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로노토마리室の泊 이야기, 유녀 遊女(ゆうじょ、あそびめ)
사실 안라쿠지의 '안락'은 이 단어의 평화로운 뜻과는 별개로 비극적인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안라쿠지의 공식 명칭은 주렌잔 안라쿠지住蓮山安楽寺로 1207년 법란으로 사형된 주렌대사住蓮上人와 안라쿠대사安楽上人를 공양하는 사찰이다.
주렌대사와 안라쿠대사는 호넨대사法然上人의 제자로 현재 안라쿠지 위치에서 1km쯤 떨어진 곳에 암자를 짓고 가르침을 전파했었는데, 고토바상황後鳥羽上皇의 관녀인 마츠무시히메松虫姫와 스즈무시히메鈴虫姫가 이들 영향으로 출가했다 발각되어 주렌대사와 안라쿠대사는 사형되고 호넨대사는 유배 보내졌다. 유배를 마치고 돌아온 호넨대사는 옛 암자에 '주렌잔 안라쿠지'라는 이름을 처음 붙였고 지금의 안라쿠지는 1532~55년에 위치를 옮겨 재건된 것이다.
http://blog.naver.com/schatje/220746594389
만약 거리끼지않고 세상을 건널 수 있는 계획이 있다면
もしかからずして世をわたり給いぬべきはかりごと【謀】あれば、
조속히 그 일을 그만두세요.
すみやかにそのわざ [業]をすて給うべし。
만약 달리 계획도 없고
もし余りはかりごともなく、
또한 신명身命을 돌아보지 않을 만한 도심道心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면,
また身命をかえりみざるほどの道心いまだ起り給わずば、
다만 그 모습 그대로
ただそのままにて、
오직 염불을 해야 할지니
もはら念仏すべし、
아미타여래께서는
弥陀如来は、
그러한 죄인을 위해서
さやうなる罪人のためにこそ、
큰 서원을 세웠던 것이라 믿고서
弘誓をもたてたまへる事にて侍れ、
다만 깊이 본원을 의지하고
ただふかく本願をたのみて、
추호도 스스로를 비하하지 말라.
あへて卑下する事なかれ。
본원에 의지해서 염불하면
本願をたのみて念仏せば、
왕생에 대한 의심은 없을 것이다.
往生うたがいあるまじき
하리마국播磨国의 항구인 무로노토마리室の泊에 도착하였을 때 작은 배 한척(小船一艘 소선일소) 이 다가왔다. 그 배에 탄 유녀가 호넨스님(당시 유배형과 함께 받은 속명으로는 후지이노 모토히코(藤井元彦 ふじいのもとひこ)에게 말했다. “세상에 사는 길이 여러 가지일터인데 전생에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나는 이토록 중죄를 짓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나요? 어찌해야 그것을 떨쳐버릴 수가 있나요?" 호넨 스님이 크게 동정하며 대답하였다. "참으로 그러한 (유녀의) 삶은 죄의 업장[罪障]이 되어 그 과보[酬報]는 진실로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할 수 있다면 다른 생계를 찾아보고 가능한한 빨리 당신의 길わざ을 바꾸세요. 만약에 이것이 불가능하고, 또 만약에 구원을 구하지만 삶의 길[身命]을 희생할 의도[道心]까지는 마음에 없다면, 그냥 그대로
同国室の泊につき給うに、小船一艘(소선일소)ちかづきたる。これ遊女が船なりけり。遊女申さく、上人の御船のよし、うけたまわりて推参してはべるなり。
世をわたる道まちまちなり、いかなる罪ありてかかかる身となりはべるらん。
この罪障おもき身いかにしてか後の世たすかり候べきと申しければ、
[아어(雅語)]어떻게 하여; 어찌하여; 왜.
단어 70건
4단활용 자동사
- 1.
‘あり(=
있다 )’ ‘をり(=있다 )’의겸손 한또는 공손한 말투 .
- 2.
(‘に(て)’ ‘で’
또는 形容詞型 活用語 등의 連用形에붙어서 ) …입니다 , …습니다 .
- 3.
(動詞型 活用語에
붙어서 ) …ㅂ니다.
