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攝大乘論釋》卷1:「No. 1595 [Nos. 1596, 1597; cf. Nos. 1592-1594, 1598]
[1]攝大乘論釋序(十五卷成)
大唐桑門道基撰
攝大乘論者。蓋是希聲大教。至理幽微。超眾妙之門。閉邪論之軌。大士所作。其在茲乎。若夫實相宗極。言亡而慮斷。真如體妙。道玄而理邈。壯哉法界。廓爾無為。信矣大方。超然域外。是以王城三止。寶殿三加。至人垂範。良有以也。佛去世後千一百餘載。群機將扣。感而遂通。北天竺國有二開士。結師資而接武。連花萼以承芳。無著闡於紘綱。所以俊撰論本。婆藪揚其名理。所以克精注述。諸論宗歸。所明各異。法華論旨。引三車而共轍。鞞沙幽致。開十住以同階。至如此論。眾名坦蕩。似王路之無枝。藏識常流。譬洪川之長注。三性殊旨。混為一心。六度虛宗。俱拪彼岸。躡十地之龍級。淤三學之夷路。涅槃無處。運悲慧之兩融。菩提圓極。齊真應之一揆。言攝大乘者。攝謂能攝。蘊積苞含。攝藏名攝。言大乘者。理必絕待。假大稱之。名曰大乘。其義郭周。體性該博。謂為大也所行功德。能至能證。名之為乘。論者無著菩薩之所製造。窮源盡理。清微朗暢。謂為論也。釋者婆藪論師之所注解。清辯剖扸。文理俱騰。其為釋焉。以梁大清二年。南身毒優禪尼國有真諦三藏。道超世表。學冠群英。以法濟時。來儀建業。屬梁季將潰。旋路嶺南。廣州刺史陽山公歐陽頠。屈請停止。為菩薩戒師。世子衡州刺史歐陽紇復請翻譯。有丹陽義學僧。僧宗慧愷傳語筆受。任得其人。論本釋論十有五卷。余以庸淺鑽仰無墜。聊述所聞。以示來哲。
豫章郡守王欽。開皇元年五月奏此論。與遷持論不殊。
攝大乘論[2]釋[3]序
[4]遷禪師江南將至徐州講唱
夫至道弘曠。無思不洽。大悲平等。誘進靡窮。德被含生。理非偏漏。但迷塗易久。淪惑難息。若先談出世。則疑[5]性莫啟。故設教立方。各隨性欲。唐虞之前。圖諜簡少。姬周以後。經誥弘多。雖復[6]製禮作訓。並導之以俗法。而真假妙趣。尚冥然未覩。故迹隱葱嶺[7]已西。教祕滄海之外。自漢室受命。方稍東漸。爰及晉朝。斯風乃盛。梁有天下。彌具興隆。歷千祀其將半。涉七代而迄今。法蘭導清源於前。童壽振芳塵於後。安叡騁壯思以發義端。生肇[8]擅玄言以釋幽致。雖並策分鏕。同瀾比派。而深淺競馳。[9]照晦相雜。自茲以降。篤好[10]愈廣。莫不異軌同奔。傳相祖習。而去取隨情。開抑殊軫。慧愷志漸負槖。勤愧聚螢。謬得齒[11]跡學徒。稟承訓義。遊寓講肆。多歷年所。名師勝友。備得諮詢。但綜涉疎淺。鑽仰無術。尋波討源。多所未悟。此蓋慮窮於文字。思迷於弘旨。明發興嗟。負心非一。每欲順風問道。而未知厥路。有三藏法師。是優禪尼國婆羅門種。姓頗羅[12]墮。名拘羅那[13]他。此土翻譯稱曰親依。識鑒淵曠。風表俊越。天才高[14]傑。神辯閑縱。道氣逸群。德音邁俗。少遊諸國。歷事眾師。先習外典。[15]備通書奧。苞四韋於懷抱。吞六論於胸[16]衿。學窮三藏。貫練五部。研究大乘。備盡深極。法師既博綜墳籍。妙達幽微。每欲振玄宗於他域。啟法門於未悟。以身許道。無憚遠遊。跨萬里猶比隣。越四海如咫尺。以梁太清二年方屆建[1]業。仍值梁季混淆。橫流荐及。法師因此避地東西。遂使大法[2]擁而不暢。末至九江及遊五嶺。凡所翻譯卷軸未多。