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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과 사회주의

VIS VITALIS 2019. 3. 4. 10:05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낸시고요 국제 사회주의자 조직에서 일해요. 먼저 여기 있는 많은 많은 많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이 당신의 일에 정말 깊이 감사드리고요. 우리가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 위해 노력 할 때 마주치는 쓰레기들을 걷어내는데 너무나 중요한 도움을 주시고 계세요. 하지만 제 생각엔... 이제 



-하지만이 나오네요 


-하지만 제가 본 당신의 작품 속에 있는 분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제 생각엔 오늘처럼 우리가 나무들 때문에 숲을 잃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너무나 많은 엄청난 디테일들을 보여주셔서 이 시스템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그리고 미디어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서요. 그래서 우리가 정말로 중요한 질문을 잃는다고 보는데요. 왜 이 통제가 처음부터 필요한가라는 질문이죠. 그리고 적어도 제 생각에는 그건.... 1분 30초 남았어요 맹세해요. 그건 적대적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들이 17세기에 아무 이유 없이 우유 짜는 여자, 방적공 그리고 노동자에 대해 얘기 한게 아니에요. 그건 그들이 노동 계층이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 나라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건 솔직하게 말해서 지배 계층이 노동 계층을 컨트롤 하려고 하는 거에요. 그리고 이게 그들이 권력에 집착하는 이유죠. 만약 그렇다면, 제가 보기에 우리가 당면한 질문은 이 시스템을 바꾸고 자본주의에 도전하기 위해 어떻게 조직(organize)하는 가라고 봐요.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오늘 청중들과 당신의 일을 존경하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쳤다고 봐요. 오늘 밤 당신이 레닌과 스탈리니즘을 그렇게 즐겁게 동격으로 놓았을 때요. 이걸 말하고 싶었고요 또한 그건 의심없이 받아들여지는 가정이자 쉽게 박수를 얻기 위한 거라는걸 지적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주류 미디어와 견해를 공유하며 말이죠 그리고 만약 그게 그렇게 간단했다면, 심지어 부르주아 역사가들조차 스탈린 하에서 일어난 걸 반혁명이라고 부르는 끔찍한 기준들이 필요하지 않았겠네요 만약 그들이 애초부터 다 똑같았다면요 그러니까 짧게 말해서 요약하자면 당신이 오늘 밤 윤곽을 그려주신 상황은 정말로 심각한거라고 생각하고요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건 말 그대로 전 세계에 있는 몇 만명의 운명에 대한 거에요. 특히 당신이 말하신 것처럼 국제 정치에서요. 그렇다면 제가 생각하기엔 우리는 다양하고 다른 대안에 대한 전체적이고 진지하고 공평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봐요.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그걸 어떻게 바꾸고 끝내는지에 대한 것도요.



-제가 보기에 몇 가지 질문을 던지신 거 같은데요. 하나는 미국에 대한 거였죠 제가 볼 땐 제 말은 대략 당신이 말한 것과 같아요. 제가 그런 레토릭을 쓰지 않았다는 것만 빼면요. 사실 제가 보기에 그런 레토릭은 특별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분석적으로나 이해하기 위해서나 뭐든 말이에요. 하지만 같은 그림이에요. 존 제이가 바로 말했죠. 나라를 소유하는 사람들이 통치해야 한다고요. 그리고 나라를 소유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회사, 대기업, 은행 등의 네트워크로 이뤄져 있고 그들이 통치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그걸 하는 방법은 우리가 말한대로에요. 소련과 관련해서는, 제가 그냥 말을 한 게 아니라, 이 주제에 관해 글을 써왔어요. 그냥 그런 비난을 한 게 아니에요. 거기에 대해 글을 써왔고 왜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했어요. 그리고 제가 주류언론들과 동의하게 되었다고 해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아요. 당신이 기억 할 사람인 트로츠키는 한 때, 1930년대에 소련을 비난함에 있어 파시스트와 동의한다고 해서 비판을 받았죠. 그리고 그는 그의 비판이 사실이라고 지적하면서 그는 다른 사람이 다른 이유로 똑같은 비판을 한다고 해서 그걸 버리지 않겠다고 했죠. 결국 질문은 소련에 관한 건데요 특히 레닌이요. 그러면 레닌주의가 뭐였나요? 여기서 우리는 팩트를 봐야해요. 팩트를 보신다면 이걸 발견하게 되시리라 봐요. 레닌은 사회주의 운동의 우파 편향이었고 그렇게 간주되었죠. 그는 막시스트들 주류 막시스트들에 의해서 그렇게 간주되었어요. 우리는 주류 막시스트들이 누군지 잊었죠 그들이 졌으니까요. 그리고 오직 이긴 자만 기억하죠. 하지만 그 시기로 돌아가보면... 주류 막시스트는 예를 들면 안톤 페나코같은 사람이었어요 막시스트 운동의 교육부장이었죠 그는 나중에 레닌에게 유아적 좌파라고 비난 당한 사람들 중 한명이죠. 하지만 그는 진짜 막시스트 운동을 이끄는 지식인 중 한 명 이었어요. 로자 룩셈부르크도 또 다른 주류 막시스트였고 다른 사람들도 있죠 그리고 그들은... 사실 트로츠키도 그랬어요 1917년까지는요. 그들은 모두 레닌주의에 매우 비판적이었어요 왜냐하면 기회주의적 뱅가디즘이라는 것 때문에요. 급진적 지식층이 대중 운동을 이용해 국가 권력을 잡고 그 후에 그 국가 권력을 이용해 대중을 그들이 선택한 사회로 몰아 넣는다는 생각이죠. 그건 주류 그러니까 저는 좌파적 막시스트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이해했던 막시즘과 꽤나 다른 거였죠. 이런 견해에서 보면 볼셰비즘은 우파적 탈선이에요. 트로츠키는 1917년까지 같은 지적을 했어요. 1917년 4월에 레닌이 러시아로 돌아왔을 때, 그는 다른 노선을 취했어요. 과거와는 꽤나 다른 노선이었죠. 레닌의 작품을 보시면, 1917년 4월에 그 성격이 변했어요. 1917년 4월에 뭔가 자유주의적으로 됐어요. 그게 그가 4월 테제를 들고 나왔을 때에요. 그 때가 그가 국가와 혁명이라는 걸 썼을 때에요. 일년 후에 출간되었지만 그 때 씌여졌죠. 그리고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적 작품이에요. 그것들은 훨씬 더 자유사회주의 주류 쪽에 가까웠어요. 아나키즘부터 페나코 룩셈부르크류의 좌파적 막시즘의 범위에서 본다면요. 그는 소비에트와 노동자 조직 등의 필요성에 대해 얘기했죠. 그리고 사실 항상 사회주의의 정수라고 이해되는 것에 훨씬 다가섰죠. 결국 사회주의의 핵심은 노동자들이 생산을 통제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으니까요. 그게 핵심이었어요. 거기서 시작해야하죠. 그리고 나서 다른걸 하는거에요. 하지만 시작은 노동자의 생산수단 통제에요. 거기서 시작하는거죠. 그러고 나서 레닌은 권력을 잡았죠. 1917년 10월에요 혁명이라고 불리지만 제 생각엔 쿠데타라고 불려야 된다고 봐요 그 다음에 그 쿠데타 혹은 그 혁명 후에 일들이 일어났죠 그 후에 일어났던 일들 중 하나는 소비에트와 공장 의회를 파괴하기 위한 즉각적인 움직임 이었어요. 그게 레닌과 트로츠키가...그때 즈음에 트로츠키가 합류했죠 그들이 국가 권력을 잡은 후에 처음 한 일 중 하나에요 사실 그 이후에 레닌이 쓴거나 한 걸 보시면, 전에 취하던 입장과는 반대된다는 것을 알게 되실 꺼에요. 좌파적 편향에서요. 왜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죠. 제 생각엔 그냥 기회주의적이었던 거 같아요. 레닌은 권력을 얻기 위해서 그 당시 일어나고 있던 대중적 흐름과 같이 가야 한다는 걸 알았죠. 자연 발생적이고 자유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이었죠. 17세기 이후 대부분의 대중운동이 그렇듯이요. 영악한 정치인이었던 그는 그 흐름에 편승했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했죠. 그건 마치 미국 정치인이 어디가서 여론 조사 요원이 그에게 말해준대로 말하는 것과 같은거에요. 그렇다고 그걸 믿는다는 걸 의미하진 않죠. 그리고 제 생각에 레닌은 그 여론조사요원 없이 같은 걸 하고 있었던 거에요. 어떤 사건에서 당신의 해석이 어찌 됐든, 그가 권력을 잡았을 때 그 전의 뱅가디즘으로 되돌아갔고 노동자 통제의 기관들을 제거하는 쪽으로 움직였어요. 그건 그가 사회주의를 파괴하기로 움직였다는 걸 의미하죠. 만약 사회주의가 그 핵심에 노동자의 생산수단 통제를 의미한다면요. 소비에트들과 공장 회의는 노동자 통제의 기관이었어요. 그리고 당신은 그건 결함이 있는 기관이었고 더 잘해야 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네요 맞아요 당연하죠 하지만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노동자의 통제를 위해서 대중들이 투쟁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기관들이에요. 그런데 그것들이 먼저 없어져야 했죠. 1918년 초에, 이 때는 아직까지 진짜 내전이 시작되기 전인데요. 레닌의 견해가 꽤나 분명하게 표출되었어요. 그와 트로츠키가 그런 입장을 취했는데요. 그 견해는 트로츠키가 부르길 '노동자 군대'가 필요하다는 거였어요 단 한명의 리더의 통제에 순종적인 군대요. 