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십여시

VIS VITALIS 2020. 4. 4. 00:30

⑦ 십여시에 대해(법화경 방편품2) 
금강신문승인 2008.01.02 17:59


모든 존재가 지니는 공통속성 열 가지 

방편품의 핵심사상 
각 종파에 영향 미쳐 
범어 원본에는 없어 

《법화경》의 방편품 사상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십여시(十如是)라 말할 수 있다. 열 개의 이와 같은 것이란 의미를 지니는 십여시는 천태지의의 세계관과 존재관을 구성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만일 십여시가 없다면 천태의 일념삼천론은 구상되지 않았을 것이며, 그의 유심론적 세계관은 후대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일념삼천설을 구상했기 때문에 이후의 중국불교사상사에서 일념의 마음, 혹은 일심이 중요한 사상적 키워드가 될 수 있었다. 

혹자들은 오해할 수 있다. 천태사상의 어떤 점이 중국불교사상사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는가? 하고. 그렇지만 일심을 중심으로 세계를 파악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은 남종선, 화엄종, 정토종 등에 다양하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선종의 유심론적 세계관 내지 존재론의 사상적 원류 역시 천태를 무시하곤 말할 수 없다. 그러한 모든 사상의 배후에 십여시설이 있는 것이다. 

《법화경》 자체에서 십여시의 언급은 일체 모든 존재의 실상(實相:참다운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 시작된다. 방편품 해당 구절에는 다음과 같이 십여시에 대한 가르침이 나오고 있다. “아서라, 사리불아. 다시 말할 필요 없나니 이유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 성취하신 것은 가장 희유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도리이니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모든 존재의 실상을 구명할 수 있느니라. 이른 바 모든 존재의 이와 같은 상(相), 이와 같은 성(性), 이와 같은 체(體), 이와 같은 역(力), 이와 같은 작(作), 이와 같은 인(因), 이와 같은 연(緣), 이와 같은 과(果), 이와 같은 보(報), 이와 같은 본말(本末)이 궁극적으로 평등한 것이니라.” 

모든 존재의 참다운 모습은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 만이 알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일체 모든 존재가 지니고 있는 공통의 속성 열 가지를 십여시란 말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각각의 개념에 대해 천태지의 스님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우선 십여시를 개괄적으로 설명하자면 여시상(如是相:현상), 성(性:성질), 체(體:실체), 력(力:공능), 작(作:활동), 인(因:1차원인), 연(緣:2차원인), 과(果:직접적인 결과), 보(報:간접적인 결과), 본말구경등(本末究竟:궁극적인 평등)이다. 천태지의스님의 대표적인 저서인 《마하지관》에 의거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들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상이란 현상 즉 우리들 눈 앞에 전개되어 있는 일체의 모습이며, 이것은 각각의 개성과 차별성을 지닌다. 따라서 현상이란 표면적으로 드러난 다양한 차별성들의 조합이다. 나무는 나무대로 돌은 돌대로 각각의 모습을 달리하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보고 각각의 특성을 판별할 수 있다. 상이란 단어가 지시하는 것은 그러한 차별성을 말한다. 성이란 세 가지의 의미로 파악하고 있다. 개변(改變)할 수 없는 것, 종류라는 의미, 실성(實性=불성)이란 의미가 있다. 여기서 실성은 理性 내지 佛性과 동의어로 설명된다. 

그리고 이것이 있기 때문에 일체의 존재는 본질적인 차원에서 평등할 수 있는 것이다. 체란 체질(體質)을 말하는데 육도중생은 물질과 정신으로 체질을 삼고, 이승은 오분법신으로 체질을 삼으며, 보살과 부처는 정인불성으로 체질을 삼는다고 본다. 인이란 1차 원인을 말하며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각자의 의지행위의 결과 표출되는 업(=행위)으로 해석한다. 연이란 2차 원인을 말하며 행위를 도와주는 일체의 보조적인 것이다. 인과 연은 그런 차원에서 불가분리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인이 주관이라면 연은 객관세계 전체라 말할 수 있다. 

본말구경등이란 처음과 끝이 궁극적으로는 평등하다는 의미인데 이러할 경우 현상은 근본이 되고, 간접적인 결과인 보는 지말이 된다. 그리고 근본과 지말은 인연 따라 일체의 존재를 발생시킨다. 그리고 각각의 역할과 활동, 공능은 필요한 만큼 활용되는 것이기에 본질적 가치란 차원에서 평등한 것이다. 

천태는 이것을 다시 공가중 삼제의 시각에서 해석을 한다. 즉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기는 것이기에 공이며, 본말이 모두 공이기에 공의 입장에서 일체는 궁극적으로 평등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자면 십여시 각각이 얽히고 섥혀서 다양한 모습과 과보를 만들어 내므로 그것은 가의 입장에서 평등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본질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인연 따라 생긴 것이기에 고정적인 실체를 지니고 있지 않으며, 일체 모든 것이 상호보완적인 관계 속에서 불성에 포섭되기 때문에 중도의 입장에서 평등하다고 말한다. 공가중 삼제란 본질적 차원, 현상적 차원, 중도적 차원의 시각을 말한다. 

천태사상의 핵심이 된 십여시이지만 범어 원본 《법화경》에는 십여시의 내용이 없다. 십여시 대신 오하법이 있을 뿐이다. 세친의 《법화론》에 의하면 오하법이란 하등법(何等法), 운하법(云何法), 하사법(何似法), 하상법(何相法), 하체법(何體法)이 그것이다. 하등법이란 처음에 일승을 설하지 않고 삼승을 설한 것을 지칭한다. 운하법이란 하나하나의 수레에서 다양한 일을 대비하여 설하는 것이다. 

하사법이란 삼승을 수행했는데도 수행이 청정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완벽하지 않고 비슷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하상법이란 삼승은 오직 일승을 밝히기 위한 전단계임을 밝히는 것이다. 하체법이란 궁극적으론 일승뿐이며, 이승의 체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오체법을 살펴보았지만 그 내용은 십여시와 너무 차이가 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묘법연화경》을 번역한 구마라지와는 어떤 근거로 십여시를 경전의 문구로 삽입하게 되었을까? 이 점에 대해 학자들은 용수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대지도론》에서 그 실마리를 찾고 있다. 즉 《대지도론》에는 모든 존재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속성으로 아홉 가지 법이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흔히 9종법이라 지칭한다. 내용은 십여시와 상통하는 내용인 체, 역, 인, 연, 과, 성 등이 있으며, 기타 법, 한애, 개통 등이 있다. 그런데 다른 용어 중에서 법(法)은 작용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십여시의 작과 상통하며, 개통(開通)은 본말구경과 상통한다. 그리고 한애(限礙)는 존재하는 것들은 각각 서로 상대방을 제한하고 부정하면서 존재하는 현실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십여시의 상과 상통한다. 

그렇게 본다면 십여시 중에서 보에 해당하는 것만이 없는데 구마라지와는 《묘법연화경》을 번역하면서 9종법에 나오는 과(果)를 직접적인 결과와 간접적인 결과로 세분하여 보를 첨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중국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열이란 숫자로 채운 것이다. 

열이란 중국인들에게 만수(滿數)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토착화를 위해서도 필요한 전략이라 말할 수 있다. 결국 오하법의 내용이 너무 추상적이고 어렵다는 점에서 《대지도론》의 9종법을 응용하여 십여시로 의역한 것이 천태사상을 구축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금강신문 ggbn@gg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