後適閩越。敷說不少。法師每懷慷慨。所歎知音者希。故伯牙絕絃。卞和泣璧。良由妙旨之[3]曲難辯。盈尺之珍罕別。法師遊方既久。欲旋反舊國。經塗所亘。遂達[4]蕃禺。儀同三司廣州刺史陽山郡公歐陽頠。叡表岳靈。德洞河府。經文緯武。匡道佐時。康流民於百越。建正法於五嶺。欽法師之高行。慕大士之勝規。奉請為菩薩戒師。恭承盡弟[5]子禮。愷昔甞受業。已少滌沈[6]弊。服膺未久。便致[7]睽違。今重奉值。倍懷蹈舞。復欲飡和稟德。訪道陳疑。雖慇懃三請。而不蒙允遂。[8]怳然失圖。心魂靡託。衡州刺史陽山公世子歐陽紇。風業峻整。威武貞拔。該閱文史。深達治要。崇瀾內湛。清輝外溢。欽賢味道。篤信[9]愛奇。躬為請主。兼申禮事。法師乃欣然受請。許為翻譯。制旨寺主慧智法師。戒行清白。道氣宏壯。志業閑[10]瞻。觸途必舉。匡濟不窮。輪[11]煥靡息。征南長史袁敬德。履[12]行沖明。志託夷遠。徽猷清[13]蘭。氷[14]桂齊質。弼諧蕃[15]政。民譽早聞。兼深重佛法。崇情至理。黑白二賢。為[16]經始檀越。辰次昭陽。歲維協洽。月呂[17]姑洗。神紀[18]勾芒。於廣州制旨寺便就翻譯。法師既妙解聲論。善識方言。詞有以而必彰。義無微而不暢。席間函[19]丈。終朝靡息。愷謹筆受。隨出隨書。一章一句。備盡研覈。釋義若竟。方乃著文。然翻[20]譯事殊難。不可存於華綺。若一字參差。則理趣胡越。乃可令質而得義。不可使文而失旨。故今所翻文質相半。與僧忍等同共稟學。夙夜匪懈。無棄寸陰。即以其年樹檀之月。文義俱竟。本論三卷。釋論十二卷。義疏八卷。合二十三卷。此論乃是大乘之宗[21]極。正法之祕奧妙義雲興。清詞海溢。深固幽遠。二乘由此迷墜。曠壯該含。十地之所宗學。如來滅後將千一百餘年。彌勒菩薩投適時機。降靈俯接。忘己屈應。為阿僧伽法師廣釋大乘中義。阿僧伽者。此言無著。法師得一會道。體二居宗。[22]詠玄鑒極。凝神物表。欲敷闡至理。故製造[23]論。唯識微言。因茲得顯。三性妙趣。由此而彰。冠冕彜倫。舟航有識。本論即無著法師之所造也。法師次弟婆藪槃[24]豆。此曰天親。道亞生知。德備藏[25]性。風格峻峙。神氣爽發。稟厥兄之雅訓。習大乘之弘旨。無著法師所造諸論。詞致淵玄。理趣難曉。將恐後生復成紕紊。故製釋論以解本文。籠小乘於形內。挫外道於筆端。自斯以後。迄于像季。方等圓教。乃盛宣通。慧愷不揆虛薄。情慮庸淺。乃欲泛芥舟於巨壑。策駘足於長路。庶累毫成[26]仞。聚爝為明。有識君子。幸宜尋閱。其道必然無失墜也。」(CBETA, T31, no. 1595, p. 152, a21-p. 153, b26)
[1]此序宋元明宮四本俱無。[2]〔釋〕-【宋】【元】【宮】【聖】。[3]序+(卷第一)【聖】。[4]((遷禪師…講唱))十一字=((沙門慧愷述))五字【宋】【元】【明】【宮】,((陳世真諦譯))五字【聖】。[5]性=怪【聖】。[6]製=制【明】。[7]已=以【宋】【元】【明】【宮】。[8]擅=檀【聖】。[9]照=昭【宋】【元】【明】【宮】【聖】。[10]愈=逾【聖】。[11]跡=迹【宋】【元】【聖】。[12]墮=惰【宋】【元】【明】【宮】。[13]他=地【聖】。[14]傑=桀【宋】【元】【明】【宮】。[15]備=洽【宋】【元】【明】【宮】【聖】。[16]衿=襟【明】。[1]業=鄴【聖】。