탁되어 힘을 모을 수 있고 또한 통쾌히 보복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한미한 집안의 자제를 매수하여 먼저 현혹하는 계책을 시험해 본 다음 차츰차츰 일을 추진해 나가 종반(從班)의 경재(卿宰)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바꾸어 가며 잇따라 상소를 올리고 있습니다. 미친 듯이 조급히 서두르고 마치 위난(危難)에 직면하여 상변(上變)하는 것처럼 하는데, 감히 귀역(鬼蜮) 같은 마음을 품고 일월처럼 밝으신 성상을 속이고자 하니, 참으로 통탄스럽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전하께서는 마음을 쏟아 학문에 전념하여 지극한 강명(剛明)함으로 아랫사람에게 임하시므로 요망한 귀신과 같은 무리가 본모습을 감출 수 없습니다. 전후에 내리신 비지를 보면 저들의 간악한 정상을 환히 살피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음흉하고 사특한 무리가 계속 날뛰는 것은 참으로 선왕을 무욕(誣辱)한 흉적에 대해 저자에서 주륙하는 형전을 아직까지 시행하지 않아 징토(懲討)하는 형전이 엄격하지 않은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초기에 보상(輔相)을 의지하고 존중하시며 성의(誠意)가 가득 넘치시어 상하 간에 관계가 지극히 친밀하였습니다. 이에 조정이 길이 안정되고 태평 시대를 기약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참언을 올린 자가 나타나 그 사이를 이간하고 망극하게 죄를 얽어 대는 바람에 두서너 대신(大臣)이 잇따라 서명(胥命)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이 무슨 광경이란 말입니까. 시사(時事)를 생각하면 절로 눈물이 흐르고 통곡이 나옵니다. 삼가 바라건대, 우선 흉적 이의연을 극전(極典)으로 처치하시어 대행왕께서 입은 참담한 무욕을 씻어 주시고, 윤리를 무시하고 의리를 어그러뜨리며 분란을 일으키고 인심을 현혹하는 주장을 하는 무리로 하여금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있어 감히 잇따라 나오지 못하게 함으로써 이제 막 시작한 청명(淸明)한 정치에 흠결이 없게 하소서.
신이 소장을 엮어 올리려던 즈음에 허윤(許玧)의 소본(疏本)을 보게 되었는데, 그 하단에 ‘일전에 옥당이 야대(夜對)하는 자리에서 궁인(宮人)의 일로 인하여 심지어 「전하께서 무슨 꺼리고 혐의할 것이 있습니까.」라는 등의 말까지 방자하게 아뢰어 성궁(聖躬)을 핍박하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무엄하니 그 밖의 것은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오늘날 전하의 조정 신하들은 무도(無道)하다고 할 만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명백하게 말을 하지 않아 비록 이름을 밝혀 지척(指斥)하지는 않았으나, 그날 야대한 자리에서 궁인의 일을 진달한 자는 바로 소신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신이 입대(入對)한 때로부터 날이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그때 아뢴 말을 성상께서 분명히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니 신이 감히 일일이 제기하여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꺼리고 혐의한다.’라는 등의 말은 애당초 품을 수 있는 생각이 아니며 입에 올릴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허윤은 어디서 이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장주(章奏)에 올리기까지 하여 성궁을 핍박하였다는 것으로 서슴없이 단안(斷案)을 삼았습니다. 아, 그날 쟁집한 것은 반복하여 개진하여 성상의 마음을 돌리기를 바란 데 지나지 않았으니, 성상께서 따르시거나 어기시거나 간에 무슨 ‘꺼리고 혐의한다.’라는 말을 거론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허윤은 남을 죄로 얽어 넣기에 급급하여 마침내 흉패(凶悖)한 말을 감히 갖다 대지 못할 분에게 은연중에 가하였으며 의도가 헤아릴 수 없이 음험하니, 소인의 심보와 행태가 참으로 고약합니다. 한편 성궁을 핍박하였다는 것은 얼마나 큰 악역(惡逆)의 죄목입니까. 그런데 애당초 이런 말을 한 적도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죄목을 갖다 붙이면서 스스로 성상을 기망하고 분의(分義)를 범하는 죄과에 빠지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니, 신은 내심 통탄스럽습니다.
