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미련 먼저 슬기 나중, 담벼락 뚫는 건 미련, 투미, die Eule der Minerva

VIS VITALIS 2016. 8. 9. 11:04

미련 먼저 슬기 나중


이라는 말을 읽으면 헤겔의 말이라는 미네르바의 부엉이(19세기 독일 철학자 헤겔은 저서 '법철학'의 서문에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가 생각난다.

우리의 최초의 선택은 왜 슬기가 아니고 재수 더럽게도 미련인 경우가 많은가? 아니 대부분 거의 확실히 미련이 자리 잡는다. 미련한 놈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미련1

파생어 : 미련하다1미련히

관련 어휘
   

속담/관용구

속담
미련은 먼저 나고 슬기는 나중 난다
미련이 먼저 생기고 그 다음에 슬기가 생긴다는 뜻으로, 무슨 일을 잘못 생각하거나 못쓰게 그르쳐 놓은 후에야 이랬더라면 좋았을 것을 저랬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궁리한다는 말.
    미련이 담벼락 뚫는다
    미련한 사람이 오히려 끈기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미련하기는 곰일세
      아주 미련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미련한 게 간능 맞다
        겉으로 미련한 듯하면서 의뭉한 꾀가 있다는 말.
          미련한 놈 가슴의 고드름은 안 녹는다
          1 .

          둔하고 못난 사람이 한번 앙심을 품으면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

            [북한어] 미련한 자는 부닥친 문제를 원만히 해결할 능력이 없으므로 늘 가슴에 맺힌 것이 있고 마음이 편치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미련한 놈 똥구멍에 불송곳이 안 들어간다
              미련한 사람이 매우 고집이 세고 무뚝뚝하다는 말.
                미련한 놈 잡아들이라 하면 가난한 놈 잡아들인다
                돈이 없으면 잘난 이도 못난이 대접밖에는 못 받는다는 뜻으로, 배금주의에 젖은 세상인심을 비꼬는 말.
                  미련한 사람이 범[곰] 잡는다
                  [북한어] 무엇이 무서운지도 모르는 미련한 사람이 범과 같은 짐승을 잡는다는 뜻으로, 우둔한 자가 어쩌다 큰일을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미련한 송아지 백정을 모른다
                    겪어 보지 않았거나 어리석어서 사리에 어두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비슷한 속담] 바닷가 개는 호랑이 무서운 줄 모른다.

                    미련 (未練)

                     
                    [명사].
                    [명사].[작은말]매련.

                    미련하다 (未練―)

                     
                    [형용사](미숙하다)
                    [형용사].

                     (32)

                     []

                      중요  
                    1.미련단념하기 어려움아쉬움2.[고어]미숙아직 숙련되지 않음.

                     []

                      중요  
                    5.미련아쉬움6.[고어]자손7.’의 준말.

                     []

                      
                    집심집착심; 미련.

                     []

                      
                    마음에 걸림; 유감미련().(=)

                     []

                      
                    1.아쉬움미련.(=2.(무예에서) 한 동작을 마친 뒤에도 긴장...

                     []

                      
                    미련·번민 등을 말끔히 끊어버리다.

                     []

                      
                    미련을 남기다.

                     []

                       
                    미련 없이 깨끗하다.[문어형][]-

                     []

                      
                    노둔; 우둔미련.(=·)

                     []

                      
                    선뜻 미련을 끊지 못하는 사람.

                     (56)

                    투미-하다

                    원형 : 투미

                    형용사

                    어리석고 둔하다.
                    1 .[북한어] 욕심 사납고 심술궂거나 무뚝뚝하고 인정미가 없다.
                    2 .[북한어] 목소리가 거칠거나 똘똘하지 못하다.

                    관련 어휘

                    연관단어

                    어근 투미


                    • 미네르바의 부엉이 [Eule der Minerva] 
                      헤겔사전 인문과학 > 철학/윤리
                      ······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법철학』 절 7. 28]. 이 문맥에서 이해하게 되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시간 속에서 출현하는 세계의 사상〉으로서의...
                    • 미네르바의 부엉이 
                      위키백과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그의 저서 《법철학》(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1820년) 서문에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 라는 유명한 경구를 남겼다. 원래...
                    • 미네르바의 부엉이 
                      선샤인 논술사전 인문과학 > 교양인문
                      프리드리히 헤겔이 『법철학』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아오른다”는 말을 쓴 이후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철학을 상징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지만, 보통 역사연구에서 ‘거리두기’... 더보기