[2]擁=㙲【明】。[3]曲=典【元】【明】【宮】。[4]蕃=番【宋】【元】【明】【宮】。[5]子+(之)【聖】。[6]弊=蔽【宋】【元】【明】【宮】【聖】。[7]睽=暌【明】【宮】。[8]怳=恇【宮】。[9]愛=受【聖】。[10]瞻=贍【明】。[11]煥=奐【宋】【元】【明】【宮】【聖】。[12]〔行〕-【宋】【元】【明】【宮】【聖】。[13]蘭=簡【宋】【元】【明】【宮】【聖】。[14]桂=珪【宋】【元】【明】【宮】。[15]政=正【宋】【元】【明】【宮】。[16]經=終【宋】【元】【明】【宮】。[17]姑=沽【聖】。[18]勾=句【聖】。[19]丈=杖【宮】【聖】。[20]譯+(之)【聖】。[21]〔極〕-【宋】【元】【明】【宮】。[22]詠=該【宋】【元】【明】【宮】【聖】。[23](諸)+論【聖】。[24]豆+(婆藪槃豆)【聖】。[25]性=往【聖】。[26]仞=刃【宋】【元】【明】【宮】。
섭대승론석서
도기(道基) 지음
{섭대승론(攝大乘論)}은 듣기가 어려운 위대한 가르침[大敎]이니 지극한 이치[至理]가 그윽하고 은미하여 가지가지 오묘한 문[衆妙之門]을 뛰어넘고 삿된 논리의 법칙[邪論之軌]을 막아준다. 대사(大士)가 이 논을 지은 까닭이 아마도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저 실상(實相)의 종지의 극치[宗極]는 언어가 사라지고[言亡 : 言語道斷] 사려가 끊어진[慮斷 : 心行處滅] 것이며, 진여(眞如)의 체(體)는 오묘하여 도가 현묘하고 이치가 아득하다.
장대(壯大)하구나, 법계(法界)가 툭 트여서 작위함이 없음이여! 신실하구나, 대방(大方)이 한계 밖으로 뛰어넘어 있음이여! 이 때문에 왕성(王城)에 세 번 머물고[三止] 보전(寶殿)에 세 번 들어갔으니[三加], 지인(至人)이 모범을 드리움은 진실로 까닭이 있다 하겠다.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후 천백여 년에 군기(群機)가 진리의 문을 두드리니, 중생의 느낌이 부딪쳐 느낌이 마침내 소통되었다. 북천축국(北天竺國)에 두 분 보살이 계셔서 스승과 제자[師資]의 인연을 맺어 서로 족적(足跡)을 접해서 이으니 꽃과 꽃받침처럼 이어져서 아름다운 향기를 계승했다.
무착(無着)보살은 큰 줄기[紘網]를 천양하였기 때문에 논(論)의 본문을 훌륭하게 지었고, 바수(婆藪)보살은 그 명리(名理)를 드날렸기 때문에 지극히 정미하게 주석을 서술했다. 모든 논[諸論]의 종지의 귀결점[宗歸]에서 밝히고 있는 것이 각각 다르나,
법화(法華)의 논지(論旨)는 3거(車)를 이끌어서 수레바퀴 자국을 함께하고 비사(?沙)의 그윽한 종치[幽致]는 10주(住)를 열어서 함께 섬돌을 오르는 것과 같이 이 논[攝大乘論]은 여러 가지 명상[衆名]이 평탄하고 넓어 마치 왕이 행차하는 길[王路]에 샛길이 없는 것과 같고, 장식(藏識)이 항상 흘러서 넓은 하천[洪川]이 길이길이 흘러가는 것과 같다.