上人あわれみてのたまわく、げにもさようにて世をわたり給わらん罪障まことにかろからざれば、酬報またはかりがたし。
もしかからずして世をわたり給いぬべきはかりごとあれば、
すみやかにそのわざをすて給うべし。
もし余りはかりごともなく、
また身命をかえりみざるほどの道心いまだ起り給わずば、
ただそのままにて、もはら念仏すべし。弥陀如来はさようなる罪人のためにこそ、弘誓(ぐぜい)をもたてたまえることにてはべれ。ただふかく本願をたのみて、あえて卑下することなかれ。本願をたのみて念仏せば、往生うたがいあるまじきよし、ねんごろに教え給いければ、遊女随喜の涙をながしおり」(107頁)鈴木大拙 著 『日本的霊性』(岩波文庫 1972年版)
하리마국播磨国의 항구인 무로노토마리室の泊에 도착하였을 때 작은 배 한척(小船一艘 소선일소) 이 다가왔다. 그 배에 탄 유녀가 호넨스님(당시 유배형과 함께 받은 속명으로는 후지이노 모토히코(藤井元彦 ふじいのもとひこ)에게 말했다. “세상에 사는 길이 여러 가지일터인데 전생에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나는 이토록 중죄를 짓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나요? 어찌해야 그것을 떨쳐버릴 수가 있나요?" 호넨 스님이 크게 동정하며 대답하였다. "참으로 그러한 (유녀의) 삶은 죄의 업장[罪障]이 되어 그 과보[酬報]는 진실로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할 수 있다면 다른 생계를 찾아보고 가능한한 빨리 당신의 길わざ을 바꾸세요. 만약에 이것이 불가능하고, 또 만약에 구원을 구하지만 삶의 길[身命]을 희생할 의도[道心]까지는 마음에 없다면, 그냥 그대로
同国室の泊につき給うに、小船一艘(소선일소)ちかづきたる。これ遊女が船なりけり。遊女申さく、上人の御船のよし、うけたまわりて推参してはべるなり。
世をわたる道まちまちなり、いかなる罪ありてかかかる身となりはべるらん。
この罪障おもき身いかにしてか後の世たすかり候べきと申しければ、
上人あわれみてのたまわく、げにもさようにて世をわたり給わらん罪障まことにかろからざれば、酬報またはかりがたし。
만약 거리끼지않고 세상을 건널 수 있는 계획이 있다면
もしかからずして世をわたり給いぬべきはかりごと【謀】あれば、
조속히 그 일을 그만두세요.
すみやかにそのわざ [業]をすて給うべし。
만약 달리 계획도 없고
もし余りはかりごと【謀】もなく、
1.행위;짓 2.일;직업 3.방법
- 발음
뜻풀이부
罹らず、掛からず、懸らず
ラ行五段活用の動詞「罹る」「掛かる」「懸る」の未然形である「罹ら」「掛から」「懸ら」に、打消の助動詞「ぬ」の連用形が付いた形。
終止形
罹る » 「罹る」の意味を調べる
掛かる » 「掛かる」の意味を調べる
懸る » 「懸る」の意味を調べる
斯からず
皸らず
かか・り 【斯▼かり】
연어
이렇다 .
- 발음
뜻풀이부
はかり‐ごと【▽謀】 の解説
《「計り事」の意。古くは「はかりこと」》物事がうまくゆくように、前もって考えた手段・方法・計画。また、計略。もくろみ[目論見]。「謀をめぐらす」「謀を練る」「謀は密なるを良しとす」
謀(はかりごと)
또한 신명身命을 돌아볼 정도의 도심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면,
また身命をかえりみざるほどの道心いまだ起り給わずば、
「顧みず(かえりみず)」
ただそのままにて、もはら念仏すべし。弥陀如来はさようなる罪人のためにこそ、弘誓(ぐぜい)をもたてたまえることにてはべれ。ただふかく本願をたのみて、あえて卑下することなかれ。本願をたのみて念仏せば、往生うたがいあるまじきよし、ねんごろに教え給いければ、遊女随喜の涙をながしおり」(107頁)鈴木大拙 著 『日本的霊性』(岩波文庫 1972年版)
만약 거리끼지않고 세상을 건널 수 있는 계획이 있다면
もしかからずして世をわたり給いぬべきはかりごと【謀】あれば、
조속히 그 일을 그만두세요.
すみやかにそのわざ [業]をすて給うべし。
만약 달리 계획도 없고
もし余りはかりごともなく、
또한 신명身命을 돌아보지 않을 만한 도심道心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면,
また身命をかえりみざるほどの道心いまだ起り給わずば、
다만 그 모습 그대로
ただそのままにて、
오직 염불을 해야 할지니
もはら念仏すべし、
아미타여래께서는
弥陀如来は、
그러한 죄인을 위해서
さやうなる罪人のためにこそ、
큰 서원을 세웠던 것이라 믿고서
弘誓をもたてたまへる事にて侍れ、
다만 깊이 본원을 의지하고
ただふかく本願をたのみて、
추호도 스스로를 비하하지 말라.
あへて卑下する事なかれ。
본원에 의지해서 염불하면
本願をたのみて念仏せば、
왕생에 대한 의심은 없을 것이다.
