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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락호
령, 임자도 유배일기 간정일록(1862-1863) 번역문
- ddubugie
- 2009.03.2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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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1862년)
6월
4일 어사 이인명이 간사한 아전들의 모함으로 좌복에 들어와 진주진 군관들을 보내 범인들을 잡아오게 하였다. 창졸간의 일이었다. 어쩔 수 없어 내려갔다. 아들 정언 김인섭은 어둠을 무릅쓰고 먼저 갔다.
5일 오후 진주진의 관리 10여명이 뒤를 쫓아 도착했다. 부득이 비를 무릅쓰고 내려갔다. 어두워지자 비가 그쳤다. 문태점에서 잤다.
6일 날이 갰다. 오후 진주로 도착해 진영 군방에 죄수신분으로 붙잡혀 갇혔다. 곽채(사유)와 한홍락도 같은 변을 당했다.
12일 암행어사 이인명이 진주에 도착했다. 감옥에 들어갔다. 곽채(사유)도 같이 감옥에 들어갔다. 벗 박수익(숙연), 벗 이명권(대윤) 등 여러 벗들이 안핵사가 모함을 곧이들음으로 인해 뒤따라 체포되어 유배되는 재난을 당했다. 해가 지자 이웃에 사는 박상송(문서), 박상호(장서), 권익수(가원), 이선화, 집안 조카 김대진 등 모두가 목에 차꼬가 채워지게 되었다. 일시에 진주와 단성현 인사들이 줄세워져 갈고리로 묶이었다. 체포된 자의 꼴들을 다 기록할 수 없으니 비참함이 초나라의 감옥에 갇힌 원망이나 한나라의 감옥에 갇힌 화보다 더욱 컸다. 진주 목사 정면조가 관리를 파견해 위로를 전하고 제호탕을 보내왔다. 저녁식사 후 아들 정언 김인섭이 와서 말하기를 모함을 곧이들은 영남 선무사 이참현이 우리들을 잡아들여 조사하라는 엄한 지시를 내렸다 하니 운수가 사납게 되었다.
13일 4촌 김문서와 여러 벗들이 가혹하게도 목에는 칼, 발에는 차꼬가 채워지는 화를 당했다.
14일 식사 후 어사 이인명이 있는 곳으로 잡혀 끌려갔다. 치욕이 어디다 비할 수 없었으나 독한 형벌만은 면해졌다.
15일 탁한섭을 만났다.
16일 정언 김인섭이 체포되었다.
17일 표형 권성안(정택)씨가 마침내 혹형을 당하였다.
18일 아들 정언 김인섭의 편지를 받았다. 단성현 읍저에 머물고 있다한다.
19일 암행어사 이인명이 떠나갔다.
24일 아들 정언 김인섭이 일시도 지체하지 말라는 엄한 지시에 따라 바로 떠나갔다. 연일 비가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도 부족해 도끼로 하늘을 찢은 듯 퍼부었다.
27일 7촌 조카 김상지가 집안조카 김광진이와 함께 서울을 향해 떠났다. 표형 권성안씨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7월
1일 비가 왔다. 진주목사 정면조가 영을 떠나 출발했다.
3일 큰비가 왔다.
4일 큰비가 왔다. 청산 사는 정동훈(사칭)과 집안 조카 이명이가 비를 무릅쓰고 와 위로해주었다. 노비가 영문으로부터 공문을 가지고 와 제출하였다. 본장의 제목은 석방을 허락함이다. 선달 구원희(시극)와 구준(영원) 두 벗은 10촌 형제간인데 둘 다 재난을 당하여 여러 날 같이 고생한 사이다. 이들과 함께 당세에 유명한 시문을 베꼈다.
5일 비가 내렸다.
6일 비가 갰다. 정동훈(사칭)이와 집안조카들을 송별했다.
10일 진주목사 정면조가 관아로 돌아왔다.
11일 석방되었다. 밤을 타 집으로 돌아왔다.
12일 아버지 제삿날이다. 가까스로 제찬을 올릴 수 있었다. 재종질 김상지가 먼저 돌아왔다. 아들 정언 김인섭의 편지를 받아 읽었는데, 그것은 자신은 죄상을 취조한 다음에 석방되었으나, 나는 꾸짖어 유배에 처하라는 엄한 지시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24일 오후 나를 체포하라는 관의 공문이 있었다. 비변사 공문이 순영에 도착하였는데 순영의 관할 아래 단성읍이 있기 때문이다. 저녁에 갑자기 음식이 체하여 토사곽란이 크게 일어났다.
25일 병으로 관에 들어가지 못했다. 여러 명이 나를 잡으러 와 핍박하였다.
26일 병세가 어제와 같아 관에 들어가지 못했다. 나를 잡아 가려고 관에서 사오십인이 몰려 왔는데 온 마을이 떠들썩하고 난리가 났다.
27일 어머니의 제삿날이다. 집안이 큰 난리가 나 제사를 지내지 못했다. 황혼 무렵 아들 정언 김인섭이 왔다.
28일 부자가 함께 읍저에 들어갔다. 아전들이 쓰는 방에 구금을 당하였다.
29일 아들 정언 김인섭이 나에 대한 보증을 서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8월
1일 원근의 오랜 벗들과 친척들이 찾아와 위로해주었다. 그 숫자가 많아 이루 다 쓸 수가 없다.
9일 비가 내렸다. 친척 선달 권대현(병엽)이 비를 무릅쓰고 찾아와 위로했다. 술을 사 여러 잔 권했고 두터운 도움을 베풀어 주었다. 삼가읍에서 보낸 사람이 영문의 공문을 가지고 왔다. 삼가읍으로 이감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들 정언 김인섭이 진주로부터 비를 무릅쓰고 왔다가 밤을 타 집으로 돌아갔다.
10일 비가 갰다. 삼가읍으로 나아갔다. 냇가 집을 니자가다가 들러 멈추고 숙박했다.
11일 날이 저물 무렵 삼가읍에 도착했다. 아들 정언 김인섭이 함께 도착했다. 강점에 숙박하였다. 친척 정언 박정현(맹윤)이 나를 지켜주기 위해 우리보다 앞서 이곳에 와 유숙하고 있었다.
12일 식후 관원에게 조사를 받았다. 관원은 임사준이라 일컬어지는 이였다.
13일 아들 정언 김인섭이 집으로 돌아갔다.
21일 아들 정언 김인섭이 왔다.
22일 다시 조사를 받다. 오후에 정언 김인섭이 집으로 돌아갔다. 진주목사 정면조가 달성으로 갔다. 상경할 것이라 하였다.
23일 돌아가신 왕고모 기일이다. 무단히 일을 일으켜 형벌을 받아 제사를 폐하게 되었다. 한 밤중에 어찌 해 일이 이리 되었나 후회하면서 속을 썩였다. 아들 정언 김인섭이 밤을 타 찾아왔다.
24일 첫닭이 울자 아들 정언 김인섭이 합천으로 출발하였다. 진주목사 정면조를 따라갔다가 강양로 좌측에서 헤어져 돌아왔다.
25일 아들 정언 김인섭이 귀가하였다.
27일 친구 정사칭과 그 동생 정영로(동왕) 그리고 집안 형 김사직(식)씨와 김사형(표), 종손 김영진(기석)과 그 동생 김영언(기정), 재종질 김상지가 함께 와 같이 묵으며 밤을 새며 이야기하였다.
28일 친구들을 환송하였다. 본고을의 원이 백일장을 열었다.
윤 8월
1일 아들 정언 김인섭이 왔다.
2일 아들 정언 김인섭이 집으로 돌아갔다.
3일 벗 박신영(주번), 이윤길(오영), 권극첨(수성)과 정담을 나누면서 같이 잤다.
4일 벗들을 환송했다.
7일 세 번째 조사를 받았다.
8일 유배지가 영광 임자도로 정해지기에 이르렀다. 삼가읍 호장 이덕규, 이방 이낙훈, 형방 염덕호가 자못 정성을 표시해 주었다. 고마웠다.
9일 집에 돌아와 머물러 잤다.
10일 단성읍에서 들어가 유봉손의 집에서 머물렀다.
11일 관에서 집안 조카 김광진을 귀양가는 죄인을 압송하는 사람으로 정했다.
12일 문제가 있어 읍에 머물렀다.
13일 어렵사리 바로 도착하여 관청의 일을 부탁하고 나왔다. 관교 강정술로 귀양가는 죄인을 압송하는 사람이 바뀌어졌다.
18일 유배길을 떠났다. 법장에 이르러 잤다.
19일 각처 선조들의 묘에 성묘하였다.
20일 운룡에 있는 묘소에 성묘했다. 수대점에 이르자 집안 친척 오랜 벗들과 마을의 나이많으신 어른들이 눈물을 뿌리며 송별하였다. 사람들의 숫자가 도회지를 이룰 정도여서 다 쓸 수가 없다. 6촌형 김장흥, 7촌조카 김우서(우), 김사형과 더불어 황산점에 이르러 함께 잤다. 벗 이윤길 역시 뒤쫓아 도착했다.
21일 이른 아침 7촌조카 김윤서(경)가 닭 한 마리를 끓여왔다. 진실로 인륜의 정이란 이같이 돈독한 것 아니겠는가. 벗 이윤길이 7촌 조카 김윤서 노인과 함께 떠나갔다. 6촌 형 숙질과 김사형이가 부곡까지 따라왔다가 오후에 작별했다. 길을 가다 벗 권형지(재성)의 집을 들러 술을 사와 마시고 이별했는데 이별의 눈물이 흘러 옷깃을 적셨다. 압동 권백현(응락)의 집을 지나게 되었는데 백현이 집에 없어서 마음 아팠다.
22일 보점에 도착하니 아들 정언 김인섭이 자기도 함께 가겠다고 행장을 꾸려왔다. 집안 조카 김이, 촌수가 아주 먼 일가 김해문이가 술을 가지고 와 권하고 이와 별도로 노자를 챙겨주었다. 사근역점에서 낮 요기를 하였다. 난평점에 투숙하였다. 주인이 최씨성을 가진 이였다. 친척 김덕첨이 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같이 잤다.
23일 친척 김덕첨과 헤어졌다. 팔량치를 넘어 인월을 지나가다가 이십년전 옛주인 김성규의 집을 찾아갔다. 김성규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그의 자부가 옛날처럼 집안을 꾸리고 있었다. 술 한잔을 마시고 비전점에 이르러 낮 요기를 하였다. 여원치를 넘어 남문거리에 이르러 술을 사 마시고 저녁에 용성에 도착하여 남문 바깥에서 유숙하였다.
24일 아침 일찍 출발하였다. 십리쯤 가니 가게하나가 있어 아침식사를 하였다. 황병사정려 앞에 있는 죽곡을 지났다. 비홍치를 넘어 술 한 잔을 사 마시고 적성강을 건넜다. 적성강 서쪽에 가게가 하나 있어 낮 요기를 한 다음 순창읍에 이르렀다. 술을 사 갈증을 달래고 저녁에 방축거리의 어느 가게에 투숙하였다. 성씨를 무어라고 한 주인은 자못 괜찮은 사람이었다. 방금 집을 고쳐서 그 연유를 물으니 지난 여름 민란 중에 부서졌다고 하였다. 그래서 음식과 방이 자못 정결하여 나그네의 밤을 기분좋게 보냈다.
25일 아침 식사 후 출발하였다. 담양읍에 도착하여 국점에서 술 한 잔을 사마셨다. 광주성내 가게에서 낮 요기를 하였다. 장성에 이르러 여우천점에서 묵었다. 굼벵이가 많아 견디고 잠들 수 없었다.
26일 가작교를 건너 월평 참봉 김경휴의 집 부근을 지나게 되었다. 7년전인 지난 을묘년(1855) 여름 지도에 갈 때 참봉 김경휴의 집에 유숙하여 안면이 있으나 금일 행색으로 어찌 얼굴을 대할 수 있겠는가 하여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장승점에 도착하니 여기서부터 영광땅이다. 사창점에서 낮 요기를 하였다. 마침 장날이어서 사람과 물건이 풀 우거지듯 잡다하였다. 마편령을 넘어 수대등점에 이르러 유숙하였다. 방값이 지금까지 중 제일 저렴하다.
27일 식사 후 원당에 있는 일가 사람의 전장에 이르렀다. 집안 어른 김두기씨는 5년 전인 정사년(1857)에 세상을 떠났고 그 아들 석순(자 : 자의)도 지난 해(1861) 팔월에 죽었다. 그런데 맏손자 구현이가 어린나이에 고아가 되었음에도 불구 이미 장성하여 그 그릇됨이 얕지 않고 품격이 준수하여, 아버지가 못한 일을 자식이 할 수 있게 되어 어찌 다행이 아니랴. 여러 일가 사람들이 모여 말하기를 타향에서 부평초처럼 떠돌 때에는 일가붙이들이 서로 의지가 되는 것은 바뀔 수 없는 법이라 하였다. 그 집에 유숙하였다.
28일 식사 후 여러 일가붙이들과 헤어지고 곧바로 영광부내로 들어갔다. 일가 김경선이가 따라 와 함께 갔다. 관이 비어있어서 공무를 맡기고 호장소를 나왔다. 신표를 따라 임자도로 향해 나아갔다. 입석점에 이르러 울타리 남쪽을 바라보니 맑고 깨끗한 초당 하나가 있었다. 그 주인을 물으니 김관성의 동생 김관혁의 집이라 한다. 김관성이 어찌 상산 김씨의 후예라 하지 않겠는가. 옛날 7년전인 지난 을묘년(1885)에 남쪽에 갈 때 한번 방문하였는데 온갖 정성을 다하여 같은 뿌리로서의 정을 다했으니 선비 집안의 예절을 안다하겠다. 마음에 달리 생각하여 그때 이후 항상 동경하였다. 들어가 계시냐고 묻자 3-4년 전에 부안 석포로 이사하였다 하니 매우 안타까웠다. 지금은 그 동생이 형의 집을 취하여 살고 있었다. 형제는 한 몸이라. 동생이 잡아 끌어 망설이다가 들어갔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집에 유숙하였다. 거칠지 않게 편안히 접대해 주었다. 시경의 ‘지금의 사람 중에 나와 같은 성씨만한 사람 없네’란 구절은 바로 이 같음을 일컫는 것이리라.
29일 아침 가마꾼 차돌이가 달아났다. 멈출 수가 없어 나는 말에서 내리고 정언 김인섭은 걸었다. 마부도 보냈다. 오히려 영광부로 들어가 식사를 하였다. 일가붙이를 방문하고자 하여 함평 증산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이십여리를 떨어진 사납촌에 이르러 계곡의 입구로 들어가 동쪽으로 한 산줄기를 넘어 언덕을 좇아 풀을 헤치면서 동남쪽으로 향하여 가다가 계곡 입구 시냇가에 닿으니 다 쓰러져 가는 가게 하나가 있었다. 막걸리를 사 갈증을 달래고 연이어 길을 가 십여리를 가니 지명이 자양이었고 회암 주희선생 사우가 우뚝 서 있어 추모하는 느낌이 저절로 일었다. 사람은 피곤하고 말은 힘이 빠져 죄에 연루되어 가는 길임을 잊고 사우에 들어갔다. 정언 김인섭은 강당에 앉아 쉬었다. 홀연 아무 일 없이 이지저리 떠돌아다니는 파락호에게 어찌 주희선생의 사우가 허락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녁을 타 증산서원에 당도하였다. 서원은 상산김씨 영중추공 김운보의 둘째아들 좌명공 김덕생의 위패를 모셔놓은 곳이다. 저녁에 일가 김춘오(채해, 갑자생)와 김치도(상현,갑술생)가 찾아왔다. 이들과 더불어 집안의 계통을 이야기하는 데 친절하고 정성스러웠으며 믿음직스러웠다. 일가사이의 친근함이란 백대를 가도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나와 더불어 같이 상산김씨 22대 손이었다. 밤중까지 이야기하다가 잤다.
9월
1일 식사 후 일가붙이 김내집(중해, 갑인생)의 집을 방문했다. 그 동생 김여서(운해, 병인생, 김치도의 아버지)와 김내윤(유해, 갑술생, 김춘오의 동생), 마을 문안거주 일가 김사정(지영, 계미생)이 함께 있어 서로 술을 권하였다. 정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가 그들과 헤어져 길을 나섰다. 십리쯤 가니 가게가 있어 좋은 술을 사 마셔 크게 취하였다. 가던 발길을 멈추고 길옆 다 쓰러져가는 가게에서 잤다.
2일 일찍이 출발하여 함평향교앞 가게에 이르러 가마꾼을 고용했다. 아침 식사로 고기를 사 배부르게 먹고 출발하였다. 망운 시점에 이르러 점심 요기를 하였다. 물의암점에 이르러 가던 발길을 멈추고 잤다.
3일 식사 후 길을 나서 토등을 지나 양간다리를 건너 강산나루에 이르니 지도땅이다. 송항점에서 점심 요기를 하고 산줄기 하나를 넘어 봉수동을 지나니 금출곶이다. 저마바구에 도착하였다. 배가 끊어져 건널 수가 없어 가던 길을 멈추고 그곳에서 잤다.
4일 석양 무렵 배가 통했다. 임자도에 닿았다. 율시 두 편을 지어 근심걱정을 덜었다.
# 바다 한 귀퉁이 임자도 외로이 나룻배 닿았는데 석양이 기웁니다. 바람은 하늘에서 불어오고 고래등 같이 큰 파도 찢겨져 출렁입니다. 사람들 진관에서 사는데 게딱지같은 집 거칠기 그지없습니다. 임금께서 은혜를 베풀어 이 몸 죽지 않았듯이 이 나라에 불쌍히 여기지 않는 땅 한조각도 없을 것입니다. 아들은 무슨 죄가 있어 험난한 고초를 무릅쓰나. 세상에 부끄러운 것이 아비 바르지 못한 것입니다. 백수 늙은이 눈을 감고 온 세상을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며 날뛰다가 거친 이곳에 내던져지게 되었습니다. 어려움을 만났으나 고맙게도 임금님의 은혜를 입었고 속됨을 피하려 편경을 두드리니 도리어 부끄럽습니다. 인생에는 궁하고 통함에는 끝이 있으나 큰 대지에는 가장자리 없습니다. 임금님께서 외딴 이곳에서 구차하나마 한가로움을 갖게 해 주셨으니 지금부터는 영원히 깊이 숨어서 사는 삶을 즐길 것입니다.
머물 곳을 임자도 진문 바깥 박윤량의 집으로 정했다. 앉아 있으니 먼저 와 있던 벗 이윤대가 찾아왔다. 악수를 하며 서로 기뻐하였다. 이윤대는 지난 칠월 감옥에서 거의 죽게 되었다가 겨우 살아나 여기에 와 머물고 있었다. 그의 6촌형은 제주도의 학사였는데 시골사람들의 우두머리로부터 모함을 받아 강진 고금도로 쫓겨났다. 사람의 마음이 어찌해 힘들지 않겠는가. 나와 이윤대는 지난 유월 진주 감옥에서 환난을 같이했고 또 이처럼 까마득하게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 떠돌아다니며 같이 낮과 밤을 보내게 되니 우연이 아니라 실로 인연의 업보가 있다 하겠다. 또 한 사람이 찾아와 보았는데 진주조창에 거주하던 김도천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선주로서 나라곡식 수천석을 결손이 나게 해 지난 3월 이 곳으로 유배되어 있다고 하였다.
5일 주체기가 있어 매우 좋지 않았다. 소강탕을 복용하였다. 둘째 아이가 죽은 날이다. 심회가 더욱 좋지 않았다. 진장이 우수영에 가 돌아오지 않아 관아 사이 조회공문을 받지 못하여 관인 강정술이 체류하였다.
7일 집안 손님들과 가마꾼 상삼, 그리고 관인 강정술이를 송별했다. 6촌형과 김사형이에게 편지를 보냈다. 또 울재 권용성(원긍)이와 박장서에게 편지를 보냈다.
8일 아들 정언 김인섭이 답답함을 이기지 못했다. 이대윤이와 김도천, 모두 함께 높은 언덕을 올라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살아 있는 물고기를 사 나에게 주었다.
9일 오늘은 가절이다. 마음이 더욱 좋지않았다. 높은 곳에 올라 마음속의 것을 풀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죄에 연루된 몸이 이곳에 온 처음부터 그러기에는 불안하였다. 그래서 집에 머무르며 삼가 주자의 9일시 운으로써 시 한 수를 얽어 만들었다.
#흰머리 늙은이가 큰 바다에 유배되었습니다. 머리 돌려 고향 산을 보려하나 멀리 아득하기만 합니다. 섬에서 이리저리 돌아보아도 뭍은 멀리 흐릿하기만 하고 누추한 집들은 나지막하게 엎드려 멀고 거친 이 땅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긴 울타리에 서리는 겹겹이 내려 추위꽃이 뛰어나고 멀리 떨어진 포구 바람 드세어 낙엽 미친 듯 흩날립니다. 옛날 좋은 시절을 어이 생각하랴. 옷에 꽃을 꽃으니 향기로운 노리게 되었었지요.
10일 아들 정언 김인섭이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객지의 회포가 괜히 처절해져 마음을 잡지 못하였다. 그래서 조금 더 머물게 했다.
11일 정언 김인섭이 집에 가봐야겠다고 이야기하였다. 쓸쓸하고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였다. 같이 배를 타고 저마바구로 나갔다. 이대윤 형과 김도천, 주인 박윤량이 나란히 따라와 배웅했다. 까짓것 말먹이는 마부면 어떠하랴, 술을 통음해 근심을 쓸어버렸다. 해가 이미 기울었다. 곧 아들 정언 김인섭을 저마바구 포구위에서 송별하고 장서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의 미쳐 날뛰는 짓으로 말미암아 푸른 도포를 입고 관직에 종사하던 아들 정언 김인섭이 경향을 뛰어다니다가 더러운 진창길에 엎어져 바닷섬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이것이 어인 재난인가. 사람이 쇠나 돌이 아닌 바에야 어찌 강과 연못의 험함과 풍상과 바닷가의 장기가 서린 안개를 무릅쓰고 맞서 버티어 나갈 수 있을까.평소 자중자애하여 몸을 보전하려 했는데 지금 어지럽고 위험이 눈앞에 닥친 곳에 던져지게 되었다. 초심을 내찢어 발겨 버렸으니 참으로 개탄스러운 뿐이다. 어찌 두루두루 배웠으면서도 이토록 아둔한게 심하고 심한가. 시를 지었다. 가슴속에 맺힌 것을 펼쳐내고 나니 시원하다.
#늙어죽기까지 얼마 남지않은 육십노인 미친 짓을 하였다. 어째서 빨리 저승에나 가지 않고 허물만 쌓아 가는가. 감옥에서 죽을 뻔한 재앙이 나에게 닥쳐왔고, 의금부에서 문초당하는 화가 아들에게까지 미쳤다. 유배지에서 겪는 일, 이것저것 좋고 나쁨을 가릴 수 없겠지만, 아들과 이별하는 일은 천지에 가장 어려운 일이다. 운명이구나! 누구를 탓하며 누구를 원망하리요. 삼가야지! 한 겨울의 추위를 무릅써야만 할지니. 아비가 부끄러운 짓을 하였으니 자식에게 자애로울 수가 없고 하늘의 밝음을 가렸으니 죄를 얻어 형벌을 불러들였다. 아홉 번 넘어지고 열 번을 뒤집어 질지라도 내가 머리를 조아려야 할 일인데 어찌하여 천신만고의 어려움을 너까지 겪어야 하겠느냐. 우리 상산 김씨 집안의 뿌리는 멀고도 깊지만 조상들을 모심에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집안이 기울어질 위태로움에 처해있으니 집안을 힘써 지켜나가거라. 오늘 너를 배웅하면서 한없이 바라노니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자나깨나 애를 써라. 네가 탈이 없고 한없이 크게 되기를 바라리라. 나라사람들이 길과 자리를 다투어 비켜줌이 진기하다. 청춘 이십 네가 나룻배에 배에 올라 있지만 서책 삼천권이 가슴속에 쌓였구나. 아버지야 잘못해서 우환이 시작되었지만, 너야 무슨 죄로 어려움이 따르는가. 어둡고 완고한 이 늙은이 장차 슬그머니 죽고 말 것이니 내가 쇠약해진다고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거라. 부자가 무슨 일로 하늘 끝 멀리 떨어진 타향땅에서 이별을 해야 하는가. 해는 빛을 잃고 푸른 섬은 비통에 잠긴다. 용나무 잎 조각 몸에 지니고 다니다가 모든 것이 시들어버린 국화 피는 계절일지라도 나누어 주어야지. 조정의 누가 상서로운 기린의 소중함을 알리요. 어미소가 송아지 핥는 마음 천지에 한이 없다네. 늙은 소같은 눈먼 아비 어찌 더하여 누를 끼치랴. 기원하나니 마음의 짐을 부려놓고 편히 쉬어라.
이대윤, 김도천, 박윤량과 더불어 임자도 진으로 돌아오려 하는데 저녁 물이 들어오지 않아 주점에 머물면서 물때가 되기를 기다렸다. 나는 술에 취해 깊히 잠이 들었다. 곁에 있던 사람이 흔들어 깨워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보니 월색은 땅에 가득하고 물빛은 하늘에 잇닿아 있었다. 함께 배에 오르니 넓고 텅텅 비어 있는 바다가 가없이 넓었다. 바람을 다스리며 배를 모는데 흥과 운치가 절로 일어 이별의 고통을 잊었다. 여관에 돌아오니 이미 한 밤중이었다.
12일 무료하고 즐겁지 않았다. 옛날 읽었던 주역 책을 수습하였다.
13일 이대윤과 낮과 밤을 서로 상대하며 지냈다. 그 천진난만함이 매우 좋았다. 때때로 서로 실없이 웃음엣소리를 하면서 걱정을 잊었다.
16일 진에 근무하는 최일수가 왔다. 사람이 매우 온화하고 맑았으며 꼼꼼하고 총명해 가히 만나 이야기할만한 사람이었다.
17일 연일 날씨가 개이고 따뜻하다. 정언 김인섭이 옷이 얇고 부족했음이 걱정되었다. 아마 금명간 집에 닿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18일 간정록을 썼다. 간정이란 이름은‘어려움을 참고 정절을 지킴’에서 따온 것이다.
19일 온화하기가 삼월 날씨와 같았다. 최일수가 다시 방문했다. 저녁에 주역을 한번 통째로 읽었다.
20일 이른 아침 임자진장이 지인을 보내 석양에 방문해달라는 뜻을 알려왔다. 진장 남선후는 자못 사람됨이 거칠고 아무렇게나 되먹은 사람이 아니었다. 글이 우아하고 시가 좋았다. 진실로 쇠퇴하고 있는 세상에서 얻기가 쉽지 않은 기재였다. 좋은 술이 나왔다. 함께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니 남모르게 깊이 간직한 근심을 덜고 마음을 화창하게하기에 충분했다. 저녁에 주역을 읽었다.
21일 머리털이 갑자기 빠졌다. 대머리가 될 것 같다. 일이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마음에 걱정되어 즐겁지 않았다. 오늘부터 날마다 머리를 빗기로 하였다. 전 개령현감 김후근을 방문했다. 김후근은 민란으로 책망을 받았으나 성은을 입어 지난 유월 이곳에 유배와 있었다. 한번 보았으나 마치 오랜 사귄 사이와 같았다. 백발을 서로 안타까워하였다. 그는 글을 잘 지었다. 술 마시기와 소략하고 간소함, 도타움과 한가함을 좋아하니 괴로움 가운데서도 형통하고 길한 사람이라 하겠다. 저녁에 운을 던져주며 응하기를 요구해와 저버릴 수 없어 대충 2-3수를 엮어 보냈다.
#한가로운 창문에 한점의 시끄러운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사람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이 곳에 갇히어 시를 읊고 있지만 뜻은 오히려 씩씩하지요. 시를 즐김이 어찌 옛 책에 묻힘만 같지 못하겠습니까. 하필이면 정신이 흐릿하여 밤을 꼬빡 세워야 하지만요. 영달하는 길은 원래 경쟁이 치열해 운명을 뒤집어버리는 파도가 많다합니다. 이치에 밝은 사람조차 끝없이 먼 이 바닷가에서 헤매고 돌아다녀야 하지 않습니까. 비록 처한 곳 곤궁할지언정 열심히 노력한다면 만사형통함을 스스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시를 즐기고 술을 나눔, 이 두 가지가 넉넉한데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사방은 맑게 텅비어 도회지의 시끄러움 끊어졌고 한가히 일없는 사람이 귀인들의 교만함을 도리어 이겼습니다. 곤궁하게 된 처지가 뛰어난 인덕을 가진 벗을 누르지 못할 것이니 티끌많은 세상에 달밤 좋아하기 참으로 어려워라. 짧은 귀밑털 무슨 근심이 흰구름을 몰아왔을까요. 쇠약하여 핏기없는 얼굴에 홍조가 넘칩니다. 강호와 조정의 전각이 서로를 잊었습니다. 가슴 속 깊이 넉넉히 쌓아두고 있음을 그 누가 알 것인가. 신세가 밭두렁 사이에 처해 있을지라도 즐거이 지내려 합니다. 교묘하게 말 잘하는 선비들이 교만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영고성쇠가 흐릿한 꿈속의 일에 불과한 것임을 알고보니 웃음만이 나옵니다. 모든 것이 추운 가을밤 되면 홀연 쇠락하여 지고 마는 것 아니겠습니까. 차고 기우는 저 달은 세상의 영고성쇠를 달관하여있고 세상만사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밀물과 썰물은 항상 들고남이 같습니다. 곧은 길은 본디 품기가 어렵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내가 근심하고 애통했다 하더라도 어찌 나를 이렇게 만든 자들을 너그럽게 용서하지 않겠습니까.
저녁에 주역을 읽다.
22일 머리를 빗었다. 감정록을 썼다. 식후에 화재가 술을 가지고 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화재는 전 개령현감 김후근의 별호다. 둘이 같이 진장에게 갔다. 화재 김후근이 웃음에 이야기를 하여 웃었다. 사람이 참되고 꾸밈이 없었다. 술이 많이 있고 눈더미처럼 쌓여있는 농어회가 색깔도 먹음직스러웠다. 그래서 운을 잡아 시를 지었다.
#큼직한 술잔이 오고가는 가운데 논리 정연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시문의 대가와 함께 하는 풍류가 나그네의 영혼을 울립니다. 섬의 맑은 기운이 드넓은데도 아직 창문이 밝아오지 않음은 장기를 품은 안개가 어둡기 때문일 것입니다. 길이 없는데도 조수는 스스로 들고 나고 섬 언덕 아래에는 마을이 스스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가을 저녁 텅 빈 섬 사념 깊은데 임자도진 청사 텅 비어 절간처럼 적적합니다. 무에도 능하고 글에도 능합니다. 당세의 인물을 보게되어 기쁩니다. 충만한 경륜으로 세상을 구해내고 마음은 충직하여 임금을 기만하지 않습니다. 남쪽의 관문을 맡아 널리 선정을 베풀어 천호의 백성들을 편안히 하면서 외롭고 쓸쓸한 신하 북쪽 임금 계신 곳을 바라보며 상서로운 오색구름을 꿈꿉니다. 황금과 주옥과 같은 시편에 담긴 뜻은 따스하게 덧없는 인생 어지러운 흰머리털을 위로합니다.
저녁에 주역을 읽었다.
23일 흐리고 바람이 불다. 새벽에 머리를 빗다. 화옹이 강제로 일으켜 세워서 또 진에 들어갔다. 더불어 술을 마시고 시 두 수를 지었다.
#근심 많고 추할 분아니라 싱거운 늙은이 등이 시시때때로 당돌하게 임자도진 청사를 들락거립니다. 처세의 좋은 방법은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게하는 것이고, 관직에 있을 때는 청렴만 한 것 없습니다. 술을 마시고 시를 짓는 것처럼 넓어야 하고 시를 짓는 것처럼 자세해야 합니다. 풍류를 절제함으로써 심오함에 이르러 일시 남국에 있으면서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저녁에 주역을 읽었다. 정신이 말똥말똥 잠이 오지 않았다. 앞의 운으로 마음속의 회포를 풀었다.
#쟁반의 음식은 소금만 뿌려 수정처럼 맑고 담박하고, 분수를 좇아 시장기만 끄고 띠집 처마아래 눕습니다. 약간의 술로 근심을 잊음이 성품을 해침은 아닐 것이며 많은 글로 부자가 됨이 청렴을 헤침도 아닐 것입니다. 백성들은 힘써 일함을 근본으로 하고 사치하고 화려함을 부끄러워해야하고 관의 정사는 깨끗함을 지키고 검박하고 아낌을 좋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가 편안하고 한가롭게 지낼 수 있는 것이 모두 임금님의 덕이시니 작은 정성 굳게하여 북극성을 우러러 봅니다.
24일 구름이 끼고 바람 불었다. 새벽에 머리를 빗었다. 식사 후 화재 김후근이 강제로 요구하여 끌려갔다. 시 한 수를 짓고 술 한 잔 마시기를 서로 번갈아 하기로 규칙을 정해놓고 온종일 웃고 이야기하였다. 오언절구, 오언 율시, 칠언절구, 칠언 율시 각 한 수씩을 얻었다.
#맑고 성기어 발 디딜 곳을 잊었고 미치도록 간략해 하늘의 진면목이 나타났습니다. 아름다운 경치는 원래 주인이 따로 있는 것 아니니, 덧없는 인생 모두들 나그네에 불과하답니다.
#슬픈 노래가 백발을 안타까워하고 큰 웃음이 눈을 맑게 합니다. 마주 앉아 잔을 기울이며 옷깃 풀어 헤치고 물가 정자에 의지합니다. 가슴을 가로막는 것 다 내던지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하니 낫놓고 기역자를 안다는 것이 도리어 걱정꺼리가 됩니다. 마음을 감추는 것과 쓸데없는 지식이 강호에서는 헛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돌연 마음이 편안해지내요.
#그대의 마음은 학과 같고 나의 머리는 아이와 같다.취하지 않음을 어이하리, 동전을 애석해 하지 말라.바다에서 뜻하지 않게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만남이여.마주 보아도 싫지 않으니 마른 오동나무를 안음이도다.
#시 짓고 읊다보니 해가 지는 줄도 몰랐습니다. 갈매기 떼 날아가 버렸는데 흘러들어온 기러기만 홀로 남아 울고 있습니다. 모두들 외로운 나그네 됨을 슬퍼한다지만 그대만은 즐기고 있는 것 같군요. 모든 물 동쪽으로 흘러가는데 나 홀로 이 곳 서쪽 임자도에 남아 있다오. 물에 가득 떠있는 노란 국화꽃잎을 호기 있게 바라보지만 굳세게 매달려 있는 붉은 단풍잎은 금방 수심을 불러일으켜 글을 쓰게 한답니다. 그대와 도타운 정 맺기를 원하노니 이제부터 손을 잡고 아름다운 물 아름다운 산 구경 다니는 것이 어떠한지요.
저녁에 주역을 읽었다.
25일 맑고 바람이 불었다. 새벽에 머리를 빗었다. 일기를 썼다. 화재 김후근이 글 엮는 법을 배우고자 했다. 풀에 양제와 마치가 있다. 양제는 기를 보하는 것이고 마치는 체를 내리는 것이다. 이를 제목으로 하여 글을 써보려 했으나 처음부터 말이 되지를 않더니 끝내 그 뜻을 저버리고 말았다. 대강대강 하여 겉만 그럴 듯하고 말은 속되어 볼만한 값어치가 없게 되었다. 또 나무에는 모과가 있고 풀에는 참외와 여주가 있다는 것을 글을 써보았다. 붓을 들어 휘둘러 보았는데 비유적인 뜻이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줄만했다. 섬사람이 술을 걸러 왔지만 별로 좋지 않아 마실 수가 없었다. 그라나 화재 김후근은 기분좋게 마셨다. 청탁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라 할만하다. 대 여섯 잔을 연속하여 강권하여 할 수없이 마셨더니 배가 막히고 속이 좋지 않아 사양하고 말았다. 차를 끓여내려 마셨다.저녁에 주역 상경을 읽었다.
26일 새벽에 주역 하경을 읽었다. 그리고 머리를 빗었다. 낮에 비가 내렸다. 오언 율시를 간략하게 지어 화재 김후근에게 주었다.
#비틀린 나무 창문에 오가는 사람 없어 적적하고, 무궁화 잎에 쓸쓸히 비가 내립니다. 친구들과 막혀 있다보니 헛된 생각만 하얗게 오고갑니다. 시상이 샘솟는 듯하여 그것을 적어놓은 책이 수레에 가득 찼지만 잠시 내버려 두고 어정거리겠습니다. 아니면 혹 아주 잊어버리고 말겠지요. 창문에서 내리쬐는 빛만이 나그네의 근심을 없애줍니다.
저녁에 아파서 고생하였다. 주역 상경을 읽었는데 아직 반도 못 읽었다.
27일 구름이 끼어 상쾌하게 개지 않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식후에 화재가 와 글 모임을 하자고 하였다.‘시자설’을 지었다. 화재의 본가에서 추로주를 많이 보내왔다. 본가는 홍주(충남 홍성) 해두에 있다. 강제로 권하는 것을 이기지 못하여 여섯 일곱 잔을 비우고 대취하여 돌아왔다. 돌아와 인사불성이 되어 쓰러져 누웠다. 한밤중이 되어 정신을 차려 탕과 밥을 먹었다. 갑자기 팔다리가 뻣뻣해지고 설사를 하였다.
28일 머리를 빗었다. 흐리고 가는 비가 내리다가 싸라기눈이 내렸다. 숙취로 인해 몸이 편치 아 주역 읽기를 그만 두었다.