이 논에서는 3성(性)의 독특한 종지[殊旨]가 일심(一心)으로 혼용되고 6도(度)의 허종(虛宗)이 모두 피안(彼岸)에 깃들며, 10지(地)의 용급(龍級)을 밟고 3학(學)의 이로(夷路)를 막는다. 열반은 주처가 없어서 대비와 지혜[悲慧]의 양융(兩融)을 운용하고 보리는 원만하고 지극하여 진실로 감응하는 한결같은 법칙[一揆]을 갖추고 있다.
섭대승(攝大乘)을 말해보자. 섭(攝)은 주체적으로 포섭하고[能攝], 온축해서 축적하며[蘊積], 포함하고 포섭해서 간직하는 것을 섭(攝)이라고 한다.
대승(大乘)을 말해보자. 이치는 반드시 상대적인 의존관계[待]가 끊어져 있지만 임시로 크다[大]고 가칭해서 대승(大乘)이라고 한 것이다. 그 의미가 확연하고 두루하며, 체성(體性)이 해박(該博)한 것을 대(大)라고 한다. 그 세간에 유행하는 공덕이 열반에 이르러 갈 수 있고 보리를 증득할 수 있는 것을 승(乘)이라고 한다. 이 논은 무착보살이 지은 것이다.
이 논이 근원의 이치를 끝까지 추궁하여 청미(淸微)하고 화창하게 드날렸으니, 이를 논이라고 한다. 석(釋)은 바수(婆藪) 논사가 주해(注解)한 것이다. 명확한 논변으로 분석하니, 문장과 이치[文理]가 모두 뛰어나다. 이것을 석이라고 한다.
양(梁)나라 태청(太淸) 2년에 남인도[南身毒] 우선니국(優禪尼國)에 진제(眞諦) 삼장이 있었으니, 도(道)가 세간 밖으로 벗어났고 학(學)은 뭇 영재들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법(法)으로써 제도할 때에 사방에서 뛰어난 제자들이 건업(建業 : 남경)에 운집하였는데, 양나라가 말기에 이르러 장차 무너지려 하는 때를 만나서 발길을 영남(嶺南)으로 돌렸다.
광주(廣州)자사인 양산공(陽山公) 구양외(歐陽?)가 이 곳에 머물면서 보살계사(菩薩戒師)가 되어줄 것을 엎드려 간청하고, 아들[世子]인 형주(衡州)자사 구양흘(歐陽紇)은 또 번역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이에 단양(丹陽)의 의학승(義學僧)인 승종(僧宗)과 혜개(慧愷)가 전수해 주시는 법어를 필수(筆受)하니, 이 일에 합당한 사람을 얻었다 할 것이다.
논본(論本)과 석론(釋論)은 모두 열다섯 권이다. 내가 용렬하고 학식이 얕기는 하나, 이 논을 연마하고 탐구하여 망실하지 않고[鑽仰無墜], 부족하나마 법문을 들은 것을 여기에 기술하여 후에 오는 명철(明哲)에게 보여주는 바이다. 예장(豫章)의 군수(郡守)인 왕흠(王欽)이 개황(開皇) 원년 5월에 이 논을 주상(奏上)하였는데, 천선사(遷禪師)가 수지(受持)하고 있는 논(論)과 다르지 않다.
섭대승론석서(攝大乘論釋序)
이 서문은 천선사(遷禪師)가 강남에서 서주(徐州)에 이르러 강설한 내용이다. 무릇 지극한 도(道)는 넓고 넓어서 생각할 수 없고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며, 대비(大悲)는 평등하여 중생을 이끌어 나아감에 다함이 없다. 덕(德)은 함생(含生 : 중생)을 덮어 주며 이(理)는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누설되지 않는다.
