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보리심장 관련

華嚴三昧章(서문, 발문)

VIS VITALIS 2015. 12. 8. 13:17

서문:

華嚴三昧章一卷新羅崔致遠作賢首傳用華嚴三昧觀直心中十義配成十科證知此章即觀文也東洋刻本改其名為發菩提心章於表德中全錄杜順和尚法界觀文近三千言遂疑此本非賢首作庚子冬南條文雄遊高麗得古寫本郵寄西來首題華嚴三昧章讎校盡善登之梨棗因來本作章故仍其舊尚有華嚴世界觀求而未得也石埭楊文會識

?화엄삼매장?1. 신라 최치원은 현수(賢首)의 전기(傳記)(=?법장화상전?)를 지으면서 ?화엄삼매관? 직심(直心)의 열 가지 뜻을 이용해 10()에 배치하여 구성하였으니 이 ?화엄삼매장?이 곧 ?화엄삼매관?에 있는 문장들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알려준다證知. 동양각본(東洋刻本: 享保 刊行本 ?화엄발보리심장?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은 그 명칭을 ?발보리심장?이라고 바꾸고 표덕(表德 4 중 진공관, 이사무애관, 주변함용관 이 3종관을 말한다)에 두순 화상의 ?법계관? 문장들을 모두 수록하고 있는데 (?법계관?의 글자 수는) 3천자三千言에 가깝다. 마침내 이 동양각본은 법장 현수(賢首)가 지은 것이 아닐 것이라고 의심하게 되었다. 경자(1900)년 겨울, 南條文雄(1849-1927)이 고려(高麗)에 머물다가 고사본(古寫本)을 얻어서는 우편을 이용해 서쪽(=중국)으로 부친 것을 받아보니 책머리에 있는 제목이 ?화엄삼매장?이었다. 최선을 다하여 교정(校正)讎校하여 출판梨棗(목록)에 올려두었다. 부쳐온 본이 (화엄삼매)()이라 하고 있기 때문에 (?보리심장?이라는 새로운 제명 대신에) 그 오래된 것을 따랐다因來本作章 故仍其舊. 또한 ?화엄세계관?이 있어 구하였으나 얻지 못하였다. 석태 양문회 적다.

 

발문:

謹案唐賢首國師著述中土久佚 楊仁山先生轉輾求得者為華嚴探玄記未刻梵網經菩薩戒本疏入楞伽心玄義起信論義記別記法界無差別論疏十二門論宗致義記華嚴義海百門以上各種均已刻行而楞伽經疏七卷法華經疏七卷華嚴策林一卷日本續藏有此書 先生謂係膺本華藏世界觀一卷及此三昧章則求之日本亦不可得日本南條文雄君嘗覆 先生書云法藏所作三昧觀者義海百門或華嚴雜章之異名也。 先生辨其非是覆書云法藏所作華嚴三昧觀崔致遠作別傳已用其直心中十心名目貴國所刻發菩提心章錄十心之文與崔同并有三十心而與法界觀及他種湊合而成謹知華嚴三昧觀當有全本流傳高麗也祈請駐韓道友訪之又書云近聞貴宗同人往高麗布教者頗多唐法藏所作華嚴三昧觀華嚴世界觀二種高麗或有存者乞寄信求之歲庚子南條君遊高麗訪得此本 先生書云在韓日得唐法藏華嚴三昧章寫本因奉贈一本未知此果與華嚴三昧觀同乎抑異乎。 先生覆書云華嚴三昧章與菩提心章同而闕法界觀之文始知二書同出一本即華嚴三昧觀無疑矣以上均照錄原文 先生之於此書歷數十年之久遍中日韓三國一再訪求僅乃得之至足寶已。 先生得是寫本識以數語謂將登之梨棗而珍藏篋衍未遑付梓。 先生西歸忽忽六載同人幾不復知有此事乃者覆檢 先生遺稿始知梗概覓得底本亟為校刻以竟 先生未竟之志謹以 先生原文冠於卷首並節錄 先生與南條君往來書牘中語如右俾當世咸知是書久佚之後得之非易異日者儻能更得楞伽疏等四種刻之與是書並顯於世不尤法門之大幸歟丁巳仲春海鹽徐文霨附識

