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제2권 16
은덕찬(恩德讚)
한가위 명절을 잘 보내셨는지요? 한가위 연휴를 맞이하여 오래 동안 미루어오던 숙제를 해치우고자 합니다. 바로 신란(親鸞, 1173〜1262)스님의 「은덕찬」(85세 작)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우선, 그 원문부터 제시해 보겠습니다. 옛날에는 한자와 가타가나(片假名)를 섞어서 썼습니다.
如來大悲ノ恩德ハ
身ヲ粉ニシテモ報スヘシ
師主知識ノ恩德モ
ホネヲクタキテモ謝スヘシ
이런 형식의 시를 화찬(和讚)이라고 합니다. 신란스님은 약 350수 정도의 화찬을 남기셨다고 합니다만, 그것들은 크게 세 가지 화찬 속으로 편집되어 있습니다. 『정토화찬(浄土和讚)』, 『고승화찬(高僧和讚)』, 그리고 『정상말화찬(正像末和讚)』입니다. 이를 합하여 삼첩화찬(三帖和讚)』이라고 합니다.
「은덕찬」은 『정상말화찬』 속에 편집되어 있는 연작시 「정상말법화찬(正像末法和讚)」 58수 중에서 제일 마지막 노래입니다. 옛날에 목판으로 판각된 『정상말화찬』을 보면, 따로이 그 화찬만을 ‘은덕찬’이라고 이름붙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런 제목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후대에, 언제부터인지 누군가에 의해서 이 화찬의 이름을 ‘은덕찬’이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 그 누구로부터인지, 언제부터인지는 저 역시 알지 못합니다. 4구절 중에서 첫구 만을 앞으로 한 글자 내어쓰고, 다른 3구절은 한 글자 들여쓰는 형식 역시 옛날의 목판본에 그렇게 되어 있는 형식입니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히라가나(平假名)를 쓰지 않고 가타가나를 쓴 것은, 히라가나가 평민들에게도 쉽게 쓰일 수 있는 언어로서 늦게 보편화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오늘날 진종의 신도들이 들고서 읽고 있는 「은덕찬」은 다음과 같이 한자와 히라가나가 섞인 것입니다.
如來大悲の恩德は
身を粉にしても報ずべシ
師主知識の恩德も
ほねをくだきても謝すべシ
사실, 제가 이 「은덕찬」을 처음 만난 것은 2013년 고치(高知)에 있을 때였습니다. 정토진종 본원사파 코렌지(高蓮寺)라는 절의 법회에서입니다. 그때 법회가 끝날 때, 우리 같으면 정확히 「사홍서원」을 하는 자리에서, 그 대신에 「은덕찬」을 하였습니다. 노래로 하였습니다. 그때는 솔직히 말해서 별로 감흥을 못 느꼈습니다. 그 지은이가 신란스님인 줄도 몰랐고, 그저 “아, 이 사람들은 신란스님에게 은혜를 갚아야 하겠다는 뜻으로 하는가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용도 너무 상투적인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도 저는 시를 짓고 있었고, 시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죽은 은유(dead metaphor)’인데, 이 「은덕찬」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한자 성어 분골쇄신(粉骨碎身)이라는 것을 그대로 끌어다가 쓰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때는 아직 제가 신심이 없었고, 그 이후 저에게도 변화가 있었던 것이겠지요. 이 「은덕찬」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난 번 편지에서 말씀드린 신란교류관의 정례법회에서 이 「은덕찬」을 따라서 노래하면서 부터였습니다.
물론 그 노래는 한자까지를 일본어 음으로 읽으면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또 다음과 같이 됩니다.
뇨라이 다이히노 온도쿠와
미오코니 시테모 호즈베시
시슈찌시키노 온도쿠모
호네오 쿠다키떼모 샤스베시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은덕찬」에 곡을 붙인 것이 3종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들어본 것은 2종류인데,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잘 알 수 없지만, 어떤 것은 제 노래실력으로도 따라 하기 편한 것이 있고, 어떤 것은 따라 하기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직접 들어보시고 싶은 분은 유투브에서 찾아서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늘 참석하던 신란교류관의 정례법회에서 하던 「은덕찬」 노래는 곡이 좀 따라하기 어렵고, 같은 신란교류관이라도 일요일 아침의 ‘일요강연’에서 하던 것은 좀 더 따라하기 쉬웠습니다. 이 ‘일요강연’에서의 「은덕찬」 곡조와 본원사파의 그것은 같았습니다. 서본원사의 법회나 문법회관(聞法會館. 서본원사에서 세운 회관. 신란교류관 같은 역할도 하고, 신도 숙소와 같은 기능도 함)의 법회에서는 ‘일요강연’과 같은 노래였습니다.