29일 흐렸다. 새벽에 머리를 빗었다. 주역을 읽었다. 세 가지 설(양제마치설, 삼과변, 시자설)을 다듬었다. (양제마치설, 삼과변, 시자설 생략)저녁에 화재 김후근이 끌고 가 함께 취했다.
30일 흐렸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가을이 다해가는 궁벽한 바다에서 백가지 감회가 새로웠다. 해가 지고 불빛이 깜박이는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구일시 운으로 다시 시를 지어 근심을 물리쳤다.
#나의 인생에는 끝이 있는데 바다에는 방향이 없습니다. 객지의 하늘과 땅 저 멀리 아득하고 아득합니다. 백발 제멋대로 두니 서리 맞아 시든 국화가 웃고 장기서린 바닷가 무성한 띠풀처럼 마음이 황량합니다. 임금의 성은을 널리 베풀어야 할 때 오히려 횡액을 만났으니 나라를 걱정한다 하면서도 미친 짓을 하였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형통함을 잃지 않으니 사물의 이치에 통달한 선비가 아니십니까. 아름다운 이름과 절개 오래토록 향기로 남을 것입니다.
10월
초1일 맑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집에 보내는 편지를 전주 김선달에게 부탁했다. 김선달은 일가로서 안면이 있는 사람이다. 진주 장사하는 이들에게 집에 전해 주라고 한 것이다. 저녁에 주역을 한번 다 읽었다.
2일 맑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감기가 들었다. 저녁에 주역을 읽었다.
3일 흐렸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감기가 아직 낫지 않아 차도가 없어 저녁에 주역읽기를 폐하였다. 김도천이 작도에 가 10여일을 머물다가 찾아와 보았다.
4일 흐렸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감기가 조금 차도가 있었다. 하루 종일 책을 건성으로 읽었다. 저녁에 몸이 고달파 주역읽기를 그만두었다.
5일 지난 밤 추위가 심했다. 창문 틈으로 찬 바람이 바로 들어와 감기가 덧나 다시 머리가 쑤셨다. 먹지 못하였다. 이불로 몸을 감싸안고 머리를 빗었다. 종일 몸이 고달파 저녁에 주역읽기를 폐하였다.
6일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개고기를 끓여 먹었다.
7일 비가 밤중에 시작하여 해가 질 때까지 내렸다. 저녁에는 큰 바람이 불었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감기가 다소 차도가 있어 저녁에 주역을 읽었다.
8일 흐리고 또 큰 바람이 불었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9일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눈이 조금 내렸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10일 바람이 불었다. 새벽에 빗질을 하고 주역을 읽었다. 석양에 임자도 진의 수정헌에 들어갔다. 화재 김후근이 먼저와 앉아 있었다. 손을 맞잡고 즐겁게 웃었다. 노주 한 잔을 마셨다. 달빛을 받으며 최일수의 약포에 갔는데 자리에 홍선달이라 하는 이가 있었다. 사람이 은근하고 정성을 보였다. 노주를 차려내어 여러 잔 권하였다. 최일수와 더불어 이야기를 하면 시간을 보내다가 모두 화재 김후근의 집에 가 술을 마시고 시를 짓다보니 크게 취하여 돌아왔다. 말로 불러 지은 시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하고 겨우 오언율시 한 수만 적을 수 있었다.
#왕풍은 전국에 걸쳐 모두 같이 가르치지만 각 지방 말이 모두 다릅니다. 나그네는 푸르고 아득한 바다를 묻는데 사람들은 자기가 나고 자란 마을을 생각합니다. 힘들고 외로운 시월의 밤, 다시 잡는 중양절의 잔. 우리들 오늘 즐겁게 놀며 지낼 수 있음은 바로 성상의 은혜일 것입니다.
11일 맑고 따뜻하였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종일 책을 건성으로 읽었다. 저녁에는 주역을 읽었다.
12일 맑고 따뜻하였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시경 대아와 송을 풀이하고 생각해보았다. 시경의 태반을 망실하여 수습을 시작했다. 저녁에 달빛을 받으며 술을 들고 화재 김후근의 집을 방문하였다. 우스개 소리를 하고 또 운을 잡아 시를 지으며 회포를 풀었다.
#오절/곤궁한 처지에 빠진 청운의 선비와 미쳐 날뛰던 백발의 내가 바다에서 만났는데도 남아 있는 기운만은 아직 큰 오동나무와도 같습니다.
#오율/북과 거문고를 연주함은 마음속의 뜻을 이야기하고 술잔을 잡음은 늙은 얼굴을 풀어줍니다. 밤은 고요하고 바람은 수면 위를 스치는데 하늘은 텅 비고 달은 산에 가득합니다. 깊숙하고 그윽한 별세계, 인간세계와 동떨어진 아득한 곳.어느 것이 임금님이 내리시지 않은 바이리오.편안하게 지내며 한가로운 천성을 기릅니다.
13일 맑고 봄처럼 따뜻하였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이웃동네 주학기가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서울사람 첨지 조희룡이 이 땅으로 유배를 왔었는데 그림과 글에 빠져 유유자적하면서 한 해를 보내고 또 이렇게 한해를 보내고 하다가 4년이 지나 유배가 풀려 돌아갔다” 하였다. 이 말을 듣고 그의 서화와 시문을 구해서 보자고 부탁하여 주학기(자 기옥)가 자기 집 상자 속에 보관해둔 대소 서예작품 각 1점, 시화 각 1점씩을 찾아 가지고 왔다. 당겨서 보니 필치는 조화를 부렸고 시는 묘경에 들어갔으며 일자일언이 모두 미산 소동파를 따랐으니 진실로 소동파의 살아났다 하겠으니 서울이란 정말 인재의 곳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왕 훌륭한 인재가 문장과 경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끝내 그것을 세상에 팔지 않고 장거리에 이름을 감추거나 잠적하여 있으며 다른 사람들처럼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거나, 또는 세상일을 근심하지 않으며 세상을 희롱한다. 석양에 아들 정언 김인섭의 편지를 받아보았다. 또 박장서의 답장도 받아보았다. 지난 9월 24일에 보낸 것이다. 통영 역말에 부치니, 통영에서 해남 우수영에 부치고, 해남우수영의 종이 가져온 것이다. 집안이 무고하고 두 손자가 잘 자라고 있음을 알고나니 기쁘고 행복하여 바닷가 유배살이의 고초를 잠시 잊었다. 저녁에 화재 김후근이 잡아끌어 달빛을 타고 모임에 나갔다. 진장이 먼저 자리에 와 있었다. 기쁘게 몇 순배의 술을 마시고, 운을 불러 시를 지으면서 회포를 풀었다. 오율 두 수를 얻었다.
#풍류는 이치에 통달해 있는 선비에 알맞은 것이고 글과 술은 덧없는 인생이 즐기는 것입니다. 취향은 멀고먼 강호에 절을 하며 옷깃은 물에 달이 어릴 때 엽니다. 연하가 책임지고 맡을 사람을 만났으며 풀피리와 북소리가 태평시절에 답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곳인가? 긴 모래섬 이곳, 쓸데없이 한숨을 쉴 뿐입니다.
#어린아이 삼겁을 재촉하는데 선비는 일생을 그르쳤습니다.큰 바다 푸른 물결은 어찌 탁류를 꺼리며 외로운 달은 밝음을 싫어하겠습니까. 비분강개하더라도 소용이 없음을 알고 있으니 시를 읊어 마음이 불편함을 감추고 있습니다. 진중하다 화재 노인이여. 비록 궁하더라도 바른 음률을 좋아하는구나.
14일 밤중부터 해가 질 때까지 비가내렸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다. 하루 종일 문을 닫고 앉아 서경을 보았다. 저녁에 주역을 읽었다.
15일 맑고 따뜻하였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화재 김후근이 사람을 보내 억지로 끌어 내 김후근의 숙소에 갔다. 술에 흠뻑 취해 운을 내어놓고 시를 지었다.
#한없이 부끄러운 마음으로 하늘의 해를 바라본다. 곤궁한 처지 재앙이 있을지 경사가 있을지 아직 점칠 수 없습니다. 구름 낀 산봉우리와 늙은 바위 모두 다 낯이 섭니다. 눈구렁은 길고 또 소나무는 아름답게 늘어져 있습니다. 조수는 괜히 번거롭게 들었다 나갔다하고, 달은 쓸데없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미친 짓을 한 나를 미워하여 바다 나라에 머무는 고통을 주었습니다.
16일 맑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낮에 임자도진 수정헌에 들어갔다. 화재 김후근 옹이 먼저 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진장이 치통으로 끙끙거리며 앓고 있었다. 남에게 괴로움을 끼치는 것을 원치 않아 바로 물러나 집으로 돌아왔다. 선달 홍영섭이 방문했다. 저녁 달빛을 타고 홍선달의 숙소에 갔다. 화재 김후근이 또 먼저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술을 마시고 우스개 소리를 하며 시가를 읊조렸다. 칠언율시를 얻었다.
#쓸쓸하게 내리는 눈처럼 흰 백발의 바닷가 하늘에 누웠습니다. 전생에 예정되어 있었겠지요, 달만이 냇가에 가득 차 있습니다. 세상근심을 잊어버리려 장차 낚싯대 하나를 쥐어볼까 합니다. 애오라지 근심을 떨어버리려 천잔만잔 술만 기울이고 있습니다. 쓸쓸하게 잎 진 나무만이 끝이 없는데 세월이 질서 있게 흘러가 홀연히 놀라게 됩니다. 우리들은 하늘이 빌려준 바를 즐기면서 때때로 손을 잡고 길게 노을 진 길을 가보렵니다.
17일 맑고 따뜻하였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조정에서 환곡 체납한 것을 탕감하고, 또 환곡이라는 두 글자 이름을 영원히 혁파하기로 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기쁨이 샘솟는 것을 이기지 못하여 시 백팔률을 지었다. (백팔률 생략)
18일 맑고 봄처럼 따뜻하였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낮에 화재 김후근의 숙소에 가서 취했다. 석양에 대윤이와 함께 뒷 산등성이를 올라 멀리 바라보니 바다와 하늘이 일망무제로 맞닿아 있고 점점 섬들은 바둑판위에 놓여있는 바둑돌 무늬처럼 바다위에 떠있었다. 가슴이 툭 트이고 눈앞이 장쾌하였다. 우리네 인생이란 넓고넓은 바다의 한알 좁쌀에 불과하다는 것을 돌이켜 깨달았다. 초저녁 십육보를 걸으며 천자운으로 흉중의 답답한 기운을 쏟아냈다.
#바라보니 하늘의 푸름이 바다에 잠겼습니다. 바다의 기량은 한없이 넓고 커 수 만 냇물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젊은이의 마음은 옹졸하여 십중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나 대붕은 나는 곳이 남북 삼천리에 이릅니다. 멀리 바라보니 우주는 한없이 넓습니다. 깨닫고 보니 하늘과 사람이 함께 변천해가고 있습니다. 한 알의 조같은 인생일지라도 바가지에 어찌 담아지겠습니까. 눈은 섬에 흩날리고 석양은 길 위에 드리워집니다.
19일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홍선달이 말린 민어를 보내왔다. 저녁에 화재 김후근의 숙소에 갔다. 고기가 산언덕과 같았고 매우 맛이 있는 술이 있었다. 홍선달 종형제, 최일수 종숙질, 강씨와 홍씨, 그리고 동자 예닐곱명과 함께 껄걸 웃으면서 술잔에 술을 가득 부어 마셨다. 비가 세게 내려 화재 김후근과 함께 잤다.
20일 닭이 여러 차례 울었다. 화재 김후근이 동자에게 막걸리를 내오게 하였다. 억지로 권하는 것을 이길 수 없어 억지로 두 바가지를 마셨다. 곧 냉구들에 누워 잠깐 잠이 들었다. 몸이 차갑게 오그라들었다. 술이 또 장을 어지럽혀 고깃덩이를 소화시키지 못하였다. 배가 매우 불편하여 숙소에 돌아와 누웠다. 차를 먹으며 몸을 조리하였다. 빗질과 주역읽기를 그만두었다. 개차반같은 이십일의 일이다.
20일 비가 그쳤으나 오히려 더 흐렸다. 지난 밤 술을 마신 후 화재 김후근이 운을 잡고 여러 학생들에게 시를 짓도록 하였다. 나 역시 갑작스럽게 응했다.
#천지 가운데 넓은 섬, 벌레 모습 새의 족적이 스스로 글자가 되었습니다. 맑은 바람 밝은 달 시를 읊는 가운데, 흐르는 물 높은 산 움직이고 고요합니다. 뜻과 취향이 그윽하니 집 문을 꼭 닫았으나 마음속 회포는 성긴 울타리 밖으로 거리낌이 없이 나아갑니다. 산수경치를 즐기는 모임은 소나무 아래 피리를 부는 벗입니다. 유배 온 곳이 산수가 아름다워 널리 이름난 지역이니 모두가 다 나의 집이라 하겠습니다.
저녁에 답답하고 열이 나 끝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쓸데없는 생각이 끝없이 일어나고 또 일어나 마지못해 시를 생각하면서 이를 극복하였다. 앞의 운으로 다시 시를 지었다.
#천지가 나에게 거처할 큰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장자 늙은이가 나에게 정녕코 좋은 책을 주었습니다. 물과 달은 원래 다함이 없는 것이고 피어오르는 구름은 백번 변하더라도 남음이 있습니다. 총애와 수모에도 놀라지 않으니 꿈이 편안합니다. 은혜와 원수를 모두 잊으니 몸을 얽매는 고단함이 없습니다. 한가한 이곳에서 함께 하는 이 즐거움은 청복이라 하겠습니다. 초가 오두막집에서 나 자신을 쓸쓸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21일 비가 닭이 울 때부터 내리더니 아침에 그쳤다가 다시 내렸다. 종일 두꺼운 구름이 끼었다. 조해악에게 편지를 썼다.
#천지에 문란하고 천한 임자도의 죄인 김령이 외람되지만 삼가 해악 조희룡 선생에게 아래와 같이 고합니다. 이 곳은 선생님이 지나가신 은혜를 입은 섬이라고 들었습니다. 바다나라에 남겨놓으신 향기는 응결하여 상서로운 향내가 풍기고 있고, 남겨놓으신 작품은 남쪽 옷을 입은 사람집 대나무 상자 속에서 옥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옛 사람이 말을 남기되 말씀하시기를 현인이 지나간 땅은 산천초목이 모두 휘황한 광채가 가득차 빛난다 하였는데 그 말은 이곳을 일컫는 말인 것 같습니다. 후배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경치 좋은 땅에서 나날을 보내다가 선생님이 먹으로 그리신 작은 첩자와 시문 한 두 점을 얻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글과 그림의 얼룩은 가히 칠무의 글이요, 한점 한점은 가히 중국 하나라 우왕 때 전국 아홉주에서 거두어들인 금으로 만든 솥으로 만들어낸 음식과 같은 깊은 맛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손을 씻고 불을 밝혀 보니 이것은 뭇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입에 담을 것이 아니었습니다. 향기롭고 아름다운 구슬과 같다 하겠으니 분명 소동파의 진수를 이어 받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가지고 놀되 즐거움이 되고 즐기되 맛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마치 목마른 듯이 마치 배고픈 듯이 선생님의 작품으로 달려들었습니다. 더할 수 없이 선생님의 원대함에 감탄하고, 더할 수 없이 나의 부족함에 부끄러워하였습니다. 사람의 정분은 마음에 있는 것이지 얼굴을 마주하는데 있지 않을 것입니다. 어찌 꼭 얼굴을 마주 대하려 하겠습니까. 청하건데 천리 먼길 길 떨어져 있으나 평생토록 영원히 마음으로 받들고자 합니다. 그럴 수 있다면 어찌 흰머리가 분분한 대머리 늙은이의 일생에서 만가지 행복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한유와 같은 후손이 있어 선생님처럼 문장으로 명성을 크게 떨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글은 바닷가 땅 소견 좁은 선비의 완고하고 식견없는, 즉 별 볼일 없는 글이라 책망 받기에 족할 것입니다. 어찌 책망을 받는다 하더라도 책망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땅에 엎드려 감사한 마음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오직 황송할 뿐입니다. 평생토록 받들기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니 이 일이 어찌 저에게 복이 아니겠습니까.‘방옹’의 시에 이르기를 ‘어느 것이 추호라도 임금께서 내리지 않은 바가 있으랴’ 하였습니다. 아! 그러니 추호라도 유감이 있을 리 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문장이 뛰어나신 대방가 대맹주이자 대범한 호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 섬에 와서 선생님을 흠모할 수 있게 되었으니, 임금님께서 저에게 은총을 주심이 크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아! 선생님께서는 아름다운 옥을 가슴속에 품고서 좁디좁은 이곳에서 떠돌아다니셨습니다. 그 재능을 알리지 못하고, 드러나지 않게 감추고서, 인정받아야 할 큰 이름을 빛내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풍진세상을 이리저리 떠도는 굴욕을 겪었고, 아녀자들의 조개풀 도꼬마리 같은 속 좁은 질투와 세상 사람들의 절구 통같은 도량 없음에 아픔을 겪어야 하셨습니다. 그윽한 난이 강가 연못과 섬의 물가에서 초췌하게 말라가다가 필경에는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릴 뻔 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우한 시절과 불리한 때를 만났다하여 어찌 손실이 더 크다 하겠습니까. 죄가 산같이 크고 학문이 없는 저는 강남에 추방되었던 초나라의 ‘굴원’을 조상하며 지내다가 지난 구월 초 높으신 선생님이 지나친 흔적을 밟을 수가 있었습니다. 산수의 경치에는 선생님의 향기가 남아있었고, 물가 숲에도 선생님의 향기로움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 글은 아직 수치와 모욕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제가 드리는 탄식이자 옛사람에게 바치는 황당하고 악취가 심하고 듣기에 추한 이야기며, 깨끗한 항아리 물로 닦은 거울에 끼인 먼지라고 생각합니다. 요행히 선생님께서 제 글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여주신다면 비천한 두메마을에 추방된 것이 아니라 멀리 보낸 것이 특별한 혜택이었음을 알게 되어 바닷가에서 더부살이하는 천지에 문란한 저의 집에 햇빛이 들어 얼굴이 밝아 질 것이며 매화와 대나무의 향기로운 절개와 난혜의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 귀양살이 하는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갈대 흰 이슬밭 속을 헤매는 사람의 회포를 위로해주는 한편 봉래산 높이 부는 바람의 인연을 줄 것이니 하늘과 같은 행운이라 할 것입니다.
22일 비가 내리다가 또 눈이 내리다가 했다. 저녁에는 큰 바람이 불었다. 서법을 익혔다.
23일 돌아가신 형님의 기일이다. 닭이 울자 무릎을 꿇고 앉아 묵상을 했다. 매번 나의 행동을 하나하나 걱정해주시던 훈계의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오늘 스스로 넘어져 엎어지고 말았다. 형님이 해주신 말씀을 이제 와 서로 맞춰보니 나의 잘못된 행동이 후회막급일 뿐이어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형님의 사랑이 가이없어 느꺼워질 뿐이었다.
24일 흐렸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홍선달이 서울에 가기에 송별하였다.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또 며칠 전의 거자운을 사용해 율 한수를 엮었다.
#천지가 나에게 거처할 큰 집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머리가 센 신선이 달관을 하여 큰 소리로 책을 읽고 있습니다. 물과 달은 원래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구름같이 피어나는 연기 백번을 변하고도 또 끊임없이 변해갑니다. 총애받고 욕봄 변화무쌍할지라도 놀라지 않으니 마음 편히 잠들 수 있고, 은혜와 원수 모두 잊어버리니 몸을 얽매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사라졌습니다. 한가한 이곳에서 편안히 지낼지니 청한한 복이라 하겠습니다. 쓸쓸히 나 자신을 사랑할 뿐이니 초가집 한 채 뿐입니다.
또 율시 한 수를 얻었다.
#온 우주가 칠 척 몸 하나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일엽편주를 타고 신선이 산다는 큰 섬에 들어왔습니다. 훤칠한 소나무 모습 빼어나 바람 잦아졌고, 늙은 대나무 저 멀리 외로워 눈 내리기 그쳤습니다. 포구의 장기가 구름 되어 올라가 맑은 날 홀연히 비로내리고, 포구의 비린내는 물가에 응축되어 무지개로 떠오릅니다. 태양의 빛나는 기운이 모여 쪼일 날, 만장 두꺼운 얼음산도 잠깐이면 녹아 깊고 넓은 바다가 될 것입니다.
25일 흐렸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오후 화재 김후근이 찾아왔다. 같이 술을 마시고 우스개 소리를 하다가 갔다.
26일 지난 저녁부터 큰 바람이 불어 배가 통하지 않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대윤이와 함께 약물을 만들었다. 저녁에 최일수가 왔다. 그는 노래를 잘했다.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며 근심을 덜었다.
27일 맑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집에 편지를 보내기 위해 밤을 새워 편지를 마름질하였다. 심부름하는 사람을 시켜 길을 가게 하려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이러니 섬의 사정이 나쁘다 하겠다. 밤에 이런 걱정 저런 걱정이 계속되었다. 최일수가 와 이야기하다 갔다.
28일 맑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석양에 화재 김후근이 방문하여 서로 더불어 술을 많이 마셨다. 또 싫어했지만 자기의 숙소로 나를 끌고 가 밤까지 끝도 없이 순서도 없이 술을 돌렸다. 거듭 시를 지었다.
#마음 속 단장의 노래가 돌과 쇠처럼 단단하게 마음속에 응결되어 나오지 않으려합니다. 마음속 답답함을 아침나절 생강을 먹어 내리듯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내야 할 것입니다. 이곳은 밤하늘은 북두칠성만이 난간에 걸려 내려다보고 있고, 땅에는 물이 가득 차 그저 아득할 뿐입니다. 거리낌 없이 세상의 속되고 상투적인 것을 뛰어넘는 호걸이 이곳에 묶여있으니 어이 애석타 하지 않으리요. 세잔의 술로 천고의 시름을 깨끗이 씻어내고 여기 한가한 곳에 높다랗게 누워있으니 어찌 즐기지 않고 편안하지 않겠습니까.
밤이 깊어 이미 한밤중이 되었다. 크게 취하여 돌아와 쓰러져 누워 동쪽이 밝아옴도 깨닫지 못하고 잤다.
29일 맑다가 또 흐리더니 바람이 불었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식사 후 화재 김후근이 강제로 나를 데리고 임자도진에 들어갔다. 진장의 병을 물으니 병으로 인하여 내아 뒷방에 누워있다 하였다. 들어가 보니 오늘은 조금 차도가 있어 이불로 몸을 감싸고 앉아 이야기를 하였다. 잠깐 있으니 술과 안주가 나왔다. 안주는 매우 기름지고 향기가 있었다. 화재 김후근과 더불어 같은 상에 앉아 많이 먹었다. 진장이 병의 답답함을 씻어내자면서, 운을 걸고 시를 짓기를 청했다. 붓가는 대로 갑작스럽게 응하였다.
#술잔을 들어 마주 보며 글을 짓자니 뜻이 잘 전해지지 않습니다. 우리들 기쁘고 임금님의 총명 밝게 빛나는 때, 바다나라 평안하고 고요하며 속세의 어지러운 흙먼지 가라앉아있습니다. 임자진 청사에 매달린 방울소리는 맑고 한가로이 들리는데 해는 느릿느릿 가고 있습니다. 눈기운 침범하기 어려워 솔잎 뒤늦게 시들지만 바람은 가장 높은 가지를 쉬이 흔듭니다. 지금 진장 나으리 자연을 즐기는 취향을 가졌으니 평생 갈매기와 백로 함께하며 살아갈 것임을 내 알겠습니다.
저녁에 주역 상경과 하경을 통독했다. 정신이 말똥말똥 잠이 오지 않았다. 닭이 운 후에는 정신이 아득하여 지더니 비몽사몽 매우 혼란스러웠다.
11월
초1일 기유 큰 바람이 지난 밤중부터 불더니 아침에 눈이 내리다가 낮에는 바람이 불었다.
한겨울 맵게 추운 기운이 대단하였다. 새벽에 머리를 빗었다. 술을 얻어 약의 재료로 만들었다.
2일 바람이 불고 눈이 왔다. 동짓날이다. 팥죽을 쑤어 먹었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새벽에 주역을 읽었다. 또 경서의 요전과 순전인 이전을 읽었다. 또 동지시를 지어 회포를 풀었다.
#눈꽃이 널따랗게 펼쳐지고 매서운 바람이 붑니다. 그래도 미약하게나마 땅속에서는 양기가 생겨나 힘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 타고 남은 갈대 뿌리는 현주처럼 맑은 물속에서 자맥질을 하기 시작하고, 매화는 자줏빛이 나타나고, 샘은 남몰래 솟아나고 있을 것입니다. 우주만물의 이치가 도리에 맞추어 새로 순환해 오는 것에는 하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군자의 행동은 항상 되풀이 되어야 합니다. 나이를 들면 더욱 건장하게 되어야 한다 했으니 늙어 더러운 이 몸도 더욱 왕성하여 질 것입니다.
저녁에 주역과 이전을 읽었다.
3일 흐렸다. 삼경에 하늘이 울었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 하경과 이전을 읽었다.아침 식사 후 홍선달이 와 뵙고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석양에 화재 김후근이 와 술자리를 만들어 놓고 가자고 해 억지로 끌려가 함께 취했다. 운을 내걸고 시를 지어 흥을 돋구었다.
#문재와 학술이 뛰어난 분이 남쪽 바닷가에 와 자리잡고 앉아 있으니 스승으로서의 자리가 기울었습니다. 인재를 가르치고 기르는 것이 즐거운 일입니다. 하는 일 없이 한가롭게 술잔을 기울이며 생애를 보내며 시를 읊고 있습니다. 갈청을 태운 재 날리며 절기를 점치니 양이 다시 돌아온답니다. 매화소식 바야흐로 다시 돌아오니 눈 다음에 꽃이 필 것입니다. 득실이란 원래 새옹지마일 것인데 일신이 하늘 끝에 떨어져 있다하여 어이 한이 되겠습니까
삼경에 숙소에 돌아와 잤다.
4일 바람이 불다 또 눈이 오다 하였다. 새벽에 주역의 상경과 이전과 삼모를 읽었다. 약재료를 만들었다. 저녁에 주역의 하경과 이전과 삼모를 읽었다.
5일 눈이 내리고 바람이 크게 일었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상경과 이전 삼모를 읽었다. 약재료를 만들었다. 저녁에는 주역 하경과 이전 삼모를 읽었다. 서경의 우공에서 윤정편에 이르렀다.
6일 맑고 따뜻하다. 푸른하늘 해를 본지가 며칠 만인가. 뚝 떨어진 섬 궁벽한 바다의 계절이 겨울을 만났으니 맑은 날을 보기가 어려운 이치는 당연하다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차고 눅눅한 밤기운에 밥을 먹지 않고 읽기를 그만 두었다.
7일 매운 추운 가운데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 상경과 서경 4권을 읽었다. 당인시 백천 낙천 백거이의 회편까지 보았다.
#길흉이나 화복은 연유가 있어서 생기는 것이니 깊이 그 원인을 살필지언정 겁내지는 말지어다. 불길이 윤택한 집을 태우는 것은 보았어도 풍랑이 빈 배를 뒤집었다는 말 듣지를 못했다네. 명예는 모두의 것이니 많이 가지려 하지말고 이득은 몸의 재난이니 적당히 탐하여라. 사람은 표주박과 달라서 안먹을 수 없지만 대강 배부르면 족한 줄 알고 일찌감치 수저를 놓음이 마땅하리.
이는 진실로 지극한 말씀이다. 나는 세상일의 통함과 막힘은 스스로 자신에 연유하지 않고 하늘에 연유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잠시라도 근심하지 말고 마음 편히 받아들임이 마땅한 일일 것이다. 금을 산골짜기에 높이 쌓아둔 부호든지, 바람이 부는 배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이든지, 이름이 세상을 뒤덮은 사람이든지 애써 복을 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세상에서 잘났다 못났다 하는 이들이 잠시도 쉬지 않고 이익을 얻기 위해 골돌하는 것은 결국 안타깝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녁에 책을 읽었다.
8일 맑고 따뜻하였다. 저녁에 또 눈이 왔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 풀이한 책을 읽었다. 식후에 화재 김후근의 숙소에 가서 종일 술을 마시며 시를 읊었다. 율시 2개를 썼다.
#자주빛 안개로 술을 빚고 사슴으로 안주를 만들었습니다. 세상사 관계하지 않고 사는 신선과 더불어 사귈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학같이 여윈(화재 김후근이 자신이 학처럼 여위어 감을 탄식하기에 이렇게 썼다) 임께서는 섬에서 말라붙어가고, 추위 속에 사는 큰부리까마귀를 보고 부끄러워하며(바야흐로 나는 무릎 시림에 고통을 받고 있다) 나는 찬 들판에서 겸연쩍어합니다. 개미와 하루살이들은 세상 어지러운 길을 탄식하고, 갈매기와 해오라기는 평생토록 편안한 보금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글을 아는 것이 우환이 시작됨을 알았으니, 지금부터는 붓을 내던지고 살고자 합니다.
#세월이 오고감이 허망한 신기루와 같습니다. 지난 날 즐겁게 놀던 나날은 꿈으로 사라지고 국화꽃 지는 가을이 되었습니다. 고결한 사람은 남에게 붙쫓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성스러운 임금이 다스리는 시대라도 벼슬길 물러섬을 즐깁니다. 저녁이면 북극성에 의지하여 시가 아름답게 되기를 바라고, 바람 불면 남국에서 이름을 날립니다. 다만 나에게는 끝없이 펼쳐진 달빛 눈 천지가 허락되어 있을 분이니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 그리워하며 섬 속을 서성거리고 있답니다.
술에 취해 저물녘 돌아와 쓰러져 잤다. 읽기를 하지 않았다.
9일 맑고 따뜻하였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또 책을 읽었다. 아침 식사 후 화재 김후근의 집에 갔다. 탁주가 진하여 풍미가 매우 좋았다. 또 율시 1수를 지었다.
#남아 개구리밥 되어 물위에 떠돌고 있으나 별 탈이 없습니다. 부끄럼 없이 선현을 본받자는 것을 좌우명으로 하여 살고 있습니다. 분수를 지켜 공부를 열심히 하여 나아가면 즐거움을 만난다 합니다. 이 곳은 마음이 한가한 곳, 이리 마음이 편하답니다. 자연 속 호탕한 풍류가 있는 집이고 우주에 영롱한 달빛 비치는 눈천지가 있는 섬입니다. 이 곳에서 덧없는 뭍의 인생을 웃어주니 다만 그 오고감이 마치 역참의 말과 같이 그렇고 그럴 뿐이랍니다.
저녁이 된 후 삼경, 화옹이 어른과 아이 4-5인을 거느리고 찾아왔다. 술을 사 흥취가 있게 담소하면서 흠뻑 마셨다. 그리하여 또 운을 내걸고 시를 지으며 놀았다.
#바다에서 어찌하여 이름과 성을 바꾸었는가. 오랑캐 성을 함락시키려 하나 사나이 밝으면 나라를 이룬다 했습니다. 바둑을 두고 시를 짓는 경륜이 있는 손길로 술을 따라줌이 애오라지 관대할 뿐이니 북받쳐 오르나니 따뜻한 정입니다. 시상이 매양 멀리 고향생각과 겹쳐집니다. 눈꽃은 달과 더불어 아름다움을 겨루고 있습니다. 산그늘 작은 탁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생각하나니 하룻저녁의 즐거움이 나를 위로한답니다.
오경에 자리를 파하였다.
10일 두꺼운 구름이 끼고 흐렸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서경 4권을 읽었다. 저녁 식사 후 기운이 빠져 죽은 듯이 잠이 들었다가 삼경이 되었을 무렵 정신을 차려 일어나 주역을 읽었다. 곤괘까지 읽었을 때 홀연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있었다. 문을 열어보니 최일수가 술병과 어포를 가지고 왔다. 정성껏 술을 권함이 매우 은근하였다. 술과 안주가 맛이 있고 기름이 졌다. 술을 주발에 따라 여러 잔 비우며 화락하게 즐겼다. 최일수가 맑은 목소리로 노래 몇 곡을 불렀는데 노래가 진실로 가련하였다. 노래와 술로 밤을 보내면서 마음속의 악감정을 모두 쏟아내 잊어버렸다. 최일수가 돌아간 후 술기운이 올라 평소와 달리 심기가 맑고 평온하여졌다. 주역을 통째로 한번 읽고 서경 5권을 읽었다.
11일 맑고 따듯하였다. 쌓인 눈이 제법 녹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서경을 읽었다. 밤에 서경 5권을 읽고 그쳤다.
12일 맑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감정록을 수정하였다. 저녁에 달이 눈 내려 쌓인 시냇가를 지나가는데 천지가 유리세계이자 수정굴 같았다. 멀리 있는 사람들에 대한 상념이 표표히 지나갔다. 신선이 산다는 맑은 곳이 멀리 있지 않는 듯하여 가히 가 볼만도 하였다. 아름다운 경치를 헛되이 보내지 않고 싶어 화재 김후근을 찾아가고자 했으나 진창길이 미끄럽고 나막신이 없어 머뭇거리다가 집에 머무르면서 율시 한수를 지었다.
#우리가 만남은 실로 하늘에 말미암음입니다. 둥글둥글한 달빛이 시냇물에 비쳐 어립니다. 백설과 늙은이의 두 귀밑털이 서로를 안타까워하나니 젊음은 천금의 가치가 있습니다. 붕새가 나는 바다에서 책을 읽으며 장자와 화타 늙은이를 벗으로 삼고, 사마천이 끌려가 궁형을 당했던 텅빈 밀실에 갇혀 슬퍼합니다. 신선이 산다는 집의 사립문을 두드려 답답함을 펴보고자 하였으나 바다 같은 진창길에 눈꽃은 천 송이나 피었습니다.
주역을 한번 통째로 읽고 서경 5권을 읽은 다음 잤다.
13일 맑고 따뜻했다. 눈이 녹고 바람이 잤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서경을 읽었다. 진장에게 글을 썼다. 진장이 치통으로 오래도록 시회를 폐했다.
#운치있고 아담한 문필가 군대가 있었는데 그 군대의 원수가 가루약 뜨던 숟가락을 잡고 있답니다. 호령하는 북과 나팔소리가 멈추었으니 율령에 저촉된다 하겠습니다. 칠보관 앞에는 붓 진이 거두어졌고, 오언성 바깥에서는 묵병들이 쓸쓸하게 되었습니다. 풍류마을에는 향기로운 시모임이 없어졌고, 설월의 깃발과 돛은 염계에 펄럭이지 않습니다. 분패한 외로운 군사들만이 길을 잃고 헤매는데 북두칠성 제일성이 해를 바라며 빛을 더합니다.
저녁 화재 김후근이 술을 지니고 와 권커니 잣커니 하며 이야기 하다가 한밤중이되어 자리를 파하였다.
14일 맑고 따뜻하였다. 돌아가신 할머니 의성김씨의 제삿날이다. 감모하는 마음으로 인해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저녁 피곤하여 책읽기를 그만 두었다.
15일 한밤중부터 비가 내렸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역경과 서경을 읽었다. 감정록을 썼다. 저녁에 최일수가 술을 가지고 와 권해 도연히 취했다. 일수에게 노래 몇 곡을 해보도록 명해 답답함을 덜었다. 역경을 한 차례 읽고 그쳤다.
16일 맑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서경 5권을 읽었다. 집으로 보내는 편지를 황급히 통영으로 해서 부쳤다. 대궐 전각 380여간이 타버렸다 한다. 또 환곡을 폐지하라는 교지가 취소되었다 한다. 저녁에 책을 읽었다.
17일 맑았다. 새벽에 주역과 서경을 읽었다. 감정록을 썼다. 저녁에 책을 읽었다.
18일 맑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감정록을 썼다. 점심 후 화재 김후근의 숙소에 가서 술을 마시고 시를 지었다.
#하늘의 사람이 손님으로 와 바다나라 아름다운 이곳과 좋은 이웃이 되었습니다. 외롭고 위태한 나그네 길이지만 이곳에서 마음 편히 지내고 있습니다. 섬의 풍습은 순박하고 사람들은 천진합니다. 시가 막혀 나오지 않아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는데 술자리 규칙이 너그러워 서로 화목하기 그지없습니다. 마주 보고 한번 크게 웃고 나니 서로 대함에 싫지가 않습니다. 이제부터 흰머리가 다시 새로워짐을 느낍니다.
#나의 한이 커 사라지지가 않습니다. 흰머리 나그네 거처도 없이 떠돌면서 풍랑을 헤칩니다. 누가 망망한 바다 작은 조 알갱이 하나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신선이 산다는 이 곳, 도화꽃이 난만하게 피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 시간은 흐르는데, 또 가을 풀에 겨울이 왔습니다. 천고의 영웅들이 모두 물거품 되어 사라졌습니다. 술병과 술잔을 돌리니 사시사철 봄빛인 나라가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화목하게 둘러앉아 즐거움을 나누니 세상이 기쁘지 않겠습니까.
취해 돌아왔다. 저녁에 책을 읽었다.
19일 맑았다. 먹은 것이 잘못되어 정신과 기운이 불편하여 새벽 머리빗기와 책읽기를 빼먹었다. 종일 편안하지 않아 차를 끓여 마셔 불편함을 내렸다. 석양이 되니 점차 편안해졌다. 주역을 한번 통째로 다 읽었다.
20일 맑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육백편을 읽었다. 어제 빠뜨린 것을 충당하기 위함이다. 매일 삼백편을 읽기로 정해 놓았다. 아침 식사 후 화재 김후근이 억지로 끌고 가 술 한 잔에 시 한 수 짓기를 하여, 술에 촉촉이 젖었다. 칠언 율시 1수, 오언율시 1수, 칠언 절구 1수, 오언절구 1수를 얻었다.