신은 신축년의 일이 막 일어났을 때 언관(言官)의 자리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감히 주저하거나 피하는 일 없이 원한을 살 것을 감수한 채 역적을 토죄하였으니, 한쪽 편 사람들이 신에게 반드시 보복하고자 벼른 지 오래되었습니다. 저들이 모습을 감춘 채 기회를 노리고 있어 조만간 일이 한번 터지리라는 것을 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지금 허윤은 연석에서 아뢰지도 않은 말을 터무니없이 뚝딱 지어 내어 신을 죄로 얽어 죽이려는 구실을 삼았습니다. 성상을 마주한 어전(御前)에서 아뢴 말을 성상께서 분명히 들으셨고 좌우의 사관(史官)이 그때 아뢴 말을 있는 그대로 적은 기록이 분명히 남아 있는데도 이와 같이 말을 꾸며 댔습니다. 그러니 비밀히 말을 꾸며 내고 백방으로 중상(中傷)하여 죄를 날조하려는 모의를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더욱이 하지 못할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신하로서 이처럼 망극한 무함을 당하니 소름이 끼치고 심장이 떨려 곧바로 죽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습니다. 신이 만약 성상의 은총에 연연한 채 서둘러 자신을 단속하여 물러나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떤 함정에 빠지게 될지 모릅니다. 세 사람이 같은 말을 반복하면 듣는 이가 현혹되게 마련이고, 열 사람이 방망이를 구부리려고 하면 방망이가 버텨 내기 어려우니, 성상께서 일월처럼 밝으시더라도 일마다 다 환히 살피고 끝까지 곡진히 헤아려 주기 어려우실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속히 신을 내치시어 신이 조정에서 떠나 함정의 구렁을 멀리 피함으로써 천지가 만물을 생성해 주는 것과 같은 성상의 은택을 끝까지 누릴 수 있게 해 주소서. 그리하신다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신은 지극히 황공하고 간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어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상소를 보고 잘 알았다. 터무니없이 무함한 말인데 무슨 언급할 가치가 있겠는가. 경은 사직하지 말고 올라와서 직임을 살피라.”
하였다.
[주-D001] 한미한 집안의 자제 : 유학(幼學) 이의연(李義淵)을 가리킨다.
[주-D002] 일전에 …… 자리 : 이해 9월 29일 밤에 소대(召對)를 행하였을 때이다.[주-D003] 궁인(宮人)의 일 : 임인옥사의 쟁점이 된 삼수(三手) 가운데, 중국에서 사 온 환약(丸藥)을 궁녀에게 주어 음식물에 타서 왕을 독시(毒弑)하는 방법인 소급수(小急手)에 관련된 일이다. 옥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어선(御膳)을 관장하는 김씨 성(姓)을 가진 궁인이 성궁(聖躬)에 독약을 시용(試用)하였다는 말이 김성절(金盛節)의 공초 내용에 나왔는데, 그 이후로 영조가 즉위한 지금까지 소론 측에서 이 궁비를 찾아내어 죄를 다스리기를 계속 청하고 있다. 《景宗實錄 2年 8月 18日》
[주-D004] 신축년의 일 : 신축년(1721, 경종1)과 임인년(1722) 연간의 신임옥사를 말한다.
신축옥사는 연잉군(延礽君)의 왕세제 책봉과 왕세제의 대리청정 추진 과정에서 노론 측 대신이 경종을 위협하고 능멸하였으며 이는 곧 역적 행위라는 소론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김창집(金昌集), 이이명(李頤命), 이건명(李健命), 조태채(趙泰采) 등 노론 사대신과 왕세제의 참정(參政)을 청하는 상소를 올렸던 집의 조성복(趙聖復)이 모두 위리안치(圍籬安置)된 사건이다.
임인옥사는 숙종의 임종 무렵 당시 세자이던 경종을 음해하기 위해 노론 명문가의 자제가 중심이 되어 삼수(三手)의 계책을 써서 역모하였다는 목호룡의 상변에 따라, 신축옥사로 위리안치되어 있던 노론 사대신이 모두 사사(賜死)되는 등 노론계 인사가 대거 처벌되고 축출된 사건이다.