그가 말하길 현대적 진전 그리고 개발 그리고 사회주의에서는 대중이 교육받은 노동자들 중 한 명의 리더에게 복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그건 사회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거에요. 사실, 정반대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비판 받았죠. 어떤 연대 정신 때문에요 혁명군이 여전히 작동한다는...(?) 그는 로자 룩셈부르크, 페나코, 고터 그리고 다른 주류, 좌파 막시스트 계열로부터 비판 받았죠. 그리고 제 생각에 그들이 맞았다고 봐요. 제가 보기에도... 그리고 거기서 계속 나아가는데요 제 말은, 레닌은 짜르의 억압 시스템을 다시 세웠어요 종종 더 효율적으로요. 체카(cheka), KGB와 다른 통제와 억압의 기술들을 통해서요. 그리고 이 시점 이후로부터 소련에는 사회주의 같은 건 없었다고 봐요. 그리고 사실 제가 보기엔 그건 후에 나올 전체주의적 형태의 전조였다고 봐요. 그게 제 생각에 일어났던 일 같고요. 그리고 당신이 팩트를 보신다면 그걸 발견하시리라고 봐요. 그럼 이게 왜 사회주의라고 불릴까요? 조금 복잡한데요. 한번 봐보죠. 소련이 그걸 사회주의라고 부르고요. 그들이 국제 사회주의 운동의 대부분에서 통제권을 획득한 후에 그랬죠. 왜냐하면 주로 사회주의와 비슷한 걸 만들어 냈다는 명망 때문에요 우연히, 여담이지만, 레닌은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에서 정통적 막시스트로 남았어요. 그리고 정통적 막시스트로서 그는 소련이 사회주의를 하는 건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죠. 죽기 전까지, 죽기 직전까지 그가 글을 쓰고 있었을 때, 그러니까 명료하게 말하고 있었을 때, 그는 소련 혁명이 잠시 멈춰두는 행동(holding action)이라는 견해를 고수했어요. 독일 같은 곳에서 진짜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그냥 멈춰두는 거였어요. 왜냐하면 막시스트 독트린에 따르면 혁명은 현대 산업 자본주의의 가장 발전된 섹터에서 일어날 거였으니까요. 막스가 얘기한 이유들 때문에요 혁명은 그런 곳에서 일어나야 했죠 당연히 그게 소련은 아니었죠. 그래서 거기서 사회주의는 있을 수 없었죠. 그냥 뭔가 붙잡아 두는 행동이었어요. 그리고 추측컨대 그게 사회주의적 기관들을 없애는 데 정당화를 했을 거라고 봐요. 그게 진짜 정당화라고 보진 않지만 아마도 내부적 정당화였겠죠. 그리고 다시 그런 부분에서 그는 주류 막시스트 전통과 뜻을 같이하죠. 그 후에 이 모든 게 사회주의라는 견해가 나오죠. 그러면 공산당은 왜 이 견해를 취해야 했을까요? 제 생각에 그 이유는 꽤나 실재적이던 사회주의의 도덕적 힘을 이용하길 원했다고 봐요. 오늘날에는 꽤나 기억하기 힘들지만 그 당시에 그건 꽤나 실제적이었어요. 그건 꽤나 진보적인 도덕적 힘으로서 간주되었고 그들의 사회주의 파괴를 노동계층과 다른 진보적 섹터에서 얻고자 했던 사회주의의 오로라와 연계시켰어요.. 그리고 서양에서도 그걸 사회주의로 봤죠. 하지만 정반대의 이유로 그랬어요 그들은 사회주의를 러시아의 잔학성과 연계시키길 원했어요. 사회주의를 약화시키기 위해서요 그래서 우리가 보는 건 세계의 두 주요 프로퍼간다가 기관이 그들만의 다른 이유로 이게 사회주의라고 주장하고 있었던 거죠. 이 사회주의의 파괴를 사회주의라고 한 거죠. 그리고 세계의 두 주요 프로파간다 기관이 같은 말을 할 때 거기서 빠져 나오긴 굉장히 어렵죠. 다른 이유로 같은 말을 했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말을 한거에요. 그리고 그건 독트린과 도그마가 됐죠. 제 생각에 사람들은 그게 사실인가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레닌이 취했고 트로츠키가 그가 그렇게 하도록 지지한 행동을 돌아보며 그리고 그 둘 모두가 옹호한 행동이 과연 사회주의와 관련이 있느냐는 거죠. 막시스트 전통에서 이해되는 아니면 좌파 자유주의 전통에서 이해 되듯이요. 그리고 제 생각에 당신이 발견하실 답은 그들이 그렇지 않았다는 거에요. 사실 그건 사회주의 기관들의 파괴였죠. 이건 사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죠. 하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제 생각엔 증거들이 꽤나 강력하게 그걸 말하고 있는 거 같은데요. 그러면 저는 이런 사실을 표현해서는 안 될 이유가 없다고 봐요. 그리고 만약 다른 사람들이, 파시스트든 뭐든 소련을 비난한다고 해서 우리가 이 사실을 표현하는데 있어 방해 받아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트로츠키가 1930년대에 같은 이유로 말했듯이요. 



다시 숲보단 나무로 돌아가서, 책 펄핑 이야기의 두 번째 파트를 들을 수 있을까요? 뭐라고요? 책 펄핑 이야기의 파트 투요. 질문이 나오면 대답해주신다고 했던.. 좀 더 이야기 할게 있다고 하셨던... 아 그 펄핑 사건의 이후 말인가요? 그거 말씀하신 거에요? 그건 좀 더 미묘하고 복잡한데요. 그게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은 이유기도 하죠. 하지만 이게 정말로 일어났던 일이에요. 우리는 그 후에 그 책을 다시 쓰고 갱신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했고 그 책은 당시 존재하던 South End 출판사에서 나왔죠. 작고 급진적 출판사였어요 두 명의 젊은 사람이 운영했죠 그리고 인권의 정치경제라는 2권짜리 책이 1979년에 출판되었죠. South End 출판사는 그걸 펄프하지 않을 거였고 그래서 그 책은 존재해요. 심지어 사실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책을 더 이상 펄프 할 수 없으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두 가지로 반응하죠. 주요한 방법은 무시하는 거에요. 책에 많은 내용들이 있어요. 보시면 아실꺼에요. 예를 들어 미국 외교 정책과 미디어에 관한 내용이었죠. 기본적으로 그런 내용이었죠 그리고 두 가지 주제에 대한 광범위한 사례 연구들 등등이 있었죠. 대부분 무시당했죠 예상하실수 있듯이요. 하지만 완전히 무시된 건 아니었어요. 한가지 예외가 있었어요. 그리고 매우 흥미로운 예외죠. 배경을 설명해 드릴께요. 이건 시스템이 어떻게 좀 더 미묘하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해주죠 거기서 한 것 중 하나는, 프로퍼간다 모델을 테스트 해보기 위해서, 그 때는 프로퍼간다 모델이라고 안 불렀어요 같은 거였지만요. 테스트하기 위해서 한 쌍의 역사적 사건을 비교했어요. 마치 제가 표현의 자유 문제처럼 하듯이요. 제 말은, 역사는 정확하게 컨트롤 된 실험을 만들어 주진 않아요. 하지만 미디어가 사건들을 어떻게 다루는 지를 보기 위해 충분히 비슷한 사건들이 꽤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그런 사례들을 찾았죠. 특히 학살을 찾아봤어요. 그리고 그 학살을 3가지 범주로 나눴어요. 저희가 부르길, 건설적 피바다(학살) : 즉 미국 권력과 기업 계층에 좋은거죠. 그래서 건설적이에요. 점잖은 피바다 : 미국이 아마도 그리 신경 쓰지 않는거죠. 상관 없는거죠. 그리고 범죄적 피바다 : 공식적 적들이 저지르는 거에요. 그래서 저희는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점잖고 건설적이고 범죄적인 피바다들이 찾아봤죠 그리고 저희는 꽤나 많은 예를 제시했어요. 저희의 예상은 미디어가 건설적 학살은 반기고 점잖은 학살은 무시하고 범죄적 학살에 대해선 엄청나게 분노할 거라고 봤어요. 그리고 사실 범죄적 학살의 경우엔 모든 종류의 판타지 등등을 만들어 낼 거라고 봤죠. 그 적들을 더 나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요. 그게 저희 예측이었고 많은 사례들을 제시했고 저희는 그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아니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 모델로부터 나온 또 다른 예상이 있어요. 저희 만들진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내포되어 있는 거죠. 그건 이 폭로에 어떻게 반응 할 지에 관한 거에요. 생각해보시면 저희의 건설적 학살에 대한 이야기는 무시 될 거에요. 왜냐하면 미디어가 큰 학살을 반긴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은 권력과 미디어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건 범죄적 학살에 대한 명백한 분노가 사기라는 것을 밝혀주겠죠. 그래서 건설적 학살은 무시된다고 예상할 수 있죠. 점잖은 학살에 관해서는, 때때로의 성명을 예상 할 수 있겠죠. 미디어가 점잖은 학살을 무시했다는 사실은 적어도 그것에 대해 박수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줄테니까요. 그리고 그것에 관여되었다는 미국의 역할을 배제시키는 한, 아마도 몇몇 코멘트쯤은 있겠죠. 범죄적 학살에 관해서는 적들이 저지른 학살에 대한 날조가 사기라고 밝혀진 것에 대한 분노와 독기를 예상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그건 중요해요. 그건 이용 될 수가 있죠. 사실 그건 비판자들을 헐뜯는데 이용 될 수 있어요. 공식적 적에 대한 거짓말을 보여주면 그건 쉽게 그 범죄를 옹호하는 걸로 왜곡 될 수 있죠. 맞죠? 좋아요 그렇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매우 비슷한 두 사례를 보죠. 저희가 다뤘던 두 가지 사례는 1975년부터 79년까지 티모르에서 일어난 학살과 같은 년도에 일어난 캄보디아에서의 학살이에요. 75년에서 79년이죠. 저희는 그 두 사례를 비교했어요 티모르의 경우에 저희는 그걸 점잖은 학살이라고 불렀어요. 미국이 그리 신경 쓰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수 백 수 천명의 티모르인들이 죽어도 별로 흥미롭지 않은 거였죠 캄보디아의 경우는 물론 범죄적 학살이 . 나쁜 놈들이 하고 있는 거였죠. 그래서 저희는 모을수 있는 증거를 토대로 이 두 사건에 관해 매우 자세한 설명을 했어요. 그것들은 같은 지역이었고 같은 년도 같은 시간대였죠. 