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환, 용수의 사유. Thirty Years of Buddhist Studies Selected Essays_Conze.pdf
Thirty Years of Buddhist Studies Selected Essays_Conze
Edward Conze
Thirty Years of Buddhist Studies Selected Essays
불교학의 최근의 진보
불교의 구원자들
대승불교
죽음에 관한 명상Medeitation
묘법화妙法華(경), 5장: 식물들에 관해서
반야바라밀 사상의 발전
반야바라밀다심경
Aṣṭasāhasrikā Prajñāpāramitā의 구성
미움, 사랑 그리고 완전한 지혜
...
Thirty Years of Buddhist Studies Selected Essays_Conze.pdf
위 피디에프 파일 28쪽
I must be content to distinguish
between three kinds of historian-the scientific, the humanistic
and the transcendental.
The first studies a butterfly after killing it and fixing it with a pin into a glass case, where it lies quite still and can leisurely be inspected from all angles.
The second lets it fly in the sun, and looks wonderingly at its pretty ways.
The third assures us that a man will know a butterfly only if he becomes one.
75쪽 대승불교
There is in Buddhism really no innovation, but what
seems so is in fact a subtle adaptation of pre-existing ideas.
Aṣṭasāhasrikā Prajñāpāramitā
Western scholars have traditionally considered the earliest sūtra in the Prajñāpāramitā class to be the Aṣṭasāhasr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 or "Perfection of Wisdom in 8,000 Lines", which was probably put in writing in the 1st century BCE.
This chronology is based on the views of Edward Conze, who largely considered dates of translation into other languages.
The first translation of the Aṣṭasāhasrikā Prajñāpāramitā into Chinese occurred in the 2nd century CE.
This text also has a corresponding version in verse format, called the Ratnaguṇasaṃcaya Gāthā, which some believe to be slightly older because it is not written in standard literary Sanskrit.
However, these findings rely on late-dating Indian texts, in which verses and mantras are often kept in more archaic forms.
Additionally, a number of scholars have proposed that the Mahāyāna Prajñāpāramitā teachings were first developed by the Caitika subsect of the Mahāsāṃghikas.
They believe that the Aṣṭasāhasr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 originated amongst the southern Mahāsāṃghika schools of the Āndhra region, along the Kṛṣṇa River.
These Mahāsāṃghika's had two famous monasteries near the Amarāvati and the Dhānyakataka, which gave their names to the schools of the Pūrvaśailas and the Aparaśailas.
Each of these schools had a copy of the Aṣṭasāhasr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 in prakrit.
Guang Xing also assesses the view of the Buddha given in the Aṣṭasāhasr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 as being that of the Mahāsāṃghika's. Edward Conze estimates that this sūtra originated around 100 BCE.
The first studies a butterfly after killing it and fixing it with a pin into a glass case, where it lies quite still and can leisurely be inspected from all angles.
The second lets it fly in the sun, and looks wonderingly at its pretty ways.
The third assures us that a man will know a butterfly only if he becomes one.
28 Thirty Years of Buddhist Studies
Hu-shih is an historian who wants to know exactly what happened, how, and in what sequence. For Suzuki, on the other hand, "Zen is above space-time relations and naturally above historical facts". Arthur Waley tried to mediate between the two with a parody of Han Shan : "Water and ice do one another no harm; History and religion-both alike are good". There is no time here to give the reasons why excessive attention to the facts of Buddhist history must do harm to the spiritual vision of the dharma. I must be content to distinguish between three kinds of historian-the scientific, the humanistic and the transcendental.
The first studies a butterfly after killing it and fixing it with a pin into a glass case, where it lies quite still and can leisurely be inspected from all angles.
The second lets it fly in the sun, and looks wonderingly at its pretty ways.
The third assures us that a man will know a butterfly only if he becomes one.
As a creative thinker Suzuki tells the descriptive
historian, whether scientific or humanistic, that Zen must be
grasped within, and not as an outside historical fact, and that
only by actually becoming Zen can one know it. Although his
demands may be rather hard on the average historian, I see no
reason to disagree with him.
