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naver.com/krmuni/220323285311
[131214 보완] http://cafe.naver.com/happybupdang/4066 와 연결된 개념입니다.
「감정과 이성에 대한 니까야의 이해 시도 - (도덕적 삶)[도덕성에 관한 핵심 쟁점 중 이성과 감정의 문제]」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http://cafe.naver.com/happybupdang/5431
내입처(內入處)[mano-의(意)]와 외입처(外入處)[dhamma-법(法)]의 대응에 의해 감각작용이 이루어지면vinnāṇa[식(識)]가 생겨납니다. 외입처[대상]에 대한 앎으로의 vinnāṇa[현재]와 외입처에 대한 과거의 앎[기억-과거]으로의 내입처가 다시 만나는 것을 촉(觸-phassa)이라고 합니다. 촉하면 외입처에 대한 경험이 완성되는데, 락(樂)-고(苦)-불고불락(不苦不樂)의 느낌으로 알려집니다[vedanā-수(受)]. 그리고 vinnāṇa는 vedanā를 인식합니다.
그런데 vedanā에 대한 vinnāṇa의 인식과정에는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습니다. sannā[상(想)-내적과정]입니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sannā는 전도된 sannā[상락아정(常樂我淨)]과 전도되지 않은 sannā[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로 분류됩니다(http://cafe.naver.com/happybupdang/1646). 존재에 대한 오해에 바탕한 sannā와 존재의 실상을 바로보는 sannā입니다. 그리고 vinnāṇa의 인식작용은 전도된 sannā가 개입하면 왜곡되고[잘못 알게 됨], 전도되지 않은 sannā가 개입하면 왜곡없이 있는 그대로를 인식합니다.
sannā의 개입과 더불어 vedanā를 인식하면 vinnāṇa는 행위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citta[심(心)]이라고 불리는데, 「vinnāṇa → citta」의 상변화입니다. 행위의 과정은 「citta가 원인-주체가 되어 몸과 말과 mano로 행위한다.」고 정리됩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불교 공부의 중심이 된다고 할 수 있는 현상이 이때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도된 sannā의 개입에 의해 인식과정이 왜곡되면 탐진치(貪嗔癡)[욕심-성냄-어리석음]이 일어나서 citta를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과 말과 mano로 오염된 행위를 하여 괴로움[苦)]이 결과됩니다.
그렇다면 전도된 sannā의 개입과 탐진치의 일어남은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일까요?
잠재성향, 경향 또는 수면(睡眠)으로 번역되는 단어로 anusaya라는 것이 있습니다. '평상시는 쉬고있다가 조건이 갖추어지면 일어나는 것'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데, <잠재성향 경1(A7:11)(http://cafe.naver.com/happybupdang/1955)>에 의하면 「kāmarāgānusaya[慾貪], paṭighānusaya[저항], diṭṭhānusaya[견해], vicikicchānusaya[의심], mānānusaya[자만], bhavarāgānusaya[존재에 대한 貪], avijjānusaya[무명]」의 7가지로 설명됩니다.
아마도 전도된 sannā의 개입에 의해 인식과정이 왜곡되면 쉬고 있던 잠재성향이 일어나는데, 일어나는 형태가 탐진치인 것으로 이해됩니다. 7가지의 anusaya를 분류하면, kāmarāgānusaya-bhavarāgānusaya는 탐(貪), paṭighānusaya는 진(嗔), diṭṭhānusaya-vicikicchānusaya-mānānusaya-avijjānusaya는 치(癡)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http://cafe.naver.com/happybupdang/4066 등에서 rāgānusaya-paṭighānusaya-avijjānusaya로 압축되어 나타나는 것도 이런 이해의 측면이라고 할 것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해피설법회를 통해 차츰 정리할 계획입니다. 다만, 여기서는 sannā-anusaya-탐진치[rāga-dosa-moha]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하는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으로 하려 합니다.
[120916 보완] <꿀과자의 경(M18)(http://cafe.naver.com/happybupdang/4985)>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떠나고, 의혹을 벗어나, 회한을 끊고,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갈애를 끊은 그 거룩한 님에게는 지각이 경향을 갖지 않는다[brāhmaṇaṃ akathaṃkathiṃ chinnakukkuccaṃbhavābhave vītataṇhaṃ sannā nānusenti ]」고 하여 sannā와 anusaya가 연결되는 관계를 보여줍니다.
[130604 보완] http://cafe.naver.com/happybupdang/3407는 rāgānusayo anuseti-paṭighānusayoanuseti-avijjānusayo anuseti라고 하여 sannā와 anusaya가 연결되는 관계를 다시 보여줍니다.
citta가 탐진치에서 풀려나는 것을 해탈이라고 하고, 그 방법이 상락아정을 무상-고-무아로 바꾸는 위빳사나인 것을 보면 타당한 이해일 것 같습니다. 그러니 위빳사나는 「sannā를 바꾸는 수행」이라고 할 것입니다.
경전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sannā가 나타납니다. 차츰 그 의미를 정리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그 종류만 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1. sannā[상(想)-내적과정]의 종류 ☞ 답글 참조.
2. 세계관으로 분류하는 sannā ☞ http://cafe.naver.com/happybupdang/4678
[출처] 상(想)[sannā]-잠재성향[anusaya]-탐진치[rāga-dosa-moha]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하는 필요성 ||작성자 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