단지 길을 미혹하여 뒤바뀐 것이 오래되어 미혹 속에 빠져서 번뇌를 쉬기가 어려울 뿐이다. 세간을 벗어나는 것[出世]을 먼저 말하면 의심하고 괴이하게 여겨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 때문에 교(敎)를 설함에 방편을 세우는 것이니, 각각의 근성과 욕구[性欲]에 따르는 것이다.
당우(唐虞 : 요순 시대) 이전에는 도첩(圖諜)이 간소하였고, 희주(姬周 : 주나라 시대) 이후에는 경전[經誥 : 유교 경전]이 매우 많아 비록 예(禮)를 만들고 훈(訓)을 지어서 모두 세속법으로 가르쳤지만 진제(眞諦)와 속제(俗諦)의 묘취(妙趣)에 대해서는 깜깜하여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자취는 총령(?嶺) 서쪽(인도)에 숨어 있었고 가르침은 창해(滄海)의 밖에 비장(秘藏)되어 있었는데, 한나라 왕실에서 명을 받고부터 점점 동쪽으로 들어왔으며 진(晋)나라 왕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풍교(風敎)가 왕성하게 되었다. 양(梁)나라 시대에는 천하에 가득 차서 흥륭하였으며 천 년 세월을 지나면서 7대(代)를 걸쳐 지금에 이르렀다.
법란(法蘭)1)은 앞서서 청정한 근원[淸源]을 인도했고 동수(童壽 : 구마라집)는 그 후에 불법의 향기를 떨쳤으며, 안세고(安世高)와 승예(僧叡)는 웅장한 생각을 펼쳐서 의단(義端 : 불법의 실마리)을 일으켰고, 도생(道生)과 승조(僧肇)는 현묘한 언어[玄言]2)로써 그윽한 이치를 자유자재로 해석하였다.
비록 함께 모여 도모하였지만 분파가 갈리고 크게 시끄러워져 같은 물결(학파) 속에서 파가 갈려 깊고 낮음을 다투었으며 빛과 어둠[照晦]3)이 서로 뒤섞였다. 이로부터 돈독하게 여기고 좋아하는 것이 점점 자세해져서 한결같이 다른 길로 달려갔다. 조상의 가르침을 후대에 전수하였으니, 정서에 따라 버리고 취하였으며, 진귀한 것에 따라 개발하고 물리쳤다.
혜개(慧愷)4)는 뜻이 점점 커져서 바랑을 짊어지고 열심히 공부하였으며 거짓으로 나이를 속여 학도(學徒)가 되었다. 부처님의 교훈을 받들어 돌아다니면서 강의하였으며 수년에 걸쳐 훌륭한 스승과 뛰어난 벗을 만나서 토론하였다. 단지 종합적으로 섭렵하였기에 통찰이 얕아서 성인의 도와 덕을 탐구하였지만 길을 찾을 수 없었다.
물결을 찾아 그 원류를 구했지만 깨닫지 못한 것이 많았다. 이것은 깊은 뜻이 문자에 가려져 있고 넓은 뜻은 생각에 미혹되었기 때문이었으니, 마음을 짊어졌어도 하나가 아님을 한탄하였다. 매번 풍조에 따라 도(道)을 묻고자 했지만 그 길을 알지 못했다.
삼장법사[眞諦]가 있었는데, 우선니국(優禪尼國)의 바라문 출신으로서 성은 파라타(頗羅墮)이고, 이름은 구라나타(拘羅那他)이었다. 중국말로 친의(親依)라고 번역하여 불렀다. 지식과 관찰력이 깊고 넓었으며 외모가 출중하고 뛰어난 천재였으며 변재가 막힘이 없었다. 도(道)의 기운이 남보다 뛰어났으며 덕음(德音)이 세속까지 전해졌다.