모을수 있는 증거의 규모도 비슷하고 학살의 규모도 비교 할 수 있었죠. 티모르에서의 학살은 인구대비 훨씬 더 많았죠. 하지만 규모에서 비교 될 수 있었어요. 차이점은 캄보디아에서의 학살은 적인 폴 폿에 의해 자행 된 반면에 티모르에서의 학살은 친구인 인도네시아가 저지른 거였죠. 더욱이 미국 무기를 가진 인도네시아가 자행한 일이었죠. 카터 행정부가 제공했고 학살이 증가하면서 카터 행정부에 의한 무기 흐름도 증가했어요. 미디어가 이걸 어떻게 다뤘을까요? 저희는 이걸 세세하게 검토해봤어요. 미디어는 티모르 학살을 숨겼어요.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1974년과 75년에는 티모르에 관한 상당한 보도가 있었어요. 모두 포르투갈 제국의 해체와 관련한 문맥에서 이뤄졌죠. 인도네시아가 티모르를 공격하면서 학살은 시작되었죠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서요 그리고 보도는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학살이 1978년에 절정에 달했을 때, 그 땐 정말 집단학살수준(genocide)에 다다렀죠 미국의 지원도 증가했고 보도도 0으로 떨어졌어요. 말 그대로 0이요. 이게 미디어가 티모르 학살을 다룬 방식이에요. 캄보디아 학살은 어떨까요? 크메르 루즈가 권력을 잡은 지 몇 주도 안되어, 그들은 이미 인종학살을 저질렀다고 뉴욕 타임즈가 보도했죠. 일 년 후에, 자기인종학살(autogenocide)로 비판을 받았고 2백만 명을 죽였다고 했어요, 심지어 2백만의 사람들 죽인 것을 자랑했다고 했죠. 그게 관습적 문장이 되었죠. 그러고 나서 엄청나게 격렬한 반응이 뒤따랐죠. 리더스 다이제스트부터 티비 가이드 그리고 뉴욕 북리뷰에 이르기까지요. 그 사이에 있는 거의 모든 것들도 포함해서요 이 공산주의 몬스터들이 저지르는 경악스런 학살에 엄청난 반응과 분노가 있었죠 흥미롭게도, 거기엔 엄청난 양의 날조가 있었어요. 그냥 명백한 증거의 날조요. 예를 들어, 한 가지 예를 보여 드릴께요. 이 2백만 명이라는 거요. 2백만명이라고 자랑했다는 거요 사람들한테 폴 폿이 1977년까지 몇 명의 사람을 죽였냐고 물어보면 2백만 명이라고 대답해요. 그 수치는 여기서 나온 거에요. 프랑스 사제가 출간한 책이 있었어요. 퐁수아 퐁쇼가 그의 이름이죠. 그는 캄보디아 출신이고 그 당시 그는 거기 없었어요. 하지만 캄보디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죠. 그가 프랑스어로 책을 출간했어요. 그 책은 물론 영어로는 없었죠. 프랑스어였어요. 프랑스 저널리스트인 장 라코투어가 그 책을 서평했어요. 프랑스에서요 그 서평은 즉시 뽑혀서 미국에 번역되었어요.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나타났죠. 그건 지금까지 있었던 프랑스 책 서평 중 가장 빠른 번역이었죠. 그 논평에서 라코투어는 이렇게 말했어요. 퐁쇼에 따르면, 크메르 루즈 정권은 2백만명의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을 자랑했다, 자기인종학살이다 끔찍하다 등등. 그는 그 책에서 크메르 루즈 정권이 말한 경악스러운 것 등등의 많은 인용구를 따왔어요. 나머지 미디어들은 즉시 그걸 주웠고, 그건 모든 곳에 나타났죠 신문 기사등에요 오 마이 갓, 쟤네들이 하는 걸 봐라 등등 하면서요. 그 당시 저는 궁금했어요. 왜냐하면 그에 대한 증거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요. 전 그냥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었어요. 그 책을 구할 수 없어서 프랑스에 있는 제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그 책을 보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렇게 그 책을 받았고 아마 제가 미국에서 그 책을 읽은 유일한 사람일 거에요. 비록 그게 그 리뷰를 토대로 모든 곳에서 인용되고 있었지만요. 그리고 전 그 모든 서평이 완전한 사기라는 걸 곧 알아챌 수 있었죠. 캄보디아에서 뭐가 벌어지고 있건 그건 책이 말하고 있던 게 아니었어요. 그 책은 2백만 명의 자랑에 대한건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죠. 그 서평에 있던 인용구들은 책에 나오지 않았거나 그런 워딩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약간 추측 할 수는 있었는데요 비록 엄청나게 왜곡되기는 했지만요. 그것들 중 몇몇은 심지어 크메르 루즈로부터의 인용이 아니었어요 태국 등등으로부터의 인용구였죠. 하지만 사실 그 서평에 있던 모든 사실적 진술이 그냥 완전한 거짓이었어요. 2백만 명이라는 수치는 이렇게 나왔어요. 그 책에서 퐁쇼는 80만명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죽었다고 했어요. 70-75년 사이에요. 주로 미국 폭격과 미국 전쟁을 치룬 70-75년 걸 의미하죠. 그게 80만 명이에요. 그러고 나서 말하기를 방콕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따르면 120만명이 전쟁 이후에 죽었어요. 죽임을 당한게 아니라요. 전쟁이 끝났고 라코투어는 그 서평에서 그냥 그 두 수치를 더해서 그걸 크메르 루즈 살인이라고 불렀고 좋은 효과를 위해 뽐냈다는 걸 덧붙였죠. 그렇게 그 수치가 나왔죠. 어쨌든, 그 책을 읽은 후에, 전 라코투어에게 편지를 썼어요. 지인이었죠. 그리고 말했어요. 봐라 캄보디아에 대한 사실은 내가 모르지만 그 서평과 그 책의 관계는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내 생각에 너의 서평이 모든 곳에 인용되고 있기 때문에 너는 그걸 바로 잡아야 한다라고요. 그가 뉴욕 리뷰에 수정을 내보냈어요. 그가 맞다 몇 가지 실수를 했다 그리고 아마 그 죽은 숫자는 200만명이 아닐 것이다. 아마 몇 천명일 것이다라고 했어요. 작은 차이네요. 천 단위의 차이네요. 하지만 그가 말하길 사실 그렇게 문제 되지 않는다. 끔직한건 매한가지니까라고 했죠. 그의 수정판이 나타난 후에, 그건 묵살 당했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가 발명한 2백만이라는 수치를 썼어요. 반 정도는 미국과의 전쟁 때문이었네요 이게 한 예에요. 이건 그냥 전형적인 예죠. 이것에 대한 저희의 챕터를 읽어보시면 날조의 수준은 믿기 힘든 수준이에요. 그냥 믿기 힘들 정도죠. 그건 사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죠. 당연히 학살이 있었어요. 사실 저희가 지적했듯이 그 학살은 엄청난 학살이었던 티모르에서의 학살과 비슷한 수준이었죠. 저희는 또한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 중에 미국 언론들이 조직적으로 숨기는 한 부분이 있었어요, 흥미롭게도요. 그 부분은 미 국무부로부터 나온 정보였죠. 미 국무부의 캄보디아 감시단들은, 그러니까 미 국무부의 정보국이요. 그 사람들이 캄보디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어떠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리고 그들은 꽤나 좋은 정보국이죠. 그들은 라디오 송신과 같은 모든 것들을 잡아 낼 수 있다고 주장했으니까요. 그리고 그들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했죠. 그들이 말하길 거기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큰 학살이다 하지만 그건 수 백에서 수 십만이었다. 대량 인종학살은 아니었다. 뭔가 대부분 가혹한 상태였고 잔학행위 등등이 있었다라고 했어요. 그게 뭔가를 알고 있던 유일한 사람들의 입장이었어요. 그리고 그 정보는 조직적으로 배제되었죠. 그건 그냥 잘못된 그림이에요. 그러니까 그건 충분히 잔학하지 않았죠. 저희가 이 모든 걸 검토해봤는데요. 티모르 학살의 축소와 캄보디아 학살에 대한 엄청난 양의 거짓말. 그리고 저희는 이 한 쌍의 학살이 어떻게 다뤘졌는지에 대한 예를 보여주었어요. 이게 그 책 중 무시되지 않았던 부분이었어요 저희가 건설적 학살에 대해 말한 건 완전히 무시되었죠. 티모르에 대해 말한 것도 거의 완전히 무시되었어요. 언급 되어도 미국의 역할은 배제되었죠. 하지만 캄보디아에 대해 말한 건 저희가 폴 폿을 옹호하고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광분을 끌어냈어요. 저희는 폴 폿을 옹호하게 되었어요 미국이 뒤를 봐주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학살과 필적할 만한 학살을 벌이고 있다고 말함으로써요 그리고 사실 그게 미국 정보국이 준 그림이라는 것을 지적했기 때문이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는 유일한 사람들이죠. 그리고 나서 프로퍼간다 시스템의 이해관계 속에서 이게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말함으로써요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죠. 여기서 저희는 국가를 위해 거짓말 할 권리에 도전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건 유지시켜야 할 굉장히 중요한 권리죠. 그래서 표준적 견해는, 모든 곳에서 읽으실 수 있는데요, 저희가 혹은 주로 제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폴 폿을 방어하고 있다는 거에요. 폴 폿의 옹호자가 된 거죠. 되돌아 보시면, 저희는 그걸 엄청난 학살이라고 묘사했고, 많은 것이 불확실하다고 했고 그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죠 그리고 그걸 미디어 조작과 비교했어요. 그런 걸 하면 안되죠. 미디어 조작을 폭로하면 안되게 되어 있죠. 그게 토의되었던 이유는...그러니까 그 책 중 한 부분이, 티모르가 얘기 되었던 적은 거의 전무하죠, 그 한 부분이 얘기 된 이유는 비판자들을 헐뜯고 약화시키기 위한 거짓말로 사용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렇게 되었죠. 이런 식으로 프로퍼간다 시스템이 좀 더 미묘하게 작동하죠 사실 이런 것 중 몇몇은 정말 재미있다고 말해야겠네요. 