往生うたがいあるまじき
하리마국播磨国의 항구인 무로노토마리室の泊에 도착하였을 때 작은 배 한척(小船一艘 소선일소) 이 다가왔다. 그 배에 탄 유녀가 호넨스님(당시 유배형과 함께 받은 속명으로는 후지이노 모토히코(藤井元彦 ふじいのもとひこ)에게 말했다. “세상에 사는 길이 여러 가지일터인데 전생에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나는 이토록 중죄를 짓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나요? 어찌해야 그것을 떨쳐버릴 수가 있나요?" 호넨 스님이 크게 동정하며 대답하였다. "참으로 그러한 (유녀의) 삶은 죄의 업장[罪障]이 되어 그 과보[酬報]는 진실로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할 수 있다면 다른 생계를 찾아보고 가능한한 빨리 당신의 길わざ을 바꾸세요. 만약에 이것이 불가능하고, 또 만약에 구원을 구하지만 삶의 길[身命]을 희생할 의도[道心]까지는 마음에 없다면, 그냥 그대로
同国室の泊につき給うに、小船一艘(소선일소)ちかづきたる。これ遊女が船なりけり。遊女申さく、上人の御船のよし、うけたまわりて推参してはべるなり。
世をわたる道まちまちなり、いかなる罪ありてかかかる身となりはべるらん。
この罪障おもき身いかにしてか後の世たすかり候べきと申しければ、
上人あわれみてのたまわく、げにもさようにて世をわたり給わらん罪障まことにかろからざれば、酬報またはかりがたし。
もしかからずして世をわたり給いぬべきはかりごとあれば、
すみやかにそのわざをすて給うべし。
もし余りはかりごともなく、
また身命をかえりみざるほどの道心いまだ起り給わずば、
ただそのままにて、もはら念仏すべし。弥陀如来はさようなる罪人のためにこそ、弘誓(ぐぜい)をもたてたまえることにてはべれ。ただふかく本願をたのみて、あえて卑下することなかれ。本願をたのみて念仏せば、往生うたがいあるまじきよし、ねんごろに教え給いければ、遊女随喜の涙をながしおり」(107頁)鈴木大拙 著 『日本的霊性』(岩波文庫 1972年版)
다만 그 모습 그대로
ただそのままにて、
오직 염불을 해야 할지니
もはら念仏すべし、
아미타여래께서는
弥陀如来は、
그러한 죄인을 위해서
さやうなる罪人のためにこそ、
큰 서원을 세웠던 것이라 믿고서
弘誓をもたてたまへる事にて侍れ、
다만 깊이 본원을 의지하고
ただふかく本願をたのみて、
추호도 스스로를 비하하지 말라.
あへて卑下する事なかれ。
본원에 의지해서 염불하면
本願をたのみて念仏せば、
왕생에 대한 의심은 없을 것이다.
往生うたがいあるまじき
he wept with joy.
Later,
Honen told his followers that her faith was very firm and that she was certain to attain Ojo.
When his exile was ended and he was returning home,
Honen called at the village where he had taught her, and inquired about her.
He was told that upon receiving his instruction she had gone to live in a
village in the mountains where she had practiced the Nembutsu single-heartedly.
Soon after she had died.
On her deathbed she is said to have rightly achieved Ojo.
This pleased Honen extremely, and confirmed his opinion of her.
무로노토마리室の泊 이야기는 유녀가 호넨스님이 귀양길을 가는 중에
이는 호넨스님이 귀양길을 가던 중 무로노토마리에서 한 유녀와 관계된 이야기입니다.
하리마播磨はりま 국国의 항구인 무로노토마리室の泊에 도착하였을 때 배 한척(小船一艘 소선일소) 이 다가왔다. 그 배에 탄 유녀가 를 태운 배가 호넨스님(당시 유배형과 함께 받은 속명으로는 후지이 모토히코(藤井元彦) 후지이 모토히코(藤井元彦) 法然は「藤井元彦」という俗名を附けられて土佐の国へ流されることになった。その宣下状に云う。
. 유녀가 호넨 스님에게 말했다. “세상에 사는 길이 여러 가지일터인데 전생에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나는
하리마播磨はりま 국国의 항구인 무로노토마리室の泊에 도착하였을 때 배 한척(小船一艘 소선일소) 이 다가왔다. 그 배에 탄 유녀가 를 태운 배가 호넨스님(당시 유배형과 함께 받은 속명으로는 후지이 모토히코(藤井元彦 후지이 노 모토히코 ふじいのもとひこ)(藤井元彦) 法然は「藤井元彦ふじいのもとひこ」という俗名を附けられて土佐の国へ流されることになった。その宣下状に云う。
法然行伝 (新字新仮名) / 中里介山(著)
하리마播磨はりま 국国의 항구인 무로노토마리室の泊에 도착하였을 때 배 한척(小船一艘 소선일소) 이 다가왔다. 그 배에 탄 유녀가 를 태운 배가 호넨스님(당시 유배형과 함께 받은 속명으로는 후지이 모토히코(藤井元彦 후지이 노 모토히코 ふじいのもとひこ)에게 말했다. “세상에 사는 길이 여러 가지일터인데 전생에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나는 이토록 중죄를 짓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나요? 어찌해야 그것을 떨쳐버릴 수가 있나요?" 호넨 스님이 크게 동정하며 대답하였다. "참으로 그러한 (유녀의) 삶은 죄의 업장[罪障]이 되어 그 과보[酬報]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할 수 있다면 다른 생계를 찾아보고 가능한한 빨리 당신의 길을 바꾸세요.
