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체체(감사합니다)
“용서해라, 그래야만 진정으로 행복해진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로 비폭력 노선을 견지하며 독립운동을 이끌고, 티베트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는데 주력한 공로로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달라이라마의 말이다. 무력을 앞세운 중국에 비폭력으로 저항하다 나라를 빼앗긴 지도자의 이 말은 지구촌의 이목을 티베트와 티베트불교로 집중시켰고, 이후 티베트불교는 전 세계적 관심의 대상이 됐다. 그리고 오늘날 티베트를 소재로 한 서적, 영화, 음반 같은 문화 인프라가 형성되면서 티베트 신드롬을 불러오게 한 단초가 됐다.
덕분에 티베트불교는 튼튼한 조직력과 독특한 인프라를 함께 갖춘 대중적 종교로 서구사회에 자리 잡았고, 제14대 달라이라마 텐진 갸쵸에 대한 존경심을 바탕으로 한 티베트불교 신드롬은 이제 서구를 넘어 지구촌 곳곳에서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한국사회에도 티베트, 특히 티베트불교의 물결이 넘실대기 시작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티베트는 아직도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최근까지 무려 130여명의 승려들이 독립을 기원하는 소신공양을 이어갈 만큼 그들의 서원은 절박하다. 하지만 중국은 요지부동이고, 티베트인들의 고통은 그만큼 끝을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과연 그곳, 티베트 본토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티베트인들은 왜 그토록 독립을 갈구하고 있으며, 무엇이 승려들이 자기 몸에 불을 붙이는 소신공양을 이어갈 수밖에 없도록 하고 있을까?
‘가둘 수 없는 영혼’은 바로 그러한 물음에 답을 주고 있다.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한 후 티베트 사람들의 3분의 1이 죽었고, 6000여 개의 사찰이 파괴당했다. 또한 15만 명 이상의 승려들이 강제로 환속당하거나 감옥, 혹은 노동수용소로 끌려갔다. 유서 깊은 불교문명과 전통을 잃은 것은 물론이고 굶주림과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한때 숨어 있는 이상향으로 불리던 티베트의 본 모습을 잃은 현실이다. 책은 그러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기록했다. 더불어 티베트인들이 중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이유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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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둘 수 없는 영혼’ / 팔덴 갸초 지음 / 정희재 옮김 / 르네상스 |
31년 투옥 라마승이 기록한 티베트 현실
중국이 정치범으로 몰아 31년 동안이나 감옥에 가두었던 라마승 팔덴 갸초가 달라이라마의 권유로 쓰게 된 이 책은 티베트의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진보와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한 체제가 저지른 행위가 얼마나 잔혹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일감 스님은 여기서 영혼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고, 문화와 의식의 파괴가 비단 티베트라는 특정지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님을 읽었다. 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이유도 확연하게 보게 됐다.
저자 팔덴은 티베트가 아직은 전통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었던 1933년, 냥추강이 흐르는 창 평원의 조용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열 살 나이에 사원에 들어간 그는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고향 밖 세상을 알지 못했다. 깊은 신앙심을 품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생기 넘치는 삶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고 친척 아주머니를 어머니로 알고 자랐기에 그의 어린 시절도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그 시절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평화롭기만 하던 그의 삶은 승려 서약을 하고 정식 출가한 1952년 중국군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58년 라싸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자 중국군은 본격적으로 본색을 드러내 잔인하게 티베트를 유린했다. 그 과정에서 전통 깊은 데붕사원에서 수행하던 팔덴은 스승을 부축해 그곳을 탈출했으나, 곧 사원이 파괴된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뿐만아니라 안전할 것이라 믿고 찾아간 고향마을 작은 사원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가혹한 현실을 마주해야만 했다. 각자 자리에서 순박하게 공동체의 삶을 꾸려가던 마을 사람들은 중국군의 협박과 회유에 못 이겨 이웃과 사원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승려들도 나쁜 계급으로 몰려 비판받았다. 그때 지주의 아들이자 승려인 팔덴은 가장 ‘나쁜 계급’으로 분류돼 비난과 비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팔덴은 이어 스승이 인도 스파이로 몰리면서 정치범으로 수감되는 비운을 맞았다. 감옥에서 31년을 살아내는 동안 끝없는 고문, 굶주림, 강제노역, 사상교육에 시달렸고, 감옥 밖 아버지와 형은 악질 지주라는 비난 속에 목숨을 잃었다. 감옥에서 그가 겪은 일들은 차마 말과 글로 옮기기 어려울 정도로 가혹한 것이었다. 특히 움직일 때마다 조여오는 족쇄의 공포는 떨치기 힘든 두려움이었고, 전기봉 고문으로 이가 모두 빠지기까지 했다. 여기에 더해 동료들을 고발하고, 고발당해야 했던 비인간적 행위를 포함해 계속해서 반복되는 처형과 자살은 정말이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덴은 이 책에서 시종일관 동정심과 자비심을 잃지 않았다. 그 동정과 자비는 고통을 주었던 사람들에게까지 동등하게 적용됐다. 그래서 독자들로 하여금 특별한 상황이 사람들을 그토록 잔인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무의식중에 깨닫게 하고, 폭력과 증오의 유혹에 휩싸이기 쉬운 인간성 자체를 성찰하게 한다. 티베트의 현실을 직시하게 한 책이 그 가치를 더한 이유였다.