어릴 적부터 여러 나라를 유행하면서 여러 스님들을 받들어 모셨다. 먼저 외전(外典)을 공부하였으며, 외서에 대해서도 모두 달통하였고, 4위(韋 : 네 가지 veda)를 품 속에 안고 6론(論)을 가슴에 품었다. 3장(藏 : 경·율·론)을 궁구하였고 5부(部 : 四諦와 修道)를 거듭 익혔으며, 대승을 연구하여 깊은 궁극을 모두 알았다.
법사는 이미 광범위하게 서적을 공부하였기에 깊은 이치[幽微]를 오묘하게 통달하였다. 항상 다른 지역에 가서 현종(玄宗 : 자기 종지)을 떨쳐 깨닫지 못한 이에게 법문을 열어주고 싶어했다. 몸을 도에 바쳐서 먼 곳에 유행하는 것을 가리지 않아서 만 리를 가더라도 마치 이웃에 가듯 하며 사해(四海)를 건너도 지척과 같이 여겼다.
양(梁)나라 태청(太淸) 2년(548)에 건업(建業 : 남경)에 들어왔는데, 이에 양나라 말기의 혼란한 시대를 만나니 멋대로 흐름이 연이어졌다. 법사는 이로 인해 이쪽저쪽으로 피해 다녔으므로 끝내 대법(大法)이 가려져 펼쳐지지 못하였다. 구강(九江)에는 이르지 못하고 오령(五嶺)에 유행하였으나 번역된 경권은 많지 않았다.
후에 민(? : 복건성의 옛 이름)과 월(越 : 절강성의 옛 이름)에 도착하여 적지 않게 강설하였다. 법사는 항상 비분강개한 마음을 품고 있었으며 탄식하는 것은 자신을 알아주는 이[知音]가 적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백아(伯牙)가 현을 끊고 변화(卞和)가 구슬을 안고 울었던 것은 진실로 까닭이 있으니 미묘한 뜻을 담은 곡조는 변별하기 어렵고 한 자 남짓의 진귀한 보배는 구별하는 이가 드물었다. 법사는 오랫동안 지방을 유행하자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싶어하였다. 여러 지역을 거쳐 드디어 번우(蕃? : 광동성에 있는 현)에 도착하였다.
http://kmbira.blog.me/150131437720
《攝大乘論釋》卷1:「No. 1595 [Nos. 1596, 1597; cf. Nos. 1592-1594, 1598]
[1]攝大乘論釋序(十五卷成)
大唐桑門道基撰
攝大乘論者。蓋是希聲大教。至理幽微。超眾妙之門。閉邪論之軌。大士所作。其在茲乎。若夫實相宗極。言亡而慮斷。真如體妙。道玄而理邈。壯哉法界。廓爾無為。信矣大方。超然域外。是以王城三止。寶殿三加。至人垂範。良有以也。佛去世後千一百餘載。群機將扣。感而遂通。北天竺國有二開士。結師資而接武。連花萼以承芳。無著闡於紘綱。所以俊撰論本。婆藪揚其名理。所以克精注述。諸論宗歸。所明各異。法華論旨。引三車而共轍。鞞沙幽致。開十住以同階。至如此論。眾名坦蕩。似王路之無枝。藏識常流。譬洪川之長注。三性殊旨。混為一心。六度虛宗。俱拪彼岸。躡十地之龍級。淤三學之夷路。涅槃無處。運悲慧之兩融。菩提圓極。齊真應之一揆。言攝大乘者。攝謂能攝。蘊積苞含。攝藏名攝。言大乘者。理必絕待。