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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宮适

VIS VITALIS 2016. 8. 18. 10:57
빠를 괄, 맞을 적획순보기 재생
  • 1. 빠르다
  • 2. 신속하다(--)
  • 3. 사람 이름
  • a. 맞다 (적)
  • b. 마땅하다 (적)
  • c. 가다 (적)
  • d. 시집가다(---) (적)
  • e. 즐기다 (적)
  • f. 꾸짖다 (적)
  • g. 전일하다(---: 마음과 힘을 모아 오직 한 곳에만 쓰다) (적)
형성문자

(적)의 간체자(). 대법원 인명용으로는 괄.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쉬엄쉬엄 가다)와 음()을 나타내는 (설→괄)이 합()하여 이루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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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 괄(南宮适, 남궁시, ? ~ ?)은 노나라 사람으로,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성은 남궁(南宮), 휘는 (适)이다. 또 다른 이름은 남궁경숙(南宮敬叔)인데, 오늘날에 통용되는 실제 이름이다. 남궁괄(南宮适)은 성은 남궁씨인데, 맹손씨 가문 사람, 즉 노나라 맹손씨 가문 맹희자(孟僖子) 아들로, 맹의자(孟懿子)의 형이다.

공자의 제자 중에 남용(南容)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남궁괄과 동일인이라는 설이 있지만, 명확하지 않다. 남용의 본명은 남궁도(南容韜)로, 자가 자용(子容)이었으므로, 남용(南容)으로 불렸다. 남궁경숙도 공자의 제자였다.

좌전(左傳), 소공(昭公) 7년(기원전 535년)에 따르면, 맹희자(孟僖子)가 죽을 때 두 아들 맹의자(孟懿子)와 남궁경숙에게 공자에게 예의를 배우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맹의자(孟懿子)는 이름이 하기(何忌)인데, 일설에는 맹의자(孟懿子)가 남궁괄이고, 남궁경숙(南宮敬叔)은 그의 형이라고도 한다.

비고[편집]

남궁괄(南宮括)은 주문왕의 친구로 희성이며, 주나라 개국 공신이다. 노나라 남궁괄과 한국 발음은 같지만, 중국어 병음은 다르며, 본명 남궁경숙(南宮敬叔)과는 전혀 다르다. 그의 후손으로 남궁장만(南宮長萬)이라는 인물도 있었는데, 송나라에서 장수을 지내다 반란을 일으켰다가 살해되었으며, 그 아들은 위나라로 달아났다.

함께 보기[편집]





    南宮括 (B.C. )

     

    성은 南宮(남궁), 이름은 (史記), (論語). 자는 子容(자용). 노나라 사람.

    孟僖子의 아들로 仲孫閱을 가리킨다고도 한다.

     

    史記 孔子世家,

    ○〈孔子世家, “南容從夫子往周見老子老子曰, ‘聰明深察而近于死者好譏議人者也博辯宏遠而危其身者好發人之惡者也.’ 遂三復白圭.”

    사기 공자세가에 이르길, “남용이 공자를 따라 주나라에 가 노자를 만나니노자가 말하길,

    사람이 총명하여 사리를 깊이 살피고 있어도 죽게 되는 경우가 가까이 닥치는 것은 남을 비방하기를 좋아하는 자이고박학하고 변론이 능하며 넓은 식견을 지녔어도 그 몸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남의 나쁜 점을 들춰내는 자이다.”라 하고는드디어 백규의 시를 세 번 반복하였다.

    (史記 孔子世家에는, 南容이 南宮敬叔으로 되었으며遂三復白圭의 구절은 없으며南宮縚는 論語의 南容南宮适史記의 南宮敬叔孔子家語의 南宮縚는 모두 같은 사람이다.)

     

    史記 仲尼弟子列傳,

    南宮括 字子容問孔子曰, “羿善射奡盪舟俱不得其死然禹稷躬稼而有天下?” 孔子弗答容出,

    孔子曰, “君子哉若人上德哉若人!” “國有道不廢國無道免於刑戮.” 三復 白珪之玷” 以其兄之子妻之.

    남궁괄의 자는 자용이다어느날 자용이 공자에게 묻기를, “예는 활을 잘 쏘고오는 땅에서도 배를 움직일 수 있었지만모두 자연스럽게 죽지 못했고하나라의 우임금과 주나라의 후직은 몸소 밭을 갈며 고생을 했어도 천하를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고 물으니공자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용이 나간 다음에 공자는 말하기를, “자용은 군자로구나자용은 높은 덕을 가졌구나도가 있는 나라에서는 크게 쓰일 것이고도가 지켜지지 않는 나라에서도 형벌을 받아 죽는 꼴은 당하지 않을 것이다.”하였다자용은 시경을 읽다가

    흰 구슬의 흠은 갈아서 없앨 수 있지만입으로 뱉은 말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라는 구절을 세 번 반복해 읽었다이것을 보고 공자는 형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春秋左氏傳 昭公七年 九月篇(남궁경숙과 남궁괄이 동일 인물이라는 설)

    孟僖子及其將死也召其大夫曰禮人之幹也無禮無以立吾聞將有達者曰孔丘聖人之後也而滅於宋其祖弗父何以有宋而授厲公及正考父佐戴武宣三命,玆益恭故 其鼎 銘云一命而僂再命而傴三命而俯循牆而走亦莫余敢侮饘於是鬻於是以糊余口.” 其共也如是.