[주-D005] 세 사람이 …… 어려우니 : 참소가 거듭되면 결국 임금이 그 말을 믿게 된다는 뜻이다.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 3〉에 이르기를, “세 사람의 입이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나게 할 수 있고, 열 사람의 힘이면 방망이도 구부러지게 할 수가 있으며, 뭇사람이 떠들어 대는 바는 날개가 없어도 날 수가 있다.〔三人成虎 十夫揉椎 衆口所移 毋翼而飛〕”라고 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정준영 (역) | 2010
승정원일기 > 영조 > 영조 3년 정미 > 11월 17일 > 최종정보
영조 3년 정미(1727) 11월 17일(기사) 아침에는 맑고 저녁에는 비가 옴
03-11-17[34] 거듭 법망에 걸려 환난을 당했으므로 본직 등을 삭탈해 줄 것을 청하는 부수찬 신치운(申致雲)의 상소
부수찬 신치운(申致雲)이 상소하기를,
“삼가 아룁니다. 신은 다시 살려 주시는 깊은 은혜를 입었으나 뭇사람의 분노가 그치지 않고, 한번 출사하는 데 대한 의리에 어두워 사람들의 말이 끝이 없습니다. 자취는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마음은 갈수록 위축되어 감히 나아갈 수도 없고 물러날 수도 없습니다. 그간 누차 엄한 소명을 어겼던 것은 참으로 너무도 두렵고 답답한 점이 있어서입니다. 부득이 해직된 겨를을 틈타 잠시 나가서 교외에 숨어 살 계책을 세웠는데, 삼 년 동안 먼 곳에 있다가 거듭 대궐을 하직하고 몇 달 만에 돌아와서는 곧 다시 떠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임금과 어버이를 생각하는 마음은 갈수록 더욱 간절해졌기에 뒤돌아 멀리 바라보며 눈물만 흘릴 뿐이었습니다.
뜻밖에 제수하는 명령이 다시 내리고 부르는 전지가 멀리까지 왔습니다. 부리(府吏)가 처음 도착하자 마을 사람들도 놀라는데,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받들자니 당황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탄식만 더할 뿐이었습니다. 다만 신이 결코 다시 나아가기 어려운 의리는 실로 온 조정 관원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하물며 지금은 대간의 논계가 이어지고 탁류(濁流)를 몰아내고 청류(淸流)를 끌어들이려는 논의가 한창 엄격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연이어 살펴 의망하며 부질없이 붙잡기만 일삼는지 모르겠으니, 그저 더욱 낭패스러울 뿐입니다. 우러러 생각건대, 밝은 성상께서 혹시 그 정리를 미처 통찰하지 못하시고, 단지 신이 두 차례 올린 사직소의 글이 범범하고 말이 서툴러서 끝내 속마음을 다 밝혀 성상께서 분명히 아시도록 하지 못한 때문이라면 이 또한 신의 죄입니다.
신이 삼가 들으니, 《시경(詩經)》에 ‘사람이 덕을 잃는 것은 말린 밥으로 생긴 허물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인심을 잃지 않기 어려운 이유는 큰일에 있지 않음을 말한 것입니다. 《주역(周易)》에 ‘기미를 보아 일어나니, 하루가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현명한 사람이 환란을 피하려면 속히 결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생각건대, 신의 집안이 쇠퇴하여 친척이 도와줄 형편이 아니고, 평소 성품이 우활하고 편벽되어 당우(黨友)가 힘을 다해 도와주지도 않으니, 그 본말을 따지자면 일개 떠돌이 신하입니다. 그런데 처음 관직에 나오자 갑자기 세상에서 가장 영예롭다고 일컫는 자리에 선발되었습니다. 만약 기미를 아는 옛날의 군자가 이처럼 요행히 오는 기회를 만났다면 필시 상서롭지 않은 조짐으로 여기고는, 깊이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고서 신하로서의 도리를 가지고 인혐하며 어진 이를 추천하여 힘껏 사양하기에 겨를이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신은 불초한 관계로 소견이 여기에 이르지 못하여 그대로 자리를 차지하고서는 오랫동안 임시직으로 있으면서 돌아가지 않았으니, 실로 ‘저는 여기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라는 말에 부끄러운 점이 있습니다.
급기야 지난날 거듭 법망에 걸려 삼 년 내내 거의 범에게 물려 죽을 뻔했던 데에 이르러서는, 너무도 걱정스럽고 두려운 나머지 자신을 반성하며 저는 가만히 생각하기를 ‘이번에 모욕이 선조(先祖)에게까지 미친 것은 내가 도적을 부른 꼴이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그 이유를 따지자면 분수를 넘은 직임이 바로 큰 빌미가 되어 귀신을 거스르고 사람이 시기하여 이처럼 온갖 재앙을 받게 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서제막급(噬臍莫及)이었기에 손가락을 깨물어 스스로 맹세하면서 뒤미처 벼슬길에 있던 때를 돌이켜 생각해 보니 꿈에도 두려운 마음이 남아 있었습니다.
