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교와 전국노래자랑
정토교가 좋기로는 아무나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수는 초대손님에 불과하고 주연은
이 집 저 집의 이웃사촌들이다.
물론 예선도 있고 경쟁도 심하다지만
꼭 노래만 보는 것도 아니다.
끼를 보일 수 있어 시청률이 올라갈 것 같으면
노래는 땡해도 장기자랑은 내보내준다.
정토교의 노래는
나무아미타불이다.
자유선곡이 아니라 불만스러운 사람은
타방의 또는 중앙의 또는 어느 부처님을 불러도 좋을 것이나
아무튼 원칙은 한 곡 '나무아미타불'인 것 같다.
전국노래자랑처럼
기품있고 교양있는 이들은 잘보지 않는
모짜르트나 베토벤 음악을 그 시간에 듣는 이들이 싫어할만한 것이
불교 속 정토의 노래이다.
땡이 없는 노래이다.
전국노래자랑 속의 장삼이사 필부들의 노래가 노래냐
정토경들에서 볼 수 있는 극락 얘기가 불교냐
이렇게 말들 많지만 그것도 노래이고 그것도 불교이다.
현 시대의 다수의 소리가 노래가 아니라면 삶이 없는 그 무엇이 될 것이기에.
그래, 철학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래, 소망이 문제인 것이다.
다만 그 무엇의 이름 아래.
그 덮는 이불의 이름이 불교일 뿐이다.
그래서 정토불교이다.
앎이 아닌
꿈에 발딛고 있는 불교
풍선이 여럿 달려 날아오르려는 불교
절이 아니라
시장통을 통째로 극락으로 들어올리려는 불교
도때기 시장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외침이 중요한 불교
목소리의 불교
-그래서 부처님의 무의식을 말할 수 있게하는 불교
-그래서 한 발만 가기는 쉬워도 나머지 한 발 마저 떼는건 어려운 불교
-그래서 슬기 없는 믿음이 두렵기에 무섭기도 한 불교
-그래서 이행도가 아니라 나같은 사람에게는 난행도보다 더 어려운 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