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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누나 지난 그 옛날 / 記得昔年日

VIS VITALIS 2016. 4. 6. 20:47
고산유고 제1권원문  원문이미지  새창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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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1615, 광해군7) 섣달에 남양 백부의 구택에 갔다가 감회에 젖어서 율시 두 수를 읊고, 또 왕년의 일을 추억하는 시 세 수를 지었다〔乙卯臘月往南陽伯父舊宅有感吟二律又賦記得昔年日三章〕

파촌의 옛집에 이르렀나니 / 來到琶村舍
백부님 백모님이 예전에 사시던 곳 / 爺孃舊所居
부엌에는 술 거르던 곳 그대로 있고 / 廚存羃酒處
벽에는 하인들 일과표가 붙어 있네 / 壁有課奴書
고복해 주시던 모습 뵐 것 같은데 / 顧復如將見
첨의하려 해도 끝내 허사로세 / 瞻依竟是虛
울면 부녀자와 같은 줄 알면서도 / 曾知泣近婦
나도 모르게 눈물이 옷을 적시누나 / 不覺淚盈裾

옛날 우리 선부자께서 / 昔我先夫子
집을 옮겨 바닷가로 가셨는데 / 移家到海濱
평소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시어 / 尋常成好事
여덟아홉의 선린(善隣)이 있었다오 / 八九有芳隣
상재는 죄다 예전과 똑같은데 / 桑梓渾依舊
송추는 모두가 새로 심은 것들 / 松楸總已新
어찌 차마 들으리오 우리 경로가 / 那堪聞慶老
또 야대의 사람이 되었다는 말을 / 復作夜臺人

생각나누나 지난 그 옛날 / 記得昔年日
내가 언젠가 밖에서 돌아오자 / 兒嘗自外來
국에 간 맞추느라 자모는 바쁘셨고 / 調羹慈母急
밥 얼른 하라고 대인은 재촉하셨지 / 炊飯大人催

생각나누나 지난 그 옛날 / 記得昔年日
내가 언젠가 밖에서 돌아오자 / 兒嘗自外歸
대인은 얼마나 춥냐고 물어보셨고 / 大人問寒燠
자모는 새 옷을 내어 입혀 주셨지 / 慈母與新衣

생각나누나 지난 그 옛날 / 記得昔年日
내가 언젠가 밖에서 돌아와서는 / 兒嘗自外還
환희하며 가경을 마치고 나서 / 怡怡家慶畢
북당에서 어머님 모시고 앉았었지 / 侍坐北堂間


[주D-001]파촌(琶村) : 비파촌(琵琶村)이 아닌가 한다. 《고산유고》 제1권 〈남쪽으로 돌아갈 때의 기행시〔南歸記行〕〉에 “비파(琵琶)는 마을 이름〔村名〕이다.”라는 자주(自註)가 붙어 있다.
[주D-002]고복(顧復) : 고아복아(顧我復我) 즉 ‘나를 돌아보고 나를 다시 살폈다’는 뜻으로, 자신을 보살펴 준 어버이의 은혜를 말한다. 《시경》 〈육아(蓼莪)〉에 “아버지는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는 나를 기르셨다. 나를 다독이시고 나를 기르시며, 나를 자라게 하고 나를 키우시며, 나를 돌아보시고 나를 다시 살피시며, 출입할 땐 나를 배에 안으셨다. 이 은혜를 갚으려면 하늘이라 한량이 없도다.〔父兮生我 母兮鞠我 拊我畜我 長我育我 顧我復我 出入腹我 欲報之德 昊天罔極〕”라는 말이 나온다. 참고로 고산은 8세 때인 1594년(선조27)에 백부(伯父)인 관찰공(觀察公) 윤유기(尹惟幾)의 양자(養子)로 들어갔다.
[주D-003]첨의(瞻依) : 어버이를 항상 바라보고 의지하며 사모한다는 말인데, 《시경》 〈소반(小弁)〉의 “눈에 뜨이느니 아버님이요, 마음에 그리느니 어머님일세.〔靡瞻匪父 靡依匪母〕”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D-004]상재(桑梓) : 뽕나무와 가래나무로, 고향의 구택(舊宅) 혹은 고향에 심은 나무를 뜻한다. 《시경》 〈소반(小弁)〉의 “어버이가 심어 놓으신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반드시 공경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하물며 우러러볼 분으로는 아버지 말고 다른 사람이 없으며, 의지할 분으로는 어머니 말고 다른 사람이 없는 데야 더 말해 뭐하겠는가.〔維桑與梓 必恭敬止 靡瞻匪父 靡依匪母〕”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D-005]송추(松楸) : 소나무와 가래나무라는 뜻으로, 묘소 혹은 선영(先塋)의 별칭으로 쓰인다. 그곳에 이 두 나무를 많이 심었던 데에서 기인한다.
[주D-006]야대(夜臺) : 장야대(長夜臺)의 준말로, 분묘(墳墓)를 가리킨다. 한번 문이 닫히면 영원히 암흑 속에서 광명을 볼 수 없다는 뜻으로 붙여진 시어(詩語)이다.
[주D-007]가경(家慶) : 배가경(拜家慶)의 준말로,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서 어버이를 뵙고 문안 인사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주D-008]북당(北堂) : 모친의 거처를 뜻한다. 훤당(萱堂)이라고도 한다. 《시경》 〈백혜(伯兮)〉의 “어떡하면 훤초를 얻어서 북당에 심어 볼까. 떠난 사람 생각에 내 마음만 병드누나.〔焉得諼草 言樹之背 願言思伯 使我心痗〕”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이 시는 출정한 남편을 걱정하는 아내의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훤초(諼草)는 원추리라는 망우초(忘憂草)로, 훤초(萱草)라고도 한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