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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칸良寛 1758-1831 스님의 시 '센카츠仙桂 스님'을 읽고

VIS VITALIS 2021. 4. 12. 16:04

4월 일요일 오후 책장을 정리하다 책을 하나 꺼내들게 됩니다.

 

일본불교사 공부방 20호! 한 번 펴 본 곳에 김호성 선생님이 요시모토 다카아키吉本隆明 의 『료칸良寛』을 읽고 번역해주신 '센카츠 스님'이라는 시가 있어 읽어봅니다.

요시모토 다카아키吉本隆明 1924-2012는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버지이고 『공동환상론共同幻想論』(1968)의 저자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저서목록을 보니 믿음에 관한 세 권의 책이 있고 신란 스님에 관한 책도 있더군요.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하는 책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라고도 말했다고 합니다.

료칸 良寛 1758-1831 스님에 대해 각주는 "일본 조동종의 선승이자 시인"이라고 알려 줍니다. 

 

 

 

 

센카츠仙桂 스님은 진짜 도인

말이 없는데 하는 말은 소박하고

삼십 년 동안 고쿠센國仙스님 밑에서

선도 하지 않고 경도 안 읽고

종문宗門의 일구一句를 읊지도 않으며

채소밭 일구어 대중들 공양했네

마땅히 그 분을 봤어야 했으나 보지 못했고

그 분을 알았어야 했으나 알지 못했네

오호라, 이제 그분을 흉내내고자 해도 되지 않으니

센카츠 스님은 진짜 도인

 

 

한문 원문은 아마도 료칸 스님 연구의 선구자라는 니시고오리 큐고西郡久吾(1867-1931)의 『사문 양관  전전 沙門良寛全傳』에 실린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아래와 같습니다.

참조:

黑田紀也, 료칸의 시詩 선계화상仙桂和尚에 대하여

ous.repo.nii.ac.jp/index.php?action=pages_view_main&active_action=repository_action_common_download&item_id=1238&item_no=1&attribute_id=18&file_no=1&page_id=13&block_id=21

 

 

仙桂和尚者真道者 黙士言朴客

三十年在國仙會 不参禅不讀経

不道宗文一句 作園菜供大衆

當時我見之不見 遇之不遇

吁呼今放之不可得 仙桂和尚真道者

 

 

반면에 富田敏仁 소장 료칸 서良寛 書  선계화상仙桂和尚에 따르면 아래와 같습니다.

 

仙桂和尚真道者 貌古言朴客

三十年在國仙會 不参禅不讀経

不道宗文一句 作園菜供養大衆

當時我見之不見 遇之遇之不遇

吁嗟今放之不可得 仙桂和尚真道者

 

이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센카츠 스님은 참 길을 걸은 사람

외모는 고풍스러우나 말씀은 소박한 길손

삼십년간 고쿠센 스님 모임에 있었지만

참선도 하지 않고 독경도 하지 않고

종문에 내려오는 문구 하나 말씀하지 않고

채전밭을 일구어 대중들에게 공양하셨지

당시 나는 스님을 보고도 (제대로) 보지 못했고

만나고 또 만나고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였네

아! 이제사 스님을 따르고자 하여도 할 수가 없네

센카츠 스님은 참 길을 걸은 사람

 

 

료칸良寛1758-1831스님의 나이 68~72세 무렵 쓴 것이라 합니다.

만년에 젊은 시절 센카츠 스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어리석음을 뉘우치며 찬탄하는 방식으로 쓰여진 시입니다.

아름다운 회한입니다. 그런 기억만큼 소중한 것은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료칸 스님이 이 시에서 말하는 열다섯 나이가 많은 사형인 센카츠 스님은 한마디로 객(客)이라는 것입니다. 길손이나 손님처럼 종문의 언어와 행동과 멀었다는 것입니다. "지관타좌"도 하지 않고 조사의 어록도 입에 담지 않았다니 마치 겉도는 것 처럼 특이해보였을 것입니다.

 

근처에 무가보주無價寶珠를 두고도 모르는게 사람입니다. 볼 줄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만날 줄 알아야 하는데 고마운 걸 모르거나 알아도 만날 줄 모르는 게 어리석은 중생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 시를 다시 읽은 인연으로 새롭게 바뀔 수 있을런지...

 

 

 

이 시를 다시 보며 느낀 것은 첫 행과 마지막 행이 같은 한시였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시 중에는 처음보는 그런 형식입니다. 

 

 

나날이 새로운 봄날입니다.

 

건강하십시요.

 

박 오수 공경합장

 

 

 

*사실 미리 이 보다 길게 쓴 글이 있었는데 올리는 중에 오류가 있어 들인 시간의 십분의 일도 안되게 투자해 다시 간단히 올립니다.

 

 

참고로 

국내논문(최귀묵, 탁발승 료칸(良寬)의 한시 작품세계)에 실려있는 잡시雜詩의 한문 원문과 번역 부분도 올립니다.