#푸른바다는 삼천리 땅덩어리를 안고 있고 대붕은 높이 떠 남쪽으로 날고자 합니다. 산하는 맑은 눈동자 친구를 단번에 알아보고 천지는 백발의 늙은이를 안타까워 합니다. 풍죽은 어떤 무리와도 견줄 수 없이 외로운 절개를 지키고 빙매는 신의가 있어 매화향기를 다시 풍깁니다.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다 말고 서로 웃으니 세상에 화창하게 즐김과 같은 것 없을 것입니다.
#이웃집 여인이 담 곁에서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는데 상상하건데 베를 짜고 있습니다. 견은 용을 잡는 검이요, 북은 고니를 겨냥한 활이니. 능히 집안 살림살이에 이익이 되고, 쌓고 모아 일년 농사는 풍년이 되리라. 추위가 온천지를 덮었어도 겨울이 극성을 부림을 두려워 않습니다.
#겨울에 피는 매화 참으로 곱고 향기가 돕니다. 세 송이 매화 향기 너무도 은근해 부인으로 삼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친구끼리의 우정입니다. 서로 영혼을 밝게 비추는 한 조각 무소뿔과 같습니다. 백매화 천산을 덮고 물결꽃 만 시내를 잠그고 있어도 연두빛 비단 수건 든 이 하늘 밖 멀리 떨어져 있으니 내 누구와 더불어 즐기겠습니까.
대취하여 돌아와 쓰러져 잤다. 책읽기를 폐했다.
22일 맑고 또 바람이 불었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감정록을 썼다. 저녁 식사 후 화재 김후근이 새달력 한 권을 보내왔다. 생각건대 서울에서 얻은 것 같다. 또 소식이 있었다. 지난 달 함흥에서 민란이 있었는데 관찰사가 법을 어긴 사람을 먼저 처형하고 후로 임금에게 보고하였으며 또 죄수 70여인을 체포하였다한다. 또 조정에서는 이참현을 안핵사로 보냈다 한다. 밤이 깊어질 때까지 시 한 수 짓고 술 한 잔 마시기를 하였다. 오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절구, 칠언율시 각 1수씩을 얻었다.
#얼음 속에 핀 매화 섣달 계절을 반기고 술 취한 버드나무는 모진 추위를 모릅니다. 화재 늙은이의 바다같이 넓은 가슴속에는 글의 파도가 끝없이 일렁입니다.
#주인은 길가는 사람을 안타깝게 여기고 나그네는 마지막 추위를 가련하게 여깁니다. 넓은 천지를 배회하며 길게 탄식하나니, 외로운 배여 큰바다 물길 속으로 들어오지 말라.
#자라는 삼신산처럼 바다에 떠있고 나는 날개 찢어진 새가 되어 쓰러져 누워있습니다. 푸른 대나무는 거문고와 가야금 줄을 고르고, 눈은 옥으로 만든 궁궐과 누대를 지었습니다. 얼굴에 붉으스레하게 오른 술기운은 마음을 길러주고 시의 그윽한 향기는 얼굴을 꾸며 줍니다. 풍류가 있는 바닷가 집, 시 한 수에 술 한 잔이 오갑니다.
#유학을 하는 늙은이가 서쪽에 왔습니다. 나이 80 많은 나이에 만나 t로 마음이 맞습니다. 청춘 시철처럼 고향땅에 돌아갈 때까지 좋은 동반자가 될 것 같습니다. 굳센 선비가 다 늙어 슬픈 노래를 부릅니다. 쓸데없이 미친 짓하더니 이제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술을 마셔댑니다. 가슴속의 분노가 스스로 시가 되고 있습니다. 님에게 청하노니 분노를 풀어감을 막지 마십시오. 갖고 있는 시재로 마음속의 생각을 더욱 잘 풀어가도록 힘써 갈 것입니다.
닭이 울어 돌아와 잤다.
23일 맑았다. 숙취로 몸이 편안하지 않아 머리빗기와 책읽기를 하지 않았다. 아침 식사 후 주체에 쓰이는 탕약 ‘대금음자’를 마셨다. 저녁에 정신이 차츰 맑아왔다.
24일 맑았다. 머리를 빗었다. 어제 빠뜨린 것을 보충하기 위해 육백편을 읽었다. 서경 8권을 읽었다.
25일 아침에 맑고 낮에 흐리다가 오후에 비가 와 밤새 내렸다. 머리를 빗고 글을 읽었다. 전주 가는 강창주 편에 집에 편지를 부쳤다. 저녁에 주역을 읽었다.
26일 비가 그치고 구름이 두텁게 끼었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서경을 읽었다. 저
녁에 주역을 끝까지 읽었다.
27일 맑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서경을 읽었다. 저녁에 서경을 끝까지 읽었다.
28일 맑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나정일에게 갔다. 전에 이곳에 와 보았었다. 정성을 보내준 뜻이 가상하였기 때문이다. 진장이 와 보았다. 숙소 집주인의 형 윤성이가 뜻밖에 관재수로 집안이 거덜 나 배를 타고 떠나갔다. 동생 윤량이 땅에 쓰러져 하느님을 부르며 울부짖는데 그 참상을 차마 볼 수 없었다. 아! 백성의 생활이 깨어져 버렸구나. 원통함이 어찌하여 태평성세의 광경이라 하리요. 서경에 말하는대로 “단 한사람의 평민이라도 그가 안정된 생활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 잘못의 소치”라고 생각해야 하거늘. 또 말하기를 “한 명의 아녀자가 원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게 한다”했거늘. 위정자들이 어찌 오늘날 세상 백성의 생활이 깨져 버림을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원통한 자가 무릇 얼마나 많으리요. 오호 슬프다.저녁에 비가 내렸다. 최태문과 최헌수는 최일수의 친족이다. 글공부에 힘쓰고 또 성품이 순진하고 근실하여 가히 섬사람 가운데서 출중한 사람이다. 일찍이 화재 김후근이 만든 자리에서 술잔을 돌리며 시를 지은 일이 있어 그 사람됨을 알 수가 있었다. 그 최태문과 최헌수가 밤을 타 찾아왔다. 흔연히 악수를 하고 이야기 하였다. 또 최일수(복원은 일수의 자)가 따라 왔다. 세 사람이 자리를 벌려 앉아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하룻저녁의 즐거움으로 하였다. 시다.
#한가로이 나는 갈매기는 강가에서 노닐면서 늙어가는데 웃으며 사는 나는 세상에 처하기가 어렵습니다. 인생 막바지 큰 잔에 큰 뜻을 띄우고, 진결로 하늘나라 연못에 단약을 만듭니다. 섬사람들의 풍속은 삼고를 가까이 하는데, 초라한 나그네 만단 시름을 풀어낸답니다. 나그네 깊은 한 굴뚝새만도 못하나니 깃들어 살만한 나뭇가지 하나 얻지 못합니다.
또 시 하나를 지어 최태문에게 주었다.
#이름을 구하지 아니하였고 녹도 간여하지 않습니다. 높은 나무의 끝 다다르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마음은 무성한 소나무의 푸르름을 갖고 있습니다. 열매를 맺지 않은 꽃들이 모란을 부끄러워합니다. 부평초처럼 떠돌다가 뒤늦게야 만나게 됨을 탄식합니다. 물가 난초 끝에서 우정이 맺히듯 우정을 갖게 될 좋은 사람이 강호에 있었습니다. 내 먼저 기뻐할 테니 님들이여 편안히 즐기십시오.
비가 와 함께 잤다.
29일 흐렸다. 낮에 뇌성이 울렸다.화재 김후근이 서동을 보내 나를 오라고 하였다. 나막신과 옷을 빌리고, 최일수(복원)가 부축을 하여 어렵게 갔다. 돼지고기와 술을 먹고 마셨다. 그리고 오언율시와 칠언율시를 각 한 수씩을 지었다.
#노송은 눈 속에 육중하게 서있고, 고죽은 서리를 이기고 무성히 자라있습니다. 조용한 방안에서 흉금을 터놓고 웃음웃고, 등불 멀리 치우고 무릎 마주대고 이야기 나눕니다. 신선이 사는 곳에 별천지 섬이 감춰져 있고 즐거운 곳 이곳이 존경하는 벗이 있습니다. 앉아 있으니 맑고 청허한 세계라, 빼어난 이 놀이 모든 아름다움으로 가는 문입니다.
#술 취한 듯 흔들거리는 버드나무 가지 모두 다 봄입니다. 따뜻한 기운으로 모두 함께 이웃이 되었습니다. 음식점에서 밤에 만나 매달 시를 평가하자는 것을 누가 정하였는가. 글이 있는 바닷가에 봄소식이 돌아옵니다.천지의 인은 모든 것을 품을 만큼 큽니다. 강호 한가한 이곳에 작은 몸을 거처합니다. 사해의 사람들이 모두 형제임을 알았으니 두루 바라보니 모두가 좋은 사람들입니다.
저녁에 컴컴하고 진창길이 험하여 돌아오지 못하였다. 화재 김후근의 숙소에서 자려 했는데 정신이 말똥말똥하여 잠이 오지않아 서경 한 질을 통째로 읽었다.
12월
초하룻날 무인일. 큰바람이 불고 추웠다. 일찍 집에 돌아와 머리를 빗었다. 서경을 모아 한번에 읽었다. 저녁에 상하경을 읽었다. 저녁 대단한 추위였다. 내일은 대한이다.
2일 맑았다. 추위가 조금 풀렸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서경을 읽었다. 낮에 서경을 읽었다. 밤에 역경을 읽었다.
3일 맑고 따뜻했다. 새벽에 일어나 주역을 읽고 머리를 빗었다. 오후 집안사람 재요가 대윤이의 장조카와 함께 왔다. 아들 정언 김인섭의 편지를 받아보았다.온 집안이 무고하고 손자아이는 잘 자라고 있음을 알고 기쁘고 행복하고 행복했다. 또 재종형의 편지를 받고 근력이 강건하심을 알았다. 매우 기쁘고 기뻤다. 또 사형과 영언(기정), 친척 박장서(상호), 정식이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형 권백현(응락)과 영서(병린)의 편지는 주변에 대해 꼼꼼하게 묻고 위로하였다. 매우 고맙고 고마웠다. 저녁에 재요와 함께 고향산천에 대해 정담을 나누다보니 기쁘고 즐거웠다. 심신이 움직여 날아 공향에 가는 것 같았다. 정신이 맑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여 잠이 오지 않았다. 서경과 주역을 날이 샐 때까지 읽었다.
4일 흐렸다. 새벽에 머리를 빗었다. 종일 기운이 없이 고달팠다. 저녁에는 정신이 흐릿해져 일어나 있지를 못했다.
5일 비가 오고 눈이 내렸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저녁에는 서경을 읽었다.
6일 큰바람이 불다가 가끔 눈이 내렸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밤에는 서경을 읽었다.
7일 바람이 잤으나 아직 흐렸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낮에 집안 사람들 송별하러 나루머리에 이르렀다. 가는 것을 멀리 바라보니 있자니 마음이 한탄스럽고 이지러졌다. 아들 정언 김인섭에게 답장을 쓰고 각자에게도 편지를 써 주었다. 저녁에 서경을 읽었다.
8일 맑고 따뜻하였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진장이 내준 운에 화답을 하였다.
#천지에 멋대로 굴다보니 귀밑털에 서리가 내렸습니다. 십중팔구 죽을 뻔 했음에도 아직까지도 재주를 감추고 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달관하였다고 하나 모두 다 이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곳에서 날카로움을 마음에 담고 있으니 어느 누가 믿겠습니까.대숲에서 나는 소리는 바람을 따르며 움직이고, 매화 향기는 눈꽃 향기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모두가 길을 떠나가는 나그네입니다. 애오라지 술 한 잔 마시며 즐겁게 살도록 하겠습니다.
저녁에 서경을 한차례 통째로 읽었다.
9일 맑고 따뜻하였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문정동 성술여(계주)가 용천에 있는 유배지에서 마침내 죽었다 하였다. 금년 여름 박규수에 의해 억울하게 투옥되었다가 이천리 멀리 떨어진 곳으로 유배에 처해졌다가 이러한 흉변을 당했다. 이것은 나의 죄에 엮어 생긴 나쁜 운이다. 성술여에 대해 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성술여의 부인은 나와 동갑으로서 남달리 정의가 두터운 사이다. 지난 유월 진양에서 출발할 때 이백냥을 가지고 왔다. 가랑비처럼 눈물 그렁그렁 흐느끼면서 서로 말없이 쳐다보면서 길을 나누었다.누가 그때의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되리라고 생각했겠는가. 또 승지 정면조가 죽었다는 흉보를 들었다. 이는 지난 봄 진양의 난 때 특별히 뽑혀 명을 받자와 진양에 와 마음과 힘을 남김없이 다한 대신 몸에 병을 얻었다. 힘없는 백성들을 어루만져주고 간악하고 교활한 무리를 억눌러 읍란을 평정하였고 선을 표창하고 악을 징벌했다. 큰나무에 바람소리가 나나니 진실로 옛날에 있었다는 군자의 모범이다. 내가 혹독하고 심한 재앙을 면하고 목숨을 보전하게 된 것도 실로 그에 힘을 입은 것이다. 영원히 그 은혜에 보답을 하고자 했는데 지금에 와 바로 이렇게 되었으니 다만 애도할 뿐이다.
10일 맑고 따뜻했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서경을 읽었다. 저녁에 주역을 읽었다.
11일 맑고 따뜻했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감정록을 썼다. 저녁에 서경을 읽었다.
12일 맑고 따뜻했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저녁에 서경을 읽었다.
13일 맑고 따뜻햇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저녁에 서경을 읽었다.
14일 맑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오후 대윤이와 최일수(복원)와 더불어 나루를 건너 산등성이를 올랐다. 마음속에 감춰둔 답답함을 풀었다. 그리고 산을 의지해 서쪽으로 넘어가니 조삼리가 보였다. 마을이 얌전하게 생겼다. 진실로 은자가 살 정도로 구불구불 하였다.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며 바다의 기운을 들이마시니 헌걸찼다. 옷을 떨치고 돌아오면서 주가에 들어가 술을 사 목을 적시고 돼지고기를 사 먹었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에 서경에 읽었다.
15일 맑고 따뜻했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식후에 통영을 거쳐 온 집안 편지를 받았다. 정언이 바깥에 나갔다는 며느리의 편지를 보았다. 또 장서의 편지를 보았다. 모두 무고하다니 매우 위로가 되고 외로운 생각이 들었다. 다만 권희윤(한성)이 지난 11월 20일 갑자기 죽었다 하였다. 그는 나에게 매우 다정하였다. 내가 화를 당할 때 여러 번 절절히 위로해주었다. 마음에 담아 두었으니 언제 이를 잊을 것인가. 슬프다. 다시 볼 수 없고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유명을 달리하였으니 슬픔이 커 쓰러질 것 같구나. 저녁에 서경을 읽었다.
16일 맑고 따뜻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식후 화재 김후근의 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시를 지었다. 칠언율시 2수, 오언율시 1수를 얻었다.
#내가 걷는 길을 후에는 아들도 걸을 것입니다. 날이 들쑥날쑥 오고가더니 문득 한 해를 보냅니다. 죽게 되면 삼겁의 업장이 소멸되겠지요. 죽은 뒤 다시 태어나더라도 이승의 업은 다시 이어질 것입니다. 겨울이 이미 다하고 따뜻한 해가 세 번 되풀이 합니다.(내일이 입춘이다). 봄 신이 와 영을 전합니다. 취해 시를 읊고, 또 읊으며 취합니다. 강호 한가한 이곳에서 유연히 앉아있습니다.
*이 해는 쌍춘년이었음
#세월은 섣달 그믐날이 돌아왔으나 나그네는 아직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돛은 해풍의 위력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나그네는 객지의 시름을 이길 수 없어 술잔을 기울입니다. 섣달이 다해가니 겨울 옷을 벗기 시작합니다. 송죽은 기개와 절개를 보이고 지란은 광휘를 뿜습니다. 조 알과 같은 덧없는 인생에 얼마나 세월이 허여될지 몰라도 다만 사람들과 서로 원망함 없이 함께 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가하고 느긋함이 다함없습니다. 강호를 스스로 집으로 하였습니다. 푸른 언덕은 깎을 수 없고 백발은 이길 수 없습니다. 붕새 큰 뜻은 바다를 덮고 백로 한가함은 모래밭을 지킵니다. 슬픈 노래가 들리는 곳 편안하고, 바다 비린내는 꽃에 가득합니다.
술에 취해 해가 저무는 줄도 몰라 돌아오지 못하고 잤다. 한밤중 술이 깨어 화재 김후근과 함께 이야기 하고 서경과 주역을 읽었다. 닭이 세 번을 울어 불을 켜놓고 술을 덥히고 국을 데워 먹었다.
17일 갑오 큰어머니 제삿날이어 느꺼워 슬펐다. 입춘날이다. 아침에는 맑고 저녁에는 바람이 불었다. 새벽 머리빗기를 하지않았다. 화재 김후근과 더불어 입춘시를 지었다.
#세월의 기운이 순환하여 다시 첫날이 되었습니다. 봄빛이 바닷속에 있는 마을에도 막힘없이 들어옵니다. 흰머리가 거울 속에 비친 시든 마름꽃을 애석해 하고, 푸른 눈을 서로 보며 잣나무잎을 존경합니다. 죽은 풀을 다시 살려냄은 천지의 덕이고, 죽은 버들이 움터 빛나는 것은 비와 햇살의 은혜입니다. 새로운 햇빛이 비친 날 새마음으로 원하노니 제일 중요한 것은 말을 신중히 해야 할 것입니다.
오후에 돌아왔다. 밤이 어두워지자 고달파 쓰러져 누웠다. 한밤중에 이불로 몸을 감싸안고 앉아 주역을 읽었다.
18일 눈이 오다 바람이 불다 하였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어제 빼먹은 것을 보충하기 위해 시경 육백편을 읽었다. 저녁에 주역을 읽었다.
19일 맑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서경을 읽었다. 식후에 화재 김후근의 집에 갔다. 주인 늙은이가 어른 아이 구분없이 섞여앉아 노소를 잊어버리고 질탕하게 놀고 있는 모양이 가관이었다. 노주와 청주를 섞어 내어 크게 취해 돌아왔다. 저녁에 쓰러져 깊이 잠들었다. 오경 북소리에 깨어 일어나 주역을 읽었다.
20일 맑았다. 마음속 시름이 어지럽게 오고가 새벽 머리빗기와 책읽기를 그만 두었다. 전주 감영편으로 집에 보내는 편지와 장서의 편지에 대한 답장을 보냈다. 또 장서의 시에 화답해 주었다.
#세상길 위험하기가 촉나라 가는 관문처럼 사납습니다. 뜻을 세움에 있어 모름지기 철옹성처럼 매우 튼튼하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얼음과 눈에 뒤덮인 하늘과 땅에서도 매화는 스스로 향기를 풍기고 풍상과 지진과 산사태에서도 대나무는 한가롭게 푸릅니다. 관복의 가슴부위 수놓은 것은 하늘의 휘장처럼 빛나고 한 조각 정성스러운 옷깃은 달 비치는 물처럼 맑습니다. 은혜 베풀어 돌보아줌이 이처럼 진중하고 귀중하오니 새봄이 되면 같이 동반하여 거울 속을 산보가도록 하겠습니다.
거주하고 있는 집 주인 박윤량이 살아가기가 감당하기 어려워 집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 타인이 3-4개월이 지나면 들어온다고 한다. 편안하게 해주고 정이 깊어 일시 의탁하였었는데 일이 잘못되어 서로 헤어지게 되니 마음이 편치 못하다. 저녁에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워 책읽기를 그만두었다.
21일 맑았다. 닭이 울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역을 읽고 머리를 빗었다. 어제 빠뜨린 것을 보충하였다. 식후에 대윤 최일수 최경칠과 함께 도찬리 마을에 가 놀며 구경하다가 날이 저물어 돌아왔다.
22일 맑았다. 대윤이가 진장에게 욕을 보았다. 나 역시 끌여들여짐을 면치 못하였다. 종일 분해 한탄하였다. 책읽기를 그만두었다.
23일 맑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어제 못한 것을 오늘 벌충하여 읽었다. 화가 아직 남아 있어 입을 열어 책을 읽을 생각이 없었다.
24일 맑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었다. 최일수가 본읍 영광을 가게 되어 원당종중과 구현에게 편지를 부쳤다. 석양에 대윤과 경칠과 함께 나루머리로 나가 박윤량이 새로 이사한 가게 집에 갔다. 술을 사 마시며 답답함을 털었다. 저녁 어두워지자 고달파 읽기를 놓았다.
25일 맑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서경을 읽었다. 숙소를 안문복의 집으로 옮겼다. 방이 매우 어두워 책 보기가 어려웠다. 저녁 근심스럽고 답답하여 밤이 다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26일 흐리다가 밤에 비가 내렸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술을 사 마시며 근심을 떨쳤다. 밤에 또 잠을 이루지 못했다.
27일 흐리다가 비가 왔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서경을 읽었다. 마음이 편치 못하였다. 분하고 원통해 하며 날을 보냈다. 저녁에 주역을 읽었다.
28일 비가 내렸다. 저녁에 뇌성이 쳤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서경을 읽었다. 당시를 보며 답답함을 떨쳤다. 저녁에는 끊임없이 바람이 치고 비가 내렸다. 홀로 앉아 있으려니 느낌이 와 칠언 율시 한 수를 지었다. 다음 시의 운율은 ‘백거이’의 ‘항주춘망’이란 시의 운율을 차용했다.
#비 내리는 빛깔이 차차 저녁노을과 같아지고 바람은 모래펄 위에서 천천히 지나가며 소리를 냅니다. 백대 흘러가는 세월 누가 나그네가 아니리요. 호남의 바다를 스스로 집으로 삼았습니다. 천리길 나그네 시름을 수양버들가지에 의지하고 오경 깊은 밤 고향 꿈이 등잔불과 함께 타오르고 있습니다. 일년이 문득문득 지나가 이제 사흘저녁만 남았는데 거울 속 비껴있는 서리 내린 흰머리를 보고 비감에 잠깁니다.
29일 맑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당시를 보았다. 저녁 심기가 무단히 편치를 못하였다. 쓰러져 누워 떨쳐 일어나지를 못하였다.
30일 구름이 두껍게 끼었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주학기가 술을 가지고 왔다. 당시를 보았다. 최경칠이 찾아왔다. 오늘 저녁이 섣달 그믐이다. 슬픔과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여 화재 김후근의 집에 가 술을 마시며 시를 읊고 담소를 나누다 보니 하늘이 밝아왔다. 축시(새벽 1시에서 3시)에 화재 김후근이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점을 쳤는데 길하다고 나왔다. 시를 읊었다. 칠언 율시 2수를 지었고, 오언율시 칠언절구 오언 절구를 각 한 수 씩 얻었다.
#금년은 모름지기 이 밤 지나고 나면 따라 없어질 것입니다. 일년은 쉽게 가버리고 또 새 아침이 밝아올 것입니다. 여섯 마리의 준마가 벽의 갈라진 틈으로 쏜살같이 지나치고 삼충은 하늘에 올라가 사람의 잘못을 천제에게 보고합니다. 온갖 재앙이 하늘과 땅에 있고 오복은 하늘과 땅의 조화에서 옵니다. 만일 오늘저녁을 헛되이 보낸다면 도소가 있는 곳에서 함께 소요할 것입니다.
#옥이 곤산의 불길 속에 들어간다면 섞여 먼지로 사라지고, 땅이 응한다면 사면령이 질풍과 우레소리가 되어 올 것입니다. 일년의 나쁜 운수 이제 오늘 저녁이 남았으니 천리 유배길의 회포 또 술잔에 붙입니다. 인생이 흘러가고 강물이 흘러가고 한해가 일각일각 재촉하여 지나갑니다. 시름이 얽히고 얽혀 시를 아직 얻지 못하는데 문득 북두칠성이 하늘 끝에 돌아왔음을 보고 놀랩니다.
#불을 끄고 백설을 노래하니 온 세상이 홀연 봄철이 되었습니다. 귀양살이 하는 사람이 좋은 계절을 만나 거듭 대궐의 임금님을 바라보며 성은을 내려주기만을 기다립니다. 하늘이 죽은 풀을 살려 꽃봉오리를 피게 하고 봄은 죽은 버드나무가지를 살려 하늘을 향해 오르게 합니다. 우리들이 무엇을 근심하겠습니까. 마침내 경사스럽고 좋게 되고 말 것인데.
#지난해 나는 소리가 났습니다. 신수를 보니 낮이 되면 운이 있겠습니다. 운세가 침체되었다고 탄식하지 말라. 다만 인연에 의해 그리됨이니 지난 날 어리석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렵니다.
#화재 김후근 옹은 세월이 더디 가는 것 같습니다. 붉은 칠한 붓이 아직도 나는 듯합니다. 어찌 두루미처럼 여위어감을 한탄하겠습니까. 다만 마구간의 말이 살찜을 부끄러워할 뿐이지요.
계해년(1863년)
춘왕 정월
초 1일 무신. 맑고 오후에 바람이 불었다. 김도천이 주학기 부자형제, 준악이와 함께 와 세배를 하였다. 또 병교 조군이 와 세배를 하였다. 심사가 무단히 편안하지 않아 쓰러져 잤다. 책 읽기를 그만두고 다만 칠언율시 한 수를 얻었다.
#계해년 신년 정월 1일입니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경쾌하게 불어 해가 나고 따뜻합니다. 해와 달과 오성이 가지런히 정돈되니 순임금이 다스리는 아름다운 나라와 같고 삼양이 솟아 나날이 나아가니 복희의 세상입니다. 세상이 상서롭고 풍요하며 중용을 잃지 않아 태평한 세월이 됩니다. 백수노인이 무엇을 원하겠습니까. 다만 후손들에게 복을 주는 조상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2일
기유일. 우수이다. 맑고 화창하였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어제 빼먹은 주역읽기를 보충하여 읽었다. 최정묵(경칠) 형제가 술과 음식을 가지고 와 세배하였다. 최관학(최일수의 아들) 숙질이 와 세배를 하였다. 익산 사령이었다가 역시 이곳에 유배와 있는 김태산이 찾아와 세배하였다. 이방 박치무와 진에서 근무하는 이만오가 찾아와 세배하였다. 진교 정은명이 술과 반찬을 가지고 왔다. 주역을 읽었다.
3일
맑았다. 최일수가 원당으로부터 와 종인 구현이와 석렴의 답서와 엽전 두꿰미를 얻었다.점을 쳐 동인괘와 무망괘를 얻었다. 화재 김후근이 강제로 요청하여 그의 숙소에 갔다. 이번에 처음이다. 그 맏손자 천균이 와 있었다. 술과 반찬을 차려놓고 함께 더불어 배불리 먹기를 원하는 것이었다.그리하여 상을 나란히 하여 많이 먹었다. 말하기를 김제에 사는 신석구가 오율시를 보내왔는데 나에게 함께 시를 짓자고 하여 그 자리에서 응답하였다.
#천운은 항상 오고가는데도 인생은 만나고 이별하여야 함이 고통스럽습니다. 고향의 소리를 알려주는 파랑새 서신이 끊겼는데 한가한 모임에는 백구가 따르고 있습니다. 옛날 내리던 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리, 새로운 해가 바로 시작하는 때입니다. 다만 나그네 한에 너그러우라. 시시비비 덮고 시 읊기를 사랑하노니.
식사 후 바로 숙소에 돌아와 나정일에게 길흉을 묻는 점을 치니 나정일이 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인 노파가 어머니 상을 당했다.저녁 후 등불을 들고 화재 김후근의 집에 갔다.아침나절에 이어 어지러운 분위기였다. 화재 김후근이 동자들과 함께 웃고 장난하며 소일하고 있으니 진실로 소위 천기가 유동하고 상하가 함께 즐긴다 하겠다. 또 기운이 호매하고 굳세고 꿋꿋함을 자기 뜻대로 하고 소년들과 어울리는 멋이 격에 어울리니 크게 부럽다 하겠다. 즐겁게 웃으며 밤을 보냈다. 저녁 후 홀로 앉아 주역 하경을 묵송하였다.
4일 맑았다. 아침에 술을 사고 고기를 삶아 배불리 먹고 숙소에 돌아왔다. 책과 율시 한 수를 삼두리 최태문에게 보냈다. 나그네가 섣달 28일 저녁에 만든 것이다.
#이름난 산 옥처럼 환히 빛나는 사람입니다. 유가의 진귀한 보물에 합당합니다. 일을 끝내고 소나무 계수나무 집에서 책을 읽으며 난초와 혜초 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하늘 해 달 속에 근심없는 나그네 온 강호를 매임없이 마음대로 다니고 있습니다. 내 그대와 함께 연하와 바다와 험한 곳을 따르고자 하나니 노를 저어 올라가니 정신이 새롭습니다.
심부름시킨 사람이 돌아와 최태문이 오늘 저녁에 찾아 와 세배하겠다는 말을 전하였다. 진교 김군이 찾아와 세배하였다. 최일수가 원당에서 돌아왔다. 종인 김석렴과 김정택의 편지와 도와주는 돈 400전을 받았다. 궁벽한 바닷가에 앉아있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인데 그 누가 나와 더불어 주고 또 세상의 풍속이 쇠미해져 비록 높은 벼슬에 있고 부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밥그릇과 제기를 차리면서 머뭇거리는데 있어서랴. 거친 들판에서 곡식농사를 짓고 병으로 인한 고통으로 어려운 데도 이렇게 후의를 베풀어 주고 또 앞서 베풀어준 것도 많은데 끊이지 않고 베풀어 주니 이것이 소위 마음으로부터 베풀어 주는 것이리라. 시경에 이르는 대로 지금의 사람 중에 나와 같은 성씨의 사람이 없구나. 옛사람이 먼저 나의 마음을 정확히 표현하였구나. 저녁식사 후 최태문이가 과연 밤을 와 문을 두드리니 마음 써 줌이 깊다. 사람들이 따라와 무릎을 마주대고 앉아 기쁘게 이야기를 하면서 운을 내걸고 시를 지었다.
#고인께서 중첩한 산을 넘어 와주었습니다. 산 넘고 물 건너고 진창길 넘어와 밤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호남 땅 중첩된 산봉우리 하늘에서 오신 손님이여. 자리에 마주 앉고보니 책을 가까이하며 사신 분이십니다. 설날 금년운세를 점치니 많은 돈을 얻고 만사가 한가롭다 합니다. 구름과 물의 나라에서 어찌 그대와 이웃을 맺지 않으랴. 끊임없이 서로 이어가니 마치 쇠사슬과도 같구나.
5일 맑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아침 식사 후 최태문이가 돌아가겠다고 고하여 심히 원망스러웠다. 감기로 인하여 몸이 편치 않았다. 낮부터 밤까지 이어 신음하였다.
6일 오전에는 맑고 오후에는 흐렸다. 몸이 편치않아 책 읽기를 그만두었다. 식후에 화재 김후근 옹이 와 우스개 소리를 하고 또 술을 사와 즐겁게 마시니 마음속의 답답함이 풀렸다. 석양에 돌아갔다. 진동 강맹순과 박재권이 와 공부를 배웠다. 감기가 아직 낫지 않았다. 저녁에 또 아파 신음을 하였다.
7일 맑고 화창했다. 새벽에 서경을 읽고 머리를 빗고 감았다. 주행문(주학기의 막내동생으로 나이가 9세다)이 와 글을 공부하였다. 오늘은 인일이다. 일기가 화창하고 길하여 백성들의 맺힌 원통함을 풀어주었다. 면면히 이어져 온 나라의 좋은 날을 맞아 시를 지어 찬양하고 기도하였다.
#정월 칠일 이날은 신령한 날입니다. 모든 백성들의 목숨을 맡은 날이니 이름하여 바로 인일입니다. 육기경륜에서는 먼저 갑을 꺾고 천지인을 바로 세워 기르는데 인이 협동합니다.(7일의 간지가 갑인일이다) 천문은 아름답고 밝아 상서로운 구름이 성하고 지기가 바야흐로 피어올라 상서로운 아침해가 새롭습니다. 뭇 백성들은 원망과 근심이 없으니 오늘 인일을 맞이하여 쉬면서 신 앞에 삼가도록 하겠습니다.
당나라 시를 보았는데 한문공이 남관에 좌천되어 가면서 조카 손자 한상에게 써준 시까지를 보았는데 느낌이 와 닿았다. 외로워 북쪽하늘 북극성을 바라보니 하늘은 아득하고 구름은 일천리 떨어진 곳에 흘러가고 있었다. 뜻하는 바가 꺾이고 무너지지 않았는가. 세월이 차츰 흘러가 신년이 되니 마음이 슬퍼진다. 앞서 큰 재앙과 그에 뒤따른 원수같은 악질이 뒤따랐다. 아홉 번 죽다 살았으니 남은 여생 이곳 장기서린 바닷가에 뼈를 내던져진다할지라도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 한문공의 원 시를 기록한다.
#아침에 구중궁궐에 상소를 올렸더니 저녁에 팔천리길 먼 조주로 좌천가네. 성명하신 황제를 위해 폐단을 없애려 행동했거늘 어이 쇠약한 몸으로 남은 목숨 아깝겠는가. 구름은 진령을 덮어 내 집이 어딘지 모르겠고 눈은 남관을 감싸 말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네. 네가 멀리 나를 배웅함은 반드시 마음에 짚히는 바 있음이리니 독기서리 강가에서 나의 뼈를 거두어 주기 바란다.
저녁에 서경을 끝까지 다 읽었다.
8일 흐리고 맑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서경을 읽었다. 당나라와 송나라 시를 보았다. 이사중이 영주별가로 좌천되어가는 당개를 송별하는 시에 이르러 탄식이 나오고 눈물이 흘렀다. 그 시의 운을 매겨 감개와 불편한 회포를 쏟았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분별을 잃지 않고 행동을 바로하는 의리를 분명히 보았습니다. 올곧게 바른 말하는 풍채 다시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세 번 내침을 당한 것은 원래 바른 도리에 말미암은 것이니 천추에 우러러보는 높은 산이 되셨습니다. 군자의 먹은 마음 하늘의 태양처럼 밝고 간사한 사람의 죽은 쓸개는 눈과 얼음처럼 싸늘합니다. 나는 미친 짓하여 이름을 내세울 수 없으니 부끄러운 마음 무슨 얼굴로 고향에 다시 돌아갈수 있겠습니까.
이사중의 원 시는 다음과 같다.(생략)
저녁에 주역을 읽었다.
9일 흐리고 추웠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서경을 읽었다. 송시를 보았는데 왕정규가 충간공 호인이 유배 가는 것을 송별하는 시까지 읽었다. 또 감회가 일어 시를 지었다.
#한통의 충성스러운 상소문은 궁궐을 흔드니 서릿발 같이 거룩한 절개는 당당하기 그지없습니다. 물수리가 하늘 위에 나타나니 더러운 무리들이 놀라고 봉황새가 아침 해 속에 나타나 우니 깨끗함이 진동합니다. 몸을 막막한 거친 황야 바깥에 던지니 길이 환하고 또렷이 나타납니다. 새로운 곳에서 해를 바라보니 멀리 고향집이 생각나고 꿈속일망정 나는 수없이 고향으로 날아갔었습니다.
또 지었다.
#괴롭고 고생스러운 나라의 운명을 외롭게 한손으로 지탱하면서 고통과 위험을 사양하지 않았습니다. 평생소원이 뭍 소인배를 제거함이니평소 이러한 생각이 어찌하여 세 번 추방되었다고 굽히겠습니까. 거짓없는 참된 마음을 오로지 하늘만은 알 것입니다. 바다의 독기와 염천이 굳셈을 어찌 시험할 수 있겠습니까만 천지신명이 묵묵히 지켜주고 있습니다.
저녁에 주역을 읽었다.
10일 맑고 화창했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당시를 보았다. 저녁에는 서경을 읽었다.
11일 맑고 따뜻하였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식후에 화재 김후근 옹이 동자오륙인을 데리고 와 뒷산 언덕에 함께 올라 파도를 바라보자고 하였다. 흔연히 손을 잡고 함께 산에 올라 바다색을 굽어보고 눈을 서북으로 향하여 하늘빛과 구름 가를 한번 바라보니 가없는 푸르름이 숲처럼 아름다웠다. 눈을 찢어지게 크게 뜨고 바라보니 바닷물이 하늘에 잇닿아 있었다. 딛고 있는 곳이 바람이 세고 비탈이 가팔라 오래 있을 수가 없어 서로 더불어 잡아주며 아래로 내려와 산록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 때 홀연 키가 헌걸찬 사람이 와 화재 김후근 옹을 만났다. 화재 김후근 옹이 그를 끌고 와 나에게 인사를 시켜 내가 머리를 조아려 인사하였다. 서울 사람 최태석 역시 이 섬에 유배 온 사람이었다. 사람됨이 자못 막되먹지않은 사람이었다. 일찍이 무과에 등과하여 실제 근무하지는 않았으나 별제자리에 올랐다 하였다. 그리하여 함께 돌아오다 그의 숙소 집 문앞을 지나는데 강제로 끌어 함께 들어가려하니 영락하여 타지방으로 떠돌아다니는 흔적을 차마 마음 편히 볼 수가 없었다. 화재 김후근 옹을 따라 들어가 잠시 앉아 있으니 술을 내왔다. 술은 맛있고 안주도 좋아 도연히 취하였다. 집에 돌아가고자 하여 돌아와 집에 누워 있자니 화재 김후근 옹이 쉬지도않고 술을 가지고 와 더불어 마셨다. 최태석이 청주 한 병을 보내왔다. 술을 어지럽게 권하며 마니니 유쾌하고 즐거웠다. 운을 내걸고 시를 지으며 놀았다.
