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탄智誕(fl. 430-490)
智誕(fl. 430-490)
智誕(fl. 430-490)
양나라 釋慧皎 撰 《高僧傳》卷8:「釋慧隆。姓成。陽平人。少而居貧。學無師友卓然自悟。年二十三方出家。十餘年中凝心佛法貫通眾典。宋太始中出都止何園寺。隆既思徹詮表善於清論。乘機抗擬往必折關。宋明帝請於[24]湘宮開講成實。負帙[25]問道八百餘人。其後王侯貴勝屢招講說。凡先舊諸義盤滯之處。隆更顯發開張使昭然可了。乃立實法斷結義等。汝南周顒目之曰。隆公蕭散森[26]疎若霜下之松竹。以永明八年卒。春秋六十有二。時江西有釋智誕。亦善於經論。與隆比德齊時。各馳名兩岸。時何[27]園復有僧辯僧賢道慧法度。並研精經論。功業可稱。」(CBETA, T50, no. 2059, p. 379, c8-20)
[24]湘宮+(寺)【元】【明】。[25]問=聞【宋】【宮】。[26]疎=疏【宋】【元】【明】【宮】。[27]園+(寺)【宋】【元】【明】。
양나라 釋寶唱 撰《名僧傳抄》卷1:「偽魏智誕二十四」(CBETA, X77, no. 1523, p. 348, a22 // Z 2B:7, p. 3, a17 // R134, p. 5, a17)
당나라 釋道宣 撰 《續高僧傳》卷6:「釋曇准。姓弘。魏郡湯陰人。住昌樂王寺。出家從智誕法師受業。鑽研之勤眾[8]皆弗及。處靜味道。無風塵之志。善涅槃法華。聞諸伊洛。閑居遊思不交世務。承齊竟陵王廣延勝道盛興講說。遂南[9]度止湘宮寺。處處採聽隨席談論。雖逢塗阻未曾告勞。次公嘆曰。此北道人。非直美容止善言笑。烈亮恢廓雅有器度。至於言論深有情致。齊臨川王蕭映。長沙王蕭晃。厚相欽禮。廬江何[10]點彭城劉[11]繒。並到房接足[12]伸其戒誥。講揚相繼成其業者二百餘人。以天監十四年卒。春秋七十有七。時寺復有智深比丘。聰慧博識經論有功。天子王侯多所賓接。性好直言無所推屑。每商略[13]撿洗物[14]不有平。由是坎壈弘宣阻少。」(CBETA, T50, no. 2060, p. 472, a18-b3)
[8]皆=有【宋】【元】【明】【宮】。[9]度=渡【明】。[10]點=默【宋】【元】【明】。[11]繒=繪【宋】【元】【明】。[12]伸=申【宋】【元】【明】【宮】。[13]撿洗=獫狁【宋】【元】【明】【宮】。[14]不有=有不【元】【明】。
당나라 釋道宣 撰 《廣弘明集》卷2:「太和十六年下詔。每年四月八日七月十五日。聽大州一百人為僧尼。中州五[*]十下州二十人。著令以為常准。太和十九年常幸徐州白塔寺。顧諸王侍臣曰。此寺近有名僧嵩法師者。受成實論於羅什。後授淵法師。淵又授登紀二法師。朕每翫成實。可以釋人深情。故至此寺。道登雅有義業。高祖眷賞恒侍講論於禁內。及卒帝悼惜。施帛千匹。說一切僧齋京城七日行道。下詔曰。朕師登法師奄至[4]徂。背痛怛摧慟不能已。已比藥治。慎喪未容即赴。便准師義哭諸門外。緇素榮之。西域沙門跋陀者。有深道業。帝所敬重。詔於少室山陰立少林寺。以居之。公給衣供。
二十一年五月詔曰。羅什法師可謂神出五才志入四行者也。今常住寺[5]猶有遺蹤。欽悅[6]循跡情深遐邇。可於舊堂所為建三級佛圖。又見逼昏虐為道[7]珍軀。既暫同俗禮。應有子胤。可推訪以聞當加敘接。先是立監福曹。又改為昭玄。備有官屬以斷僧務。即如今同文寺崇玄署是也。高祖時知名沙門有道順慧覺僧意慧紀僧範道辯慧度智誕僧顯僧義僧利。並以義行重焉。」(CBETA, T52, no. 2103, p. 104, a19-b11)
