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관(日沒觀)
[문화칼럼] 일몰관(日沒觀)
/박은경 동아대 교수 고고미술사학과

지는 해는 마지막 남은 빛을 내뿜어 서녘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자연이 연출하는 가장 황홀한 장관을 바라보며, 고된 하루를 보낸 이들은 다가올 휴식에 안도하고, 행복한 하루를 보낸 이들은 그 여운을 되새긴다.
예전에 어느 날 저녁 무렵 시골길을 따라 차를 몰고 가다가 마을 굴뚝에서 하늘거리며 피어오르는 연기 저 너머로 파아란 하늘이 점점 저녁노을로 발갛게 변해가는 즈음, 이유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백미러에 들킨 적이 있다. 그 순간 그리움과 공허함, 형언할 수 없는 평온함, 얽히고설킨 감정의 덩어리들이 일순 사라지는 느낌을 경험했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시간
그렇다! 붓다는 석양에서 극락을 본 것이다. 극락세계에 가려거든 삿된 생각을 버리고 맑은 마음으로 석양을 바라보라는 붓다의 가르침, 일몰관(日沒之觀). 불교에서 서방 극락정토를 언급한 대표 경전인 '관무량수경'에는 붓다가 이 경전을 설하게 된 고통 받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이 고통 받는 여인과 세상의 모든 중생들을 향해 서방 극락세계를 관(觀)할 수 있는 16가지 관상법을 설하고 있다. 내용은 붓다 석가가 인도 기사굴산(일명 영취산)에서 설법하고 있을 당시, 마가다왕국의 왕사대성(王舍大城)에서 일어난 빈비사라 대왕과 위제희 왕비, 그들의 아들 아사세 태자 세 사람 사이에 일어난 왕위쟁탈에 얽힌 비극적 사건을 담고 있다.
빈비사라 대왕과 위제희 왕비 사이에 자식이 없었으나, 다행히 늦게나마 아들을 얻게 되었다. 이에 점술가들이 아들을 얻기 위해 죽인 선인의 원한을 품고 태어났으므로 갓 태어난 아들을 죽이라고 하였으나, 차마 죽이지 못하고 남의 손에 자라게 하였다. 후에 아이는 장성하여 태자로 왕궁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아사세 태자는 데바닷타(석가를 시기하는 사촌동생)의 꾐에 빠져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고, 급기야 부왕을 일곱 겹으로 둘러싸인 감옥에 유폐시켜 굶어죽게 하였다. 이에 위제희 왕비는 몸에 꿀과 밀과 우유를 이겨 바르고, 목에 장식한 영락구슬 안에는 포도즙을 담아 남편인 빈비사라 대왕에게 먹임으로써 목숨을 부지케 하였다.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된 아사세 태자는 생모인 위제희 왕비도 죽이려 하였으나, 신하들의 만류로 죽이지는 못하고 골방에 가두었다.
이에 위제희 왕비는 근친 간의 왕위찬탈을 둘러싼 비극적인 사건을 견딜 수 없어 기사굴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를 향해 그 고통을 피 토하듯 호소하였다. 석가는 불쌍한 이 여인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서방 극락세계를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도록 사물을 관조(觀照)하는 관상법을 가르쳐 준다.
저녁노을은 현실 속의 극락
제일 처음으로 붓다는 위제희 왕비에게 서녘하늘로 기우는 태양을 바라보며 단정한 자세로 마음을 한곳에 고요히 두는 관상법을 보여 준다. 그것이 바로 제1 일몰관이다. 이어 물을 생각하며 바라보는 제2 수관(水觀), 땅을 생각하는 제3 지관(地觀), 나무를 생각는 제4 수관(樹觀) 등 16가지를 연이어서 펼쳐 보여 준다. 이 16가지 관상을 시각 이미지로 표현한 국보급의 미려한 불화가 국내외에 여러 점 남아 전하고 있다.
연회색 하늘을 캔버스 삼아 붉은 선염이 퍼지는 한 폭의 민낯 풍경은 온갖 무신경과 혼탁함으로 점철된 힘듦을 치유해 주는 시간일는지도 모른다. 일몰 시간대만큼 살아 있는 생명체 모두가 삿된 마음이 물러가고 평온한 마음으로 치유되기를 바라 본다.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일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이 일어났다.
청아한 범종 소리가 서녘노을을 따라서 울려 퍼진다. 그래, 저녁노을은 현실 속의 극락이다. 그래서 황혼은 가장 소중한 이들과 함께해야 하는 시간인 것이다.
[출처: 부산일보]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40708000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