이걸 읽어 보신 분은 아실 텐데요. 윌리엄 쇼크로스(William Shawcross)가 자비의 질(Quality of Mercy)라는 책을 썼어요. 그 책은 언론에서 굉장히 좋게 서평되었고 모두가 좋아했죠. 그 책에서 그는 폴 폿의 학살에 침묵이 있었다고 주장했어요. 그리고 나서 질문을 던졌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느냐고요. 그건 홀로코스트와 현대의 양심(Holocaust and Modern Conscience)라고 불리는데요 첫째로, 폴 폿의 잔학행위에 침묵이 있었나요? 아니죠 엄청난 광분이 있었어요. 2주 후에 시작되었어요... 집단학살(genocide)를 저지른다고 비난받을 당시 아마 그 때까지 최대 몇 천명을 죽였을 거에요. 일 년안에, 제가 말했듯이, 티비 가이드부터 리더스 다이제스트, 뉴욕 리뷰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나타났죠. 그렇게 계속 되었어요. 엄청난 항의와 엄청난 날조가 있었죠. 하지만 침묵이 있었다고 말하는 건 굉장히 유용했어요. 왜 유용했냐고요? 왜냐하면 만약 침묵이 있었다고 주장하면, 그 다음에 왜 서양이 그런 학살에 침묵했는가라는 심오한 질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건 이제부터 우리는 공식적 적의 범죄를 노출시키는 데 더 분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죠. 이번에 침묵한 사실을 극복하기 위해서요. 그 즉시 쇼크로우는 모든 곳에 인용되었죠 모든 신문에서 오 마이 갓 우리가 침묵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등등을 말해댔죠. 그러고 나서 쇼크로스는 그 침묵을 설명하죠. 그의 책을 한 번 보세요, 그가 침묵을 설명해요. 처음에는 워싱턴 포스트에서 그리고 나서 그의 책에서요. 그가 말하길 침묵의 이유는 주요 이유는 좌파 주로 저의 회의 때문이라고요. 다시 말해서, 제 회의가 모든 서양 미디어와 정부를 침묵시켰다는 거에요. 엄청난 힘이네요. 더욱이 그 회의가 뭔지 기억하세요. 그건 문서화된 거짓말에 대한 회의에요. 더욱이 그는 그러고나서 주석에 주장하던 코멘트를 인용하죠. 그는 날짜를 기입하거나 소스를 밝히지 않았어요. 2가지 이유가 있죠. 하나는 인용이 조작이기 때문이죠. 다른 하나는 그 소스가 폴 폿의 추락 이후에 언론으로 들어갔어요, 폴 폿의 추락 후 일 년뒤에 나왔죠. 그래서 그가 주장하는 건, 그 책은 폴 폿이 쫓겨난 후에 언론으로 갔고 그건 거의 일 년 후에 나타났어요. 그 책에서 저희는 모든 서양의 미디어와 정부를 과거로 거슬로 올라가 4년 동안 침묵시켰내요 그건 저희가 모든 서양을 침묵시킬 정도로 힘이 있을 뿐만 아니라 거의 마술처럼 한거네요. 그게 인용되었어요. 그건 엄청난 경외와 함께 모든 곳에 인용되었죠. 요점은 만약 그게 유용하다면 어디서든 인용 될거라는 거에요. 그리고 여기선 몇 가지 목적 때문에 유용했죠. 하나는 국가를 위해 거짓말 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죠. 둘째로, 대답할 수 없는 비판자들을 약화시키고 헐뜯기 위해서죠. 그리고 세 번째로 우리가 그 잔학행위에 대해 조용할만큼 열심히 보지 않았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죠. 서양이 침묵했던 잔학행위가 있었어요. 그건 저희가 문서화했죠. 티모르요. 그리고 서양이 그걸하고 있었기에 침묵했어요. 그래서 침묵했죠. 그게 홀로코스트와 현대의 양심의 진짜 질문이에요. 하지만 아무도 그걸 얘기하지 않죠. 이것들이 사상통제의 좀 더 미묘한 방법들의 예들이에요. 좀 더 미묘하고 복잡하죠. 그게 제가 말한 그 후의 이야기에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죠. 그걸 동의 생산에서 다시 검토했어요. 누가 다음이죠? 까먹었네요 잠시만요 질문 한 두개만 더 받을까요? 그럼 한 번 더 돌죠 좋아요 여긴 번역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리즈 칠젠이고요 Wisconsin Coordinating Council on Nicaragua(니카라과에 관한 위스콘신 조정위원회(?))의 감독이에요. 제 생각에 여기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 위스콘신과 니카라과가 25년 동안 자매국가였다는 걸 알 거에요. 그리고 저희 카운슬은 원래 상직적이던 관계를 평화를 위한 중요한 도구로 탈바꿈시켰어요. 그리고 저희는 금방 책을 출간했는데요. 잠깐 얘기할게요. Friends In Deed: The Story of U.S.-Nicaragua Sister Cities라고 불리는 책이고 100여 개의 미국-니카라과 자매 도시들이 혁명 이후에 만들어졌죠. 제 질문은 이 운동과 관련이 있고 여기에 대해 당신의 통찰을 듣고 싶은데요. 제가 생각하기에 최근에 그 전쟁에 대한 대중적 반대는 주요 뉴스 미디어에서 빠져왔다고 봐요. 제 생각에 이슈가 아닌 걸로 치부되고 있고 이런 종류의 미디어 효과는 사회 변화를 위한 운동을 해체시키는 듯한 효과를 주는데요. 그리고 제 생각에 자매 도시는 우리가 제도화할 수 있는 한 방법이라고 보는데요. 네, 맞는 말씀을 하시는 거 같네요. 니카라과에 대한 모든 보도는 매우 현저하게 줄어들었어요. 그리고 제 생각에, 역시나, 명령에 따라 하는 거 같아요. 뉴욕 타임즈는 사실 그 지부장 스티븐 킨저를 잘랐어요. 그리고 보도를 보시면, 매우 빠르게 줄어들었죠. 제 생각에 그건 미국 정책과 관련 있다고 봐요. 레이건 시기 이후에 정책의 변화가 있었어요. 여기서 잠시 뒤로 돌아봐야 하는데요. 1980년대 까지요. 베트남에 관해서처럼, 니카라과에 관한 토론이 있었어요. 그 토론은 어떻게 니카라과의 숨을 조이고 파괴할껀가 였어요 강경파들은 테러와 폭력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했고요. 온건파들은 요새 더 착하고 신사적인 방법이라고 불리는 것들로 하자고 했죠 경제적 압박이나 낮은 수준의 테러를 이용해서 말이죠. 그리고 국경에 군대를 배치해 그들이 군대를 제대시키지 못하게 해서 파괴 복구 인력을 낮추는 등으로 말이죠. 그게 다른 방법이에요. 그리고 1986년에 여론 조사에서 리더라고 확인된 사람들 중 80퍼센트는... 그건 기본적으로 엘리트들을 의미하죠, 매니저, 경영진, 정치 인사 같은 사람들이죠. 그들 중 약 80퍼센트가 콘트라에 반대했어요. 그들은 레이건 행정부가 추구하던 테러 옵션을 그냥 멍청한 거라고 생각했죠. 많은 이유로 멍청하다고 봤어요. 하나는 그게 국내에서 저항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명백한 폭력은 아이들을 죽이고 여성을 강간하고 사람들의 머리를 참수하는 등등을 싫어하는 대중들의 반항을 불러 일으키죠. 이런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은 이런 것들에 매우 화가 났죠. 그래서 테리리스트 군대에게 무방비의 타겟을 공격하도록 지시하면 국내에 혼란이 생기죠 미국 테러리스트들이 하던 때에는 소프트 타겟으로 불렸죠. 공개적으로요, 사실 그건 비밀이 아니었죠. 그리고 그건 너무 많은 항의를 불러왔고 그래서 멍청한 거였죠. 또한 그건 미국을 국제적으로 나쁘게 보이게 하죠. 제 말은 미국은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을 명백하게 위반하고 있고 그건 국제관계에서 좋아 보이지 않게 만드는 등등을 하죠. 그리고 마자막으로, 그건 뭐랄까 소용이 없어요. 제 말은, 작은 나라의 목을 죄고 파괴하는데 훨씬 더 많은 나은 방법들이 있어요. 모든 명백한 역사적 이유로 생존을 위해서 미국과의 관계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던 나라죠 그냥 더 똑똑하고 조용한 방법들로 하면 되었어요. 그게 이미 1986년에 엘리트들 사이에서 주요하고 지배적인 입장이었어요. 레이건 행정부가 미국 의견 중에 스펙트럼 밖에 있진 않아요. 하지만 그건 끝 쪽에 있죠. 스펙트럼에서 맨 끝의 입장이에요. 극단적이에요. 제 말은 레이건 주위의 사람들은 폭력 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에요. 제 말은, 그건 마치 고문 그 자체를 좋아하는 거에요.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한 도구라기보다는요. 그건 뭔가 역효과를 낳죠. 이성적인 사람들은 그러지 않아요 필요할 때 고문을 쓰죠 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에요 고문이나 고통을 가하거나 테러 등등 그 자체를 함으로써 얻는 건 없어요. 그리고 그들의 결론은 이성적 결론이죠. 그냥 도움이 되지 않다는 거에요. 나쁘죠 저항을 불러 일으키는 등을 하고요 그리고 더 이성적인 것은 부시 행정부가 지금 하려고 하는 거 같아요. 그 정책은, 제가 보기에는, 경제적 압박을 유지하는 거에요 우연히 역시나 불법적인 것이지만요. 제 말은, 우리는 국제사법재판소가 콘트라 공격을 비난 한 것에 대해 얘기해야 해요. 또한 경제적 전쟁도 불법적이라고 규탄했죠. 조약의 불법적 위반이죠. 다시 한 번, 이건 전혀 보도 되지 않았지만 그건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이었죠. 조약의 위반인 그 엠바고는 불법이었죠. 그것 역시 범죄적 행위에요. 그리고 국제사법재판소는 그걸 끝낼 것을 요구했죠. 하지만 요점은 아무도 그거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을 거라는 걸 추측할 수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계속해서 압박을 계속 할 수 있고 콘트라들을 계속해서.... 미국이 니카라과 내에 용병 군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엄청난 양의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건 흥미롭죠. 꽤나 놀랄만한 사실이에요. 역사상 콘트라가 받았던 지원의 일부라도 받은 게릴라 운동은 없었어요. 그냥 상상 할 수 없는 일이죠. 제 말은, 그들은 하루에 수송기 3대의 지원을 받았어요. 그들의 무장 수준은... 그들은 산다니스타 군대보다 더 잘 무장했어요. 미국 군대의 유닛보다 더 잘 무장했죠 사실. 이건 정말 사실이에요. 