Apart from Suzuki's overtowering eminence, his effect on
some Western intellectuals has provoked unfavourable
reactions. Unsuspectingly Suzuki fed an Eastern form of
spirituality into a predominantly ex-Protestant environment
which, having lost all touch with spiritual tradition, gravitated
inevitably towards a self-assertive nihilism. Stirred by his
message, a vast literature on " Zen " arose in England, France,
Italy, Germany, and the U.S.A., ranging from positively stuffy
and ultra-respectable "square" Zennists to the wild whoopees
of Mr. Kerouac and his Beatniks.1 All that there is in these
books about Zen comes from Suzuki, and he is held responsible
for the misunderstandings they contain.2 If Suzuki is to be
In this connection Allan Watt's pamphlet on Beat Zen, Sqz~nre Zen
and Zen (1959) is of some interest.
2 So Chen-chi Chang, "The nature of Ch'an (Zen) Bztddhisnz", Philosophy
East and West VI 4, 1958. Though it makes some telling points
against some of the vulgarizers, this article makes the essential soundness
of Suzuki's own work quite apparent.
Recelzt Progress in Buddhist Studies 29
blamed for anything, it is an insufficient awareness of the
aridity of the desert into which he transplanted his lovely
azalea tree.
Zen was designed to operate within emptiness.
『용수의 사유』는 ‘대승불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용수의 철학적 사유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다. 인도, 티벳, 타클라마칸 사막, 고비 사막 등지를 자전거로 여행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던 저자 신상환은 지난 10여 년간을 인도 샨띠니께탄에서 살며, 용수의 가장 유명한 저서인 <중론(근본중송)>의 산스끄리뜨어, 티벳어, 한문 그리고 영문 서적들을 탐독, 비교 연구하였다. 그 결과 철학이나 이념이 아닌 삶 그 자체를 직시하기 위해 철학 그 자체의 허구를 비판하는 용수의 사유와의 만남을 이 책에 담았다.
저자 : 신상환
저자 신상환(辛尙桓)은 1968년 전남 광양에서 출생. 순천고등학교(1986), 아주대학교 환경공학과(1993)를 졸업하고, 카라콜람 산맥을 넘어 파키스탄을 통해서 인도로 들어간 후 인도ㆍ티벳ㆍ중국 등을 여행하였다(1993~1998). 티벳 불교를 공부하기 위하여 타고르 대학으로 알려진 인도의 비스바 바라띠(VISVA-BHARATI) 대학의 인도ㆍ티벳학과(INDO-TIBETAN STUDIES)에서 티벳학 석사 및 같은 학교에서 산스크리뜨어 준석사(DIPLOMA) 등을 마쳤으며 캘커타 대학의 빠알리어과에서 찰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1999-2008). 현재 비스바 바라띠 대학의 인도ㆍ티벳학과 조교수(LECTURER)로 재직하고 있으며 티벳 경전의 한글 번역에 관심을 쏟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티벳ㆍ타클라마칸 사막ㆍ고비 사막의 자전거 여행 기록인 <세계의 지붕 자전거 타고 3만리> 등과, 역서로는 싸꺄 빤디따의 <선설보장론>이 있으며, 논문으로 '시초 단계의 초기 대승 불교에 대한 반야부의 영향ㆍ가설적 접근', '삼예 논쟁의 정치적 배경과 까마라쉬라의 수습차제에 대한 비판적 고찰', '한문 대장경에서의 밀교의 자취' 등이 있다.
추천사
한글 서문
원문 서문
일러두기
제Ⅰ장 용수 이전의 상황
1.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2. 자유사상가, 우빠니샤드의 리쉬들
3. 계율, 제2차 결집에서의 전환점
4. 반야부의 등장과 원시 대승불교
제Ⅱ장 용수의 중관사상과 이후의 변화ㆍ발전
1. 용수는 누구인가?