                    Der deutsche Philosoph Georg Friedrich Hegel verglich 1820 in seinen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die Philosophie mit der dämmerungsaktiven Eule der Minerva:

                    „Wenn die Philosophie ihr Grau in Grau malt, dann ist eine Gestalt des Lebens alt geworden, und mit Grau in Grau lässt sie sich nicht verjüngen, sondern nur erkennen; die Eule der Minerva beginnt erst mit der einbrechenden Dämmerung ihren Flug.“[5]



                    Eule der Minerva

                    Athenisches Vierdrachmenstückmit dem behelmten Kopf der Pallas Athene auf der einen und der Eule auf der anderen Seite

                    Die Eule der Minerva ist ein Symbol von Klugheit und Weisheit.



                    김 씨는 1999년에 건물 2층에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 나오는 글귀에서 이름을 따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나래를 편다(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이름의 카페를 열었다.



                    "어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서점을 지켜나가겠다"인문과학서점 '그날이오면' 김동운 대표
                    등록일 2014.09.07 00:33l최종 업데이트 2014.09.11 10:09l 한명훈 기자(me98210@snu.ac.kr)

                      크기변환_우만사메인.jpg

                     

                      대학동 녹두거리에는 인문사회과학전문서점 ‘그날이오면’이 위치하고 있다. 인문사회과학서점 운영이 전성기를 누리던 80년대에는 100곳이 넘는 인문사회과학서점이 있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 인문사회과학서적은 과거만큼 읽히지 않게 됐다. 인문사회과학서적을 경유해 새로운 사유를 모색하려는 움직임은 축소됐다. 인문사회과학서점은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고 90년대 말에는 10곳 남짓한 인문사회과학서점만이 남게 됐다. 한때 서울대 앞에 자리했던 인문사회과학서점인 ‘백두서점’, ‘전야’, ‘열린글방’, ‘광장서적’ 등은 문을 닫았고 현재에는 ‘그날이오면’만이 유일하게 운영 중이다. 김동운 씨는 아내 유정희 씨와 함께 1990년 2월 새로운 주인을 찾고 있던 ‘그날이오면’을 인수했다. 생계를 꾸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인문사회과학서점들이 위기를 겪고 하나둘 문을 닫은 현재 김 씨에게 ‘그날이오면’의 운영은 생계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날이오면’을 운영하면서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오면’이 갖는 의미를 생각하게 됐다. 그러면서 서점 운영에 목적의식과 사명감,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 ‘그날이오면’ 운영에 대해 그가 견지하는 태도는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굴곡진 삶을 살아가는 동안 형성된 신념과 맞닿아 있었다.

                     

                    움사2.JPG

                    ▲김동운 대표는 “서점 운영에 대해 처한 조건과 위치에 따라 주어진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문사회과학서점을 운영하는 조건 속에서 어떻게 하면 최대한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 최서현 촬영기자


                    동학농민혁명 기념탑에서 진리의 상아탑까지
                      농촌 마을의 비교적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김동운 씨는 동네 방앗간 앞마당에서 뛰어놀다가도 멀리 비치는 동학농민혁명 기념탑의 불빛을 바라보곤 했다. 김 씨는 가난한 농촌 마을의 삶 속에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현실을 떠올렸다. 그의 아버지는 농사일에 힘쓰는 동시에 어려움을 겪는 마을 사람들을 도왔다. 그는 장래의 꿈이 뭐냐는 물음에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는 거라고 대답할 만큼 아버지를 존경했다.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헌신했지만 아버지가 김 씨에게 바랐던 것은 가족에게 헌신하는 것 이상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 생계에 매몰되지 않고 의로움과 진리를 추구하길 바랐다. 그는 “아버지를 보면서 얻은 것들이 삶에 자연스럽게 합쳐졌다”며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을 회고했다.


                      중학교 3학년 때 공부를 위해 서울로 전학한 김동운 씨는 80년대에 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것들이 있다”며 광주민주항쟁을 80년대의 시작으로 꼽았다. 그는 광주민주항쟁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던 응축된 문제들이 터져 나온 사건”으로 평가하며 “거기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근본적인 변혁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시대적 배경에 개인적 경험이 더해져 자연스럽게 대학 입학과 동시에 이념써클에 가입하게 됐다. 학생 운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반독재 시위에도 앞장섰다. 그 과정에서 크게 다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학생운동이 사회 변혁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그는 대학 졸업 이후의 삶을 생각했다. 그가 생각한 졸업 이후의 삶은 노동운동에 힘쓰는 것이었다.


