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CBETA, T44, no. 1851, p. 533, a22-b19

VIS VITALIS 2016. 10. 20. 13:52

大乘義章3

次就妄中以辨依持第七妄識諸虛偽本說為能持前六事識依妄而起說為能依能持如水能依如波水在波生水盡波滅所況如是故楞伽云如水大流盡波浪則不[7]如是意識滅種種識不生[8]彼名妄識以為意識六種事識為種種識良以妄識為六本故妄想意滅令彼種種六識不生妄中本末依持如是

次唯就真以辨依持真有體用本淨真心說之為體隨緣隱顯說以為用用必依體名之為依體能持用說以為持能持如水能依如波繩蛇等喻類亦同爾真妄相對依持如是(此一門竟)

次就真妄共相識中本末相對以辨依持真與癡合共為本識依本共起阿陀那識依本共起六種生識於此分中本識為本餘二為末末生依本名之為依本能持末流注不斷說之為持能持如水能依如波問曰末中阿陀那識共起六識得有相依持義不釋言不得於此分中六識親從本識而起本識變為體是本識故望本識說依說持非阿陀那變為六識六識體非阿陀那識故望陀那不說依持如人夢中見聞覺知從睡心生不從夢中執我心起若就緣由說依說持亦得無傷是義云何由阿陀那執我心故熏於本識不見法如不證涅槃變起六識及六根塵離之則無[9]經說云以著我故世間受身離我則無[10]從是義得說依持依持如是(此二門竟)。」(CBETA, T44, no. 1851, p. 533, a22-b19)

[7]原本傍註曰生經作起[8]楞伽經[9]十地經論第八[10]】,=】。

 

다음으로 망에 입각하여 의依持를 살피고자 한다. 7망식은 여러 허위의 근본이므로 능지라 한다. 앞의 여섯 가지 사식은 망에 의존하여 일어나므로 능의라 한다. 능지는 물과 같다. 능의는 물결과 같다. 물이 있어 물결이 생긴다. 물이 다하면 물결이 사라진다. 비유로는 이와 같다. 그러므로 능가경에서 물의 큰 흐름이 다하면 물결도 곧 생기지 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의식이 사라지면 갖가지 식[種種識]도 생기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그것(능가경)은 망식을 의식이라고, 여섯 가지 사식을 갖가지 식이라고 이름하고 있다. 망식은 여섯 가지 사식의 근본이므로 망식이 사라지면 저 갖가지 6식도 생겨나지 않게 된다. 망에 있어 본과 말이 지가 되고 의가 되는 것은 이와 같다.

 

다음으로 오로지 진에 입각하여 의依持를 살피고자 한다.

진에는 체가 있고 용이 있다. 본정진심(근본이 청정한 진심)이 체이고 수연은현(조건에 따라 숨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함)이 용이다. 용은 체에 반드시 의존하니[] 라고 한다. 체는 용을 유지(維持)할 수 있으니[能持] 라고 한다. 능지는 물과 같다. 능의는 물결과 같다. 끈과 뱀 등의 비유는 유형적으로 또한 같다. 진과 망(=진 가운데 체와 용)이 서로 짝이 되어 지가 되고 의가 되는 것은 이와 같다.(일문一門을 마친다.)

 

다음으로 진망공상식真妄共相識에 입각하여 본과 말이 서로 짝이 되어 의依持하는 것을 살피고자 한다. 진과 치가 합해져 함께 본식이다. 본에 의존하여 함께 아다나식을 일으킨다. 본에 의존하여 함께 여섯 가지로 일어나는 식[六種生識]을 일으킨다. 여기에서 본식이 본이고 나머지 둘(아다나식이나 6)은 말이다. 의 발생이 본에 의존한다. 그것을 의라 한다. 본은 말을 유지(維持)할 수 있고[能持]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지라 한다. 능지는 물과 같다. 능의는 물결과 같다. 묻는다. 말에 속하는 아다나식과 (말에 속하는) (아다나식과) 함께 일어나는 6식은 서로 의依持하는 뜻을 가질 수 있는가? 풀이하여 말한다. 가질 수 없다. 여기에서는 6식이 직접적으로[] 본식으로부터 일어난다. 본식이 (6식으로) 변화한다[變為]. (여기서 6식의) 체는 본식이기 때문이다. 본식에 맞춰[] 를 말하고 지를 말한 것이지 아다나식이 6식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6식의 체는 아다나식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다나식에 맞춰[] 依持를 말하지 않는다. 마치 사람이 꿈속 견문각지見聞覺知는 수면 중인 마음[睡心]으로부터 생기는 것이지 꿈속 나를 집착하는 마음으로부터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다나식과 6식의 관계에 대해) 연유(緣由)에 입각하여 의를 말하고 지를 말하는 것이라면 무방하다. 무슨 뜻인가? 아다나식은 나에 집착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본식을 훈습하지만 진리의 여실함[法如]을 보지 못하고 열반을 깨닫지[] 못한다. 변화하여 666진을 일으키지만 그것(=)을 떠나면 곧 없다. 그러므로 경에서 나에 집착하기 때문은 세간에서 몸을 받는다. 나를 떠나면 행할 것도 없다.”라고 한 것이다. 이런 뜻으로 의依持를 말할 수 있다. 依持는 이와 같다.(이문二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