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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지 못할 논문을 쓰는 것보다 고전을 충실하게 번역하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길

VIS VITALIS 2016. 6. 25. 00:26

하이데거는 왜 니체를 비판했을까

등록 :2013-01-11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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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
니체Ⅱ
마르틴 하이데거 지음, 박찬국 옮김/길·3만3000원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사진)의 학문적 여정은 크게 ‘초기’와 ‘후기’로 나뉜다. 그 변곡점에는 그가 한평생 대결하고자 했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에 대한 태도 변화가 있었다. <존재와 시간>으로 대표되는 초기 하이데거의 사상이 니체를 긍정하고 스스로 니체의 사상을 시대에 맞게 보완하려 했다면, 후기 하이데거 사상에서는 니체를 “존재 망각의 극단”이라며 극렬하게 비판하게 된다. 하이데거의 이런 사상적 흐름은 1961년 니체에 대한 강의록과 논문들을 모아 펴낸 두권짜리 <니체>에 집약되어 있다.

2010년 <니체Ⅰ>을 번역·출간했던 박찬국 서울대 철학과 교수가 최근 <니체Ⅱ>도 번역·출간해, 이 대작의 한국어판 완역을 마무리했다. 니체와 하이데거를 주로 연구해온 박 교수는 자신의 저술활동뿐 아니라 니체의 <비극의 탄생> <아침놀> 등 그들의 주요 저작들 번역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8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오래가지 못할 논문을 쓰는 것보다 고전을 충실하게 번역하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니체를 긍정했던 하이데거는 나중에 니체의 사상이 ‘존재 망각’의 극단으로서, 서양의 형이상학을 극복한다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완성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책은 그 과정을 빼곡히 담고 있습니다.”

니체 긍정했다가 부정한 이유 설명
관련 강의록 등 모아 펴낸 책 완역
“인간 중심주의 시작이며 극단” 지적

박 교수는 하이데거의 <니체>가 놓인 맥락을 이렇게 설명했다. 하이데거는 현대 기술문명에 대해 인간의 고귀함이나 사물의 본질적 성격을 모두 ‘계산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환원시키는 체제라고 비판하고, 미국과 옛소련의 자유주의·공산주의 이데올로기 역시 현대 기술문명의 이런 성격을 관철하는 수단으로 봤다. 그는 대안으로 독일 사회와 나치즘에 희망을 걸었으나, 1938년께부터는 나치즘을 비판하는 쪽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인간들을 소모품으로 조직하는 나치즘이 기술문명의 본질적 성격을 오히려 더 극명하게 드러낸다고 봤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에게 니체 사상과의 대결은 나치즘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그는 니체가 말한 ‘힘에의 의지’(권력의지)에 대해 ‘사물과 인간을 기술적으로 지배하고 조정하려는 의지와 다름 없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하이데거는 또 니체가 궁극적으로 ‘가치’라는 도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하며, 그런 니체의 사유가 사물(존재)의 고유성을 망각해온 서양 형이상학의 역사를 완성하는 단계라고 생각했다. 곧 니체 사상은 존재 자체의 고유성을 파악하려 하지 않고 인간의 입장에서 사물을 이용하고 지배하려는 관점을 담고 있어, ‘인간 중심주의’의 시작이며 극단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하이데거의 이런 니체 해석은 매우 날카롭고, 때문에 그 비중이 크다”고 했다. 다만 니체란 인물의 스펙트럼이 워낙 넓어 ‘경직된 틀을 박차는 창조성’(들뢰즈)에서부터 ‘열등한 종에 대한 학살을 정당화하는 제국주의적 착취’(루카치)까지, 다양한 풀이가 가능하기 때문에 “유일하게 참고해야 할 해석은 아니”라고 했다.

박 교수 스스로는 니체로부터 오늘날 ‘공정한 경쟁’ ‘생산적 경쟁’ ‘경쟁의 리더십’과 같은 긍정적 의미를 되살릴 수 있다고 본다. 니체가 지닌 ‘귀족주의’의 긍정적 측면을 보는, 흔치 않은 풀이다. 니체는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이 평등할 수 없으며, 인간들 사이의 경쟁·우열 관계가 결코 사라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로마 사람들이 보였던 건강한 인간성 또는 귀족적 덕성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며, 피안이나 유토피아 등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선(善)과 운명을 향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20세기 근·현대 철학이 대부분 인간의 평등을 강조하고 지상천국을 내세우는 기독교 사유의 틀로부터 자유롭지 않은데, 니체와 마키아벨리 정도가 여기에서 벗어나 인간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예컨대 골목 상권까지 침해하는 재벌 행태에 대해, 자신보다 크고 강한 상대에게 정정당당하게 맞서고 약한 상대와는 싸우지 않고 관용을 베푸는 ‘덕성’을 잣대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요? 니체는 이처럼 근대에 들어 망각된 ‘인간성’을 환기시키는 철학자라 할 수 있습니다.”

박 교수는 현재 <존재와 시간>에 대한 상세한 해설서를 쓰고 있다고 했다. <니체와 불교> <쇼펜하우어와 불교> 등의 저술도 집필할 계획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