그럼 그 뜻은 어떻게 될까요? 이미 한문을 좀 하시는 분들은 원문의 가나(가타가나, 히라가나)를 모르신다고 하더라도 짐작이 가능할 것입니다만,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래께서 베풀어주신 큰 자비의 은덕은
몸을 가루로 부수더라도 갚아야 하리
스승 선지식께서 베풀어주신 은덕도
뼈를 찧더라도 감사해야 하리
두 가지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여래의 은혜와 스승의 은혜입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비록 여래의 은혜를 말하고 있다고 해도 “역시 정토진종의 법회에서 마지막에 하는 것이니까, 신란스님의 은혜를 갚고자 하는 것이겠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렸던 것이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노래의 작자가 신란스님임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신란스님이 신란스님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겠지요. 그래서 “아하, 신란스님이 말하는 스승 선지식은 역대로 정토의 가르침을 당신에게까지 전해준 여러 조사 선지식스님들을 말하는 것이겠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스님으로는 흔히 7고승/7조를 말합니다. 인도의 용수, 세친(=천친), 중국의 담란, 도작, 선도, 그리고 일본의 겐신(에신승도), 호넨입니다. 물론 정토진종의 개조 신란스님은 이 일곱 스님들의 은혜를 거듭 거듭 찬탄하고 갚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기는 합니다. 『교행신증』의 제2권에 나오는 「정신염불게」(=「정신게」), 『정토문류취초(淨土文類聚抄)』에 나오는 「염불정신게」(=「염불게」), 그리고 『고승화찬』 등에 그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놀랍게도, 신란스님이 「은덕찬」에서 말하는 ‘스승 선지식’은 호넨스님이었습니다. 자신이 만나서 가르침을 들었던 그 스승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은덕은 “뼈를 찧더라도 갚아야 하리”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은덕찬」의 ‘스승 선지식’이 바로 호넨스님이라는 점은 신란스님의 또 다른 저서 『존호진상명문(尊號眞像銘文)』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생각하기를, 미타의 비원(悲願)과 같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대사성
인(大師聖人)의 가르침의 은혜가 깊음을 생각해서 알아야 하리.
여기서 말하는 ‘대사성인’이 바로 호넨스님, 즉 겐쿠(源空)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은덕찬」과 관련해서 세 번째 놀라게 됩니다. 이러한 언급이 신란스님의 독자적 언급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그의 사형 세이가쿠(聖覺, 1167-1235)스님의 글에 대한 주석을 통해서 말했던 것이었습니다. 세이가쿠는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선생의 『나무아미타불』(모과나무, 2017)을 읽은 분이라면 안면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나무아미타불』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책 『유신초(唯信抄)』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여담입니다만, 저는 젊은 스님들께 가금 묻습니다. ‘사형사제 간에 친합니까?’라고 말입니다. 사형사제간에 친하면 우리 불교는 발전합니다. 거기에 ‘화/和’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로 호넨스님 문하가 그러했습니다. 신란스님은 사형 세이가쿠스님의 『유신초』를 좋아해서 주석서 『유신초문의(唯信抄文意)』를 짓고, 또 다른 사형 류칸(隆寬)스님의 책에 대한 주석서 『일념다념문의(一念多念文意)』를 짓기도 합니다. 신란스님이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런 세이가쿠 스님은 스승 호넨스님이 돌아가시자, “粉骨可報之, 摧身可謝之(뼈를 가루로 만들어서 가히 갚아야 하고, 몸을 부수더라도 가히 감사해야 하리)”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 글에 대해서 신란스님이 주석하기를, 다음과 같이 했다는 것입니다.
대사성인의 가르침의 은덕의 깊은 것을 알고서, 뼈를 가루로 만들더라도 갚아야 하고,
몸을 갈더라도 은덕을 갚아야 하리.
이러한 문장이 있으므로, 앞서 인용한 바 있는 『존호진상명문』의 문장에서 ‘대사성인’은 곧 호넨스님임을 우리는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사형 세이가쿠스님의 글에서 나오는 말에 대한 주석을 통해서 「은덕찬」에 나오는 내용의 알맹이를 갖추어갔다고 하더라도, 신란스님의 마음이나 세이가쿠스님의 마음이 다를 수 없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실로 신란스님이 스승 호넨스님을 생각하는 것이 각별한 것이었음은 『교행신증』 제6권의 마지막, 즉 이른바 ‘후서(後序)’에서도 분명합니다. 스승 호넨(=겐쿠)스님과의 인연, 즉 만남으로부터 법을 받고 헤어지는 과정을 그려가는데,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일본불교사공부방』 제13호 27쪽에서 박오수와 박현주의 공역으로 소개되었는데, 그 번역을 옮기면 이렇습니다.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비록 수없이 많을지라도 겐쿠법사와
가깝다든지 소원한 사이든지 간에 이것(『선택본원염불집』 - 인용자)을 얻어 열람을 하고
베낄 수 있는 문도는 대단히 드물었다. 그런데도 (나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 인
편지 제2권 16.hwp
용자) 이
미 베껴서 책으로 만들고 (스님의) 진영을 그렸던 것이다. 이는 염불을 오롯이 해서 바른
수행을 닦은 공덕이고 결정코 왕생하리라는 징조라고 할 수 있다. 인하여 슬픔과 기쁨의
눈물을 억누르며 그러한 인연을 적어둔다.
