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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록, 頓, yaugapadya

VIS VITALIS 2016. 4. 28. 12:15

yaugapadya 동시성, 돈, 돈생, 齊, 구시, 구기, 俱時起



yaugapadya यौगपद्य

Definition: n. simultaneousness: in. simultaneously (=yuga-pad).

http://sanskritdictionary.com/yaugapadya/12950/2



















2) 唯識無境의 論證

 

            道理를 중시함.

 

世親은 <唯識二十論>에서 " 唯識性은 부처님의 경계이다 " 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 一切는 오직 識이다 " 라는

진리는 모든 사물의 본성을 깨달은 부처님만이 참으로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매우 깊은 진리이다. 번뇌의 어두

움에 가리우고 분별의 그물을 아직 끊지 못한 범부는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진리이다. 唯識은 궁극적으로 각 개인

이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하여 곧바로 당도해 들어가서 그것이 되는 진리이다.

 

그러나 유식사상은 실천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모든 유식논사는 실천을 뒷바침해줄 이론을 체계화하는

데 보다 힘을 기울였다. 그 이유를 <섭대승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아직 참다운 지혜와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은 唯識 가운데서

          무언가 추리해야 한다. 敎理에 근거하여 마땅히 추리해야 한다 

 

見道에서 唯識性(眞如)을 올바로 깨닫기 전에는 道理에 근거하여 유식의 이치를 이론적으로 추리(anumana)

해야 한다. 道理의 원어는 yukti이다. 이 말은 원래 " 하나가 되는 것 " " 결합하는 것 " 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바뀌어서 진리와 결합된 이론 . 증명, 또는 이론에 근거를 둔 사실의 규명을 가리킨다. 唯識의 이치를 이론적으로

추리하는 것은 유가행파가 주장하는 네 가지 道理(觀待道理 . 作用道理 . 證成道理 . 法爾道理) 가운데 證成道理

에 속한다. 어떻든 유가행파는 도리에 근거하여 이론적으로 해명하는 것을 좋아한다. 唯識無境의 이치에 관해서도

예외는 아니다. " 오직 識만이 존재하고 識 이외에 외적인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 는 大命題를 이론적으로 증명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이제부터 그 노력의 발자취를 살펴 보기로 한다.

 

          四智에 의한 증명.

 

 우리는 갖가지 사물을 명료하게 인식한다. 여기에 ' 책상 ' 이 있고, 정원에 ' 나무 ' 가 있으며, 사람이 ' 말하는

소리 ' 가 들린다. 그러나  책상 . 나무 . 말하는 소리 등의 외적인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유가행파는 주장한다.

분명히 책상이라는 사물을 눈 앞에서 지각하는데도, 유가행파에서는 그런 사물은 非眞實(aparinispanna) 즉

참다운 실재(parinispanna)가 아니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해심밀경>은 그 이유로서 " 識의 대상(所緣)은 오직

識이 顯現한 것이다. " 라고 하여 요가에 입각한 체험적인 진리를 들고 있다.

 

<해심밀경>과 함께 유식사상을 주창한 <대승아비

달마경>에서 비로소 唯識無境에 대하여 이론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즉 다음 네 가지 지혜(四慧)를 성취한

보살은 유식무경의 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한다.

이들 내용은 그대로 외적인 사물이 존재하지 않음을

이론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1) 相違識相智 : 같은 사물에 대해서도 그것을 인식

하는 사람이 다르면, 그 사물은 다른 모습으로 인식

된다는 것을 아는 지혜이다. 예를 들면 같은 물에

대해서도 餓鬼는 고름이나 피가 가득한 강으로 보고,

고기는 살아가는 장소나 통로로 본다. 하늘나라 사람

은 보석으로 장식한 땅으로 보고, 인간은 깨끗한 물

또는 파도로 보는 등 제각기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만약 외적인 사물이 실재한다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2) 無所緣識現可得智 : 실재하지 않는 사물을 대상으로 하는 인식이 현실적으로 있음을 아는 지혜이다. 예를 들면

과거나 미래의 일, 꿈 속의 대상, 물이나 거울에 비친 영상 등은 어느 것도 실재하지 않는데 그것을 대상으로 인식

하기 때문이다.

 

3) 應離功用無顚倒智 : 功用 즉 수행하지 않고서 오류가 없는 無顚倒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잘못임을 아는

지혜이다. 만약 인식대상이 인식되는 것처럼 실재한다면 범부도 진실을 인식하게 되고, 노력 정진하지 않고도 자연히

해탈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4) 隨三智轉智 : 다음 세 가지 지혜를 따라 인식대상이 갖가지 존재로 바뀌는 것을 아는 지혜이다. <一>自在者의

지혜를 따라 바뀐다. 즉 마음이 자재함을 얻은 보살은 하고자하는 대로, 예를 들면 땅을 물로 변화시킬 수 있다.