    臧孫紇有言, 聖人有明德者若不當世其後必有達人今其將在孔丘乎我若獲沒必屬說與何忌於夫子使事之而學禮焉以定其位.” 故 孟懿子與南宮敬叔師事仲尼.

    仲尼曰, “能補過者君子也詩曰, ‘君子是則是效孟僖子可則效已矣.”

    맹희자가 죽어갈 마당에 그의 가신들을 불러놓고 말하였다예의는 인간의 근본이다사람이 예의가 없으면 놓여진 지위를 지키어 나갈 수 없는 것이다내 들었거니와앞으로 모든 일에 통달한 어진 이가 있게 될 것인데그는 공구란 분이다.그분은 옛 성인의 후손인데 가문은 송나라에서 망했다그 분의 조상인 불보하는 송나라 군주가 될 입장인데도 군주를 여공에게 넘겨주었고그 증손인 정고보에 이르러송나라의 대공무공선공의 세 군주를 보좌하여상경이었으나 날로 더욱 공경스러운 태도를 취했었다그래서 솥을 만들어 경계하는 말을 새기기를

    대부가 되어서는 고개를 수그리고하경이 되어서는 등을 구부리며상경이 되어서는 몸을 구부려집에 갈 때에 집의 담 옆으로 빨리 빨리 걸으면다른 사람이 나를 감히 무시함이 없으리라나는 이 솥에 된죽을 끓이어 먹고묽은 죽을 끓이어 내 입에 풀칠을 하여 살리라.’했었다그 분의 공경스러움은 이와 같았다.

    장손흘이 한 말이 있는데성인의 밝은 덕이 있는 것이어서그이의 세대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면그이의 후손에 반드시 모든 일에 통달하는 어진 사람이 나게 될 것이다.’했다.

    이제 앞으로 공구가 세상에 어진 사람으로 존재할 것이다내가 만약 이대로 죽게 된다면필히 열과 하기를 그분에게 배우게하여그들의 지위를 확보케 하라.”

    이 유언이 있었기에 맹희자와 남궁경숙이 중니를 스승으로 삼았다.

    공자께서는 맹희자를 다음과 같이 평해 말하기를잘못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군자다시에 이르길, ‘군자는 모범 삼고 본받을 바다.’라고 했다맹희자야말로 모범 삼고 본받을 분이다.”

     

    [출처] 남궁괄 1|작성자 돼지발톱

    남궁괄은 논어에 세번 나온다. 공자한테 늘 좋은 말을 듣는 인물이란다.

    그는 공자의 제자이자 조카사위다. 공자의 아버지 숙량홀은 10척 지금의 도량형으로 환상하면 2미터 정도의 장신이라고 한다.

    공자의 기골도 아버지를 달은 것 같다. 숙량홀은 정력도 좋았던 모양으로 첫 부인한테서 아홉 명이나 되는 딸을 낳았다.

    아들을 낳을 욕심으로 두 번째 부인을 얻어서 아들을 낳았는데 한 쪽 다리를 못 쓰는 절름발이였다.

    이름이 맹피, 말하자면 공자의 이복형이다. 맹피가 마음에 차지 않은 숙량홀은 또 장가를 들었다.

    그것도 이팔청춘이 막 지난 17세의 꽃다운 처녀 안징재한테...

     

    그때 숙량흘의 나이는 일흔 내외였다. 

    손녀뻘 되는 어린애한테 장가를 간 셈이었다.

    요즘 같아서는 욕을 먹어도 한참을 먹었을 것이다. 그래도 공자 같은 아들을 낳았으니 대성공이다.

     

    슬픈건 공자가 채 크기도 전 3살 때 세상을 떠난다.

    [출처] 남궁괄 |작성자 돌고래

    http://blog.naver.com/idj1246/70152450338



    南宮适問於孔子曰

    羿善射 奡盪舟

    俱不得其死然

    禹稷躬稼 而有天下

    夫子不答 南宮适出

    子曰 君子哉 若人

    尙德哉 若人

    남궁괄이 공자에게 여쭈어 보았습니다. “예는 활쏘기를 잘하고, 오는 배를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모두 그 죽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와 직은 몸소 농사일을 하여 천하를 가졌습니다.”공자께서 대답하시지 않았다.

    남궁괄이 나가고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자로 구나! 이런 사람은 덕을 숭상하도다! 이런 사람은”이라고 하셨다.

    http://blog.daum.net/chin6231/4826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