                    해고를 무릅쓰고 힘쓴 노동운동
                      대학을 졸업한 김동운 씨는 대우중공업 인천 공장에서 일했다. 인천 공장에서는 트럭, 선박 등에 사용되는 고출력 엔진을 만들었다. 김 씨는 대학에서 기술을 배우지 않았지만 회사에서 세운 직업훈련원에서 6개월 동안 훈련을 받아 취직할 수 있었다. 당시 대우중공업 노조는 노동자보다 회사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어용노조였다. 이 때문에 공장 내부에 노조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김 씨는 공장에서 일하는 한편 노조에 가입해 노조 활동에 힘썼다. 김 씨의 목표는 노조가 제 기능을 찾는 것이었다. 그는 노조가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자의 사회적·경제적인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원래의 기능에 충실할 수 있기를 바랐다. 김 씨는 밤 10시까지 잔업을 한 후에 동료들과 모여서 공부하고 토론했다. 두세 시간 정도 잠을 자고 다시 일터로 가는,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어려운 삶이 이어졌다.


                      김동운 씨는 1987년 해고되기까지 3년 동안 공장에서 일하며 노동운동에 힘썼다. 1987년은 6월항쟁을 거치면서 민주화의 열기가 고양된 시기였다. 이와 더불어 노동자들의 생존권 확보와 노동조건 개선에 대한 요구가 분출돼 노동자대투쟁으로 이어졌다. 1987년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 동안 이어진 노동자대투쟁의 시기가 임박했을 때 김 씨는 전면에 나서서 유인물을 배포하고 파업을 계획, 조직하는 등 노조활동에 더욱 힘썼다.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노조가 결성되고 임금이 인상됐다. 대우중공업에도 민주노조가 세워졌다. 그러나 노동운동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김 씨는 인천의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았고 결국 해고됐다. 그는 해고된 후에도 노동운동의 연장선에서 복직을 위한 투쟁을 계속했다. 김 씨 외에도 인천에는 노동자대투쟁에 앞장서다가 해고된 노동자들이 많았다. 이들은 인천지역해고노동자협의회(해협)에서 함께 활동하며 복직을 위해 함께 투쟁했다. 해협에서 활동하면서 김 씨는 아내 유정희 씨를 만나 결혼했다. 복직투쟁은 그 자체로 힘든 활동이었지만 결혼하고 가정을 이룬 상태에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이 더욱 어려운 문제였다. 동료들이 생계를 도우려 했지만 그는 그것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생계를 위해서는 새로운 일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신림동에서 인문사회과학서점을 운영하던 유정희 씨의 친구들이 ‘그날이오면’이 새주인을 찾는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김동운 씨 역시 인천에서 노동운동에 매진하기 전에는 신림동에 살기도 했고 책을 사러 신림동의 인문사회과학서점을 종종 들르곤 했다. 이런 인연으로 김동운 씨, 유정희 씨 부부는 1990년 2월 ‘그날이오면’을 인수했다. 김 씨는 생계 문제 외에도 “인문사회과학서점 운영이 우리가 해왔던 활동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서점 운영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김 씨가 복직투쟁을 마무리한 1992년까지 유정희 씨가 ‘그날이오면’을 운영했고, 김 씨는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서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움사3.JPG

                     ▲‘그날이오면’은 1996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와 공간을 넓혔다. 위치는 현재 ‘보드람치킨’이 자리하고 있는 신림동 241-22번지였다. ⓒ 최서현 촬영기자

                     

                    ‘그날이오면’과 함께 걸어온 길

                      몇 해 동안 ‘그날이오면’의 운영은 성공적이었다. 90년대 초반까지 인문사회과학서적의 수요는 여전했다. 서점 운영에 힘쓴 김동운 씨의 노력 또한 컸다. 그는 구하기 힘든 책을 찾아 출판사와 도매 서점 창고들을 찾아다니기도 했고, 학생사회와의 유대를 이어나가는 데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1997년 4월, 성균관대의 ‘풀무질’과 고대의 ‘장백서점’, ‘그날이오면’ 등 세 군데의 인문사회과학서점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죄목은 국가보안법 위반이었다. 이들 인문사회과학서점에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등록된 책과 기관지 등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적표현물 목록에는 《전태일 평전》이 포함돼있었다. ‘그날이오면’이 유정희 씨 명의로 돼있었기 때문에 유 씨가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구속수사를 받았다. 김 씨는 불구속 수사를 받았다. 김 씨가 조사를 받고 있는 사이에 이 소식은 학내에 알려졌다. 조사받고 돌아오는 저녁 무렵 그는 서점 앞에 모인 500명이 넘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학생들은 ‘그날이오면’ 침탈에 대한 규탄 집회를 열고 있었다.