#봄날 지팡이 짚고 나막신 신고 가파른 산봉우리에 임하고, 깊고 큰 바닷가를 돌아다니며 놉니다. 북쪽 사는 곤이 붕새되어 남쪽바다로 날아오르고 하백은 어찌해서 바다 귀신을 찾고 있을까요. 늘어선 섬들은 나뭇잎처럼 희미하게 떠있고, 큰 파도에 놀래 내려보니 바다는 마치 숲처럼 푸른 빛 감돕니다. 유배인들이 서로 안타까워하며 향기로운 막걸리를 걸러 내어오니 도연히 취해 시한수를 읊습니다.
그리고 같은 상에서 김을 구워 밥을 먹고 누워있으니 한 노인이 달빛 속에 찾아왔다. 화재 김후근 옹이 친절히 맞이하였다. 나 역시 더불어 말을 하며 통성명을 하고보니 오래전부터 알아온 서울 거주 권용수였다. 지난 경신년(1860)말 죄에 걸려 해를 넘겨 신유년(1861) 2월에 지도로 유배를 와 지금까지 3째 유배생활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베게를 나란히 하고 같이 잠을 자며 옛 이야기를 자세히 나누니 간담상조와 흉금을 연다는 말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목소리에 믿음이 있었다.
12일 맑고 바람이 불었다. 아침 일찍 숙소에 돌아와 머리를 빗었다. 아침식사 후 벗 권용수(정사생)가 와 무릎을 맞대고 앉아 이야기하였다. 술을 사와 함께 마셨다. 저녁에 다시 화재 김후근 옹의 숙소에서 만나 낮에 이어 밤에도 술을 마시며 시를 지으며 회포를 풀기로 약속하였다. 점치는 책을 얻어 그 이치를 연구하려하였으나 정신이 집중이 되지 않아 불가능하였다. 저녁에 달빛이 맑게 빛났다. 약속을 저버릴 수 없어 억지로 화재 김후근 옹의 숙소로 갔다. 벗 권용수가 나를 보고 사람들이 둥글게 앉아 있는 곳으로 끌고 갔다. 슬프고 한스러워 화재 김후근 옹과 더불어 술병을 잡고 마셨다. 회포를 자기 맘대로 방종하게 내뱉어 격렬한 주장에 이르렀다.
13일 바람이 불었다. 일찍이 집으로 돌아와 머리를 빗었다 식사 후 벗 권용수가 와 엊저녁 신뢰를 저버린 강한 언사에 대해 사과하였다. “바람이 불어 배를 댈 수가 없다”하고
가더니 조금 있다가 와 “지금 풍세가 서쪽으로부터 부니 동쪽으로 건너가기에 좋다”고 하여 작별하고 떠나갔다. 매우 섭섭하였다. 석양에 우울함을 이기지 못하여 지팡이를 짚고 바닷가 모래변을 이리저리 거닐다가 달빛을 띠고 돌아왔다. 저녁 식사 후 술을 보내준 사람이 있어 흠뻑 마시고 취하여 자다가 닭이 울자 깨었다.
14일 맑고 바람이 불었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진교 정은명이 술을 보내와 숙취를 풀었다. 저녁에 달이 떴다. 화재 김후근 옹이 술자리를 벌여 흔연히 참석하여 오래토록 마셨다. 시 한 수를 얻었다.
#바다가 뱃속 빈 곳에 별도의 구역을 잉태하였습니다. 하늘은 공평하고 또 자세를 낮추니 이곳 누각에 달이 밝습니다. 세상의 정은 이미 물에 떠도는 물오리에 붙였습니다. 끝없이 넓은 바다 위 호탕하게 나는 갈매기를 누가 가르쳤겠습니까. 음을 들이마시고 양을 내뱉으니 노래가 됩니다. 시절은 화목하고 세월은 즐거워 노래를 읊습니다. 봄은 새로웠으나 비는 예전에 내렸던 것이어서 아름다운 모임이 됩니다. 이제 다시는 사람들 사이 이별의 한과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15일 큰 바람이 불고 추웠다. 일찍이 숙소에 돌아와 머리를 빗었다. 석양에 또 화재 김후근 옹의 숙소에서 술자리를 만들었는데 느꺼워서 슬펐다. 집에 돌아와 저녁에 주역을 읽었다.
16일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곤양 사야동에 거주하는 김씨 성을 가진 이가 찾아 와 보았다. 멀리 월나라에 유배된 사람이 자기 나라 사람을 보기만 해도 기쁜데 하물며 같은 고향 가까운 사람이랴. 흔연히 서로 붙잡고 가까운 마을 소식을 물었다. 진주 동남면에 사람들이 다시 방을 내걸어 시끄럽게 하고자 하니 병사가 각 면의 풍헌을 불러 민심을 순하게 하기위해 백성들이 원하는 바대로 따르라고 타일러 봄이 되면 매 사람 당 52냥씩을 나누어 주기로 하니 사람들이 흡족하여 별탈없이 순조롭게 끝이 났다. 남해는 새해가 되기 전부터 소란이 크게 일어나 공공건물과 민간의 집이 많이 불에 타
지주들이 몸을 숨기고 도망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 진해에서 또다시 일어난 소란은 지주가 속임수로 감영에 올라가 백성들을 이롭게 하는 방책을 협의한다고 하였으나 순찰사에게 허위로 아뢰어 감영에서 포교를 보내 각 촌의 두민 12인을 잡아 가두었기 때문에 일어났다 한다. 아! 백성은 하늘이다. 하늘을 속이고 거스르고 이길 것인가. 돌아간다고 말 하길래 집으로 보내는 편지를 부탁하였다. 내평리는 10여리 떨어진 곳이다. 나는 듯이 전하라고 하였다. 저녁에 서경을 읽었다.
17일 갑자일, 경칩이다. 아침에 흐리더니 낮에는 해가났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서경을 읽었다. 저녁에 서경을 읽었다.
18일 맑고 바람이 불었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식후에 화재 김후근 옹이 작은 시 한수를 지어주기를 원했다. 화답하였다.
#진주에서 온 소식은 붉고 섬세하게 이어지는 노래입니다. 슬픈 노래 통곡이 되니 흰머리 숙여짐을 견디지 못합니다.
잠시 있다가 가니 과연 좋은 술과 사람들이 있어 술을 권하며 기분이 좋게 취하였다. 집에 돌아와 날이 밝을 때까지 쓰러져 잤다.
19일 맑고 바람이 잤다. 머리를 빗고 책을 읽었다. 일과를 끝냈다. 칠언절구로 화재 김후근 옹을 희롱하였다. 시는 이렇다.
#화재 김후근 옹이 벼슬을 그만두고 이곳에 머무르며 한가하게 지내니 항상 봄날입니다. 누워서 편히 지내는 신선이니 신선의 취향은 범인이 따르기에는 너무도 멉니다. 비록 따르고자하여도 보잘 것 없을 뿐입니다. 허허 속인들은 헛되이 나부낄 뿐입니다.
시에 대한 답으로 앞산에 함께 오르자고 강요하여 흔연히 따라나섰다. 함께 노주 서너잔을 따라 마신 다음 지팡이를 짚고 서로 도와가며 서서히 동쪽 산기슭을 구불구불 걸어가다가 최일수의 집에 들어갔다. 청주 몇 잔을 마시니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나루머리까지 걸어가 행화라는 이름의 가게에 들어가 따뜻한 국과 탁주를 사먹고 또 박윤량의 집에 이르러 또 돼지고기 안주에 탁주를 마셨다. 화재 김후근 옹이 술에 대취하여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져 안타깝게도 산언덕에 오르지 못하였다. 돌아오니 저녁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20일 맑고 따뜻했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육선주가 익었다. 건양고본단 제조를 마쳤다. 지난해부터 만들기를 시작하였으나 재료를 구하지 못하였다가 오늘 충분히 얻어 제조를 마친 것이다. 화재 김후근 옹에게 육선주를 보냈다. 시로 화재 김후근 옹을 놀렸다. 시는 다음과 같다.
#육선주 한 잔을 보내옵나이다. 이를 마시고 신선이 되어 봉래산에 오르시구려.
오늘이후 신선으로 변하여서 다시는 전과 같은 추하고 부끄러운 일을 반복하지 마옵소서
서울에 가는 편이 있어 서울에 간 정언에게 글을 보냈다. 또 진사 정문유(준화)에게 편지를 썼다. 또 선달 홍영섭의 편지에 대해 답을 주었다.
21일 밤부터 비가 내렸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건양고본단 환약을 복용하기시작하였다. 감정록을 썼다. 저녁에 역경과 서경을 읽었다.
22일 맑고 따뜻했다. 새벽에 일어나 약을 복용했다.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감정록을 썼다. 저녁에 서경을 읽었다.
23일 맑고 따뜻했다. 새벽에 일어나 약을 복용했다. 머리를 빗고 주역을 읽었다. 감정록을 썼다. 저녁에 서경을 읽었다.
24일 맑고 따뜻했다. 새벽에 일어나 약을 복용했다. 머리를 빗고 서경을 읽었다. 감정록을 편찬했다. 저녁에 주역을 읽었다.
25일 닭이 울 때부터 비가 내리더니 종일 그치지 아니하였다. 빗소리가 쓸쓸하여 나그네의 회포가 끊임없이 생겨나 불빛만 깜박깜박 잠이 들지 못하였다. 아내에 대한 생각을 능히 그칠 수가 없었다. 늙은 아내는 나에게 시집와 사십년이란 긴 시간을 끼니를 못이어갈 가난이라는 만가지 고통을 겪은데다가 또 이번에는 지아비가 바다 섬으로 유배되는 봉변을 겪게되어 경향으로 분주히 돌아다녀 집안일이 어지럽게 되었으니 가히 사람으로서 갈 데까지 다갔다 하겠다. 그 근심과 걱정 수심으로 마음 아파하는 모습은 보지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가엾은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애통하고 상심이 된다. 시로써 이를 폈다.
#어찌 나에게 시집 와 내가 하늘이 되었나. 부딪히는 어렵고 괴로운 사십년이었습니다. 늙어 쇠약해지고 있는데도 거칠고 막 되먹은 습성은 여전히 남아 있어 장기서리고 비린내 나는 바닷가 땅에 내던져지고 말았습니다. 마른 창자는 근심 속에 끊어지려하는데 늙은 눈은 어찌하여 쾡 하니 뚫려있나요. 세밑 한해를 마치며 옷을 멀리서 보내주니 따스한 실 마음의 실이 서로 얽혀있구나 갑신년 봄 향주머니 차고 우리 둘이 결혼하였는데 세월이 깜짝할 새 흘러 벌써 사십년이 되었습니다. 미쳤구나, 나하고 인연을 맺어 고생이 쌓였습니다. 낭군을 정숙하게 받쳐주고 자식을 빛나게 하였습니다. 가련한 흰머리 늙은이와 서로 의지하는 나날, 어찌하여 이 먼 곳에 갖혀 이별하게 되었는가. 남편 없이 혼자 있는 그대의 방은 수심과 탄식이 가득하리니. 비록 장이 쇠와 돌로 되었다 하더라도 녹고 닳지 않겠는가.
새벽에 머리를 빗고 약을 복용하고 서경을 읽었다.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흐리고 비가 내렸다. 몸이 불편하여 누워있었다. 저녁에 서경을 읽었다.
26일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약을 복용하고 주역을 읽었다.
감정록 편찬을 마쳤다. 저녁에 누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생각이 정언 김인섭이가 조령에서 서울 가는 길에 있거나 혹 완산을 지나 필히 행색이 일그러져 있을 것이라는데 미쳤다. 만일 집에 있다면 어찌 서신을 보내지 않겠는가. 밤새 여러 가지 생각이 왔다갔다 해 마음이 스스로 어지러웠다. 율시 두수를 엮어 번뇌를 쫓았다.
#나의 미치고 경솔함이 너에게 근심이 되었다. 잠시도 쉴새없이 진창길을 바쁘게 다니게 되었구나. 빛나는 너의 글 솜씨가 그림의 떡이 되었고 집사람은 망망한 푸른 바다의 빈배가 되어있다. 구름 아득한 바다 가운데 섬에서 꿈속에서도 김씨집안에 햇빛 비추어달라고 얼마나 머리숙였던가. 간절하고 지극하게 하늘과 조상들께 죄없이 갇혔있다고 말했으나 알아주시지 않는구나.
#평화로운 세상 죽기를 작정하였다가 바다 가운데 던져졌다. 깊은 밤 잠 못 이루고 만 가지 생각에 뒤척인다. 흰머리 늙은이 어리석어 스스로 어려움 만났는데, 청포 입어야 할 젊은 너에게 무슨 허물이 되는가. 죄없이 의금부에 끌려간 원한이 뼈에 사무쳤는데 은혜로운 비 죽은 혼을 취봉루에 다시 살려 내었도다. 어찌 초초해 하여 마음의 힘이 다하랴. 죽을 때까지 수양하고 반성함이 마땅하리라.
그리고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닭 우는 소리를 들었다.
27일 흐리고 바람이 불고 매우 춥다. 머리를 빗고 약을 복용하고 주역을 읽었다. 한기 56판을 보았다. 저녁에 서경 5권을 읽고 또 잠이 들지 못했다. 며느리 생각이 났다. 추운 주방에서 변변치 못한 음식을 만드느라 애를 쓰고, 불 없는 찬 냉방에서 지내는 고통을 겪으면서 가정의 어지러움에 대해 근심하는데, 나이 어린 손주는 음식 달라고 울고 빚쟁이는 와서 독촉하고 있을 것이다. 비록 점잖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사람을 수갑채워 가 죽게 되는 우환이 생겨난다면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부드러운 덕을 가진 아이가 좌절하여 순한 그 모습이 마치 죽을 듯이 생기를 잃어 초췌할 것이다. 내가 평생을 호기만 부리며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백수건달로서 이루어 놓은 것 없다가 마침내 이런 극한적인 데까지 이르러 처자마저 보호할 수 없게 되었다. 신중치 못하여 덕을 잃으니 비록 후회막급이지만 이제 다가오는 일에는 조심하여 과거와 같은 잘못은 범하지 않으리라.그래서 또 시 한수를 엮었다.
#몸이 망망한 바다에 떠있는 이파리 하나와 같다. 생각이 며느리에 이르니 근심스럽기 그지없다. 금방울 같은 아이가 공부하는 선비에 정을 주고 좇으니 고생이 막심하다. 옥같이 흰 현숙한 낭자가 얼굴이 슬픔에 젖어 근심한다. 끼니를 잇기 어려운 가난한 생활을 꾸려감도 부족하여 세 가지 형벌이 닥쳐오매 문득 머리를 들지 못하도다. 순하고 맑은 용모가 애를 태워 마음을 졸인다. 편할 날이 없을 거라 생각하니 내가 죽는 것이 좋겠구나.
날이 밝아오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28일 맑았다. 생각건대 추위가 조금 풀리는 것 같다. 새벽에 일어나 약을 먹고 머리를 빗고 책을 읽었다. 집안사람, 고향사람들, 오랜 벗들에게 편지를 써 사람에게 보냈다. 저녁에 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일은 돌아가신 큰아버지의 제삿날이다. 마음이 슬펐다.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29일 맑고 따뜻했다. 약을 먹고 머리를 감고 빗질했다. 종일 글쓰는 일을 했다. 정신이 흐릿해지고 기운이 다했다. 저녁에 인사불성이 되어 혼곤이 잠들었다.
2월
초1일 정축. 맑고 따뜻했다. 새벽에 일어나 약을 복용했다. 머리를 빗고 책을 읽었다.
또 종일 글 쓰는 일을 하였다. 저녁에 주역을 읽었다.
2일 맑고 따뜻하고 바람이 불었다. 약을 먹고 머리를 빗는 일 등 변경할 수 없이 고정시켜 놓은 일과는 번거롭게 다시 쓰지 않겠다. 종일 글 쓰는 일을 하였다. 저녁에 서경을 소리내어 읽었다.
3일 춘분날이다. 맑고 따뜻했다. 종일 글 쓰는 일에 매달렸다. 저녁에 주역을 소리내어 읽었다.
4일 맑고 따뜻했다. 종일 글 쓰는 일에 매달렸다. 저녁에 서경을 소리내어 읽었다.
5일 맑고 따뜻했다. 종일 글 쓰는 일에 매달렸다. 저녁에 주역을 소리내어 읽었다.
6일 맑고 따뜻했다. 신임진장이 부임했다. 종일 글 쓰는 일에 매달렸다. 저녁에는 서경을 소리내어 읽었다.
7일 비가 내리고 또 바람이 불었다. 종일 글 쓰는 일에 매달렸다. 저녁에 주역을 소리내어 읽었다.
8일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눈이 왔다. 종일 글 쓰는 일에 매달렸다. 저녁에 서경을 소리내어 읽었다.
9일 큰 바람이 불고 추웠다. 종일 글 쓰는 일에 매달렸다. 저녁에 주역을 소리내어 읽었다.
10일 맑고 또 큰바람이 불었다. 고향에서 온 편지를 받았다. 바야흐로 사람을 고향에 보고자 하였으나 배가 통하지 않아 그만두었다. 손자를 생각하며 시를 지었다.
#늙어서 점점 기력이 다해가는 나이에 두 손자를 안고 있습니다. 우리집안을 좋게 해줄 원대하고도 큰 부절일 것입니다. 이 두 기린에게 절을 하니 가슴에 상서로움이 넘쳐납니다. 기러기 한 줄로 늘어서 저 높은 하늘에 날아갑니다. 아! 나는 늙고 사람들을 거스르니 좋아하는 이 없지만 오직 손자들만 타고난 재주가 좋아 나 홀로 좋아하고 있습니다. 쌓아온 손자들과의 정리 멀리서 항상 생각하게되니 구절양장 슬픈 노래 그칠 줄을 모릅니다.
재종형에게 긴 편지를 올렸다. 사형에게 편지를 주었다. 또 ‘꿈시’를 써 주었다.
#바다의 밤은 컴컴하고 바닷물이 들고 나 파도가 일고 있습니다. 꿈속에서 아득히 먼 고향땅 당도하였습니다. 봄 깊어 꽃과 나무 만발하고 친척들간 정의가 넉넉합니다. 해는 따뜻하여 느릅나무아래 모두 둥글게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동네 나이 많은 어른들은 서로 손을 잡고 나이 먹어 백발이 됨을 서로 안타까워하고 어린아이들은 서로 섞여 즐겁게 웃으며 춤을 추었습니다. 이웃집 닭이 홀연 히 울어 깜짝 놀라 깨어나 보니 이웃집 방아 찧는 소리에 백가지 생각이 나 눈물이 얼굴을 가립니다.
오대조의 맏손자 영진(기석)에게 주었다. 상중에 있는 집안 손자 명언, 성두, 리, 16촌 동생 이진, 안경, 6촌 조카, 여러 사촌형제, 시보씨, 집안조카인 90노인 덕용씨의 둘째 아들 상겸과 상숙형제, 그 손자 경규, 집안 손자 주언(성), 집안 동생 사근, 이우, 능진, 이옥, 치일(리), 집안 조카 찬보등에게 편지를 주었다. 아울러 모든 집안사람들에게 통문을 부탁했다. 또 의성 친척 김윤현(강), 벗 정사칭(동훈)에게 편지를 보냈다. 다음은 진사 권성약(정필)에게 지난 해 8월 따로 준 시 한수이다.
#구김 없이 미끈한 풍속 고운 우리 마을이 나를 살려 주었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일이니 사해가 곧 형제일 것입니다. 하늘 끝 멀리 가는 나를 송별해주니 시는 눈물에 젖습니다. 이 마음 오로지 다른 사람을 성심껏 사랑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다음으로 벗 권원긍(용성)에게 따로 시를 지어 주었다.
#나의 벗 원긍의 의기는 어떠할까요. 아무튼 나를 잊을 정도로 실하기가 옹골찹니다. 글자한자 한자를 금옥처럼 아끼니 누구를 쳐다보고 누구를 의지하나 한스런 눈물만 흘립니다.
존옹 관서 우성(원긍의 동생)에게 주었다.
#이지러진 세상 인격이 높은 선비가 없는데 존옹 홀로 인격이 높은 선비라 할만합니다다. 청빈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며 안분지족을 하니 산앵두나무 아래서 형제우애를 도탑게 하고 있습니다. 두루 의리를 다함에 뛰어나고 더불어 인을 헤아림에 부지런합니다. 외로운 나그네 유배생활을 하면서 믿는 바 이웃입니다.
친척형 권윤서(하)에게 주었다.
#빛을 거두고 학식을 감추었으나 사람 가운데 보배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시대의 대의도 능히 알고 있습니다. 옥이 배안에 가득 들어 있어 학문이 풍부하고 난혜가 뜰에 가득 차 있어 방안이 가난치 않습니다. 땅과 더불어 모든 것을 품으니 탄탄하여 걱정이 없습니다. 생각에 따라 침착하게 몸을 움직여 흐릅니다. 나 영락하여 먼 바다 막막한 하늘아래 떠돌아다니며 꿈속에서라도 고향 산을 가보지 못하는 처지입니다.
만수동 여러 친구들인 이윤길 하낙서 권극첨 이기백 권은용 하흠여에게 주었다.
#연, 난초, 혜초, 팥배나무 무리의 색깔이 새롭습니다. 신선이 숨어사는 아름다운 곳에서 좋은 이웃이 되었습니다. 하늘 아래 쑥쑥 자란 삼대밭처럼 고움이 합쳐있듯이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은 굳은 사귐이라 할 것입니다. 고독한 발자취 매번 산중의 벗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리가 중하니 응당 바다바깥에 있는 나를 안타까이 여리리라. 혹시라도 하늘이 말라죽어가는 풀을 소생시킨다면 원하건데 물과 구름만이 있는 바닷가의 나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천과 최에게 응하여 주다.
#옥구슬을 감추듯이 도를 엄하게 지켜 사문의 높은 제자임을 알아보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은둔하여 있어도 걱정하지 않으니 군자가 곧게 나아감에는 스스로 때가 있는 법입니다. 사면의 청산은 옛과 같은데 상위에는 서책이 평생을 따라다닙니다. 나를 돌아보니 궁벽한 바닷가에서 외로이 나그네로 살고 있지만 멀리서 그대의 고상한 풍채에 읍을 하며 감탄할 뿐입니다.
다음은 벗 권덕칭(기성)에게 따로 준 운이다.
#쇠퇴한 세상에 삼대 같이 우의가 깊은 나의 현명한 벗입니다. 맑고 깨끗함이 길이길이 허물이 없을 것입니다. 밝은 창 아래 깨끗한 책상에서 천권의 책을 통달하였고 달뜨는 정자 바람 부는 누각에서 자연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즐기고 있습니다. 과거에 급제하여 출세하려 공부에만 매달리지 않고 은 땅에서 한가하게 지내니 이것이 곧 신선의 생활일 것입니다. 이별에 임하여 따뜻한 말을 전해주니 어진이의 일일 것입니다. 원하노니 스승님의 말씀대로 힘쓰기를 숭상하라.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넓은 바다에서 병에 걸리지 않나 의심하면서 이별이 길어지자 부유하지도 않으면서 멋스럽고 의리 있게 나를 위해 묵묵히 일이 잘 되도록 애써 변통해 주고 있다.
선비 권우규(성)에게 주었다.
#이미 생긴 악을 끊기 위하여 노력하는 선비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는 훈훈한 기운을 가진 덕인입니다. 마치 처녀처럼 시골에서 살고 있으면서 동료들에게 극히 공손하게 자신을 단속합니다. 근심과 걱정스러운 일을 당한 나를 도와주었으니 내 다시 살아난다면 마음 아파 병이 들 것입니다. 슬기로운 마음이 어찌 견디지 못하겠습니까만 매번 생각할 때 마다 속으로 마음이 상합니다.
덕행과 학술이 뛰어난 선비 권가원(익근)에게 주었다.
#좋은 옥이 뜨거운 화염 속에 던져졌습니다. 지난 일을 생각할 때 마다 뜨거운 피를 거꾸로 흐릅니다. 예로부터 군자에게는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고 벼슬길이 막히는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성정이 바르고 팔자가 좋은 복스러운 사람에게 어찌 외로움과 근심이 있겠습니까. 소나무는 눈과 우박을 이기면서 곧은 절개를 보이고 대나무는 풍상을 겪으면서 어떤 일에도 굽히지 않는 절개를 드러냅니다. 안락함과 근심걱정 재앙과 복됨은 모두 운명에 달린 것일 것입니다. 그러니 원망도 하지 않고 근심도 하지 않겠습니다.
친척 형 박내길(규동)씨에게 주었다.
#무슨 일로 평화로운 세상에 멀리 떨어진 바다로 유배되어 왔나. 친척들을 돌이켜 생각하느라 밤에도 잠들기 어려워라. 구만 리 장천은 망망하고 삼천리 약수는 끝없이 멀구나. 멀리서 그대의 집을 생각하니 봄날 그림처럼 아름답고 집안 한가로움에 하루의 낮은 한해처럼 길 것이 분명합니다. 미인을 아내로 얻음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볼 홍복이오니 학을 타고 노는 신선이 되어 남을 부러워하지 않으리이다.
친척 형 박유길(규상)씨에게 주었다.
#길인의 말과 얼굴빛은 스스로 훈훈한 법입니다. 나의 불 꺼진 들창을 훈계하여 잘못을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빈한한 나그네를 여러 번 돌보아주니 두터운 정의가 아니겠습니까. 멀리까지 맛좋은 과일을 보내주니 큰 은혜라 하겠습니다. 깊고 간략한 사려는 마음을 가까이 하려 하고, 숲과 산언덕에 은거함은 성품을 돈후히 기르려 함입니다. 신세 보잘 것 없어져 아득한 하늘아래 궁벽한 바다로 떠돌아다니면서도 나의 혼만이 고향마을을 바쁘게 드나들고 있습니다.
친척 박맹원 현에게 주었다.
#앵두나무 장막아래 청춘 형제들의 모습 우애가 좋고 원추리 차일 아래 해는 길어라. 길인은 신이 줌이요 어진 선비에게는 복이 한이 없습니다. 풀을 감상함은 명을 세 살이나 늘리고, 난을 키움은 상서로움을 불러들입니다. 아! 유배의 처지로 떨어진 나에게 배불리 먹어준 그 덕을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진사 권학로(헌정)에게 썼다.
#환난을 겪고 보니 평소 두터운 정이 진실이었음을 알게 하였습니다. 오직 그대만이 옛날의 절친했던 우정을 잊지 않게 합니다. 어진 마음과 물질이 그를 미루어 헤아리게 합니다. 그대의 정의로운 마음이 나를 안타깝게 여기다보니 상심이 컸으리라. 잘못된 세상에서는 참되기가 어려워 함께 근심해주는 벗 없을 것인데도 곤궁하게 된 처지임에도 감동을 주는 따뜻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천리도 지척을 아는 것부터 시작한다는데 이곳 별똥별 떨어지는 바닷가에서 꿈속에서조차 항상 그대에게 의지한답니다.
배산 이내윤(상석)에게 주었다.
#빙설같이 깨끗함은 대나무와 같은 절개입니다. 날카로운 예기와 빼어난 아름다운 명성이 사방에 울려퍼졌습니다. 비분강개하여 팔짓을 하다가도 또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신명을 보존하는구나. 옛날의 절친함을 잊지 않고 평생의리를 지키면서도, 지금의 장점으로는 죽음에서 몸을 보전해 나갑니다. 궁벽하고 막막한 바다 멀리 하늘에는 구름이 떠있는데 꿈속에서라도 고향마을 가보기가 어렵구나.
성곡 권영서(병린)에게 주었다.
#잘못된 세상에서는 덕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오로지 그대 있어 범속한 무리를 넘었습니다. 고향마을이 쇠잔하여 가니 깊은 한만 남았습니다. 벗들이 꺾여서 상처를 입으니 홀로 마음이 괴롭습니다. 푸른 바다에 편지를 보내주니 달빛보다 더욱 빛이 나고, 황금을 나누어 굶주림을 구휼하니 은혜가 봄날과 같습니다. 곤궁하게 된 처지에 도와준 한 끼니의 밥이 감명을 주는 법인데 하물며 보배를 나눠주었는데 마음가운데 남지 않겠습니까.
벗 권극첨, 상중에 있는 류수성, 주서 오명, 기현, 친척 박문서(상서), 장서, 친척 박형숙(규연), 권공균, 박덕첨(계번), 홍원칠(모), 강상옥(진), 표종간 김주로(낙수), 그리고 상중인 조카 진순, 두곡마을 권원겸(정오), 권화일, 권형일(익만), 고읍마을 진사 양란, 북동마을 이기숙(범), 진태마을 박취지(정식), 도전마을 권여방(성), 묵곡마을 조성욱, 적성내 마을 상중에 있는 종질 권내선(병무), 입석마을 권, 문산마을 권, 표질 권의전, 묵곡마을 집안 손자와 노, 김중철 이운봉에게 편지를 보냈다.
11일 맑고 바람이 불었다. 아침식사후에 보증을 해준 사람을 보냈다. 최경칠을 고향에 보냈다. 진머리로 걸어나가 배가 떠나는 것을 보았다. 배가 바다 가운데에 이르니 바람이 사나워 건너지 못하고 배를 돌려 돌아와 대었다. 대윤이와 포구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마음속 근심을 이기지 못하여 술집 행화사에 들어 통음하여 답답함을 풀었다. 돌아와 쓰러져 누워 푹잤다. 저녁에 서경을 소리내어 읽었다.
13일 아침에 비가 오고 낮에는 흐리고 또 바람이 불었다. 서경을 읽고 당시를 즐겼다. 저녁에는 서경을 소리내어 읽었다.
14일 바람이 그치더니 흙비가 왔다. 천지가 캄캄하고 어두웠다. 주체로 괴로웠다. 종일 고달파 누워있었다. 누운 채로 당시를 보았다. 다음은 ‘차설봉평류시’다
#길머리 버드나무 나그네 마음을 상하게 한다. 홀로 동풍을 받아 득의양양 나부끼는구나. 그늘지고 추움을 싫어해 술에 취해 가볍게 움직인다. 함부로 예쁘고 가느다란 실로 봄을 묶어 놓고자 하는구나. 안개 자욱한 저녁 비는 오려 하는데 펄펄 날아다니는 하얀 솜털이 눈으로 속겠구나. 늙은 내가 잠들어 너를 좇아 꿈에서라도 고향산천 초당에 들어가 보고자.
어지럽게 써놓은 글들을 정리하였다. 저녁에 주역을 소리내어 읽었다.
15일 맑았다. 어지럽게 써놓은 글들을 정리하였다. 석양에 화재 김후근의 집에 가서 바둑한판을 보았다. 곧 손을 잡고서 포구 위를 천천히 걸었다. 최일수가 따라왔다. 술집 깃발을 건 행화집에 가 술을 사 통음했다. 내려가다가 윤량의 집을 지나쳐 정은명의 집에 들어가 술을 사마셨다. 달빛을 받고 집에 돌아왔다. 저녁에 서경을 소리내어 읽었다.
16일 맑고 바람이 불었다. 어지럽게 써놓은 글들을 정리하였다. 저녁에 주역을 소리내어 읽었다.
17일 맑았다. 어지럽게 써놓은 글들을 정리하였다. 저녁에 서경을 소리내어 읽었다.
18일 맑았다. 이소경을 보았다. 저녁에 주역을 소리내어 읽었다.
19일 맑았다. 화옹이 와 이야기하다가 손을 잡고 진머리에 나갔다. 옷을 두껍게 입어 바람을 막았다. 박윤량이 술과 안주를 내어와 배부르게 먹었다. 함께 화재 김후근의 집에 갔다. 운을 집어 심회를 읊는 시를 지었다.
#복숭아 살구꽃이 아름답게 피고 해 그림자는 더디 집니다. 도연히 취하니 옛사람들이 자리를 보전하기 어렵겠습니다. 바닷가 남쪽으로 갈라서 나온 이곳에서 빼어난 놀이를 즐깁니다. 천지 한 가운데 텅 빈 이곳이 발령받은 임지일 것입니다. 얻고 잃음이 알고 보니 모두가 운명이고 궁하고 통함을 깨닫고 보니 맡아보는 곳이 따로 있더이다. 모름지기 세상 티끌 버려버리고 다만 부드럽게 서로 조화하여 사는 것이 좋은 것일 것입니다.
돌아와 쓰러져 누워 동쪽이 밝아옴도 모르고 잤다.
20일 맑았다. 역대도를 만지작거렸다. 저녁에 서경을 소리내어 읽었다.
21일 맑았다. 온성군 사람 서의신이 와 이야기하여 북쪽지방의 소식을 들었다. 도적들이 자기의 집에 의지하여 머무르고 있었다 한다. 이 사람은 자못 순박하고 조심스러웠다. 아들 4명을 두고 있는데 첫째 둘째 셋 쌔 모두 문예에 성취가 많이 있었는데 서울에 가 관광을 하고 있다하였다. 저녁에 주역을 소리내어 읽었다.
22일 비가 내렸다. 당시를 매만지며 소일하였다. 저녁에는 서경을 소리내어 읽었다.
23일 맑았다. 천자문을 지었는데 대략적인 뜻은 사기를 엮은 것이다. 주흥사의 백수문은 한자도 사용하지 않았다. 또 들창 아래놓아 어린아이들 공부에 작은 보조 자료가 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해서로 써 후손에게 준다. 저녁에 깊이 생각하느라고 정신과 기운이 고달파서 술을 따라 마시고 잠을 청했다.
작도 강군석이 와 보았다. 저녁에 주역을 소리내어 읽었다.
24일 맑았다. 사기를 보았다. 아침에 강이석이 와 글을 배웠다. 최태문이 와 이야기하다 갔다. 저녁에 주역을 소리내어 읽었다.
26일 맑았다. 사기를 보았다. 석양 무렵 선비 김천균(화옹의 손자)과 윤씨가 방문해 왔다. 오위장 홍영섭의 답서를 얻어 보았다. 또 흥동 이선비의 답서와 대윤의 편지를 받아보았는데 아들 정언 김인섭이 아직 서울에 이르지 못했다고 한다. 걱정이 되었다. 저녁에 기운이 답답하여 쓰러져 누웠다. 글읽기를 폐하였다.
27일 맑았다. 사기를 보았다. 어지럽게 써놓은 글들을 정리하였다. 저녁에 주역을 소리내어 읽었다.
28일 흐렸다. 운을 불러 이석을 시험했다. 나 역시 마음에 품은 바를 시로 지었다.
#세월은 머리털을 짧게 하고 거리에는 안타깝게 꽃잎 날린다. 마시지 않으면 늙은이 즐거움 없어 안개 낀 아름다움을 헛되이 보낸다.
저녁에 서경을 소리내어 읽었다.
29일 비가 밤부터 내리더니 아침에 이르러서야 그쳤다. 어지럽게 써놓은 글들을 정리하였다. 저녁에 주역을 소리내어 읽었다. 이석에게 오언절구를 과제로 주었다. 나도 오언절구를 지었다.
#별들은 수수만년 오래토록 북쪽에서 손을 맞잡고 있고 한강은 수수만년 조선 동쪽에서 다함없이 흐르고 있다. 바다는 유유히 들고나기를 반복하는데 붉은 꽃 지는 것을 탄식해 무엇 하랴
30일 맑았다. 어지럽게 써놓은 글들을 정리하였다. 저녁에 주역과 서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내어 읽었다. 닭도 따라 울었다.
3월
1일 정미일이다. 아침에 가는 비가 잠깐 내리더니 낮에는 두꺼운 구름이 끼고 추웠다. 시경 국풍을 정리하기 시작하여 이남과 패까지를 마쳤다. 저녁에 주역을 읽었다.
2일 맑았다. 시경 국풍을 정리하여 용,위,왕,정까지를 마쳤다. 저녁에 서경을 소리내어 읽었다.
3일 맑고 화창했다. 시경 국풍 제,위편을 수습했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여 대윤과 함께 바닷가에 나가 한가롭게 바람을 쏘였다. 석양에 강에 당도하여 행화촌을 지나치다 술을 사마시며 기분을 가라앉히고 돌아왔다. 저녁에 주역을 소리내어 읽었다.
4일 흐렸다. 시경 국풍 당,진,진을 정리했다. 저녁에 몸이 편치 않아 읽기를 그만두었다.
5일 맑았다. 시경 국풍 회,조,빈을 정리했다. 화재 김후근 옹이 와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서 만을 돌고 모퉁이를 지나 오일국이 새로 낸 주루에 가 술을 사 마셔 답답한 마음을 달랬다. 운을 집어 회포를 시로 풀었다. 바로 이때 최경칠이 고향으로부터 돌아왔다. 바삐 함을 열었다. 정언이 집에서 병을 요양하면서 아직 서울로 출발하지 않고 있었다. 이제 곧 병이 나으면 서울로 갈 것을 계획하고 있다한다. 두 손자는 병이 없고 집안 권속들은 모두 편안하다 하였다. 적이 마음이 놓였다.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을 막을 수가 없어 운을 집어 붓 가는 대로 시를 썼다.
#쓸데없이 관직을 내팽개쳤습니다. 몸을 보전할 계책을 소홀히 하였으니 큰 한이 아니겠고 재주 있는 이의 말을 없신여겼다니 미친짓이 아니었겠습니까. 임자도 수군진영 오두막집에 유연히 앉아있을 뿐입니다. 술 담은 병은 중국에서 들여와 스스로 있고, 구름바깥 먼 고향 집에서 기러기 다리에 매달려 편지를 처음으로 전해왔습니다. 천지는 나를 품어 이부자리와 베개가 되어주고 이화는 눈처럼 뜰을 뒤덮었습니다.
