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泉老人評唱投子青和尚頌古空谷集》卷2:「
第二十則
雲巖南泉示眾云。斜街暗巷。生客頭迷。金鎻玄關。衲僧眼?。莫有腦後著楔知痛痒者麼。舉道吾與雲巖到南泉處(道曠無涯。逢人不墨)。泉問闍黎名甚麼(適來記得而今忘却)。吾云宗智(多虗不如少實)。泉云。智不到處。作麼生宗(尊鑑不錯)。吾云切忌道著(佯小心。故大膽)。泉云酌然道著則頭角生(明眼人前一場漏逗)。異日師與雲巖後架把針(作務勞神)。南泉過見再問。智頭陁前日道智不到處切忌道著。道著則頭角生。合作麼生行履(放蕩不耕空劫地。暮天何用牧歌催)。師乃抽身入僧堂(伶俐衲僧一撥便轉)。」(CBETA 2019.Q2, X67, no. 1303, p. 279c4-13 // R117, pp. 554b13-555a04 // Z 2:22, pp. 277d13-278a04)
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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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음] kuàng (kuàng)[난이도] 읽기 1급 , 쓰기 특급 , 인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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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풀이관련 단어 17관련 고사성어 8
디지털 한자사전 e-한자
1. 비다
2. 비우다
3. 공허하다(空虛--)
4. 황폐하다(荒弊--), 황량하다(荒凉--)
5. 허비하다, 헛되이 지내다
6. (거리가)멀다
7. 넓다, 탁 트이다
8. 너그럽다, 관대하다(寬大--)
9. 밝다
10. 오래다, 오래 되다
11. 홀아비
광일미구
[ 曠日彌久 ]
曠 : 빌 광
日 : 날 일
彌 : 더할 미
久 : 오랠 구
《전국책(戰國策)》〈조책편(趙策篇)〉편에, 전국시대 말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 때의 일이다. 연(燕)나라의 공격을 받은 혜문왕은 제(齊)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제수(濟水) 동쪽에 위치한 3개 성읍(城邑)을 할양한다는 조건으로 명장 전단(田單)의 파견을 요청하였다.
전단은 일찍이 연나라의 침략군을 화우지계(火牛之計)로 격파하여 연나라에 빼앗겼던 70여 성을 회복한 명장인데 조나라의 요청에 따라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러자 혜문왕의 조치에 크게 반발한 조나라의 장수 조사(趙奢)는 재상 조승(趙勝)에게 항의하고 나섰다.
"제나라와 연나라는 원수지간이긴 합니다만 전단은 타국인 조나라를 위해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조나라가 더욱 강해지면 제나라의 패업(覇業)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단은 조나라 군사를 장악한 채 오랫동안 쓸데없이 헛되이 세월만 보낼 것입니다. 두 나라가 병력을 소모하여 피폐해지는 것을 기다릴 것입니다."
조승은 조사의 의견을 묵살한 채 미리 정한 방침대로 전단에게 조나라 군사를 맡겨 연나라 침공군과 대적케 했다. 결과는 조사가 예언한 대로 두 나라는 장기전에서 병력만 소모하고 말았다.