스승의 은혜를 입은 것을, 바로 장차는 극락에 왕생할 수 있는 징조라고까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뿐입니까. 이미 아시는 분이 상당히 많으시리라 믿습니다만, 저 유명한 『탄이초』의 제2조에서는 무엇이라 말씀하시던가요?
염불이 진실로 극락에 왕생하는 씨앗이 될는지, 또 지옥에 떨어질 업이 될는지, (저는)
그 모두 알지 못합니다. 가령 호넨성인(法然聖人)에게 속아서 염불을 하여 지옥에 떨어진
다고 하더라도 더욱이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 까닭은, (염불) 이외의 행도 열심히 해서
성불할 수 있었을 몸이 염불을 해서 지옥에 떨어진다면 (호넨성인에게) 속았다고 해서 후
회도 있겠으나, 어떠한 행으로도 (성불에는) 미치기 어려운 몸이기에 (신란에게는) 더욱이
지옥은 피할 수 없는 주처(住處)일 것입니다.
문맥의 소통을 위해서 제가 ( ) 속 부분을 추가하였습니다. 또 스승 호넨스님을 ‘성인’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일본에서 신란스님을 ‘신란성인’이라고 할 때에도 그런 의미가 중첩되어 있다고 봅니다만, 히지리(聖, 정식의 승려, 즉 관승/官僧의 집단으로부터 뛰쳐나와서 민중구제에 종사했던 스님)라는 뜻도 있음을 감안해야 합니다. 그렇더라도, 스승 호넨스님을 신란스님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신란교류관의 정례법회에서 어떤 스님은 스승 호넨스님에 대한 신란스님의 마음을 한마디로 “신란스님은 금생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호넨스님을 스승으로 모셔서 좋았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호넨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기 위하여 금생에 사람으로 태어났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스승 호넨스님을 만나기 위하여, 그 목적으로 금생에 태어났고, 마침내 그 목적을 이루었다는 이 말씀에 스승에 대한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은덕찬」은 어쩌면 지금은, 제가 최초로 느꼈던 것처럼, 정토진종의 문도들이나 신도들은 모두 ‘스승 선지식’을 곧 신란스님으로 보고서 부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또 칠조/칠고승 전부에 대한 은혜를 깊이 감사하면서 보은하자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저도 점점 더 이 「은덕찬」이 좋아졌습니다. 어쩌다가, 서본원사의 문법회관에서 하는 ‘정례포교법회’ 같은 데에서는 식순에 「은덕찬」이 없어서 못 부르고 말 때는 그렇게 섭섭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정토신앙의 구제는 아미타불의 은덕이지만, 그 구제의 문 안으로 안내해 주신 은혜는 또한 정토의 법문을 이어주신 스승님들일 것입니다. 그 분들의 은혜, 은덕으로 우리의 구제가, 우리의 왕생극락이 있는 만큼, 정토신앙에서 지은(知恩) 보은(報恩)의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정토교는 지은교이며 보은교입니다.
은혜를 알면 은혜 갚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 보은의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절의 강원에서 스님들이 배우는 『치문(緇門』(승가라는 말. 치는 ‘먹물 옷 치’입니다.)에 이런 게송이 나옵니다. 그 게송을 소개하면서 붓을 놓겠습니다.
가령 부처님을 머리 위로 이고
몸으로는 부처님께서 앉으실 법상(法床)이 된다고 해도
만약 부처님 법을 전하여 중생을 제도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부처님의 은혜를 갚을 자 없으리라.
감사합니다. 다음 편지에서 만나뵙지요. 나무아미타불
2019년 9월 14일, 한가위 이튿날
恩 徳 讃 (おんどくさん)
「如来大悲(にょらいだいひ)の恩徳(おんどく)は 身(み)を粉(こ)にしても報(ほう)ずべし
師主(ししゅ)知識(ちしき)の恩徳(おんどく)も 骨(ほね)を砕(くだ)きても謝(しゃ)すべし」
(正像末和讃 親鸞聖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