화재 김후근 옹과 함께 진머리에 이르러 헤어졌다. 저녁 집안 친족, 친구들이 보낸 편지와 시들을 닭이 울 때 까지 보았다. 객지의 울적함이 많이 덜어졌다. 다만 내당리 집안 손자 정태가 억통하게 죽었고 거동에 사는 능진(이옥)이 며느리 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비통하고 측은했다.
6일 맑았다. 종일 여러 나라의 시문을 상세히 보았다.
7일 맑았다. 시경 국풍편을 합하여 읽었다.
8일 맑았다. 온성 서의신이 와 작별을 고하였다. 이번 그믐에 서울을 지날 예정이라 한다. 아들 정언에게 편지를 부쳤다. 저녁에 서경을 소리내어 읽었다.
9일 맑았다. 식후 대윤이와 더불어 도찬리에 갔다. 최경칠과 박윤량이 따라왔다. 대기촌을 지나며 술을 사 목을 축였다. 대기촌 뒷산마루를 넘어 바닷가를 천천히 오르락내리락 하거나 혹 방풍을 캐면서 걸어갔다. 점심 때 도찬리에 도착하자 윤량이가 한 작은 집으로 끌고 들어갔는데 한 자그마한 계집이 있어 넘어질 듯 뛰어나오며 환영을 하였다. 금산을 옮기고 옥기둥을 넘어뜨렸다. 머리를 조아리고 굽실굽실 절을 하고 꾸짖으며 맞이하는데 윤량의 형수였다. 내가 잊어버려 다 쓰지 못한다. 홀로 체념하며 말하기를 남쪽의 도적들이 집을 부수어버리는 판에 집을 지켜내려고 힘을 내어 절충하여야 했으나 당시 참지 못하였다한다. 궁벽한 섬과 멀리 떨어진 포구 사이를 정처 없이 이리저리 바삐 떠돌아다니다가 남쪽의 도적이 가버린 후 이제 겨우 어머니 집에 돌아와 살고 있다 하였다. 담배를 피우며 잠시 조금 쉬고 있으려니 점심이 나왔는데 정결하고 입에 맞아 배불리 먹었다. 길을 바꾸어 계속 길을 가 들버지포구로 갔다. 작은 비탈진 언덕에 오르니 일망무제의 땅이 있었다. 간척을 하면 좋은 논밭을 만들 수 있는데도 황무지로 내버려 두고 있으니 섬사람들의 우매함이다. 대윤이가 금년 설 쇠기 전에 이를 듣고 돌아보았으나 돌아보던 도중 술이 비어 돌아왔었다 한다. 이번에 돌아보고자하였으나 돌아갈 시각이 늦을까봐 자세한 모습을 볼 수가 없어 심히 애석하고 애석하고 애석하다. 작은 점포에서 다리를 쉰 다음 산에서 조각조각 떨어져 나온 모래 언덕을 돌아보면서, 방풍을 줍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무에 어두움이 내려앉고 있었다. 외로이 베개를 베고 쓰러져 누웠는데 온몸이 통증이 왔다. 진정할 수 없어 밤새도록 신음을 하였다.
10일 비가 한밤중부터 시작해 온종일 내리다가 밤이 되서야 그쳤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종일 누워있었다. 저녁에 풍을 소리내어 읽었다.
11일 식후에 비가 그쳤다. 시경 소아 녹명을 정리했다. 저녁에 주역을 소리내어 읽었다.
12일 맑았다. 시경 소아 백화와 동궁을 정리하였다. 석양에 최일수와 함께 배를 타고 수도에 정박했다. 채찬식은 일찍이 점암의 여관에서 일면식이 있었다. 또 내 유배지 적거지로 나를 방문하였으나 공교롭게도 내가 없어 만나지 못해 항상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사람이다. 내가 왔단 말을 듣고 넘어질 듯 뛰어나오며 영접을 한다. 술을 사오고 회를 썰어 이것저것 정성스럽게 준비하더니 저녁식사로 향기롭고 눈같이 희 생선회를 한상 가득 쌓아 마루에 내어왔다. 극히 넉넉하고 여유가 있었다. 탐욕스럽게 죽자사자 실컷먹었으니 주역에 술과 밥으로 인해 괴롭다는 것이 바로 이것을 말함이다. 잠시 있으니 상중에 있는 김문팔이 와 뵙고자 하였다. 이 사람은 시문을 짓고 읊는데 우아한 정취가 있어 가히 섬 사람 중 뛰어난 이라 하겠다. 금년 58세로 질박한 의관의 행색은 매우 초라했으나 품행은 방정했고 반듯했다. 지난 일과 비교해보지 않더라도 그도 뛰어난 풍취를 가진 시인문사였다. 너무 먹어 식곤증을 이기지 못하여 옷을 벗고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어 쓰러져 누웠다. 밤중에 정신이 들어 뜻하지 않게 폐를 끼쳤음을 깊이 사의를 표명하였다. 또 찬진의 생질로서 상중에 있는 찬직이가 오늘 저녁 같이 논 친분으로서 시한수를 써달라고 굳이 청하였다. 사양할 수가 없어 붓가는 시를 짓고 술잔을 돌렸다.
#호남의 바닷가 나이가 들어감을 서로 안타까워합니다. 쓸쓸히 작은 돛을 올리고 이곳 수도에 와 함께 모였으니 기연이라 할 만하지 않습니까. 벼슬과 물욕에 좇지 않는 사람은 품성이 넉넉하여 세상의 물정을 다 품을 수 있습니다. 유배인이 미쳐 술자리를 사양하지 않았습니다. 멀리 파도꽃은 흰 달을 안고 있고 나루의 금빛 버드나무는 푸른 바다를 감싸고 있습니다. 늙은 나그네가 모가주나무와 가시나무에 눈물 흘리면서 어지러운 세상 크고 작게 이어짐을 다시바라 봅니다.
13일 맑았다. 김문팔의 효려를 찾아가 고맙다 인사하였다. 효려에는 그 장조카 승중이가 있었는데 어렸음에도 아담하고 반듯하였다. 또 문사를 잘 알았고 행동거지에 부끄러움이 없었다. 식후에 곧바로 일수와 함께 배를 타고 동쪽으로 가 점암에 정박하였다. 상중의 김문팔이 멀리까지 동행하여 건네주는 정의가 감격스러웠다. 점암 옆에 오두막집 하나가 쓸쓸하게 서있었는데 오두막집의 주인은 나주 서문 밖 양성 이씨로 아는 사람이다. 자는 영배라 한다. 어제저녁 같은 배를 탔었으나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겼었다. 문을 두들기고 보니 위인이 자못 막 되먹지않고 문사에 능했다. 뜻을 펴지 못하여 마음이 답답해하였다. 마치 방금 지은 쇠코잠방이와 같았다. 술청에 앉아 술을 파는 일은 곧 사람의 무리와 노는 것이다. 세상을 희롱하며 흘러가는 것이다. 이치가 본디부터 그러하다. 멀리 나가는 것이 대수로운 것은 아니다. 잘 생긴 사람 하나가 있었는데 나를 정중하게 위로하였다. 임치중(규화)이란 사람이었다. 섬에 들어간 이래 만나서 이야기해보기를 원했었는데 때 마침 나를 만났다고 이야기하였다. 술잔이 수차례 오간 후 김문팔과 헤어졌다. 그리고 일수와 더불어 남쪽의 감정동을 향하였다. 조비촌 글방에서 다리를 쉬었다. 글방선생은 문씨 성을 가진 이라 하였다. 잠시 쉬다가 바로 일어나 한치한치 앞으로 가 감정동 서사의 벗 권운경을 방문하였다. 밝은 창 아래 조용히 앉아 주역과 예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가 온 마음으로 흔쾌히 악수를 하였다. 술을 사와 갈증을 풀고 손을 잡고서 지도진 청사로 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하였다. 저녁 식사 후 함께 김씨의 집에서 잤다. 밤이 깊도록 숙소에서 마주보고 이것저것 이야기하며 유배의 수심을 크게 덜었다. 영배가 술을 따르며 호남의 누각 색깔이 파도에 비치고 있다는 원시를 가지고 화답을 해보라하여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어 주었다.
#헌걸찬 사람을 만나고 보니 두 눈동자가 젊은이의 눈빛입니다. 거울 속 강산은 그림 병풍을 벌여 놓은 듯합니다. 술에 취한 채 세상바깥 일을 잊고 사니 흰 갈매기는 인연을 맺어 정원의 섬돌 위에서 희롱하고 있습니다. 마음 속 회포는 향기로운 둥글레 자라는 언덕에 비치고 마음 깊숙이 품은 시상은 두약 자라나는 물가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14일 맑았다. 식후 상중에 있는 영양 사람 김성로(자 진여)를 방문하여 위문하였는데 아는 이었다. 지난 신해년 일월산 소요에서 횡액을 만나 이 섬에 던져져 지금 13년이 되었다. 친상을 당했는데 급히 가 곡을 하지 못하니 천지에 어느 것이 이보다 더 원통하고 답답한 일이 있겠는가. 옛날의 회재당이 요즈음의 제산처이다. 우리들의 운수가 때로는 시련을 겪게 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서로 같다. 하늘이 실로 이러는데 어찌해 이러는가. 이 사람이 살아가는 계책은 오로지 글을 가르치는데 있다. 가르치는 곳은 화순 서상복의 집 문간방이다. 화순이 정성스럽게 영접하였다. 이야기와 행동거지가 진실 되었다. 가히 풍류가 있고 기량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지난해 나와 같이 어사또로부터 헐뜯음을 당하여 울면서 이성에 왔다. 지금같이 일면식으로 극진한 것은 동병상련의 우애가 있어서가 아니라 사물을 대함에 도타움 때문인데 천성이 그러하였다. 바야흐로 맛좋은 술을 내어왔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음속의 답답함이 풀렸다. 일수가 문에 있다가 조수가 빠져 뱃길이 끊어질 것 같다고 고하면서 심히 재촉하였다. 정을 아직 다 토하지 못하였고 이야기를 아직 마치지 못한 채 바삐 작별하였다. 이별의 마음이 속이 검게 탈 정도로 슬펐다. 그리하여 모두 함께 더불어 감정동에 돌아왔다. 학도들에게 명하여 술을 차려오라 하였다. 자리에 앉자 즉시 술상이 나왔다. 세잔을 마시고 정전초선과 간첩을 빌려가지고 나왔다. 차마 이별하기가 어려워 점차 길을 건너 손을 잡고 점암에 이르렀다. 일수가 먼저 화 내가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영배의 집에서 맛있는 술과 회를 썰어 서로 권하였다. 배불리 먹고 취한 다음 자리를 파하였다. 나룻배로 건너려 하였으나 이미 떠나가 버렸다. 부득불 쭈그리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참지 못하고 앞서 갔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니 해가 지는 줄도 깨닫지 못하였다. 붉은 저녁노을이 장관이었는데 섬에 들어온 이래 제일 가슴이 후련하였다. 당나라 사람의 시에 이르기를 ‘오늘아침 그대와 함께 하였는데 취하여 잊어버렸노라’라는 장사에서의 시구절은 바로 오늘을 위하여 준비된 말일 것이다.
15일 맑았다. 식후에 한사람이 찾아와 공손히 이야기하였다. 지도에 속해있는 원동거주 김이라는 사람이었다. 사람이 용모가 단정하고 또 자못 재주가 있어보였다. 말하기를 낮 오시 가까이 임자도 나룻배가 오는데 더불어 따라 가겠다 하였다. 술을 가지고 작별을 하였다. 최일수와 원동의 김씨와 함께 같은 배를 타고 중간에 이르렀을 때 뒤돌아 바라보니 우두커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손을 흔들어 정을 보내주었다. 이별의 느낌이 배나 안타까웠다. 수도나루에 배를 대고 헤어졌다. 원동의 김씨와 나와 일수는 다시 수도에 머물렀다. 문팔과 찬직이 다시 도착함에 대해 배는 더 기뻐하면서 정성껏 생선을 찌고 술을 걸러 내왔다. 춤이 깊고 큰 술잔에 정을 가득 담아 따라 화기애애하게 마셨다. 석양이 바다에 드리워졌다. 문팔로부터 춘추좌전을 빌어 숙소로 돌아오니 해가 져 이미 어스름해졌다. 사경까지 인사불성으로 혼곤히 잠이 들어 밤을 보냈다.
16일 흐렸다. 주야로 이미 읽은 서책을 정리하였다.
17일 맑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제사일이다. 슬픔이 백배는 더하였다. 닭이 운 후 집주인의 세살된 여자아이가 두창으로 죽었다. 자식이 죽자 집안이 비통한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정황이 심히 비참하였다. 해가 뜨기를 기다려 나들이를 하기로 하였다. 이석이에게 지팡이와 미투리를 들고 따르라 하고 나루를 넘어 장목재 가게에 당도 하여 담배를 피우며 다리를 쉬었다. 그리고 산모퉁이를 지나 서쪽으로 넘어가니 저동이다. 작은 고개를 넘어 삼두리에 도달하였다. 서실에 들어가니 최태문이 흔연히 맞이하였다. 술과 밥을 내어와 정성껏 대접하였다. 이야기를 하다 유숙하였다.
18일 맑았다. 식후에 태문을 따라 함께 바닷가를 산책했다. 이리저리 연이어 어슷거리며 놀다가 목섬에 이르러 김노인의 주막에 당도하여 좋은 술과 찐 생선을 저녁끼니로 배불리 먹었다. 주막의 몸이 굽은 여자가 농담을 받아주어 잠시 친절하게 우스개 소리를 하여 쓸쓸함과 적막함을 달랬다. 산으로 해가 기울어 산을 의지 하여 가다가 동쪽 산꼭대기에 이르렀다. 태문이 따라오다가 산꼭대기에 서 이별을 고하고 돌아갔다. 마음에 한탄스러웠다. 이석이와 더불어 이것저것 붙잡고 산기슭을 올라 산을 넘어 광산에 닿았다. 임치중을 방문하니 치중이 재에서 제자들에게 학문을 강의를 하고 있다가 짚신을 거꾸로 신고 뛰어나와 맞이하였다. 그 은근한 의용과 예모가 맑았다. 주인이 강제로 만류하여 머물렀다. 긴긴밤 술을 즐기고 글을 논했으니 진실로 외로운 나그네에게는 아름다운 일이 되었다. 저녁에 시경의 풍아를 읽었다.
20일 비가 왔다. 하루 종일 글을 강의하고 토론하였다. 한가롭게 놀면서 시경 기부를 정리하였다. 저녁에 시경풍아를 읽었다.
21일 맑았다. 식후에 옷을 떨치고 신발을 챙기고 치중과 함께 종달이 버던을 산책하였다. 평원은 일망무제의 한적한 땅이었다. 들버지보다 경치가 더 좋았다. 이같이 좋은 땅을 내버려 한가하게 두다니 섬사람들의 생각 없고 느림에 대해 깊은 탄식이 나왔다. 두루 따라다니며 둘러보기를 마쳤다. 치중과 헤어져 이석이에게 앞서 길을 인도하게 하여 돌아왔다. 귀로에 김순근의 술집을 지나치다가 통음을 하였다. 집에 돌아와 동쪽이 밝아오는 줄도 모르고 쓰러져 잤다.
22일 맑았다. 화재 김후근 옹 조손과 배를 띄워 상도에 이르렀다. 최일수, 강희조, 개령 박경한, 경성 박연근, 집주인 안문복, 가게주인 오일국이 따랐다. 가히 어른과 아이의 상하 함께 하는 풍류라 하겠다. 모두가 즐거웠다. 잠시 있으니 고깃배가 물에 둥둥 떠 동쪽으로부터 왔다. 그물을 들어 올리니 무수히 많은 방어와 연어가 있었다. 작은 배안에서 한사람이 있다가 정성스럽게 인사를 하였다. 보니 지난번에 사귀었던 채찬직이었다. 고기와 생선을 많이 주어 회를 썰고 국을 끓여 배불리 먹었다. 긴 날 석양이 되어 돌아와 오일국의 가게에 정박하였다. 바다 가운데서 화재 김후근 옹이 운을 내며 시 짓기를 청하였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이에 응했다.
#봄날 벗들과 함께 낙엽 같은 배를 탔습니다. 하늘같이 넓은 바다를 건너는데 배에 앉아 있었습니다. 하늘과 땅은 상하 같은 빛으로 합하고 고개 들어 멀리 바라보니 오나라와 초나라가 동남으로 떠있는 것 같습니다. 긴 바람을 다스려 가는 데는 모름지기 성실함이 제일일 것입니다. 창해를 밟아 오니 문득 여러 가지 생각 줄을 잇습니다. 술잔의 술은 향기롭고 회는 백설처럼 흰데 시를 곁들이는 취향입니다. 끼니걱정 잊고 사는 덧없는 인생 흰머리 나이입니다.
오일국의 집에 내려가 밥을 짓고 생선을 찌고 술을 거르고 차를 끓여 이것저것을 실컷 먹고 손을 잡고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들어갔다. 또 황류주 백로주를 네다섯 잔 마시니 어두워졌다. 취해 엎어져 밤이 된 줄도 몰랐다.
23일 저녁부터 비가 오더니 정오에 갰다. 화재 김후근 옹을 위하여 마음을 단단히 먹고 과제 시 두수를 지었다. 화재 김후근 옹이 술에 취해 잠이 들어 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에 시경 풍아를 소리내어 읽었다.
24일 맑았다. 시경 기부를 정리하였다. 저녁에 주역을 소리내어 읽었다.
25일 맑았다. 식후에 임치중이 방문해 왔다.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또 일부러 나에게 술을 사 보내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이 뜻은 좋은 위로가 되었으니 어찌 잊을 수 있을 손가. 그리고 함께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가 술자리를 만들었다. 긴 밤 함께 자며 위로하며 밤을 보내었다.
26일 아침에 흐리다가 낮에 개었다. 아침 일찍 치중과 함께 집에 돌아와 같이 식사를 했다. 체기가 있어 차를 끓여마셨다. 또 치중과 더불어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가 과제 시 두수를 만들었다. 석양에 치중이 헤어져 가고 나는 집에 돌아왔다. 저녁에 시경 풍아를 읽었다.
27일 맑았다.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가 과제 시 한 수를 지었다. 그리고 화재 김후근 옹과 더불어 진 입구에서 바람을 쐬며 꽤 오랫동안 산책했다. 윤량의 가게에 들어갔다. 술이 매우 맛이 있어 서로 따라주며 대여섯잔을 마셨다. 술의 풍취가 바야흐로 무르익었다. 둘이 손을 잡고 언덕에 올라 답답함을 풀었다. 또 어량으로 향하니 고기 잡는 사람들이 고기바구니를 짊어지고 와 있었다. 들에 무리 지어 앉아서 고기를 사고 술을 불러 마시니 즐거움이 다하였다. 돌아오니 해는 이미 어스레해졌다. 저녁에 취해 쓰러져 잤다. 목이 말라 잠에서 깨어나니 정신이 말똥말똥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시경 풍아에서 기부까지를 읽는데 하늘이 밝아왔다.
28일 숙취가 깨지 않았다. 고달파서 정오까지 누워 있다가 석양에 정신을 차려 일어나 밖으로 나와 윤량의 집에 갔다. 술이 이미 떨어져 윤량에게 명하여 사오라고 하여 목을 적시고 화재 김후근 옹의 집으로 향하였다. 같이 밥을 먹고 그 집에 머무르며 돌아가지 않았다. 집주인 안문복의 작은 아들이 어른을 대함에 공손하지 않아 그 집에 머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29일 아침에 맑고 저녁에 흐리고 밤에 비가 왔다. 화재 김후근 옹의 본가 조노인이 함께 유숙하였다. 화재 김후근 옹의 손자가 돌아가겠다고 말하였다. 화재 김후근 옹이 술을 따르며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려 했으나 끝내 참지 못하고 홀연 샘같이 몇 줄기 눈물이 펑펑 솟아나왔다. 나 역시 부지불식간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애오라지 둘이서 손을 마주잡고 술잔을 건네면서 서로 마시며 서로 위로하며 날을 보낼 따름이었다.아침부터 저녁까지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서 머물렀다. 저녁에 시경 풍아에서 기부까지 소리내어 읽었다.
30일 비가 하루 종일내리다가 저녁에 조금 그쳤다. 과제 시 한수를 지었다. 또 봄을 보내는 전춘시 한수를 지었다.
#봄을 보내려 시냇물은 바다로 흘러갑니다. 구름은 비를 내려 나그네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미친 파도는 철썩거리며 천리를 흐르고 임자도의 무성한 풀 속에서 세월은 흘러 홀연 아홉 달이 지났습니다. 술에 취해 근심을 잊고자 하니 시들어 감을 꺼리지 않습니다. 유배 온 사람이 무슨 즐거움이 있고 봄날을 아끼겠습니까. 어찌 나를 등지고 가려합니까. 봄 미인과 이별하려니 슬프고 한스럽습니다.
저녁에 서경을 소리내어 읽었다. 의심나는 곳과 막힌 곳을 다시 반복해 읽다가 내가 매우 쇠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읽지 않은지가 불과 수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잊어먹은 것이 많았다. 무슨 일로 이리되었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리번거리며 비탄을 이기지 못하였다.
4월
1일
정축일. 아침이 된 후 날이 갰다. 저녁에 두터운 구름이 끼었다. 과제 시 한 수를 지었다. 저녁에 풍아를 소리내어 읽었다.
2일 아침에 안개가 많이 끼었다. 식후에 맑았다. 문복이가 와 사죄하였다. 그 어리석음과 늙음을 안쓰럽게 여겨 용서하였다. 과제 시 한수를 지었다. 석양에 문복이의 집에 돌아왔다. 저녁에 심기가 괜히 좋지 않아 읽기를 그만두고 쓰러져 누웠다.
3일 맑았다. 아침 식사 후에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갔다. 과제 시 두수를 지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에 시경과 서경을 소리내어 읽었다.
4일 맑았다. 인근 서당의 학동이 와 고풍을 지어달라고 하여 두 편을 만들어 주었다. 느즈막이 화재 김후근의 숙소에 가 과제 시 한 수를 지었다. 저녁에 돌아왔다. 저녁에 심기가 편치 아니하여 읽기를 그만두었다.
5일 낮에는 흐리고 밤에는 비가 왔다.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가서 둘이 함께 시 한 수를 지었다. 박장서가 지난 그믐 안에 섬에 들어오겠노라고 약속을 했는데 지금 며칠이나 지났는데도 오지 않았다. 근심이 되어 진머리에 걸어 나가 우두커니 서서 멀리 바다를 바라보았다. 화산마을 윤생원이 주막 집안으로 맞아들여 나에게 술을 사주어 통음을 마다하지 않고 많이 마셨다.갑자기 설사가 나 집으로 돌아와 취한 상태로 잠이 들었다.
6일 비바람이 크게 일다가 얼마 안있어 그쳤다.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가 과제 시 한 수를 지었다. 오위장 홍영섭의 아들이 서울로부터 왔다. 어머니상을 당했다고 하여 가서 위문을 하였다. 취해 잠이 들어 읽기를 폐하였다. 임자도 진의 종이 서울로 올라가는 편에 아들 정언에게 편지를 보냈다.
7일 맑았다. 식후에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가서 과제 시 한수 짓기를 마쳤는데 묵고 있는 집주인이 와 손님이 있다고 말하였다. 짚신을 거꾸로 신고 돌아오니 장서가 왔다. 흔연히 악수를 하니 위로됨이 끝이 없었다. 다음으로 아들 정언의 편지를 보았다. 가내 무고하고 양 손자가 다 잘 자라며 지난 달 20일 서울로 길을 떠난다 하였다. 집안은 모두 편안하게 지내고 있으나 찬보가 어머니 상을 항하였다 한다. 또 집안 형장 권양원(정선)씨가 내가 일을 당하던 날 그 막내 동생을 인정머리 없는 놈이라고 크게 꾸짖고 그리고 얼굴을 대하지 않았던 집안형장 권양원(정선)씨가 와 인사를 하였다 한다. 일이 이에 이르자 찾아와 나에게 말하기를 막내 동생을 친 육촌이라고 말했었다. 그 정으로 말하자면 세상에 좋은 것이다. 또 이가 맞닿을 시골 아닌가. 나는 그가 늙어서 화목함이 부족함이 그렇다고 견주어 보고 영원히 작별하였다. 그러나 집안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괴롭고 뉘우치고 마음이 아프고 화가나 마음 먹었던 것이 사라졌다. 또 선비 권홍서(범성) 부부가 함께 죽었다고 하였다. 이 사람은 끼니를 잇기 어려운 가난으로 고생을 겪었다. 칠 경에 해박하고 정통하였음에도 불고 꽃은 피었으나 결과가 없이 되었구나. 원통하게 누명을 써 마음속에 억울함을 품고 돌아가게 되었다. 크게 참혹하고 애처롭다. 선비 이희수는 장서와 함께 바다를 넘어 오려다가 농사철임을 생각하여 중도에 돌아갔다 한다.
편지를 보내 위로를 하고 물고기와 돈 백전을 보냈으니 감사하고 감사하다. 울옹과 그 아우 존옹(우성 관서)은 시로써 정을 보였다. 정이 구구절절하였으며 의리가 정성스러웠다. 벗 권윤호(익민)는 편지로써 서문으로 시로 돈으로 은근히 은혜로운 마음을 대수롭지 않은 듯 보내주었다. 또 그 재종숙 성달(병성)이 편지를 보내주고 뜻을 전해주었다. 마음씀이 깊었다. 또 그 집안사람 공균(익천)이 편지로 안부를 물었다. 어은동 오용길(기묵)이 편지를 썼고 돈 백전을 보내와 기쁘게 받았다. 또 지난해 독랄한 일을 만나 그 형색이 상심된 바 있었으나 바삐 돌아보고 손을 넣어 지켜주더니 그 일이 일이 있은 후에는 간단하고 짧은 글을 보내주니 어찌 이 마음을 저버릴 수 있을까. 어찌 이 의리를 잊을 수 있을까. 율현에 사는 노세명은 안부를 묻는 편지를 썼고 버선 한 켤레와 동전 20꾸러미를 보내왔다. 오후에 장서와 물가에 나가 산책하였다. 술을 사 목을 적시고 화재 김후근옹의 집에 갔다. 술잔을 서로 권하며 이야기하며 놀다가 돌아왔다. 날이 샐 때까지 장서와 더불어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8일 맑았다. 장서가 험한 길을 다녀온 까닭에 신음소리를 내었다. 나 혼자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가서 시 한수 짓기를 마쳤다. 그리고 손을 잡고 사공리(진의 끄트머리 작은 지명) 에 있는 오일국의 새 가게로 걸어갔다. 조노인이 김선달, 박연근(목수, 서울사람, 못된 행실을 하다가 포도청에 의하여 이곳으로 유배)과 함께 있었고, 최일수가 뒤를 따랐다. 익산에서 온 유배인 김태산의 l아들 순종이 술을 가지고 뒤를 따랐다. 자리에 앉아 술을 일순배 돌렸다. 장서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뒤따라 도착하니 기특하고 다행이다. 서로 우스개 소리를 하였다. 술이 어지럽게 순서도 없이 돌았다. 운을 걸고 시를 지었다. 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읊었다.
#맑은 바람 옷깃에 표표히 불어옵니다. 해 떠오르는 동쪽에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배회하고 있습니다. 길게 늘어서 있는 섬들은 물위에 실려 떠있고 가느다란 물줄기는 텅빈 바다로 흘러듭니다. 백년이 빨리 달리니 상전이 세 번 벽해가 됩니다. 망망한 만경 바다에 작은 배를 몰아가며 아름다운 곳 좋은 놀이 여가를 내어 연하의 경치를 즐깁니다. 천기가 사람과 더불어 흐르고 움직입니다.
낙조를 의지하여 돌아왔다. 저녁에 장서와 더불어 베개를 나란히 하고 편안히 잤다.
10일 식사를 하고 장서와 함께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갔다. 과제 시 한수 짓기를 하였다. 탁주 세잔을 마셨다. 그리고 오언율시 한수를 지었다.
#마음의 굳은 약속은 금란지교를 자르고 나그네의 수심은 쇠와 돌을 녹입니다. 신선은 학을 타고 노니며 바다마을의 풍습은 고기잡고 해초를 채취합니다. 시를 지으니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술통을 여니 아름다운 달이 떠있습니다. 화옹이 다섯 말을 내어놓고 부끄러워 죽겠다며 그 허리를 꺾습니다.
식사 후 장서가 작은 잘못을 하였는데 집주인이 자못 불경스럽게 말했다. 크게 꾸짖고 장서에게 화를 풀고 피해 있으라고 권했다. 나 홀로 남아 있으려니 밤새 잠이 들지 못하였다.
11일 흐렸다. 일찍 일어나 진머리에 나갔다가 능호의 집에 갔다. 장서가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서 밤을 지내고 왔다. 분해서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식후에 장서와 함께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가서 과제 시 한수 짓기를 마치고 탁주 몇 잔을 마셨다. 그리고 능호의 집에 갔다가 다시 발길을 돌려 산언덕에 올라 멀리 조망을 하면서 우울하고 답답함을 가라앉혔다. 안씨놈의 집을 들어가고 싶지 않아 포구에서 머리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 왔다 갔다 하였다. 저녁 어둑어둑한 빛이 나무에 드리워지고 있었다. 장서와 함께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서 잤다.
12일 맑았다. 문복이가 엎드려 사죄하였다. 두서너 차례 책망하고 이 섬오랑캐를 용서해 주었다. 험한 얼굴에 더해 큰 소리로 꾸짖는다 하더라도 충분치 않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협소함만을 보일 뿐 내 행동을 스스로 돌아보게 만들것이기 때문이다.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가서 시 한수 짓기를 하였다. 장서와 더불어 능호의 집에 가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보니 이미 저녁이 되었다. 대윤 장서와 더불어 뱃사공에게 나뭇잎같은 배 한 척을 젓게 해 상도에 정박했다. 술을 마시며 시를 지었다. 어부들과 수군들이 가볍게 배를 정탐하며 좌우에서 모여왔다. 채찬직 형제도 여럿 중에 있었다. 흔연히 인사를 하였다. 회를 썰고 마음을 열어 성의를 표시하였다.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날이 저물려 하였다. 생선을 많이 얻어 귀로에 올랐다. 장서와 더불어 함께 안문복의 집으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장서는 혹시나 하여 마땅하지 않아 하였다. 문복에게 명을 내려 사죄하고 모시도록 했다. 더불어 돌아와 편안하게 함께 나그네의 밤을 보냈다.
13일 맑았다. 간정록에 여러 날이 빠져 추가해 넣었다. 능호가 와 이야기 하다가 해그림자가 내리자 갔다. 시 한수를 지었다. 석양에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가서 즐겁게 술을 마셨다. 날이 저물어 진력이 나 쓰러져 베게를 베고 누웠다. 엎치락 뒤치락 하며 밤을 보냈다.
14일 맑았다. 시 한 수를 짓기를 하였다. 저녁에 시경을 읽었다.
15일 맑았다. 시 짓기를 하여 두수를 지었다.
16일 장서가 본군(영광군)에 가보겠다고 긴하게 말하였다. 원당의 집안사람 석렴에게 편지를 써보냈다. 또 칠언율시 한 수를 써 보든 일가붙이들에게 사과했다.
#무릇 오늘날 누가 있어 종친과 같겠습니까. 종친이란 언뜻 보니 한집안에 사는 가족들이 아니겠습니까. 보내주신 흰 옥같은 말씀들은 달빛보다 더 빛나고 보내주신 황금은 봄날처럼 은혜로웠습니다. 부평초 물에 떠 떠돌아 다니는데 따스한 정이 차가운 이곳까지 미쳤습니다. 꽃 핀 나무 무성하여 싱싱하게 푸른데 꿈속에서만이 자주 오고갈 뿐입니다. 포승줄에 얽어 있어 빠져나지 못하니 언제 모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울까요.
장서와 함께 한탄하며 사공리에 이르렀다. 술을 사 서로 권하고 배에 오르게 했다. 배가 물에 떠 멀리가는 가는 것을 우두커니 서 바라보았다. 배가 섬을 돌아 보이지가 않자 돌아왔다. 마음이 울적해 저녁 일과를 그만두었다.
17일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시 짓기를 하여 두 수를 지었다. 영시가 술장수를 그만두었다.
18일 맑았다. 시 짓기를 하여 두수를 지었다. 시경 소민을 소리내어 읽었다.
19일 아침은 맑고 낮에는 흐렸다. 시 두수를 지었다. 저녁에 시경 소아 5편을 읽었다.
20일 병신일, 망종이다. 맑았다. 시 두 수를 지었다. 석양에 나루에 나가 장서가 오는지 바라보았다. 조금 있자하니 과연 장서가 왔다. 멀리 바다를 건너 해를 입지 않고 무사히 돌아왔으니 천행이고 천행이다. 원당에서 온 답서를 보았다. 지도 감정리의 운경이 와서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있다 하였다. 장서와 더불어 가 악수하고 인사를 하니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화재 김후근 옹을 위하여 함께 자자는 것을 사양하고 집으로 돌아와 장서와 함께 닭이 울 때까지 마주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21일 맑았다. 식후에 바야흐로 운경에게 가려 했는데 운경이 먼저 왔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며 날을 보냈다. 잔을 기울이며 글을 논했다. 석양에 다 함께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가서 즐겁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운경노인과 같이 집에 돌아와 취한 채 새벽까지 잤다.
22일 맑았다. 오시에 벗 운경과 함께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가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며 긴 날을 보내었다. 운경은 말리는 화재 김후근 옹을 위하여 화옹의 집에서 잤다.나 홀로 집으로 돌아왔다. 숙취로 인해 심하게 고통스러웠다.
23일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식후에 벗 운경이 화옹의 집에서 왔다. 회포를 논하며 날을 보냈다 석양에 함께 화옹의 집에 갔다. 집으로 돌아와 한 베게를 베고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밤이 아직 절반도 안지났다. 정신이 초롱초롱 잠이오지 않았다. 날이 샐 때까지 시경 서경 주역을 두루 읽었다.
24일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식후 운경과 더불어 함께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서 술자리를 만들어 농담을 하며 놀았다. 석양에 운경과 함께 돌아왔다. 밤이 반이 아직 지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는데 또 잠이 깨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시를 소리내어 읊었다.
25일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식후 벗 운경이 집에 돌아가고자 하였다. 나는 천지바다에 풍랑이 급하니 잠시 있으며 옛사람들 처럼 술을 함께 마시자 했다. 또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가서 답답함을 풀자고 하였다. 숙취로 고통스러워 쓰러져 누워 베게를 베고 누웠다. 잠시 있으니 정신이 나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갔다. 화옹이 말하기를 벗 운경이 기다리던 아들이 와 고통을 무릅쓰고 돌아간지가 얼마되지 않았다 한다. 한참을 원망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고기음식을 얻어 오래토록 먹지 못하다가 싫컷 먹었다. 너무 배가불러 죽고싶을 만큼 힘이들었다. 밤새 비가 왔다.
26일 아침은 안개 낮은 맑았다. 환약복용을 마쳤다. 정월 20일부터 시작하여 이번 달 26일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포괄하면 96일, 환약개수는 1600개다. 식후에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갔다. 유쾌하게 술을 마시고 돌아왔다. 저녁에 천지사방을 모르고 혼곤히 잠이 들었다.
27일 맑았다. 오후에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가서 즐겁게 술을 마시고 돌아왔다. 저녁에 시경 풍아를 소리내어 읽었다.
28일 맑았다. 시경 소민을 읽었다. 저녁에 주역을 소리내어 읽었다.
29일 아침 흐리고 낮은 비가 오고 저녁은 비가오며 큰 바람이 불었다. 북산을 읽었다. 저녁에는 소아를 소리내어 읽었다.
5월
1일 병오. 아침에 안개비가 내렸다. 종일 두껍게 구름이 끼었다. 시경 상호를 읽었다. 진의 종이 편지를 전하지 않고 돌아왔다고 말하였다. 사람을 송별하였다. 저녁에 시경 풍을 소리내어 읽었다.
2일 맑았다. 시경 도인사를 읽었다. 저녁에는 시경 소아를 소리내어 읽었다.
3일 맑았다. 시경 풍편과 아편을 통독했다. 저녁에는 풍편과 아편을 소리내어 읽었다.
4일 아침에 흐리고 낮에 맑았다. 시경 문왕편을 읽었다. 화재 김후근 옹이 와 이야기하다 갔다. 석양에 화재 김후근 옹의 자리에 갔다. 흡족하게 취하여 돌아왔다. 저녁에 시경 소아에서 문왕까지를 소리내어 읽었다.
5일 맑았다. 생민을 읽었다. 석양에 또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가 몇 순배 술을 마셨다. 그리고 산기슭을 의지하여 동쪽으로 가 포구 가장자리를 어슷거려 거닐어 진머리에 이르러 장서의 집에 들어갔다.
유쾌하게 술을 마시고 돌아왔다. 저녁에 소아에서 생민까지를 읽었다.
