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념1
아는 척 한 경우보다 모르는 척 한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니 아는 걸 안다고 하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것이 정말 아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논어에 따르면 많이 어긋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르는 경우 모른다고 한 경우 또한 적지는 않다. 문제는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고 물었을 때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때와 곳에 따라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알게된다. 질문을 주문하는 공개 세미나일지라도 일일이 손드는 모든 사람들의 지적 상태를 배려해 주지 않는다. 현실적이 충분한 이유가 있어 그런 것이기에 큰 불평꺼리도 아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모른다고 질문하는 사람들은 그런 공개된 자리에서도 소수이고 대부분 자신의 고견을 피력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때 공공의 피해가 가는 경우가 덮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사고와 행위는 차원이 다른 영역임을 알 필요가 있다.
입법과 집행과 사법이 전혀 질이 다른 것처럼 작용하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공자의 말씀 또한 그 차원에 적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삶은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중층의 모순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복잡계이다. 그러므로 어렵다. 다시 말하면 쉬운듯 어렵고 어려운듯 쉽다. 일도양단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삶이 스승이 되는 것이다.
삶은 날강도같기도 하고 때로 드물지만 천국같기도 하다. 삶의 모습이 늘 그랬다. 나쁜 놈들이 힘은 세서 늘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억울한 죽음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말같지 않은 말(지록위마의 경우가 적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생각이다)을 따라하게 만들었다.
성인도 지그름을 모른다는 말을 나이드신 분으로부터 들을 때 싱긋이 웃으며 아무말 못하는 것은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일리가 있다는 말은 다양성의 원리를 지탱하는 핵심축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 잘 살펴보면 일리가 있다는 것이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무기가 되는 것이다. 물론 전체주의의를 뒷받침할 수도 있다.
격언의 왕이 없는 세계의 격언들의 공존, 그것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나라의 헌법 제1조1항이다. 저마다 하나의 진리이기에 보편적인 진리는 거부되는 것이 추출된 제1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