그들은 미국 정찰기로부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고도화된 통신 장비를 가지고 있었어요. 사실 그 나라는 항상 첨단 비행기의 감시 하에 있었죠. 그건 산다니스타 군대 위치에 대한 정보를 줬고 그래서 무방비 타겟을 마음대로 공격할 수 있었고 국무부의 명령에 따라 테러를 감행했죠. 이건 우연히 비밀이 아니에요. 이런 종류의 지원 수준은... 그냥 이런 걸 꿈꿀 수 있는 게릴라 군은 역사상 없었어요.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유지 될 수 없었어요. 지원이 감소하자 마자 they all broke for the border(국경으로 갔다?) 한 번 보시면 엘살바도르와의 대조는 정말 판타스틱해요. 엘살바도르에는 토착 게릴라 군이 있었어요. 외부로부터의 지원은 없었죠. 그들은 무기를 살바도르 군으로부터나 국제적으로 샀어요. 그래서 M-16같은 미국 무기를 사용했죠. 여담이지만, 지금 처음으로 엘살바도르의 게릴라는 니카라과에게 도움을 받고 있어요. 그래서 엘리엇 아브람스가 마침내 행복하게 되었죠. 거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콘트라가 국경을 지나가면서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해서요 그들은 무기를 부패한 온두라스 군 관료들에게 팔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걸 다시 살바도르 게릴라에게 팔았죠. 그래서 처음으로, 살바도르 게릴라는 소련군 무기, AK-47 등등을 가지고 나타났죠. 그리고 그 이유는 그게 CIA가 콘트라에게 공급한 무기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들이 원래 쓰던 살바도르 군대에서 받은 미국 무기 M-16 대신, 지금 소련제 무기를 가지고 있어요. CIA가 콘트라에게, 콘트라가 온두라스에게, 그리고 온두라스가 살바도르 게릴라들에게 판 거죠. 그래서 마침내 그들이 내내 주장하듯이 니카라과에서부터 엘살바도르로의 지원이 있게 되었죠 우연히 이건... 또 다른 여담이지만, 죄송해요. 하지만 이 정보는 매우 좋은 소스로부터 와요. 사실 너무 좋아서 언론이 완전히 검열했죠. 이 정보는 콘트라 정보국의 수장으로부터 나와요. 온두라스에서 달아나서 멕시코로 간 뒤 거기서 언론들에서 많이 인터뷰되었죠. 그의 이름은 호레시오 아체에요. 대부분의 콘트라처럼 그는 가명이 있었어요. 그의 가명은 용병이었어요. 가명 가지고 장난치지 않죠. 그는 콘트라 정보국장이었어요. 그는 1985년에 정보국장이 된 사람이에요. 골치거리가 되기 시작했던 리카도 라우라는 사람을 대신해서 되었죠. 왜냐하면 라우가 중앙아메리카 도처에서 테러 활동에 관여하고 있다는 게 꽤나 분명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아마 대주교 로메로의 살인을 포함해서요. 그는 나중에 거기에 관련되어 있던 살바도르 정보국장에 의해 확인되었죠. 나중에 달아났고요. 거기에 관련되 있었죠 그는 골치거리가 되었고 없어졌어요. 아마도 죽임을 당했겠죠. 그래서 새로운 정보국장이 필요했고 그가 들어온 거에요. 그는 1985년 이후로 쭉 정보국장이었어요. 지난 11월에 떠났죠. 그게 아직까진 가장 중요한 배반자(defector)에요. 엄청난 매스컴의 관심을 받은 온갖 종류의 날조된 이야기를 가지고 니카라과로부터 온 다른 배반자들보다 훨씬 중요하죠. 이 사람은 무시되었어요. 그는 완전히 다른 얘기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는 어떻게 조언, 감독 받았는지에 대해 말했어요. 예를 들어 그는 어떻게 불법적으로 플로리다엔가 있는 엘진 공군 기지에서 훈련 받았는지 말했어요. 당연히 불법적으로 들어왔고 미국에서 그린 베레와 82공수여단 등에게 훈련 받았죠. 그는 온두라스에 있는 미국 대사관 사람들의 이름을 말할 수 있었어요. 원조 공무원이란 직책으로 있었지만 사실은 CIA와 일하고 있었어요 콘트라에게 전술적 조언과 지원을 하고 있었죠. 그는 그들의 이름을 언급했어요. 그는 어떻게 온두라스 군대가 니카라과에서의 콘트라 군의 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지 말했어요. 정보와 참여 등등으로서요. 그는 어떻게 그들의 임무가 무방비 타겟을 공격하는 것인지에 대해 말했어요. 니카라과가 사회 개혁을 하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였죠 그런 얘기를 했고 그리고 다른 많은 쓸모 없는 것들도요. 그리고 또한 제가 방금 말한 것도 말했어요 어떻게 지금 국경을 뚫고 있는 콘트라가 살바도르 게릴라에게 그들의 무기를 팔고 있는지에 대해도 말했죠 이 모든 게 뉴스에요 사실 매우 중요한 뉴스죠. 매우 좋은 소스로부터요. 사실 너무 중요해서 미국 언론에 한 글자도 실리지 않았죠. 보고 체크하고 보셔도 되요. 옆길로 잠시 샛내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살바도르 게릴라들은 외부에서 받는 지원이 없었어요. 그들은 그 나라의 토착민들이었어요. 그들은 적어도 서류상으론 그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와 맞서고 있었어요. 서류상으론 니카라과의 군대보다 훨씬 더 강력하죠. 그리고 그들은 뭔가 제거 불가해요. 대조적으로, 뇌물 받은 니카라과, 온두라스인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용병들이 있는 콘트라는... 온두라스 소작농들은 그들 기준에선 큰 뇌물을 받았어요. 약 5천달러요. 그건 2년간 수입이죠.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요. 엄청난 지원이죠. 엄청나게 높은 수준의 군 장비 등등이요. 그들은 그 나라에 유지 시킬 수 없었어요. 제 말은, 그런 수준의 지원으로는 미국에서도 게릴라 군이 있을 수 있을 거에요. 농담이 아니에요. 제 생각엔 콘트라가 받는 지원이면 아마도 켄터키 산턱에 게릴라 군을 운용할 수 있을 거에요. 이 모든 것에 교훈이 있어요. 이 비교에서 배울 수 있는 명백한 교훈이 있어요. 너무 선명해서 언론에서 아무도 도출해내지 않을 거에요. 왜냐하면 잘못된 교훈이니까요. 아실 수 있으시겠네요. 그래서 저도 도출하지 않을께요. 좋아요, 다시 부시 행정부 계획으로 돌아가보면, 제가 추측하기엔 니카라과 안에 적은 테러 군을 유지시킨 것 같아요. 그들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상상하긴 힘들어요. 그래서 그들은 아마... 그게 제가 엘살바도르부터 들어오는 불법적인 콘트라 비행기들에 대한 보도가 맞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에요. 소스가 과거에 정확했다는 걸 이외로 하고도요. 추측컨데, 부시 행정부는 니카라과 안에 용병과 테러리스트들에게 낮은 수준의 지원을 유지할 거에요. 그들은 그 수준이 아주 낮아서 협조적인 언론들이 그동안 그래 왔듯이 조용할 거라고 가정할 거예요. 그건 중요하죠. 왜냐하면 그건 니카라과가 군인들을 제대시킬 수 없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그리고 계속 제대시키지 않는 건 중요해요. 왜냐면 군대를 주둔시키면 사회는 억압적이 되니까요. 미국이 세계 2차대전 동안 사실상 전체주의적이었던 것처럼요. 그리고 만약 그들이 억압적이게 되면 그걸 프로파간다로 사용할 수 있어요. 그래서 니먼 펠로우들이 억압에 대해 야단치는 등등을 볼 수 있죠. 그래서 그렇게 하길 원하고 그들을 억압적이게 만들길 원하고 그들 군대가 주둔되어 있는 걸 원하죠. 그들의 극도로 제한된 자원이 그 엄청난 손상을 복구시키는데 들어가길 원치 않는거죠 미국이 하려고 할 두번째는, 만약 국회와 언론이 따라준다면 그들은 온두라스 국경에 콘트라 군을 유지시킬 거에요. 그게 이 말도 안되는 인도적 지원에 대한거죠 국경에 군을 유지시키고 싶어 하겠죠 제가 지적했듯이 모든 걸 위반하면서요. 그리고 그 이유는 다시 위협을 유지시키고 싶은 거에요. 군사적 위협을 유지시키는 한 그 정부가 군대를 제대시키지 않은 거라는 걸 알죠. 그래서 그건 중요해요. 왜냐하면 그들이 고통 받길 원하니까요. 하지만 물론 테러보다는 낮은 수준이죠. 여기서 당신의 포인트로 돌아가는데요... 또한 경제적 전쟁을 계속하고 국제 대출 기관에 압력을 넣고 동맹국들을 겁줘 지원을 못하게 하는 등을 하겠죠. 우연히도 허리케인이 이 모든 걸 도와줬죠. 그 허리케인은 끔찍한 한 방이었죠. 10억 달러치의 피해를 입혔죠. 물론 미국은 단돈 한 푼도 주지 않았죠. 사실 그걸 좋아했어요 고소해 했죠. 캐나다와 서유럽 같은 미국 동맹국들은 아주 적은 돈을 줬어요 사실상 거의 주지 않은거죠 어느 정도는 빅 브라더가 두려워서 그리고 일정 부분은 그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식민지화 되어서 그래요. 그들은 모두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생각한다는 등등을 믿고 싶어하죠. 유럽 지식인 대부분은 미국 언론으로부터 오는 모든 헛소리들을 다 믿어요. 문화적 식민화는 매우 높아요. 그들이 알고 있진 못하지만요. 그래서 그들 모두 산다니스타 억압에 대해 매우 화가 나있죠. 비록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에서의 억압은 천 배나 더 심하지만 신경 쓰지 않죠. 그래서 그들에게 계속 지원을 하고 있죠. 그게 있네요. 이런 조합의 작전은 니카라과가 회복하는 것을 막을 거라고 예상되죠. 그리고 결국 그게 포인트에요. 포인트는... 토마스 보르헤가 정확히 말했죠 작동하는 사회의 건설을 막는 거에요, 그들이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할 거니까요. 그리고 곧 그 지역에서의 미국 지배는 약화될 거예요. 게다가, 그런 종류의 병은 다른 곳으로 퍼질 수 있죠, 비슷한 문제를 가진 곳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요. 그리고 그들의 자원을 그들을 위해 쓰는 등을 하면 큰 문제가 생기는 거에요. 그래서 작동하는 걸 막아야 해요. 그리고 미국은 확실하게 그렇게 할 수단을 가지고 있죠. 레이건주의자들이 고통과 테러 그 자체를 위해 그걸 가하는 불합리성를 제외하고라도요. 그게 좀 더 착하고 부드러운 방법이겠네요. 그리고 그것 중 한 부분은 보도를 줄이는 거에요. 미디어의 역할 중 하나죠. 그걸 그만 보도하죠 그러면 사람들은 잊어버리고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는 등 하죠. 