6일 맑았다. 못견디게 심란하고 답답하여 장서 대윤 능호와 함께 나루를 건너 참으로 큰 들판에를 갔다. 새 둑 위에서 바람을 쏘였다. 그리고 화산 윤생원의 서숙을 방문하였는데 숙은 비어 아무도 없었다. 물러나오려는데 마침 작은 아이가 하나 있어 끌어 다른데 있는 공부방으로 갔다. 흔연히 정성스럽게 맞이하며 머리숙여 절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성은 박이고 한필이라 불린다. 그가 돌아 가신 아버지의 유고인 시집 한권을 내보였다. 외관적 형상은 전아하고 말의 풍취는 고움이 넉넉하였다. 어찌 궁벽한 섬에 이러한 뛰어난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러한 화려한 재주를 끌어안고 당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재주를 써먹지 못하고 마침내 풀이나 나무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는가. 가히 탄식스럽고 애석할 따름이다. 술을 거르고 고기를 구워 잔에 가득 따라 여러 잔을 권하니 우리 일행은 이미 취한데 더 취했다. 길거리에 나가니 학동이 있어서 앞을 인도하며 강제로 끌고가니 곧 윤생원의 서숙이었다. 정성을 다하여 술상을 내오니 해는 날듯이 지나가 넓고 넓은 온 땅에 날이 저물어 와 간다고 말하였다. 저녁에 소아 문왕 생민편을소리내어 읽었다.
7일 비가 지난 밤부터 왔다. 임자일. 하지날이다. 시경 대아 탕편을 읽었다. 시짓기를 하여 한 수를 지었다. 저녁에 시경 소아편과 대아편을 소리내어 읽었다.
8일 흐리고 비가 왔다. 이능호가 돌아가기를 원했다. 집에 와 종일 이야기하였다. 저녁에 시경 대아편과 소아편을 소리내어 읽었다.
9일 아침에 안개가 끼고 낮에 맑았다. 능호가 돌아가겠다고 고하였다. 사공진 머리에 나가 송별하였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집사람과 아들에게 편지를 쓰고 또 이희수, 친척 박광원에게 답장을 썼다. 저녁에 시경 소아편과 대아편을 소리내어 읊었다.
10일 비가 오다가 흐리다가 하였다. 시경의 송 주송편 삼권을 읽었다. 저녁에는 소아편과 대아편 그리고 주송편을 소리내어 읊었다.
11일 맑았다. 식후 대윤이와 장서와 더불어 사공리에 가 지도 윤량포를 바라보니 영남의 세곡을 실어나르는 배들이 정백해 있어 돛대들이 빽빽해 보였다. 가서 보고 싶었으나 거룻배가 끊어져 그럴 수가 없었다. 다만 숫자를 세어보다가 술을 마시고 생선안주를 먹다가 돌아왔다. 저녁에 시경 대아편과 소아편, 송편을 소리내어 읊었다.
12일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장서와 더불어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갔다. 삼순배의 술을 마시고 시짓기로 두수를 지었다. 저녁에 몸이 좋지 않아 읽기를 그만 두었다.
13일 흐리다가 바람이 불었다. 시경의 송 중 주송편 노송편 상송편 읽기를 마쳤다. 저녁에 시경 대아와 송을 소리내어 읊었다.
14일 맑고 바람이 불었다. 대아와 이아삼송을 통독했다. 밤에 달이 맑고 고왔다. 장서가 남송의 호담암이 세 사람의 흉인을 목벨 것을 청하는 상소문을 소리내어 읊었다. 천 년 전의 일이 어제와 같았다. 마음이 북받쳐 올라 감격스러워 오열했다. 의기가 산처럼 솟구치고 뜻이 깨어났다. 잠을 이루지 못하여 이아삼송을 소리내어 읊다가 읽기를 마치니 닭이 울어 새벽을 알렸다. 베게 위에 쓰러졌으나 끝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15일 남풍이 세게 불었다. 종일 정신과 몸이 편치 않았다. 저녁에 시경 소아편을 소리내어 읊다가 그쳤다. 장서와 대윤이 둘이 연락하여 함께 지도로 갔다.
16일 큰바람이 불었다. 이아삼송을 통독했다. 저녁에는 낮에 읽던 것을 소리내어 읊었다.
17일 큰 바람이 밤낮으로 그치지 않았다. 배 여러척이 뒤집어지고 깨졌다고 한다. 좌씨춘추전 2권을 보았다. 저녁에 아와 송을 읽었다.
18일 큰바람이 또 종일 불었다. 좌전 3,4권을 읽었다. 저녁에는 시경 아와 송을 읽었다.
19일 바람이 자지 않았다. 시경 국풍을 정리하였다. 저녁에 아와 송을 소리내어 읊었다.
20일 비가 낮에 그쳤다. 집주인이 갈수록 방자해져 부득이 정은명의 집으로 숙소를 바꾸었다. 저녁에 시경의 풍과 아를 소리내어 읊었다.
21일 맑았다. 시경 풍을 읽었다. 저녁에 개고기를 끓여 배불리 먹어 식곤증이 왔다. 책읽기를 그만 두었다.
22일 흐리고 또 바람이 불이 불었다. 저녁에 비가 왔다. 홍영섭의 아들이 어머니 상을 당해 서울에 올라가겠다며 인사를 하러왔다. 그래서 정언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좌전 5권을 읽었다. 저녁에 시경을 한번 다 읽었다.
23일 맑았다. 식후에 대윤이와 장서와 함께 배를 띄워 지도 윤량포에 갔다. 우창 세곡을 나르던 배의 뱃사람은 박씨였는데 자못 사리를 알고 의학에 공교한 재주를 갖고 있었다. 오래토록 노비로 노역에 처해있어 애석하였다. 정성스럽게 술을 내와 극진히 대접하니 동향의 사람으로서 정이 가상하였다. 석양에 작은 배를 타고 맑은 바람을 맞으며 곧바로 작도로 향하였다. 작도에서는 세우와 송어가 많이 나와 잇속을 노리는 장사꾼들이 많이 몰려온다. 진주사람이 여기에 거주하였다. 나무로 집을 지은것이 십중 팔구였다. 진주사람 강군석은 지난 임자년(1852) 어간 하늘에 사무치게 원통하게도 유배의 형을 받아 임자도에 유배를 왔다. 이곳 작도는 임자도에 소속되어 이곳에 거주하기로 하고 가족들을 옮겨 살고 있으니 군석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또 진주로부터 온 박씨 노인이 있어 서로 더불어 술잔을 잡고 권하였다. 취하여 그 집에서 멈추어 자니 편안하게 해줌이 매우 극진하였다. 저녁에 시 일률을 얻었다.
#섬모습이 까치같아 작도라 하였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둥지를 틀어 마을을 이루어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물산으로 잡히는 새우들이 마치 샘솟듯 끊임이 없어 개미떼같이 많은 상인들이 돈을 놓고 싸운답니다. 돛대들 늘어서 울타리가 되어있고 늙은이는 새우 항아리 쌓아두어 마당에 가득합니다. 물처럼 떠나가는 진주의 나그네를 강제로 붙잡아 술잔을 다퉈 권하며 존경하니 깊은 정이 붙습니다.
24일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식후 임자도에 가고자 했으나 배가 끊어져 그러지를 못하고 언제 건너왔던 배에 올라 가다가 점암에 잠시 배를 대고 쉬었다. 장서가 배에 올라 다시 윤량포의 세곡 나르는 배로 갔다. 빙빙 돈 것이다. 나는 대윤과 함께 머무르면서 나룻배를 기다렸으나 나룻배는 끝내 오지 않았다. 점암 이영배의 집 작은방에서 유숙하였는데 벌레들이 많아 저녁에 잠들 수가 없었다. 시를 읊으며 밤을 보냈다. 또 주체로 인해 몸이 편치 않았다.
25일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나룻배가 느즈막이 임자도로 향해 통했다. 노를 붙잡고 배에 올랐다. 최일수가 먼저 배안에 있다가 좋아서 깡충 뛰며 우리를 환영했다. 스스로 말하기를 일전에 모친상을 당한 홍영섭의 아들이 서울로 가는 것을 지도원동 어간에서 전별하고 오늘 돌아오는 것이라 했다. 배를 타고 돌아와 사공 진머리에 배를 대고 오씨 가게에서 술을 사고 생선회를 썰어 마시고 먹었다. 곁에 한 소년이 있어 공손히 술을 따랐는데 지도에 거주하는 황씨 성을 가진 아이였다. 석양에 숙소에 도착했다. 저녁에 시경을 소리내어 읊었다.
26일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장서가 윤락포에서 돌아와 숫돌을 싣고 다시 윤량포를 향해 갔다. 좌전 6권을 보았다. 저녁에는 시경을 소리내어 읊었다.
27일 환하다가 또 흐렸다 하였다. 식후에 화재 김후근이 와 흠뻑 취하게 먹고 마셨다. 그래서 해가 저무는지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누워 서로를 베게삼아 잤다. 밤중에 갈증이 나 잠이 깨었다. 또 막걸리를 시켜 서로 목을 축여 갈증을 달랬다.
28일 맑았다. 식전에 화재 김후근 옹이 돌아갔다. 좌전 7권을 보았다. 오후에 장서가 돌아왔다. 저녁에 체기로 답답해 쓰러져 누웠다. 읊기를 그만 두었다.
29일 맑았다. 좌전 7권을 보기를 마쳤다. 저녁에 시경을 소리내어 읊었다.
30일 맑았다. 교리 이명윤이 갑작스럽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놀랐다. 마음 아프기 그지 없었다. 좌전 8권을 보았다. 저녁에 시경을 소리내어 읊었다.
6월
1일 병자일. 맑았다. 장서와 더불어 배를 타고 지도에 갔다. 김노파의 가게에서 길을 멈추고 숙박했다.
2일 맑았다. 식후 감정동 권문경의 숙소로 향했다. 문경이 내가 지도에 왔다는 말을 듣고 바야흐로 급히 만나러 와 중간에서 만나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손을 맞잡고 함께 점암에 도착해 술을 사 목을 축였다. 옷깃을 풀어 헤치고 앉아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헤어지고 배에 올라 수도에 배를 대고 잠시 쉬어가기로 하였다. 먼저 채찬직을 보기로 하고 글방에 들어가 김문팔을 보기를 청하였다. 문팔이 나막신을 거꾸로 신고 급히 달려나왔다. 반갑게 이야기를 하며 정성스럽게 좋은 안주를 겸해 맛있는 술을 걸러 나오게 했다. 나는 기다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장서로 하여금 함께 가 빨리 내어오게 한 다음 술과 안주가 나오자 조금 더 조금 더 계속 권하며 마시다 보니 취하는 지도 몰랐다. 걸어 나와 배에 올라 멈추어 자다가 장서와 함께 돌아왔다. 저녁에 찬직이가 생선을 끊이고 회를 쟁반에 가득 담아 반찬으로 내어와 맛있게 먹었다. 저녁에 문팔과 더불어 글을 이야기하였다. 다시 술을 가득 걸러 내어와 통음을 하고 잤다.
3일 날씨가 무척 더웠다. 식후에 점암을 떠났다. 문팔과 찬칙과 함께 고깃배에 올랐다. 배를 타고 상도에 도착하였다. 어부들이 고기를 잡는 것을 구경하였다. 여러 자가 되는 민어, 쟁반처럼 큰 공어, 이런저런 고기와 새우가 무수히 많이 잡혔다. 무수히 많은 고기를 잡아 던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오히려 생선을 먹는 것 보다 보기가 좋았다. 임자도 나루 작은 비가 와 배를 대었다. 임자나루 배를 타고 집으로 향하였다. 찬직이가 또 많은 생선을 주니 감사하기가 그지없었다. 바람이 자자 배 나가는 것이 둔해졌다.늙은 뱃사공이 노를 저어 느릿느릿 임나자루에 도착하니 날은 이미 한 낮이었다. 좌전 8권을 읽었다. 저녁에 시와 전을 읊었다.
초 4일 낮에는 맑고 저녁에는 비가 왔다. 석양에 화재 김후근 옹의 죄를 감하여 여산으로 옮기라는 명이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축하하러 가니 하객들이 집 가득하였다. 술을 통으로 가져다 놓고 촉촉이 젖어들어 다 같이 화기애애 즐겼다. 화재 김후근 옹과 더불어 같이 잤다.
5일 비가 내렸다. 화재 김후근 옹과 더불어 술을 마시고 우스개 소리를 하며 지냈다. 밤에도 계속 하였다.
6일 맑았다. 아침 식전 숙소로 돌아왔다. 시와 부 각 한 수씩을 지었다. 벗 권운경이 부탁한데 따른 것이다. 오후에 화재 김후근 옹의 집에 가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날을 보냈다. 저녁에 화재 김후근 옹과 더불어 같이 잤다.
7일 밤중부터 비가 내리더니 아침에 그쳤다. 사공진에서 화재 김후근 옹을 송별하였다. 이별 시 한 수를 주었다.
#좁고좁은 객사에서 그대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우연히 만나고 보니 술에 취한 신선이었다오. 강호 넓은 곳에서 괴로움 마음 닦아내고 풍월 한가로운 곳에서 도기를 끌었습니다. 한 곡조의 미친 노래구절 오연하게 길게 뽑으며 백개 항아리 맑은 술을 함께 머물며 마셨습니다. 홀연히 나를 버리고 그대 떠나가니 철석간장이라지만 역시 눈물이 이슬되어 떨어집니다.
나와 화재 김후근 옹은 수개월 동안 서로를 좇으며 술을 마시고 시를 읊었으며, 속마음을 논하고 우환을 서로 안타까워했다. 서로 의지함이 적지 않았는데 하루아침에 헤어지게 되니 마음이 어지럽다. 돛배가 긴 바람을 타고 물 가운데로 아득히 흘러 떠나갔다. 우두커니 서 바라보니 너무도 마음이 간절하여 쓰러질 것 같아 탄식이 절로 날 따름이었다. 지낼 날이 걱정스러워 슬피 눈물을 흘리며 돌아와 뒤틀린 나무로 된 창문에 쓰러져 누웠다. 광산마을 임치중이 화재 김후근 옹을 송별하기 위해 왔으나 너무 늦어 시간에 대지 못하고 나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다 갔다. 저녁에 열기가 더웠다. 벌레들과 모기가 몰려들어 거침없이 사람을 물어대는 바람에 밤새도록 잠을 들 수가 없었다.
8일 맑았다. 식사 후 장서와 함께 모기를 피할 심산으로 광산 임치중의 서사로 향했다. 풀 길 사이로 지팡이를 짚고 엎드려 가며 길을 갔다. 해는 또 사람을 태우고 찌는 것 같아 땀이 간장처럼 줄줄 흘러내려 어렵게 도착했다. 치중이 신을 거꾸로 신고 뛰어나와 흔연히 환영하였다. 대야에 가득 물을 떠와 체면을 차리지 않고 씻으니 시원해졌다. 서로 이야기 하다가 기이한 향기가 풍겨나고 맑은 바람이 자리를 가득 채우는 지도 몰랐다. 계절이 유월임에도 문득 그 더위를 잊었다. 하물며 또 맛있는 술을 걸러옴에랴. 즐거운 마음으로 갈증을 풀었다. 오래전부터 사귀어 온 사람이 베풀어 준 것이 많았다. 장서와 함께 머물러 잤다. 저녁에 대아와 송을 소리내어 읊었다. 좌전 9권을 보았다.
9일 맑았다. 재원도에 가 고기잡는 것을 구경하고자 하여 장서와 함께 임세중을 따라갔다. 임세중은 종호와 치중의 삼종제(팔촌 동생)다. 광산 뒷산 언덕을 넘어 도구 마을을 지나 소나무 아래에서 쉬면서 배를 기다렸다. 잠시 있으니 과연 작은 거룻배 한척이 왔다. 바람을 어거하며 죽도를 향해 갔으나 거기에 미쳐서 섬을 빙 돌아버렸다. 애써 가려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다시 다른 섬을 향해 가기로 했다. 시간이 오래걸려 무료하였다. 목섬을 향했다. 좌측은 나무가 울창한 바위벽을 끼고 있었고 우측을 굽어보니 수평선이 보이는 험한 바다였다. 가파르고 험한 바다를 기우뚱 거리며 나아갔다.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였다. 오르락 내리락 하며 산을 돌아 각진 곳을 지나 작은 신선이 살만한 곳에 도착했다. 한 초옥이 서있어 그 문에 이르자 주인이 맞아들였다. 일견 공손하였다. 달고 찬 샘물을 떠와 한잔을 따라주니 갈증이 풀렸다. 잠깐 다리를 쉬고 남쪽 산줄기를 넘었다. 세중과 장서가 따라와 목섬 여인숙에 같이 도착하였다. 술을 사 서로 따라주며 마셨다. 석양이 산에 걸려 재원으로 가고자 하였으나 목섬으로 배가 통하지 않아 목점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장서가 세중을 따라가겠다고 아뢴 다음 다시 광산으로 향하였다. 저녁에 권씨 성을 가진 이의 집에서 자기로 했는데 마침 진리 숙소 주인 정은명과 진에서 근무하는 노장필을 만나 갖춘 것을 달라하여 가까스로 군색함을 면했다. 또 송노인을 만났는데 금년에 나이가 팔십이었는데도 하루에 백리를 달리고 하루에 한 되의 밥을 먹을 수 있다 하였다. 아직도 총명하고 정신도 좋았으니 자못 옛말이 사람을 깨우치게 한다. 서경에 나오는 그릇은 새것이 좋고 사람은 옛사람이 좋다는 말이 바로 이것을 일컬음일 것이다. 자기 스스로 말하기를 옥천서 살았었는데 함평으로 이주했다 하였다. 처자식도 없고 들어앉을 집도 없다 하였다. 의지할 것도 없이 다만 어린 손자 한명만 있어 둘이 함께 길에서 붓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하였다. 그 나이와 건강은 가히 축하할 만하였으나 그 운명은 불쌍하고 가여웠다. 저녁에 바람이 모기떼를 날려 보내 편안히 잠을 이루었다. 좌전 10권을 보았다.
10일 맑았다. 종일 배를 기다렸는데 배가 늦게야 도착했다. 상인들이 서로 타려고 다투었다. 여럿이 서로 건너가려고 빽빽하게 서 있어 발디딜 틈이 없었다. 머뭇거리고 앉아 바야흐로 저녁을 먹으려고 하는데 마침 세중이가 왔다. 차라리 방향을 바꾸어 돌아가자고 하여 세중의 뒤를 따랐다. 달빛을 보며 언덕을 넘어 가 광산 서실에서 숙박하였다. 치중과 더불어 닭 우는지도 모르고 장황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였다.
11일 맑았다. 다시 좌전 9권, 10권을 보았다. 저녁에 풍과 소아를 소리내어 읊었다.
12일 식후에 언뜻 비가 내리더니 그치고 바람이 불었다. 서실의 어른과 아이들과 함께 시가를 읊조리며 소일했다. 저녁에 대아를 소리내어 읊었다.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좌전을 보았다. 저녁에 풍과 소아를 소리내어 읊었다.
14일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낮에 치중이 석주 한 단지를 가져와 권해 마셨다. 좌전을 보았다. 석양에 장서가 지도로부터 돌아왔다. 나그네의 마음은 4-5일 헤어져 있는 것이 몇 년이나 것 같았다. 시경 패 백주편의 글대로 마음 아픔이 이미 그쳤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저녁에 시경을 한번 통째로 읽었다.
15일 식후 장서와 함께 집에 도착하였다. 빨래 한 옷으로 갈아입고 사공 진머리에 도착하였다. 가게의 작은 난간에 임해 있는 수면에 맑은 바람이 제법 불어 와 옷깃을 날리고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가슴이 툭터져 시원해졌다. 광한루에 의연하게 높이 앉아 있는 것과 같았다. 갑자기 소나기가 한번 뿌리니 더운 기운이 전부 사라졌다. 홀연 일엽편주 하나가 바람을 부리며 와 문밖에 대었다. 꾸짖으니 수도사람이 었다. 아뢰기를 임자도 진에 왔다는 것이었다. 그 배를 타고 물을 건너가볼까 하였더니 사공이 말하기를 오늘은 일이 있어 배를 돌릴 수가 없으니 내일 아침을 기다리라 하였다. 나는 임자도 경계의 맑고 시원함을 사랑하여 기회를 버릴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자기로 정하니 정서가 자기는 진에 들어갔다가 내일 아침 나오기로 약조하였다. 저녁에 바다의 모습을 바라보니 물이 너무너무 맑았는데 한 송이 꽃같은 맑은 달이 수만송이의 파도꽃과 더불어 서로 비추며 휘황함을 다투고 있어 아름다움을 더했다. 아름다운 경관을 보고자 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마당 가운데를 산보하였다. 율시 한 수를 얻었다.
#구부러진 난간에 올라 기대어 바라보니 바닷물 속에 하늘이 보입니다. 마음속 답답함과 세속에 찌든 마음이 홀연히 시원해집니다. 맑은 바람 자리에 불어오니 매미가 허물을 벗습니다. 외로운 배 밝은 달 학은 훌쩍 날아 하늘 높이 오르나니. 구슬처럼 아름답고 넓고 높은 영롱한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별똥별 번갯불같이 섬광 되어 흐르는 황홀한 바닷가 이곳. 한과 고통이 없는 이곳에서 아직 늙은이의 필력은 왕성한데도 소요하며 관상하느라 시 한편을 엮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16일 맑고 바람이 불었다. 일찍 일어나 식사를 재촉했다. 장서를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뱃사람이 물이 빠져 배가 땅에 앉을 것 같다고 걱정하였다. 노를 저어 장차 출발하려 하였다. 나도 같이 배에 올랐다. 수도에 머무르며 기다리겠다는 뜻을 가게 사람을 시켜 상세히 장서에게 전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바다 가운데로 흘러 들어가니 바람은 돌아 불고 파도는 춤을 추니 작은 나룻배는 이리저리 흔들려 어렵게 수도에 닿았다. 바로 김문팔의 집으로 들어가 상복으로 바꾸어 입은 것을 위문하고서 김문팔과 함께 사사로 갔다. 김찬직의 늙은 아버지가 신을 거꾸로 신고 급히 나왔다. 그리고 술잔을 가득 따라 안주와 함께 권하여 싫컷 먹었다. 오후 문팔이 아들을 시켜 술 한 동이와 안주 한 쟁반을 내어오도록 하여 함께 번갈아 잔을 주고받으며 같이 취했다. 저녁에 달이 밝고 바람이 맑았고 모기가 한 마리도 없었다. 만상이 다같이 넓고도 깊이 어우러져 유쾌하고 활달하였다. 시경 아와 송을 소리내어 읊었다.
17일 맑았다. 날은 이미 늦어 가는데 장서는 소식이 없어 행방을 알 수가 없다. 답답한 생각을 이길 수가 없어 포구로 걸어나가 산보를 하다가 우두커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장서가 혹시 저배를 타고 오나 잘못알기를 여러 번 반복하였다. 근심을 이길 수 없어 홀로 방황했는데 홀연 서쪽 산언덕에서 사람이 있어 나를 부르길래 즉각 응하고 황망이 그에게 갔다. 가서 만나보니 벗 권운경이었다. 스스로 말하기를 며칠 전 아들을 보기 위해 임자도 진에 들어갔다가 서로 길이 어긋나 실의에 빠져 무료히 있다가 장서와 함께 밤을 보냈다 한다. 또 장서와 더불어 같은 배로 점암으로 향하는 배를 탔다가 중도에서 정언을 만나 배를 돌려 함께 이곳에 도착하였다 한다. 정언과 장서가 뒤를 이어 도착하였다. 정언의 형용을 보니 안색은 검고 초췌하여 가엾고 걱정되었다. 모두 더불어 서사에 갔다. 궁벽한 섬 거친 시골에 푸른 도포를 입고 관직에 나아갔던 이가 거동하여 이르니 모두 우러러 보고 놀라 뛰어다녔다. 서사주인이 정성을 다하여 예의 바르게 잔과 쟁반에 음식을 가지고 와 여기저기 차려놓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즐겁게 술을 마시며 식사를 하니 오래토록 물가에 유배와 있는 슬픔을 잊고 기분이 좋았다.
18일 맑았다. 식후 권운경 부자와 작별하였다. 장서와 함께 고깃배에 올랐다. 상도에 배를 대고 고기잡는 것을 구경하였다. 때맞추어 임자도의 작은 배를 만나 옮겨 탔다. 찬직이가 생선을 많이 주어 받았다. 두 세 번에 그치지 않으니 염치없고 부끄러웠다. 챙겨주는 마음이 감사하였다. 썰물이 되어 물이 얕아졌다. 한 손으로 노를 저어가니 극히 어렵고 느릿느릿하였다. 항구에 배를 대고 임자도 집에 도착하니 해가 이미 기울었다. 정은명의 집 방은 하나뿐인데다 협소하였다. 모기떼가 천둥치듯 울어대어 감히 잠시도 쉬면서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거리 옆 윤량의 가게로 갔으나 네거리 곁에 있어 마찬가지로 도저히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형세는 다급한데 길이 막혔으니 어찌하리오. 또 길을 나서려고 생각하니 나그네가 어디로 간다한들 길가 아닌 곳이 있으랴 하여 참고 있기로 하였다. 김 진장이 뵈러 왔는데 아들 정언 김인섭이 행차하였다는 소리를 들은 연고가 아니겠는가. 저녁에 조용히 앉아 손자 강아지들의 공부하는 내용을 자세히 듣고보니 영특한 것 같아 기쁨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19일 맑았다. 체기로 답답하여 밥을 먹지 않았다. 몸이 편치 않았다. 차를 끓여 마시고 또 여곽탕을 끓여서 복용하였다. 어두워 진 후에야 조금 진정되었다. 광산마을 임치중이 아들 정언 김인섭이 왔다는 말을 듣고 보러 왔다가 뜻을 전하고 갔다. 저녁이 깊어지자 달빛은 맑고 깨끗하였으며 해면은 영롱하였다. 풀을 깔고 작은 연못 물가에 앉아 옷깃을 풀어 헤치고 더위를 식히니 답답한 체기가 내려가 기분이 좋았다. 정신과 기운이 갑자기 되살아나 말똥말똥 잠이 오지 않았다. 시경을 통째로 읊었다.
20일 맑았다. 아침에 진장에게 가 감사의 뜻을 피력했다. 진의 모퉁이 송단에서 더위를 피했다. 석양에 함평 강산에 거주하는 유학자 박유성(병기)이 방문하였다. 사람이 바다 귀퉁이에서 태어나 자랐음에도 천품이 유학을 지키고 뜻은 북학을 갈고 닦는데 두었다. 정재선생을 만나 몸과 마음을 바쳐 익혔다. 사람의 덕을 베풀고 의를 지킴에 기뻐하였고 아랫도리를 걷어올리고 폐백을 바치면서 제자되기를 원하였다. 그럼으로써 물뿌리고 빗자루로 쓰는 일을 맡아 행했다. 도리에 닿는 말을 가까이 하고 몸소 큰 것을 받들었다. 이에 마침내 선생이 제자로 받아들였다. 선생이 별세하였을 때 장지에 이르는 먼 길을 따라 줄을 지어 연이어 걸어간 사람 수가 800여명이었다. 슬프게 울부짖으며 엎드려 상여줄을 잡았다. 내가 섬에 들어온 이후 그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를 듣고 감탄하여 자나깨나 한번 만나보기를 원했다. 그러다 만났으니 시경 패 백주편의 시처럼 마음 아픔이 이미 그쳤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시경의 ‘우연히 서로 만나니 나의 바람에 꼭맞네’라는 구절이 바로 오늘 나의 일을 일컬음이라 하겠다. 또 그의 용모, 말, 행동거지를 보니 물어볼 필요도 없이 정재선생의 제자라 하겠다. 더불어 같이 자며 화기롭게 이야기하니 자신도 몰래 존경심이 일었다.
21일 맑았다. 식후 아들 정언 김인섭과 장서, 박유성을 데리고 광산 임치중의 서사를 찾아갔다. 최일수 역시 따라왔다. 느릿느릿 걸어 송단에 이르니 치중이 신발을 거꾸로 신고 문밖으로 나왔다.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지으며 정성을 다해 영접하여 주었다. 좌정하고 앉아 차를 마시고 나자 닭을 잡아 술을 내어오니 취하고 배가 불러 왔다. 웃고 이야기하며 즐기니 모든 것이 흡족하고 만족하였다. 마을 저 쪽 돌산 봉우리를 보니 돌이 떨어져 집을 덮치는 듯하고 높고 큰 돌이 괴이하여 마치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옷을 떨치고 일어나 천길 산등성이에를 올라갔다. 발 씻을 시냇물이 만리를 흘러가고 있었다. 자리에 있던 노소 모두가 애써 꼭대기로 올랐다. 겹겹이 쌓인 돌무더기 사이로 우거진 풀이 있어 깔고 앉을 만 하였다. 자리를 만들어 옷깃을 풀어 헤치고 두 다리를 앞으로 뻗고 털썩 앉았다. 눈을 아래로 내려다보니 동남쪽으로는 첩첩 산봉우리가 둘러 싸있고 하늘 끝 모습도 그림병풍을 펼쳐 놓은 것 같았다. 서북쪽은 큰 바다가 가이 없었고 하늘 끝 닿은 곳에서는 물이 돌아 흐르고 있었다. 저녁노을이 바야흐로 만경 천지에 떨어져 붉게 물들고 있었다. 위아래를 굽어보고 좌우를 둘러보니 아름다운 경치가 헤아릴 수 없었다. 운을 집어 시를 지었다.
#깍아지는 산봉우리 위에서 옷깃을 풀어헤치고 큰소리를 질러봅니다. 기우는 석양을 보니 비탄스러울 뿐입니다. 대지의 쌓인 기운은 누른 땅에 응축되어있고 북극성의 드리워진 모습은 푸른 파도에 잠겨있습니다. 저 멀리를 가리켜 바라보니 오나라와 촉나라를 생각납니다. 저 멀리 건너가 있는 중화를 향해 경의를 표하노니 내 무릎아래에 펼쳐져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구구하게 집을 그리워하겠습니까.
해가 떨어지려하자 대지에 어둠이 온다. 손을 잡고 산아래로 내려갔다. 서실에 도착하니 이어 저녁상이 나왔다. 옥같이 하얀 쌀밥 따스한 국 모든 정성을 다하였다. 물자가 없는 촌마을에서 보리밥도 고마울 진데 진수성찬을 차려주니 맛이 더욱 다르다. 손길과 마음씀이 다대하여 감격스러워 다시 돌아보아진다. 정성스러운 위로의 마음을 우리 모두 같이 느끼리라. 편안히 하룻밤을 보냈다.
22일 맑았다. 식후 치중이 장동으로 송별했다. 장동에 거주하는 선비 정치일이 흔연이 나와 영접하였다. 마음 가득히 정성을 담아 맛있는 줄을 내놓았다. 그 뜻이 가상하여 먹었다. 바로 진리로 돌아왔다. 저녁식사 후 유성이 고별인사를 하고 물 때를 맞추어 나룻배를 타고 지도로 갔다.
23일 맑았다. 아들 정언 김인섭이 출발할까 생각하였으나 하인이 갑자기 아파 집에 머물렀다.
24일 맑았다. 아들 정언 김인섭이 출발했다.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밭 사이로 난 길을 돌아가 진머리에 도착했다. 또 같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점암에 닿았다. 잠간 점심을 요기하고 있으니 소나기가 내리더니 다시 맑아졌다. 송별차 남포로 출발하였다. 풀에 이슬이 짙게 맺혀있었고 포구로 가는 길은 언덕이 많았다. 힘들어 하는 것이 허물이 아니다. 계속 길을 가 조비촌에 이르니 어둠이 나무에 내리기 시작했다. 진창길에 엎어지며 비탈길을 수리를 걸어가 만의 끝을 힘겹게 돌아서니 사방이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 도착하였다. 사람들을 시켜 소리를 치게하였다. 소리가 있어 이름을 부르며 찾으니 바로 장서였다. 굽이굽이 길을 돌아서 갈림길을 지나치니 마음이 툭 트였다. 나를 부축하고 밀면서 마침내 지도진에 도착하였다. 어떤 집에 머물기로 하고 쓰러져 밤을 보내었다. 다음은 김문팔에게 준 시이다.
#달과 바닷물이 많은 그윽하고 한가한 곳, 빈창문 바깥에 금빛 파도 반짝거립니다. 그대의 집 문은 소나무와 계수나무에 의지하여 있고 그대의 의상은 마름과 연꽃으로 만들었습니다. 남아가 늦게 만남이 애석합니다. 태어나 잠깐이면 흰머리가 되니 안타깝지 않으랴. 이지러진 세상에 태어나 소일 하는 법은 도연히 취해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25일 맑았다. 운경 노형과 즐겁게 악수하였다. 식후에 운경의 집을 방문하였다. 객들이 자리에 있었는데 해남 유학자 윤순필(종덕)이와 나주의 빼어난 선비 나경의(동륜)였는데 모두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비록 얼굴 상면한 것은 늦었지만 마음은 서로 통하고 있었다. 한번 보고 평생을 심취하였다. 옛이야기를 하며 해지는 줄도 몰랐다. 숙소에 돌아와 행장을 차리고 아들 정언을 시켜 유성이 머무는 곳으로 출발시켰다. 수일 후 다시 오기로 하였다. 저녁에 운경의 집에 머물렀다. 윤순필과 나경의 두 벗과 함께 마주보고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26일 맑았다. 장서가 선도로 갔다. 석양에 화순 서칠여(상복)를 찾아갔다. 그리고 운경의 집에서 머물렀다.
27일 맑았다. 식후 운경과 함께 아들 정언 김인섭이 머무르고 있는 곳을 찾아갔다. 헛된 생각을 그만두었다. 심한 더위를 무릅쓰고 싶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부축하고 끌면서 길을 가 송항에 이르러 황씨의 가게에 들어가 잠시 다리를 쉬었다. 사람이 있어 공손히 맞이했는데 점주의 동생이었다. 지난 가을 섬에 들어와 처음 얼굴을 알았고 또 나를 임자도로 찾아왔었다. 잔을 받들어 술을 따라주니 그 뜻이 가상하였다. 날씨가 찌는 것처럼 더워 흘리는 땀을 뿌리고 숨조차 쉬기가 힘들었다. 어렵게 양계촌 앞의 작은 가게에 도착하였다. 가게에 한 늙은이가 있어 흔연히 맞아들였으니 바로 유성의 8촌이라 하였다. 사람됨이 자못 막되먹지 않고 문자를 제법 알았다. 나와 동갑이었고 자는 명곤 이었다. 여러 잔의 술을 권해주었다. 아들 정언 김인섭이 묵고 있는 집을 물으니 어제 석양무렵 유성과 함께 발산에 갔다 하였다. 운경과 헤어지고 명곤과 더불어 함께 강산진을 건너 발산에 이르러 유성의 집을 찾아갔다. 유성은 오늘 아침 식사 후 아들 정언 김인섭과 더불어 함께 학암의 집안사람을 찾아갔다 한다. 종인은 증산으로부터 이사 온 사람이었는데 내일 아침 돌아온다고 말하였다. 뜨거운데다 답답한 방이 좁기까지 하여 잠시도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명곤이 끌어 언덕의 북쪽에 있는 작은 가게에 이르렀다. 점주는 명곤의 집안사람이었다. 그는 바야흐로 병이 있어 자리에 누워 있다가 인사를 하였는데 손님을 대접하는데 어긋나지 않았다. 자못 사리를 알았고 성심껏 대해주었다. 명곤이 돌아가겠다고 말하였다. 나는 주체기가 있는 가운데 더위까지 먹어 쓰러져 누워 한밤중까지 신음을 했으나 점점 좋아졌다.
28일 맑았다. 식사 후 아들 정언 김인섭이 유성과 더불어 돌아왔다고 들었다. 나는 곧 가서 학암의 집안 사람 김대천을 보았다. 도착하여 보니 그 사람은 사람의 기량이 일반인을 뛰어넘었다. 처음 만나서 친척간의 우의를 이야기하였다. 더욱이 시경에서 말한 ‘오늘의 사람 중에 나와 같은 성씨의 의리만한 것 없네’라는 말을 깨달았다. 또 경의가 유성을 방문한 다음 같이 왔다. 경의와 헤어지고 아들 정언 김인섭과 함께 4~5십리를 가 머물렀다. 오늘 저녁 함께 편안히 자니 점차 위로가 되었다. 잠시 있다가 유성이 닭을 잡고 국수를 만들어 큰 주발에 담아 내어왔다. 배불리 먹고 더위를 씻어내었다. 오후에 아들 정언을 재촉하여 송별하였다. 가뭄이 심하고 더위가 극에 달해 정말 불모의 땅과 다를 바 없었다. 자기가 만든 재난으로 말미암아 아이가 추위를 무릅쓰고 더위를 뚫고 엎어지며 잘 틈도 없이 바삐 돌아다니니 푸른 하늘 아래 이것이 어떤 사람의 일인가. 애타고 애탈 뿐이다. 유성과 더불어 임자도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김대천이 장이까지 나를 바래다 주고 돌아서 갔다. 매우 슬프고 한탄스러웠다. 그래서 유성과 함께 산줄기를 넘고 강산진 나루를 건너니 진머리에 술집이 있어 사 마셔 마음속의 불을 껐다. 양계에 도착하여 잠시 명관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곧 유성이를 따라 이어 양계촌의 글방에 도착하니 윤순필 형이 미리 와 자리에 앉아있었다. 유성의 의리있는 행동이 어찌 아름답지 아니한가. 함께 더불어 기쁨을 나누고 한탄스러운 이야기도 하며 밤을 보냈다.
