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라기와 우두머리
이것은 지배외 피지배의 도식에서는 현실적으로 수긍되고 당위적으로는 부정되어야하는 짝 또는 켤레일 것입니다. 특히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씨저가 자신을 "똑같은 이들 가운데 앞에 있는 자"(프리무스 인터 파레스primus inter pares)라고 명명한 것 마저도 마땅히 부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규범적인 맥락에서 한 말입니다. 현실에는 권력이 작용하고 국민들 앞에 일일이 절하면 다니고 있지는 않죠. 국민이 왕인 민주주의 시대에서 국민은 익명이니까요. 현실적인 인물과 국민인 인물은 기묘하게도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하늘과 땅처럼 멀리 떨어져있게 되었습니다.
불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을 꺼낼 수 있습니다. 대승불교에는 모두가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넘어 모든 이들이 이미 부처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현실적이니 당위적이니 라고 나누어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실적으로는 모두가 부처님이 아닌 것은 삶을 통해서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됩니다. 우두머리와 조무라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원리와 불교의 원리가 똑같이 부딪히고 있는 문제가 바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우두머리와 조무라기입니다. 민주주의에서 모든 국민이 왕이라는 말과 불교에서 모든 사람이 부처님이라는 말은 하나의 원리가 되어 있습니다. 이 원리와 관계하여서는, 민주주의가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문제와 불교가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는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해결방안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우두머리와 조무라기의 간격을 최대한 줄여 그 간극을 최소화시키는 것입니다. 다수가 바라는대로 결과가 정책적으로 제도적으로 도출되게 하는 것입니다. 다수의 요구가 실현되는 것이 아마도 대개는 확률적으로 옳을 것입니다.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요.
이론적으로는 다수의 우두머리를 세워놓고 실질적으로는 소수의 우두머리만 남는 일을 우리는 끊임없이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조무라기입니다. 다만 불교에서는 변함없이 존재하는 우두머리가 있습니다. 부처님입니다. 그러나 님은 갔습니다. 우리는 실제로는 종교의 우두머리와 종교의 조무라기로 이분화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평등해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조무라기가 되어야 합니다. 우두머리 자리는 공석이 되어 있지만 그것을 대신할 사람은 자신 밖에 없습니다. 부처님 본인이자 부처님 대리인인 우리는 그렇게해서야 평등할 수 있으니까요. 대화와 토론을 통해 그 평등함에 도달하고자 애써야 할 것입니다. 우두머리와 조무라기가 자신 안에서 먼저 숙고와 반성을 통해서 해소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