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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하와의 대화

VIS VITALIS 2017. 5. 1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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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에 정말 먼지나도록 주패야 정신차리지

-와, 인성보소, 그러는게 사람이야?

-하도 말 안들으니 그렇지

-그래, 그래라. 악하고 대항할 생각은 없다.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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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좋은 곳으로 보내고 싶다. 거기 정말 좋아.

-거기가 어딘데?

-하느님, 우리 아빠 좋은 데로 빨리 가게 해주세요.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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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무지개를 꽃으로 때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무지개를 어떻게 때려? 그런데 어떻게 되는데?

-무지개가 무지게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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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하가 손으로 오른쪽 턱을 괴고 앉아 있다.

-아빠 모르겠어?

-뭐?

-아빠가 맘에 안든다는거.

-그래서 뭐?

-이게 안보여?

그래서 자세히 가하의 오른손을 보니 중지만 볼태기에 대고있다.

가하 말대로 "워~더 빠악(Waterpark)"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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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냉장고에서 우유 가져와 컵에다 따라줘

-못하겠는데. 혼자 해야지 손이 없어 발이 없어?

-기운이 없어.

그러고는 뒤로 발라당 자빠져 앓는 척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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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짐승이 사람이고 사람이 짐승이야. 사람이 짐승보다도 못해. 

사람은 사람끼리 막죽여, 개잔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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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후회를 왜 하는지 알아?

-왜 하는데?

-인생이 1회용이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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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바보 아니다. 잘 봐라. 니 눈까리 까잤나?

하자 가하가 받아친다.

-잘 생각해봐라. 니 대가리 까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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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하야, 조금 전에 얘기한 것 잘 기억해뒀다가 아빠 잊으면 말해줘

-싫어

-왜?

-생긴게 맘에 안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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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이다. 가하가 말한다.

-인생이 가는게 기분이 나쁘다. 자유로우면서도 공부하는 거 없어? 자유가 공부보다 소중하잖아.

-자유롭게 공부하면 되잖아.

-인생이 가는 게 기분 나쁜 것 말고 또 기분 나쁜게 뭔지 알아?

-뭔데?

-아빠가 옆에 있어서 떠블로 기분이 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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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글쎄, 누굴까? 힌트를 줘야 알지.

조금 있다 가하가 내 앞에 와 나를 부른다. "힌트야!"라고.

나를 '힌트'라고 부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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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하가 다섯시 오십분에 방과후 영어가 끝나는 화요일 오후 내게 전화를 한다.

충무로에는 조금 비가 흩뿌려 가하에게 비가 올 것 같은지 오고 있는지 얼마나 

오는지 물었다.

-아빠, 하늘이 까무잡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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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사람들이 맛나는 것이나 아주 귀한 비단이나 다이아몬드같은 것을 보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모르겠는데. 어떻게 되는데?

-눈이 말랑말랑해져. 진심이야 정말 그렇게 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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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궁금한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무엇이든.

-아빠는 왜 이렇게 생겼어? 마음에 안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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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많이 부는 토요일 오후(2017.5.13), 가하가 아랫층에서 바람을 쐬며 즐거워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2층에 올라가 바람을 맞아본다. 풍선도 날려본다.


"이런 날에 열기구 타고 하늘로 올라가고 싶네. 번개가 걱정되긴 하지만"

라고 하자

"행글라이더가 더 좋지 않을까" 라고 가하가 말한다.

"행글라이더 타고 높이 날다 뒤집어지면 큰일 날걸"하자 

가하가 "큰 일은? 곧바로 죽는거지. 잘 가라 인생아 그 동안 수고 많았어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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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하가 주말에 옆에서 노래를 부른다.


"외식하기 딱 좋은 날이네."

"치킨 먹기 딱 좋은 날이네."

"시켜먹기 딱 좋은 날이네."


못들은 척하고 한글작업 바삐하고 있는데

말을 더 보탠다.


"달랑 치킨 하나 못사주나 하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럴려고 아빠의 아들이 되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무엇으로도 아빠의 마음을 달래드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럴려고 아빠와 같이 살았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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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까?

-갑자기 왜? 말안해줘도 될 것 같은데, 안좋은 소리할 거잖아.

-아빠는 운전을 정말 잘하는 사람이야.

-옛날에는 잘했지. 군대에서 운전 배우고 여러 종류의 차를 몰아봤지.

-아빠는 기관차 운전을 정말 잘해.

-기관차 운전은 한 적이 없는데...

-아빠는 운전을 정말 정말 잘하는데 문제가 뭔지 알아?

-뭐?

-잇지를 못해.

-뭘 못잇는데?

-기차와 기차를 잇지를 못해.

-무슨 뜻인데?

-싣지를 못해.

-왜?

-실어 나를 수가 없어. 이어붙여야 실거나 탈 것 아니야. 그런데

아무 것도 달지 않고 아빠가 운전하는 기차만 달려. 아빠는 정말 운전을 잘한다니까.

그런데 잇지를 않고 달려. 잇는 방법을 몰라. 아빠는 운전 실력이 있으니까.

-그래서 뭐?

-그런데 아빠와 반대되는 사람들이 뭔지 알아?

-아니

-잇는 것은 정말 잘 해. 그래서 짐을 정말 많이 실어. 그런데 운전을 못해. 운전 실력이 없어.

그래서 못움직여. 움직여도 아주 천천히 움직여.


뜬금없이, 마치 생각이 난듯이, 화장실에서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을 때 문 앞까지 와 이렇게

가하가 말한다.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지만......귀여운 녀석, 가하에게 들킨 것이 있나보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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