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阮堂)은 경학 · 금석학 · 역사학 · 지리학 등을 비롯하여 불교학에까지 정심한 소양을 지닌 데다가 중국미술을 섭렵하고 그 진수를 해독함으로써 당대 최고의 지성이자 미술이론가 · 감식가가 되어 소치(小癡) · 고남(古藍) 등 많은 서화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조선말기의 문인화(文人畵)를 절정에 이르게 하였다. 18세기의 사실주의적(寫實主義的) 경향이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서화예술이 추상적(抽象的) 경향으로 대선회를 하는 것은 서민주도의 문화에서 민족주의문화로 바꿔질 수밖에 없었던 사회의 변화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원당(阮堂)의 생애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사란(寫蘭)에 있어서 한 시대를 그었다고 할 수 있는 명수 또한 원당(阮堂)을 꼽는다.
이 《부작란(不作蘭)》은 원당(阮堂)이 추구하는 내면세계의 문기(文氣)를 가장 잘 나타낸 작품으로서 작가의 내면에 농축된 인생에 대한 깊은 이해가 강한 표현욕구로 조형화된 것이다. 자제(自題)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부작란화이십년 우연사출성중천
폐문멱멱심심처 차시유마불이선」
「不作蘭花二十年 偶然寫出性中天
閉門覓覓尋尋處 此是維摩不二禪」
난화(蘭花)를 그리지 아니한 지 하마 스무 해
우연히 그려진 건 천성일러라
문닫고 깊이깊이 찾아 드니
예가 바로 유마(維摩)의 불이선(不二禪)일세
「이초예기자지법 위지 세인나득지 나득호지야」
「以草隸奇字之法 爲之 世人那得知 那得好之也」
이 난초를 예서(隸書)와 기자체(奇字體) 쓰는 필체로 만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 것이며 어찌 좋아할 수 있겠는가
원당(阮堂)은 서화(書畵)에 있어서 문인화인(文人畵人)들이 가장 중시하는 심의(心意) 즉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완전히 사상(捨象)하고 추상미(抽象美)에 접근하기 때문에 자연히 생략과 상징을 통해서 높은 정신적 차원으로 승화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작란 [不作蘭, Orchid, 不作蘭] - 김정희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미술오천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