<二>관찰자의 지혜를 따라 바뀐다. 止觀을 닦는 요가 수행자가 부처님의 교법을 관찰해서 사색할 때, 어떤 대상이

사색하는대로 갖가지 형상으로 나타난다. <三>무분별지를 따라 바뀐다. 무분별지가 일어날때는 어떤 인식대상도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인식대상이 실재한다면 <一> ~ <三>과 같은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들

세 가지 사실은 일어나므로 인식대상은 실재하지 않는다. 

 

 이상의 네 가지 논증은 크게 다음 두 종류로 분류된다.

 

i) 外的인 사물이 실재한다면 현실의 인식이 성립되지 않는다. → 1) . 3) . 4)

ii) 外的인 사물이 실재하지 않아도 현실의 인식은 성립한다.   → 2)

 

             ※ 위의 두 항을 함께 묶어 생각하면 外的인 事物이 실재하지

                 않아야 현실의 인식이 성립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마음활동(현실인식작용)이 있다는 것은 外的

                 사물이 없다는(설혹 있다고 하더라도 포착되지 않는 토끼뿔 .

                 거북의 털처럼 十二處 밖의 것이라면 나와 무슨 상관이랴)

                 뚜렸한 증거이기도 하다. 따라서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은

                 허망한 因과 허망한 緣으로 ... 마치 夢 . 幻 . 泡 . 影 의 起滅과

                 같은 것이다.   

 

네 가지 논증 가운데 2)의 無所緣識現可得智는 외적인 사물이 없어도 인식이 성립하는 것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으로 그친다. 이것은 적극적 이론적인 설명은 아니다. 그 뒷바침이 되는 논리적 내지 기능구조적인

설명이 阿賴耶識緣起 說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章)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여기서는 i)에 관한 논증을 검토

해보자.

 

1)3)4)는 일반적으로 말하면 " 外的인 事物이 實在한다면 현실의 認識이 성립되지 않는다 " 는 것에 대한 논증

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서 말하는 현실의 인식은 인간의 인식 그것도 동일한 차원의 인식에만 한정

되지 않는다. 1)3)4)의 인식은 다음과 같이 각각 성질을 달리한다.

 

     1)의 인식은 아귀나 축생 등 인간 이외의 다른 생물의 인식도 포함한다.

     3)은 일상적인 인식은 잘못된 것이며, 해탈했을 때의 인식이 참된 것이라는

        가치판단이 행해진 인식이다. 다시 말하면 인식이 迷와 悟의 두 영역에

        걸쳐 있다.  

     4)의 인식은 일반적으로 禪定중의 인식이다.

 

이들 인식내용은 모두 보편타당성을 잃고 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의 인식 또는 선정 중의 인식은 어느 것이나

평상시의 인간 심리가 아니다. 아귀나 하늘 . 지옥 등 육도(六道)의 존재는 객관적인 실재성을 갖지 못한다. 모든

사람이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정 중의 인식도 체험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고, 그

진실성을 인정할 수 없다. 八地 이상의 보살은 " 모래를 금은(金銀)으로 변화시킨다 " 고 한다. 이것은 常識에서

보면 전혀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객관성' 내지 '보편타당성'이라는 용어를 검토해야 한다. 객관성을 서양 철학의 悟性이나 理性의

영역에서만 찾는다면, 앞에서 말한 유식의 인식은 분명히 객관성을 갖지 못한다. 또한 칸트(kant)처럼 보편타당성을

인간의 인식형식의 선천성에서 구한다면 마찬가지로 유식적인 인식은 보편타당성이 없다.

 

그러나 唯識思想, 나아가 불교는 悟性이나 理性과는 성질이 다른 인식, 곧 " 禪定 중의 인식 " 에서 객관성과 보편타당성

을 구한다. 일상적인 심리는 ' 흩트러진 마음(散心) ' 으로서 거짓에 찬 인식일 뿐이다. 이에 대해 선정 중의 심리는

" 정심(定心) " 으로서 참다운 인식이라고 생각된다.    

 

六道 또는 三界의 갖가지 생존상태는 요가 수행자의 정신적인 깊이의 계층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육도나 삼계는 요가 수행자의 체험에 근거한 세계관 생명관이며, 그런 의미에서 객관성을 갖는다고 하겠다.

 

어디까지나 불교는 요가 중의 마음 상태에서 진리의 기준을 찾는다. 감성 내지 오성 . 이성에 근거한

인식에서 진리의 기준을 찾는 서양철학과 불교사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불교에서 六道輪廻는 객관적인 사실이며,

요가의 세계는 보편타당성을 갖는 세계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앞에서 말한 유식무경의 논증은 탁월한 논리체계

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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