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光寺隨喜
神光寺隨喜 a_165_126c
天下豈無寺。神光最可觀。
可惜鬱攸後。梵宇多未完。
猶有滿壁畵。聳動觀者顔。
金樓儼像容。寶幢飄堂壇。
香雲捧佛日。悅可聞栴檀。
隨喜跟闍梨。曲折度雕欄。
回廊達幽殿。換面各彩丹。
逃燼有數佛。古色結眉端。
幽峭羅漢寂。窈窕觀音安。
衣波風乍動。握蓮露不乾。
種種妙莊嚴。人游兜率間。
胡元於此勞。塔刻至正殘。
頹院忽惆悵。不見天台山。
石梁半月淪。瓊臺死灰寒。
由來幻中幻。今已有所還。
空理因可討。恨無古豐干。
천하에 어찌 절이 없을까마는 신광사가 가장 볼만하였는데
애석하구나 불 타고 난 뒤인지라 절이 꽤 온전치 않구나
다만 벽을 가득 채운 그림들이 있어 보는 이의 낯을 기쁘게 하네
금루의 장엄한 모습, 보당이 나부끼는 당단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나는 향기는 태양같은 부처님을 섬기니 전단에서의 설법을 들을 수 있어 기쁘리라.
즐거이 아사리를 뒤따라 굽어지고 꺽어지며 조각이 새겨진 난간을 지나가네
회랑을 따라 유현한 전각에 다다르니 면면히 각각 붉게 채색이 되어있네
불타지 않은 몇몇 불상이 있어 예전의 빛깔이 미간에 맺혀있네
그윽하고도 엄한 나한상들은 고요하고 자태가 아름다운 관음상은 안락하네
옷과 물결은 바람에 잠깐 흔들리나 연꽃을 잡고있는 이슬은 마르지 않네
갖가지로 묘하게 장엄하나니 도솔천에 노니는 인간이로다
오랑캐인 원나라가 이 절을 만드는데 힘썼다하니 탑에 조각된 것들은 지극히 정당하게도 없어졌네
퇴락(頹落)한 절에 돌연(突然)히 슬퍼지네 천태산을 찾지않으리
석량(石梁)과 반월(半月)도 없어지는 것을 경대도 불꺼진 재처럼 차가워지는 것을
허깨비가운데 허깨비인 까닭에 지금도 이미 돌아가버렸네
공한 이치의 원인을 토론하고 싶지만 옛날 풍간스님이 없으니 한스럽구나
- 死灰 [ 사회 ]
- ①불 기운(氣運)이 없어진 식은 재 ②'생기 없은 사람'을 비유(比喩ㆍ譬喩)하여 일컫는 말
- 중국어사전
- 死灰
- [sǐhuī]
- 1.불씨가 꺼져 버린 재. 사그라진 재. 2.사그라진 의욕. 식어 버린 의지.
경대3瓊臺[발음 : 경ː대]
石梁镇是一个以旅游业为主导产业的旅游集镇。全镇区域面积158.3平方公里,下辖31个行政村,1.8万人口。
石梁鎮水山奇絕,境內有石梁飛瀑和華頂森林公園兩個國家級4A級風景區,王羲之、徐霞客、康有爲都曾留跡石梁。該鎮還是著名的“唐詩之路”的終點,李白、杜甫、孟浩然、皮日休等著名詩人都曾在此留下不朽的詩篇。該鎮也是中國化佛教第一宗——天台宗的發祥地,境內有修禪寺、華頂寺、萬年寺、高明寺、方廣等大小寺院12座,高僧海燈法師、虛雲老和尚都曾經到此學法,修禪寺和萬年寺分別是日本天台宗、韓國日蓮宗的祖庭,開展宗教旅遊前景廣闊。該鎮還是浙東南地區避暑勝地,夏季氣候涼爽,最高氣溫僅33℃,避暑休閑旅遊是該鎮的重點開發項目。

추창
[ 惆悵 ]chóu chàng근심하고 슬퍼함. 실심(失心)한 모양.