[*16-1]十+(人)【宋】【元】【明】【宮】*。[4]徂=殂【宋】【元】【明】【宮】。[5]猶=獨【宋】【元】【明】【宮】。[6]循=修【宋】【元】【明】【宮】。[7]珍=殄【元】【明】。
송나라 從義 撰 《法華經三大部補注》卷3:「
即偏圓中引涅槃經明四教五味之文廣在彼云。
妙玄云誕公
僧傳中有江西釋智誕亦善經論其人是乎前文云長阿含行品者應云游行品尸舍婆村村或作林四大教者應云從佛聞者是第一也從和合眾聞是第二也從多比丘聞是第三也從一比丘聞是第四也又云淨名室內者應云室外也又云滿於傍正者應云判於傍正也。」(CBETA, X28, no. 586, p. 187, b16-23 // Z 1:44, p. 20, d10-17 // R44, p. 40, b10-17)
《(古今圖書集成)釋教部彙考》卷1:「永平元年。詔。僧人犯殺人[巳>已]上罪者。依俗斷。餘犯付照元曹 按魏書世宗本紀。不載 按釋老志。先是。立監福曹。及改為昭元。備有官屬。以斷僧務。高祖時。沙門道順惠覺僧意惠紀僧範道并惠度智誕僧顯僧義僧利。竝以義行知重。世宗即位。永平元年秋。詔曰。緇素既殊。法律亦異。故道教彰於互顯。禁勸各有所宜。自今[巳>已]後。眾僧犯殺人[巳>已]上罪者。仍依俗斷。餘犯悉付照元。以內律僧制之。」(CBETA, X77, no. 1521, p. 11, c6-13 // Z 2B:6, p. 157, c16-d5 // R133, p. 314, a16-b5)
《新修科分六學僧傳》卷19:「弘姓。魏郡湯陰人。出家從智誕法師受業。善涅槃法華。住昌樂王寺。既承齊之竟陵王講說。遂南渡。止湘宮寺。隨席談論。不憚涂沮。次公嘆曰。此北道人。非徒其容止言笑可觀。至於烈亮恢廓。揚搉理妙。殊有標致。臨川王映。長沙王晃。尤加欽禮。廬江何默。彭城劉繪。造房接足。請誥戒。北面而成業者。二百餘人。天監十四年終。壽七十七 寺復有智深比丘。亦魏人也。博綜經論。天子王侯。莫不賓禮。性好直言。無所推屑。每語及北方僭叛事。輒慍見於色。由是自致廢棄。不甚顯。」(CBETA, X77, no. 1522, p. 233, a17-b2 // Z 2B:6, p. 378, d10-p. 379, a1 // R133, p. 756, b10-p. 757, a1)
《正史佛教資料類編》卷1:「先是,立監福曹,又改為昭玄,備有官屬,以斷僧務。高祖時,沙門道順、惠覺、僧意、惠紀、僧范、道弁、惠度、智誕、僧顯、僧義、僧利,並以義行知重。」(CBETA, ZS01, no. 1, p. 10, a27-29)
《新修科分六學僧傳》卷19:「梁曇准
弘姓。魏郡湯陰人。出家從智誕法師受業。善涅槃法華。住昌樂王寺。既承齊之竟陵王講說。遂南渡。止湘宮寺。隨席談論。不憚涂沮。次公嘆曰。此北道人。非徒其容止言笑可觀。至於烈亮恢廓。揚搉理妙。殊有標致。臨川王映。長沙王晃。尤加欽禮。廬江何默。彭城劉繪。造房接足。請誥戒。北面而成業者。二百餘人。天監十四年終。壽七十七 寺復有智深比丘。亦魏人也。博綜經論。天子王侯。莫不賓禮。性好直言。無所推屑。每語及北方僭叛事。輒慍見於色。由是自致廢棄。不甚顯。」(CBETA, X77, no. 1522, p. 233, a17-b2 // Z 2B:6, p. 378, d10-p. 379, a1 // R133, p. 756, b10-p. 757, a1)
양나라 釋慧皎 撰 《高僧傳》卷8:「釋慧隆。姓成。陽平人。少而居貧。學無師友卓然自悟。年二十三方出家。十餘年中凝心佛法貫通眾典。宋太始中出都止何園寺。隆既思徹詮表善於清論。乘機抗擬往必折關。宋明帝請於[24]湘宮開講成實。負帙[25]問道八百餘人。其後王侯貴勝屢招講說。凡先舊諸義盤滯之處。隆更顯發開張使昭然可了。乃立實法斷結義等。汝南周顒目之曰。隆公蕭散森[26]疎若霜下之松竹。以永明八年卒。春秋六十有二。時江西有釋智誕。亦善於經論。與隆比德齊時。各馳名兩岸。時何[27]園復有僧辯僧賢道慧法度。並研精經論。功業可稱。」(CBETA, T50, no. 2059, p. 379, c8-20)