29일 맑았다. 퇴우정 박승종에 대한 기록을 보았다 박승종은 광해군 당시 대신이다.불행히도 인조반정의 혼란한 때를 만났다. 비록 뒤집혀 추락하는 환란을 면하지 못했지만 마음의 중심을 잡았다. 선왕의 영앞에 절을 하고 조용히 죽음에 이르렀는데 조금도 흔들림 없이 침착하였으니 어찌 백세에 미혹함이 있으랴. 천운이 돌고돌아 철종임금 재위 팔년인 정사년 6월, 300여년이 지나 마침내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되었다. 시에 이르기를 ‘하늘은 어둡구나. 하늘이 평안케 하면 막을 이 없으니’ 라는 구절은 바로 이것을 일컫는 것 아니겠는가. 함께 지도진을 향하여 가는데 날씨가 화로에 불을 때는 것같이 뜨거워 감히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혹은 소나무 그늘에서 혹은 외막에 올라가 쉬면서 울퉁불퉁 험한 길을 다리를 끌면서 한치한치 걸어가 지도진에 도착하였다. 먼저 운경에게 일전의 수고에 대해 감사를 하였다. 석양에 김문팔이 때마침 와 순필과 더불어 서칠여의 달변을 들었다. 밤 10시경에 서칠여가 등을 잡고 술을 걸러가지고 와 나를 위로하여 주었다. 옷깃을 풀어헤치고 회포를 풀고 박수를 치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갔다.
7월
1일 을사일 이른 아침 점을 쳐 귀매괘를 얻었다. 오후 윤순필과 더불어 서칠여가 머무는 곳에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답답함을 풀다가 돌아왔다. 저녁에 시경을 소리내어 읊었다.
2일 오후 소나기가 뿌리고 지나갔다. 밤중에 다시 비가 내렸다. 아침에 서칠여가 나와 순필을 잡아끌어 식사를 대접했다. 매우 풍성하였다. 곤궁한 처지에 한끼니의 식사일망정 매우 감사하였다. 유기균(문화 류씨, 자 계련)은 지난 신해년 구월산 소요에 연루되어 이곳으로 유배되었다. 사람이 자못 자세하고 분명하여 서로 더불어 꾀 오래 사물의 시비를 논하였다. 술 석잔과 회 한접시를 내어와 배불리 먹는 바람에 저녁식사를 먹을 수 없었다. 적동에 거주하는 김씨 성을 가진 이가 은근히 정의를 표하고 갔다. 운경이 밖에 나갔다가 비에 막혀 돌아오지 않았다.
3일 밤부터 비가내리다가 낮에 그쳤다.
4일 맑았다. 식후 서칠여가 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갔다. 보성 홍한주가 방문했다.
5일 맑았다. 식사후 순필과 더불어 홍보성이 머무는 집에 가 이야기하였다. 집주인이 시를 지어달라고 청하였다. 운을 집어 함께 시를 지었는데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응해 주었다.
#저 멀리 높은 구층의 누각이 있습니다. 물이 흐르고 달만 떴다 지는 한가한 곳에서 조용히 거울을 비춰봅니다. 난초 혜초는 뭇 여인의 질투를 받습니다. 강호는 예로부터 쫓겨난 신하가 옵니다. 세상길 어려움이 많아 세 개의 험난한 소용돌이를 지나야 합니다. 세월이 빨리도 흘러가 칠석이 돌아옵니다. 가시나무 땅임을 알기에 스스로 자위해봅니다. 심신이 흠뻑 취해 녹아드니 금잔으로 마시는 것보다 더욱 좋습니다. 고인의 마음은 물처럼 맑습니다. 우화등선하여 멀리 높은 하늘에 둥둥 떠있습니다. 봄날 비 흡족히 내린 것처럼 술을 스스로 즐기다가 석양에 덥수룩한 머리털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호수와 산에 문장의 기운을 풀어놓으니 천지가 이를 처음 들을 것입니다. 곤궁한 처지에서 한번 즐겁게 웃을 수 있는 것은 만금의 가치가 있다 하겠습니다. 원하건데 이와같이 평생을 보내면 좋겠습니다.
석양에 운경 순필과 함께 서칠여가 묵고 있는 집에 가 한바탕 담소하다가 황혼무렵에 숙소로 돌아왔다.
6일 식후에 벗 윤순필과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운경과 함께 임자도를 향했다. 3리 가량 왔을 때 갑자기 비가 와 달렸다. 의관이 모두 완전히 젖어버려 감정동 운경이가 옛날에 살던 옛주인집에 들어갔다. 옷을 벗어 햇빛에 말렸다. 가죽 신이 진창에 빠져 잠시도 더 신고 있을 수가 없었다. 또 몸은 젖고 다리는 흙이 묻어 누워 바람을 쐬는데 갑자기 한기가 든다고 생각되어 뜨거운 탕과 신발을 얻고자 하여 집주인에게 천번 만번 부탁해도 끝내 응락 해주지 않았다. 섬 풍습의 나쁨을 이에서 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젖은 옷을 걸쳐 입고 헤진 신발을 동여매고 축 늘어져 무거운 발을 끌면서 계속해서 절룩거리면서 어렵사리 점암부두에 당도하니 때는 황혼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배의 집을 찾아가니 영배는 수도에 가 있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 집에서 숙박하였다. 저녁에 시경 국풍을 소리내어 읊었다.
7일 맑았다. 오후 영배가 수도에서 건너왔다. 임자도로는 배가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쭈그리고 하룻밤을 묵고 있는데 못된 짓을 하면서 떠돌아다니는 무리가 같은 방에 모여들었다. 방이 좁고 냄새가 심해 견딜 수 없어 자리를 피해 난간 밖으로 나왔다. 밤이 깊자 한기가 생겨 추워 견딜 수 없었다. 조금 전에는 뜨거워 미칠 것 같더니 조금 지나자 이번에는 반대로 매우 추워졌다. 하루사이에 염량이 교차하니 무슨 병인가. 느릿느릿 날이 새었다.
8일 맑았다. 수도에서 배가 왔다. 식후에 배가 수도에 붙여 대었다. 찬직이 외부로 출타해 집에 없었다. 그 아버지 역시 들에 나가 보이지 않았다. 상중에 있는 신씨가 정성껏 맞이하였다. 잠시 있으니 고깃배가 상도로 출발해서 타고 건너가고 싶었으나 시간이 되지 못하였다. 문팔을 방문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상중의 신씨가 환송하기 위해 따라나와 큰 잔에 술을 부어 여러 잔을 권하였다. 마시고 있는 사이 문팔이 와 즐겁게 이야기하는데 뱃사공이 서서 재촉하여 다음에 만나자는 약속을 남기고 서로 헤어졌다. 배에 오르니 순풍이 불어와 삽시간에 임자도 진리 해안가에 대었다. 안산 산록 만의 끄트머리 뾰족한 곳을 돌고 다리를 건너서 진머리 박윤량의 집에 도착하니 날은 이미 정오였다. 대윤이 김도천 최일수와 더불어 찾아왔다. 박윤량의 집에 머물러 잤다.
9일 아침에 무지개가 떴다. 이른아침 비가 내리고 낮에는 맑았다. 식후에 주학기와 박연근이 노주를 가지고 와 권했다. 오시에 광산을 찾아가다가 장동 정치일의 집을 들렀다. 정치일이 흔연히 환영하였다. 어려운 처지의 나에게 술과 담배를 내어오는 정이 은근하였고 매우 감사하였다. 그리고 광산에 도착하니 치중이 신을 거꾸로 신고 급히 나와 웃으며 환영함이 마치 고향의 친척과 같았다. 한밤중까지 속마음을 이야기하다보니 날이 저물고 피곤한지도 몰랐다.
10일 맑았다. 아침 식사 후 임자 진을 향해 출발하여 돌아오는 길에 다시 치일이를 방문하였다. 작별하고 오는 길에 화산을 들러 윤진탁을 방문하였으나 진탁부자가 모두 없었다. 그 종질과 6촌 동생 두 사람이 접대하여 정을 주었다. 정이 담긴 술잔이 매우 흡족하였다.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진머리에 도착하여 오니 해가 이미 기울었다. 유유히 밤을 보냈다.
11일 맑았다. 내일은 아버님의 제삿날이다. 온 종일 밤새도록 비통하고 슬픔이 가이없어 잠이 들지 못했다.
12일 석양에 비가 내리더니 계속하여 밤까지 이어졌다. 낮에 장서가 선도로부터 증도와 사옥도를 보고 왔다. 주머니가 넉넉하여져 가관이었다. 한 사람이 장서를 따라와 절을 올리는데 증도에 거주하는 생원 서인수라는 사람이었다. 그 형 재유는 섬의 유학자로서 옛글을 좋아하고 사리를 알고 조상을 모심에 능하다고 들었다. 효를 생각하여 제각하나를 선영아래에다 지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기록하는 글을 지으려고 하는데 장서가 나에대해 과장되게 하는 말을 잘못 듣고서 나에게 글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라는 그의 형 뜻에 따라 찾아 온 것이었다. 나는 그럴 사람이 아니고 그럴만한 글도 없으니 어찌 그 일을 담당하겠는가 하고 그의 청을 물리쳤다. 저녁에 장서가 “모든 섬들의 풍토와 물정과 인심, 풍습이 극히 순박순후하다. 주나라 말 소사양과 격경양이 해도로 들어왔으니 어찌 취할 데가 없겠습니까”라고 말하니 과연 그러하다.
13일 비가 진시까지 오다가 그쳤다. 생원서씨가 또 와 글을 간절하고도 간절히 청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또 장서가 자리에 앉아 눈으로 도왔다. 내가 이미 그 뜻을 가상히 여기고 또 그 일을 공경하기에 졸렬함을 잊고 술 한 잔 올리는 마음에서 못난 글을 써 주었다. 최일수와 주학기가 또 그들의 서당에 글을 써주기를 요청하여 창졸간에 사륙변려의 글을 써 주었다. 저녁 식사 후 장서가 광산에 간 뒤 소식이 감감 무소식이었다. 홀로 잤다. 바다의 달이 사람의 마음을 쓰라리게 했다.
14일 아침 식사 후 비가 뿌리다가 그쳤다. 정언이 이달 초 닷새 사근에서 초 엿새날 오시면 집에 당도할 것이라고 쓴 편지를 받아 보았다. 험한 길 해가 없이 잘 건너갔음을 알고 매우 기뻤다.
15일 맑았다. 오늘이 나의 생일이다. 어머니께서 나를 낳느라 고생하였을 것이라는 느낌이 평일의 배로 느껴졌다. 그래서 시 일률을 엮어 슬픔을 표현하였다.
#부모님이 나를 낳으셨습니다. 나를 낳느라 겪으셨을 고생을 생각하니 마음 아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늘 같이 가없는 은혜 어찌해 갚을 수 있겠습니까. 이 자식 쇠약하고 늙게 되니 더욱 간절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예전에는 때를 기다리며 봉시를 쏘아 요사스러운 기운을 쫓았는데 지금은 신세가 타락하여 임자도에 유배되어 떠돌고 있습니다. 가을 하늘아래에서 어찌 피 눈물 흘리며 부르짖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석양에 장서가 들어왔다. 밤에 달빛이 온 천지에 가득 찼고 바다의 파도는 크게 일렁거렸다. 마당가운데를 왔다 갔다 하며 마음의 중심을 잡았다.
16일 맑았다.
17일 맑았다. 지도진을 가려했으나 배를 놓쳐 그러지를 못했다. 저녁에 소아와 대아를 소리내어 읊었다.
18일 저녁에 가끔 비가 내리다가 그쳤다. 아침 식사 후 장서와 더불어 지도진에 갈려 했으나 사공진에 이르니 풍랑이 매우 위태해 많은 사람들이 건너지를 못하고 있었다. 지도에 가지 않고 머물러 있으며 술을 마셔 취한 다음 시원한 바람을 쏘이며 누워 오래토록 잠이 들었다. 잠이 깨자 추위가 와 음양탕 몇 대접을 마시니 점차 좋아졌다. 밥을 먹을 수가 없어 흰죽을 쑤어 먹었다. 저녁을 지새며 풍을 소리애어 읊었다.
19일 아침에 가는 비가 내리다가 곧 갰다. 낮 물때에 배를 탔으나 바람이 거꾸로 불어 건널 수가 없어 수도에서 배에서 내렸다. 찬직이 출타하고 없었다. 찬직의 아버지와 문팔이와 함께 종일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동쪽이 밝아지는 줄도 몰랐다.
20일 흐렸다. 낮에 탁수 세잔을 마시고 바람을 쏘이며 집에 누워있다가 한편으로는 추위가 한쪽으로는 갈증이 옮을 깨닫고 매우 서글퍼졌다. 또 대접을 내와 술을 마셔 갈증을 달랬으나 한기는 점점 심해졌다. 잠시 있으니 임자배가 와 정신을 추리고 진머리로 나가자 위가 역해져 크게 토하였다. 배에 올라 점암에 가 정박하였다. 추위를 떨치고 가던 길을 멈추고 이양서의 집에 가서 차를 끓여 마시고 또 죽을 데워 마시니 한기가 점차 진정되었다. 밤이 되었는데도 정신이 초롱초롱 잠이 오지 않았다. 처음으로 학질임을 알았다.
21일 맑았다. 아침 식사 후 찬직이 수영으로부터 왔다. 반갑게 이야기하다가 작별하였다. 장서와 더불어 천천히 지도진에 도착하였다. 운경이 다른 섬에 들어갔다고 하였다. 술집에 들어가 노주를 사 마시면서 체기로 답답함을 내렸다. 서칠여를 방문하였다. 담소를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만류하여 함께 잤다.
22일 맑았다. 아침 식사 후 장서는 양간다리 박유성의 숙소에 갔다. 나는 보성을 방문하였는데 평생의 친구처럼 환영해주어 즐거웠다. 운을 내걸고 함께 시 일률을 지었다. 또 함께 시문에 머리말을 지었다.
#선비께서는 고인이라서 큰 한을 품고 있으면서도 독서를 좋아하여 멀리 유배와 있으면서도 글을 멀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무릇 오늘날의 풍속은 보배를 땅에 파묻어두고 있을 뿐입니다. 나 지금 옛날 아름다운 일들을 훤히 아는 고인을 방문하여 마음을 트고 이야기 합니다. 연못가에서 연꽃 옷을 입어 모습을 바꾸고, 풀우거진 언덕에서 난초향 노리개를 어루만집니다. 강호와 조정은 서로가 있는 땅을 잊고 있습니다. 어느 때 뜻을 맞추어 의리를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잠시 있으니 한기가 또 일어나 운경의 숙소에서 들어가 음양탕을 만들어 마시고 또 흰죽을 끓여 먹었다. 또 차를 덥혀 연이어 마시니 한기가 잡혔다. 기력이 쇠한 데다 열이 있어 헛소리를 하며 밤을 보냈다. 칠여가 사람을 보내 아침식사를 하시자고 잡아 끌었다. 식사 후 보성이 사는 곳을 갔다. 조용히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제자백가에 널리 통하였다. 가히 걸어 다니는 비장의 서책이라 할만하다. 석양에 장서가 들어와 문에서 나를 찾았다. 내가 들어오라고 하여 바람을 쏘이며 주인 노인과 세 사람이 벌려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석식후 밤이 깊어 칠여의 집으로 돌아왔다.
24일 맑았다. 식후 장서와 함께 보성의 숙소에 갔다. 함께 칠언고시를 지어 15구의 긴 작품을 얻었다.
#우주를 배회합니다.우주를 배회하며 농담을 하고 비분강해 하고 있습니다. 홀연 서리 내린 머리에 놀라보니 해는 기울어져 갑니다. 노를 저어 상류로 올라가니 정신이 표연해집니다. 새소리와 노을빛 속에 여윈 신선이 나와 절을 합니다. 어금니와 뺨은 나이 먹었어도 향기가 풍깁니다. 흐릿한 속눈썹은 도랑에 마름이 자란 것 같습니다. 칠십을 먹었음에도 글공부에 힘을 써 옥색 담황색 비단으로 표지한 책을 뱃속 가득히 넣어두었습니다. 읽은 책이 27개의 언덕을 이룰 정도로 박식하고 천만년 고금의 일을 자유롭게 드나듭니다. 경전을 떠나 뜻을 분별함이 명백합니다. 지난 날 당시에 대해 들으니 걸어 다니는 비서라고 합니다. 올빼미가 날개짓하며 나니 봉황이 달아나고 옥 비슷한 돌이 가치를 뽐내니 구슬이 부서집니다. 나의 미친 짓을 돌이켜 보니 죄가 하늘을 미혹하였습니다. 임금님께서 특별히 안타깝게 여겨 성은을 내려 주신다면 족함을 알고 평생토록 위안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아랫사람들을 접하게 되면 맑은 가르침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바다선비의 시를 부기한다.
#천지에 문란하고 천한사람이 해상에 유배를 온지 어언 두 해가 되었습니다. 공자와 증자 자사와 맹자의 글을 소리내어 읊고 있는데 매우 어려운 처지에서도 잠시라도 폐하지 않았습니다. 바다 포구의 사람들은 늙고 괴상한 나를 성대해 대접해주며 따릅니다. 고래같은 파도는 바라볼 수는 있으나 친하게 지낼 수 없습니다. 놀랍게도 늙은 나를 짚신을 신고 마중 나와주어 악수하며 친절하게 환대해줍니다. 몰골이야 물가 땅에서 말라비틀어져 있을지라도 입에서는 세속의 잡티가 없고 마음에는 원망함이 없습니다. 높은 하늘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옛날의 풍류에 대해 세상사람들은 아는바가 없습니다. 늙은이 59세가 되어 머리를 돌려 가슴속에 담습니다.
석양에 칠여가 글을 던지며 나를 급히 잡아끌어 시편을 정서하지도 못하고 따라가 유숙하였다. 운경이 들어왔다.
25일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주인이 보이지 않아 운경의 숙소에 가 식사를 했다. 식후 칠여가 뒤쫓아 와 보이지 않는다고 가버린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책망하여 같이 웃으며 환담하였다. 장서가 나에게 보성과 헤어져 임자도진에 돌아들어가겠다고 이야기하고는 그 말과 같이 돌아갔다. 칠여가 큰 언덕에 올라 멀리 내려다 조망하면서 답답한 마음을 풀겠다고 이야기하였다. 보성과 헤어지고 운경의 숙소에 돌아왔다. 장서는 섬으로 들어갔다. 나는 피곤하여 꼼작할 수가 없어 자리에 쓰러져 누웠다. 보성이가 지팡이를 가지고 와 두드리면서 풀을 벗겨내었다. 웃으며 환담하였다. 잠깐 있으니 칠여도 운경과 함께 돌아왔다. 유배객과 넷이 넓게 앉아 백주를 서로 따라주며 이야기하기를 혹 분노를 토로하면서 우스개 소리를 하였다. 속마음을 다 풀지도 못했는데 해가 지려하였다. 아쉽게 자리를 마쳤다. 나는 운경과 더불어 잤다.
26일 어머니 제삿날이 임박해 내일로 다가왔다. 슬프게도 나 불효자는 뜨겁고 바닷가 독기서린 곳에 떨어져 정신이 혼몽하여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새벽달이 말달리듯 가는 것을 보고서 문득 오늘이 입재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에 창밖에 달이 없었다면 완전히 잊어버릴 뻔했다. 이곳은 여관이고 임자도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었다. 대충 자고 내일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이치가 그러하였다. 임자진에 가려하니 운경이가 와 나를 점암까지 송별하여 주고 갔다. 잠시 만나고 잠시 헤어짐이 모두 정념이다. 배가 수도 앞에 이르니 장서가 해안가에 있다가 뱃사공을 불러 배를 돌렸다.같이 임자도로 건너와 윤량의 집에 이르니 윤량은 아버지가 전염병에 걸려 아버지를 놓아두기 위한 들판에 친 막에 나가 있었다. 매우 가여웠다. 저녁에 갈 곳이 없어 윤량이가 옛날 살던 집을 지나쳤다. 굴뚝은 쓰러지고 벽은 무너져 가릴 것이 없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머님의 가이없는 사랑을 생각하며 서럽게 흐느껴 울었다.
27일 비가 내리다가 오후에 조금 그쳤다. 주학기가 찾아와 인사하고 갔다.
28일 맑았다. 아침 일찍 윤량이가 막을 쳐놓은 곳을 다시 가보았다. 장동과 화산의 교차지점이었다. 한쪽은 고요하고 쓸쓸한 곳이었는데 원래는 밭이었으나 나무가 우거져있었다. 또 한쪽은 갈대와 억새가 도랑에서 몇 뼘이나 무성히 자라있는 끝없는 평원이었다. 그 정리란 친척끼리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술을 소반에 내어와 끼니로 먹었다. 그리고 광산 서숙에 갔는데 임치중이 촌의 수재들을 가르치고 있다가 신발을 거꾸로 신고 뛰어나와 기뻐하며 맞이하였다. 술을 많이 먹어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어 꽤 오래토록 잠을 잤다. 목이 마려워 잠이 깨어 물을 찾으니 치중이 제사에 쓰는 숙주 한 단지를 내어와 마시며 갈증을 풀었다. 그리고 잠시 잘못된 점을 토론하였다. 저녁 해가 서산에 기울었다. 지팡이를 들고 진리로 돌아왔다.몸을 둘 데가 없어 부득이 사공진머리 오일국의 집에 숙박하였다. 장서가 먼저 와 있었다. 함께 잤다.
29일 맑았다. 방을 수리하고 진의 가구와 세간을 들여다 놓았다. 저녁에 풍과 소아를 소리내어 읊었다.
30일 기운이 크게 편치 않고 마음이 나빴다. 음식을 전부 토하였다. 개 한 마리를 사 끓여 먹으면 좋을 것 같았으나 사기가 어려웠다. 낮에 장서가 수도에 갔다. 오후 숙소 주인이 내가 매우 초췌해짐을 걱정하여 자기집의 개를 잡아주었다. 그 뜻이 가상하였다. 저녁에 대아와 송을 소리내어 읊었다.
8월
1일 을해일. 맑았다. 낮에 장서가 수도에서 왔다. 저녁 장서와 함께 진에 들어갔다. 진장을 뵙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추로주와 눈같이 흰 회를 내어와 요기하였다. 장서는 밖에 있다가 먼저 돌아왔다. 나는 저뭄을 타고 돌아왔다. 진교 김상옥이 책자를 만들 백지 세묶음을 들고 따라왔다. 저녁 식사 후 피곤해 쓰러져 잤다. 밤에 차를 내려 마tu 피곤한 기운을 내리고 잠을 잤다.
2일 맑았다. 당송시문을 보았다.
3일 맑았다. 식후 장서 대윤이와 작도에 갔다. 익산에서 온 유배인 이부의도 뒤따랐다. 돛에 바람이 한번 부니 강군석의 집에 닿았다. 술과 먹을 것을 내놓은 거동이 지극하였고 성의와 정성으로 그 집에 유숙하였다.
4일 맑았다. 화산 생원윤사길이도 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술을 가지고 와 술을 가득 따랐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사람들을 위하여 시 한수를 지어달라고 생색을 내면서 청하였다. 해남 수영에 산다는 생원 조성극이 있었는데 효성스럽고 우애가 있을 뿐 아니라 또 문자와 풍류에 능하며 바른 일을 행하여 사방에 좋은 평판이 자자하다 하였다. 스스로 호를 야은이라 한다 했다. 그가 운을 내걸자 원근의 많은 사람들이 나타났고 이 섬 사람들도 따라서 모여들었다. 나는 그들의 간구함을 만류하지 못하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이에 응했다.
#야은이라는 아름다운 이름 세상 사람들이 모두 공경합니다. 하늘에 닿은 효성과 우애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겁니다.
석양에 배를 돌려 진리 숙소로 돌아왔다. 강군석이도 따라와 함께 잤다.
5일 구름이 끼고 흐리고 또 바람이 불었다. 아침 일찍이 강군석이 망운으로 향해 출발했다. 어제 권운경이 나를 찾아왔었다 하였다. 어디로 갔는지를 몰라 사람을 시켜 찾아보도록 하였다.우헌(운경의 별호) 왔다. 넘어질 듯 급히 뛰어나가 손을 움켜쥐고 이야기하였다. 더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같이 잤다. 감기가 심해졌다. 정기산을 달였다.
6일 비가 내리고 또 흐렸다. 종일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술을 잔뜩 마셔 감기를 억제하였다. 저녁에 정기산을 복용하였다.
7일 비가 내렸다. 장서의 손을 빌어 어지러운 원고들을 정리하였다. 우헌 권운경이 어려운 때를 만나 일정한 주거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엎어지고 자빠지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않는다. 오늘 여관 중에 여관이라할 만한 형편없는 곳에서도 힘써 책을 보며 고달픈 줄을 모르니 그 정력이 범인을 뛰어 넘는다.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두렵다. 저녁에 배가 불러 잠을 자려 했으나 편치 않았다.
8일 비가 오다가 낮에 구름이 끼었다. 개 한 마리를 잡아 조리했다. 저녁에 자려 했나 편치 않았다.
9일 맑았다. 정신과 기운이 점차 좋아졌다. 낮에 운경과 대윤 장서와 더불어 같은 배로 나가 점암에 배를 대었다. 술을 사 갈증을 해소하고 지도진을 향했다. 감정동 앞에 이르니 해가 황혼이 되었다. 달빛을 받고 진에 도착하여 상점의 노파를 찾으니 노파는 크게 아파 천지사방을 모르고 있어 나와보지 못하였다. 장서와 밤을 무릅쓰고 서칠여가 머무르고 있는 집으로 가 문을 두드리니 주인이 천천히 걸어나와 흔쾌히 영접하면서 죄를 용서하여주라는 어명이 있었다 하였다. 관리들은 이미 모두 이에 대해 알고 있는데 일반 백성들은 잠시 있으면 알게 될 것이라 하였다. 깊은 밤에 밥을 지어왔다. 뜻이 좋고 부지런하였다. 선비 오씨가 자리에 있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경성사람으로 칠여의 외조카였다. 장서는 운경의 숙소에 가고 나는 오씨와 같이 잤다. 천가지 생각과 만가지 사념이 복잡하게 무더기로 모여 들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땀이 흐르고 머리가 아프고 원통함으로 인해 미칠 지경이었다. 일어나 창을 열고 달빛아래 오래토록 방황하였다. 들어와 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잠을 자려 노력하였으나 끝내 잠을 들 수 없었다. 어둠속에서 의관을 주섬주섬 정제하니 주인이 보이지 않았다. 운경의 숙소에 가 운경을 불렀다. 운경 역시 잠을 들지 못하고 있다가 바로 응하였다. 무릎을 마주하고 앉아 동이 터올 때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10일 맑았다. 아침에 해옹이 성은을 입어 죄를 용서받은 것을 축하하러 갔다. 아침 식사 후 칠여의 숙소에 가 한 밤중에 도망가 없어져버린 허물에 대해 사죄하였다. 서로마주보며 한바탕 웃었다. 그리고 곧 다시 운경의 숙소로 돌아왔다. 장서가 정읍에 가는 것을 송별하고 대윤이가 임자도진에 들어가는 것을 송별하였다. 잠시 헤어져 있으려니 간절하고 애가 탔다 타관살이하는 집의 창문아래 쓰러져 누워 책을 펼쳐 읽으며 근심을 달랬다. 오후 다시 칠여의 숙소에 갔다. 해옹이 다시 와 좌중에 앉아 있었다. 셋이 둘러 앉아 잠시 마음을 털어 놓고 이야기 하고 있으려니 선비 박유성이 때맞추어 와 잠시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함께 운경의 집에 가 유성에게 해옹의 글을 보고 베껴줄 것을 요청하니 유성이 응락하여 소매에 넣어 가지고 갔다.
11일 이른 아침 해옹이 함께 밥을 먹자하여 끌려가 배불리 먹었다. 운경이 급히 와 끌고 가니 그 뜻을 박절하게 거절할 수 없어 천천히 가보니 나를 위해 큰 술잔에 한 병의 술을 따르고 낙지 여덟마리를 내어와 취하였다. 그리고 제법 오래도록 해옹의 집 마루위에 바람을 무릅쓰고 앉아 있으니 감기기운이 생겨 한기가 와 따뜻한 구들에 누웠다.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다. 오후가 되니 조금 진정되어다. 운경이 술과 안주를 강권하여 한잔을 받고는 잔을 내려 놓았다. 저녁에 차를 끓여 마셔 체기를 내렸다.
12일 흐렸다. 감기기운이 아직 남아있어 소강을 끓여 한꺼번에 다 먹어버렸다. 저녁에 칠여가 와 이야기하다 갔다.
13일 흐리다가 비가 오기를 반복하였다. 해옹이 지나가다가 들러 이야기하다 갔다. 운경이 유성의 숙소에 갔으나 거처하는데 없어 어찌어찌하다가 유성과 함께 왔다. 이곳과 운경의 숙소가 거의 십여리 되는 곳인데도 갔다 오는데 몇 각 밖에 걸리지 않으니 운경의 빠르기가 귀신이나 다를 바가 없다. 늙은이 기력이 정정하구나. 유성이 역시 책 한권을 베끼기를 마치고 와 그 뜻을 전하는데 빠르기가 운경의 걸음의 민첩함과 다를 바가 없다. 내가 신세가 영락하여 타지역으로 떠돌아 다니는 외로운 나그네 신세인데도 일시나마 이러한 두 사람의 도움을 얻으니 참으로 기쁘고 행복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해옹이 나경의와 더불어 시문을 지어 주고받은 두루마리를 보여주었다. 석양에 유성이가 되돌아왔다. 저녁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아 그 운으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멀리로부터 진귀한 이곳에 와서 시를 지으며 놉니다. 화초꽃 여러 가지로 무성하고 목란꽃이 피어있는 섬입니다. 문장은 현재 과거 미래를 거리길 것 없이 마음대로 넘나들고 나그네는 무료히 있는데도 가을이 되었습니다.천지는 생명을 아끼어 죄인들의 죄를 사하여 주었습니다. 강호에 앉아 서로를 잊고 있으니 속세의 근심이 사라집니다. 어려운 처지에 빠져 울고 있는 미친 이 인생이 위로를 받습니다. 입신출세의 길로 한걸음 한걸음 올라갑니다.
해옹의 글을 덧붙인다.
#나는 원래 한가한 놀이를 만들지 않았다. 두 해를 눈 내리는 갈대와 사철 쑥 우거진 곳에서 표표히 나부끼며 살았다. 궁벽한 바닷가에서 시를 읊다가 멀리서 온 나그네를 만났다. 하늘에 우기가 섞여 있고 그 속에 가을이 오고 있다. 풍진세상 짧은 머리털 늙어 감을 미워하고 있나니.천지 외로운 인생 모든 것이 근심이로다. 사람은 지금처럼 천리 길 헤어지기 쉽다. 만 가지 인연 이로부터 생기나니 물만 헛되이 흐른다.
14일 흐리다가 언뜻 비가 내렸다. 호문전 비결을 보았다. 이것은 유성으로부터 빌린 것이다. 아! 유성은 궁벽한 바닷가에 거주하고 있지만 이러한 비결을 얻어 간직하고 있으니 육십이 얼마 남지 않은 내가 이를 얻어 보니 유성에게 매우 부끄럽다하겠다. 석양에 해옹의 숙소에 가 글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술과 찬 한 상을 내어와 배불리 먹었다. 돌아와 나그네 길의 잠자리에 누웠으니 불렀던 배가 꺼져 저녁에 쌀밥을 먹었다. 밤새도록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아름다운 시절 가을의 감상을 금할 수 없었다.
15일 종일 구름이 두터웠다. 시원한 사이사이로 가는 비가 내렸다. 진에 근무하는 사람이 운경에게 보내온 술과 음식을 보내왔다. 나도 같이 먹고 마셔 취해 물가에서 여러 해를 보내는 비탄을 덜었다. 저녁식사 후 칠여의 숙소에 갔더니 바야흐로 내일 부인을 떠나보내는 일로 인하여 어지러워 조용히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칠여의 생질 선비 오씨와 더불어 다시 어두워 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추탄 오윤근의 8대손이고, 대제학 서파 오도일의 6대손이며, 대제학의 5대손이며, 한림의 손이다. 달빛을 타고 운경의 숙소로 돌아왔다. 운경이 바야흐로 어두운 구석에 들어박혀 사람이 들고나는지도 모르고 자고 있었다. 큰소리로 흔들어 깨워 얼마쯤 이야기를 하다가 잤다.
16일 비가 꼭두새벽부터 낮까지 내리다가 맑았다. 식후 운경과 더불어 천에 시를 써 축을 만들었다. 오후 선비 오씨가 먼저 가며 운경의 집을 지나가다가 들러 이별을 고했다. 나는 문밖으로 나가 송별하였다. 밤에 운경과 더불어 편치 않은 마음을 닭이 울 때까지 이야기하였다.
17일 맑았다. 식후 해옹과 이별하였다. 슬프고 망연자실하였다. 시 한 수로 송별하였다.
#망망한 바닷가 흰 이슬 푸른 갈대 위에 맺혔습니다. 종자에게 원컨대 날래가는 저 배 붙잡아 주십시오. 가을달 아래서 만나 흉금을 털어놓았고 상계의 신선을 만난 것처럼 같이 하였습니다. 물이 흐르는 것처럼 술잔 돌리며 시를 읊다가 총총히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생에 작별이 될 것이니 마음에 섭섭합니다. 하물며 땅이 다한 궁벽한 바닷가에서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낮에 운경과 더불어 천에 시를 써 시축을 만들다가 해가 다하였다.
18일 맑았다. 선비 박유성이 위로하며 책을 주고 겸하여 맛있는 술과 좋은 안주를 내어와 도연히 취하였다. 운경과 더불어 석양에 대변정 위에서 바람을 쏘이며 시를 읊었다. 돌아오는 길에 칠여의 숙소를 지나가는데 칠여가 억지로 붙잡아 머물러 잤다.
19일 저녁 한밤중부터 종일 비가 내렸다. 그래서 칠여의 숙소에서 머물었다.
20일 맑았다. 아침 일찍이 운경의 숙소에 돌아왔다. 아침 식사 후 해배되었다는 공문이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칠여가 바야흐로 우옹과 더불어 출발하여 모두 작별하였다. 양곡서 한 편과 시 한수를 주었다.
#뚜벅뚜벅 걷는 말과 고란이 뜻이 서로 통하여 유유자적했습니다. 슬픈 노래가 큰 바닷가에서 서로 만났습니다. 삼세의 인연을 찾느라고 이지러진 세상을 잊었습니다. 웃음을 잃은 덧없는 인생은 가을날의 풀과 같습니다. 연꽃 잎 술통 앞에서 바야흐로 술잔치의 즐거움을 가졌습니다. 갈꽃 달 밝은데 홀연히 이별의 수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 하늘 끝 까마득하게 멀리 떨어진 곳에 한이 서립니다. 푸른바다도 만리 멀리로 흘러감을 알았습니다.
칠여를 보내고 지도진 구창촌 뒤 언덕에 이르니 장서가 날듯이 달려와 넘어질 듯 손을 움켜쥐며 말했다. 태인 경계에 이르러 서울로부터 무사히 내려와 도착하여 머물고 있는 정언을 만났는데 내가 죄를 용서받았다 하였다. 정언이 삼천리를 바삐 내려오던 나머지 피곤하여 병이 나 원당 집안사람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하여 놀랬다. 운경이 칠여를 송별하러간 뒤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갈 일이 바빠 운경을 보지 못하고 장서와 더불어 임자도를 향해 돌아갔다. 점암에 돌아가니 배가 끊어져 건널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발길을 멈추고 점암에서 숙박하였다. 이런 저런 생각이 몰려들어 엎치락 뒤치락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옷을 떨쳐 일어나 달빛을 타고 물가 술집에 내려가 술을 마시다 대취하여 돌아와 잤다.
21일 맑았다. 사시에 임자도 배가 와 배에 올라탔다. 사공진의 가게에 배를 정박하라고 이야기하였다. 갑자기 속이 좋지 않아 누워서 시간을 보내다가 점차 진정이 되었다. 억지로 일어나 정신을 차렸다. 장서가 작도로 갔다. 진머리를 지나 윤량의 막사에 도착하여 잠시 쉬었다. 저물무렵 광산에 도착하여 치중과 함께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며 밤을 보냈다.
22일 식후 치중과 이별하며 시 한수를 주었다. 천지 사이로 내가 유배를 왔습니다. 가을바람은 큰소리로 멱라수 물가에서 서럽게 울었습니다. 낙락장송 외로운 소나무는 빼어난 모습입니다. 지난 유월 흉금을 열고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별의 한이 비가 되어 내립니다. 근심은 구름이 되어 흰머리를 재촉합니다. 지나가다가 장동 정치일(재섭)을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해 마음이 아팠다. 귀로에 윤량의 들판 막사인 야막에 들러 동전 백엽을 주어 성의를 표시하였다. 그리고 진말을 지나다가 주학기의 막내동생 행문이가 요절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비통하고 측은함을 참지 못하였다. 학기를 불러 위로하고 싶었으나 어지러워 응할 수 없다하였다. 진말의 좌측 언덕을 끼고 점차 나루로 가고 있는데 따라오며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진의 가게에서 뒤를 돌아보니 바삐 달려 앞에 와 말하기를 나으리님이 먼저 진촌에 도착하였으나 사방을 찾아보아도 찾지 못하였다고 말하였다. 멀리 포구와 초목이 우거진 길을 눈을 올려보고 내려 보며 찾아보았다. 엎어질듯 달려오는 자가 있었는데 바로 정언이었다. 오기를 기다려 바라보니 안색은 시커멓고 형용은 못쓰게 되어있었다. 삼천리 힘든 길을 내려왔는데 비록 몸이 철과 돌로 되어 있다 하더라도 어찌 녹아나지 않겠는가. 무단히 장난질로 일을 만들어 모함을 받아 예측하지 못했던 구덩이에 빠졌으니 혀로 배꼽을 핥으려 해도 혀가 닿지 않듯이 후회해도 이미 때가 늦지 않은가. 함께 사공리 오일국의 집에 가 길을 멈추고 잠을 잤다. 강상권은 방면되었으나 대윤이와 김도천, 지도 운경은 해배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마음이 매우 좋지 않았다.
