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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설법(無情說法)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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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설법(無情說法) (펌)

VIS VITALIS 2016. 4. 18. 10:58


“눈으로 듣는 무정설법(無情說法)” 지안스님의 불교 이삭줍기〈27〉
 글쓴이 : 금봉사
 조회 : 1,387  

  
 
무정설법(無情說法)이란 한때 선가에서 유행됐던 말이다. 사람이 아닌 무정물이 법을 설한다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산하대지의 온 자연계에서 불법이 설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소동파(蘇東坡)가 승호선사의 할(喝)에 눌려 선에 관심을 가지고 제방의 고승들을 찾아다니며 법을 물었다. 한번은 불인요원(佛印了元) 선사를 찾아가 법문을 듣고자 했다. 이때 요원선사가 사람의 말만 들으려 하지 말고 무정의 설법을 들으라고 했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동파는 절을 나오며 무정설법이란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나귀 등에 올라타고 절을 내려왔다. 내려오던 도중에 골짜기에 폭포물이 떨어지는 곳이 있었다. 이 계곡을 건너며 폭포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던 소동파의 머릿속에서 섬광이 일어났다. 소동파는 즉흥시를 한 편 지어 읊었다.

계성편시광장설(溪聲便是廣長說)  계곡의 물소리가 부처님 법문이니

산색기비청정신(山色豈非淸淨身)  산색이 어찌 부처님 몸이 아니랴.

야래팔만사천게(夜來八萬四千偈)  밤새 온 비로 불은 시냇물 법문을

타일여하거사인(他日如何擧似人)  다른 날 어떻게 사람에게 말해 줄 수 있을까?

소동파의 오도송으로 알려진 유명한 시이다.

중국선의 특징은 격외소식(格外消息)이라 하여 경전의 상식을 뛰어넘어서 법거량을 해왔다. 유명한 조주스님의 무자(無字) 화두도 ‘개가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한 질문의 대답인 ‘없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다.” 한 <열반경>의 말씀과는 반대다. 특히 조사선풍을 강조 하면서 ‘온갖 풀끝에 조사의 뜻이 분명하다.’ 하였다. 천지만물이 모두 진리를 드러내고 있다는 말이다.

  
 
<전등록>에 보면 남양혜충 국사의 공안에 무정설법이란 말이 나온다. 조동종을 창시한 동산양개(洞山良介) 선사가 이 공안을 참구했다. 동산이 위산영우 스님의 회상에 있다 운암담성의 회상으로 갔다. 동산이 운암에게 물었다.

“무정의 설법을 어떤 사람이 듣습니까?” “무정이 듣지.”

“스님께서도 듣습니까?” “내가 만약 듣는다면 그대는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할 것이다.” “저는 어째서 듣지 못합니까?”

운암이 불자를 똑바로 세우고서 말했다.

“들었는가?” “못 들었습니다.” “내가 설법하는 것도 듣지 못하거늘 어찌 무정의 설법을 들을 수 있겠는가?”

“무정의 설법은 어떤 경전의 가르침에 들어 있습니까?”

“<아미타경>에 ‘흐르는 물과 새들 그리고 수목들이 모두 염불을 하고 법을 설한다’는 말을 모르는가?”

이때 동산이 깨달은 것이 있어 이렇게 말했다.

“대단히 기이하고 기이하도다. 무정의 설법은 생각으로 미치지 못하고 말로 표현 할 수 없도다. 만약 귀로 들으려면 끝내 들을 수 없고 눈으로 들어야 비로소 알 수 있으리라.”

여기서 무정설법은 눈으로 듣는다는 말이 나왔다.

[불교신문 2847호/ 9월12일자]










溪聲自是廣長舌(계성자시광장설)인데

山色豈非淸淨身(산색기비청정신)이리오

夜來八萬四千偈(야래팔만사천게)를

他日如何擧似人(타일여하거사인)하리오

산골짜기에 흐르는 물소리가 팔만사천 지혜의 말씀인데

산색이 어찌 부처님의 청정한 몸이 아니겠는가

밤이 옴에 팔만사천 법문을

다른 날에 어떻게 사람에게 들어서 보일꼬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1468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1468





무정설법(無情說法) 
  
유명한 문장가 소동파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유명한 시인 소동파는 고을 관직을 맡아 나갔습니다. 그 고을에는 상총선사라는 이름 난 선승이 살고 있었는데 한번 그 경지를 겨루어 보겠다는 마음으로 찾아갔습니다. 
통성명을 하는데 소동파라 말하지 않고 

"나는 칭(秤)가요."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칭가라는 성이 없기에 

"칭가라니요?" 

하고 선사가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동파가, 

"사람이 몇 근이나 되는지 달아보는 칭(秤)가요." 

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선사는 "악!"하고 할을 하면서 

"이것이 몇 근이나 되는지 일러 보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소동파는 문장가이기 때문에 말이나 글로 경지를 겨뤄 보리라 짐작하고 있었는데, 밑도 끝도 없이 외마디의 할을 하니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소동파는 선사님께 청했습니다. 

"이 우매한 중생을 위해 법을 이야기해 주십시오." 그러나 상총선사는 

"유정 설법을 들어서 무얼하겠는가? 무정설법을 들을 줄 알아야지." 하고 말했습니다. 

소동파는 말로 설해지는 유정설법을 알아도 무정설법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시인 소동파는 그만 아득해져서 정신없이 말을 타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곳을 지날 때 갑자기 폭포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쏴' 하고 들렸습니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무정설법을 들은 것입니다. 이 때 환희에 넘쳐 깨친 소식을 전한 유명한 시가 있습니다. 그 첫 구절은 이렇습니다. 

溪聲便是長廣舌 시냇물 소리가 그대로 부처님의 장광설이요. 
山色豈非淸淨身 산빛이 어찌 그대로 청정법신이 아니겠느냐. 
夜來八萬四千偈 밤새 들은 팔만사천 법문의 그 소식을 
他日如何擧似人 뒷날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을까? 


극락정토에는 나무와 새가 설법을 한답니다. 
가만히 귀 기울려 무정설법을 들으면 여기가 극락정토입니다. 
단지 필요한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09-12-17 11:17:56 법의 향기에서 복사 됨]