東林曙鶯滿 惆悵欲言旋(동림서앵만 추창욕언선 ; 동쪽 숲에 꾀꼬리 소리 가득한데, 고별하는 울음 소리 같아 슬프구나.)<이기李頎 숙향산사석루宿香山寺石樓>
惆悵芳時長作客 可堪垂淚更沾巾(추창방시장작객 가감수루갱첨건 ; 꽃다운 철에 오랜 나그네됨이 추창하니, 흐르는 눈물 다시 수건을 적시어 견딜 수 없구나.)<정희량鄭希良 압강춘망鴨江春望>
[네이버 지식백과] 추창 [惆悵] (한시어사전, 2007. 7. 9., 국학자료원)
幽峭
隱僻峻峭。 明 徐弘祖 《徐霞客遊記·滇遊日記八》:“盤磴陟坡,路極幽峭。” 清 黃景仁 《齊山》詩:“紆徑入幽峭,五月寒已甚。” 朱自清 《“海闊天空”與“古今中外”》:“ 四川 有 三峽 的幽峭,有棧道的蜿蜒,有 峨嵋 的雄偉,我是最向慕的!”
- 隨喜 [ 수희 ]
- 기쁘게 귀의(歸依)함. 마음속으로부터 고맙게 여기어 기뻐함
- 국어사전
- 수희
- (隨喜) [수히]
- [명사] 불보살이나 다른 사람의 좋은 일을 자신의 일처럼 따라서 함께 기뻐함.
candana栴檀 [ 전단 ]
[네이버 지식백과] 전단 [栴檀] (시공 불교사전, 2003. 7. 30., 시공사)


향운(香雲) 정태혁
정 교수는 불교와 요가의 관계에 관련 불교가 정신적인 측면에서 요가를 받아들였지만 원시불교 최고 경전이라 할 수 있는 법구경에서도 요가를 언급하고 있다며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무량수경은 요가를 불교화 했다"고 지적헀다.
즉, 요가와 불교는 같으면서도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불교는 요가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 정 교수의 변이다.
향운(香雲) 정태혁
철학박사로,1922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1943년 월정사에서 지암 이종욱 스님의 도제로 득도하고,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도쿄대학 대학원을 거쳐 오타니대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인도 철학과 교수로 있다가 1987년에 정년퇴직하였으며,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동방불교대학 학장, 한국요가학회회장,한국정토학회회장, 한국요가-아유르베다학회 회장, 한국요가문화협회 구루, 사회복지법인 연꾳마을 노인 문제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1961년에 최초로 한국에 요가를 도입하고 오늘날까지 요가와 수행에 진력하고 있다.