육체적 고문보다 무서운 정신의 파괴
일감 스님은 먼저 팔덴의 생생한 증언이 기록된 책에서 중국군의 비인간적 행태와 이념을 앞세운 체제 강요가 불러온 부정적 요소에 주목했다. 그 중에서도 육체적 고통과 억압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문화와 의식세계를 파괴했을 때 나타나는 절망에 더욱 집중했다. “우리도 지난 세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민족문화말살에 따른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지 여실히 확인했고, 체제를 강제하기 위해 이념을 앞세울 때 얼마나 많은 고통과 후유증이 따르게 되는지 경험했었다”며 지금 티베트 본토에서 일어나는 일이 과연 그곳에만 국한된 일인지 되짚어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력을 앞세워 몸을 구속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정신까지 무력으로 가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힘을 가진 자들이 육체적 고통을 지속적으로 가하며 약자들을 분열시킬 땐 의식세계까지도 차츰 지배하게 된다. 지난 세월 우리역사는 그것을 고스란히 경험했다. 하지만 스님은 단순히 지난 일이거나, 티베트의 일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한쪽으로 치우친 사상은 얼마든지 한 민족이나 한 집단이 수 백 년, 수 천 년 쌓아온 문명이나 경험의 지혜들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으며 그것은 지금 시대에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잘못된 권력이나 잘못된 정권 앞에서 옳음을 조금이라도 양보할 때, 그것이 빌미가 돼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역설한다. 스님이 “항상 깨어 있는 눈으로 우리사회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핍박의 역사는 언제나 반복될 수 있다
티베트 라마승의 31년 감옥 생활을 증언한 책에서 드러난 중국의 티베트 탄압은 우리가 핍박 받아온 지난날의 역사와도 다르지 않았다. 스님은 특히 ‘부처, 통곡하다: 조선오백년 불교탄압사’를 떠올렸다. 고려 말기 불교의 폐해와 모순을 타파해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정치 이념으로 출발한 조선시대는 불교 수난시대였다. 그동안 막연하게 배불, 억불의 시대로만 생각했던 조선의 불교탄압사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책이었다. 국가의 정책과 관리, 각종 사건과 통계 등 다양한 사료가 있는 조선왕조실록의 기사 중 불교 탄압의 증거를 뽑아 사찰과 승려로 나누어 실었고, 덕분에 탄압의 증거들을 세밀하게 분석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때 승군 활동이 이후 기록에서 점차 왜곡되면서 나중에는 승려들이 폭도로까지 묘사되는 과정을 볼 수 있었지요. 권력자나 점령자의 탄압과 핍박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진실은 왜곡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항상 깨어 있지 못하면 진실이 굴절되고, 불행한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바르게 보는 눈을 잃는 순간 우리는 사상의 노예가 되고 자본의 노예가 될 것”이라며 다소 격하게 표현하는 것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이 현재를 바라보는 냉철함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비록 몸은 마음대로 할 수 없어도 영혼만큼은 갇히지 않고 자기 의식세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스님이 “잔인한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겐 희생자가 그 힘을 인정하지 않는 것만큼 모욕적인 게 없다. 인간의 몸은 엄청난 고통을 견디고도 회복할 수 있다. 육체에 난 상처는 언젠가는 치유된다. 그러나 영혼은 한번 파괴되면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난다.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낙담 속에 방치할 수 없었다. 우리는 우리가 지닌 신념과 티베트의 독립과 정의를 위해서 싸운다는 믿음에서 힘을 얻었다”는 팔덴의 말에 공감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생사의 기로에서 빛난 영혼의 힘
중국 치하에서 살아가는 티베트인들의 삶은 그야말로 고통의 연속이다. 특히 감옥에서의 나날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따르는 시간이었다. 냇가에서 목을 축이고 손에 묻은 물을 털어냈다가 종교적인 행동을 했다며 구타를 당하고, 모택동 사진에 손톱자국을 낸 실수가 목숨을 위협하기도 했다.