삼가 살피건대, 당나라 현수(賢首)국사(國師)의 저술은 중국 땅에서는 잃어버린지 오래인데 楊仁山 선생을 거쳐 이리저리 구하게 된 것으로는 ?화엄탐현기?, 未刻 ?범망경보살계본소梵網經菩薩戒本疏?, ?입능가심현의入楞伽心玄義?, ?기신론의기·별기?, ?법계무차별론소?, ?십이문론종치의기?, ?화엄의해백문? (이상 각 종()의 저서는 모두 이미 판각되어 간행되었다) 그리고 ?능가경소? 7, ?법화경소? 7, ?화엄책림? 1, (일본 속장경에 이 책이 수록되어 있고 선생께서 계응본係膺本이라고 말하는 ?화장세계관? 1, 그리고 이 ?삼매장? 이 있는데 (?삼매장?) 일본에서 구하였으나 얻을 수 없었다. 일본의 南條文雄군이 일찍이 선생의 서한에 답하여 법장이 지은 ?삼매관??의해백문? 혹은 ?화엄잡장?의 이명(異名)인지 선생께서 그 시비를 가려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선생께서) 서한에 답하여 말하길 법장이 지은 ?화엄삼매관?(과 관련하여서는) 최치원이 별전(別傳:=?법장화상전?)을 지으면서 이미 그 직심(直心) 10()의 명칭名目을 쓴 바 있습니다. 귀국(貴國)에서 판각한 ?발보리심장?10()의 글들을 수록하고 있는 것은 최치원과 같으나 (10심을 포함해 모두) 30()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계관?과 그리고 다른 종류의 것이 모여 이루어져 있습니다. ?화엄삼매관?이 마땅히 전본(全本)으로 고려에 전해져 유통流傳되고 있을 것이라고 삼가 알겠습니다. 한국에 주재하는 도우(道友)들이 그것을 찾도록 기도하는 심정으로 부탁祈請드립니다.” (선생께서) 서한으로 말하길 근래 듣자하니 귀종(貴宗)의 동인(同人)이 고려에 가 포교하는 이들이 자뭇 많다고 하더군요. 당나라 법장이 지은 ?화엄삼매관?·?화엄세계관? 2종이 고려에 혹 있는지 서신을 보내 그것을 구해볼 것을 당부 드립니다.” 경자(1990), 南條文雄이 고려에 머물다 이 (?화엄삼매장?)()을 찾아 가지고는 선생께 부치는 서한에서 말하길 한국에 있을 때在韓日, 당 법장 ?화엄삼매장? 사본을 얻었기에 한 본一本을 삼가 드립니다. 이것이 과연 ?화엄삼매관?과 같은지 또는 다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선생께서 서한에 답하여 말하길 ?화엄삼매장??보리심장?은 같습니다. 그러나 ?법계관?의 문장이 (?화엄삼매장?에는) 빠져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책(?화엄삼매장??보리심장?)이 한 본一本 곧 의심할 것도 없이 ?화엄삼매관?에서 나온 줄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이상은 모두 (편지) 원문(原文)에 비춰 기록한 것이다. 대략 선생께서 이 책(?화엄삼매장?)을 찾아 수십년에 걸쳐 오래도록 중국 일본 한국 3국을 편력하시었다. 한 번이나 재차 방문해 구해서야 겨우 그것을 얻을 수 있었으니 가히 보물이라 할 만하다. 선생께서 이 사본을 얻어서는 몇 자 적으며 장차 출간하고자 한다고 말하였는데 진귀한 책은 상자 속에 묻힌 채 여유가 없어 출간되지 못하였다. 선생께서 돌아가신지 어언 6, 동인(同人) 몇은 이런 일이 있었음을 다시 알지 못하고 있다가 얼마 전에乃者 선생의 유고를 검토해보고서야 비로서 얼추梗概 알게 되었다. 저본(底本)을 찾아 가지고 지극히 교정·판각校刻하여 선생이 못 이룬 뜻을 마칠 수 있었다. 삼가 선생이 쓰신 원문(原文)을 권수(卷首)에 두고 아울러 선생과 南條() 사이에 왕래한 서신 중에 나오는 말을 발췌하여 오른 쪽에 기록해두어 나중의 사람들當世로 하여금 모두 이 책이 오래도록 실전(失傳)되었다가 그 뒤 그것을 얻게된 것이 쉽지 않았음을 알게하고자 한다. 뒷 날에 만약 ?능가경소? 4종을 얻어 그것을 판각하여 이 책과 함께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면 (부처님)법문(法門)에 더욱 큰 행운이 아니겠는가? 정사(1917)년 중춘(仲春) 해염(海鹽) 徐文霨 덧붙혀 적다附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