하리마국播磨国의 항구인 무로노토마리室の泊에 도착하였을 때 작은 배 한척(小船一艘 소선일소) 이 다가왔다. 그 배에 탄 유녀가 호넨스님(당시 유배형과 함께 받은 속명으로는 후지이노 모토히코(藤井元彦 ふじいのもとひこ)에게 말했다. “세상에 사는 길이 여러 가지일터인데 전생에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나는 이토록 중죄를 짓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나요? 어찌해야 그것을 떨쳐버릴 수가 있나요?" 호넨 스님이 크게 동정하며 대답하였다. "참으로 그러한 (유녀의) 삶은 죄의 업장[罪障]이 되어 그 과보[酬報]는 진실로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할 수 있다면 다른 생계를 찾아보고 가능한한 빨리 당신의 길わざ을 바꾸세요. 만약에 이것이 불가능하고, 또 만약에 구원을 구하지만 삶의 길[身命]을 희생할 의도[道心]까지는 마음에 없다면, 그냥 그대로
同国室の泊につき給うに、小船一艘(소선일소)ちかづきたる。これ遊女が船なりけり。遊女申さく、上人の御船のよし、うけたまわりて推参してはべるなり。
世をわたる道まちまちなり、いかなる罪ありてかかかる身となりはべるらん。
この罪障おもき身いかにしてか後の世たすかり候べきと申しければ、
上人あわれみてのたまわく、げにもさようにて世をわたり給わらん罪障まことにかろからざれば、酬報またはかりがたし。
もしかからずして世をわたり給いぬべきはかりごとあれば、
すみやかにそのわざをすて給うべし。
もし余りはかりごともなく、
また身命をかえりみざるほどの道心いまだ起り給わずば、
ただそのままにて、もはら念仏すべし。弥陀如来はさようなる罪人のためにこそ、弘誓(ぐぜい)をもたてたまえることにてはべれ。ただふかく本願をたのみて、あえて卑下することなかれ。本願をたのみて念仏せば、往生うたがいあるまじきよし、ねんごろに教え給いければ、遊女随喜の涙をながしおり」(107頁)鈴木大拙 著 『日本的霊性』(岩波文庫 1972年版)
Arriving at the harbor of Muro-no-tomari in Harima, Honen was approached by a small boat(小船一艘 소선일소) carrying a prostitute. She said to him, "Many are the ways through the world, what great sin could I have committed in a former Life to bring me to such a situation of heavy sins? How may I rid myself of them?" Honen replied with great pity, "Truly such a life is heavy with iniquity, the extent of its retribution is indeed incalculable.
Try to find some other livelihood if you can and change your ways as soon as possible.
If this proves impossible,
if the intention to sacrifice your very life in seeking for salvation has not arisen in your heart,
then stay what you are and repeat earnestly the Nembutsu.
It is for the sake of just such sin-laden people that Amida Nyorai has taken the Vow of universal salvation. Put all your trust and faith in his Original Prayer and do not abase yourself. Place your faith in the Prayer and repeat the Nembutsu and you will certainly be reborn in the Pure Land." Upon receiving this kind-hearted advice
she wept with joy. Later, Honen told his followers that her faith was very firm and that she was certain to attain Ojo. When his exile was ended and he was returning home, Honen called at the village where he had taught her, and inquired about her. He was told that upon receiving his instruction she had gone to live in a
village in the mountains where she had practiced the Nembutsu single-heartedly. Soon after she had died. on her deathbed she is said to have rightly achieved Ojo. This pleased Honen extremely, and confirmed his opinion of her.
Japanese Spirituality by Daisetz Suzuki translated by Norman Waddell 1972
https://terebess.hu/zen/mesterek/Suzuki-Japanese-Spirituality.pdf 93ㅉ
「同国室の泊につき給うに、小船一艘(소선일소)ちかづきたる。これ遊女が船なりけり。遊女申さく、上人の御船のよし、うけたまわりて推参してはべるなり。
世をわたる道まちまちなり、いかなる罪ありてかかかる身となりはべるらん。
この罪障おもき身いかにしてか後の世たすかり候べきと申しければ、
上人あわれみてのたまわく、げにもさようにて世をわたり給わらん罪障まことにかろからざれば、酬報またはかりがたし。
もしかからずして世をわたり給いぬべきはかりごとあれば、
すみやかにそのわざをすて給うべし。
もし余りはかりごともなく、
また身命をかえりみざるほどの道心いまだ起り給わずば、
ただそのままにて、もはら念仏すべし。弥陀如来はさようなる罪人のためにこそ、弘誓(ぐぜい)をもたてたまえることにてはべれ。ただふかく本願をたのみて、あえて卑下することなかれ。本願をたのみて念仏せば、往生うたがいあるまじきよし、ねんごろに教え給いければ、遊女随喜の涙をながしおり」(107頁)鈴木大拙 著 『日本的霊性』(岩波文庫 1972年版)
명사
- 1.
세상 .
- 2.
영화 .
- 3.
고어
남녀 의사이 [정].
명사
저울질; 저울질한 양.
給ひぬ=たまひぬ
給ふ=たまふ
です。
発音は、「たまいぬ」「たまう」。
「たまふ」は、「たもー」と読まないと、注意する先生もいるよ。
教科担任の先生の言うとおりに読むこと。
>給ひぬの終止形は給ふでしょうか?
「給ひぬ」は、ハ行四段活用の動詞「給ふ」の連用形に、
完了の助動詞「ぬ」が付いたものです。
つまり、「二単語」で構成された一文節です。
「終止形」というのは、一単語の用言の活用形の名前なので、
「「給ひぬ」の終止形」という言い方はできません。
「給ひ」と「ぬ」は、別々の単語だから、それぞれに「終止形」があるんだよ。
「給ひ」の終止形なら「給ふ」だし、
「ぬ」の終止形なら「ぬ」です。
はべる [侍る] 일본어
발음
뜻① 곁에 모시다 ② 곁에 가까이 있다 더보기
숙어
おそばに侍はべる 곁에 모시다
宴席えんせきに侍はべる芸者げいしゃ 연회석에 시중드는 기생.
となり [隣] 일본어
발음
뜻① 옆 ② 이웃 ③ 이웃집 더보기
숙어
隣となりの席せき 옆 자리.