1987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향운(香雲 1893~1936) 스님
曲折①구부러져 꺾임 문맥(文脈) 따위가 단조(單調)롭지 아니하고 변화(變化)가 많음 ②이런저런 복잡(複雜)한 사정(事情)과 내용(內容), 까닭. 어미(語尾), 어간(語幹)의 변화(變化)와 활용(活用) ③순탄(順坦)치 못하거나 변화(變化)가 많은 경로(經路)나 상태(狀態)
울유(鬱攸): 화기(火氣) 즉 화마(火魔)
1.火氣﹐火焰。《左傳.哀公三年》:"濟濡帷幕鬱攸從之蒙葺公屋。"杜預注:"鬱攸火氣也。"一說爲救火器具。見清王紹蘭《王氏經說》。
2.火災。
3.形容煙火或熱氣蒸騰。

釋典類解
神光寺隨喜詩
(恨無古豊干 豊干天台山僧也 太守閭丘胤 與之談空 因問異僧 豊干云 國淸寺寒山拾得二僧 乃聖僧也 丘胤徃尋之 寒山曰 是必豊干饒舌 遂忽不見)
다음과 같이 쓴다. 울유(鬱攸)가 경계를 고하자 요망한 악기는 주작(朱雀)의 터에서 일어나고,영실(營室)이 광채를 흘리자 새로운 집은 청홍(靑虹)의 형세를 이루었다. 길한 징조는 대과(大過)에 어긋나지 않아 밑은 약하나 위는 높고,기쁜 마음은 크게 동인(同人)에 합치되어 처음엔 울부짖고 뒤에는 웃었네. 진실로 여러 사람의 마음이 집중되지 않고 정교(政敎)가 펴지지 않았다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민포당(敏蒲堂)은 해남현(海南縣)을 다스리는 정당(正堂)이다. 대개 듣건대, 나나니벌[蜾蠃]이 뽕나무 벌레를 업어다 빌어서 자신을 닮게 함은 하늘의 도가 널리 번식시키는[敷蕃] 힘을 드러낸 것이요, 포로(蒲蘆)가 순을 빼어냄은 땅의 정기가 민수(敏樹)의 공을 나타낸 것이라 한다. 정고밀(鄭高密 정현(鄭玄))의 경의(經義) 해석은 화육(化育)으로 돌렸고, 주고정(朱考亭 주희(朱熹))의 훈고는 발생(發生)을 위주로 하였다. 이는 모두가 덕화를 펴는 것의 참된 뜻으로서 백성을 교화시키는 지극한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옛사람이 당(堂)을 건립할 처음에 당호(堂號)를 붙여준 깊은 뜻이다. 비록 조그마한 무성(武城)이지만 형인(硎刃)은 닭 잡는 데에 쓰일 물건이 아니요, 멀리 떨어져 있는 발해(渤海)이지만 패도(佩刀)는 소를 살 만한 자산이 된다. 하물며 또한 청해진(淸海津)이 남쪽으로 이어져 빈호(蠙戶 어민(漁民))가 장고(張皐))의 열의를 기리며, 벽파진(碧波津)이 서쪽을 끌어당겨 어만(魚蠻 연해의 오랑캐)이 정지(鄭地)의 이름을 알게 됨에랴. 그리고 이충무(李忠武)가 단사(單師)로 기치(旗幟)를 높여 적군을 물리친 것이며, 윤시랑(尹侍郞)이 가동(家僮)을 이끌고 천리길 근왕(勤王)함에 있어서랴. 물이 곤유(坤維)에 쌓여 나라의 인후(咽喉)와 같은 요충이 되고, 길이 일본(日本)으로 통하여 세 갈래의 기각 형세로 걸터앉았다. 그러므로 한 척의 조각배로도 능히 파도를 헤치고 충심(衝心 중심부를 격동함)의 기운을 거슬러 꺾고, 고군단기(孤軍單騎)로도 험난함을 지켜 끝내 등을 어루만져주는 공로(功勞)를 이루었다. 그러므로 안집(安集)을 근실히 아니할 수 없고, 회수(懷綏)를 힘쓰지 아니할 수 없다. 이 어찌 명예를 돌아보고 의리를 생각하여 그것으로 근본을 굳건히 하고 나라를 편안하게 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것이 또 민포당(敏蒲堂)의 시의(時義)인 것이다. 뜻밖에도 용미(龍尾)가 진방(辰方)에 은복하자, 문득 치두(鴟頭)가 병방(丙方)에 들어옴을 당하게 되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하늘에 치닿으니 고래는 물 뿜는 기능을 잃었고, 흙이 타서 붉게[堆紅]되니 기러기는 구름을 헤쳐가는 질서를 잃었다. 이에 농한기를 틈타 집짓는 일을 다시 일으켰는데, 달 깎는 도끼로 산을 여니 두륜산(頭輪山)이 흔들려 범이 거꾸러지고, 바람 베는 자귀로 땅을 가르니 비악(鼻堊)이 떨어지고 꿩이 날개친다. 함평 학사(咸平學士)가 부임했을 때에 비로소 윤곽을 잡았고, 덕수 인후(德水仁侯)가 부임했을 때 비로소 건축을 완성하였다. 이때는 바로 가경(嘉慶) 계유년(1813, 순조 13) 겨울 모월 모일이다. 공사가 끝나자 송축(頌祝)하여 다음과 같이 이른다.