2. 용수의 주요 사유
3. 중관 사상의 변화ㆍ발전
제Ⅲ장 중관사상과 서구철학
1. 유사성과 차이성
2. 무르띠의 비교 연구에 대한 비판적 고찰
3. 용수의 사유와 형식 논리학
4. 비트겐슈타인의 『논리ㆍ철학 논고』에 대한 소감
결론을 대신하며
후기
부록Ⅰ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 주해
부록Ⅱ 1. 따라나타의 『인도 불교사』 제42장 간추린 부파 4종 분석
2. 각 부파의 도표
참고문헌
찾아보기
2. 각 부파의 도표425
참고 문헌435
찾아보기443
이 책 『용수의 사유』는 ‘대승불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용수(Nagarjuna)의 철학적 사유를 본격적으로 다룬 저서이다. 인도, 티벳, 타클라마칸 사막, 고비 사막 등지를 자전거로 여행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던 저자 신상환은 지난 10여 년간을 인도 샨띠니께탄에서 살며, 용수의 가장 유명한 저서인『중론(근본중송)』의 산스끄리뜨어, 티벳어, 한문 그리고 영문 서적들을 탐독, 비교 연구하였다. 그 결과 철학이나 이념이 아닌 삶 그 자체를 직시하기 위해 철학 그 자체의 허구를 비판하는 용수의 사유와 조우할 수 있었다. 그 내용이 이 저서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그런 만큼 현존하는 티벳 대장경과 한역 대장경에 수록된 ‘팔종지조사(八宗之祖師)’, ‘공사상의 전파자’로 알려진 용수의 생애와 저작들에 대해서 현미경으로 보듯 살펴보았을 뿐만 아니라, 인도 사상의 영원한 보고(寶庫)인 우빠니샤드의 영향, 부파 불교의 상황 등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 그 결과인 부록에 수록된 <이부종륜론> 주해나 여러 티벳 자료들을 이용하여 제작한 도표들은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되는 것들이다. 저자는 용수 이후의 중관사상의 발전에 대해서 다루면서 자립논증과 귀류논증으로 해석했던 기존의 논의에 대해서도 귀류논증이 원래 산스끄리뜨어의 ‘쁘라상기까(Prāsaṅgika)’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중관사상의 논리적 발달사뿐만 아니라 티벳 전통에서 강조되는 밀교를 포함한 중관사상의 발전사를 같이 보아야 할 것을 제안한다.
더 나아가 그는 ‘금세기 최고의 공(空)사상 개설서’로 소개된 무르띠의 ?불교의 중심 철학?의 오류를 지적할 뿐만 아니라, 불교도에 의한 불교 연구와 비불교도에 의한 불교 연구의 문제 등을 언급하며 후자의 문제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다. 또한 ’서구 철학을 통한 중관사상 보기’가 아닌 ‘중관사상을 통한 서구철학 보기’라는 비교 연구를 통해서 기존의 중관사상과 서구철학과의 비교 연구 등의 오류를 지적하기도 한다. 아직 한국에 채 알려지지 않은 티벳불교에서의 중관사상을 집대성한 쫑카빠의 <지혜의 대해>를 비롯한 다양한 영역 <중론> 연구서들에 대한 1차 자료의 인용 및 이에 대한 비판 또한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 저서의 가장 큰 특징은 ‘고통에서의 해방’을 설파한 붓다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것은 8불(不) 중도 연기(緣起)사상으로 ‘이것이 바로 공(空)이다’...(하략)
8불(不)로 이루어진 공(空)의 내부에 위치한 한 점의 움직임만 상상해 보자. 만약 이 한 점이 연기(상호 연관)에 의해서 이 3차원적인 공간 안에서 움직인다면, 자립논증이나 귀류논증이나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 왜냐하면 둘 다 설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이 한 점이 공간 밖으로 튀어 나가려고 할 경우에는 외벽을 이루고 있는 8불과 마주치게 된다. 부정적ㆍ반구성적인 표면과 부딪칠 때, 마치 같은 극성을 가진 전자들이 서로를 밀쳐내는 것처럼 동일한 요소, 즉 부정적인 그리고 반구성적인 귀류논증이 자립논증보다 훨씬 더 유효하게 적용된다. 이 경우, 우리는 왜 티벳불교에서 월칭을 높이 평가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다. --- p.142
세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그것의 해석은 항상 시대정신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철학의 문제는 아직도 세계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며, ‘해석’ 그 자체가 곧 ‘변혁’이다. 석학 콘쩨는 그의 『불교 연구 30년(Thirty Years of Buddhist Studies)』에서 나비에 대한 3가지 관찰법을 적어두었다. 첫 번째는 과학적(scientific) 방법으로 일단 잡아서 해부해 보면 나비의 생체를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인문주의적(humanistic), 또는 생태학적인 방법으로 나비가 알에서 태어나 애벌레가 되고 성충이 되고 나중에 고치에서 나와 나비가 되는 과정을 자연 속에서 관찰해 보는 방법이다. 세 번째는 초월적인(transcendental) 방법으로 직접 나비가 되어 보는 것이다. 나비보다 나비를 더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 p.374
한국에서는 중관사상에 대한 학문적 논의도 부족하고 극소수인 중관학자들도 일단은 일본의 학풍을 따르는 줄 알고 있다. 신상환 거사의 성정(性精) 상, 죽었다 깨어나도 기존의 논의를 반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짐작했지만 방대한 연구 자료 속에서도 8불 중도 연기사상을 공이라고 보는 논의를 진행시키는 것을 보니 중관사상을 학술적 관점에서 다룬 본격적으로 다룬 보기 드문 글이 확실하다. 청목주 『중론』뿐만 아니라 산스끄리뜨어, 티벳어 거기다 각기 다른 영문 번역본들을 살펴보며 진행한 여러 논의들의 꼼꼼함과 치밀함은 보통이 아니다.