隣となりの家いえ 이웃집
- ます형(~ㅂ니다)
助 かります부정형(~지 않다)助 からない청유형(~하자)助 かろう가정형(~한다면)助 かれば명령형(~해라)助 かれ
뜻풀이부
「同国室の泊につき給うに、小船一艘(소선일소)ちかづきたる。これ遊女が船なりけり。遊女申さく、上人の御船のよし、うけたまわりて推参してはべるなり。
世をわたる道まちまちなり、いかなる罪ありてかかかる身となりはべるらん。
この罪障おもき身いかにしてか後の世たすかり候べきと申しければ、
上人あわれみてのたまわく、げにもさようにて世をわたり給わらん罪障まことにかろからざれば、酬報またはかりがたし。もしかからずして世をわたり給いぬべきはかりごとあれば、すみやかにそのわざをすて給うべし。もし余りはかりごともなく、また身命をかえりみざるほどの道心いまだ起り給わずば、ただそのままにて、もはら念仏すべし。弥陀如来はさようなる罪人のためにこそ、弘誓(ぐぜい)をもたてたまえることにてはべれ。ただふかく本願をたのみて、あえて卑下することなかれ。本願をたのみて念仏せば、往生うたがいあるまじきよし、ねんごろに教え給いければ、遊女随喜の涙をながしおり」(107頁)鈴木大拙 著 『日本的霊性』(岩波文庫 1972年版)
무로노토마리室の泊 이야기는 유녀가 호넨스님이 귀양길을 가는 중에
이는 호넨스님이 귀양길을 가던 중 무로노토마리에서 한 유녀와 관계된 이야기입니다.
하리마의 무로노토마리 항구에 도착하였을 때 유녀를 태운 배가 다가왔다. 유녀가 호넨 스님에게 말했다. “세상에 사는 길이 여러 가지일터인데 전생에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나는
Arriving at the harbor of Muro-no-tomari in Harima, Honen was approached by a small boat(小船一艘 소선일소) carrying a prostitute. She said to him, "Many are the ways through the world, what great sin could I have committed in a former Life to bring me to such a situation of heavy sins? How may I rid myself of them?" Honen replied with great pity, "Truly such a life is heavy with iniquity, the extent of its retribution is indeed incalculable. Try to find some other livelihood if you can and change your ways as soon as possible. If this proves impossible, if the intention to sacrifice your very life in seeking for salvation has not arisen in your heart, then stay what you are and repeat earnestly the Nembutsu. It is for the
sake of just such sin-laden people that Amida Nyorai has taken the Vow of universal salvation. Put all your trust and faith in his Original Prayer and do not abase yourself. Place your faith in the Prayer and repeat the Nembutsu and you will certainly be reborn in the Pure Land." Upon receiving this kind-hearted advice
she wept with joy. Later, Honen told his followers that her faith was very firm and that she was certain to attain Ojo. When his exile was ended and he was returning home, Honen called at the village where he had taught her, and inquired about her. He was told that upon receiving his instruction she had gone to live in a
village in the mountains where she had practiced the Nembutsu single-heartedly. Soon after she had died. on her deathbed she is said to have rightly achieved Ojo. This pleased Honen extremely, and confirmed his opinion of her.
Japanese Spirituality by Daisetz Suzuki translated by Norman Waddell 1972
https://terebess.hu/zen/mesterek/Suzuki-Japanese-Spirituality.pdf 93ㅉ
はべる [侍る] 일본어
발음
뜻① 곁에 모시다 ② 곁에 가까이 있다 더보기
숙어
おそばに侍はべる 곁에 모시다
宴席えんせきに侍はべる芸者げいしゃ 연회석에 시중드는 기생.
となり [隣] 일본어
발음
뜻① 옆 ② 이웃 ③ 이웃집 더보기
숙어
隣となりの席せき 옆 자리.