그 효과는 당신이 조용한 국내 반대자가 될 거라는 거에요. 그런 걸 더 이상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대중을 무관심과 순종하게 하는 거에요. 그래서 제 생각엔 당신 포인트가 정확하다고 봐요. 이 시스템에서 미디어의 역할은 정확히,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입을 다무는 거에요. 그리고 저는 보도가 줄어들 거라고 예상해요. 제 말은 산다니스타 억압에 대해선 보도를 찾아 보실 수 있을 거에요. 만약 허리케인 때문에 엄청난 굶주림이 발생하면, 그건 보도 될 거에요. 그리고 그건 산다니스타의 무능력이나 지배실패 같은 것의 탓이 될 거에요. 그런 종류의 것은 보도 될 거죠 아니면 이게 보도 될 거에요. 그 다음 큰 움직임은, 이미 보도 되었는데요. 그건 콘트라가 니카라과 안에 독립적 방송사를 세워달라고 천만달러를 요구할 거에요. 만약 니카라과가 소위 독립적 방송국을 허용한다면, 그건 미국에게 우리의 방송을 가지라고 말하는 거에요. 작은 나라가 방송으로 미국과 경쟁할 수 있는 나라는 세상에 없어요. 그건 그냥 불가능해요. 만약 니카라과가 대부분의 나라들이 하는 것을 계속 한다면, 그리고 국영방송을 세운다면, 그리면 당연히 그들은 전체주의적이라고 비난 받을 거에요. 우리는 이스라엘을 전체주의적이라고 비난하지 않죠. 왜냐하면 오직 국영방송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건 보통의 이분법이에요. 그래서 지금 우리는 니카라과에 미국이 운영하는 방송사를 요구하고 있는 거에요. 천만달러의 초기자금으로요. 니카라과 기준에서... 어떻게 얘기를 해야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미친거죠. 미국은 이미 그 나라의 대부분에서 미디어를 지배하고 있어요 미디어의 대부분을요.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건 온두라스와 코스타리카 그리고 심지어 티비에 있는 강력한 무선 송신기로부터 나오는 미국 라디오에요. 만약 미국이 마나구아에 방송사를 세울 수 있다면, 미국이 거기에 쏟아 부울 수 있는 모든 자원으로요. 그건 니카라과의 프로퍼간다 단체가 되는거죠 그래서 그게 다음에 일어날 일이고 미디어는 그것에 대해 굉장히 흥분할 거에요. 그리고 그건 자유도 테스트가 될 거에요. 미국이 운영하는 통신 시스템을 허용한다면 자유로운거고 그렇지 않으면 전체주의적이 되겠죠. 그게 다음에 나올 말이죠. 그런 종류의 보도가 있을 것이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선 보도가 없겠죠. 그런 건 줄어들어야 하죠. 미국인들의 활동을 줄이기 위해서요. 그리고 사람들은 다시 제가 말했듯이 수동적이고 순종적으로 변하겠죠. 그래서 제 생각에 당신 포인트는 꽤나 정확하다고 봐요. 그리고 요점은 미국 국민이 그들이 그렇게 하는 걸 허용하는 가에요. 그게 장치이고 우린 그게 작동하도록 내버려 둘 필요는 없죠. 잠시만요, 좀 더 엄격해져야겠네요 이 질문만 하면 안될까요? 네 괜찮아요 헌데 이 극장 시간 제약이 있어서요 죄송해요 그래서 마지막 분은 안될꺼 같네요 죄송해요 너무 오래 얘기했네요 브라보에요 촘스키 교수님, 매우 용감하세요. 이건 UN에 관한 거에요. 저는 뉴욕 타임즈나 ABC, NBC 등으로부터 정보를 얻지 않아요. 제가 정보를 원할 때 저는 UN의 특성화된 기관으로 가요. 그리고 거기서 세계 인구가 50억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를 때, UN은 그 정보를 가지고 있었어요. 대기 중 방사능에 대한 정보 등과 같은 엄청난 양의 정보를 가지고 있어요. 그들은 보스턴과 뉴욕 같이 사람이 많은 지역에서 팔리는 유제품에 들어있는 세슘에 대한 2년 간의 정보를 가지고 있었어요. UN은 이 정보를 가지고 있었죠. 시민 그룹은 계속해서 미디어들에게 이 정보를 가져오라고 요구했어요. 나타나지 않았죠. 하지만 UN에서는 그 정보를 얻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제안서를 써냈고 그건 유엔 총회에 나타났죠. 왜냐하면 저희는 부모로서 음식과 물과 공기에 대한 필수적 정보를 얻을 권리가 있다고 느꼈거든요. 그리고 UN은 그 정보가 있었지만 그냥 거기에만 머물렀죠. 그래서 우리는 쌍방 지구적 정보 서비스를 요구하는 제안을 냈어요. 우리는 그걸 유엔 총회에 매우 잘 보여 주었어요. 87년에 군비축소와 개발과의 관계에 대한 국제 컨퍼런스에서요. 그건 매우 중요한 컨퍼런스였고 많은 지지를 받았죠. 일년 후에, 그 제안을 다시 할 거에요. 이번엔 스웨덴 정부, 호주 정부 그리고 코스타리카의 지지를 얻어냈죠. 그 제안의 거친 거친 반대가 있었어요. 2명의 대사는 짤린다는 얘기까지 들었어요 만약 그들이 지구적 정보 서비스를 요청하는 그 어떤 제안이라도 어떤 방식으로 지지한다면요. 이번 9월에 UN은 다시 만나요. 그리고 우리는 그 제안을 밀어 붙일 거에요. 우리는 이 제안이 가지고 온 반대에 충격을 받았어요. 왜냐하면 이건 그다지 대단치 않은 제안이었거든요. 그저 필수적 정보를 요청하는 제안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어쨌든 끔직한 반대를 받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9월에 다시 그 제안을 보여줄 거에요. 전략에 관해 아이디어가 있으신가요? 그게 질문인가요 그냥 말하신 거였나요? 질문이 아니라서 답 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 질문 아닌 질문에 답해보자면, 사실 제 책이 나와요. 동의 생산이나 필요한 환상 같은 어구로 된 책이죠. 그런 건 너무 좋아서 쓰지 않을 수 없죠. 그래서 이번에 필요한 환상이라고 불리는 책이 나와요. 라인홀드 니부어 덕분에요. 그리고 거기서 이런 것들, 제가 얘기하는 것 중 하나가 UN에 대한 보도에요. 그건 엄청나게 흥미롭죠 UN이 한 번도 보도되지 않은 게 아니에요. UN이 러시아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킬 때마다 큰 보도가 나오죠 만약 UN이 미국을 국제법 위반으로 비난한다면, 보도가 없죠.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그 보도는 정말 흥미로워요 사실 오늘 오후에 제가 한가지 예를 언급했어요. 테러리즘에 관해서요. 매우 중요한거죠 하지만 당신이 말한 것과 같은 것에 대해 한가지 예를 더 보여드릴게요. 그 같은 UN회기에서 1987년에, 많은 군비 축소 결의안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것들은 매우 흥미로웠죠. 왜냐하면 그게 로널드 레이건이 평화메이커로서 1면에서 묘사되고 있을 당시에 나왔거든요. 그건 1987년 12월 워싱턴에서의 정삼회담이었죠. 평화메이커 레이건이요. 매우 흥분하고 그랬죠 바로 그 당시에 UN은 여러 개의 군비 축소 결의안들을 통과시켰어요. 이게 그것들이에요. 우주 공간에서의 군대화에 반대하는 결의안, 즉 스타워즈가 있었어요. 154대 1, 기권은 없었어요. 유엔에서 이런 식의 투표는 못 받죠. 누가 1이였는지는 추측 하실 수 있겠죠. 새로운 대량 살상무기 개발에 반대하는 안은 135대 2였어요. 거기선 미국이 프랑스를 끌어들였죠. 우연히 미국 국민 중 75프로가 지지하는 포괄적 핵 실험 금지 협정은 140대 3인가 그랬어요. 프랑스와 영국이 붙었죠. 그런 결의안들이 있었죠. 그것들은 보도되지 않았어요. 평화메이커 로널드 레이건과 맞지 않았거든요. 반면에 다른 것들은 보도 되었죠. 예를 들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러시아를 비난하는 결의안이요. 거기에 대해선 큰 보도가 나갔죠. 유엔에 대한 많은 보도가 있었지만 이런식이에요. 수년 동안 이래왔죠. 오랫동안요 1940년과 1950년대로 가보면 모두가 유엔을 좋아했어요. 엄청난 보도가 있었죠. 대단했죠 그 이유는 아니면 상관관계라고 해야하나요 그 당시에 미국은 유엔에서 자동적으로 다수표를 얻을 수 있었거든요. 미국이 제안하는 어떤 것이든 유엔은 투표를 했죠. 그냥 그 당시의 힘과 관련이 있는 거에요. 러시아는 사악했죠. 계속 거부권을 행사했거든요. 그리고 그 당시의 논의들을 보면, 인류학자 등등 미국 학자들 사이에서 왜 러시아인들이 유엔에서 모든 것에 거부권을 행사하는지에 대해 심오한 이론들을 가지고 있었죠. 전 그 당시 대학원생이었는데요. 이걸 멍청하다고 생각한 서너명이 모여서 그걸 놀렸죠. 주요한 가설 중 하나는 마가렛 미드 같은 사람이 만들었는데요. 러시아인들이 유엔에서 그렇게 부정적이고 사악한 이유는 아이들을 포대기를 이용해 길러서 그렇다는 거였어요. 그게 그들을 부정적으로 만든다는거에요 그래서 유엔에 가서 항상 노만 말한다는 거에요. 저희는 그걸 기저귀학이라고 불렀죠 어쨌든 그건 크고 심오한 이론이었어요. 시간이 흘렀고 세상은 바뀌었죠. 지금은 미국이 유엔에서 고립되어 있어요. 미국은 모든 것에 거부권을 행사하죠. 우리는 다른 누구보다 더 많이 거부권을 행사해요. 제가 방금 얘기해드린 건 전형적인 거에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유엔이 도덕적 권위을 잃어버렸다고 되었어요. 뉴욕 타임즈 매거진 같은 곳에서 기사가 나와요. 왜 세계가 길을 잃었냐에 대해서요. 말 그대로요. 왜 전 세계가 미국에 반대하냐고요. 그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냐고요. 제 말은 이건 우리가 우리의 아이를 잘못 기르는 게 아니라 그들, 나머지 국가들이 뭔가를 잘 못하고 있다는 거에요. 그리고 왜 그러는지에 대해서 심오한 분석이 나오죠. 세계 문화에 무슨 문제가 있냐는 등등이요. 그리고 유엔은 도덕적 권위를 잃어버렸고 미국은 거기에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죠. 그걸 보도 하지 않아요. 그래서 유엔이 사악한게 되었죠. 명령을 따르지 않으니까요. 이게 어떻게 미디어가 줄을 맞추는지의 드라마틱한 예에요. 그리고 당신이 말한건 또 다른 예이고요. 그리고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그렇게 격분한 반응을 받는 이유는 적어도 함축적으로는 당신이 이 모든 걸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건 좋지 않은거죠. 그래서 그 격분한 반응은 그걸 계속해서 해야 할 또 다른 이유네요.





