봉악 묏부리 높기도 하다 / 鳳嶽巃嵷
상서로운 날개 덕행을 보고 내려오니 / 祥翎覽德
한 그루 오동나무일세 / 一樹梧桐
들보 서쪽을 가리키니 / 抛梁指西
흔륜한 해천이 나직하네 / 鶻沒天低
파도 잔잔한 울두에 / 波平熨斗
물가에 풀 무성하네 / 汀草萋萋
들보 남쪽을 가리키니 / 抛梁指南
아득히 바다와 하늘 맞닿아 푸르네 / 茫茫蔚藍
바다 조개가 신시를 일으키니 / 海蜃吹市
신선의 누각이 아름답게 보이네 / 仙閣晴涵
들보 북쪽을 가리키니 / 抛梁指北
금산이 칼처럼 섰네 / 金山劍矗
공손히 북두를 보니 / 恭瞻斗柄
자미성 광채가 짙게 보이네 / 紫薇多色
들보 위를 가리키니 / 抛梁指上
천창성이 밝게 빛나네 / 天倉晃亮
곡식이 풍성하게 자라나니 / 黍稷薿薿
백성들 양식 흡족하게 되네 / 斯民受餉
들보 밑을 가리키니 / 抛梁指下
쑥대가 들판에 가득하네 / 蒿萊滿野
드디어 묵은 밭을 감소하니 / 遂减陳田
길에는 비방하는 자가 없네 / 道無訕者
거듭 송축하여 다음과 같이 이른다. 들판은 울창하고 갈대는 푸르르다. 단비가 이미 흡족하니 그 은택을 받아 무성히 자라고, 훈훈한 바람이 불어오니 그 덕화를 힘입어 싱싱하게 자라도다. 백성은 날로 착해지면서도 이유를 모르니 그 덕화는 역마(驛馬)로 명령 전하는 것보다 빠르고, 바람이 위에 불면 반드시 그 영향을 받으니, 그 도(道)에 오래 묻혀 감화되리라.
[주B-001]여문(儷文) : 변려문(騈儷文)의 약칭. 수사(修辭)하는데 4자와 6자의 대구(對句)를 많이 쓰고 음조(音調)를 맞추며 고사에 많이 쓰는 한문체(漢文體). 과문(科文)에 주로 이 문체를 많이 썼다.
[주D-001]울유(鬱攸)가 …… 일어나고 : 울유는 화기(火氣) 즉 화마(火魔)이며, 주작(朱雀)은 남방(南方)의 별[星] 이름으로 곧 남방을 뜻한다.
[주D-002]영실(營室) : 앞의 주 86) 참조.
[주D-003]길한 …… 높고 : 처음에는 어려우나 갈수록 좋은 결과가 온다는 뜻.《주역》 대과괘(大過卦)에, “기둥이 약하니 가는 것이 좋다.” 하였는데, 이는 괘상이 아래가 약하다는 것을 말함이다. 그러나 4효(爻)에, “기둥이 높으니 길하다.”고 하여 처음의 어려움을 극복하여 길하다는 것을 말하였다. 즉 여기서는 처음에는 불이 나서 어려웠으나 결국 다시 중건을 경영하여 좋은 결과가 된 것이 대과의 괘상과 같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주D-004]기쁜 …… 웃었네 : 《주역》 동인괘(同人卦) 오효(五爻)에, “처음엔 울부짖고 뒤에 웃는다.” 하였는데, 이는 협동하여 어려움을 극복한 뒤에 오는 즐거움을 말한 것이다.