假大稱之。名曰大乘。其義郭周。體性該博。謂為大也所行功德。能至能證。名之為乘。論者無著菩薩之所製造。窮源盡理。清微朗暢。謂為論也。釋者婆藪論師之所注解。清辯剖扸。文理俱騰。其為釋焉。以梁大清二年。南身毒優禪尼國有真諦三藏。道超世表。學冠群英。以法濟時。來儀建業。屬梁季將潰。旋路嶺南。廣州刺史陽山公歐陽頠。屈請停止。為菩薩戒師。世子衡州刺史歐陽紇復請翻譯。有丹陽義學僧。僧宗慧愷傳語筆受。任得其人。論本釋論十有五卷。余以庸淺鑽仰無墜。聊述所聞。以示來哲。
豫章郡守王欽。開皇元年五月奏此論。與遷持論不殊。
攝大乘論[2]釋[3]序
[4]遷禪師江南將至徐州講唱
夫至道弘曠。無思不洽。大悲平等。誘進靡窮。德被含生。理非偏漏。但迷塗易久。淪惑難息。若先談出世。則疑[5]性莫啟。故設教立方。各隨性欲。唐虞之前。圖諜簡少。姬周以後。經誥弘多。雖復[6]製禮作訓。並導之以俗法。而真假妙趣。尚冥然未覩。故迹隱葱嶺[7]已西。教祕滄海之外。自漢室受命。方稍東漸。爰及晉朝。斯風乃盛。梁有天下。彌具興隆。歷千祀其將半。涉七代而迄今。法蘭導清源於前。童壽振芳塵於後。安叡騁壯思以發義端。生肇[8]擅玄言以釋幽致。雖並策分鏕。同瀾比派。而深淺競馳。[9]照晦相雜。自茲以降。篤好[10]愈廣。莫不異軌同奔。傳相祖習。而去取隨情。開抑殊軫。慧愷志漸負槖。勤愧聚螢。謬得齒[11]跡學徒。稟承訓義。遊寓講肆。多歷年所。名師勝友。備得諮詢。但綜涉疎淺。鑽仰無術。尋波討源。多所未悟。此蓋慮窮於文字。思迷於弘旨。明發興嗟。負心非一。每欲順風問道。而未知厥路。有三藏法師。是優禪尼國婆羅門種。姓頗羅[12]墮。名拘羅那[13]他。此土翻譯稱曰親依。識鑒淵曠。風表俊越。天才高[14]傑。神辯閑縱。道氣逸群。德音邁俗。少遊諸國。歷事眾師。先習外典。[15]備通書奧。苞四韋於懷抱。吞六論於胸[16]衿。學窮三藏。貫練五部。研究大乘。備盡深極。法師既博綜墳籍。妙達幽微。每欲振玄宗於他域。啟法門於未悟。以身許道。無憚遠遊。跨萬里猶比隣。越四海如咫尺。以梁太清二年方屆建[1]業。仍值梁季混淆。橫流荐及。法師因此避地東西。遂使大法[2]擁而不暢。末至九江及遊五嶺。凡所翻譯卷軸未多。後適閩越。敷說不少。法師每懷慷慨。所歎知音者希。故伯牙絕絃。卞和泣璧。良由妙旨之[3]曲難辯。盈尺之珍罕別。法師遊方既久。欲旋反舊國。經塗所亘。遂達[4]蕃禺。儀同三司廣州刺史陽山郡公歐陽頠。叡表岳靈。德洞河府。經文緯武。匡道佐時。康流民於百越。建正法於五嶺。欽法師之高行。慕大士之勝規。奉請為菩薩戒師。恭承盡弟[5]子禮。愷昔甞受業。已少滌沈[6]弊。服膺未久。便致[7]睽違。今重奉值。倍懷蹈舞。復欲飡和稟德。訪道陳疑。雖慇懃三請。而不蒙允遂。[8]怳然失圖。心魂靡託。衡州刺史陽山公世子歐陽紇。風業峻整。威武貞拔。該閱文史。深達治要。崇瀾內湛。清輝外溢。欽賢味道。篤信[9]愛奇。躬為請主。兼申禮事。法師乃欣然受請。許為翻譯。制旨寺主慧智法師。戒行清白。道氣宏壯。志業閑[10]瞻。觸途必舉。匡濟不窮。輪[11]煥靡息。征南長史袁敬德。履[12]行沖明。志託夷遠。徽猷清[13]蘭。氷[14]桂齊質。弼諧蕃[15]政。民譽早聞。兼深重佛法。崇情至理。黑白二賢。為[16]經始檀越。辰次昭陽。歲維協洽。月呂[17]姑洗。