[24]湘宮+(寺)【元】【明】。[25]問=聞【宋】【宮】。[26]疎=疏【宋】【元】【明】【宮】。[27]園+(寺)【宋】【元】【明】。
양나라 釋寶唱 撰《名僧傳抄》卷1:「偽魏智誕二十四」(CBETA, X77, no. 1523, p. 348, a22 // Z 2B:7, p. 3, a17 // R134, p. 5, a17)
당나라 釋道宣 撰 《續高僧傳》卷6:「釋曇准。姓弘。魏郡湯陰人。住昌樂王寺。出家從智誕法師受業。鑽研之勤眾[8]皆弗及。處靜味道。無風塵之志。善涅槃法華。聞諸伊洛。閑居遊思不交世務。承齊竟陵王廣延勝道盛興講說。遂南[9]度止湘宮寺。處處採聽隨席談論。雖逢塗阻未曾告勞。次公嘆曰。此北道人。非直美容止善言笑。烈亮恢廓雅有器度。至於言論深有情致。齊臨川王蕭映。長沙王蕭晃。厚相欽禮。廬江何[10]點彭城劉[11]繒。並到房接足[12]伸其戒誥。講揚相繼成其業者二百餘人。以天監十四年卒。春秋七十有七。時寺復有智深比丘。聰慧博識經論有功。天子王侯多所賓接。性好直言無所推屑。每商略[13]撿洗物[14]不有平。由是坎壈弘宣阻少。」(CBETA, T50, no. 2060, p. 472, a18-b3)
[8]皆=有【宋】【元】【明】【宮】。[9]度=渡【明】。[10]點=默【宋】【元】【明】。[11]繒=繪【宋】【元】【明】。[12]伸=申【宋】【元】【明】【宮】。[13]撿洗=獫狁【宋】【元】【明】【宮】。[14]不有=有不【元】【明】。
당나라 釋道宣 撰 《廣弘明集》卷2:「太和十六年下詔。每年四月八日七月十五日。聽大州一百人為僧尼。中州五[*]十下州二十人。著令以為常准。太和十九年常幸徐州白塔寺。顧諸王侍臣曰。此寺近有名僧嵩法師者。受成實論於羅什。後授淵法師。淵又授登紀二法師。朕每翫成實。可以釋人深情。故至此寺。道登雅有義業。高祖眷賞恒侍講論於禁內。及卒帝悼惜。施帛千匹。說一切僧齋京城七日行道。下詔曰。朕師登法師奄至[4]徂。背痛怛摧慟不能已。已比藥治。慎喪未容即赴。便准師義哭諸門外。緇素榮之。西域沙門跋陀者。有深道業。帝所敬重。詔於少室山陰立少林寺。以居之。公給衣供。
二十一年五月詔曰。羅什法師可謂神出五才志入四行者也。今常住寺[5]猶有遺蹤。欽悅[6]循跡情深遐邇。可於舊堂所為建三級佛圖。又見逼昏虐為道[7]珍軀。既暫同俗禮。應有子胤。可推訪以聞當加敘接。先是立監福曹。又改為昭玄。備有官屬以斷僧務。即如今同文寺崇玄署是也。高祖時知名沙門有道順慧覺僧意慧紀僧範道辯慧度智誕僧顯僧義僧利。並以義行重焉。」(CBETA, T52, no. 2103, p. 104, a19-b11)
[*16-1]十+(人)【宋】【元】【明】【宮】*。[4]徂=殂【宋】【元】【明】【宮】。[5]猶=獨【宋】【元】【明】【宮】。[6]循=修【宋】【元】【明】【宮】。[7]珍=殄【元】【明】。
송나라 從義 撰 《法華經三大部補注》卷3:「
即偏圓中引涅槃經明四教五味之文廣在彼云。
妙玄云誕公
僧傳中有江西釋智誕亦善經論其人是乎前文云長阿含行品者應云游行品尸舍婆村村或作林四大教者應云從佛聞者是第一也從和合眾聞是第二也從多比丘聞是第三也從一比丘聞是第四也又云淨名室內者應云室外也又云滿於傍正者應云判於傍正也。」(CBETA, X28, no. 586, p. 187, b16-23 // Z 1:44, p. 20, d10-17 // R44, p. 40, b10-17)