중관 사상의 발생 전을 다루는 1장과 부록의 『이부종륜론』이나 여러 티벳 자료의 도표, 그리고 3장의 서구 철학과의 비교 등은 전문 연구자들이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대승불교가 불탑 신앙자에 의해서 시작되지 않았다는 1장의 논의나 중관사상을 통해서 서양 철학을 보는 삼법인(三法印)의 자세는 학구열을 가진 신심 깊은 불자가 아니면 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열반과 사구부정을 다루는 자세 또한 눈여겨볼만하다. 용수 보살이 ‘능상(能相)’과 ‘소상(所相)’이 따로 떨어져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는 이 글의 논의 등은 불교학계에서 세심하게 다루어지길 바란다. 이 글의 여러 성과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점은 공(空)을 학문적인 시각에서 풀면서도 결국은 이 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행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리라.
자비선사 강주, 스님
1. 이 책의 소개 / 2. 지은이 소개 / 3. 책 속에서 / 4. 추천사 / 5. 차례
1. 이 책의 소개
이 책 『용수의 사유』는 ‘대승불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용수(Nāgārjuna)의 철학적 사유를 본격적으로 다룬 저서이다. 인도, 티벳, 타클라마칸 사막, 고비 사막 등지를 자전거로 여행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던 저자 신상환은 지난 10여 년간을 인도 샨띠니께탄에서 살며, 용수의 가장 유명한 저서인『중론(근본중송)』의 산스끄리뜨어, 티벳어, 한문 그리고 영문 서적들을 탐독, 비교 연구하였다. 그 결과 철학이나 이념이 아닌 삶 그 자체를 직시하기 위해 철학 그 자체의 허구를 비판하는 용수의 사유와 조우할 수 있었다. 그 내용이 이 저서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그런 만큼 현존하는 티벳 대장경과 한역 대장경에 수록된 ‘팔종지조사(八宗之祖師)’, ‘공사상의 전파자’로 알려진 용수의 생애와 저작들에 대해서 현미경으로 보듯 살펴보았을 뿐만 아니라, 인도 사상의 영원한 보고(寶庫)인 우빠니샤드의 영향, 부파 불교의 상황 등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 그 결과인 부록에 수록된 <이부종륜론> 주해나 여러 티벳 자료들을 이용하여 제작한 도표들은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되는 것들이다. 저자는 용수 이후의 중관사상의 발전에 대해서 다루면서 자립논증과 귀류논증으로 해석했던 기존의 논의에 대해서도 귀류논증이 원래 산스끄리뜨어의 ‘쁘라상기까(Prāsaṅgika)’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중관사상의 논리적 발달사뿐만 아니라 티벳 전통에서 강조되는 밀교를 포함한 중관사상의 발전사를 같이 보아야 할 것을 제안한다.