隣となりの家いえ 이웃집
「同国室の泊につき給うに、小船一艘(소선일소)ちかづきたる。これ遊女が船なりけり。遊女申さく、上人の御船のよし、うけたまわりて推参してはべるなり。世をわたる道まちまちなり、いかなる罪ありてかかかる身となりはべるらん。
この罪障おもき身いかにしてか後の世たすかり候べきと申しければ、
上人あわれみてのたまわく、げにもさようにて世をわたり給わらん罪障まことにかろからざれば、酬報またはかりがたし。もしかからずして世をわたり給いぬべきはかりごとあれば、すみやかにそのわざをすて給うべし。もし余りはかりごともなく、また身命をかえりみざるほどの道心いまだ起り給わずば、ただそのままにて、もはら念仏すべし。弥陀如来はさようなる罪人のためにこそ、弘誓(ぐぜい)をもたてたまえることにてはべれ。ただふかく本願をたのみて、あえて卑下することなかれ。本願をたのみて念仏せば、往生うたがいあるまじきよし、ねんごろに教え給いければ、遊女随喜の涙をながしおり」(107頁)鈴木大拙 著 『日本的霊性』(岩波文庫 1972年版)
泊 듣기 JLPT 2 中学 인명한자 단어장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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とまる·とめる
총획수
8획
부수
氵 (3획)
한국한자
泊 (머무를 박/배 댈 박, 잔 물결 백)
室の泊の遊女の話
鴨長明の「発心集」を見ていたら、こんな話が載っていた。興味深い話だから紹介することにした。参考のために、末尾に原文を掲載したので、興味のある方はご覧いただきたい。
● 室の泊の遊女が、俗謡を歌って、上人に成仏を願うこと。
ひところ、少将の聖(ひじり)といふ人がいたそうだ。ついでがあって、播磨(はりま)の国の、室(むろ)という所に泊まった夜のこと、月がくもりもなく照って、たいそう美しいので、遊女たちはわれもわれもと競い歌いながら舟で行き違う。「気の毒なものたちのありさまだ」とながめていると、ある遊女の舟が、この聖が乗っている舟をめざしてこぎ寄せてきた。聖の舟の船頭のような男が、「いやはや、これは僧のお乗りになっている舟だ。思いちがいをなさっ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厳しい口調で言う。「そのように拝見しております。どうして、そんな見間違いをするものですか」と言って、鼓を打ちながら、
くらきより闇(くら)き道にぞ入りぬべき
遙かに照らせ山の端の月
罪深い私は、闇から闇へと迷い込んでしまいます。
山の端の月のように、
どうか、私を照らして導いてください。
と、この歌を二三遍ほど歌って、「こんな罪深い身になったのも、宿世(すくせ)の報いでございましょう。この世は、夢のように、迷いのままで終わってゆくことでしょう。必ずお救いくださいね。しるしばかりの結縁をお願い申し上げるのです」と言って、こぎ離れて行ったそうだ。「思わず哀れに思われて、涙をおとした」と、後に、少将の聖は人に語ったそうだ。
この世が辛いことは今も昔も変わらない。かつては、そうした人たちを支えた宗教家がいたのである。ただ現在、この国には、苦しんでいる者たちとともに生きる宗教家は、もはやいないというのだ。夜回り先生がいるという御仁もあろうが、教員は教壇で仕事をすべきもので、それ以上でもそれ以下でもない。詩人でもなければ、歌人でも、俳人でもない。早々に教壇から去ることである。
室の泊の遊君、鄭曲(ていきょく)を吟じて上人に結縁する事
中ごろ、少将聖と云ふ人ありけり。事の便りありて、播磨(はりま)の国、室と云ふ所にとまりたりける夜、月くまなくていと面白かりけるに、遊女われもわれもとうたひて行きちがふ。「あはれなる者の様かな」と見る程に、ある遊女の舟、この聖の乗りたる舟をさしてこぎ寄せければ、梶取やうの者、「否や、これは僧の御舟なり。思ひたがへ給へるか」と、事の外に云ふ。「さ見奉る。何とてかは、さる辟目(ひがめ)は見るものかは」と云ひて、鼓(つづみ)打ちて、
くらきより闇(くら)き道にぞ入りぬべき
遙かに照らせ山の端の月
と、此の歌を二三遍ばかりうたひて、「かかる罪ふかき身になれるも、さるべき報ひに侍るべし。此の世は夢にてやみなむとす。必ず救ひ給ひなん。心ばかり縁を結び奉るなり」と云ひて、こぎはなれにけり。「思はずあはれに覚えて、涙を落したり」と、後に人に語りける。
室の泊 = 兵庫県たつの市御津町にある港。かつて、遊女町があった。
鄭曲 = 鄭の国の音楽で、みだらな曲とされた。ここでは、俗謡ぐらいの意味。
少将聖 = 源雅信の子。時叙(ときのぶ)。従五位下右少将。
くらきより = 和泉式部の歌。
承元の法難(じょうげんのほうなん)は、後鳥羽上皇によって法然の門弟4人が死罪とされ、法然と親鸞ら7人が流罪にされた事件。建永の法難(けんえいのほうなん)とも。
「南無阿弥陀仏を認めるか認めないか」という純粋な宗教的対立がきっかけとなった事件ではない。法然の門弟たちが後鳥羽上皇の寵愛する女官たちと密通したうえ、上皇の留守中に彼女たちが出家してしまったため、後鳥羽上皇の逆鱗に触れたという話で、密通事件さえ起きなければ、宗教がもとで人が死ぬことはなかったと言える[1]。
概要[編集]
延暦寺からの批判[編集]
- 「延暦寺奏状」