《(古今圖書集成)釋教部彙考》卷1:「永平元年。詔。僧人犯殺人[巳>已]上罪者。依俗斷。餘犯付照元曹 按魏書世宗本紀。不載 按釋老志。先是。立監福曹。及改為昭元。備有官屬。以斷僧務。高祖時。沙門道順惠覺僧意惠紀僧範道并惠度智誕僧顯僧義僧利。竝以義行知重。世宗即位。永平元年秋。詔曰。緇素既殊。法律亦異。故道教彰於互顯。禁勸各有所宜。自今[巳>已]後。眾僧犯殺人[巳>已]上罪者。仍依俗斷。餘犯悉付照元。以內律僧制之。」(CBETA, X77, no. 1521, p. 11, c6-13 // Z 2B:6, p. 157, c16-d5 // R133, p. 314, a16-b5)
《新修科分六學僧傳》卷19:「弘姓。魏郡湯陰人。出家從智誕法師受業。善涅槃法華。住昌樂王寺。既承齊之竟陵王講說。遂南渡。止湘宮寺。隨席談論。不憚涂沮。次公嘆曰。此北道人。非徒其容止言笑可觀。至於烈亮恢廓。揚搉理妙。殊有標致。臨川王映。長沙王晃。尤加欽禮。廬江何默。彭城劉繪。造房接足。請誥戒。北面而成業者。二百餘人。天監十四年終。壽七十七 寺復有智深比丘。亦魏人也。博綜經論。天子王侯。莫不賓禮。性好直言。無所推屑。每語及北方僭叛事。輒慍見於色。由是自致廢棄。不甚顯。」(CBETA, X77, no. 1522, p. 233, a17-b2 // Z 2B:6, p. 378, d10-p. 379, a1 // R133, p. 756, b10-p. 757, a1)
《正史佛教資料類編》卷1:「先是,立監福曹,又改為昭玄,備有官屬,以斷僧務。高祖時,沙門道順、惠覺、僧意、惠紀、僧范、道弁、惠度、智誕、僧顯、僧義、僧利,並以義行知重。」(CBETA, ZS01, no. 1, p. 10, a27-29)
《新修科分六學僧傳》卷19:「梁曇准
弘姓。魏郡湯陰人。出家從智誕法師受業。善涅槃法華。住昌樂王寺。既承齊之竟陵王講說。遂南渡。止湘宮寺。隨席談論。不憚涂沮。次公嘆曰。此北道人。非徒其容止言笑可觀。至於烈亮恢廓。揚搉理妙。殊有標致。臨川王映。長沙王晃。尤加欽禮。廬江何默。彭城劉繪。造房接足。請誥戒。北面而成業者。二百餘人。天監十四年終。壽七十七 寺復有智深比丘。亦魏人也。博綜經論。天子王侯。莫不賓禮。性好直言。無所推屑。每語及北方僭叛事。輒慍見於色。由是自致廢棄。不甚顯。」(CBETA, X77, no. 1522, p. 233, a17-b2 // Z 2B:6, p. 378, d10-p. 379, a1 // R133, p. 756, b10-p. 757, a1)
[8敎迹義]에서 설하고 있는 돈점2교판에 대해서는 劉宋 내지 南齊에서 북위로 온 智誕(430頃-490頃?)의 교판을 전하는 자료일 가능성이 지적되었다(아라마키 노리토시[荒牧典俊]의 논고를 참조).-장외지론종집성문헌 106쪽
아래는 퍼온글.http://blog.naver.com/sattva9715/80045945885
교상판석(敎相判釋)
구마라습은 <부처는 중생의 기근(機根)에 응하여 대·소승의 방편설(方便說)을 설법하였는데, 이는 모두가 동일한 법성(法性)의 진리를 깨닫고 부처가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최후궁극인 법화경(法華經)의 일승(一乘)의 가르침에서 밝혀졌다>고 회답했다. 이로써 불설의 순서내력을 확립하려는 교판이 중국불교의 독자적 학문으로서 발달하게 되었다.