[주D-005]민수(敏樹)의 …… 하였다 : 민수(敏樹)는 《중용》의 ‘인도민정 지도민수(人道敏政 地道敏樹)’에서 인용한 말로서 땅의 정기는 식물에 민감하게 나타난다는 뜻이다. 정현은 이 민(敏) 자를 ‘힘쓴다(勉)’로 해석하였고, 주희는 ‘빠르다[速]’ 즉 발생의 효과가 빠르다는 것으로 해석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주D-006]조그마한 …… 아니요 : 자유(子游)가 무성 재(武城宰)가 되었는데,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닭 잡는 데 어찌 소잡는 칼을 쓰랴.”고 하여 조그마한 고을과 유능한 인재가 서로 걸맞지 않은 것을 말하였다.《論語 陽貨》 이는 해남현(海南縣)이 무성과 같이 작은 고을이나 훌륭한 인물이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7]발해(渤海)이지만 …… 자산 : 한(漢) 나라의 공수(龔遂)가 발해 태수(渤海太守)로 부임하였는데, 그곳 사람들이 모두 칼을 차고 다녔다. 공수는 그 칼을 팔아 소를 사게 하고는 왜 소를 차고 다니느냐고 말하였다.《漢書 龔遂傳》 이는 해남현이 비록 발해(渤海)와 같이 바닷가에 위치해 있으나 산물이 풍부함을 비유한 말이다.
[주D-008]장고(張皐) : 신라(新羅)의 무장(武將) 장보고(張保皐)를 가리킨다. 청해진 대사(淸海鎭大使)가 되어 해로(海路)의 요충을 수비하고 수병(水兵)을 훈련시켜 해적(海賊)을 소탕하였다.《三國史記 列傳 第四 張保皐傳》
[주D-009]정지(鄭地) : 고려의 무신(武臣). 공민왕 때 왜구(倭寇)를 평정할 방책을 왕에게 올려 전라도 안무사(全羅道按撫使)가 되고, 뒤에 다시 순천도 병마사(順天道兵馬使)가 되어 순천ㆍ낙안(樂安) 등지에 침입한 왜구를 소탕하였다.
[주D-010]이 충무(李忠武) : 충무는 이순신(李舜臣)의 시호. 임진왜란 때 전라도 수군절도사(全羅道水軍節度使)가 되어 옥포(玉浦)ㆍ사천(泗川)ㆍ당포(唐浦) 등에서 적함을 대파하였다.
[주D-011]윤 시랑(尹侍郞)이 …… 근왕(勤王) : 윤선도(尹善道)를 가리킨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주사(舟師)ㆍ가동(家僮) 등을 거느리고 왕을 호종하기 위해 강화도(江華島)에 이르렀다가 이미 왕이 남한산성에서 항복한 뒤라 그냥 돌아가고 말았다.
[주D-012]용미(龍尾)가 …… 되었다 : 용(龍)은 물[水]를 상징하고 치(鴟 : 소리개)는 불[火]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수기(水氣)가 은복하자 화재(火災)가 일어나게 되었다는 말이다.
[주D-013]달 깎는 …… 날개친다 : 잘 드는 도끼로 재목을 베어내니 범 같은 우람한 나무가 넘어지고, 훌륭한 재주로 재목을 잘 다듬어 추녀가 꿩이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듯하다는 뜻. 비악(鼻堊)은, 코 끝에 흙을 얇게 발라놓고 도끼로 그 흙만을 깎아내어 코가 상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훌륭한 재주라는 뜻임.《莊子 徐无鬼》
[주D-014]백성은 …… 감화되리라 : 《맹자》 공손추(公孫丑)의 "정사를 잘하여 덕화가 백성에게 미쳐감이 역마로 명을 전하는 것보다 빠르다.”는 말처럼 백성들은 날로 선해지면서도 그것이 누구의 덕인지조차 모르고, 《논어》 안연(顔淵)의 "풀 위에 바람이 불면 반드시 풀은 쓰러지게 된다.”는 말처럼 군자의 덕이 백성에게 오래도록 미쳐 감화되기를 바란다는 뜻.
