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정강웅
割田 剛雄(わりた たけお、1944年 - )
(やさしい敎え)佛敎ことわざ辭典
할전강웅
ことわざ [諺] 속담, 이언(俚諺).
대저 천지만물에 대한 관찰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사람에 대한 관찰은 정情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묘한 것이 없고, 정에 대한 관찰은 남녀의 정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진실한 것이 없다. 이 세상이 있으매 이 몸이 있고, 이 몸이 있으매 이 일이 있고, 이 일이 있으매 곧 이 정이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관찰하여 그 마음의 사정邪正을 알 수 있고, 그 사람의 현부賢否를 알 수 있고, 그 땅의 후박厚薄을 알 수 있고, 그 집안의 흥쇠興衰를 알 수 있고, 그 나라의 치란治亂을 알 수 있고, 그 시대의 오륭汚隆을 알 수 있다.
대개 사람의 정이란 혹 기뻐할 것이 아닌데도 거짓으로 기뻐하기도 하며, 혹 성낼 것이 아닌데도 거짓으로 성내기도 하며, 혹 슬퍼할 것이 아닌데도 거짓으로 슬퍼하기도 하며, 또 즐겁지도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고 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면서, 혹 거짓으로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미워하기도 하고자 하는 것도 있다.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모두 그 정의 진실함을 살펴볼 수가 없다. 그런데 유독 남녀의 정에서만은 곧 인생의 본연적 일이고, 또한 천도의 자연적 이치인 것이다.
그러므로 혼례를 올리고 화촉을 밝힘에 서로 문빙問聘하고 교배交拜하는 일도 진정眞情이며, 내실 경대 앞에서 사납게 다투고 성내어 꾸짖는 것도 진정이며, 주렴 아래나 난간에서 눈물로 기다리고 꿈속에서 그리워함도 진정이며, 청루靑樓 거리에서 황금과 주옥으로 웃음과 노래를 파는 것도 진정이며, 원앙침鴛鴦枕 비취금翡翠衾 홍안紅顔 취수翠袖를 가까이 하는 것도 진정이며, 서리 내리는 밤의 다듬이질이나 비오는 밤 등잔 아래서 한탄을 되씹고 원망을 삭이는 것도 진정이며, 꽃 그늘 달빛 아래에서 옥패玉佩를 주고 투향偸香하는 것도 진정이다.
오직 이러한 종류의 진정은 어느 경우에도 진실한 것이 아님이 없다. 가령 그것이 단정하고 정일貞一하여 다행히 그 정도正道를 얻었다고 하면 이 또한 ‘참[眞]’ 그대로의 정情이고, 그것이 방자 편벽되고 나태 오만하여 불행하게도 그 정도를 잃었다고 하더라도 이 또한 ‘참’ 그대로의 정이다. 오직 그것이 진실한 것이기 때문에 그 정도를 얻었을 때는 족히 본받을 만하고, 오직 그것이 진실한 것이기 때문에 그 정도를 잃었을 때는 또한 경계할 수 있는 것이다. 오직 그것이 진실한 것이라 본받을 수 있고, 그것이 진실한 것이라 경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 그 사람, 그 일, 그 풍속, 그 땅, 그 집안, 그 나라, 그 시대의 정情을 또한 이로부터 살펴볼 수가 있다. 천지만물에 대한 관찰도 이 남녀의 정에서 살펴보는 것보다 더 진실한 것이 없다.
이것이 <주남> · <소남> 25편에 남녀의 일이 20편 있게 된 까닭이고, 또한 <위풍衛風> 39편에 남녀의 일이 37편 있게 된 까닭이며, <정풍鄭風> 21편에 남녀의 일이 16편이나 많이 있게 된 까닭이다. 또한 당시의 시인이 예禮가 아닌 것을 듣고 보고 말하는 것을 꺼리지 않은 까닭이며, 또한 우리 대성지성大成至聖 공부자孔夫子가 이것을 취하게 된 까닭이며, 모씨毛氏 · 정현鄭玄 · 자양紫陽 등 모든 순유純儒가 전주하고 집주하게 된 까닭이며, 또한 그대가 이른바 ‘사무사思無邪, 즉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것이며, ‘백성을 교화하여 선善을 이루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대는 어찌 저 예禮가 아닌 것을 듣는 것이 장차 예가 아닌 것을 듣지 않으려는 것임을 모르며, 예가 아닌 것을 보는 것이 장차 예가 아닌 것을 보지 않으려는 것임을 모르며, 예가 아닌 것을 말하는 것이 장차 예가 아닌 것을 말하지 않으려는 것임을 모르는가? 하물며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 반드시 모두 다 예가 아닌 것이 아님에랴!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시의 정풍正風과 음풍淫風은 시가 아니라 곧 《춘추春秋》이다. 세상이 일컫는 바 음사淫史로, 가령 《금병매金甁梅》나 《육포단肉蒲團》과 같은 유類도 모두 음사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그 작자의 마음을 추구해 보면 비록 정풍이나 음풍으로 구분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모두 다루지 못할 것이 없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에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여자란 편벽된 성질을 가졌다. 그 환희, 그 우수, 그 원망, 그 학랑謔浪이 진실로 모두 정情 그대로 흘러나와 마치 혀 끝에 바늘을 간직하고 눈썹 사이로 도끼를 희롱하는 것과 같음이 있으니, 사람 중에 시경詩境에 부합하는 것은 여자보다 더 묘한 것이 없다. 부인은 우물尤物이다. 그 태도, 그 언어, 그 복식, 그 거처가 또한 모두 끝 가는 데까지 가게 되어, 마치 조는 가운데 꾀꼬리 소리를 듣고, 취한 뒤에 복사꽃을 감상하는 것과 같음이 있다. 사람 중에 시료詩料에 갖추어진 것은 부인처럼 풍부한 것이 없다.
슬프다! 비록 그 묘하고도 풍부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다루는 자가 마치 봉황지鳳凰池에 소요하면서 생용笙鏞에 도취된 사람이라면 어느 겨를에 여기에 미칠 수 있겠으며, 푸른 산에 깃들어서 원숭이와 수작하고 학의 소리에 화답하는 사람이라면 어찌 족히 여기에 미칠 수 있겠으며, 이학理學에 몰입하고 풍월을 읊조리는 사람이라면 어찌 자질구레하게 여기에 미칠 수 있겠으며, 술독에 빠진 채 먹을 휘갈기고 화류花柳에 취해 노래하는 사람이라면 또한 어찌 능히 여기에 미칠 수 있겠는가? https://blog.naver.com/huhubada1/222515128199
[출처] 이옥李鈺, 「俚諺」중에서|작성자 허허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