더 나아가 그는 ‘금세기 최고의 공(空)사상 개설서’로 소개된 무르띠의 <불교의 중심 철학>의 오류를 지적할 뿐만 아니라, 불교도에 의한 불교 연구와 비불교도에 의한 불교 연구의 문제 등을 언급하며 후자의 문제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다. 또한 ’서구 철학을 통한 중관사상 보기’가 아닌 ‘중관사상을 통한 서구철학 보기’라는 비교 연구를 통해서 기존의 중관사상과 서구철학과의 비교 연구 등의 오류를 지적하기도 한다. 아직 한국에 채 알려지지 않은 티벳불교에서의 중관사상을 집대성한 쫑카빠의 <지혜의 대해>를 비롯한 다양한 영역 <중론> 연구서들에 대한 1차 자료의 인용 및 이에 대한 비판 또한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 저서의 가장 큰 특징은 ‘고통에서의 해방’을 설파한 붓다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것은 8불(不) 중도 연기(緣起)사상으로 ‘이것이 바로 공(空)이다’는 점을 강조하며, 기존의 논의들을 재해석하는 데 있다. 이것을 위해서 저자는 비트겐슈타인의 ‘그림 이론’을 사용하여 8불(不)을 입체화하여 연기의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하며 <중론> 27품의 449개 게송들의 구조를 분석하기도 한다. ‘사구부정’과 ‘통렬한 비판주의’를 「제25관열반품」에 적용하여 열반이라는 개념 또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보여준다. 더 나아가 그는 윤회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뿌드가라(Pudgala)를 비롯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정의된 모든 개념화된 범주들에서 발생하는 딜레마를 지적하며 ‘그 (이면의) 마음’과 ‘언어적 표현’이란 방법으로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결국 이 저서는 공사상으로 알려진 용수의 중관사상은 형이상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삶의 총체성을 관찰하는 지혜와 올바른 삶을 위한 도덕의 함양에 그 강조의 방점을 찍고 있다. 저자는 용수와 그의 정신적인 아들 아리아데바, 티벳현교의 도도한 흐름에 물고를 튼 까마라쉬라 그리고 한역 대장경권에서 추앙받는 꾸마라지바의 역동적인, 그리고 비극적인 삶에서 그 ‘실천이성’의 모습을 보고 있다.
2. 저자 소개
■ 신상환(辛尙桓): 1968년 전남 광양에서 출생. 순천고등학교(1986), 아주대학교 환경공학과(1993)를 졸업하고, 카라콜람 산맥을 넘어 파키스탄을 통해서 인도로 들어간 후 인도ㆍ티벳ㆍ중국 등을 여행하였다(1993~1998).
티벳 불교를 공부하기 위하여 타고르 대학으로 알려진 인도의 비스바 바라띠(Visva-Bharati) 대학의 인도ㆍ티벳학과(Indo-Tibetan Studies)에서 티벳학 석사 및 같은 학교에서 산스크리뜨어 준석사(Diploma) 등을 마쳤으며 캘커타 대학의 빠알리어과에서 찰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1999-2008).
현재 비스바 바라띠 대학의 인도ㆍ티벳학과 조교수(Lecturer)로 재직하고 있으며 티벳 경전의 한글 번역에 관심을 쏟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티벳ㆍ타클라마칸 사막ㆍ고비 사막의 자전거 여행 기록인 <세계의 지붕 자전거 타고 3만리> 등과, 역서로는 싸꺄 빤디따의 <선설보장론>이 있으며, 논문으로 「시초 단계의 초기 대승 불교에 대한 반야부의 영향ㆍ가설적 접근」, 「삼예 논쟁의 정치적 배경과 까마라쉬라의 수습차제에 대한 비판적 고찰」, 「한문 대장경에서의 밀교의 자취」 등이 있다.
3. 책 속에서
이것은 용수의 8불과 이후 논사들이 생각한 2종 무아를 통해 얻은 그림이다. 이 안에 한 점을 찍어 연기라고 보고 그것을 움직여 보면, 이것이 8불의 입체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불(不)로 이루어진 공(空)의 내부에 위치한 한 점의 움직임만 상상해 보자. 만약 이 한 점이 연기(상호 연관)에 의해서 이 3차원적인 공간 안에서 움직인다면, 자립논증이나 귀류논증이나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 왜냐하면 둘 다 설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이 한 점이 공간 밖으로 튀어 나가려고 할 경우에는 외벽을 이루고 있는 8불과 마주치게 된다. 부정적ㆍ반구성적인 표면과 부딪칠 때, 마치 같은 극성을 가진 전자들이 서로를 밀쳐내는 것처럼 동일한 요소, 즉 부정적인 그리고 반구성적인 귀류논증이 자립논증보다 훨씬 더 유효하게 적용된다. 이 경우, 우리는 왜 티벳불교에서 월칭을 높이 평가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다. (142쪽)
세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그것의 해석은 항상 시대정신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철학의 문제는 아직도 세계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며, ‘해석’ 그 자체가 곧 ‘변혁’이다. 석학 콘쩨는 그의 <불교 연구 30년(Thirty Years of Buddhist Studies)>에서 나비에 대한 3가지 관찰법을 적어두었다. 첫 번째는 과학적(scientific) 방법으로 일단 잡아서 해부해 보면 나비의 생체를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인문주의적(humanistic), 또는 생태학적인 방법으로 나비가 알에서 태어나 애벌레가 되고 성충이 되고 나중에 고치에서 나와 나비가 되는 과정을 자연 속에서 관찰해 보는 방법이다. 세 번째는 초월적인(transcendental) 방법으로 직접 나비가 되어 보는 것이다. 나비보다 나비를 더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374쪽)
4. 추천사
한국에서는 중관사상에 대한 학문적 논의도 부족하고 극소수인 중관학자들도 일단은 일본의 학풍을 따르는 줄 알고 있다. 신상환 거사의 성정(性精) 상, 죽었다 깨어나도 기존의 논의를 반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짐작했지만 방대한 연구 자료 속에서도 8불 중도 연기사상을 공이라고 보는 논의를 진행시키는 것을 보니 중관사상을 학술적관점에서 다룬 본격적으로 다룬 보기 드문 글이 확실하다. 청목주 <중론>뿐만 아니라 산스끄리뜨어, 티벳어 거기다 각기 다른 영문 번역본들을 살펴보며 진행한 여러논의들의 꼼꼼함과 치밀함은 보통이 아니다.
