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쪽
화엄적 입장에서 공과 유라는 서로 상반되는 개념의 통합을 추구하고
10쪽
회편자 명안은 그의 「후서後序」에서 말하기를, ?약소?의 입장이 종래의 다른 견해와는 달라서 부우는 자들 중에 의문을 품는 자들이 있었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법장은 간략한 소문(略疏) 안에 거시적 관점을 압축적 언어로 응축시켰기 때문이다. 이에 사회의 ?연주기?는 배우는 자의 의문을 해소해 주기 위하여 방대한 전거를 제시하고 치밀한 해석을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17쪽 목차
(ㄱ) 법상개합문法相開合門
39쪽
아래의 기문記文에서 “이유를 말하는 것이다(以言由也)”라고 설명한 것에서 미루어 볼 때, “참된 근원은 흠 없이 드러나 자기 성품을 유지하니(眞源素範)”의 구절이 불교논리학에서 말하는 ‘종宗’에 해당하고, “깊고도 넓어 감각이나 사유의 그물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沖漠隔於筌罤)”의 구절은 ‘인因’에 해당한다.
40쪽
징관의 ?정원신역화엄경소? 권1(X5, 49c), “진실로 중생들은 성품에 지혜의 바다를 머금어 참된 공을 통찰하지만 옷 속에 감춰진 검은 구슬이고 집안에 묻힌 비밀 창고이어서 허망한 번뇌가 대상에 따라 변하면 본바탕(體)도 모습(相)을 따라 변한다. 북치듯이 참된 근원을 울리면 넓고 넓어 끝이 없다.(良以衆生。性含智海。識洞眞空。衣蔽玄珠。室埋祕藏。而妄隨境變。體逐相遷。鼓擊眞源浩蕩無際。)”가 더 자세하다.
49쪽
“무릇 깊은 기강에 상대가 끊어져 있음은 진속이 모두 융합되기 때문이고, 흠 없이 드러나 자기 성품을 유지하여 망정을 넘어섬은 공과 유가 여기에서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性空은 일찍이 유가 아닌 적이 없으므로 유에 상즉하여 공을 변론하는 것이고, 환유幻有는 애초부터 공이 아닌 적이 없으므로 공에 상즉하여 유를 밝히는 것이다. 유인 공은 유이므로 유가 아니고 공인 유는 공이므로 공이 아니다. 극단적 견해에 대한 집착이 없어진 마당에 듣고 보는 것도 따라서 사라진다. 그릇됨의 원천이 의지하고 있는 바를 고갈시키면 네 가지 집착은 구름처럼 흩어지고, 올바른 진리가 이지러짐 없이 깨어나면 이제二諦는 여기서 제자리를 잡는다.(夫以玄綱絕待。真俗所以俱融。素範超情。空有以茲雙泯。但以性空未嘗不有。即有以辨於空。幻有未始不空。即空以明於有。有空有故不有。空有空故不空。邊執既亡。聞見隨喪。竭邪源之有寄。則四執雲銷。挺正法之無虧。則二諦斯在。)”
60쪽
?화엄경수소연의초?에서 꼭 일치하는 문장은 찾을 수 없다. 다만 ?화엄경수소연의초? 권32(T36, 242b)에서 “강공이 말하기를 ‘만법은 진眞이 아니기 때문에 공이다’라고 했다. 이는 승조의 뜻을 얻지 못한 것이다.(康公云。萬法不眞故空。不得肇意。)”라고 했는데 ‘강공’을 당대의 삼론학자 원강元康이라고 보면 이 문장을 취의요약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73쪽
범어로 anuṣṭubha라고 한다. 1구에 8음절로 되어 있는 구절이 4구 모여서 32음절로 이루어진 게송을 말한다. 범어의 운율 중에 가장 많이 쓰이는 형식이라 할 수 있다.
86쪽
법장은 ‘겸하여 보살의 의심을 풀어냄’(兼釋菩薩疑)의 대목에서 ?보성론?에 의거하여 소보살의 의심을 세 가지로 나눈다.
“삼론을 통틀어 변론하자면 이제중도를 종취로 삼는다.”
93쪽
계율을 지키게 되는 상황과 어긋나게 되는 상황을
94쪽
或一切皆無。唯除佛一人
“일체가 모두 무이지만 불타 한 사람은 제외된다고 하기도 하고, 소승에서 설명하는 경우는 일체가 모두 유이지만 풀이나 나무 등은 제외된다는 것이고 종교에서 설명하는 경우는 유이기도 하고 무이기도 하다는 것이고, 시교에서 설명하는 경우는 한 부분이라도 자성이 없으므로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라는 것이고, 돈교에서 설명하는 경우는 (앞의) 개념들을 벗어나므로 (오히려) 앞의 네 경우를 갖춘다는 것이고, 일승교에서 설명하는 경우는 원인에 나아가 과보를 구비하므로 세 가지 세간을 소통시킨다는 것이고, 원교에서 설명하는 경우는 여타의 것에 준하여 알 만 하다.”
95쪽
“비록 두 가지 다른 앞의 것을 없앤다면 이라는 것에서 셋째는 곧 종교이고 넷째는 곧 돈교이니, 이 두 가르침이 함께 일승교를 밝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가지를 없애면 앞(의 한 가지 것)과 다른 시교가 삼승을 보존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비록이라 한 것은 비록 일승이 삼승에 대하여 드러난 것이기 때문에 앞의 두 가르침과 같음을 밝힌 것이긴 하더라도 또한 변화된 법수로 들어간 것이기도 한즉 앞의 네 가지 가르침은 모두 변화되어 거두어졌다는 것이다. 마지막 하나의 가르침이야말로 바로 평등의 도리이다.”
“혹 정토에 산다면 15가지 본경을 설하고, 혹 사바세계를 보응한다면 12가지 분교를 담론한다.”
105쪽
‘金漢世~母一眞’을 ?한불전?에서는 ‘爲母一眞。金漢世。金漢儀’라고 했지만, 이는 저본을 잘못 옮긴 것이므로, 저본에 의거하여, 본문을 교감했다.
113
‘補盧殺娑’는 ‘puruṣasya’의 음차어이다.
‘의주석’은 산스크리트 tat puruṣa의 한역이다. puruṣa의 음차어를 취하여 ‘의주석’을
‘의사석依士釋’이라고도 말한다. 의주석으로 ‘반야심경’을 해석하면, ‘반야의 심경’이라는 뜻이 된다.
anuṣṭubhaāĀryāvalokiteśvara
?? √ √
ṣasyā’
tat puruṣa
anuṣṭubhaāĀryā avalokiteśva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