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침묵·그리움 ‘소수를 그리는 소수’ 재중동포 감독 장률 | |||||
입력: 2007년 10월 25일 17:29:47 | |||||
장률 감독(45)은 중국 영화계에서 ‘소수 중의 소수’다. ‘재중교포 3세’라는 정체성이 그렇거니와, 중국 영화인력의 99%를 배출한다는 베이징영화학원 출신이 아니라는 점도 그렇다. 원래 소설가였던 그는 30대 후반이 돼서야 독학으로 영화를 익혔다. 이후 장감독은 3편의 장편을 통해 국제 영화계에 이름을 알렸지만, 정작 중국 내 유명 감독인 장이머우, 자장커 등과는 교류가 전혀 없다.
“1995년을 시작으로 수없이 한국에 왔지만, 올 때마다 불편합니다. 매번 비자를 내는 것이 귀찮아 영화사 측의 배려로 장기거류증을 받았는데, 이것도 힘들긴 마찬가지더군요.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 매번 출입국관리소에 가서 몇 시간씩 줄을 서고 돈을 내고 확인을 받아야 해요.” 감독에겐 사막에서 영화를 찍는 것보다 국경을 넘는 일이 더욱 힘겨워보였다. 하긴 그는 “어딜 가도 영화 찍겠다는 진지한 생각을 하며 돌아다니진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에 와서도 멋진 곳을 찾아 구경하고 밥먹고 술마시고 논다. 몽골 촬영도 그렇게 ‘불순한’ 의도로 시작됐다. 영화제작사에서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에서 환경에 관한 영화를 찍자’고 제의가 왔는데, “몽골 아니면 안찍겠다”고 말했다. 순전히 몽골에 가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그는 “남자라면 초원이나 사막에 대한 낭만이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몽골의 시각적 경험이 그래요. 베이징이나 서울에서는 사람이 움직일 때 빨리 안 따라가면 놓치잖아요. 그래서 요즘 도시를 다룬 영화는 사람보다 카메라가 더 빨리 움직이기도 하죠. 전 영화 교과서를 공부 안했어요. 몽골에선 사람이 움직이면 반 시간 후에 봐도 옆에 보여요. 저기 지평선에 있거든요.” 한국의 대도시에 사는 관객에겐 상당히 낯설 법한 ‘경계’의 미학은 이런 방식으로 다 설명된다. 답답하리만치 과묵한 등장인물들도 그렇다. 실제 그 사람들은 그렇게 말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에선 마주보고 한참 말을 안하면 어색하고 답답하지만, 그들은 다르다. “말 없이 앉아 있으면 공간에 감정이 흘러요. 침묵하는 동안 감정이 익어요. 사실 제가 지금 너무 말을 많이 하는 것 아닙니까?” 낯선 남녀 사이의 느닷없는 정사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시각에서 보면 ‘퇴폐’이고 ‘바람’이지만 사람이 드문 그들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다. 1년 지나야 몇 사람 못보는 사막에선 어느 손님이든 친절하게 맞는다. 문에는 자물쇠가 없어 누구라도 쉬어갈 수 있다. 남편이 염소 떼를 몰고 며칠 집을 비우는 사이, 다른 남자가 찾아오면 여자는 자연스레 다른 남자를 맞이한다. “그 땅엔 그게 맞아요. 사람이 그립고 인구가 적기 때문이죠.” 평범한 관객은 낯설어하지만, 장감독은 “난 실생활을 보여줄 뿐”이라고 말한다. “꿈을 보여주면 익숙하게 여기고, 일상을 보여주면 충격적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전 그게 이해가 안되어요.” 감독은 마지막으로 “영화는 꿈과 현실을 혼동시킨다”는 페데리코 펠리니의 말을 인용하며 이 말을 적어주길 당부했다. “‘경계’를 보시면 그날 밤 꿈에 몽골 초원에 가보실 수 있습니다.” 〈글 백승찬·사진 서성일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