 

 

靑陽二月初 이월 초의 봄날,

物色梢新鮮 물색은 조금 신선해졌다.

此時持鉢盂 이런 때에 발우를 들고,

得得遊市鄽 들뜬 마음으로 시전(市鄽)으로 나섰다.

兒童忽見我 아이들이 홀연 나를 보고는,

欣然相將來 흔연히 서로들 이끌고 온다.

要我寺門前 절 문 앞에서 나를 막아서서는,

携我步遲遲 내 손을 잡아끌어 제대로 걷기도 힘들다.

放盂白石上 발우는 흰 돌 위에 놓아두고,

掛囊綠樹枝 바랑은 푸른 나무 가지에 걸었다.

于此鬪百草 여기서 풀싸움을 하고,

于此打毬兒 여기서 공치기를 했다.

我打渠且歌 내가 치면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我歌渠打之 내가 노래를 부르면 아이들이 쳤다.

打去又打來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不知時節移 시간이 가는 줄 알지 못한다.

行人顧我笑 행인들은 나를 보고 웃으며,

因何其如斯 어째서 그러고 있느냐고들 한다.

低頭不應伊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않는데,

得道也何似 설령 답한대도 뭐라고 할까.

要知箇中意 이 가운데 참뜻을 알고자 한다면,

元來只這是 원래 다만 이러할 뿐이라 (하리라)

 

 

김호성 선생님의 번역을 전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靑陽二月初 푸른 햇빛이 비추는 2월의 초순

物色梢新鮮 만물은 색색깔 신선한데

此時持鉢盂 이제 발우를 들고,

得得遊市鄽 당당히 저자거리로 들어가네

兒童忽見我 아이들 홀연 나를 보고서

欣然相將來 기뻐하며 서로서로 손잡고 다가오네

要我寺門前 나를 절 문 앞에서 기다렸다네

携我步遲遲 나를 데리고 걸음은 느릿느릿

放盂白石上 발우는 하얀 돌위에 올려놓고

掛囊綠樹枝 바랑은 푸른 나무 가지에 걸어놓고

于此鬪百草 풀을 엮어서 공을 만들어

于此打毬兒 축구를 하네

我打渠且歌 내가 공을 차면 아이들이 노래하고

我歌渠打之 내가 노래하면 아이들이 공을 차네

打去又打來 공을 차고 공을 차느라

不知時節移 시간 가는 줄 모르네

行人顧我笑 지나가는 사람들 나를 보고 웃네

因何其如斯 어째서 이렇게 하고 있나 물어도

低頭不應伊 고개만 숙여서 인사할 뿐 대답을 못 하네

得道也何似 대답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또 뭐라고 하랴

要知箇中意 그 뜻을 알려고 한다면

元來只這是 원래 그저 이것일 뿐

 

 

 

*득도야하사得道也何似에 대해 두 번역 전부 여기서의 "도"를 말하다로 해석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시가 이 부분에서 지나치게 중복적이라는 느낌이 들어

"득도"라는 명사형으로 쓰였을 가능성은 없을까 하고 자꾸 생각해보게 됩니다.

 

 

 

*료칸良寛 1758-1831 스님의 또다른 시.

 

가랑눈속에 서 있는 삼천대천세계

또 그 속에 가랑눈 내리네.

あは てたる 三千大千世界みちおほち

またその あわ 

 

 

あわゆき [淡雪] 

명사

  • 얇게 깔린 눈, 담설().

あわゆき [泡雪·沫雪]

さんぜんだいせんせかい [三千大千世界] 

 

三千大千世界 みちおほち

あわゆき 

 

  • 1

    가랑눈((거품같이 가볍고 녹기 쉬운 눈)).

  • 2

    ‘あわゆきかん’의 준말.

あわ雪のなかに顕たちたる三千大千世界みちおほちまたその中に沫雪ぞ降る〔はちすの露〕

【通釈】沫雪の降る中にあらわれている大宇宙。またその宇宙の中にも沫雪が降っているのだ。

【語釈】◇三千大千世界 重層的に成り立っている全宇宙をいう。

https://www.asahi-net.or.jp/~sg2h-ymst/yamatouta/sennin/ryoukan.html

「みちおほち」は宇宙をあらわす仏教語、三千大千世界の「三千月千」のこと。

良寛の短歌の中の造語
“ あわ雪の中に 顕ちたる(たちたる)三千大千世界(みちおほち)
またその中に沫雪(あわゆき)ぞ降る ”


南方熊楠(みなかたくまぐす)は三千大千世界のことを
“ 無尽無究の大宇宙の大宇宙の また 大宇宙 を包蔵する 大宇宙 ”…と表現。

~かな
1) 걱정
彼女は元気でいるかな
 
2) 자신에게 되물음
これでいいのかな
 
3) 받아들일 수 없음
彼が私の悪口言ってるって本当かな
 
4) 바람 (~ないかな)
もうちょっと我慢して聞いてくれないか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