성상께서 새로 즉위하여 인재를 수용하는 초기에 이르자 즉시 조정에서 자취를 감추고 물러나 본분을 지켜 여러 사람의 유감을 조금이나마 풀고 지난날의 허물을 뒤미처 보충하려 하였습니다. 다만 보전해 주신 은혜를 마음 깊이 새기고 있었기에 관원을 등용하는 사이에 차마 결단하여 떠나지 못했습니다. 단지 조용히 떠나려는 생각에 잠시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앉은 자리가 따뜻해지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화란이 먼저 일어났습니다. 예전에 입은 상처가 여전히 아픈데 그 뒤에 때리는 것이 더욱 급하니, 굽은 나무의 경계는 논할 바가 아니지만 활에 다쳐 놀란 마음은 오래도록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아, 조정은 예의와 사양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지금 사람에게 무례한 짓을 하는 것이 이처럼 방자한데 의도와 형세를 전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신은 거짓으로 꾸며 아뢰는 것이 결국 한바탕 모욕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두렵습니다. 신은 참으로 위태롭고 두려워 마치 범의 꼬리를 밟은 듯합니다. 시인이 탄식한 말과 《주역》에서 경계한 내용을 세 번 반복하노라니 실로 제 마음을 먼저 안 것 같습니다.
아, 천지가 비록 어질더라도 때를 거슬러 번성하거나 메마르게 할 수는 없으며, 임금이 비록 높더라도 뭇사람의 뜻을 어기며 관직을 주거나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눈과 서리가 번갈아 내리면 쑥풀과 난초가 모두 꺾이니 비록 사물을 낳는 인(仁)이라도 편애하여 베풀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의 말이 조정에 가득하여 청탁을 구별하려 하면 비록 홀로 나라를 다스리는 밝은 임금이라도 마음대로 결단할 수 없습니다. 결국 당시에 용납되지 못하고 주상에게 죄를 지은 옛 신하는 모두 은미한 글과 작은 허물 때문에 점차 위태로운 화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윗사람이 처음에야 어찌 공정하게 듣고 아울러 보면서 부축하고 보전하려 하지 않았겠습니까. 다만 여론을 진정시키기 어렵고 시론이 따라 주지 않아 세 사람의 입이 범을 만들고 열 사람의 힘이 방망이를 구부러뜨리니, 자애로운 어머니도 베틀의 북을 내던짐을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보호하고자 하였던 은혜가 도리어 마치지 못하는 은혜가 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이는 환난을 당한 사람이 그저 주상의 총애만 믿고 당시의 논의를 전혀 몰라 배회하고 주저하면서 물러나야 하는데도 물러나지 않아 죽음에 이르고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은 전기(傳記)를 읽을 적마다 가만히 그런 사람을 슬퍼하였는데 오늘날 신이 이러한 처지를 당할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가령 알지 못했더라도 오히려 걱정스럽고 두렵거늘, 이미 알고 있는데 어찌 거울삼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골짜기에 임한 듯이 하라.’라고 하였고, 또 ‘전전긍긍하여 얇은 얼음을 밟는 것처럼 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신의 사정(私情)은 위태롭고도 고달픕니다.
아, 신이 관직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고 조정에 선 지 오래지 않아 당인을 심을 줄 모르니 어찌 원한을 맺었겠습니까. 지금 신의 처지가 몹시 급박하고 상황이 아름답지 않으니 반성하며 그 이유를 괴이하게 여기고 따라서 살펴보니 오직 관직에 임명되는 것을 벗어나지 못하여 빈 배로 분노를 일으키고 날아가던 새가 욕을 먹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만약 내버려 두고 떠나며 몸을 빼어 어려움을 피할 수 있다면 신이 마음속으로 달게 여기고 즐거워하며 조금도 원망이나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하늘 같은 성상께서 굽어보고 계시는데 신이 어찌 빈말로 사양하겠습니까. 행여 전하께서 이 심정과 자취를 남김없이 통촉하여 위태롭고 다급한 처지를 불쌍히 여기고 시종일관 어질게 대하고자 하신다면 신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속히 소원에 따라 물러나도록 허락하실 것입니다.