구마라습의 수제자였던 승예(僧叡)가 제시한 기본원리에 기초를 두고 축도생(竺道生)이 재가신자(在家信者)를 위한 <선정법륜(善淨法輪)>, 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승(菩薩乘)의 <방편법륜(方便法輪)>, 《법화경》의 <진실법륜(眞實法輪)>,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의 <무여법륜(無餘法輪)>이라는 원초적 교판을 창설(創設)했다. 이어서 혜관(慧觀)이
제1시에 녹야원(鹿野苑)에서 사제법륜(四諦法輪)을 전(轉)했고,
제2시는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
제3시에는 《유마경(維摩經)》 《범천사익경(梵天思益經)》,
제4시에는 《법화경》을 전법륜(轉法輪)하고,
마지막에는 사라쌍수 아래에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을 설법했다는 유명한 오시교판(五時敎判)을 제창했다(《廣弘明集》 권19).
이 밖에도 축도생의 교판을 발달시킨 유규의 7계(階)의 교판 등도 있었다. 다음으로 이같은 남조(南朝) 전반기의 불교가 북조(北朝) 후반기의 불교에 수입되어 발달해 갈 무렵, 지탄(智誕)이 남조계 교판의 《법화경》까지는 점교(漸敎)이고 불요의(不了義;불완전한 敎義)이며, 마지막 《대반열반경》만이 돈교(頓敎)이며 요의(了義)라는 이교교판(二敎敎判)을 제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나아가서 북조 후반기 불교가 혜광(慧光)을 초대 승통(僧統)으로 하여 《십지경론(十地經論)》 《화엄경(華嚴經)》 등의 연구·이해를 심화한 무렵에, 성문·연각·보살승이 별교(別敎)이고 《법화경》이 통교(通敎)이며 《열반경》 《화엄경》 《대집경(大集經)》이 통종교(通宗敎)이지만, 《열반경》까지는 점교이고 《화엄경》이야말로 원돈교(圓頓敎)라고 하는 교판 등이 성립되었다.
이로부터 《화엄경》은 돈교이며 <점교>가
제1시 삼승별교(三乘別敎),
제2시 반야경,
제3시 유마경 및 범천사익경,
제4시 법화경,
제5시 열반경이라는
남·북조 여러 교판이 집대성되고, 여기서 수(隋)·당(唐) 여러 종파 교판의 기본형이 성립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을 개정·증보(增補)하여 수나라 천태종(天台宗)의 지의는
1화엄시,
2녹원시,
3방등시,
4반야시,
5법화·열반시의
5시에 걸쳐, 설법방법부터 돈(頓)·점(漸)·비밀·부정의 4교와 설법내용에 따른 장(藏)·통(通)·별(別)·원(圓)의 4교를 합친 8교가 해설되었다는 5시 8교(五時八敎)의 교판을 완성시켰다.
또 당나라 화엄종의 지엄(智儼;602∼668)과 법장(法藏)은
1소승교·
2대승시교(大乘始敎)·
3종교(終敎)·
4돈교(頓敎)·
5원교(圓敎)의
5교와아법구유종(我法俱有宗)·법유아무종(法有我無宗)·법무거래종(法無去來宗)·현통가실종(現通假實宗)·속망진실종(俗妄眞實宗)·제법단명종(諸法但名宗)·일체개공종(一切皆空宗)·진덕불공종(眞德不空宗)·상상구절종(相想俱絶宗)·원명구덕종(圓明俱德宗) 등 10종(宗)의 교판을 완성시키기에 이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