중관 사상의 발생 전을 다루는 1장과 부록의 『이부종륜론』이나 여러 티벳 자료의도표, 그리고 3장의 서구 철학과의 비교 등은 전문 연구자들이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대승불교가 불탑 신앙자에 의해서 시작되지 않았다는 1장의 논의나 중관사상을 통해서 서양 철학을 보는 삼법인(三法印)의 자세는 학구열을 가진 신심 깊은불자가 아니면 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열반과 사구부정을 다루는 자세 또한 눈여겨볼만하다. 용수 보살이 ‘능상(能相)’과 ‘소상(所相)’이 따로 떨어져 성립할 수 없다고주장했다는 이 글의 논의 등은 불교학계에서 세심하게 다루어지길 바란다. 이 글의여러 성과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점은 공(空)을 학문적인 시각에서 풀면서도 결국은이 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행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리라. - 자비선사 강주 智雲
5. 차례
추천사 5
한글 서문 7
원문 서문 9
일러두기 13
제Ⅰ장 용수 이전의 상황
1.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21
2. 자유사상가, 우빠니샤드의 리쉬들(Ṛṣis) 33
3. 계율, 제2차 결집에서의 전환점45
4. 반야부의 등장과 원시 대승불교79
제Ⅱ장 용수의 중관사상과 이후의 변화ㆍ발전
1. 용수는 누구인가? 101
2. 용수의 주요 사유 129
3. 중관 사상의 변화ㆍ발전257
제Ⅲ장 중관사상과 서구철학
1. 유사성과 차이성 305
2. 무르띠의 비교 연구에 대한 비판적 고찰 313
3. 용수의 사유와 형식 논리학329
4. 비트겐슈타인의 <논리ㆍ철학 논고>에 대한 소감347
결론을 대신하며377
후기381
부록Ⅰ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 주해 395
부록Ⅱ 1. 따라나타의 <인도 불교사> 제42장 간추린 부파 4종 분석419
2. 각 부파의 도표425
참고 문헌 435
찾아보기 443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patiensky&logNo=120125187535
석학 콘쩨는 그의 <불교 연구 30년(Thirty Years of Buddhist Studies)>에서 나비에 대한 3가지 관찰법을 적어두었다.
첫 번째는 과학적(scientific) 방법으로 일단 잡아서 해부해 보면 나비의 생체를 알 수 있다.
The first studies a butterfly after killing it and fixing it with a pin into a glass case, where it lies quite still and can leisurely be inspected from all angles.
두 번째는 인문주의적(humanistic), 또는 생태학적인 방법으로 나비가 알에서 태어나 애벌레가 되고 성충이 되고 나중에 고치에서 나와 나비가 되는 과정을 자연 속에서 관찰해 보는 방법이다.
The second lets it fly in the sun, and looks wonderingly at its pretty ways.
세 번째는 초월적인(transcendental) 방법으로 직접 나비가 되어 보는 것이다.
The third assures us that a man will know a butterfly only if he becomes one.
위 피디에프 파일 28쪽에 있는 것인데 번역만 하면 될 것을...
[출처] <용수의 사유> 보도 자료|작성자 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