이와 같이 전단이 전략적으로 지연작전을 펴서 소모전을 안겨주었던 고사에서 '광일미구'라는 성어가 나왔으며 같은 뜻으로 '광일지구(曠日持久)', 줄여서 '광구(曠久)'라고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광일미구 [曠日彌久] (두산백과)
【悟頓오돈】 明代僧 未詳法嗣 開封(今屬河南)陳氏 居少林匾囤 後到峨嵋結茅以居 一日至夔州江中曰 道曠無涯 逢人不盡 登岸端坐而化 [五燈嚴統十六 繼燈錄六]
[출처] 泰華禪學大辭典 中編 52|작성자 태화당
선문답... 제20칙 운암남전(雲巖南泉)
도오가 운암과 함께 남전이 계시는 곳을 방문하였다. 남전이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도오가 말했다. “종지(宗智)입니다.” 남전이 물었다. “지혜[智]로도 이를 수 없는데 어째 종(宗)이라 했는가.” 도오가 말했다. “그렇게 지레짐작으로 짚어서 말하지 마십시오.” 남전이 말했다. “짐작으로 말했다면 내 머리에 뿔이 솟아날 것이다.” 3일 후에 도오가 운암과 함께 후원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남전이 지나가다 그 모습을 보고 또 물었다. “종지두타여, 어제 내가 ‘지혜[智]로도 이를 수 없는데 어째 종(宗)이라 했는가.’ 하고 물었을 때 그대는 ‘그렇게 지레짐작으로 짚어서 말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짐작으로 말했다면 내 머리에 뿔이 솟을 것이다.’라는 말에 걸맞는 행동은 무엇인가.” 그러자 도오는 후원을 나와 승당으로 들어가버렸다. 擧道吾與雲巖到南泉處 泉問 ?黎名甚? 吾云 宗智 泉云 智不到處作?生宗 吾云 切忌道著 泉云 酌然道著則頭角生 異日師與雲巖後架把針 南泉過見再問 智頭?前日道智不到處切忌道著 道著則頭角生 合作?生行履 師乃抽身入僧堂 도오종지(道吾宗智, 道吾圓智 : 769-835)는 강서성 예장(預章)의 해혼(海昏) 출신으로 속성은 장(張)씨이다. 열반화상(涅槃和尙, 百丈法正, 惟政)에게 출가하고 후에 약산으로 가서 약산유엄(藥山惟儼 : 751-834)의 법을 이었다. 열반화상은 백장회해의 제자로서 백장산의 제2세이다. 선사이면서도 늘상 열반경을 독송하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제방을 역참하고 호남성 장사부(長沙府) 도오산(道吾山)에 주석하면서 선풍을 거양하였다. 시호는 수일대사(修一大師)이다. 운암담성(雲岩曇晟 : 782-841)은 강서성 종릉(鐘陵)의 건창(建昌) 출신으로 속성은 왕(王)씨이다. 석문(石門)에 출가하고 백장회해(百丈懷海 : 749-814)에게 20년 동안 참문하였으나 백장의 배려로 약산유엄(藥山惟儼 : 751-834)의 법을 이었다. 호남성 담주(潭州)의 운암산(雲巖山)에 주석하며 선풍을 진작하였다. 시호는 무주대사(無住大師)이다. 남전보원(南泉普願 : 748-834)은 하남성 정주(鄭州) 신정(新鄭) 출신으로 속성은 왕(王)씨이다. 율과 경학을 공부한 후에 마조도일을 참문하여 그 법을 이었다. 48세부터 안휘성 지양(池陽)의 남전산에 주석하여 선원을 구축하고 소를 키우며 나무를 하고 밭을 개간하면서 섭법을 고취하였다. 스스로 왕노사(王老師)라 칭하면서 30년 동안 산을 내려오지 않았다. 지양의 태수를 지냈던 육긍(陸亘) 대부(大夫)가 스승으로 예우하였다. 마조도일의 제자로서 백장회해와 서당지장과 더불어 마조의 삼대사(三大士)로 알려진 인물이다. 남전의 질문에 대하여 도오종지는 곧바로 승당으로 들어가버렸다. 말하자면 그 자리를 피한 이유를 몸소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언설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진여실제의 도리를 그대로 노출시킨 것이다. 이처럼 단적으로 행동을 취한 사람은 만에 하나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자 남전도 그 행동을 인가라도 하듯이 곧바로 방장실로 돌아가버렸다. 마치 이심전심했던 백아와 종자기를 보는 듯 하다. 그러나 곁에 있던 운암만 혼자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처럼 어리벙벙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잠시후에 도오가 승당에서 나와 다시 후원으로 오더니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바느질을 계속하였다. 그러자 남전이 물었다. ‘아까전에는 왜 남전화상의 물음에 대꾸하지 않고 승당으로 들어가버렸습니까.’ 도오가 말했다. ‘그런 정도는 그대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운암이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 대신 남전에게 찾아가 물었다. ‘아까전의 상황에서 도오종지 사형이 어째서 스님의 물음에 대꾸하지 않은 겁니까.’ 남전이 말했다. ‘그것은 이류중행(異類中行)이었기 때문이다.’ ‘이류중행이 무엇입니까.’ ‘내가 도오에게 지혜[智]로도 이를 수 없는데 어째 종(宗)이라 했는가 하고 물었더니 도오가 그렇게 지레짐작으로 짚어서 말하지 말라고 답변을 했을 때 내가 다시 짐작으로 말했다면 내 머리에 뿔이 솟아날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그것이 곧 모름지기 이류중행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라네.’ 운암은 그 의미도 또한 이해하지 못했다. 남전은 운암이 이해하지 못한 줄을 알고서 이에 말했다. ‘그대의 인연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 그리고는 약산으로 돌려보냈다. 약산은 두 사람이 다시 돌아온 것을 보고 이에 운암에게 물었다. ‘그대는 도대체 어디를 다녀온 것인가.’ 운암이 말했다. ‘남전스님에게 다녀왔습니다.’ 약산이 물었다. ‘그래, 남전의 가르침은 무엇이던가.’ 그러자 운암은 그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그러자 약산이 말했다. ‘그대는 그곳에서의 시절인연을 어떤 것으로 알아차렸길래 다시 돌아왔는가.’ 운암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약산이 껄껄껄 웃어버렸다. 이에 갑자기 운암이 물었다. ‘그런데 이류중행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약산이 말했다. ‘내가 오늘은 피곤하니 다음 날 다시 찾아오너라.’ 운암이 말했다. ‘제가 여기에 돌아온 것은 바로 그 이유를 알고잡아서 특별히 찾아온 겁니다.’ 약산이 말했다. ‘귀찮게 하지말고 어서 나가보거라.’ 운암이 방장실 밖으로 나왔다. 그때 방장실 밖에서 운암과 약산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도오는 운암이 아직 깨치지 못한 줄을 알고서 엉겁결에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가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운암에게 말했다. ‘사제는 다시 가서 약산스님이 그렇게 말한 이유를 물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운암이 말했다. ‘약산방장께서 나한테는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을 걸세.’ 그리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도오가 운암과 함께 약산을 시봉하고 있는 어느 날이었다. 약산이 두 사람을 상대로 말했다. ‘지혜[智]로도 이를 수 없으므로 지레짐작으로 짚어서 말해서는 안된다. 만약 짐작으로 말한다면 내 머리에 뿔이 솟아날 것이다.’ 그러자 도오는 곧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운암이 약산방장에게 물었다. ‘도오사형은 어째서 스님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나가버린 겁니까.’ 약산이 말했다. ‘내가 오늘은 등이 좀 아프구나. 도오가 알고 있으니 그한테 가서 물어보거라.’ 운암이 도오를 찾아가서 물었다. ‘사형은 아까전에 어째서 약산스님의 말씀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나와버렸습니까.’ 도오가 말했다. ‘내가 오늘은 머리가 아프니 약산스님이게 가서 물어보게나.’ 훗날 운암이 입적에 이르러 사람을 보내 편지로 도오에게 하직인사를 하였다. 도오가 편지를 읽고나서 후회하듯이 말했다. ‘운암은 아직까지도 그 도리를 모르고 있었구나. 차라리 그때 운암에게 내가 그 이유를 말해줄 것을 그랬구나. 그래도 약산의 뒤를 잇기에는 아무런 손색이 없구나.’ 이 공안은 평생동안 문제의식을 놓지 않은 운암의 지고지순한 구도의 행각을 다루고 있다. 운암의 이와 같은 주도면밀(周到綿密)하고 용의주도(用意周到)하며 행지면밀(行持綿密)한 자세는 이후에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 조동종(曹洞宗)의 면밀한 선풍으로 되살아났다. 운암이 고심한 것은 진여의 실제는 지혜로도 이를 수 없으므로 지레짐작으로 짚어서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체험을 중시하는 가풍의 모습이었다. 그러므로 지레짐작으로 말한다면 참으로 머리에 뿔이 솟아날 것이라는 것이다. 머리에 뿔이 솟아나는 것은 지혜가 없이 살다가 죽으면 짐승으로 환생한다는 것을 말한다. 짐승으로 환생하는 것은 중생의 윤회를 말한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도리어 중생을 깨우쳐주기 위하여 변역생사(變易生死)의 길을 선택한 보살행의 의미이다. 이와 같은 중생구제의 보살행을 이류중행(異類中行)이라 한다. 사람의 부류가 아닌 짐승이라는 다른 부류로 뒤섞여 보살행을 한다는 의미이다. 운암은 일생을 구도의 생활로 일관했으면서 그것도 부족하여 다른 생에 다시 보살행을 계속하리라는 서원을 세운 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로도 이르기 어려운 깨침의 실천을 자신의 삶에서 구현한 운암의 경계였다. <동국대 선학과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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