여긴 자막을 입히지 않았습니다.. 시작은 1분 23초부터..~ 마이크 앞에 서 계신 분이 있나요? 순서대로 하죠 여기 저기 저기로요 촘스키 교수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정치 시스템과 그 뒤에 숨은 이데올리기들에 관련된 교수님의 이론들을 들어왔는데요 과거에 하셨던 몇몇 말씀이 제게 큰 걱정거리고 남아있는데요. 그 중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소련이 던전이라는 교수님의 주장인데요. 제 생각엔 그 사회에 대한 그런 전반적 비판(blanket condemnation)은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데요 더욱이 이런 종류의 주장은 꽤나 파괴적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커뮤니스트 적이라는 부적절하고 오래된 개념을 확산시키는데 있어서요 궁금하네요 이런..... 3년동안 이 주장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기다려왔는데요.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 개방과 재건이 가져온 변화가 일고 있는데요, 얼마나 중요한지는 논쟁의 대상이지만, 아직도 그 주제에 관해 엄격한 견해를 고수하시는지가 궁금하네요. 첫 번째로 전 그 사회가 그렇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 국가가 그러니까 그 정부가 그렇다고 말했죠. 아마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닐꺼에요. 하지만 저는 그게 맞다고 생각하기에 말하는 거에요. 제 말은 전 소련은 던전이고 커뮤니즘이나 사회주의와는 그 어떤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변화와 관련해서는, 사람들은 그게 성공하길 바라죠 거기서 일어난 일은 교도관들이 좀 더 부드러워 졌다는 거에요. 이런 변화들이 위에서부터 오고 있다는 걸 보셔야해요. 좋은거죠. 변화가 없는 것보단 낫죠. 하지만 사실 고르바쵸프는 과거 리더들보다 더 많은 권력을 그의 손에 집중시켰어요. 그리고 그 힘을 뭔가 피터 대제와 같은 방식으로 쓰고 있죠. 위로부터 그 사회를 자유화시키려고 하고 있죠. 제약을 좀 철폐하고 좀 더 개방하는걸 의미하죠. 그리고 전 좋다고 생각해요. 제 말은 이런 변화들이...... 벌써 많은 것들이 시작되었지만, 이런 변화를 도입할 때 많은 일들이 생기기 시작해요. 대중적 힘들이 생겨나고 많은 종류의 대립도 생겨나죠. 흥미로운 일들도 생기죠 그리고 그 일들이 어떻게 나아갈지는 아직 지켜봐야 하죠 그래서 그 비유를 계속 쓴다면, 저는 그 교도관들이 그 감옥을 좀 더 완화했다는 것에 대해 기뻐요. 그 사회에 좀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한거죠. 매우 좋다고 보고요. 다른 힘들이 그걸 계속하게 했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그러나 이게 그 사회에 대한 정확한 인식인지 아닌지에 대해선 토론해 볼 수 있겠죠. 당신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 같네요. 전 맞다고 생각해요 원하신다면 왜 그런지 설명해 드릴께요. 하지만 먼저 문제 제기하신 그 부분으로 가보죠. 제가 맞다고 생각한다고 가정해보세요. 그럼 저는 그렇게 말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맞으면 제가 그걸 말하지 말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죠. - 제 진짜 질문은 미국에도 정치적 탄압이 있는데요 - 당연하죠 - 그럼 미국도 던전인가요? - 아니에요 왜냐하면 미국은 훨씬 자유로우니까요. 사실 제가 미국에 관해 말한 것은... 한번 더 말해 드릴께요. 많은 면에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회에요. 당연히 여기에도 탄압은 있죠 하지만 비교적으로 볼 때 매우 자유로운 사회에요. 사실 이게 왜 미국이 이런 정교한 사상 통제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 중 하나죠. 미국에서 국가가 강요할 수있는 범위는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어요. 많은 억압이 있다는 당신 말도 맞아요. 저도 FBI를 언급했죠 억압에 몰두하는 국가 정치 경찰이죠. 그게 그들의 일이죠. 설립된 이래 쭉 그런 일을 해왔어요. 이건 자유로운 사회와 맞지 않죠. 하지만 다시 비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비교적인 관점에서 제가 얘기하고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 미국은 꽤나 자유로운 사회에요. 국가가 강요할 수 있는 범위는, 제 생각엔 아마도 제가 아는 그 어떤 다른 사회보다도 제한되어 있어요. 그렇기에 저는 미국을 던전이라고 부르는 건 옳지 않다고 봐요. 네 감사합니다 촘스키 교수님 지금 서 계신 곳에서 두 블록 뒤로 가시면 많은 경우에 제가 땅 위 네오파시스트 벙커의 훌륭한 예라고 묘사하는 건축물을 지나치셨을 텐데요. 뭐요? 바일라스 홀이라고 불리는 땅 위 벙커 네오 파시스트 건축물이요. 바일라스 홀은 커뮤니케이션 학부죠. 저널리즘 학부요. 오늘밤 청중들 중에 저널리즘 학생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 여기에 꽤나 많은 사람들이 말씀하신 미디어 제국의 중간계급 기관원이 될 지도 모르는데요 가치판단이 없는 객관적 보도라는 이데올로기를 가지게 될 텐데요 교수님이 대안으로 생각하는 모델의 주요한 이데올로기적 공격이죠 오늘 여기 청중들을 위해 이 시스템 안에서의 객관성과 가치 판단 없는 보도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말씀해주실수 없는지 궁금하네요. 그런 이데올로기가 있죠. 그리고 그게 어떻게 해석되는지 보면 흥미로워요. 객관성은 권력층 사람들의 말을 받아적어 그들의 인용구를 곡해하지 않고 정확하게 보도하는 걸 의미해요. 그리고 나서 칼럼 밑부분에 뭐 제가 말한 것과 같은 걸 쓸 수 있겠죠. 만약 당신이 정말 용감한 리포터라면요. 이건 그 평화 협정의 정신과 부합하지 않아 보인다 같은거요. 그게 객관적인 보도에요. 만약 국무부가 니카라과가 국경 없는 혁명을 외쳤다고 발표한다면, 당신은 그게 거짓말인걸 알지라도 객관적인 리포터는 그걸 보도하죠. 왜냐하면 그들이 말했으니까요. 그들이 말한 건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그게 거짓말이라는 의견을 개진하면 객관적이지 않은 게 되겠네요. 그래서 그게 객관성의 이데올로기겠네요. 우연히 저는 이것을 보고 그냥 코웃음치지 않을꺼에요. 사실은 대체로 미국 리포터들이... 만약 많은 리포터들이 그들이 본 걸 묘사하고 있다면 저는 대체로 미국 리포터들을 믿을 꺼에요. 적어도 아니 어쩌면 다른 전통으로부터 나온 사람들보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이 객관성이라는 완전히 비웃을게 아니니까요. 보도를 사실에만 집중하고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 것은 가치 있는 노력이에요. 그리고 때때로 정확한 묘사들이 나오죠. 그리고 그걸 정말 잘하는 몇몇 리포터들이 있어요 매우 좋은 기록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사실 제 생각엔 여기엔 프로퍼간다 시스템의 핵심적 저널에서 일하는 리포터들도 포함되요. 그래서 예를 들면 뉴욕타임즈에 존 키프너를 보세요. 뉴욕타임즈 편집장들이 그들만의 목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정확하게 보도되길 원할 때 그걸 보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때 그들은 존 키프너가 보도하도록 보내죠 왜냐하면 그는 정확하게 보도 할것이니까요. 정확하게 보도되는 걸 원치 않을 때에는 그를 대려와서 매트로 데스크(?)에 앉히죠. 이게 편집장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한 방법이에요. 그들이 어떤 이야기가 정확하게 보도되길 원할 때가 있고 정말 그렇게 하는 저널리스트들이 있죠. 반면에 현 외교특파원장인 토머스 프리드먼을 보낼 때, 그들이 원하는 건 프로파간다라는걸 알 수 있죠. 프리드먼이 방금 이번 8월호를 미리 쓴 후에 말한 것처럼 미국이 그러니까 부시 행정부가 지금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온두라스 그리고 엘살바도르가 도입하고 제안하고 진전시킨 중앙아메리카 협정을 지원 할 계획이라고 말하기 원하면, 거기에 빠진 게 있지만 그건 게임의 일부죠. 그게 토마스 프리드먼 보고 보도하도록 할 때 일어나는 일이죠. 그리고 추측컨데 편집장들은 이런 것들을 이해하고 있죠. 그렇기에 추측컨데 왜 토머스 프리드먼이 외교 특파원장이고 존 키프너가 아닌 이유 같네요. 하지만 그건 편집장들한테 물어봐야 하죠. 그래서 당신의 포인트인 객관성으로 돌아가보자면... 그건 좋은 거에요. 