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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과 보장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정권 아래에서 생각해보다

VIS VITALIS 2016. 5. 30. 10:32

1866년 조선의 천주교인 대학살(8천여명)

1866년 상선(미국인 소유, 영국인 사용)의 조선 침략(8월)

1866년 프랑스 군함의 조선 침략(9월~11월)

1871년 미국 군함의 조선 침략

1875년 일본 군함의 조선 침략

1876년 일본 군함의 조선 침략


이런 쉬운 얘기를 병인양요니 신민양요니 하는 말은 우리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그 때 죽은 우리 백성들의 억울함이란...

이하응의 국제정치적 무감감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지만 그것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 사후적인 것이기도 하다.


억울한 것은 그 침략으로 숨진 사람들이다.

이들의 죽음은 이후 더 많은 죽음을 암시한 사건이기도 하다.


정치는 생명을 좌지우지한다.


현재 남북한 관계를 다루는 박근혜의 아둔함을 생각하면 한숨 밖에 나오지 않는다.

저들에게 정권을 준 국민들은 반성해야한다.


쓰레기장에서 쓰레기를 찾아내는 능력을 감탄해야하나

여러 사람들이 이 역사의 말머리를 돌려 잘 사는 나라, 어이없이 목숨을 빼앗기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데

힘써야 한다.


멀다.

이 땅이여

평화여 목숨의 안전이여







*흥선대원군은 1866년 정초부터 천주교 금압령()을 내렸다. 이후 몇 개월 동안 프랑스 선교사 12명 가운데 9명을 비롯하여 남종삼(정의배() 등 한국인 천주교도 8천여 명이 학살되었다.

그해 5월 조선을 탈출한 펠릭스 클레르 리델(Félix Clair Ridel) 신부는, 중국 톈진[]에 주둔한 프랑스 인도차이나함대 사령관 피에르 로즈(Pierre Roze) 제독에게 한국에서 일어난 천주교도 학살사건을 알렸다


*1866, 제너럴셔먼 호 사건도 굳이 그 배 이름을 알아 무엇하겠는가. 이 사건 또한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 말레이시아사람 또 중국 사람도 탔는데 미국인 세명, 영국인 2명과 함께 몰살된 24인에 포함된다고 한다. 


 1867년 1월 슈펠트(Shufeldt,R.W)의 탐문 항행과 1868년 4월 페비거(Febiger,J.C)의 탐문 항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