그러한 위협과 공포는 사람들의 영혼까지 가두기도 했다. 한 승려가 죽음의 공포 앞에서 “달라이라마는 인민의 적”이라고 소리쳐 처형 순간을 모면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의 일이었고, 또 다른 일부에서는 영혼이 더욱 강한 빛을 발하기도 했다. 달라이라마가 어렸을 때 티베트를 통치하던 탁바 섭정의 집사장을 지낸 페마 돈덴의 모습이 그랬다. 그는 “당은 너의 생존권을 뺏기로 결정했다”는 말에 진심으로 기뻐하며 “투체체(감사합니다)”라고 답한다. 그리고는 티베트의 옛 속담을 읊었다. “행복하게 오래 사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짧고 불행한 삶이 훨씬 더 좋다”고. 그러한 페마의 반응은 중국의 힘을 하찮고 무력하게 만들었고, 태연한 모습은 그들의 잔인함을 무의미하게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스스로 지키고 가꿔온 영혼의 힘이었다. 일감 스님은 이 대목에서 스님들과 불자들의 자기 수행 점검 필요성을 언급했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진실할 수 있는가, 그만큼 진리를 따르고 있는가 하는 자문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백년에 한번 물 위로 머리를 내미는 거북이 바다 한가운데서 구멍 뚫린 나무판자를 만난다’는 것을 맹구우목(盲龜遇木)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어려운 인연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서 자비와 생명존중의 지혜를 배운 스님과 불자들이 진실의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지 돌이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티베트인들이 몸과 마음을 옥죄는 고통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영혼의 힘을 더욱 깊고 단단하게 한 것처럼, 나 자신을 바로보고 또한 내가 살아가는 이 사회를 바로 보는 영혼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진리를 향한 열정이 지킨 의식세계
팔덴은 인도인 스승을 스파이로 고발하도록 종용당했으나 결코 스승과 영혼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 대가로 혹독한 고문을 당했음에도, 그는 잔인한 폭력에 굴하지 않았고 생에 대한 의지와 자유에 대한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31년 투옥생활 중 그의 몸을 옥죈 족쇄와 수갑은 경전이었고 감옥은 사원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그의 수감생활은 곧 수행의 여정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가 그 모진 고통을 감내한 이유는 달라이라마와의 만남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진리를 향한 열정이었다. 일감 스님은 “나는 일생 동안 이 만남을 준비해왔던 것 같다. 나는 바람에 떨며 문 밖에 서 있었다”는 팔덴의 회고를 보면서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스님은 출가해서 ‘어렵고 힘들 때는 아침에 일어나서 삭발한 머리를 만져보라’는 말을 몇 차례 들었다. 이것은 머리를 만지면서 부처님 법을 배우고 펴기 위해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뜻이다. 또한 탐욕으로부터 나를 지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의 회고를 보며 “팔덴에게 있어서 달라이라마는 바로 부처님과 같은 존재였다”는데 생각이 이른 것이다. 그러니 전율이 일어날 수밖에. 그가 달라이라마를 만난다는 것은 승려가 부처님 법을 포기하지 않는 것, 불법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과 같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팔덴의 감옥생활을 “악조건 속에서도 출가자로서의 마음가짐을 잃지 않았던 시간”으로 해석한 스님은 ‘불굴의 용기를 잃지 않고 고문을 자행한 이들까지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과 자비․인내, 그리고 세상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는다. 그런 가르침이 마음의 평화와 희망을 가져다 준 것’이라는 달라이라마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그리고 “수감자들은 세상이 그 고통을 알기만 하면 지옥 구덩이에 떨어진 자신들을 도우러 올 거라는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 감옥에서 우리는 노래 부르곤 했다. ‘언젠가는 어두운 구름을 뚫고 해가 비출 것이다.’”라고 한 대목을 보면서 같은 아픔을 겪었던 한국인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국에도 티베트의 자유와 평화를 기원하는 수많은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스님은 우리나라에도 티베트인들이 적지 않게 들어와 있음을 설명하면서 그들의 독립을 마음으로라도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서재는 아날로그시대 고향 같은 곳
스님은 평소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서적을 즐겨 읽는다. 소설도 다른 사람의 의식세계를 통해 나를 돌아보는 의미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주로 역사소설을 찾는다. 그런 스님에게 책을 펼쳐드는 시간은 디지털로부터 해방돼, 아날로그시대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스님이 출가하고 수행해온 곳은 해인사지만, 김제 금산사에서 ‘내비둬 콘서트’를 진행하며 세상 사람들의 지치고 힘든 마음을 달래준 것이 인연이 되어 완주군 옥련암에 걸망을 풀었다. 올해로 3년째 서울에서 생활하면서도 옥련암을 찾아, 직접 만들어 놓은 짧은 둘레길을 걸으며 여유를 찾는다.
“거기 시골 암자에 대중방으로 사용하는 공간에 책이 조금 있는데, 그곳이 서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책을 펼치면 비로소 고향에 돌아온 느낌을 갖게 되고, 그 시간은 몸과 마음을 힐링하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스님은 총무원 기획실장이라는 중책을 맡았으면서도, 그렇게 찾는 이의 발길 드문 시골 암자에서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통해 영혼을 가꾸고 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