보도에 있어 객관적이라는건 좋은 가치죠 그리고 그걸 정직하게 하는 사람들은 매우 좋은 저널리즘을 하는거죠. 하지만 당신이 암시했듯이 그 이데올로기는 곡해하는 매커니즘으로 사용 될 수도 있죠 그리고 꽤나 일반적으로 그렇죠. 조지 부시의 불간섭주의가 단지 커버인가요? 그리고 행정부 분과들의 모든 행동이 비밀스럽게  관리 될까요? 아니면 입법부와 미국 사람들이 권력을 되찾을 기회인가요? 어, 첫 번째로 왜 조지 부시가 불간섭주의 정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죠? 그렇게 보도되었는데요. - 아, 네. 하지만... - 인식이... 그건 좋은 증거가 아니네요. 그 문제의 진실은 로널드 레이건이 불간섭정책을 하고 있었다는 거에요 로널드 레이건은 아마도 정책들이 뭔지도 몰랐을거에요. 이건 지난 8년간의 흥미로운 사실인데요. 사실 웃을 게 아니에요. 진실은...미디어가 이것에 대해 큰 가식을 떨어야 했지만, 모두들 알고 있었죠. 눈이 뜨인 사람이라면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난 8년간 이 나라에는 대통령이 없었다는 걸 알고 있었죠. 그건 중요한 사실이에요. 사실, 제 생각엔 그건 동의 생산에 있어서 한 발 더 나아간 거라고 봐요. 그리고 아마도 미래 민주주의 정치의 징후라고 봐요 제 생각엔 미국이 지난 8년간 잠깐 미래에 갔다 온 거 같은데요. 그리고 좀 후퇴했죠, 하지만 계속 될 거라고 봐요. 제 생각엔 다른 산업 민주주의들도 우릴 따라 할꺼라고 봐요. 투표가 단지 순수하게 상징적 인물을 뽑는 문제로 되어 버리는 정도까지 가면, 대중을 배제시키는데(marginalize,밖으로 밀려나게하다) 긴 길을 걸어 온 거에요. 그리고 그게 지난 8년간에 일어났던 일이에요. 아마 정책이 뭔지 몰랐던 사람이 앉아 있었던 거에요. 그의 일은 부자들이 그에게 써 준 대사를 읽는 거였죠. 그리고 그건 그가 지난 30~40년간 해왔던 일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걸 즐기는듯 했고 돈도 많이 받았고 모두가 행복해 보였죠. 하지만 로널드 레이건에게 투표하는 건 마치 영국의 여왕에게 투표하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그리고 그건 진전이에요 정말 농담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제 생각에 그건 진전이에요. 대중을 배제시키는데 있어서 진전이죠. 대중을 배제시키는 것 중 한 부분은 존재하고 있는 참여의 공식적 매커니즘을 빼앗아 그게 실질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끌지 않게 하는 거에요. 그리고 그걸 상징적 인물을 뽑는 것으로 축소시켜버리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뭐가 있겠어요? 제 생각엔 그게 일어 났던 것 같고요 언론이 그걸 다루지 않은 것 같네요 당연히 알고 있었으면서요. 하지만 조지 부시를 보면 좀 더 정상화된 상황으로 돌아온 거 같은데요. 불간섭 정책이 있다고 볼 만한 이유가 없는 거 같네요. 과거에 있던 것과 같은 비밀스런 활동들이 있을꺼에요 언제 정부가 비밀스런 활동을 할까요? 전형적으로 국내의 적이 그 활동을 공공적으로 실행하는 걸 허용하지 않을 때 그래요. 그 때 정부는 비밀스런 활동을 하죠. 비밀스런 활동은 어렵고 복잡하고 비싸고 노출 될 수 있다는 위험을 안고 있어요. 폭력적 활동을 그냥 대놓고 하는 게 훨씬 쉽고 효율적이죠. 그리고 정부는 전형적으로, 특히 우리의 정부가 비밀스런 활동을 할 때는 주로 대중이 두렵기 때문이에요 그런 활동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리 큰 비밀이 아니죠. 당연히 희생자들에게 비밀이 아니에요. 우리가 관여해 온 용병 국가들에게 그건 비밀이 아니죠. 이란 콘트라 청문회에서 나온 모든 것처럼요 니카라과에겐 비밀이 아니었고 이스라엘에게도 비밀이 아니었고 타이완, 사우디 아라비아, 브루나이에게도 비밀이 아니었어요. 밖에 있는 누구에게도 이건 비밀이 아니었죠. 리처드 셰코드나 앨버트 해킴 등등과 같이 거기서 돈을 벌기 위해 뛰어든 모든 수상한 사업가들에게도 비밀이 아니었어요. 진실은 국회나 미디어에게도 비밀이 아니었다는 거에요. 제가 말했다시피, 그들은 콘트라 비행기에 대해서 알고 있었어요 단지 보도하지 않은거죠. 이스라엘을 통해 이란에게 무기를 팔고 있는 것 역시 알고 있었죠 하지만 보도하지 않았어요 미국 용병이 탄 비행기가 격추 당했을 때, 그걸 더 이상 감출 수 없었죠. 그리고 이란 정부가 국가안보 고문이 테헤란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성경이나 초콜렛 케잌을 나눠주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후엔 그랬을 때, 더 이상 감출 수 없었고 그건 공식화 되었고 그 다음에 은폐 작전이 있었죠. 하지만 요점은 그 누구에게도 비밀이 아니었다는 거에요. 제 생각엔 이걸 쉽게 문서화 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예를 들어 저는 지금까지 퍼블릭 소스로부터 얻은 정보를 가지고 거기에 대해 쓰고 있었어요. 하지만 제 요점은 대중들에겐 비밀로 할 수 있다는 거에요. 대중들에게 비밀로 하기엔 충분히 낮은 수준이었어요. 그리고 그건 국내의 적이 그것을 놓고 화내지 않을 거라는 걸 의미하죠. 적의 영토를 통제해야 한다는 걸 기억하세요. 그리고 그게 비밀스런 작전이 있는 이유죠. 만약 정부가 국내 대중이 그러니까 국내 적이 가만 있지 않을 어떤 일을 한다면, 그게 폭력적이거나 영토적이거나 전복적이든 뭐든, 비밀스런 행동을 취할꺼에요. 그게 그들이 있는 이유고 이 점에서 부시 행정부가 다른 행정부와 다를꺼라고 믿을 만한 이유는 없어 보이네요. 특히 사실 덜 그렇죠. 부시의 배경을 보면 말이죠. 촘스키 박사님, 최근 페미니스트 운동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그게 사회 생활과 문화 패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실질적인 영향을 줬다고 하셨는데요. 정확히 인용하자면, 모든 것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운동이라고 하셨죠. 왜 좌진영이 페미니스트 운동과 같이 일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겪을 뿐만 아니라 제가 느끼기에 그 안에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의 반여성적 사람과 시각을 용인한다고 보시는지요? 이게 첫번째 질문이고 두 번째 질문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수 있겠어요? 잘 모르겠네요, 좀 어려운데요, 차리리 안그러는게... 알겠어요 하지만 또 다른 질문 하나는 박사님은 세계적 언어학자이신데 이게 어떻게 정치적 활동과 엮이는지 궁금하네요  사실 페미니즘의 이슈는... 그 발언의 문맥은, 제 기억이 맞다면, 60년대 운동에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는 질문의 답이었어요. 그리고 여기에는 프로퍼간다 이야기가 있죠. 그 이야기는 60년대 운동이 이상주의적이였다 등등, 다 희미해졌고 그 후에 모두가 자기 일에만 관심을 갖고 모두 사라졌다라는 거에요. 제 생각에 그건 말도 안 된다고 봐요. 그건 프로퍼간다에요. 그리고 사실 그건 사람들이 포기해야만 하도록 느끼게하려는 시도였어요 하지만 진실은, 객관적으로 보신다면,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60년대의 운동은 1970년대까지 팽창하고 성장해나갔고 80년대에 더 많이 팽창하고 성장했어요. 그리고 그들은 전의 그 누구보다 사회의 훨씬 더 넓은 층에게 닿고 있죠. 예를 들어 이런 그룹은 없었을 거에요 확실히 20년 전이라면 이런 토크는 듣지 않았을 거에요. 하지만 이건 이제 전국적이고 대학에서만이 아니라 작은 마을이나 교회 등등에서도 있죠. 제 생각에 그 운동은 그냥 팽창했다고 봐요. 그게 레이건 행정부가 비밀스런 행동을 하게 된 이유죠. 적의 영토가 통제 불가능이었거든요 제가 페미니스트 운동을 꼭 집어 말한 이유는 그게 70년대의 산물이기 때문이에요. 제가 보기엔, 당신이 정확히 인용했듯이, 전체적 영향으로 보면, 그게 아마도 문화 패턴, 관계, 그리고 권위의 구조 등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70년대와 80년대죠 이제 좌진영의 대한 당신 질문으로 돌아가보죠. 지금 페미니스트 운동의 기원 중 많은 부분은 좌진영 안에 있었어요. 그건 좌진영 내의 성차별에 대한 반작용이었죠. 그건 60년대 말에 큰 이슈였어요 그리고 매우 감정적이고 복잡한 이슈였죠. 그게 현대 페미니스트 운동의 한 뿌리였죠 물론, 아시다시피, 페미니스트 운동은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죠. 그리고 좌진영이 여전히 성차별과 성차별 하는 개인들을 용인 할 수도 있겠죠 당연히 그렇다고 봐요. 하지만 그렇다면 그건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에요. 좌진영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곳에서요. 그게 좌진영과 어떤 특별한 관련이 있다고 보진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