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栩 [상수리나무 허]

VIS VITALIS 2016. 7. 14. 11:55

・『莊子』齊物論篇 莊子』齊物論篇 莊子』齊物論篇 莊子』齊物論篇

昔者莊周夢爲胡蝶 昔者莊周夢爲胡蝶 昔者莊周夢爲胡蝶 昔者莊周夢爲胡蝶 。栩然胡蝶也 栩然胡蝶也 栩然胡蝶也 。自喩 適志 與。不知周也 不知周也 。

(昔は 莊周 ,夢に胡蝶 と爲れり。 と爲れり。 と爲れり。 栩然 栩然 〔ひらと飛ぶ樣〕して 〔ひらと飛ぶ樣〕して 〔ひらと飛ぶ樣〕して 〔ひらと飛ぶ樣〕して 〔ひらと飛ぶ樣〕して 〔ひらと飛ぶ樣〕して 胡蝶 なり。 自ず から 喩しみて志〔ころ〕に適える心くばかりな。 しみて志〔ころ〕に適える心くばかりな。 しみて志〔ころ〕に適える心くばかりな。 しみて志〔ころ〕に適える心くばかりな。 しみて志〔ころ〕に適える心くばかりな。 しみて志〔ころ〕に適える心くばかりな。 しみて志〔ころ〕に適える心くばかりな。 しみて志〔ころ〕に適える心くばかりな。 しみて志〔ころ〕に適える心くばかりな。 しみて志〔ころ〕に適える心くばかりな。 しみて志〔ころ〕に適える心くばかりな。 周たるを知〔さと〕らざ たるを知〔さと〕らざ たるを知〔さと〕らざ たるを知〔さと〕らざ たるを知〔さと〕らざ るなり。 るなり。 Cf.Cf.Cf.福永光司譯 福永光司譯 福永光司譯 p.1p.1p.135 )




 [상수리나무 허]
1. 상수리나무(참나뭇과의 낙엽 교목) 2. 기뻐하는 모양 3. 황홀한 모양

[부수]木 (나무목) [총획] 10획


・『莊子』齊物論篇 莊子』齊物論篇 莊子』齊物論篇 莊子』齊物論篇

昔者莊周夢爲胡蝶 昔者莊周夢爲胡蝶 昔者莊周夢爲胡蝶 昔者莊周夢爲胡蝶 。栩然胡蝶也 栩然胡蝶也 栩然胡蝶也 。自喩 適志 與。不知周也 不知周也 。

(昔は 莊周 ,夢に胡蝶 と爲れり。 と爲れり。 と爲れり。 栩然 栩然 〔ひらと飛ぶ樣〕して 〔ひらと飛ぶ樣〕して 〔ひらと飛ぶ樣〕して 〔ひらと飛ぶ樣〕して 〔ひらと飛ぶ樣〕して 〔ひらと飛ぶ樣〕して 胡蝶 なり。 自ず から 喩しみて志〔ころ〕に適える心くばかりな。 しみて志〔ころ〕に適える心くばかりな。 しみて志〔ころ〕に適える心くばかりな。 しみて志〔ころ〕に適える心くばかりな。 しみて志〔ころ〕に適える心くばかりな。 しみて志〔ころ〕に適える心くばかりな。 しみて志〔ころ〕に適える心くばかりな。 しみて志〔ころ〕に適える心くばかりな。 しみて志〔ころ〕に適える心くばかりな。 しみて志〔ころ〕に適える心くばかりな。 しみて志〔ころ〕に適える心くばかりな。 周たるを知〔さと〕らざ たるを知〔さと〕らざ たるを知〔さと〕らざ たるを知〔さと〕らざ たるを知〔さと〕らざ るなり。 るなり。 Cf.Cf.Cf.福永光司譯 福永光司譯 福永光司譯 p.1p.1p.135 )



栩然胡蝶也 栩然胡蝶也 栩然胡蝶也 。自喩 適志 與。不知周也 不知周也 。




〈주석〉
〗 기대다 은, 〖〗 안석 궤, 〖(소조)〗 쓸쓸한 모양. 〖(화접)〗 장자()가 꿈속에 나비가 된 고사로, 『장자()』 「제물론()」에, “(석자장주몽위호접) (허허연호접야)(자유적지여) (부지주야) (아연각) (칙거거연주야) (부지주지몽위호접여) (호접지몽위주여)”라는 말이 나옴. 뒤에 꿈을 가리킴.
〗 술이 깨다 성, 〖〗 꾀꼬리 앵, 〖〗 소매 몌, 〖〗 들다 교

[네이버 지식백과] 「만흥」 이수 홍세태1) [漫興 二首 洪世泰] (조선시대 한시읽기(下), 한국학술정보(주))



「만흥」 이수 홍세태1)

   ]