23일 맑았다. 행장을 꾸렸다. 낮에 장서가 강상권과 같이 와 서로 축하했다. 강상권은 하늘 끝닿은 이곳에 던져져 임자도 땅에 유배되는 귀역의 독형을 받았다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13년이나 해를 반복하였다가 이번에 사면받았다. 더불어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하고 함께 잤다. 정치일이 사공진에 와 이별의 선물을 주고 갔다. 그 뜻이 감사하였다.
24일 바람이 불었다. 아침 일찍 서울 사람 목공 박연근이 와 전별하였다. 이 역시 몇 년전에 횡액을 당하여 이 섬에 유배를 왔다가 4년만에 석방된 자다. 식후에 아들 정언 김인섭과 장서, 강상권과 함께 배에 올라 바다를 건너려는데 대윤이도 배에 올라 눈물을 머금고 따라왔다. 중류에 이르렀는데 바람이 거칠어 건너지를 못하였다. 배를 멈추고 작도에 정박하였다. 채찬직(규봉), 찬직의 아버지(학묵, 자 군화, 평강인, 을묘생), 찬직의 아들 문석(갑인생) 찬직의 형제 가운데 동생 성직(이름 규권, 신묘생), 막내동생 영직(이름 규영, 갑오생)과 김문팔(용희) 찬직의 조카 익서(유숙) 등 여러 사람들이 넘어질듯 급히 달려와 환영하고 축하하며 술을 따라주어 흠뻑 취했다. 하루가 지나도 바람이 그치지 않아 발길을 멈추고 투숙하였다.
25일 바람이 자고 파도가 잦아들었다. 배를 내어 출발하였다. 김문팔이 이별의 시를 요청하길래 입에서 나오는 대로 시를 지어 주었다.
#인생에서 만나고 헤어짐이 어찌 한이 되는가. 다만 늙어감을 애석해 할 뿐이랍니다.
찬직이 이백엽을 주고 갔다. 순풍이 불어 건너기에 좋았다. 얼마 안되어 점암에 배가 닿았다. 대윤이가 여기까지 온 다음 손을 부여잡고 서로 이별하였다. 이별의 눈물이 옷깃을 적셨다. 이년을 함께 지내다 하루아침에 헤어지게 되니 사람이 목석이 아닌들 어찌 마음이 슬프지 않겠는가. 영배와 헤어지고 지도진을 향해 왔다. 강상권도 함께 도착했다. 운경을 만나 손을 부여잡고 한숨을 지으며 정회를 나누자 하니 마음이 착잡해져 차라리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정언이 먼저 발산을 향해 가고 저녁에 운경과 더불어 베게를 나란히 하고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자니 가슴에 천가지 생각과 만가지 회포가 끓어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26일 맑았다. 강상권이 전별금을 자못 후하게 주고 먼저 갔다. 아침 식사 후 출발했다. 운경이 강상진 머리까지 멀리 나와 송별해 주었다. 이별하고자 하였으나 이별을 참을 수가 없어 강제로 포구로 데리고 가 막걸리를 걸러 같이 눈물을 흘리며 마셨다. 마시기를 끝내고 헤어졌다. 열걸음을 걸으며 아홉 번 돌아보면서 배에 올랐다. 운경을 바라보니 저기 높은 곳에 앉아있었다. 희미해져 바라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길을 서로 맞춰 바라보았다.이땅과 헤어짐을 참지 못하겠고 사람들의 정과 헤어짐을 참을 수 없었다. 시 한수를 천에 써 주었다.
#우리들은 함께 바다 한귀퉁이에 던져졌습니다. 망망한 바다에서 서로 마주보며 탄식하고 함숨 쉬었습니다. 그대는 재앙이 엄습해 옴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비분에 가득 차 미칠 것 같았습니다. 동풍에 흔들리는 버드나무가지 소매에 쥐고서 밝은 달 갈대꽃 자식은 머무르다 인사하고 떠났던 땅 서로 멀리 떨어지려니 단장의 슬픔이 옵니다.
점차 포구를 나와 언덕을 넘어 평지를 지나 굽이굽이 발산에 도착하여 박유성집을 방문하였다. 유성이 문을 나와 환영하였다. 점심을 차려 내왔다. 수도의 선비 김익서와 유숙이도 뒤쫓아와 자리에 앉았다. 먹기를 마치고 출발하였다. 유성이에게 이별의 시를 주었다.
#강호에서 옥같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당신은 평야지대의 보배입니다. 당신은 훌륭한 분의 고제자임을 묻지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서로 어려움을 위로하기를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향기로운 분의 위로가 흡족하니 시골집 창에 밤이 들었습니다. 악어가 사는 물가에서 베풀어주신 두루마리는 빛이 났습니다.
서간교 토기점 무위정을 지났다. 어두워져 삽교점에 투숙하여 가기를 멈추고 숙박했다.
27일 새벽에 비가 내리다가 하늘이 밝을 무렵 갰다. 일찍 출발하여 망운 시점에 이르러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즉시 출발하여 석치에 이르렀다. 선비 김익서가 쫓아와 이별을 고했다. 이별의 마음을 담아 시 한 수를 주었다.
#백가지로 유배인을 도왔습니다. 죽림 속에 산다는 고결한 선비를 다시 보았습니다. 연꽃 옷을 입고 세상을 사니 표표히 나부끼어 신선이 되었습니다. 아득히 먼 타향에서 이별을 한다지만 정은 한이 없습니다. 멀리 떨어진 포구의 바닷가에서 나를 송별해 줍니다.
함평부에서 낮요기를 하였다. 말편자를 끼우고 교점을 지나고 가마꾼을 얻어 멀리 갈 차비를 차렸다. 구산에 이르니 해가 이미 저물어 가던 길을 멈추고 투숙했다. 다음은 장서와 아들 정언 김인섭과 시를 읊은 것이다.
#구월 가을 날 돛을 높이 올리고 여러 해 바닷가에 유배되었던 외로운 신하가 석방되어 돌아갑니다. 아무리 하여도 목숨을 건질 수 없었는데 천지의 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생에 해와 별이 빛나는 것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옛날의 선비들이 갈대 자라는 물가에 완연한 모습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세상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완전히 버리겠습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살아갈 것입니다.
28일 맑았다. 일찍이 출발하여 나름시를 지나 증산서원에 이르러 세사람의 집안 사람을 보았다. 아침 식사 후 출발하여 군평점에 도착하였다. 마부 양기복이를 얻어 다시 사가점으로 가 점심 요기를 하고 평림을 지나 북창에 이르러 유숙했다.
29일 일찍이 출발하여 장교점에 도착하여 술을 사 요기하였다. 진국점에 도착하여 아침식사를 하였다. 궁정암을 지나 술을 사 갈증을 달래고 수십리를 갔으나 여관이 없어 요기를 할 수가 없었다. 담양 강정점에 도착하여서야 술을 사 배고픔을 면했다. 담양의 방천점에 이르러 낮요기를 하였다. 해가 저물어 순창 방축점에서 발길을 멈추고 투숙하였다.
30일 맑았다. 일찍이 출발하여 순창읍저 관아에 도착하였다. 술을 사 갈증을 달랬다. 낮에 적성강을 건너 강의 동쪽 가게에서 말에게 먹이를 먹였다. 남원 홍치를 넘어 황병사 정문에 도착하였다. 술을 사 묘로 내려갔다. 방천점에 이르러 발길을 멈추고 투숙하였다.
9월
1일 을사일이다. 맑았다. 일찍이 길을 나서 남문거리에 도착하여 잠시 쉬었다. 바로 여원치를 넘어 비전점에 이르러 술을 마셨다. 인월점에서 점심 요기를 하였는데 점주 김창경이 넘어질 듯 뛰어나와 내가 살아서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며 기쁨에 겨워 말했다. 성의를 다해 끊임없이 음식을 내어오는 것이 어찌나 살뜰한지 못내 잊힐 수가 없었으니 본디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팔량치를 넘어 난평점에 도착했다. 점주 최씨 역시 인월점주같이 문앞에서 환영하고 끊임없이 술을 내어 왔다. 뇌산에서 투숙하였다. 덕첨노인을 방문하였는데 바깥에 나가 없었다. 찾아 갔는데 백곡으로 이사가고 그 둘째아들이 옛집을 지키다가 맞이하여 대접하였다. 저녁 식사 후 덕첨이 넘어질 듯 달려왔다. 악수하고 기쁨의 이야기를 나눈 다음 덕첨의 숙소에 도착하였다. 잠시 있으니 진사 홍성필(운섭)이도 좇아 왔다. 늦은 밤까지 이런저런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그리고 잤다.
2일 맑았다. 성필 형제가 일찍 와 이야기하였다. 아침 식사 후 김씨 제족이 일제히 모여 후하게 전별금을 주며 송별했다. 사근점에 이르렀다. 사근점의 사람들은 알거나 모르거나 모두 좋아서 뛰며 앞다투어 축하하거나 오래살기를 기원하며 술을 따라주었다. 생림점에 이르러 김해문을 찾아갔다. 해문은 서울에 가고 없었는데 해문의 아버지가 바삐 나와 기뻐 아뢰었다. 좌우에 사는 촌부들이 다투어 나와 축하를 주었는데 정이 얼굴에 넘치고 행동이나 몸가짐이 발랐다. 날이 저물어 산읍 백철의 집에 투숙하였다. 철은 단계가 믿고 일을 맡기던 하인이었는데 금년 정월 이곳으로 이사왔다 한다.
3일 맑았다. 일찍 출발하여 척지령을 거치며 술을 사마셔 갈증을 달랬다. 모례리를 지나 친척 권구서를 방문하였다. 여러 형제들 및 기타 친구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있었다. 낮에 계서촌에 도착했다. 오랜 벗들이 자리를 다투어 좋아하며 위로하였다. 친척형 박형숙(규연)씨는 대상을 새로 치름에도 바삐 달려와 먼저 와 보았다. 칠십의 늙고 쇠약한 나이에 거적자리와 흙 베게를 베야하는 상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멀리 나와 주니 어찌 감동하지 않으랴.
4일 맑았다. 청산리 벗 정사칭이 엎어져 넘어지며 달려와 보면서 해가 다하도록 즐겁고 흡족해 하였다. 마을의 친척들과 더불어 법장리의 집안사람들과 가까운 마을의 대소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얼굴에 웃음을 띄었다.
5일 맑았다. 사람들이 어제처럼 모여들었다. 고질병인 냉병이 걸려 대변이 잦아졌다. 매우 고통스러웠다.
6일 맑았다. 조정에서 본읍의 모자라는 환곡 6-7부를 감해주었다. 향리의 오랜 벗들이 날이면 날마다 찾아와 응접하느라 한가할 겨를이 없다. 피곤하고 괴로움을 이길 수 없다.
7일 맑았다. 문산의 제부 권중익씨가 병중임에도 불구 찾아와 보았다. 멀고 가까이에서 찾아오는 사람을 다 쓸 수 없다.
8일 맑았다. 친척과 오랜 벗으로서 와 위로하며 머무르는 자가 더욱 많아 응접할 수가 없다.
9일 맑았다. 오늘은 구구절 아름다운 절후다. 사방의 친지들이 술과 안주를 가지고와 술잔치를 벌여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도연히 취해 엎어지고 넘어지면서 고향의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10일 진주 설산리의 벗 강근여(자 묵)가 와 보았다 악수를 하고 꽤 오랫동안 이야기하다 갔다. 서울 관광을 갔던 이들이 와 보았다. 석양에 익중씨가 법장리를 향해 갔다.
11일 맑았다. 고향사람들이 찾아와 인사하는 자가 많아 다 쓸 수가 없다. 여러차례 변을 보았는데 혈변이었다. 매우 고통스러웠다.
12일 맑았다. 시골 마을 사람들과 원근의 오랜 벗들이 모여들어 종일 술잔치를 벌였다. 내평리 교리 이치백(명윤)의 장례가 17일 치러진다고 심부름꾼이 알려왔다. 진실로 묘앞에서 영별하게 되었다. 그러나 병때문에 참석치 못하게 되어 다만 시 일률로써 마음을 전한다.
#길흉화복이 돌고돌아 산의 남향 양지바른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꿈속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바라보니 저기 푸른 청산입니다. 앞서 홀로 염천의 바다에서 초혼을 하였습니다. 장기서리 바닷가에서 뼈를 거두었다하더라도 여한이 없었을 것입니다. 죽은다 하더라도 시끄럽게 이런저런 말을 하겠습니까. 정녕 같이 지내기를 바랐었는데 큰 은혜로 내가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있었으니 어찌 한스럽다 하겠습니다. 누구와 더불어 앞으로 같이 갈까를 생각하니 슬픔이 가슴에 가득 차오릅니다.
13일 비가 밤이 될 때까지 내렸다.
14일 흐렸다. 저녁 후 가끔 비가 내리다가 그쳤다. 다투어 술과 안주를 가지고 와 주는 사람들이 시장통과 같았다. 집과 방을 수리했다.
15일 맑았다. 달노를 덕산에 보냈다.
16일 맑았다. 말을 빌려 율봉에 갔다. 혈변이 심하게 나왔다. 그래서 술을 끊었다.
17일 맑았다. 술을 먹지않은 효과가 조금 있었다. 혈변이 냉증 사이로 점점 적어지는 차도가 있다. 저녁식사를 하며 배추를 많이 먹었다. 밤에 냉증이 다시 도졌다. 비록 몸이 건강하고 탈이 없을 때라도 섭생에 신경써야 하는데 하물며 이 늙고 쇠약해가며 신음을 할 때야 말할 필요가 없다. 옛말에 말하기를 음식을 가려 먹고 먹고 사는 것을 가난하게 하면 반대로 몸에 좋다는 말이 나를 일컫는 말이다.
18일 맑았다. 집안 손자 하나가 서울에 올라가 구경을 하고 내려와 뵈러 오며 술을 가지고 왔다. 아! 조실부모하고 혈혈단신 외로운데도 문득 장부로 성장하여 서울과 나라구경을 능히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기특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자기의 아버지와 흡사하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람이 자식을 두고 죽으면 죽어도 죽지 않았다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니다.
19일 흐렸다. 사형과 영언이 서울에 가다가 안동으로 향해 평상리 정재어른의 상설지연에 조문을 표하고 어제 돌아왔는데 오는 편으로 류중거(치임)의 편지를 받았다.
20일 맑았다.
21일 흐렸다.
22일 낮에 구름이 잔뜩 끼고 밤에 가는 비가 내렸다.
23일 가끔 흐리다가 가끔 비가 왔다.
24일 구름이 잔뜩 끼고 가끔 비가 내렸다. 사형과 영언이 와 이야기하였다. 석양에 영언은 올라갔다. 사형은 나와 함께 머무르며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25일 사형이 올라갔다.
26일 맑았다.
27일 맑았다. 아들 정언 김인섭이 정재 어른에게 곡을 하기 위하여 안동으로 출발했다. 추도하는 만장의 글과 제문을 엮어 아들 정언 김인섭으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했다. 또 류중거의 편지에 대한 답장을 써 주었다. (만장과 제문은 생략)
거동에 가 여러 친척들을 보았다. 저녁에 법장에서 묵었다.
28일 가끔 비가 내리다 그쳤다. 온종일 맑지 않았다. 저녁 먼 산에 눈이 내렸다. 청산리 벗 정사칭의 집에 갔는데 만류하여 머물렀다. 내가 살아 돌아온 것을 축하하며 닭을 잡고 개를 끓여 큰 잔치를 벌였는데 매우 흡족하였으니 정의가 매우 좋다하겠다.
29일 맑고 추웠다. 눈바람이 불었다. 아침 식사 후 집으로 돌아왔다. 산청 김익수, 함양의 백석, 정선비(동계 뒤), 산청 이소년, 진주 북창의 천재사가 찾아왔다 갔다.
10월
1일 갑술. 맑았다. 수산의 윤중서(각)와 그 집안사람들, 모례리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내방하였다. 연초와 술값으로 뜻을 전하고 갔다. 낮에 아들 정언이 평구에 있으면서 보내 온 서각을 받아 보았다. 또 벗 정운지(동한)의 편지를 보았는데 바로 답을 해주었다.
2일 맑았다.
3일 맑았다. 친척 조카 권성준(병로)이 과거에 급제하였다. 오늘 집에 돌아와 도문연 잔치를 베풀었다. 가까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잔치를 즐겼다. 윤길(극첨) 역시 상법에서 와 즐겁게 이야기하였다.
4일 맑았다. 벗 한빈 심통서(이삼)가 내방하여 악수하고 이야기를 하고 갔다. 인동 약목의 신성순(성응)이 와보았다. 저녁식사 후 이틀 밤을 지낸 집(박강령 옛집)에 가서 사의를 표했다.
5일 흐렸다. 저녁에 가는 비가 가금 내리다가 멈췄다. 식후에 정태 류학준이 서울에서 와 내방했다. 서울 돌아가는 소식의 대강을 자세히 들었다. 굳이 덕칭의 숙소를 가자고 해 함께 손을 잡고 그곳에 가 술을 통음한 다음 벗 권상유(정립)를 찾아갔다. 또 그의 큰 형 진(정엄)씨와 헤어졌다.
6일 낮에는 흐리고 밤에는 가는 비가 내리다가 그쳤다. 설산(의령의 작은 지명) 안경안(찬, 기해생, 본 강진)이 내방했다. 이 사람은 뜻이 있고 덕을 좋아하고 현명함을 좋아하며 빼어나기가 범속함을 뛰어넘었을 뿐 아니라 매우 끈기가 있어 항상 한번 만나보기를 원했었다. 보자말자 바로 돌아서 이별하게 되니 매우 서운하였다. 저녁 식사 후 장차 밤을 머무를 곳을 가려하니 마을의 여러벗들과 함께 함께 완계의 모임에 갔다 하여 망연히 돌아왔다.
7일 구름이 잔뜩 끼고 가끔 가는 비가 내리락 그치락 했다. 경안이에게 평소의 생각을 간략히 말한 시 일률을 편지로 보냈다.
#거친 것을 싸두고 버리지 않으니 병들고 미친 것 같은 몸입니다. 옷깃으로 감싸 따뜻한 봄철임을 살펴 알 수 있습니다. 사물과 더불어 함께 인을 이루니 훌륭한 선비라 칭하겠고 재물을 멀리하고 의리에 의지하니 바로 고인이라 하겠습니다. 앞장 섬을 추천하고 뒤에 처짐을 뒤로하니 훌륭하다 하겠습니다. 어쩌다 만나 바로 헤어지니 고통스럽습니다. 텅빈 계곡에 꼴이 자라니 함께 옥과 같다 하겠습니다. 어찌 완계의 물가가 막겠습니까.
낮에 경안이 다시 와 작별을 고하고 갔다. 석양에 진사 권학노(헌정)가 내방하여 즐겁게 이야기 하였다.
8일 맑았다. 학로가 내려갔다.
9일 맑았다. 윤길이 와 이야기하다가 갔다.
10일 맑았다. 보리씨를 뿌렸다. 약목리 신성순(명 성응)이 내방하였다. 밤에 강령댁에 가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작별했다.
11일 맑았다. 설매곡(진동리의 이름)에 사는 강장서가 밤에 내방하여 즐겁게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울재에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12일 맑았다. 장서가 청산리를 향해갔다.
13일 맑았다. 평구에 사는 선비 정응로가 왔다. 오후 응로가 내당리를 향해 갔는데 명언의 상에 조문하기 위함이다. 저녁 식사후 달빛을 타고 거동 능진의 집에 가 잤다.
14일 맑았다. 아침 식사 전 청산리에 가 사칭 형제를 방문하고 돌아오며 치일이의 집에 갔다. 닭을 잡고 밥을 지어 바치는 뜻이 깊고도 중했다. 낮에 계곡 가 오두막에 돌아왔다. 약목리 선비 신씨가 찾아왔다.
15일 맑았다.
16일 맑았다.
17일 맑았다. 친척 박유길(규상)씨가 장례 치르는 곳(계모상을 당함)에 가서 조문하고 참여하였다. 평구에게 편지를 보냈다.
18일 맑았다. 친척 하윤오에게 찾아와 만나 보았다. 석양에 내길씨 댁에 가서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함께 더불어 꽤 오래 이야기를 즐겼다. 저물 무렵 집에 돌아왔다.
19일 맑았다. 평구의 답서를 보았다. 복원이가 대구에 갔다가 돌아왔다. 석양 무렵 청산사는 영로와 정동옥이가 찾아왔다가 어둠이 임박해 함께 출발했다. 재암 고영로는 청산으로 갔다. 나는 거동 능진에게 가 구인교에서 재초의 자부를 보았다. 벗 권천로(헌)의 집에서 술을 통음하고 식사를 하지 않았다.
20일 맑았다. 박덕첨의 집을 지나가다가 술그릇머리에 앉아 여러 잔을 같이 나누었다. 사칭의 숙소에 이르러 다시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고 웃었다. 석양에 거동에 다시 돌아가 윤겸과 여러 친구들이 함께 모여 술을 마셨다. 어둠을 타고 가술촌을 향해가 심무량에 이르렀다. 삽현에 이르러 내를 건너 덕지에 투숙하려 했으나 덕지가 없었다. 대신 그의 아들과 어머니가 있어 넘어지고 엎어질 듯 뛰어나와 기뻐하며 환영하였다. 앉아서 이야기하는데 닭을 잡아 정성스럽게 접대하였다.
21일 맑았다. 아침 일찍이 계려에 내려왔다. 저녁에 정언이 돌아왔다.
22일 맑았다. 어두울 무렵 성촌에 사는 벗 권영서(병린)이 와 이야기하며 함께 잤다.
23일 맑았다. 새벽에 돌아가신 형의 제사에 갔다.
24일 맑았다.
25일 맑았다. 청산 칠대조 할머니 안씨의 묘사에 가 참석하였다. 어둠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 승산리 허중후가 찾아왔다.
26일 맑았다. 식사 후 고조할아버지의 묘사에 참석하려하였으나 청산에 이르러 어려움이 있어 아들이 대신 갔다. 석양에 집에 돌아왔다.
27일 비가 밤부터 내리더니 아침 식사 후 멈추었다. 평구 정응로(욱민)에게 답서를 보냈다.
28일 맑았다. 아침 식사 후 정언과 더불어 법장리 호동의 증왕할머니의 묘사에 갔다. 석양에 중방동의 왕할아버지의 묘사에 갔다.날이 이미 어두워 이교촌 묘지기의 집에 이르러 횃불을 들고 가교를 건너는데 비가 내렸다. 비를 무릅쓰고 재종형의 집에 가 밤을 보냈다.
29일 비가 갰다. 운룡에 가 할머니 와 큰 할아버지 할머니 묘사를 지냈다. 어둠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 평구 정운지(동한)가 왔다. 흔연히 악수하고 밤을 새며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30일 바람이 찼다. 벗 운지와 함께 거동 능진의 집에 갔다. 능진에게는 서출의 딸이 있었는데 벗 운지가 자신의 서출 아들을 천거하며 구혼을 하는 것이었다. 웃으며 이야기하며 날을 보내다가 해가 저물어 능진의 집에 머물러 잤다.
11월
1일 갑진. 바람이 차고 작은 눈이 내렸다. 낮에 운지를 보내고 청산리로 가 사칭의 숙소에서 잤다.
2일 바람이 불다가 또 눈이 내리다가 했다. 해저물 무렵 법장리에 가 사형의 숙소에서 잤다.
3일 맑고 추웠다. 저녁에 내당리 명언의 상가집에서 잤다. 평구의 정노인과 좌산의 이모와 함께 잤다.
4일 바람이 추웠다. 아침 식사 후 내려와 사칭의 집으로 갔다. 술을 덥혀 마셔 추위를 막았다. 석양에 계려로 돌아왔다.
5일 바람이 추웠다. 아침에 문정동(진주의 서쪽 작은 지명) 성애(죽은 벗 술여의 아들)가 상복차림에 흰 관을 쓰고 찾아왔다. 무릇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의 아버지와 동갑에다가 같은 환난을 겪었다. 나를 보더니 나는 생환하였는데 그의 아버지는 그러지 못했다며 피눈물을 줄줄 흘렸다. 내 마음을 두들기는 것처럼 마음이 아파 참기 어려웠고 무어라 말 할 수도 없었다.
6일 바람이 추웠다. 아침 식사 후 정언과 함께 법장리 제학공 묘소 사초하는 것을 보고 저물 무렵 평촌리로 내려왔다. 정언은 계사로 돌아가고 나는 사형의 숙소에 투숙했다.
7일 맑았다. 아침에 주언의 집에 가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었다. 둘째 자부 신부례가 모레가 아닌가.
저녁에 인동의 찬보의 상가에 가서 잤다.
8일 맑았다. 아침 식사 후 청산리에 갔다. 사칭의 막내 형과 함께 담소하며 날을 보냈다. 석양에 법장리에 올라가 사형의 숙소에서 잤다.
9일 맑았다. 성주동 할머님의 묘 사초를 하였다. 저녁에 사형의 숙소에서 잤다.
10일 맑았다. 정언이 벽계 강세룡을 불러 물레방아를 고쳤다. 나는 사형과 더불어 함께 청산리 사칭의 집에 가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일성의 집에 갔다. 일성이 가 그 아버지를 모셔왔는데 평구 벗 운지의 편지를 보여주었다. 혼약을 물리친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대취하여 법장리로 도로 올라가 달경의 집에서 잤다.
11일 찬바람이 불었다. 계려로 돌아왔다.
12일 매우 추웠다. 아침에 동지 차례에 갔다.
13일 추웠다.
14일 새벽에 할머니 의성김씨 제사에 갔다.
15일 추웠다. 정언과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법장리에 올라가 고기 큰어머니의 묘사에 갔다. 그리고 윤룡동으로 가 형님 내외 묘사를 지냈다. 날이 저물 무렵 법장리로 돌아왔다. 분한 일이 있어 옷을 떨치고 일어서 왔다. 달을 타고 작산 집안 조카집을 들렀다. 광진이 탁주 한 병을 권해 잔을 들어 마셨다. 그리고 사칭의 집에 가 쓰러져 잤다.
16일 맑았다. 이른 아침 주인이 술을 권해 통음한 숙취를 풀었다. 아침 식사 후 주막을 지나가다가 명언의 애족 성두를 만났다. 술을 사 힘써 권하니 연속해서 석잔을 마셨다. 그리고 거동에 가 치화의 집안동생 아들의 혼인이 좋게 이루어진 것을 축하하였다. 석양에 집에 돌아왔다.
18일 자유가 돌아왔다.
19일 맑았다.
22일 맑았다. 석양에 정언이 자유와 함께 법장리에 갔다.
23일 맑았다.
24일 맑고 추웠다.
25일 아침 일찍이 거동에 갔다. 자유는 족질 찬숙의 숙소에 가서 이틀째 묵었다. 찬숙의 집이 6촌 누이의 집이다. 자유와 더불어 종일 글을 썼다. 저녁 식사후 청산리 사칭의 집에 가서 잤다.
26일 또 거동에 가 자유와 더불어 글을 쓰고 더불어 잤다.
27일 바람이 매우 찼다. 아침 식사 후 자유와 더불어 사의 숙소에 갔다. 술을 덥혀마 셔 추위를 막았다. 자유가 머무르라며 만류하였으나 나는 작산 수약소에 가서 잤다.
28일 날이 매우 추웠다. 청산리에 돌아오니 손님과 벗들이 자리에 가득 앉아 술자리가 바야흐로 돌연 무르익고 있었다. 주인의 넷째아들이 신행을 갔다가 오며 가져온 음식을 싫컷 먹었다. 그리고 자유와 헤어져 저녁에 사영의 숙소에 가 잤다.
29일 일기가 점차 풀렸다. 오후 계사로 돌아왔다. 치화가 와 잤다.
12월
1일 계유. 날씨가 온화하였다. 지난 밤 의관도적이 들어왔다가 새벽에 나갔음을 날이 밝고서야 알게 되었다.
치화의 주모니 속 이십오엽을 뒤져 훔쳐 갔다. 나 역시 옷을 들어 띠를 찾아보니 띠가 없었다. 잃어버렸음을 알고 아들 정언의 띠로 메려고 정언의 띠를 뒤져 보았으나 정언의 띠도 없었다. 비단 띠만 없어진 것이 아니라 부채와 담비가죽도 모두 없었다. 갓을 쓰려고 보니 그것 역시 헤진 것이었다. 물건을 읽어버린 것은 또 그렇다 하더라도 담비 가죽은 좋은 것이어서 매우 애석하였다. 낮에 치화와 함께 청산 강생원의 집에 내려가 술을 마셨다. 사칭이 와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자리를 파하였다. 그리고 치화와 함께 직정에 도착하여 술을 덥혀 먹어 추위를 막고 취한 김에 사칭의 숙소에 와 쓰러져 잤다.
2일 따뜻하였다. 아침 식사 후 계사에 돌아왔다. 석양에 염계에 가서 덕칭의 둘째아들이 원통하게 죽은 것을 조문하고 함께 상유(문정)의 숙소에 도착하니 친척 박내길씨도 와 있었다. 네 늙은이가 대오를 지어 두곡리 벗 권형지(재성)에게 갔는데 이는 산청 부우소에서 돌아오게 되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저녁 해가 산에 걸려 지팡이를 의지하여 돌아오다가 잠시 원겸의 숙소에 들렀는데 만류함이 매우 심하여 저녁식사 이후 원당에서 만나기를 약속하였다. 내길과 상유가 먼저 가고 나는 덕첨과 함께 강당에 갔는데 강당에는 경륜있는 선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잠시 후 술과 밥이 나왔다. 이때 한 사람이 좌중에 있었는데 스스로 인동 장씨라 하였다. 모습이 심이 교만하고 말을 가로 질러 해 마음이 불편하였다. 덕칭과 불을 들고 원겸의 집으로 가 잤다.
3일 따뜻했다. 아침 식사 후 바야흐로 돌아오는데 권화일(채성)이 그의 집으로 끌고 가 미주를 권해 목을 축였다. 마음이 흡족하였다. 석양에 돌아오다가 들에서 덕칭과 헤어졌다. 귀로에 내길씨를 방문하고 또 형숙씨를 방문하였는데 만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친척 박맹원(호현)이 자리에 있다가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갔다. 저녁 식사 후 형숙씨 숙소에 가 고향 사람들이 재상 정원용의 생사당을 급거 건축하는 문제가 잘못된 것이 아닌지를 의론하였다.
4일 맑고 따뜻했다. 아침 식사 후 형숙의 숙소에 갔다. 가까운 곳 친척들과 오랜벗들 이러저러한 사람들이 함께 도천 수계에 보내는 통문을 만들었는데 정원용 재상의 은덕을 갚기 위해 생사당을 짓자는 것을 건의하는 것이었다. 아들 정언 김인섭이 다리에 힘이 없어 걷기가 곤란한 각연증이 재발하여 신음하였다. 상산 김씨 집안 사람 두 사람이 와 옛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백대의 돈독한 우의를 깨달았다. 산청은 노인 안씨가 내방하였는데 집안의 번거로움으로 응접이 어려워 형숙씨 산방에서 만날 것을 약조하였다. 저녁 식사 후 잠시 만났다. 저녁에 정언의 다리 통증에 빈소산을 달여 구완하였다.
5일 아침에 가는 비가 내리더니 가끔 뿌려대다가 낮에 그쳤다. 정언의 아픈 증상이 차도가 있었다. 오후에 종인들과 함께 법장리에 가 잤다.
6일 맑았다. 아침 식사 후 종인과 헤어지고 계사에 돌아왔다. 정언의 다리 통증이 차도가 있어 너무너무 기쁘다. 6-7인과 함께 도천의 모임에 갔다. 지나가다가 진태희 박한지 집을 들렀다. 신계원에 들어가니 벗 박취지(정식)와 극첨 양인이 넘어질 듯 달려나와 영접하였다. 술을 사 오래토록 마시다가 도연히 취하였다. 취해 도천에 이르니 시간이 촉박하였다. 바람이 차 모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술에 취해 쓰러져 밤을 보냈다.
7일 큰바람이 불고 추웠다. 고립무원이었다. 같은 마음으로 뜻을 모은 사람 태반이 불참하였다. 그 중에 형숙씨가 있었는데 형숙씨는 맨 먼저 논의를 시작한 사람이다. 나그네 들은 있었으나 누가 나와 더불어 같이 의론을 모아주지 않았다. 우물우물하며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자리가 파하였다. 해는 이미 석양이 되었다. 추위가 살을 찌르고 삭풍이 불어 어렵사리 비진점에 도착하였다. 술을 덥혀 추위를 막았다.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 다시 신계원에 이르니 박문서가 먼저 와있었다. 즐겁게 이야기하며 같이 잤다.
8일 또 추웠으나 바람은 조금 잤다. 아침 식사 후 여러 벗들과 함께 문태점에 이르러 멀리 바라보니 어떤 사람이 말을 타고 오고 있었다. 앞으로 와 당도하니 바로 형숙씨였다. 말에서 내려 손을 잡으니 말하기를 모임을 경솔히 끝내다니 어찌 상대하겠느냐 운운하였다. 나는 일이 되어가던 중요한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손을 잡고 돌아 왔다.
9일 날씨가 점차 풀렸다. 형숙씨가 문서와 더불어 도천에 생사당을 짓기로 합의하고 읍저 조영소에 통문을 돌렸다. 안사람이 손가락 끝에 나는 독한 부스럼으로 여러 날을 매우 아프고 괴로워해 의사를 불러 치료하게 했다. 산청 부곡 집안사람 윤첨이 왔다. 산청 압동의 조카 사위 권서방이 왔다.
10일 맑고 따뜻했다. 권서방을 보냈다.
11일 흐렸다. 윤첨을 보냈다. 곤양 진사 조화용이 내방했다. 정언이 지내촌에 가서 개를 사왔다. 그 병든 어미를 공양하기 위함이다.
12일 따뜻하다. 주서 류오명(기현)이 좌도로부터 찾아왔다. 장천 황적복의 제수에게 효열장을 만들어 주었다.
13일 맑았다. 대한이다. 매우 따뜻했다.
14일 맑았다. 매우 따뜻했다. 의령 전태의 선비 강씨와 진주 승산의 허화서가 내방했다.
15일 맑고 따뜻했다. 아침 식사 전 지내에 가서 집안 동생 사근(이우)의 숙소에서 식사를 하고 바로 돌아왔다. 이내윤(상석)과 유학준(태현) 이 친척 박형숙씨의 집에 모여 재상 정원용의 사당짓는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석양에 내려갔다.
16일 맑고 따뜻했다. 정언이 법장리에 갔다가 돌아왔다. 석양에 덕칭 형숙씨가 와 이야기하다가 갔다.
17일 비가 자시부터 왔다. 백모님 양천허씨의 제사에 갔다. 임금이 붕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왕실을 생각해보니 스스로 눈물 흘림을 금치 못하겠다.
18일 흐렸다.
19일 비가 내리다가 눈이 내리다가 했다. 시장을 문전으로 옮겨 매우 시끄러웠다.
20일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아침에 일가붙이 양원(정선)씨의 소상에 가 위로했다. 임금의 붕어를 슬퍼하며 계신 곳을 향해 곡을 했다. 정언은 성복을 하고 객사에 마련된 관리의 반열에 참여하여 망곡을 하였다. 저녁에 큰 바람이 불었다.
21일 큰바람이 불고 추웠다.
22일 바람이 점차 자고 추위가 조금 풀렸다. 아침 식사 후 거동에 가 치일이를 보고 활쏘는 정자를 지나치다가 술을 마셨다. 청산리 사칭이의 숙소에 가 술에 취해 밤을 보내다가 닭이 운 후 사칭이 순주 한 대접을 주어 마셔 숙취를 풀었다.
23일 맑았다. 아침 식사 후 사칭이 메밀로 국수를 만들어 주었으나 주독이 풀리지 않았다. 낮에 법장리에 가 노인이 증손부를 맞이하게 된 것을 축하해 주었다. 손주 며느리의 집에서 보내온 노주를 권해 여러 잔을 마셨다. 술에 취해 윤서의 집에서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잤다. 술이 깨자 사즉씨의 집에 가 또 며느리를 맞이하게 된 것을 축하하고 두 대접의 술을 마시고 취해서 잤다.
24일 맑았다. 아침 식사 후 청산리 사칭의 집에 들러 쓰러져 누워 시간을 보내다가 정신이 들자 돌아왔다.
25일 맑았다. 산성아래에 사는 벗 이성백(범)이 내방하였다.
26일 맑았다.
27일 맑았다. 이른 아침 가술리에 가 집안 동생 리를 보려 했는데 삽현으로 새로 이사를 갔다. 집안 조카 덕희 아버지의 상을 문상하고 또 이호씨의 어린 고아와 과부가 된 첩을 위문하였다. 바로 거동으로 향하여 치일이와 능진을 보고 활쏘는 정자에 들어가 몇 잔의 술을 마셨다. 그리고 작산으로 향해 복원 형제를 보고 법장리 재종형 집에 들어가 취해 잤다.
28일 맑았다. 저물 무렵 사칭의 집에 가 잤다.
29일 맑았다. 이른 아침 계사로 돌아왔다.
30일 맑았다. 아침 식사 후 형숙씨의 숙소에 가니 학동에 나갔다고 한다. 지팡이를 돌리려 하니 그의 아들 대예가 술을 권해 큰 접시로 한잔을 마셨다. 돌아오는 길에 하중서가 봉혜의 집에 머물고 있다하였다. 봉혜의 집을 들러 흔연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종일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였다. 좋은 섣달 그믐날 하룻밤이었다. 자시 이후 돌아왔다.
//1863년 섣달 그믐날인 이 날의 기록을 마지막으로 간정일록이 끝난다.
김령은 약 6개월 후인 1864년 7월 2일 사망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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