那羅、摩[少/兔]闍、摩那婆、士夫、福伽羅、耆婆、禪頭」
agama:雜阿含經卷第十三 agama:雜阿含經卷第十三#(三〇六) (2018年08月03日 18:30:42)
這些名詞皆為「人」的別稱,其中「那羅」又譯為「士」,「摩[少/兔]闍」即「人類」,「摩那婆」又譯為「摩納」、「儒童」,即年輕人,「福伽羅」又譯為「補特伽羅」、「眾生」,「耆婆」指生命,「禪頭」指人或有情。

《雜阿含經》卷13:「
(三〇六)如是我聞: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時,有異比丘獨一靜處,專精思惟,作是念:「比丘云何知、云何見而得見法?」作是思惟已,從禪起,往詣佛所,稽首禮足,退坐一面,白佛言:「世尊!我獨一靜處,專精思惟,作是念:『比丘云何知、云何見而得見法?』」爾時,世尊告彼比丘:「諦聽,善思,當為汝說。有二法。何等為二?眼、色為二……」如是廣說,乃至「非其境界故。所以者何?眼、色緣生眼識,三事和合觸,觸俱生受、想、思,此四無色陰、眼、色,此等法名為人,於斯等法作人想、眾生、那羅、摩㝹闍、摩那婆、士夫、福伽羅、耆婆、禪頭。「又如是說:『我眼見色,我耳聞聲,我鼻嗅香,我舌甞味,我身覺觸,我意識法。』彼施設又如是言說:『是尊者如是名、如是生、如是姓、如是食、如是受苦樂、如是長壽、如是久住、如是壽分齊。』比丘!是則為想,是則為誌,是則言說,此諸法皆悉無常、有為、思願緣生;若無常、有為、思願緣生者,彼則是苦。又復彼苦生,亦苦住,亦苦滅,亦苦數數出生,一切皆苦。若復彼苦無餘斷、吐、盡、離欲、滅、息、沒,餘苦更不相續,不出生,是則寂滅,是則勝妙。所謂捨一切有餘、一切愛盡、無欲、滅盡、涅槃。耳、鼻、舌,身觸緣,生身識,三事和合觸,觸俱生受、想、思,此四是無色陰,身根是色陰,此名為人……」如上說,乃至「滅盡,涅槃。緣意,法生意識、三事和合觸,觸俱生受,想、思,此四無色陰、四大,士夫所依,此等法名為人……」如上廣說,乃至「滅盡、涅槃。若有於此諸法,心隨入,住解脫不退轉,於彼所起繫著,無有我。比丘!如是知、如是見,則為見法。」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三〇七)如是我聞: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時,有異比丘獨一靜處,專精思惟,作是念:「云何知、云何見,名為見法?」思惟已,從禪起,往詣佛所,稽首禮足,退坐一面,白佛言:「世尊!我獨一靜處,專精思惟,作是念:『比丘云何知、云何見,名為見法?』今問世尊,唯願解說。」佛告比丘:「諦聽,善思,當為汝說。有二法,眼、色,緣生眼識……」如上廣說。「尊者!如所說偈:「眼色二種緣, 生於心心法,
識觸及俱生, 受想等有因,
非我非我所, 亦非福伽羅,
亦非摩㝹闍, 亦非摩那婆,
是則為生滅, 苦陰變易法,
於斯等作想, 施設於眾生。
那羅摩㝹闍, 及與摩那婆,
亦餘眾多想, 皆因苦陰生。
諸業愛無明, 因積他世陰,
餘沙門異道, 異說二法者。
彼但有言說, 聞已增癡惑,
貪愛息無餘, 無明沒永滅。
愛盡眾苦息, 無上佛眼說。」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CBETA 2019.Q4, T02, no. 99, pp. 87c18-88b14)
잡아함경 306. 인경(人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어떤 비구가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골똘히 정밀하게 사유(思惟)하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비구가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법을 볼 수 있을까?'
이렇게 사유한 뒤에 선정에서 일어나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골똘히 정밀하게 사유하다가 '비구가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법을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 보아라.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두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그 두 가지인가? 눈[眼]과 빛깔[色], 이것이 그 두 가지이다. ……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위에서 설한 것과 같다) ……(내지)…… 그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안식(眼識)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이 접촉[觸]이며, 접촉과 함께 하여 느낌[受]·생각[想]·의도[思]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무색음(無色陰)과 눈과 빛깔 등, 이러한 법을 사람[人]이라고 하며, 이러한 법에 대해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어 중생(衆生)·나라(那羅)·마누사(摩?)·마나바(摩那婆)·사기(士其)1)·복가라(福伽羅)·기바(耆婆)·선두(禪頭)2)라고 하느니라.
또 이와 같이 말한다.
'나는 눈으로 빛깔을 보고, 나는 귀로 소리를 들으며, 나는 코로 냄새를 맡고, 나는 혀로 맛을 보며, 나는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나는 뜻으로 법을 분별한다.'
그는 시설(施設)하고 나서 또 이와 같이 말한다.
'이 존자는 이름은 이러하고 이렇게 태어났으며, 성(姓)은 이러하고 이렇게 먹으며, 이렇게 괴로움과 즐거움을 겪고 이렇게 오래 살며, 이렇게 오래 머무르고 이렇게 목숨을 마쳤다.'
비구들아, 이것을 곧 생각이라고 하고, 이것을 곧 마음의 기록이라고 하며, 이것을 곧 말이라고 한다. 이 모든 법은 무상(無常)한 것이고, 함이 있으며, 생각과 원(願)을 인연하여 생긴 것이라고 한다. 만일 무상한 것이고 함이 있으며 생각과 원을 인연하여 생긴 것이라면 그것은 곧 괴로움이다. 또 그 괴로움은 생겨나고 또 괴로움은 머무르며, 또 괴로움은 소멸하고 또 괴로움은 자꾸 생겨서 일체가 다 괴로움뿐이다. 만일 다시 그 괴로움을 남김 없이 끊고 토해 버리며, 탐욕을 여의고 쉬며 사라지게 한다면, 다른 괴로움이 다시는 서로 잇따르지 않고 생겨나지 않나니, 이것이 곧 적멸(寂滅)이요 이것이 곧 승묘(勝妙)이니라. 이를 일러 남아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일체의 애욕이 다하며 탐욕이 없고 완전히 소멸한 열반(涅槃)이라고 하느니라.
귀·코·혀도 마찬가지이며, 몸[身]과 감촉[觸]을 인연하여 신식(身識)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이 접촉[觸]이며 접촉과 함께 어울려 느낌[受]·생각[想]·의도[思]가 생긴다. 이 네 가지는 곧 무색음(無色陰)이요, 몸은 곧 색음(色陰)이니, 이것을 사람[人]이라고 한다,……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위에서 설한 것과 같다) ……(내지)…… 완전히 소멸한 열반이니라.
뜻[意]과 법(法)을 인연하여 의식(意識)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이 접촉이며, 접촉과 함께 어울려 느낌·생각·의도가 생긴다. 이 네 가지 무색음과 4대(大)는 사부(士夫)가 의지하는 바로써 이러한 법을 사람[人]이라고 한다. ……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위에서 설한 것과 같다) ……(내지)…… 완전히 소멸한 열반이니라. 만일 이 모든 법에 대해서 마음이 따라 들어갔어도 해탈에 머물러 물러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일으키는 얽매임과 집착에 있어서 나라고 하는 것이 없게 되느니라.
비구들아,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면 곧 법을 보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