                      서점 앞의 광경을 보면서 김동운 씨는 서점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을 위해 노력했던 부분들이 학생들에게 전달됐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학생들 앞에서 그날 있었던 일의 경위를 학생들 앞에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어떤 어려운 일이 있다 하더라도 서점을 끝까지 지켜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이 일을 겪으면서 인문사회과학서점으로서 ‘그날이오면’이 갖는 책임과 의미를 생각했다. 90년대 중후반 무렵 손님들이 점차 줄어들면서 많은 인문사회과학서점들이 문을 닫았다. 그러나 김 씨는 오히려 ‘그날이오면’의 활동반경을 넓혀갔다. 압수수색이 있던 해인 1997년 말에는 ‘그날이오면’ 10주년을 맞이해 서평대회를 열었다. 1998년에는 편집위원을 조직해 <그날에서 책읽기>를 정기간행물로 발간해 인문사회과학서적에 대한 서평을 담아냈다. 1~2달 간격으로 100쪽 안팎의 두툼한 잡지 1200부를 발행하면서 비용은 서점 재정으로 충당했다. 90년대 말에 학생모임과 세미나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세미나와 토론을 위한 공간이었던 카페들이 문을 닫았다. 이런 상황에서 김 씨는 1999년에 건물 2층에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 나오는 글귀에서 이름을 따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나래를 편다(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이름의 카페를 열었다. 학생들이 저렴하고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김 씨는 ‘미네르바의 부엉이’에 홍세화 <말과 활> 발행인,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 《신좌파의 상상력》을 쓴 조지 카치아피카스 등의 인사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김동운 씨는 ‘그날이오면’에서의 활동에 대해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줄어드는 한편 인생관, 가치관을 세우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의식적인 노력을 한 것이었다”고 그 뜻을 밝혔다. 그러나 활동을 지속해나가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상당한 비용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활동 자체가 이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서점 운영이 예전만큼 활발히 이뤄지지 않아 서점 재정에 여력도 없었다. <그날에서 책읽기>는 1999년에 발간이 중단됐고 카페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2004년에 문을 닫았다. 재정 악화가 계속되면서 ‘그날이오면’은 운영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김 씨는 몇 해 동안 늘어나는 적자를 개인적으로 감당하면서 서점을 운영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2006년 ‘그날이오면’ 후원회가 발족해 서점 운영을 돕고 있다. 현재 서평대회가 이어지고 있고, ‘그날이오면’ 학회가 활동하고 있다.

                     

                    누구나 ‘그날이오면’을 편히 이용했으면
                      김동운 씨가 ‘그날이오면’을 운영하는 동안 가장 많이 판매된 책은 《전태일 평전》이다. 《전태일 평전》은 김 씨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친 책이자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는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노동법을 공부하던 전태일 열사가 한자로 이뤄진 법률용어에 접근하기 어려워 대학생 친구가 한 명만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구절을 언급했다. 김 씨는 대학교에서 학생운동을 하고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하면서 전태일 열사의 삶을 늘 의식했다. 김 씨는 전태일 열사를 ‘분신한 노동자’라는 상징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전태일 열사가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취했던 자세와 마음가짐, 결단을 생각했고 전태일 열사로부터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찾고자 했다.

                     

                    2001_.jpg

                    ▲‘그날이오면’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책인 《전태일 평전》은 요즘에는 거의 팔리지 않는다. 김동운 대표는 “처음에는
                    《전태일 평전》에 대해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전태일 평전》에 나오는 전태일 열사의 삶이 자신의 삶과는 동떨어진
                    것 같다고 말하곤 했는데 요즘에는 아예 책이 판매되지 않는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 전태일재단


                      그는 “제 가치관이나 삶에 불편함을 느끼거나 저에 대해 오해해 손님들이 서점 이용을 꺼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또 “서점이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편안하게 책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며 누구나 자유롭게 서점을 이용했으면 한다는 뜻을 밝혔다. 김 씨는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서점 운영에 힘쓰겠다”며 ‘그날이오면’의 활동을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http://www.snujn.com/news/68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