향운(香雲 1893~1936) 스님
목차
정의
황해도 벽성군 서석면(지금의 황해남도 해주시) 신광리 북숭산(北嵩山)에 있었던 절.
내용
일제강점기 31본산 시대에는 패엽사(貝葉寺)의 말사였다. 창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삼국유사》에 923년(태조 6) 입조사(入朝使) 윤질(尹質)이 중국에서 오백나한상(五百羅漢像)을 가져왔는데, 그것을 이 절에 모셨다고 한 것으로 보아 창건연대 또한 그 이전으로 추정된다.
그 뒤 현종은 1026년(현종 17) 이 절에 행행(行幸:임금이 궁궐 밖으로 행차하는 것)하였고, 1053년(문종 7) 9월에는 왕이 이 절에 이르러 나한재(羅漢齋)를 개설하고 제왕(諸王)과 재추(宰樞)·시신(侍臣)을 향연하였다. 또한, 1102년(숙종 7) 10월에는 왕이 이 절에 들러 오백나한재(五百羅漢齋)를 설하였다. 그러나 이 절이 대찰로서의 면모를 갖춘 것은 1334년(충숙왕 복위 3)에 원나라의 마지막 왕인 순제(順帝)가 그의 원찰(願刹)로 중건하였기 때문이다.
순제는 일찍이 서해의 대청도(大靑島)에서 귀양살이를 하였다. 그때 그는 서해의 산천을 두루 돌아보았는데, 해주의 북숭산 기슭에 이르렀을 때 나무와 풀이 우거진 속에 이상한 기운이 빛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찾아가 보았더니, 수풀 속에 한 부처님이 있었다. 이에 그는 만약 부처님의 도움을 얻어 환궁등극(還宮登極)할 수만 있다면 마땅히 절을 지어 그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기도하였다.
그 뒤 그가 환궁등극하고 2년이 지난 어느 날, 부처님이 꿈에 나타나서 “어찌 서로 잊을 수 있단 말인가!” 하였다. 꿈을 깬 그는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중국의 재력을 기울여 이 절을 중창하였는데, 그 웅장하고 화려하기가 동방에서 으뜸이었다고 한다. 이 역사에는 원나라의 대감 송골아(宋骨兒)가 이끄는 37인의 공장(工匠)이 참여하였고, 고려의 시중 김석견(金石堅)과 밀직부사 이수산(李壽山)이 송골아와 함께 감독하였다.
이 때 이루어졌던 건물은 법당인 보광명전(寶光明殿)을 중심으로 그 앞에 장랑(長廊), 동쪽에는 누(樓)와 재료(齋寮), 북쪽에는 1동의 전우(殿宇)와 그 앞에 석탑(石塔), 서쪽에는 나한전(羅漢殿) 등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이 밖에도 침실과 석경판(石經板)을 봉안한 해장전(海藏殿)·중문(中門)·종루(鐘樓)·양진당(養眞堂)·영마전(影磨殿) 등 많은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1335년 8월에는 충숙왕이 이 절에 들러 축수를 하였다.
그리고 이 절은 일찍이 화재를 만난 일이 없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한 과객이 이 절에 머물고 있을 때 누의 남쪽을 바라보면서 말하기를, “처음 절을 지을 때 남산(南山)에 석옹(石瓮)을 묻어 물을 저장함으로써 화재를 막았다. 이제 그 석옹이 기울어져 물이 새고 있으니, 몇 년 지나지 않아 절에 화재가 있을 것이다.”고 하였는데, 1677년 4월 5일에 화재를 만났다. 이 때의 화재로 전우와 불상 및 승방 등이 모두 탔다.