- 延暦寺三千大衆 法師等 誠惶誠恐謹言
- 天裁を蒙り一向専修の濫行を停止せられることを請う子細の状
- 一、弥陀念仏を以て別に宗を建てるべからずの事
- 一、一向専修の党類、神明に向背す不当の事
- 一、一向専修、倭漢の礼に快からざる事
- 一、諸教修行を捨てて専念弥陀仏が廣行流布す時節の未だ至らざる事
- 一、一向専修の輩、経に背き師に逆う事
- 一、一向専修の濫悪を停止して護国の諸宗を興隆せらるべき事
興福寺からの批判[編集]
元久2年(1205年)9月、興福寺の僧徒から朝廷へ法然に対する提訴が行われ、翌月には改めて法然に対する九箇条の過失(「興福寺奏状」)を挙げ、朝廷に専修念仏の停止を訴える[注釈 1]。
法然の対応[編集]
元久元年(1204年)11月、法然は、自戒の決意を示すべく記した「七箇条制誡」に門弟ら190名の署名を添えて延暦寺に送ろった。しかし、『一念往生義』を説く法本房行空や『六時礼讃』に節をつけて勤める法会で人気を博していた安楽房遵西が非難の的にされた。法然は行空を破門したものの、事態は収まらなかった。
朝廷の対応[編集]
朝廷は、朝廷内部にも信者がいることもあり「法然の門弟の一部には不良行為を行う者もいるだろう」と比較的静観し、興福寺に対しては元久2年12月19日に法然の「門弟の浅智」を非難して師匠である法然を宥免する宣旨が出された。これに納得しない興福寺の衆徒は翌元久3年[注釈 2]2月に五師三綱の高僧を上洛させ、摂関家に対して法然らの処罰を働きかけた[注釈 3]。その結果、3月30日に遵西と行空を処罰することを確約した宣旨を出したところ、同日に法然が行空を破門にしたことから、興福寺側も一旦これを受け入れたため、その他の僧侶に対しては厳罰は処さずにいた。ところが、5月に入ると再び興福寺側から強い処分を望む意見が届けられ、朝廷では連日協議が続けられた。ところが興福寺奏状には「八宗同心の訴訟」であると高らかに謳っていたにも関わらず、先に訴えを起こした延暦寺でさえ共同行動の動きは見られず、当事者である興福寺側の意見が必ずしも一致していないことが明らかとなったために、朝廷の協議もうやむやのうちに終わった。朝廷が危惧した春日神木を伴う強訴もなく、6月には摂政に就任した近衛家実を祝するために興福寺別当らが上洛するなど、興福寺側も朝廷の回答遅延に反発するような動きは見られず、このまま事態は収拾されるかと思われた。そして、実際に法然らの流罪までに延暦寺や興福寺が何らかの具体的な行動を起こしたことを示す記録は残されていない。
転機[編集]
建永元年(1206年)12月頃、後鳥羽上皇の熊野御幸の間に安楽房遵西と住蓮が鹿ヶ谷で開いた別時念仏会に院の女房らが参加した[2]。『愚管抄』によれば、彼女たちは安楽房の説法を聞くために彼らを上皇不在の御所に招き入れ、夜遅くなったからとしてそのまま御所に泊めたとされている。彼女らの中に出家をする者があった[2]。出家したのは松虫(松虫姫)と鈴虫(鈴虫姫)という名前の女性だったという説がある[要出典]。
法難[編集]
松虫と鈴虫が出家し尼僧となったことに加えて、男性を自分の不在中に御所内に泊めたことを知った後鳥羽上皇は憤怒し、建永2年[注釈 4](1207年)2月、専修念仏の停止を決定[注釈 5]。住蓮房・安楽房に死罪を言い渡し、安楽房は六條河原において、住蓮房は近江国馬渕にて処される[注釈 6]。その他に、西意善綽房・性願房の2名も死罪に処される[注釈 7]。
同月28日、怒りの治まらない上皇は、法然ならびに親鸞を含む7名の弟子を流罪に処した。法然は、土佐国番田(現、高知県)へ、親鸞は越後国国府(現、新潟県)へ配流される。 この時、法然・親鸞は僧籍を剥奪される。法然は「藤井元彦」の俗名を与えられ、親鸞は「藤井善信」(ふじいよしざね)を与えられる[注釈 8]。
しかし法然は土佐まで赴くことはなく、円証(九条兼実)[注釈 9]の庇護により、九条家領地の讃岐国(現、香川県)に配流地が変更され、讃岐で10ヶ月ほど布教する。
その後、法然に対し赦免[注釈 10]の宣旨が下った。しかし入洛は許されなかったため、摂津の勝尾寺(大阪府)で滞在する。ようやく建暦元年(1211年)11月、法然に入洛の許可が下り、帰京できたものの、2ヵ月後の建暦2年(1212年)1月25日、死去する。
建暦元年(1211年)11月、親鸞に対しても赦免の宣旨が下る。親鸞は、法然との再会を願うものの、時期的[注釈 11]に豪雪地帯の越後から京都へ戻ることが出来なかった。雪解けを待つ内に法然は亡くなり、師との再会は叶わないものと知る。親鸞は、子供が幼かったこともあり越後に留まることを決め、後には東国の布教にも注力することになる。
脚注[編集]
注釈[編集]
- ^ 興福寺奏状…通説では興福寺出身で当時笠置寺に居た貞慶によるものとされているが、森新之介は九箇条の失を掲げた本文と法然らの処分を求めた副状と呼ばれる部分は本来は別の人物によって書かれた2通の奏状が誤って1つの文書にされたものであり、興福寺内部は本文を執筆した貞慶らの集団と明確に法然の処罰を求めた副状を作成した集団に分かれていて、専修念仏に対する統一した意見が存在しなかったとする。
- ^ 元久3年…元久3年4月27日に、「建永」と改元する。