神紀[18]勾芒。於廣州制旨寺便就翻譯。法師既妙解聲論。善識方言。詞有以而必彰。義無微而不暢。席間函[19]丈。終朝靡息。愷謹筆受。隨出隨書。一章一句。備盡研覈。釋義若竟。方乃著文。然翻[20]譯事殊難。不可存於華綺。若一字參差。則理趣胡越。乃可令質而得義。不可使文而失旨。故今所翻文質相半。與僧忍等同共稟學。夙夜匪懈。無棄寸陰。即以其年樹檀之月。文義俱竟。本論三卷。釋論十二卷。義疏八卷。合二十三卷。此論乃是大乘之宗[21]極。正法之祕奧妙義雲興。清詞海溢。深固幽遠。二乘由此迷墜。曠壯該含。十地之所宗學。如來滅後將千一百餘年。彌勒菩薩投適時機。降靈俯接。忘己屈應。為阿僧伽法師廣釋大乘中義。阿僧伽者。此言無著。法師得一會道。體二居宗。[22]詠玄鑒極。凝神物表。欲敷闡至理。故製造[23]論。唯識微言。因茲得顯。三性妙趣。由此而彰。冠冕彜倫。舟航有識。本論即無著法師之所造也。法師次弟婆藪槃[24]豆。此曰天親。道亞生知。德備藏[25]性。風格峻峙。神氣爽發。稟厥兄之雅訓。習大乘之弘旨。無著法師所造諸論。詞致淵玄。理趣難曉。將恐後生復成紕紊。故製釋論以解本文。籠小乘於形內。挫外道於筆端。自斯以後。迄于像季。方等圓教。乃盛宣通。慧愷不揆虛薄。情慮庸淺。乃欲泛芥舟於巨壑。策駘足於長路。庶累毫成[26]仞。聚爝為明。有識君子。幸宜尋閱。其道必然無失墜也。」(CBETA, T31, no. 1595, p. 152, a21-p. 153, b26)
[1]此序宋元明宮四本俱無。[2]〔釋〕-【宋】【元】【宮】【聖】。[3]序+(卷第一)【聖】。[4]((遷禪師…講唱))十一字=((沙門慧愷述))五字【宋】【元】【明】【宮】,((陳世真諦譯))五字【聖】。[5]性=怪【聖】。[6]製=制【明】。[7]已=以【宋】【元】【明】【宮】。[8]擅=檀【聖】。[9]照=昭【宋】【元】【明】【宮】【聖】。[10]愈=逾【聖】。[11]跡=迹【宋】【元】【聖】。[12]墮=惰【宋】【元】【明】【宮】。[13]他=地【聖】。[14]傑=桀【宋】【元】【明】【宮】。[15]備=洽【宋】【元】【明】【宮】【聖】。[16]衿=襟【明】。[1]業=鄴【聖】。[2]擁=㙲【明】。[3]曲=典【元】【明】【宮】。[4]蕃=番【宋】【元】【明】【宮】。[5]子+(之)【聖】。[6]弊=蔽【宋】【元】【明】【宮】【聖】。[7]睽=暌【明】【宮】。[8]怳=恇【宮】。[9]愛=受【聖】。[10]瞻=贍【明】。[11]煥=奐【宋】【元】【明】【宮】【聖】。[12]〔行〕-【宋】【元】【明】【宮】【聖】。[13]蘭=簡【宋】【元】【明】【宮】【聖】。[14]桂=珪【宋】【元】【明】【宮】。[15]政=正【宋】【元】【明】【宮】。[16]經=終【宋】【元】【明】【宮】。[17]姑=沽【聖】。[18]勾=句【聖】。[19]丈=杖【宮】【聖】。[20]譯+(之)【聖】。[21]〔極〕-【宋】【元】【明】【宮】。[22]詠=該【宋】【元】【明】【宮】【聖】。[23](諸)+論【聖】。[24]豆+(婆藪槃豆)【聖】。[25]性=往【聖】。[26]仞=刃【宋】【元】【明】【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