다음해에 보광전(普光殿)·설법전(說法殿)·약사전(藥師殿)·시왕전(十王殿)·만세루(萬歲樓)·승료(僧寮) 등을 중건하고, 다시 27년이 지난 1705년에 이르러 나한전을 세웠다. 그러나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문화재로는 1324년(충숙왕 12)에 세워진 북한 보물급 문화재 제22호인 신광사오층탑과, 북한 보물급 문화재 제23호인 신광사무자비(神光寺無字碑)가 있다. 무자비는 글자가 없는 비로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조선불교통사』(이능화, 신문관, 1918)
[네이버 지식백과] 신광사 [神光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출처] 여문(儷文) 해남현(海南縣) 민포당(敏蒲堂)의 상량문(上梁文)|작성자 새오늘
中院正北爲大成殿,是明代成化年間擴建的。建築爲單簷歇山頂,面寬七間,進深五間爲九踩單跳三下昂鬥拱、並有金元時期的45度斜拱,明間次間隔扇窗雕刻精細,分別有三絞燈球六碗、雙絞四碗古老錢等窗扇圖案。殿內爲“八卦攢頂”,木雕藝術和鬥拱結構實爲我國稀有,八卦攢頂顏色鮮豔,不落灰塵,相傳上有避塵珠。大成殿正脊中有刹,兩邊有大勿,垂脊有獸、戧脊有仙人,均爲色澤富麗的琉璃制品,工藝極爲精巧。大成殿正中是孔子的二龍戲珠木雕大牌位,左右是曾子、孟子、顏子、思子的大牌位,還有先賢十二位的牌位,大殿前設露台,雕欄。甬道上的石雕是五爪團龍,這樣的五爪團龍和八卦攢頂一樣,在代縣直至華北的民間都有特別多的傳說,因爲在封建社會,其建築規制有著嚴格的等級要求,龍爲天子之意,只有北京的紫禁城才能雕刻五爪團龍,其餘州、府、縣境皆爲三或四爪,在中國州治地僅有代州孔廟獨享五爪團龍,這在中華大地是絕無僅有的一個例外。孔廟雕欄大部分是石雕團龍,草龍。露台是名人祭拜孔子的主要場所。
中院正北为大成殿,是明代成化年间扩建的。建筑为单檐歇山顶,面宽七间,进深五间为九踩单跳三下昂斗拱、并有金元时期的45度斜拱,明间次间隔扇窗雕刻精细,分别有三绞灯球六碗、双绞四碗古老钱等窗扇图案。殿内为“八卦攒顶”,木雕艺术和斗拱结构实为我国稀有,八卦攒顶颜色鲜艳,不落灰尘,相传上有避尘珠。大成殿正脊中有刹,两边有大勿,垂脊有兽、戗脊有仙人,均为色泽富丽的琉璃制品,工艺极为精巧。大成殿正中是孔子的二龙戏珠木雕大牌位,左右是曾子、孟子、颜子、思子的大牌位,还有先贤十二位的牌位,大殿前设露台,雕栏。甬道上的石雕是五爪团龙,这样的五爪团龙和八卦攒顶一样,在代县直至华北的民间都有特别多的传说,因为在封建社会,其建筑规制有着严格的等级要求,龙为天子之意,只有北京的紫禁城才能雕刻五爪团龙,其余州、府、县境皆为三或四爪,在中国州治地仅有代州孔庙独享五爪团龙,这在中华大地是绝无仅有的一个例外。孔庙雕栏大部分是石雕团龙,草龙。露台是名人祭拜孔子的主要场所。
惆怅
(汉语词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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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惆怅
- chóu chàng
- 形容词 动词
- 因失意或失望而伤感、懊恼
目录
- 参考资料
石梁
(镇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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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石梁
- 天台县东北端
- 158.3平方公里
- 1.7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