- ^ 五師三綱の上洛…興福寺奏状を2つの別の書状とみる森新之介は、この時興福寺に対応した摂関家の家司三条長兼の日記『三長記』の元久2年20・21日条より、貞慶の奏状が興福寺の総意で提出されたものでその内容に朝廷が応じる形で12月の宣旨が出されたと認識していた摂関家側と貞慶の奏状の存在を知らず興福寺の意見も聞かずに12月に宥免の宣旨が出されたと認識していた五師三綱側の間で話が噛み合わなかったことを指摘し、話を進めるうちに貞慶の奏状のことを知った五師三綱側は興福寺の内部不統一が発覚することを恐れて、最終的には遵西・行空の処罰で妥協せざるを得なかったとする。なお、森は興福寺奏状における貞慶の筆でない部分(いわゆる「副状」部分)はこの時に五師三綱側が出した奏状と推定する。
- ^ 建永2年…建永2年10月25日に、「承元」と改元する。
- ^ 専修念仏の停止…念仏停止令の存在については、日蓮編纂の「念仏者令追放宣旨御教書列五篇勘文状」所収の建保7年閏2月8日付官宣旨に記された「建永二年春、以厳制五箇条裁許官符」の文言及び『法然上人伝記』9巻本巻6上に記された「建永二年丁卯二月、念仏の行人に下さるゝ宣旨」の文言から建永2年2月と推定されている。ただし、上横手雅敬は前者は浄土宗攻撃のための編纂物でかつ太政官符の具体的内容の記述が無いこと、後者は法然礼讃のための著作であり、ともにその真実を伝えているとは言い難く、史実として確定できるのは、念仏停止令の宣下の見込みを伝える『明月記』の記事がある建永2年1月24日以後に停止令が出された可能性があるとする推定だけで、念仏停止令が実際に出されたのかも不明で、更に同令と延暦寺・興福寺の訴え、法然・親鸞の流罪の3つの出来事の関連性を同時代の史料から認めることは出来ないとする。一方、森新之介は何らかの宣旨・命令が出されたとするのは事実としながらも、「念仏停止」と「専修念仏者への制止」は別のものであると指摘し、後鳥羽上皇の命令は念仏停止令ではなく専修念仏者の問題行動を制止するためのものであり、法然の流罪は住蓮房・安楽房の行動を制止できなかったことが上皇に対する奏事不実とみなされたものとする。
- ^ 法然門人らの処刑…これは念仏行為が原因というよりも、後鳥羽上皇が側近女性と住蓮房・安楽房らが密通をしたと疑った可能性の方が高いとされる。なお、彼らの処刑については浄土宗側の記録にしか記されておらず、公家政権側の記録・日記類には記されていない(同時代の『愚管抄』が斬首の事実のみを記している)ため、上横手雅敬は上皇が法的手続ではなく側近に命じて私的に殺害させた可能性を示しているとし、森新之介はそもそも処刑を上皇の命令とする根拠は親鸞の『教行信証』後序にしか存在しないことから、住蓮房・安楽房の処刑は当時横行していた検非違使による恣意的な殺害であって、突然の両名の処刑を知った親鸞が朝廷内部の事情に通じないまま憶測で書いてしまった可能性を指摘している。
- ^ 善綽房(西意)・性願房の処刑…『歎異抄』や『法水分流記』によって知られることから、善綽房・性願房も法難による処刑者と解するのが通説であるが、同時代の『愚管抄』には処刑されたのは住蓮房・安楽房の2名と記されており、他の同時代史料にも善綽房・性願房の名前が登場しないことから、事実誤認や別の事件との混同の可能性が考えられる。
- ^ 法然門人の配流…親鸞ら法然門人の配流は『教行信証』後序・『歎異抄』などに書かれて古くから知られているが、諸記録から確認できる法然の配流と異なって死罪となった住蓮房・安楽房以外の門人の処罰を裏付ける記録は存在しない(なお、配流された門人を7名とするのは『歎異抄』によるものである)。喜田貞吉(「教行信証に関する疑問に就いて(第一回)」(1922))は法然以外に配流者があった事実はないとし、辻善之助(「教行信証後序問題 其一」(1922))は正式な処罰以外にも検非違使などによって京を追われたり地方に下った者もいたと推測する。坪井俊映(「浄土宗と真宗の論争」(初出不明:所載文献1982)は法難の3年前に故郷の筑後国に下った法然門人・弁長の行動を「配流」と表現していることを指摘して、地方下向を「配流」と表現する用法が存在した可能性を指摘する。森新之介は当時の越後権介藤原宗業(建永2年1月13日任命)が親鸞の伯父であることを指摘して、親鸞が法難を恐れて自主的に越後国に下ったとする[3]。
- ^ 九条兼実…出家し「円証」と号する。実弟に、太政大臣の藤原兼房、天台座主の慈円がいる。
- ^ 赦免…文献により異なる。承元2年(1207年)12月・承元4年(1210年)・建暦元年(1211年)11月と諸説存在する。
- ^ 建暦元年(1211年)11月…新暦で換算すると12月~1月。
出典[編集]
参考文献[編集]
- 高橋良和 著『法然の生涯』法藏館、1986年。ISBN 978-4-8318-2304-5。
- 千葉乗隆 著『浄土真宗』ナツメ社〈図解雑学〉、2005年。ISBN 4-8163-3822-5。
- 本多弘之 監修『知識ゼロからの親鸞入門』幻冬舎、2009年。ISBN 978-4-344-90148-3。
- 上横手雅敬「「建永の法難」について」『鎌倉時代の権力と制度』思文閣出版、2008年、pp. 235-260。ISBN 978-4-7842-1432-7。
- 森新之介「興福寺の訴訟と専修念仏者への朝譴」『摂関院政期思想史研究』思文閣出版、2013年、pp. 241-309。ISBN 978-4-7842-16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