其二(기이)
高閣深深夏氣淸(고각심심하기청) 높은 누각 깊고 깊어 여름 기운 맑은데
雲流雨去日微明(운류우거일미명) 구름 흘러 비는 개고 해는 희미하게 밝네
閉門寂寞靑山近(폐문적막청산근) 문 닫으니 적막하여 푸른 산이 가깝고
隱几蕭條芳草生(은궤소조방초생) 서궤(書几)에 기대니 쓸쓸하여 방초가 피어 있네
夢裏不知爲化蝶(몽리부지위화접) 꿈속에서 나비로 변화한 걸 몰랐는데
酒醒何處有啼鶯(주성하처유제앵) 술이 깨자 어디선가 꾀꼬리 울어대네
林風夕起吹雙袂(임풍석기취쌍몌) 숲 바람이 저녁에 일어 양쪽 소매에 불어오니
矯首晴天緩步行(교수청천완보행) 머리 들어 갠 하늘에 천천히 걸어가네

〈감상〉
이 시는 34세에 지은 작품으로, 『소대풍요()』와 『대동시선()』에 실려 있다. 평이()하면서도 충담()한 풍격을 느끼게 하여 홍세태() 시작품의 대체적 성향을 잘 보여 주는 작품으로 지적되곤 하는 시이다. 동시에 천기()가 발현되고 당풍()의 문학성이 한껏 두드러진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이 시를 전후한 시기에 지은 시가 수작()으로 꼽히는데, 홍세태는 20대 후반에 낙사(, 낙사의 모임은 1650년대에 시작되었고, 임준원()이 후원했던 1680년대에 가장 번성했다가, 그가 죽고 김창흡()이 영평으로 은거한 1689년경에 흩어진 것으로 알려짐)에 참여하고, 낙사의 활발한 모임은 1680년대 10년 정도 기간에 이루어졌던 점을 감안하면, 홍세태의 이런 수작()들이 낙사의 활동과 상당한 관련성을 지닌다고 생각된다. 지우()들과 문학을 토론하고 서로의 작품을 연찬()하는 가운데 문학성과 질적 수준이 한층 더 높아질 수 있었던 것이다(박수천, 「유하() 홍세태()의 시문학」).

〈주석〉
〗 기대다 은, 〖〗 안석 궤, 〖(소조)〗 쓸쓸한 모양. 〖(화접)〗 장자()가 꿈속에 나비가 된 고사로, 『장자()』 「제물론()」에, “(석자장주몽위호접) (허허연호접야)(자유적지여) (부지주야) (아연각) (칙거거연주야) (부지주지몽위호접여) (호접지몽위주여)”라는 말이 나옴. 뒤에 꿈을 가리킴.
〗 술이 깨다 성, 〖〗 꾀꼬리 앵, 〖〗 소매 몌, 〖〗 들다 교

각주

  1. 1 홍세태(洪世泰, 1653, 효종 4~1725, 영조 1):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도장(道長), 호는 창랑(滄浪)·유하(柳下). 무관이었던 홍익하(洪翊夏)의 아들로, 조선 후기 위항문학의 선성(先聲)을 올린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5세에 책을 읽고 7, 8세에는 글을 지을 만큼 일찍부터 문장에 재능을 보였으나 중인(中人) 신분이었으므로 제약이 많았다. 경사(經史)와 시(詩)에 능통하여 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이규명(李奎明) 등의 사대부들과 수창(酬唱)하며 친하게 지냈다. 또한 임준원(林俊元)·최대립(崔大立) 등의 중인들과 낙사(洛社)라는 시사(詩社)를 만들어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 1675년(숙종 1) 식년시에 잡과인 역과(譯科)에 응시하여 한학관(漢學官)으로 뽑히고 이문학관(吏文學官)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이문학관에 부임하게 된 것은 이로부터 16년 뒤인 1698년이었다. 1682년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묵(詩墨)을 얻어 간직했다. 1698년 청나라 사신이 왔을 때 좌의정 최석정(崔錫鼎)이 추천하여 시를 지어 보인 것이 임금에게 인정받아 제술관에 임명되었다. 그는 문학적 재능은 뛰어났으나 평생을 궁핍하고 불행하게 살았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광좌(李光佐)의 도움으로 말년에는 울산감목관(蔚山監牧官)·제술관·남양감목관 등을 지내기도 했다. 1712년(숙종 38) 위항시인 48명의 시작품을 모아 『해동유주(海東遺珠)』라는 시선집(詩選集)을 편찬하는 등 위항문학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731년 사위와 문인들에 의해 시문집인 『유하집(柳下集)』 14권이 간행되었다.
조선시대 한시읽기(下)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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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시읽기(하)』는 한문학의 백미인 한시의 역사에서 주목받는 인물들을 바탕으로 성석린에서 조선중기 이이까지 51가의 시 200여 편를 모아서 주석을 달고 국역과 간략...자세히보기
저자
원주용 | 교수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박사과정 졸업(문학박사). 안동대학교, 한림대학교 강사. 현) 성균관대학교, 원광대학교, 상지대학교 강사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지역연구소 연구교수.

[네이버 지식백과] 「만흥」 이수 홍세태1) [漫興 二首 洪世泰] (조선시대 한시읽기(下), 한국학술정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