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학은 유명한 경주 최부자의 후손으로, 상해 임시정부 최대 후원자였던 최준(崔浚)이 1947년 설립한 대학이었다. 1964년 대학 형편이 어려워지자 최준은 이병철 당시 삼성회장에게 학교 운영을 맡겼으나, 1966년 사카린 밀수사건이 터지면서 이병철은 대학을 정부에 헌납한다. 이후락 씨가 중간에 들어 대학을 넘기라고 했다는 증언이 있다.
청구대학도 약점이 잡혀 당시 중앙정보부의 권유를 받았다고 했다. 독립운동가였던 야청(也靑) 최해청(崔海淸)이 1950년 '제2의 독립운동가 양성'이라는 기치아래 전 재산을 털어 세운 대학이었다. 1967년 경리부정과 신축교사 붕괴사고가 터지면서 형사문제가 생기자 이사회가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설립자를 배제한 채 정부에 학교를 넘겼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