신이 만약 지금 이후로 유유자적 재야의 백성처럼 지내며 책을 읽고 허물을 보충하여 요행히 온전한 사람이 되어, 알아주고 칭찬해 주신 밝은 우리 성상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이는 참으로 신의 지극한 소원이자 두터운 바람이며, 또한 교화를 받은 결과가 아님이 없습니다. 만약 말은 잘 하되 실천하지 못하고 깨닫고 나서도 떠나지 않는다면 끝내 후회만 늘어나고 죄만 쌓일 것이니, 미천한 신이 낭패를 당하는 것이야 본디 걱정할 것 없지만, 신하들을 제 몸처럼 여기는 성조(聖朝)의 뜻에 얼마나 누를 끼치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불쌍히 여겨 덮어 주는 어진 마음과 자세히 두루 살피시는 밝은 눈으로 신의 본직과 겸직을 모두 삭탈하시고, 이조에 신칙하여 다시는 천거하지 말도록 하여 낳아 주고 길러 주는 은택을 끝까지 누리게 하소서. 그렇게 해 주신다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성상의 은택을 입은 것이니 감격하여 떠받드는 마음에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밥 먹을 때마다 기원하고 결초보은하는 마음은 끝내 감히 벼슬하거나 물러났다고 하여 혹시라도 소홀히 하거나 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글을 올리고 눈물을 흘리며 아뢸 바를 모르겠습니다. 신은 지극히 애타고 다급한 마음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하니, 답하기를,
“상소를 보고 잘 알았다. 그대는 사직하지 말고 속히 올라와 직임을 살피라.”
하였다.
[주-D001] 사람이 …… 때문이다 : 《시경》 〈벌목(伐木)〉에 “사람이 덕을 잃는 것은 말린 밥으로 생긴 허물 때문이다.〔民之失德 乾餱以愆〕”라고 하였다. 사소한 일로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는 뜻이다.[주-D002] 기미를 …… 않는다 :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군자는 기미를 보아 일어나니, 하루가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君子見幾而作 不俟終日〕”라고 하였다. 일의 조짐을 미리 보고 속히 결단하는 것을 말한다.
[주-D003] 저는 …… 못하겠습니다 : 공자(孔子)가 제자 칠조개(漆雕開)에게 벼슬하게 하였더니 칠조개가 “저는 여기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吾斯之未能信〕”라고 대답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論語 公冶長》
[주-D004] 굽은 …… 않았습니다 : 지나치게 경계하고 두려워한다는 말이다. 부혁(傅弈)이 한왕(漢王)에게 “활에 다친 새는 굽은 나무를 보고도 놀란다.〔傷弓之鳥驚曲木〕”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新唐書 卷107 傅弈列傳》
[주-D005] 세 …… 구부러뜨리니 :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 “세 사람의 입이면 범을 만들고 열 사람의 힘이면 방망이도 구부러뜨리니, 여러 사람이 말을 옮기면 날개가 없는 것을 날게 합니다.〔三人成虎 十夫楺椎 众口所移 毋翼而飞〕”라고 하였다.
[주-D006] 자애로운 …… 것입니다 : 어떤 사람이 증삼(曾參)의 어머니를 찾아와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고 말하였으나 증삼의 어머니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세 사람이 같은 말을 하자 증삼의 어머니는 베틀의 북을 내던지고 달아났다. 터무니없는 소문이라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믿게 된다는 말이다. 《戰國策 秦策》
[주-D007] 두려워하고 …… 하라 : 모두 《시경》 〈소완(小宛)〉에 나오는 구절이다.[주-D008] 빈 …… 일으키고 : 《장자(莊子)》 〈산목(山木)〉에 “배를 타고 황하를 건너는데 빈 배가 와서 부딪치면 아무리 마음이 좁은 사람이라도 성내지 않는다.” 하였다. 여기서는 뜻밖의 화를 당하는 것을 비유하였다.[주-D009] 날아가던 …… 것 : 《장자》 〈추수(秋水)〉에 있는 이야기로, 원추(鵷鶵)새는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 고상한 새인데, 올빼미가 썩은 쥐를 물고 있다가 날아가던 원추새를 보고서 쥐를 빼앗길까 봐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여기서는 벼슬에 뜻이 없는 자신이 사람들의 분노를 산 것을 비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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